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 선교방법

2007.05.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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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석     번호 : 10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1/12/24 (월) AM 00:23:51  (수정 2006/06/22 (목) AM 07:46:01)    조회 : 190  

■ 중국 조선족 선교방법  
                                                                    이정선 선교사

I. 중국 조선족 선교의 현황

1. 조선족 선교의 중요성

중국은 소위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선교활동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각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종교를 권하는 것은 그 사람의 종교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18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는 종교교육을 시킬 수 없도록 규정해 주일학교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조선족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으며, 조선족이 사는 마을마다 최소한 처소교회(정부의 비준을 받지 못한 예배처소 형태의 교회)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조선족 선교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하겠다. 만주의 2백만 조선족은 북한의 개방 후 북조선 인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며, 나아가 13억 중국 인구를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선교의 잠재역군이다. 이런 점에서도 조선족 선교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2. 조선족 교회의 실태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족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서 한중수교 이후 활발해진 양국간의 교류에 기인하고 있다. 조선족의 한국방문과 한국교회의 중국방문 등으로 연결된 한국교회로부터의 재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중국정부는 모든 종교활동의 통제를 위해 교회 역시 정부의 비준을 받도록 하고 있다. 종교자유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비준을 받기만 하면 교회 안에서의 집회와 모든 규정 내의 종교활동이 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정부의 비준을 받은 교회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교회는 처소교회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비록 처소교회라 하나 정부의 묵인에 의해 종교활동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국의 조선족 교회에서는 한국에서 반입된 성경과 찬송가가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변에서 발행된 연변찬송가가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한국의 찬송가로 완전히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성경을 반입하다가 발각되어 압수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성경이 거의 충분하게 배포되었고 발각되어 압수당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언어체계가 약간 다른 그들로서는 한국의 성경 찬송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반입된 성경 찬송이 그들의 언어체계를 바꾸어 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지도력 교체현상

지금까지 조선족 교회를 이끌어 온 것은 회중 가운데 믿음있는 한두 사람의 집사들이었다. 그들은 예배를 인도하며 때로는 한국교회와의 연결에 의하여 예배당을 신축하기도 하는 지도력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정규신학과정을 졸업한 인력이 교회에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요령성 심양시에 소재한 동북신학교에 3년 전 조선족반이 설치되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졸업생이 배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초창기의 열심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이 이 과정을 수료하고 교회의 지도자로서 사역을 계속하게 되고 있지만, 이렇게 교회 안의 지도력이 교체되면서 상당한 알력과 갈등이 예견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로써 여기저기에서 교회의 분쟁과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 한국 선교사들의 동향

중국에서는 소위 삼자(자치, 자전, 자양) 정책을 내세워 외국인에 의한 선교활동을 일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선교사는 곧 불법행위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활동은 비밀리에 행해지게 되기 때문에 많은 제약과 위험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선교사들의 첫 번째 어려움은 거류증을 확보하는 것이다. 선교사의 신분으로는 중국에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기업체의 협조로 직원처럼 가장해 거류증을 받는다거나 학교에 등록해 유학생의 신분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사역을 쉽게 진행할 수 없어 하는 일 없이 소일하는 분들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선교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에까지 상처를 입게 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리한 사역을 추진하다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 가운데 눈에 두드러지는 것 한 가지는 조선족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일이다. 이 사역 역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지만, 사역의 성격상 노출되기 쉽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실제로 교육을 받는 이들 가운데는 거의 예외없이 당국의 프락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사역하는 분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II. 중국 조선족 선교의 나아갈 방향

1. 감정적인 선교 지양

지금까지 조선족 선교는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었던 경향이 있다. 수십년 동안 적성국으로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중국 땅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게 된 데다, 그 땅에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동족이 살고 있었으니 그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열심과 동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들이 모여 찬송부르는 것만 보아도 눈물이 쏟아지고 그들의 입에서 예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만 보아도 은혜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앞뒤 재지 않고 정열과 자금을 경쟁하듯 쏟아 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라고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당사자인 조선족 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인에 의한 조선족 사기사건은 조선족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감정을 재조정하게 하였고, 한국 역시 조선족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재고의 기회가 되었음직하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때 코리안드림에 심취되었던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가를 톡톡한 대가를 치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결론은 한국은 한국이고 조선족은 조선족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한국과 상관없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조선족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나름대로의 교회를 세우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가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열심과 동정으로 접근하게 될 때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과 자생능력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조선족 교회의 예배당 건물이 한국교회의 지원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이 벌써 그들이 한국교회의 자본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 돈을 앞세운 선교 지양

