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교회를 보는 관점

2007.05.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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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중선     번호 : 17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2/23 (토) AM 10:43:40  (수정 2002/05/18 (토) PM 10:04:32)    조회 : 57  

■ 삼자교회를 보는 관점    

                                                                                      인보라

삼자교회에 대한 이해가 크게 엇갈려 중국선교 헌신자들을 헛갈리게 한다. 삼자교회의 실체는 무엇인가? 삼자교회의 모습이 다양하게 비쳐지기 때문에 삼자교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삼자교회를 바르게 볼 때 중국교회와 중국선교를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알 수 있고 중국선교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자교회는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된 이후 형성된 교회이다. 삼자교회는 일원화된 중국 공산당의 지도를 실행하기 위한 대중운동의 일환인 삼자혁신운동(三自革新運動)을 통해 생겨났다. 삼자교회는 삼자애국운동위원회(약칭 삼자회,TSPM)와 중국기독교협회(약칭 기협)로 구성되어 있다. 삼자회는 1950년 중국 공산당이 설립한 애국종교조직이며 그 기능은 정부에 협력하여 종교정책을 수행하는데 있다.


중국기독교협회(CCC)는 1980년에 중국 공산당에 의해 조직된 삼자회의 자매조직으로서 중국기독교회의 교무업무를 처리한다. 삼자회와 기협으로 구성된 양회는 통전부와 종교사무국의 지도를 받으며, 그 업무 목적은 당의 총노선을 따르도록 성도들을 교육하고 지도하며, 종교계에 대한 당의 지시를 전달하는 것이다. 양회는 애국공약 속에서 반복적으로 당의 지도를 받으며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사상을 견지할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


양회가 충성할 대상은 첫째가 정부이고, 둘째가 하나님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따라서 양회의 실상은 정부의 위임기구로 중국교회의 자주적인 단체는 아니다. 삼자교회는 합법적 종교활동인 주일 에배, 신학교육, 성경과 종교서적 발행, 해외교회와의 합법적인 교류 등을 통해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일부 감당하고 있다.


즉 가정 등에서 은밀하게 예배하는 것을 원치 않는 신자에게 합법적인 예배 장소를 제공하였고, 비신자와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삼자신학원은 삼자교회에서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신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공했고 문서와 출판업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해외교회와 중국교회와 합법적인 교류의 길을 열어 주었다


1. 교회론적 관점에서 본 삼자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일하도록 부름을 받은 무리이다. 삼자교회는 중국정부에서 기독교 신도들을 사회주의 중국 건설에 동참하고 적극적인 힘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인교회 조직을 허락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그곳에서만 종교활동을 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이 만나는 장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예배당, 가정집, 천막, 나무 밑 등 어디에서나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자교회는 교인들이 모이는 예배당을 중시한다. 삼자교회가 내세우는 것은 전국 곳곳에 웅장하게 세워진 예배당과 그곳에 모여드는 수많은 집회인원들이다. 삼자교회 예배당이 처음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평신도 사역자들에게 교육받을 장소와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삼자교회 예배당이 교회는 아니다.


사회의 조직체로서의 삼자교회는 정부의 입장과 노선을 옹호 실천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통치체제와 질서 속에서 사회조직인 삼자교회는 정부의 중요 시책과 입장, 노선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과거 정부의 사회, 군중운동과 여러 시책을 잘 따랐다. 그러기에 삼자교회는 정부의 입장과 노선에 문제점이 많고 심지어 비성경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는 제약과 종속성이 있다.



2. 구조적 관점에서 본 삼자교회

삼자교회의 실상을 구조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삼자교회의 실제적 구조를 모른다면 삼자교회의 실상을 알 수 없다. 삼자교회, 특히 조선족 삼자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어보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삼자교회에 대한 그동안의 선입견을 버리고 삼자교회를 가정교회와 같이 보거나 해외교회와 동질적으로 보게된다.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 삼자교회 신자들이 그저 주일에 예배나 드리고 만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귀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배만이 신앙생활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래서 신자들이 예배 외에 주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려고 할 때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교회의 법규와 규칙, 그리고 지도부가 봉사와 헌신을 막는다.


물론 교회 지도부가 지향하는 대로 순응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성경대로 봉사하고 헌신하려한다면 벽에 부딪친다. 아니 성경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려해도 벽에 부딪칠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교인들이 신앙에 열심히 나서 교회생활에 깊숙이 개입하게되는데서 오는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국교회에서 부딪히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요, 개 교회적인 문제이지만 삼자교회에서 당면하게 되는 것은 삼자교회의 구조에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 머리와 초석으로 한다(엡1:22-3,2;20). 이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치함을 의미한다. 삼자교회의 강령은 애국이며 애교는 장식용일 뿐이다. 애국은 교회의 지도권을 정부에 넘긴 것이다.


그래서 당이 교회의 모든 것을 지도하고 개조한다. 당과 정부의 삼자교회에 대한 통제는 직접적인 지도와 간접적인 내부 대리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과 정부는 중앙에서 현급까지 당의 각급 통전부서, 정부의 각급 종교사무부서와 각급 공안부서를 통해 삼자회와 기협의 지도자 인선과 교역자, 장로, 집사 등 사무인원을 선정하고 교회 지도자, 교역자와 기타 인원의 확정 변동에 대한 선택과 비준을 할 뿐 아니라 설교 내용, 성직 안수와 장립, 교류활동의 심사, 비준을 관리할 권리를 갖고 있다.


