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에 대한 몇 가지 자료

2007.05.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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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중선     번호 : 95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5/07/01 (금) PM 06:38:14     조회 : 179  

■ 중국교회에 대한 몇 가지 자료  

작성일: 2005/05/30
작성자: 인보라
  

중국교회에 대한 몇 가지 자료
중국선교공동체(CMA)대표 장성산선교사


1.중국교회를 향한 인식 변화
2.중국가정교회의 성장열쇠
3.중국선교의 함정과 과제

1.중국교회를 향한 인식 변화

최근 한국교회와 선교계는 중국 가정교회의 이단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이슈가 갑작스레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선교사들과 중국 관련 선교단체들이 이러한 자료를 발표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분명한 대답과 결론을 얻지 못할까요?

   단지 외부에서 전해지는 소식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유는 무엇일까요? 중국선교에 대해서 대외적으로 한국교회만큼 비중을 많이 두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해외의 많은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마치 한국교회가 중국선교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내면적으로 뭔가 부족함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한 예가 최근의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 및 단체에 대한 이단 논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한국교회는 물론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이 연구하고 선교전략을 수립할 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중국선교 관련 사이트나 자료 혹은 책자에서 접하게 되는 중국 가정교회 이단자료는 과연 누가 제공하였으며, 어떻게 정죄하였는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료가 화교권에서 수집한 것이든, 개인 선교사에 의해서 보고된 것이든 공통적으로 그 근원이 대부분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에서 발표한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국기독교협회에 대해서는 재삼 설명드릴 필요가 없겠지만, 다시 한 번 소개드리자면, 중국기독교협회는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더불어 ‘중국기독교양회’라고 불려지는 기구입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삼자회’라는 의미는 이것을 통칭하는 것이며, 이에 가입한 교회를 바로 ‘삼자교회’라 하고, 중국 정부가 종교사무조례를 가지고 등록을 강요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러므로 중국기독교협회가 제공한 중국 가정교회의 이단에 관련된 자료에 대해서는 중국교회를 보는 입장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마르크스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주의사상 중심과 교회의 머리를 정부와 체제로 섬기는 삼자교회가 중국교회라는 입장이라면 그것은 별 다른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와 모든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은 어느 누구도 그러한 입장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단문제에 있어서는 동등한 목소리를 내려 한다면 그것은 중국교회 현황에 대해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기독교협회가 주장하는 중국교회의 이단 및 사이비에 관련된 자료는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실제 그들이 행하는 것처럼 가정교회를 핍박하고 오도하기 위해 과장되거나 거짓으로 정죄된 부분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 가정교회 교인수는 현재 7천만 이상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인구를 1400만명으로 추산할 때 대략 5배나 되는 수치입니다. 과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 윤리,도덕적 문제를 포함하여 교리적 문제나 교회운영적 문제를 특정 지역이나 특정인의 행함만으로 전체를 혹은 일부 단체를 분류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일부 이단파(동방번개파처럼 자칭 예수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성경에 위배되는 내용보다는 신앙실천에 있어서 혹은 사회 도덕적,윤리적 관점에서 정죄되고 있기에 그에 대한 분명한 검증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삼자교회나 혹은 중국기독교협회에서 주장하는 중국 가정교회의 이단에 관련된 문제는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정확한 정보 및 자료 수집과 전체 중국선교단체 및 선교사들이 연계된 연구와 토론 및 현장 검증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이러한 기대는 무리가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는 앞으로 중국복음화를 위해 서로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며, 올바른 중국선교전략 수립을 위해 무엇보다 중국어와 전문지식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전문기관을 설립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중국선교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사역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선교는 곧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는 그 전장을 향해 각 처에서 몰려든 연합군입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온전한 전략도 없이 각자의 방식과 개별적 능력만을 믿고 전장으로 달려간다면 그 결과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중국교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직도 한국교회는 중국 가정교회와 삼자교회, 그리고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분별이 미숙한 상태입니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가 하나의 네크워크를 통해서 중국교회를 바르게 알고, 정확하고 분명한 정보와 자료를 토대로 중국선교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이끌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이 수립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중국가정교회의 성장열쇠

오늘의 중국 가정교회를 돌아볼 때마다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반세기를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억압과 탄압이라는 어두운 환경과 공산주의자들의 종교말살정책 가운데 있으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부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은 종교정책을 통하여 인민들에게 종교신앙의 자유만 부여할 뿐, 진정한 신앙의 자유는 종교법이라는 틀로 묶어 놓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가정교회가 존재하고 있고, 더우기 7천만 이상이라는 놀라운 수치로 성장하는데는 어떠한 연유가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중국 가정교회 성장의 열쇠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교회가 중국 가정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가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 열쇠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통제와 감독 하에서 사실상 복음전도의 문은 닫혀 있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중국인들에게 다가가셨을까, 그리고 어떻게 오늘의 7천만이 넘는 가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주 앞으로 인도하신 것일까?