당연히 선교활동에 돈이 필요함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체의 선교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중국에서 그 대안으로 돈을 앞세운 선교의 유혹은 다른 어느 곳보다 심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돈을 통한 선교의 효과와 위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배처소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곳에 번듯한 예배당이 지어지고,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선 것은 한국교회가 지원한 재정의 힘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서 조선족 교인들의 순수하던 신앙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교회 안의 분쟁도 바로 이 한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큰 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와 연계하여 재정지원을 받게 한 사람이 교회 안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이 가난하면 그 교회도 가난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교인들이 가난하면 그 가난한 교인들이 힘을 모아 가난한 살림에 맞게 예배당도 지어야 한다. 그런데 남들이 지어준 멋진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난한 조선족 교인들은 얼마나 그 교회를 자신들의 교회로 인식하고 있을까? 한국교회는 가난한 조선족 교회에게 돈으로 도와주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선교헌금을 하려거든 반드시 현지에서 어떤 형태로든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에게 해야 한다. 물론 그 선교사가 돈으로 선교하는 분이 아니어야 하겠지만.

3. 무분별한  방문 자제

선교지를 돌아보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아름다운 소원이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중국에는 목사와 장로가 극히 희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 장로님들을 칙사 대접하듯이 한다. 여기서 연약한 인간의 소영웅주의가 자극되어 무슨 큰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때로는 좌충우돌 일을 저지르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게 되는 수가 많다.

중국에 남아 있는 목사나 장로는 수십년 공산주의의 박해를 이겨내고 신앙과 교회를 지켜온 분들이다. 몇 안되는 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일반적인 목사나 장로와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나 장로를 대하는 중국 조선족 교회의 환대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목사나 장로로서의 공식적인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관광 목적으로 여행을 가서도 조선족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오는 목사님들이 많은데, 떠나는 본인은 아무 상관이 없으나 남아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그로 인하여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식의 개별적인 접촉은 조선족 교회로 하여금 경쟁적인 줄서기를 부추길 수 있다. 중국 방문 중 만났던 집사 한 사람이 한국교회의 내노라 하는 목사님들의 이름을 다 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물론 대부분 필자가 모르는 분들이었다. 그만큼 어떤 형태로든 접촉이 많았다는 것이다.

4. 선교활동의 제약 극복

선교사들의 활동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교사들의 활동이나 선교사와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이 교회 안에서 악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교회 안에 분쟁이 있을 때 상대편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당국에 고발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주로 이런 경로를 통해 노출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비밀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사실 중국의 공안은 선교사들의 모든 활동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만큼 뛰어난 정보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대로 놔 두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고발이 들어오면 선교사를 체포하거나 추방을 시키게까지 되는 것이다.

또한 선교사와 접촉한 사람들은 당국에 의해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가령 신학교에 응시하여 우수한 성적을 내었다 할지라도 선교사에게 학습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으면 입학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선교사들의 사역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제약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선교활동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5. 지도자 육성을 통한 교회의 정비

