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적 정치화 신학에 대한 분석

2007.05.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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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중선     번호 : 26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2/23 (토) PM 00:44:14     조회 : 76  

■ 삼자적 정치화 신학에 대한 분석


“정광훈 문집”해독


“삼자”의 본래의 함의는 “자치, 자양, 자전”이다.
교회의 한가지 생존방식이나 선교책략이다. 그러나 수십 년 간 중국대륙에서는 아주 복잡한 현상으로 변해있다.

“삼자애국운동”(최초에는 “삼자혁신운동”이라 불렀다.)은 당시의 청년회인사 오약종 등에 의해 시작되고 중공의 대력적인 지지를 받은 정치운동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삼자신학에 대해서는 삼자교회사람들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은 삼자교회의 상층인물들은 대부분이 신학공부를 한 적이 없고 성직인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학을 읽었고 주교신분인 사람은 이미 은퇴한 정광훈이다.

이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전국삼자교회주석을 담임하였고, 또 수십 년간 중국삼자교회의 최고 학부인 금릉협화신학원의 원장을 담임했었다. 삼자교회의 유일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삼자 노선을 대표하는 발언인이다.

정광훈은 큰 기대를 걸고 얼마전 자기의 일부 강연과 문장을 수록한 문집을 출판하였다.
대륙 관방 매체들은 그를 위해 신문발표회를 소집하고 대대적인 선전을 해주었다. 최근 정씨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지 하에서 도처에서 유세하여 자기의 “신학사상”을 팔고 있다고 하는데 신학원들과 각급 삼자교회들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선”(정광훈 선집)을 읽게 하였는데 당년에 “모택동 선집”을 읽던 기세라고 한다. 그는 “신학사상건설”운동의 고조를 일으키려하는데 종교계의 문화대혁명이라 할 수 있다.

정씨가 삼자의 사상을 대표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씨의 문집으로부터 삼자신학을 검토하는 것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래 인용한 자료들은 정씨 본인이 골라내고 편집한 것이다. 역림출판사에서 1998년 남경에서 출판한 “정광훈 문집”, 그러므로 인용할 때 페이지 수만 밝혔다.“




1, 삼자의 정치배경

삼자운동으 주요 지도자들 예를 들면 오약종등은 대부분 기동교청년회에서 왔다.
당시의 청년회인사들은 “사회복음파”에 속하는 자들 이였다. 그들은 회개나 중생의 체험이 없었으며 예수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드리지 않은 사람들이다.

정씨의 말대로하면 “그들은 예수를 위대한 도덕교사와 사회개혁가로만 찬양하였다.
P.91 예수가 전했던 것은 분명히 천국에 관한 복음이였다.
마 4:17 그러나 사회복음파는 그것을 사회정치를 변화시키자는 주장으로 보았고 기독교학설로 사회를 개조하려고 시도하였다. 중공혁명이 정권을 획득한 후 ”그들은 혁명이 중국으로 하여금 거대한 인심을 흥분시키는 성과를 획득하였다는 것과 기독교가 중국을 개조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대비는 그들이 기독교사역에 종사하려던 신심에 동요를 주었다.“(p. 91-92)
그들의 신앙은 실질상 일종의 정치신념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사상과 구별점이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교회를 떠나 “그들이 더욱 힘있다고 여기는 조직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씨는 “그중 대다수가 오약종 선생의 제자들이며 또 그의 친구들이다”라고 알려주고 있다.(p. 92)
그런데 사상이 이렇게 선진적인 오 선생이 왜 공개적으로 입당하지 않고 교회에 남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오 선생의 후계자인 정씨는 40년대 제네바에 있을 때 한 성공회 목사가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대륙을 발견한 듯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진리필승”이라는 금기도 증정했다.(p. 507)

이로부터도 그가 공산주의에 대한 숭배심을 볼 수가 있다. 49년 정씨는 오씨와 만나 이런 관건적인 문제를 물었다. “만약 종교가 핍박을 받는다면 그래도 당신은 공산당을 옹호할 것입니까?” 오씨는 긍정적인 회답을 주었다. (p. 467) 정은 이후 귀국하였는데 이 문제에서 이미 중요한 결정을 한 것이 분명하였다.

