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 한인교회의 현실과 전망

2007.05.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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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중선     번호 : 5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1/24 (목) PM 11:12:50  (수정 2002/05/18 (토) PM 09:48:55)    조회 : 176  

■ 재중 한인교회의 현실과 전망    


                                                                 인보라


중국에 한국인이 진출한 웬만한 도시에는 한인교회가 있다. 재중 한인교회는 재미 한인교회가 재미 한인사회에서 갖는 비중만큼은 아니지만 재중 한국인 사회의 주요 공동체가 되었다. 재중 한인교회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앞으로 한인교회에 대한 기대도 크다. 기대만큼이나 우려 또한 큰 것이 현실이다. 이제 우리가 달려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한인교회의 현주소를 확인해 보고 미래를 조망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재중 한인교회의 출현은 재중 한인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장기간 중국에 거류하다보니 신앙생활의 장이 필요해진 것이다. 적어도 재중 한인의 1/4정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때 상당수의 신자들이 장기간 교회에 출석하여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현지인 교회에 다니기에는 언어의 의사소통 문제 등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하였다. 설사 중국어가 어느 정도 된다고 해도 현지교회에 다니는 것은 그저 예배를 드렸다는데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정서적으로 맞지 않고 영적인 목마름을 해갈시켜 줄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같은 필요를 갖고 있는 주변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다 보니 교회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외부에서 목회자가 중국에 와서 교회를 세운 경우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현지에서 성도들이 모임을 갖다 교회로 발전하면서 목회자를 초빙하여서 한인교회로 세워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외국인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외국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교회를 세울 수는 없었다. 재미 한인교회들은 대개 미국인 교회를 빌려 오후에 예배를 드리곤 하였지만 재중 한인교회는 그럴 수 없었다. 재중 한인교회는 대부분 현지 호텔의 회의실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린다. 물론 오래되고 내실이 든든한 교회들은 별도의 건물을 마련하거나 자신들만의 공간을 임대하여 예배당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한인교회들은 주일은 임대한 호텔 회의실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그 외의 예배나 교회생활은 가정중심으로 하거나 소그룹 중심으로 하는 것 같다. 재미 한인교회는 약간 불편은 해도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교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재중 한인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현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인교회의 설립과 예배당 사용을 허가한 것이 아니라 묵인하는 상태에서 사역을 하기 때문에 제한과 어려움이 있다. 또한 교인이나 목회자가 중국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비자를 연장하여 거주하기 때문에 장기 계획으로 목회하기가 어렵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재중 한인교회는 나름대로 주어진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재중 한인교회는

1.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재중 한인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재중 한인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의 장을 제공하는데 있다. 신앙은 신자 개인이 주님과 일대 일로 하는 영위하지만 신앙생활은 신앙을 갖고 있는 성도들 간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장인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재중 한인 성도들은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헌신을 한다. 성도가 있는 곳엔 교회가 있어야 한다. 한인교회가 중국에 존재함으로 중국에 체류중인 한인 성도들이 한국에서와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아쉬운 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재중 한인교회의 공헌이다. 이렇게 함으로 중국이라는 영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신앙을 유지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재중 한인교회는 나름대로 이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2. 중국에 유학중인 유학생들과 상사 주재원 등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훈련을 하는 등 재중 한인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재중 한인교회는 지역에 따라 교회가 한인 전체를 아우르는 교회도 있고, 목회의 대상을 특정 집단에 맞추는 교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고향에서 보다 타향에서 복음에 대하여 마음이 열린다. 특히 중국과 같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은 곳에서 외로움 때문에 마음이 여리어진다. 그래서 중국에 진출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수용도가 국내에서보다 월등히 높다. 어떤 교회는 상사 주재원 등 성인들에 초점을 맞추어 전도의 열매를 맺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는 유학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전도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신자들이 상당수 생겼다. 유학생이 5,000명 가량 있는 도시에 있는 어떤 교회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대학생들을 양육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이렇게 전도되고 양육된 사람들이 귀국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경우도 많고, 그들 중에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3. 현지에 진출한 한인 기독 실업인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교제의 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만나고 교제를 나누기를 원한다. 교회에서 신앙적으로 만나는 교제도 필요하지만 사회인으로서 만나는 만남도 필요하다. 그런데 실업인들은 지역마다 나름대로 모임이 있어 필요를 채우고, 다른 그룹의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간에 교제가 필요하다. 그래야 동병상린의 성도들끼리 진솔한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교회가 잘못하면 성도의 교제가 아니라 사교클럽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을 감안하여 대처한다면 한인교회가 무리 없이 한인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현지인에게 구제나 긍휼사역, 희망공정 등 간접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재중 한인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한인교회로서의 사명에 눈뜨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든 현지에서 나름대로 선교사명을 감당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인교회가 직접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한 일이다. 그래서 한인교회는 직접 현지인 전도보다는 간접적으로 약한 사람들의 필요를 섬김으로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한인교회가 곤경에 처한 현지인들의 의식주를 힘닿는 대로 돕는 것도 귀한 사역이다. 곤경에 처한 현지인들을 일시적으로 돕는 긍휼사역도 꼭 필요한 일이다. 희망공정과 같은 장학사업도 한인교회가 할 수 있는 간접사역이다. 이런 간접사역은 당장 효과를 내지는 않지만 멀리 보면 현지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도 되고, 또 그들을 이렇게 돕는 것 자체도 귀한 선교사역인 것이다. 이때 조건을 내걸지 않아야 하며, 조급한 마음으로 전도의 열매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5. 현지 교회를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현지 교회들은 신앙과 신학서적, 평신도 사역자 훈련, 선교 사역 등을 하면서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한인교회가 직접 현지교회의 평신도 훈련을 하는 등 직접 사역을 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현지교회를 섬길 수 잇는 길은 많다. 현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필요를 힘이 되는 데로 도울 수 있고 돕기도 한다. 이 사역은 은밀히 해야 오랫동안 할 수 있다.      
6. 현지에 진출한 선교사들에게 이모저모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현지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의 경우 그 지역에 정착하는데 현지 한인교회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현지 생활에 대한 정보와 정착하는데 도움이 되어줄 수도 있다. 또한 선교사 가족들에게 신앙생활의 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선교사나 선교사 가족들이 한인교회에 다니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보안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교회내 지도력의 역학관계로 볼 때 물의가 야기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대도시들에서는 초임 선교사가 한인교회에 다니기도 하고, 그 가족들이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한인교회가 어느 정도 재정적으로 자립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 관계된 선교사를 선교비로 도울 수도 있다. 실제로 선교사를 선교비로 돕는 교회도 있고, 사역에 필요한 재정을 후원하는 교회도 있다. 어떤 교회는 선교사들의 모임이나 수련회에 필요한 상당액의 경비를 후원하기도 한다. 이 때 선교사는 한인교회 목회자를 통해서 후원을 받아야지 그 교회 성도에게서 후원을 받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긍정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모습이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재중 한인교회가 현재 직면한 문제들은