비록 동북신학교에 조선족반이 설립되어 조선족 목회자를 양성하게 되었다지만 아직은 그 수준이 미흡하여, 신학교를 졸업한 분들도 더 배우기를 갈망하고 있다. 또한 성도들 역시 성경공부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힘이 조선족 교회에는 아직 없다. 이것이야말로 선교사들이 몫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습반 형태의 사역을 좀더 정예화하여 보안에 철저를 기하는 한편, 속히 현지인 지도자들로 하여금 평신도들의 성경공부를 인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의 교회에는 상위 조직이 없다. 노회나 총회 같은 치리기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각 교회가 독립적으로 치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법도 없는 상황이고 개교회에서 실권을 잡은 지도자가 모든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형편이다. 목사의 안수도 그 지역의 종교위원회 성격의 모임에서 행하는 것이어서,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당국의 눈에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뿐이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드러나게 큰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교회의 질서를 세워나가는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한 대비책으로서도 지도자들을 올바로 양성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조선족 교회는 이단의 침투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도 큰 약점이다. 전술한 것처럼 조선족 교회들은 한국에서의 지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지원을 미끼로 접근하는 이단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시한부 종말론이 극성을 부렸던 것처럼, 지금도 다락방을 비롯한 한국의 모든 이단들이 달려들어 분별력 없는 조선족 교회를 넘어뜨리려 하고 있다. 현재 이단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개별적으로 포섭하듯 공략하고 있기 때문에 능력있는 지도자들을 이단에 빼앗기지 않고 올바로 인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6. 문서선교의 필요성

현재 중국에서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또하나의 어려움은 교재가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성경과 찬송은 충분히 보급되었지만, 기타 필요한 문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필요한 교재들을 한국에서 반입해 들어가든지, 현지에서 제작하든지, 어쨌든 당장 교재의 보급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장기적인 입장에서 보면 현지에서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여건이 형성되지 못한 형편이다. 당국의 감시도 소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저술과 제작 등 여러 과정이 현재의 여건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선 한국에 나와 있는 우수한 교재들을 반입해서 배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 나와 있는 것들을 번역하거나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가지고 들어가기만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얼마나 유리한지 말로 할 수 없다.

III. 결    론

중국의 조선족 선교는 우리 한국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다. 이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중국의 문을 여셨고 조선족들이 민족의 주체성과 언어를 유지하며 오늘까지 지내오게 하셨다. 이 조선족 선교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북한과 중국의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조선족 선교에는 언어의 장벽이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이점이다. 우리말로 얼마든지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러나 바로 이것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자격미달의 선교사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하나의 맹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아직 선교활동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 역시 선교사역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국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을 기도하는 동시에 슬기롭게 선교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중국 땅에 살고 있는 2백만의 조선족 동포들, 그들에게 우리말고 누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가?
                                                                    


                                                         이정선 선교사

I. 중국 조선족 선교의 현황

1. 조선족 선교의 중요성

중국은 소위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선교활동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각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종교를 권하는 것은 그 사람의 종교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18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는 종교교육을 시킬 수 없도록 규정해 주일학교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조선족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으며, 조선족이 사는 마을마다 최소한 처소교회(정부의 비준을 받지 못한 예배처소 형태의 교회)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조선족 선교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하겠다. 만주의 2백만 조선족은 북한의 개방 후 북조선 인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며, 나아가 13억 중국 인구를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선교의 잠재역군이다. 이런 점에서도 조선족 선교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2. 조선족 교회의 실태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족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서 한중수교 이후 활발해진 양국간의 교류에 기인하고 있다. 조선족의 한국방문과 한국교회의 중국방문 등으로 연결된 한국교회로부터의 재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중국정부는 모든 종교활동의 통제를 위해 교회 역시 정부의 비준을 받도록 하고 있다. 종교자유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비준을 받기만 하면 교회 안에서의 집회와 모든 규정 내의 종교활동이 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정부의 비준을 받은 교회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교회는 처소교회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비록 처소교회라 하나 정부의 묵인에 의해 종교활동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국의 조선족 교회에서는 한국에서 반입된 성경과 찬송가가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변에서 발행된 연변찬송가가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한국의 찬송가로 완전히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성경을 반입하다가 발각되어 압수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성경이 거의 충분하게 배포되었고 발각되어 압수당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언어체계가 약간 다른 그들로서는 한국의 성경 찬송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반입된 성경 찬송이 그들의 언어체계를 바꾸어 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지도력 교체현상