50년대 초, 정이 귀국 후 오씨는 그를 금릉협화신학원 원장을 담임하게 하였고 화동종교국 라 국장은 이미 그와 정치와 신학의 밀접한 관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바로 그가 말하는 “정치시비의 신학사상에서의 반영과 신학사상이 신도의 정치태도에 일으키는 작용” (p. 504)이다.
이는 그의 공산주의 세계관의 확립과 신학을 “정밀한 정치”로 보는 사상의 형성과 큰 관계가 있다.



2, 삼자정치화 종교관

삼자교회의 종교에 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맑스 레닌주의 종교관이다.
종교는 다만 객관현실의 허환과 거꾸로 된 반응이라고 인정한다. 정씨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정에서 우리는 이 점을 확실히 볼 수가 있다. 그는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전에 내가 받았던 교육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은 최고무상의 권력이며, 그는 우리를 소멸할 수도 있고 우리로 하여금 권력을 가질 수도 있게 한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상들은 권력욕에 충만하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하고 사회를 독점하려는 사회구조와 대중심리의 반영과 실적인 증명이다. (p. 97)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하나님의 유일성, 전지, 전능에 대한 신실한 신앙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권위, 절대지식, 영원불변, 절대통치, 독단, 다른 것을 용납 안함, 이런 인간이 억지로 하나님에게 부여한 신성들을 한쪽으로 해야한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특히 남성들의 자기들의 염원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p. 112)


정씨는 명확히 종교를 잘못된 인식으로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명의상의 종교인이므로 조금 완곡하게 쓰고 있다. “종교는 다만 착오적인 인식이고 인식의 착오일 따름이다.”(p. 351)

맑스 레닌주의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이 중공이 종교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이며 종교소멸의 이론근거가 되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씨는 동감을 표시하나 신도군중들의 종교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완곡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기독교의 신앙은 확실히 마취적인 작용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p. 264)
정씨의 종교관과 중국이 역대로 믿어오던 경전학설은 완전히 일치한 것이다.

즉 종교는 우매하고 낙후한 세계관이고 맑스 레닌주의만이 과학적인 세계관는 것이다.
한 번은 그는 발언 중 성공회의 중공을 옹호하는 목사들과 오약종을 대대적으로 찬양하면서 “이런 일들은 기독교를 믿는 것은 과학적인 세계관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 모두가 과학적인 세계관을 갖게되는 과정에 있다.”(p. 496-497)

우리는 주교신분의 정씨가 갖고있는 것이 맑스주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맑스 레닌주의는 무신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주교로서 당연히 공개적으로 자기는 무신론자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주교”와 “무신론자”, 정상적인 인간의 논리로선 어떻게도 연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주교가 무신론자에 대한 태도를 볼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첫째로,
그는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구별을 없앴다. 그는 신은 이토록 위대하다. 지어는 “어떤 사람들이 모종의 원인으로 그의 이름을 칭송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를 부인할지라도 신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p. 2)
그리고 또 무신론자의 주장에 동감을 표시한다. “이런 무신론은 적극적인 내용이 있다. 이는 인간의 요소를 많이 강조하여 인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인류의 외침을 대표하며, 인간들이 운명을 자기가 장악하게 끔 고무 격려한다.(p.140)

그는 또 무신론자들의 ”숭고한 인격“에 대해 대대적으로 찬미한다.
예를 들면 노르만 뻬쮼, 뢰봉 등에 대해서 ”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아주 우수한 인격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격과 품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p. 242)

무신론자들을 백방으로 찬미하고 정씨는 또 신학적으로 무신론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무신론은 종교계인사들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p. 109)
그리고 무신론자들이 부인하는 것은“우주의 독재자”이며“중국민간종교의 잔혹한 염라대왕”이면, “허구적인 신명”들이라고 비호한다.
정씨의 논리대로라면 오직 무신론자들이 믿는 것만이 진정한 신일 것이다.