1. 한인교회의 분열이다.
한인이 진출하여 한인교회가 세워진 곳으로 어느 정도 신자의 규모가 되면 분열이 되고 있다. 모든 지역이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도시에서 한인 교회의 분열이 관측되고 있다. 북경에 한인교회가 여럿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어떤 교회는 같은 교단에서 파송받은 목회자들간에 교인쟁탈전이 벌어져 문제가 된 적도 있고, 어떤 중도시에서는 한인교회가 300여명 정도 모였는데 열 개 교회가 분열되어 세워진 경우도 있다. 한인교회가 이렇게 분열되는 것은 한국 교계의 목회자 양산에 따른 영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신학교들이 목회자 양산을 시정하지 않는 한 재중 한인교회의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교회가 분열되는 양상은 몇 가지가 있다.
1) 기존 교회에 불만이 있는 세력이 동조자들을 모아 한인교회를 설립하는 경우. 어느 정도 큰 규모의 교회에서 생길 수 있는 분열이다. 어느 거대도시의 경우 처음부터 있었던 교회에서 마음에 맞는 몇 가정이 교회를 개척하여 나온 경우도 상당수 관측된다. 이 경우 개척 멤버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인 헌신을 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목회자를 초빙할 수 있다.

2) 기존 교회에서 신앙노선이나 교회 정치적으로 갈등이 증폭되어 그 한 축이 나와 교회를 설립하는 경우. 한인교회가 목회자에 의해 설립되지 않고 현지에 있는 신앙의 칼라와 연조, 개성이 다양한 신자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갈등 요인은 언제나 있다. 목회자가 그런 갈등 요인을 해소시켜주고 교회 안에 화목을 이루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분열이 된다.  

3) 기존의 한인교회 구성원의 한국에서의 교회 배경이 다양하여 자기 교단의 목회자를 초빙하여 교회를 세우는 경우. 처음에는 그냥 기존 한인교회에 다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들이 국내에서 지내온 신앙생활과 현지 한인교회 목회자가 지도하는 신앙이 같지 않을 때 분열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불편을 느끼는 신자가 지도력이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신자들을 충동하여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설립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또한 기존 한인교회에서 별 문제가 없더라도 자기 교단 교회를 세워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교회생활을 하기 위해 새로운 교회를 세울 수도 있다.