지금까지 조선족 교회를 이끌어 온 것은 회중 가운데 믿음있는 한두 사람의 집사들이었다. 그들은 예배를 인도하며 때로는 한국교회와의 연결에 의하여 예배당을 신축하기도 하는 지도력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정규신학과정을 졸업한 인력이 교회에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요령성 심양시에 소재한 동북신학교에 3년 전 조선족반이 설치되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졸업생이 배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초창기의 열심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이 이 과정을 수료하고 교회의 지도자로서 사역을 계속하게 되고 있지만, 이렇게 교회 안의 지도력이 교체되면서 상당한 알력과 갈등이 예견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로써 여기저기에서 교회의 분쟁과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 한국 선교사들의 동향

중국에서는 소위 삼자(자치, 자전, 자양) 정책을 내세워 외국인에 의한 선교활동을 일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선교사는 곧 불법행위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활동은 비밀리에 행해지게 되기 때문에 많은 제약과 위험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선교사들의 첫 번째 어려움은 거류증을 확보하는 것이다. 선교사의 신분으로는 중국에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기업체의 협조로 직원처럼 가장해 거류증을 받는다거나 학교에 등록해 유학생의 신분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사역을 쉽게 진행할 수 없어 하는 일 없이 소일하는 분들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선교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에까지 상처를 입게 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리한 사역을 추진하다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 가운데 눈에 두드러지는 것 한 가지는 조선족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일이다. 이 사역 역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지만, 사역의 성격상 노출되기 쉽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실제로 교육을 받는 이들 가운데는 거의 예외없이 당국의 프락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사역하는 분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II. 중국 조선족 선교의 나아갈 방향

1. 감정적인 선교 지양

지금까지 조선족 선교는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었던 경향이 있다. 수십년 동안 적성국으로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중국 땅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게 된 데다, 그 땅에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동족이 살고 있었으니 그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열심과 동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들이 모여 찬송부르는 것만 보아도 눈물이 쏟아지고 그들의 입에서 예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만 보아도 은혜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앞뒤 재지 않고 정열과 자금을 경쟁하듯 쏟아 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라고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당사자인 조선족 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인에 의한 조선족 사기사건은 조선족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감정을 재조정하게 하였고, 한국 역시 조선족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재고의 기회가 되었음직하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때 코리안드림에 심취되었던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가를 톡톡한 대가를 치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결론은 한국은 한국이고 조선족은 조선족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한국과 상관없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조선족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나름대로의 교회를 세우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가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열심과 동정으로 접근하게 될 때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과 자생능력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조선족 교회의 예배당 건물이 한국교회의 지원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이 벌써 그들이 한국교회의 자본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 돈을 앞세운 선교 지양

당연히 선교활동에 돈이 필요함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체의 선교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중국에서 그 대안으로 돈을 앞세운 선교의 유혹은 다른 어느 곳보다 심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돈을 통한 선교의 효과와 위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배처소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곳에 번듯한 예배당이 지어지고,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선 것은 한국교회가 지원한 재정의 힘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서 조선족 교인들의 순수하던 신앙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교회 안의 분쟁도 바로 이 한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큰 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와 연계하여 재정지원을 받게 한 사람이 교회 안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이 가난하면 그 교회도 가난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교인들이 가난하면 그 가난한 교인들이 힘을 모아 가난한 살림에 맞게 예배당도 지어야 한다. 그런데 남들이 지어준 멋진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난한 조선족 교인들은 얼마나 그 교회를 자신들의 교회로 인식하고 있을까? 한국교회는 가난한 조선족 교회에게 돈으로 도와주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선교헌금을 하려거든 반드시 현지에서 어떤 형태로든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에게 해야 한다. 물론 그 선교사가 돈으로 선교하는 분이 아니어야 하겠지만.

3. 무분별한  방문 자제

선교지를 돌아보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아름다운 소원이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중국에는 목사와 장로가 극히 희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 장로님들을 칙사 대접하듯이 한다. 여기서 연약한 인간의 소영웅주의가 자극되어 무슨 큰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때로는 좌충우돌 일을 저지르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게 되는 수가 많다.