3, 삼자의 정치화 성경해석

기독교신앙의 근거인 성경에 대해서는 삼자에서는 기본 상 자유주의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교회의 절대 부분의 신도들이 성경의 권위를 아주 중시하므로 50년대 화동 종교국장의 지시 하에서 정씨는 “우리나라기독교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기요파신학”을 연구하고 한편의 복음주의관점의 문장을 썼는데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정씨가 이 문장을 자신의 문집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문장이 그의 진정한 신학사상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문집에서 정씨의 성경관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경을 한 권의 고전 문학작품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내용을 설명할 때 “이는 히브리민족의 세계의 기원과 인류의 유년시기의 이야기들로서 역사와 법률 시사를 포함하고 있다....(p. 498)라고 하면서

”신의 계시“에 대해서는 거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선교의 혐의를 받을까 하였다면 적어도 ”기독교도들은 성경을 신의 계시라고 받아들인다.“라고는 했을 것이다.


둘째로 정씨의 이성으로 성경을 판단하려는 자유주의 사상을 엿 볼 수가 있다. 그는 성경과 현대과학의 모순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떠한 고대의 서적이 오늘의 과학관점에 부합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성경을 위해 변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계시를 부인하고 이성을 최고로 생각하며 과학을 성경을 재는 자로 생각하고 있다.

정씨에게 있어서 성경은 신학연구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직 신학사상의 참고자료일 뿐이다.
그는 한 번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성경은 그의 언어를 통하여, 시적인 뜻과 사람에게 주는 미감을 통하여 우리에게 대량의 신학사고의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p. 369)

성경해석을 할 때 삼자의 보편적인 방법은 태조표명적인 사회정치 성경해석이다. 예를 들면 복음서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빵을 나눌 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장면을 정시는 이렇게 해석한다. “양식의 분배문제는 확실히 성찬식의 기본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재부와 기회??? 분배하는 가하는 것은 어떻게 사회를 조직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현신한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p. 4)

이 모든 것은 영에 속한 것에 대한 세속화이다.
정씨는 늘 성경의 역사배경과 영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현실정치로 성경을 해석한다.
예를 들면, 그는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에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 할 것이라는 소식을 선포하는 것을 “그는 인민의 해방에 관심이 없다.‘라고 해석하고 바울이 말하는 ”이신칭의’는 “인성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로마서 13장 1절의 ”모든 권리를 장안한 자는 하나님이 세웠다“는 말은 정씨는 완전히 정치적인 수요로 해석한다. 이 말을 국민당에게는 ”인민들을 마취시킨다.“, 그러나 ”오늘의 인민정권아래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하는 것은 반동이 아니다. 이는 안정과 단결에 유리한 것이다.“(p. 406)



4, 삼자의 정치화 신학

정씨의 정치적인 성경해석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는 삼자의 정치화 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성경의 권위를 특별히 강조하는 기독교신교정통신앙에 있어서 “성경해석은 신학의 기초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지는 하나의 명제이다.

그러나 삼자 영수들은 신학을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정씨? 여러 번 사람들이 신학을 경시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기독교성경은 하나의 위대한 신학거작“이다. 라고 하였다. 그가 강조하는 신학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삼자영수들의 머리 속에서는 신학은 정치이다. 정씨는 미국에서 유학 시에 이미 “하나의 의식형태와 세계관으로서의 신학이 진보거인 혹은 반동적인 정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심각히 체험하였다.” 그러므로 정씨는 여러 번 그의 학생들에게 “신학공부 하는 것은 정치를 떠나서는 안 된다. 어떤 때에는 신학은 가장 정교롭고 세밀한 정치이다.”

