■ 육군중앙교회 주일학교 총무 서영석 병장님


선지자선교회 1976년 9월에 입대해서 12월 3일인가 자대에 배치를 하니 선임이 되는 서영석 상병이 계셨습니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그 서영석 상병이 이병을 달고 자대에 배치를 받아서 첫날 신고식을 할 때에 고참들이 따라하라면서 선창을 하였습니다.

“고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격이고, 부모님 말씀보다는 한 끝발 높다!”

서영석 이병은 따라 할 수 없다면서 거부하였고 고참들은 이것 봐라! 하면서 두들겨 팼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자대 배치 받아 첫날 취침 시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니 서영석 상병의 동기가 되는 선임 중에 하나가 똑 같은 놈 하나 들어 왔다면서 말해주었습니다.

둘째로,

서영석 이병이 병장 시절입니다. 말년 고참이고 또 중대본부에 근무했기 때문에 매년 한 차례 있는 유격 훈련에는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열외하지 않고 유격 훈련을 한 주간 받고 왔습니다. 같이 유격훈련을 받고 돌아온 서영석 병장의 동기 중에 한 선임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앞 자리에 앉아서 다음과 같이 서영석 병장이 유격 훈련 받을 때의 상황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이야 서영석 병장 있제! 유격 훈련을 받는데 말이야! 선착순을 하는데 조금도 요량을 피우지 않고 조교가 시키면 곧이곧대로 그대로 뛰어 갔다가 또 뛰어 가고 하더라 아이가! 중간에 가다가 돌아오면 될 터인데 고지식하게 죽어라고 뛰어 갔다가 또 뛰어 오더라! 그런데 말이야 발에는 무좀이 심해서 물이 터져 살이 벗겨졌는데도 말이야! 와- 서영석 머리 아프더라!”

셋째로,

서영석 선임이 병장 시절입니다. 중대본부에 근무하였으니 중대장 사무실은 바로 옆방입니다. 중대장이 중대본부에 들어서면서 급히 한마디 하고 중대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야! 누가 전화 오거든 중대장 지금 자리에 없다고 해!”

조금 후에 전화기 벨이 울렸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서영석 병장이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중대장 계시냐?”

서영석 병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계십니다”

서영석 병장은 중대장님에게 말했습니다.
“중대장님 전화 왔습니다”

중대장은 서영석 병장을 빤히 쳐다보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서영석 너한테 말한 내가 잘못이지 어이구!”

 

 이 말은 중대본부에 근무하던 3개월 정도 후임 병사가 말해주었습니다.

넷째로,

한 번은 CPX 훈련이 몇 날이 가서 주일날도 계속해서 비상 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때는 서영석 병장이 주일학교 총무 때였고, 김반석 일병은 주일학교 교사 때였습니다.  대대 연병장에는 완전 군장에 온 부대원이 총동원 된 칼 같은 상황입니다.

오전 예배 시간이 되어서 서영석 병장이 교회 다니는 군인들을 일일이 찾아서 인도하여 정문 초소에 이르렀습니다. 사열을 시켜서 교회 가는 병력이라며 정문 초소장에게 신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황도끼' 라는 별명을 가진 황영태 중대장이 일직 사령으로서 마침 정문 초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갈하였습니다.

“서병장! 김일병! 교회 가고 나머지 나이롱 교인은 도로 들어간다! 알았나!”

다섯째,

1978년인가 해서 컴프리차가 한창 나오기 시작할 때입니다. 군인이면 보초도 서야하고 동초도 서야 하니까 잠이 모자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한데도 서영석 병장은 밤 1시 정도 되면 일어나서 육군본부 외곽 경비 초소를 돌면서 주전자에 따끈한 컴프리차를 끓여서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근 1년 동안 제대할 때까지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섯째‘

한번은 서영석 병장이 직접 들려준 말입니다. 자기 고향은 여수시 여천 공업단지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고향 친구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목회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작정하여 신학교를 입학하기로 하였답니다.

그런데 농촌에 소작농이 식구들 입에 풀칠을 해야 되고 하니 신학교에 입학할 처지가 못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와 의논하기를 한 사람이 먼저 신학교를 가고 한 사람은 그 신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대고 또 한 사람이 졸업을 마치면 그 마친 사람이 그동안 학자금을 대준 친구를 책임지기로 했다 합니다. 이런 가운데 친구를 먼저 입학을 시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에 자신은 입대했다고 하였습니다. 친구는 그 당시 신학교 3학년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경제가 좋은 시절과 그 당시 급빈 한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 목회를 하도록 이렇게 하였습니다. 불과 나이 20살 정도 무렵에 말입니다.

그렇게도 하는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지 앞과 옆의 주위를 둘러 봅니다. 교인 수가 수 천 명이면 목회자를 많이 배출시킬 수 있습니다. 교인 수 몇 백 명이면 목회자를 많이 배출 시킬 수 있습니다. 교인 수 몇 십 명이라도 목회자를 많이 배출 시킬 수 있습니다. 뭐 한 명이 한 명을 배출시키는데 말입니다.

지금 그 선임되는 서영석 병장님은 어디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지 제대 후 서로 소식이 끊겨서 안부를 전혀 모릅니다. 참 특별한 분 중에 한 분으로 손꼽는 분입니다.

서영석 병장은 육군본부교회 주일학교 총무였고, 그 후임 총무는 신규태 병장이셨고, 그 후임 총무는 김반석 병장이었습니다.

서영석 병장님! 지금은 서영석 목사님!
혹시나 아시는 분은 메일 e0691@hanmail.net로 연락 주시면 많은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육군본부교회 주일학교 교사로서 최무열 병장이 계셨는데 부산신학교 재학 중에 입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교사들의 여러 얼굴이 삼삼하게 떠올려집니다.

육군본부교회 주일학교 교사의 구성은 주로 현역 군인이었습니다. 남군이 절반 여군이 절반 정도 비율이 되었고 그리고 문관이 한 명 그리고 육군본부교회에 출석하는 청년과 학생이 합해서 두 명 정도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수는 남녀 교사 합해서 20여명 정도 되었고, 학생 수는 약 180명 정도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은 거의 다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장교들의 자녀들로서 동빙고 군인 아파트와 서빙고 군인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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