첫째, 전도자의 발걸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 자녀로 택하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억압과 탄압, 심지어는 순교를 당하는 지극한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의 확실한 증거와 용기를 남겨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을 통하여 믿음이 무엇인지, 사랑과 소망이 무엇인지를 전파하게 하셨다. 그들은 가깝게는 가족에게서 멀리는 자신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고,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굳건한 믿음과 담대함을 가진 전도자의 발걸음을 통해서 온 중국 땅으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옥고를 당하기도 하였고, 무고한 죄인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집에 있을 때나 가족을 떠나 머나먼 곳으로 순례자의 길을 나섰을 때나 심지어 감옥에서도 주의 복음을 전하였고, 자신이 체험한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였다. 그들은 핍박과 고난이 거세면 거셀수록 더욱 더 강인하고 굳건한 자세와 믿음으로 주의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전도자들은 신학적 지식도 부족하였으며, 목회자로써의 자격도 없었다. 과거의 교회 지도자들은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들이 전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주의 말씀과 자신에게 부어주신 은혜 뿐이었다. 발걸음이 가는 곳에서 그들은 오직 주님과 자신이 나눈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이야기를 증거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정적이며 순교적인 자세 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

중국 가정교회는 그렇게 중국의 산과 바다 마을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오늘 중국 가정교회에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충만한 것은 바로 그들의 시작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기사와 이적으로 친히 역사하셨다. 문화혁명 이후 성경책은 이제 잿더미로 변하거나 땅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이성적 판단력이 필요 없는 노동만이 최우선시 되는 무지의 환경 가운데 살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지식은 오직 공산주의 사상과 이론에 관한 것이었으며, 믿음 안에서의 한 형제자매가 아니라 사회주의국가를 지향하는 중화민족주의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주께서는 친히 이들을 변화시키셨다. 비록 중국인들이 모두 성경책을 가질 수도 읽고 들을 수도 없었지만, 전도자들의 입술을 통해 주를 증거하고 찬양할 때 주께서는 친히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주의 말씀을 증명하여 주셨다. 병든 자에게 치료를 허락하셨고,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셨으며, 고통과 좌절만이 가득 찬 낙심자들에게 넘치는 기쁨과 소망을 안겨 주셨다.

중국인들은 모이는 것이 비록 교회당이 아닐지라도 그들은 주께서 어디든 그들 가운데 능력과 은혜로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을 찬양하였고, 그 찬양은 입에서 입으로, 심령에서 심령으로 전해져 중국 땅에 수많은 가정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가정교회 집회에 참석했던 많은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가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뜨거운 찬양과 간절한 기도를 잊지 못한다. 중국 농촌의 환경을 돌아보도록 하라.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이들, 한달에 겨우 인민폐 500원 정도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처절한 가난, 무지와 가난 가운데 처한 그들이 주님 앞에 나갔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이 눈이 밝아 성경을 잘 읽을 수 있는가?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 신학적인 설교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찬양은 곧 그들의 기도이며, 주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시편을 읽고 외우고 노래로 찬양하며, 기도로 부르짖을 때 그들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들의 간구와 절규에 기사와 이적으로 응답하셨던 것이다.

세째,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중국 지도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셨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1차 산업에서 허덕이든 중국에 경제발전과 성장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중국교회 역시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교회가 성장 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중국은 1980년대 초부터 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대략 27만명이라는 엘리트들이 해외로 나가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해외에서 지식만 쌓은 것이 아니다. 각 나라에서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본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으며, 해외교회와 중국교회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하여 타이완과 홍콩, 싱가폴, 미주 및 유럽에서 수많은 화교상들이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그들은 막대한 자금을 본토에 투자하여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과 신앙생활에 필요한 성경책과 경건서적 등 문화적 도구들을 전달해 주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신앙고백과 간증을 중국인들에게 전파하게 되었다.

주께서 그들에게 중국을 통한 경제적 이익과 번영만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었다. 본국의 중국인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재점검하게 하였고, 믿음 안에서 도전을 받아 해외의 화교교회들과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연계할 수 있는 귀한 사역도 감당케 하셨다.