“어떤 때”뿐만 아니라 삼자의 “신학사고”는 일관적으로 신학단어를 통한 정치적인 태도 표명에 있다. 정씨의 말대로 하면 “새로운 정치관점의 수립과 동시에 자신이 신학사고를 진행하여 현실을 정치적으로만 옹호할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통하게 해야한다.”(p. 318)

정씨는 이런 신학상에서 “통하게”하는 것은 먼저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의 정치현실을 신학적으로 긍정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정씨는 반복적으로 “이 세상은 마귀의 장악 하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중공의 혁명을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보면서 “이 그리스도의 구속역사에서 인류는 진보와 해방 민주와 박애를 쟁취하는 운동이 하나로 연결되였다.”(p. 96)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중공의 혁명을 찬미하기 위해 정씨는 논리적인 합리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중공집정이후의 중국신도인수의 대량의 증장의 원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혁명이 장기간 광대한 인민의 영혼을 속박하고 있던 봉건권위를 뒤흔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낡은 상황에 대한 불만과 함께 초월과 동경을 찾기 시작했다.”(p. 72) 이렇게 아름다운 새 중국이 어떻게 여기서는 “낡은 상황에 대한 불만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다.

정씨에게 있어서 영적인 일과 정치를 혼란시키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오약종등 “기독교지식분자”들의 입을 빌려서 바울이 말하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을 공산당과 해방군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안이 아닌 그리스도 밖에 있다고 생각하나다.” (p. 82)

이런 순 정치화 신학의 극단적인 예는 정씨의 부활론에서 나타난다. 모두 알다시피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제자들이 직접 목격하였고, 성경이 분명히 기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독교 부흥의 근본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씨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은 누구도 잘 모른다”,

그리고는 간부들의 어투로 “그러나 부활의 도리는 군중기초가 있다.”(p. 186) 마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정치적인 결정인 것처럼, 군중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나 사실상 부활을 부인하고 있다. 다만 이는 군중들의 동경심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삼자신학에서 제일 많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정씨는 입을 여나 다무나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말하는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일반 기독교인들은 아마 그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요 3:16)을 말하는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실제적으로 하나의 정치개념이다. 정씨는 노골적으로 승인한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념과 중국이 응당 사회주의로 가야한다는 신념은 통일적인 것이다.“(p. 108) 그가 말하는 사랑은 곧 ”사회주의“이다. 그는 이렇게 논증한다. ”사회주의는 대규모적인 사랑이다. 사회주의는 사회제도로 형성된 사랑이다.“(p. 214)

그리고는 ”다른 제도하의 사회에서 고난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p. 108) 지어 그는 “사랑으로 통치하는 천국”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꿔 대신하자고 주장한다.(p. 32)

이로부터 우리는 그가 말하는 “사랑”에 대한 정치적 함의를 알 수 있다.
이상은 “정광훈 문집”에서 열거한 일부 재료에 대한 분석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삼자신학의 일부윤곽을 볼 수가 있다. 삼장의 배경응은 기본 상 청년회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복음파에 속하며 공산당간부들은 그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정치적인 수요로 인해 맑스 레닌주의 종교관을 받아들였으며 무신론자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들이 성경에 대한 해석은 정치적인 시각에서의 억지 해석이다. 그들은 신학을 일종의 정치로 보고 있다. 그들의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실제적으로는 일종의 정치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신학은 성경의 계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씨를 위주로 하는 삼자신학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정치적인 수요를 만족시키려고 성경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정치신학은 사회복음이나 자유주의신학이라고도 칭 할수 없다. 사회복음은 기독교의 사상으로 사회를 개조하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에 대해 일정한 비판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은 철학적인 사변을 가종하며 적어도 조금의 독립적인 사고는 갖고 있다.

그러나 삼자신학은 완전히 일종의 기회주의이다. 정씨가 해방신학에 대한 태도가 한가지의 좋은 예이다. 원래 해방신학은 중공의 정치적인 표준으로 볼 때는 혁명적이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중공은 이미 정권을 취득하였기에 “우리의 정황으로 보면 해방절대화를 신학의 영원한 주제로 삼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p. 29) 정씨를 위주로 하는 삼자신학은 실제상 일종의 신학용어로 표현한 정치적인 태도이다.
일종의 “가짜 신학”이다. 곧 모든 사람들에게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