4) 외부에서 온 사역자들이 기존 한인교회에 다니는 불만을 가진 신도들을 교사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 어느 교회나 불만을 가진 교인은 있다. 그런데 신참 선교사들이 파송받아 왔지만 할 일이 없을 때보고는 해야 되고 하니까 한인교회를 하게 되는 수도 있다. 이 때 이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기존 한인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중에서 자기 교단 사람이거나 아는 사람을 모아 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오래된 선교사 가운데서도 기존 교회에서 불만을 가진 신자들이 찾아오면 못이기는 척 하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교회의 분열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1) 한인교회에 대한 한인사회의 인식을 악화시켜 전도의 문을 막는다.
2) 한인교회 목회자의 관계를 경쟁관계가 되게 하여 추태를 부리게 한다.
3) 선교사가 한인교회에 접근할 때 목회자가 경계하게 되어 협력의 기회를 잃게 한다.
4) 기존 한인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이 상처를 받는다.
5) 분열하여 설립된 교회들이 자립을 하지 못한다.
6) 분열하여 설립된 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이 선교사로서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7) 한인교회의 선교적인 역량을 소진시킨다.

2. 목회자의 정체성이 혼돈되어 있다.
한인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목회자에게서 유래한다. 한인교회의 목회자는 자신을 목회자로도 생각하고 선교사로도 생각한다. 이런 이중적인 정체감은 한인교회 목회자들로 하여금 어정쩡한 태도를 갖게 한다. 목회자들의 어정쩡한 태도는 시종일관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불합리한 언동을 하게 만든다.

왜 목회자들의 정체성에 혼돈이 오는가?
1) 생활비와 관련이 있다. 큰 도시의 기존 한인교회는 목회자의 생활비를 전담하지만 대부분의 한인교회들은 생활비의 일부를 담당한다. 그래서 목회자는 한국에서 부족한 생활비를 선교비라는 명목으로 후원받는다. 그러므로 현지에서는 목회자이지만 한국에서는 선교사로 처신하게 된다. 사람은 대부분 돈에 약하다. 경제적으로 자립이 되지 않으면 진정한 독립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권에 따라 결정하고 처신한다. 목회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생존이 걸려있는 생활비에 대하여 자유롭기 힘들다. 그래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면서 선교사로 파송한 본국교회와 후원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목회를 하면서도 선교에 대한 인간적인 부담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 결과 어떤 형태로든 후원교회에 보고할 거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목회자인데도 선교사로서 사역을 도모하게 되고, 정체성에 혼돈을 갖게 된다.

2) 선교사로서 파송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인교회 목회자 가운데는 한인교회 목회자로 초청받아 온 경우도 있다. 그런 목회자들은 정체성의 혼돈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인교회 목회자들은 한국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는다. 내용상으로는 한인교회 목회자이지만 겉으로는 선교사인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생각하고 처신하지만 선교사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목회를 하면서도 '나는 선교사인데'라고 생각하기에 선교사역을 도모하게 되고, 선교사역을 도모하다가도 '나는 목회자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엉거주춤하게 된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한인교회 목회자는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목회자들의 정체성 혼돈이 가져오는 문제들
1) 목회에 주력해야 하는데 선교사인 것처럼 현지인에게 직접 선교를 하려고 함으로 문제를 야기한다. 한인교회 교인들은 목회자가 자기들을 목양해주기 만을 원한다. 그런데 목회자가 선교사 의식이 과잉되어서 선교에 주력하게 되면 교인들이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평소에는 잠재되어 있다가 다른 문제가 생길 때 클로즈업된다. 중부 지역의 어느 대도시에서는 목회자가 너무 선교지향적으로 나가서 목양을 원하는 중직들이 반발하여 분열된 사례도 있다.

2) 교인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교회의 눈치를 보게 된다. 목회자들도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정서를 알고 있다. 후원교회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도 후원교회 목회자들을 기쁘게 할 일을 생각하게 하게 된다. 그런데 후원교회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은 현지에서는 무리수일 경우가 많고,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한인교회 목회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3) 교회의 문제들을 목양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교회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 교회 문제들은 목양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목회자의 정체성이 목사와 선교사간에 혼돈이 되면 교회 정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쉽다. 어떻게든 문제만 해결하면 되지 교인들에 대한 목회적인 배려를 하기 힘들다.

4) 현지 공안당국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공안국은 한국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대부분 묵인하지만 한인교회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을 시도하면 그냥 두지 않는다. 이런 일은 한인교회의 예배와 교회사역을 눈감아 주는 공안국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한 두 번 경고하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추방하게 된다. 한인교회나 목회자가 중국의 민감한 정치 문제, 즉 탈북자 사역을 할 때 공안국이 아니라 국가안전부(우리의 국가정보원)에서 나서게 된다.  

5) 선교사들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목회자가 선교사연할 때 결과물이 필요하게 된다. 목회를 하면서 현지인 선교를 한다는 것은 현지에서는 어렵다. 그런데도 선교사로 처신하려면 보이는 열매가 필요하기 때문에 무리를 하게 되거나 다른 선교사들이 한 사역을 자기 것으로 보고할 유혹을 받기 쉽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연계된 선교사들과의 관계도 순수하지 않고 어떤 의도를 갖기 쉽다. 그렇게 나가면 결국 연계된 선교사와도 갈등을 일으키고 결별하기 쉽다.