또한 이러한 연결고리는 해외의 비화교권 교회와 선교단체로도 이어져 수많은 선교사들이 중국교회와 협력하게 되고, 그들의 부족과 연약함을 돌아보게 하였으며, 이 소식은 곧 그들 국가의 교회에 전달되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기도후원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가정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한데는 그 외도 수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서 몸부림쳤으며, 주께서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셨다.

오늘 중국인이 아닌 나와 당신이 저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길 원한다면, 과연 저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또한 저들이 무엇을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하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중국 가정교회는 이제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 동역할 수 있는 형제자매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반세기 그들은 죽의 장막에 고립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결코 그곳에서 좌절과 낙심만으로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만일 오늘 중국 정부가 펼치는 종교정책이라는 장막으로 인해서 중국 가정교회와 더불어 함께 함에 있어 좌절과 낙심만으로 주저앉아 있거나, 오히려 개혁개방으로 인하여 사생아처럼 탄생한 관방교회인 삼자교회의 손만 잡고 중국복음화라는 구호를 외친다면 과연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온전히 고개를 들 수 있을까?

중국 가정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저들에게 나아가 중국복음화는 물론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동역해야 할 것인지를 신중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3.중국선교의 함정과 과제
21세기 한국교회가 중국선교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과연 무엇일까?

세계에서 가장 급성장한 영향력 있는 선교역량을 가진 교회로써 그 성장만큼이나 요구되는 것은 바로 '성숙'이다. 그것은 외형적 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내적 성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교회는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에게 부어주신 은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는 이스라엘 땅의 사해가 될 수도, 그렇지 않으면 갈릴리 호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중국을 보면, 최근개혁개방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여러가지 어려움과 난관 가운데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교회에 대한 짐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중국 가정교회는 사회주의 정부로 인한 갖은 오욕과 핍박 가운데서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중국교회, 정부 등록교회인 삼자교회와 비등록교회인 가정교회양측이 지금 정치사상과 이단문제로 모두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대국으로써의 성장을 이어가고 민족 통일과 단결을 이룩하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입체적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정비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중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입장에 있으며, 주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로써 짐을 나누어지고 도와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중국선교에 있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이 되고 있다. 한 가지는 직접적인 중국 현지교회이며, 또 한가지는 국외에 있는 화교권교회와 지금은 이미 반환된 홍콩지역 교회들이다.

다시 이 시각을 중국 국내로 돌리면 정부에 등록된 교회인 삼자교회와 비등록교회인 가정교회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교회 쪽으로 눈을 돌리기 전 홍콩지역교회 및 화교권교회들에 대한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중국선교관련 정보와 자료들은 대부분 이곳을 통해 한국교회에 전달되어지고 접근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홍콩이1997년 7월 1일부로 중국으로 반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됨으로 해서 홍콩을 중심으로 한 광동, 절강, 복건성 일대의 교회들이 어쩔 수 없이 정통신학적 입장에서 조금은 색깔이 변색된 삼자교회 형태를 입기 시작하였다. 홍콩이 반환되기 전까지 이 도시는 세계 각 나라의 중국선교를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해 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물론 홍콩 반환의 원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세계를 향한 빗장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중국선교단체들을 일선으로 직접 달려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여태껏 인력,재정적으로 지원하여 운영하던 베이스캠프가 그 가치를 잃게 된 것이다. 그것은 홍콩은 물론 그 일대의 교회들이 어쩔 수 없이 처하게 된 안타까운 형편이다.

결국 지금 그들은 한편의 삼자측 논리와 한편의 보수 정통신학적 논리를 가지고 순수성을 주장하는 입지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으론 관방교회인 삼자교회와 구분되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순절 신앙을 가지고 급성장하는 중국 가정교회파들과도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때론 가정교회의 손을 들 수도 있지만, 때론 삼자교회의 손을 들 수도 있는 그러면서도 순수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과거나 지금 그들로부터 많은 중국 선교 관련자료와 정보들을 입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교회가 가진 성숙도만큼 중국선교도 성숙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숫적으로만 중국선교를 말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과 자료를 통한 정보와 연구자료를 가지고 실질적인 중국선교전략을 수립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서 우선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삼자교회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삼자교회가 이단시하는 가정교회가 과연 신학적으로 정말 이단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의 주장이 왜곡되지 않았는지 과장되거나 편협한 논리는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삼자교회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 교회이므로 법으로부터 확실한 보호를 받고 있으며, 대량의 성경과 찬송가 및 신앙서적을 출판하여 중국 기독교인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또한 비록 사회주의국가의 법률에 의한 관방교회 형태를 나타내고 있지만 순수한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목회자들도 있고, 또 그들을 지지하는 해외 교회와 단체가 교류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삼자교회야말로 진정 중국교회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관광객처럼 중국 삼자교회를 겉으로만 둘러 보았을 때 얻게 되는 결론이다. 그러나 과연 그 내부도 그런 모습일까?

