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교회의 실체적 진실 (3)

2007.05.15 12:12

선지자 조회 수: 추천:

이름 : 중선     번호 : 31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4/03 (수) PM 09:53:50     조회 : 62  

■ 삼자교회의 실체적 진실 (3)    


  

4.4 돌이켜 자신을 새롭게 하면 중생한다,

신이 있는가 없는가는 작은 일이며. 사소한 일이다. 신학지 2기 p.31에 이런 말도 있었다.
"나는 이번 대륙과 북경의 중앙 통전부장 평걸삼과 화평반점에서 만날 때 나의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사선생, 우리는 이미 많은 착오를 범했어요!' 그의 이 말은 매우 성실하고 담백한 것이었다. 누가 잘못이 없겠는가? 돌이켜 새롭게 함은 예수의 중생의 길이 아닌가. 신이 있다 없다함이 작은 일이며, 사소한 일이다.'


'중생'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다(요3;5-6). 게다가 謝는 잘못을 인정함이 그가 중생이라 말하고,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는 긴밀한 관계가 없고 작은 일이며 사소한 일이다.

사의 말로 통전부장은 중생하였다. 다만 그는 무신론자이다. 예수를 믿지도 않으며 게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중생케 하시나? 그의 중생은 스스로 다시 태어남인가,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 사(謝)는 도대체 누구인가? 앞에서 나왔듯이 성경을 다시 고치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것이 사부아 교수이다. 그는 중국특색의 중국교회 신학을 건설함에 다음과 같이 건의하였다.

"다만 예수만 탐구하고, 사람들의 수요와 사랑을 예수의 숭고한 인격에 의해 나라사람을 변화시킨다, 새로운 인류를 건립하기 위해 회개에 의한 구원과 동정녀 수태와 부활 등 기본소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신학지14-15기, p.33)

이렇듯 믿지 않는 사교수가 신학지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므로 신앙의 선배 영웅인 것처럼 치켜세운다. "완벽한 신학이론이 있으며, 아시아의 신학의 숲을 족히 이룰 수 있다"(신학지24-25기, p.79)

사실 사와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며 성경을 고치는 가짜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저주하며 죽이실 것이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신18;20)

우리는 신학자의 이야기를 맹목적이 아닌 사실을 변론하여 받아들이는데, 그들은 단지 한번의 숨을 내쉰 것이지만, 처음의 하나의 잘못이 백 사람의 잘못을 만든다.


4.5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실이며, 사람이 명백히 알지 못하면, 누구라도 바르게 설교할 수 없다.

이것은 정광훈의 어느 부활절 날의 설교인데 제목은 주님이시다.
(신학지 2기상) "오늘날 전세계의 1/4이 부활을 믿고 있어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은, 사람들은 명백하게 모르지만, 다만 10억의 사람 생각에 부활의 대표진리는 대단히 심오하다. 이것은 신앙상식에 위반되며 2000년이나 불변하였다.

누구도 분명히 설교하지 못하지만, 이것은 한번에 없앤다는 것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한 단락의 말을 반복하여서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비상식적이다. "사람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또"누가 정확하게 밝히 설교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당신은 물론 '1/4의 인구가 믿고, 십억인구가 심오히 의미를 갖고 2000년 역사가 있다해도' 모두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다.


글 중에 정은 다시 부활정신에 대해 예를 들기를 장극가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살았지만 죽었고, 어떤 자는 죽었지만 살아있다" 곽말로가 문일다를 기념할 때 말하기를 "하늘 아래서 많은 금과 돌과 석고와 나무로 문일다를---우리는 지금 당신의 죽음을 기념할 수 없고, 당신의 다시 삶을 축하한다." 정은 또 고시(故試)를 인용하여 죽은 사람이 부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정이 말하는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정신의 부활이다.

글로 기록된 그리스도의 부활은 "누구라 분명히 말하랴" 이 누구의 글자는 예수와 사도가 모두 떠났으므로 역사 속에서 아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께서 친히 강하게 증거하신 것이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베드로, 요한, 아곱은 유력하게 부활을 증거하였다. 특별히 고린도전서15장에서 사도바울도 강력하게 증거하였다.


2000년이 지났지만 그의 증거의 음성은 약화되지 않았다. 매번 성경을 읽을 때마다 믿음이 더 강해진다. 바울이 말하기를 주님이 부활 후 게바에게 보이시고, 열 두 사도에게 보이시고, 500여 형제에게 보이셨다. 여기까지 설교하시고 더 고조를 높여 말하기를 "친히 500명에게 보이시고, 그 중의 반 정도는 아직 여기 있다."


여기까지 읽고, 그들의 마음은 격동하여 끓어올랐다. 그때 있었던 사람은 제일 좋은 증거이다. 그리고 우리도 오늘 살아있는 증거이다. 바울이 당시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그때 바라본 사람들 중 살아있는 사람이 있고 그는 필연적으로 자기 눈으로 주의 부활을 본 사람이다. 얼마나 힘이 있는가!

누가 감히 믿지 않으리요! 어찌 분명히 설교하지 못하리요!? 그러나 그가 쓴 "주입니다"에서 바울의 강한 음성과 비교할 때 얼마나 창백하고 무력한가, 정말로 '반동'이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기념하는 주의 부활의 이름을 빌어 주님의 부활을 실제로 부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