3. 평신도들의 교회에 대한 애착심이 없거나 적다.
제중 한인교회 평신도들은 보헤미안과 같은 마음을 갖기 쉽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현지 한인교회에 애착을 갖고 헌신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갖는다. 현지 한인교회에서는 자기가 본국의 어느 교회 교인임을 내세우고, 귀국하였을 때에는 한인교회 교인임을 내세운다. 물론 중국에 평생 사는 것이 아니고 자주 귀국하는 경우 본래 다니던 교회에 애착이 있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러면 현지 한인교회에서는 손님이 될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오래 살려고 하는 평신도들은 한인교회에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는 등 헌신하지만 소위 중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감사헌금만 하고 십일조는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인교회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은 본국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애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은혜를 받고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며 주님이 교회를 통하여 주시려는 모든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교회에 대한 애착이 없거나 적으면 헌신도 하지 않게 된다. 헌신이 없는 신앙생활은 성장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한인교회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불평분자가 되기 쉽다. 자신이 헌신하지 않는 것을 감추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재중 한인교회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워진 주님의 몸이다. 재중 한인교회가 비록 여러 가지 한계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지만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며 들어 쓰시는 귀한 주님의 귀한 몸이다. 그러면 재중 한인교회가 주어진 여건에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1. 한인교회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붙잡아야 한다.
한인교회의 영성과 생명력은 첫째로 목회자에 달려 있다. 어떤 동기와 과정을 통하여 한인교회 목회자로 오게 되었던 간에 주님이 실수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목회자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목회자는 한인교회 목회자로서의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한인교회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이 한인교회 목회자로 부르셨다면 마땅히 해야 할 사명도 주실 것이다. 성령님은 그 사역자를 사명에 따라 인도하신다. 한인교회의 가장 큰 사명은 한인교회에 소속된 양무리들을 잘 돌보고 목양하는 것이다. 다른 사역들은 그 다음 사명이다. 우선순위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가 양무리를 잘 돌보아 여력이 생기면 그에 따라 한인 전도도 하고, 현지인들과 현지 교회들을 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힘과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억지로 하지말고 순리를 따라 사역하는 것이 생명이 길다.  

2. 평신도들이 교회의 주인의식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섬기는 한인교회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여기>이다. 귀국하면 그 때 본 교회를 섬기면 된다. 지금 여기에서는 한인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주인의식을 가지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보이게 된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하지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는다. 주인의식이 없으면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 대접은 손님에게나 하는 것이다. 손님 교인은 교회에서 주님이 주시는 구비한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다. 헌신이 있어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을 외면하지 말고 주어진 <지금, 여기>에서 헌신하라. 헌신하는지 교묘한 꾀로 헌신을 회피하는지 주님은 아신다. 헌신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를 주님은 다 기억하신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한인교회에 대한 소유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한인교회가 본국 교회의 못된 행태를 본 받아 분열이 되는 것은 평신도 가운데 유력한 사람들이 한인교회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그렇지 않지만 내막은 교회에 대한 소유권 내지 지분을 주장하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주님뿐이다. 목회자를 고용인처럼 부리면서 행세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 도전하는 것이다.

3. 한인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선교의식을 갖고 간접적인 선교사역에 헌신해야 한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감당하기 버거운 사명을 붙잡을 때 시험에 들지 않고 신앙생활에 매진하게 된다. 한인교회는 한인교회로서의 역할인 재중 한인성도들의 교회생활을 잘 하도록 섬기고 그들을 목양하는 일에 힘쓰며 중국 거류 한인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에 나와 있는 한인 성도들은 그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거류하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국선교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이다. 그 부담감이 선교에 대한 헌신으로 열매맺도록 한인교회 목회자는 인도해야 할 것이다. 한인교회가 할 수 있는 선교사역은 다양하다.

4. 한국교회들도 재중 한인교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한인교회에 우수한 사역자를 파송하여 한인교회를 섬기도록 해야 한다.  
재중 한인교회는 결코 한국교회의 잉여 목회자를 낙하산으로 보낼 곳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재중 한인교회는 한국의 교파와 교단을 연장하는 종교식민지의 전초기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예 국내 교단의 주소록에 게재되어 있는 한국교단 소속 한인교회도 있다. 현지 당국과의 문제는 물론이고 어찌 중국에 있는 한인교회가 국내 교회인가?

한국교회는 모국 교회답게 중국거류 한인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장으로서의 한인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인정하고 나름대로의 선교적 사명도 감당하도록 격려하고 기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한인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섬길지언정 간섭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재중 한인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때 기뻐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