중국 삼자교회의 내부구조는 경사가 급한피라미드 형태의 4단계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밑바닥에는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만 알 뿐 그 외의 사실들에는 알지도 못하지만 관심도 없는 일반 평신도 집단이며, 그 다음 상층이 삼자교회의 종교인, 신학자들이다. 그들은 주류복음파로 사회주의 이념과 사상에 대해 타협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그 다음이 주류 현대파로 불리우는 종교인, 신학자들이다. 그들은 종교보다는 사상과 정치에 얽매이며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져 있는 층이다. 그리고 그 윗층이 무신론자들써 삼자교회를 실질적으로 지도 감독하며 마르크스 유물론을 신봉하는 공산당이다. 바로 그들이야말로 실질적인 삼자교회의 머리인 셈이다.

이것을 통해 이제 삼자교회의 입체적인 모양은 드러난다. 머리가 전혀 다른 교회의 모습, 그것을 가리켜 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바로 '이단'의 형상이다. 전형적인 이단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삼자교회의 머리 역할을 하는 당은 교회지도자들에게 '조국통일과 민족단결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최종목표를 향해 기독교인들을 이끌어 나오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주의 복음을 온 천하에 전파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찾아 볼 수 없다. 삼자교회의 머리는 바로 공산당이요, 나아갈 바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다.

지금 중국 가정교회는 정부와 삼자교회가 펼치는 법규를 통한 행정적 수단과 삼자신학을 내세운 협공을 당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불법 사이비 단체로, 또 한편에서는 이단과 극단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알고보면 중국 가정교회 역시 중국 내에 번져 있는 사이비종교와 이단 및 극단들의 직접적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속에도 사이비도 있고, 이단과 극단도 있다. 그렇지만 마치 모든 정부 미등록 가정교회가 사이비요, 이단과 극단인 것처럼 구실을 만들어 몰아 간다면 과연 어떤 교회가 순수 복음적 교회일까?

중국 정부와 삼자교회의 공격은 과거처럼 강압적 수단이 아닌 정부 정책과 신학적 이론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것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며, 나름대로의 분명한 잣대를 가지고 오직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야 할 것이다.

중국 정부와 삼자교회는 현대파 주류의 신학원을 중심으로 중국교회에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세대 종교인들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정한 법 테두리 안에서 중국교회를 이끌어갈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삼자신학원이며, 그 신학원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삼자신학을 이수한 애국적인 삼자교회 지도자들이 양성된다. 국가를 사랑하고 정부 방침에 의한 교회를 이끌며, 삼자정책을 옹호하는 진보된 종교인들을 배출시키는 것이다. 삼자신학의 핵심 신학원인 금릉신학원의 신학지 제3기에 보면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의 교육방침은 정치적으로 당의 지도를 옹호하고 사회주의 조국을 사랑하며 신도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신세대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즉 애국애교(愛國愛敎)하는 신세대 목회자 양성이 우리의 목표이다."

그것은 마치 공산당 간부를 훈련시킬 때나 적합한 구호처럼 보인다. 오직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복음을 전파할 사역자들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종교계 간부'를 훈련시키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삼자신학은 중국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신학사상을 가지고 중국 내에 '기독교'라는 새로운'정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삼자애국운동을 완성시킬 수 있는 종교 활동으로써의 신앙과 가르침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도덕적 윤리적 가치기준으로 볼 때는 왜곡된 것이 없다고 볼 수 있으나, 성경이 전하고 있는 진리의 입장에서 이것은 분명 '배교행위'이며, '이단적 신앙 태도'인 것이다.

'정의'가 바뀐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 지식으로 받아들이던 주제가 어느 한 지역에서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거나 그 본질 자체가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할 때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이것을 평가해야 할 것인가? 만일 이것이 보편성을 요하는 지식이라면 당연히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로마가 되든, 베이징이 되든, 서울이 되든 그것은 오직 하나의 진리일 뿐이다. 만일 이것을 또 다른 보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하거나 강조하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단'적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이러한 혼란 속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놀라운 은혜를 통해 한국교회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다. 이제 성숙한 신앙적 기준을 가지고 중국교회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분명한 연구와 치밀한 선교전략이 수립되어져 중국 13억이 온전히 하나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중국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