중국에 남아 있는 목사나 장로는 수십년 공산주의의 박해를 이겨내고 신앙과 교회를 지켜온 분들이다. 몇 안되는 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일반적인 목사나 장로와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나 장로를 대하는 중국 조선족 교회의 환대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목사나 장로로서의 공식적인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관광 목적으로 여행을 가서도 조선족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오는 목사님들이 많은데, 떠나는 본인은 아무 상관이 없으나 남아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그로 인하여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식의 개별적인 접촉은 조선족 교회로 하여금 경쟁적인 줄서기를 부추길 수 있다. 중국 방문 중 만났던 집사 한 사람이 한국교회의 내노라 하는 목사님들의 이름을 다 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물론 대부분 필자가 모르는 분들이었다. 그만큼 어떤 형태로든 접촉이 많았다는 것이다.

4. 선교활동의 제약 극복

선교사들의 활동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교사들의 활동이나 선교사와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이 교회 안에서 악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교회 안에 분쟁이 있을 때 상대편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당국에 고발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주로 이런 경로를 통해 노출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비밀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사실 중국의 공안은 선교사들의 모든 활동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만큼 뛰어난 정보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대로 놔 두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고발이 들어오면 선교사를 체포하거나 추방을 시키게까지 되는 것이다.

또한 선교사와 접촉한 사람들은 당국에 의해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가령 신학교에 응시하여 우수한 성적을 내었다 할지라도 선교사에게 학습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으면 입학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선교사들의 사역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제약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선교활동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5. 지도자 육성을 통한 교회의 정비

비록 동북신학교에 조선족반이 설립되어 조선족 목회자를 양성하게 되었다지만 아직은 그 수준이 미흡하여, 신학교를 졸업한 분들도 더 배우기를 갈망하고 있다. 또한 성도들 역시 성경공부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힘이 조선족 교회에는 아직 없다. 이것이야말로 선교사들이 몫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습반 형태의 사역을 좀더 정예화하여 보안에 철저를 기하는 한편, 속히 현지인 지도자들로 하여금 평신도들의 성경공부를 인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의 교회에는 상위 조직이 없다. 노회나 총회 같은 치리기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각 교회가 독립적으로 치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법도 없는 상황이고 개교회에서 실권을 잡은 지도자가 모든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형편이다. 목사의 안수도 그 지역의 종교위원회 성격의 모임에서 행하는 것이어서,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당국의 눈에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뿐이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드러나게 큰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교회의 질서를 세워나가는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한 대비책으로서도 지도자들을 올바로 양성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조선족 교회는 이단의 침투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도 큰 약점이다. 전술한 것처럼 조선족 교회들은 한국에서의 지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지원을 미끼로 접근하는 이단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시한부 종말론이 극성을 부렸던 것처럼, 지금도 다락방을 비롯한 한국의 모든 이단들이 달려들어 분별력 없는 조선족 교회를 넘어뜨리려 하고 있다. 현재 이단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개별적으로 포섭하듯 공략하고 있기 때문에 능력있는 지도자들을 이단에 빼앗기지 않고 올바로 인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6. 문서선교의 필요성

현재 중국에서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또하나의 어려움은 교재가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성경과 찬송은 충분히 보급되었지만, 기타 필요한 문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필요한 교재들을 한국에서 반입해 들어가든지, 현지에서 제작하든지, 어쨌든 당장 교재의 보급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장기적인 입장에서 보면 현지에서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여건이 형성되지 못한 형편이다. 당국의 감시도 소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저술과 제작 등 여러 과정이 현재의 여건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선 한국에 나와 있는 우수한 교재들을 반입해서 배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 나와 있는 것들을 번역하거나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가지고 들어가기만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얼마나 유리한지 말로 할 수 없다.

III. 결    론

중국의 조선족 선교는 우리 한국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다. 이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중국의 문을 여셨고 조선족들이 민족의 주체성과 언어를 유지하며 오늘까지 지내오게 하셨다. 이 조선족 선교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북한과 중국의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조선족 선교에는 언어의 장벽이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이점이다. 우리말로 얼마든지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러나 바로 이것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자격미달의 선교사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하나의 맹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아직 선교활동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 역시 선교사역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국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을 기도하는 동시에 슬기롭게 선교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중국 땅에 살고 있는 2백만의 조선족 동포들, 그들에게 우리말고 누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