교회 내부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자가 정기 및 수시로 관련부서에 보고해야 한다. 당과 정부의 종교관련 관리들은 교회내부의 상황에 때때로 익숙하지 못하며 거의 문외한이기에 교회를 직접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국, 성, 시, 현 등 양회 지도자 가운데 당과 정부가 교회 내부에 대리인을 배정해 놓는다. 당과 정부에 충성하며 당의 신임을 받고 교회 사무에도 익숙하며 교회에서 비교적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명망이 있으며 적극적이고 유능한 사람들을 대리인으로 삼는다. 이들이 당의 의도대로 교회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구체적으로 집행한다.


3. 사역적 관점에서 본 삼자교회

교회의 목적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양육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들의 유익을 얻도록 하는데 있다.

주님은 자신의 권세로 교회에게 가서 세례를 주어 가르침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마28:18-20). 제자삼는 것은 전심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나가는 과정이다.


제자를 삼는 것은 전도(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옴-행14;21)와 양육(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세워 가는 것-행14:22 -23,28, 15:35))이 포함된다. 삼자교회는 공개적으로 전도를 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유이나 전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또한 18세 이하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교회에 나오는 18세 이상의 성인들에게만 세례를 주고 전도하지 않는 교회가 어떻게 신자들을 양육하며 제자를 삼을 수 있겠는가? 삼자교회는 전도에 힘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교에 대한 비젼도 의지도 없다. 삼자교회는 구조적으로 교회의 제일 되는 목적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제자로서의 신자 양육에는 영적 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말씀선포(골1:25,28)가 우선해야 한다. 삼자교회는 성경을 설교하나 주님의 재림 등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선포하기를 터부시한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 설교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공급을 받거나 성도들 사이의 영적인 교제가 부족하여 심령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성도로 드려야 한다(골1;28).


이를 위해 상담, 경고, 충고, 책망, 바로잡음, 수정 등으로 신자들을 권해야 하며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하여 신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삼자교회는 교역자가 부족하여 말씀에 선 신자들이 너무 부족하다. 설교와 형식적인 심방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꾼들을 키워 그들이 평신도 사역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이런 사역에 주력하는 교회가 적고, 또 학습반을 지도할 교역자가 부족하다. 교회는 사역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해야 한다(골1:29). 삼자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보다는 교회의 규칙과 제도에 얽매여 사역을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며 신자들이 심령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골1:27, 벧전2;12, 마5:14-16, 고후4:5-7). 일부 삼자교회의 목사와 장로, 교역자들이 동료 교역자를 다스리는 대상으로, 또는 주종관계로 생각해 불화를 낳아 서로 미워하고 공격하여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못한다. 삼자교회는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의 능력을 잃고 사람들을 넘어뜨리며 하나님의 영을 근심시키고 있다.


제 6차 전국회의에서 개정한 교회 규정에서 교역자의 권징 내용 부분이 강화된 것도 삼자교회 내 교역자의 윤리 도덕의 경시와 타락이 심각해진 것을 반영하고 있다. 삼자교회 지도자들의 개인주의와 배금주의는 교회 내의 교권쟁탈, 자기 명예를 내세우는 일, 개인의 권위를 수립하는 일, 타인에 대한 중상 모략으로 분출되고 있다. 또 돈과 명예로 생겨난 분쟁과 질투, 교권의 쟁패, 해외교회의 물질지원을 받기 위한 변태적인 구걸행위 등이 심각하다. 삼자교회의 배금주의는 성직에 대한 직업화와 상업화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자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만 드릴 뿐 양육이나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삼자교회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고가지만 그들이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고 목양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깝다"고 하였다. 필요한 목회인 치유, 지탱, 인도, 화해를 충분히 수행하려면 목사등 교역자가 충분해도 부족하다. 하물며 삼자교회와 같이 목사와 교역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목회가 충분히 수행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필요한 목회를 충분히 수행하려면 평신도의 목회자화가 되어야 하는데 삼자교회는 당회 모델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 목회자가 설자리가 없다.


* 개별 삼자교회의 차이점 이해


중국 삼자교회는 모두가 같지 않고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삼자교회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삼자교회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정치적인 교회도 있고, 아주 복음적인 교회도 있고, 어정쩡한 교회도 있다. 가정교회를 대적하며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고발하는 삼자교회가 있는가 하면 은밀하게 가정교회와 교통하고 동역하며 가정교회를 돕는 삼자교회도 있다.


개별적 삼자교회의 특징과 상황은 각 지역의 상황과 종교 간부, 교역자로 인해 결정된다. 각 지역 삼자교회의 상황은 각 지역의 상황 즉 각 지역의 종교 상황, 경제 환경,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갈망, 지역의 종교 관계 간부 - 즉 통전부, 종교국, 공안국 간부들의 교회에 대한 권력행사, 월권 행위, 교회 내부업무에 대한 세부적인 간섭 등과 지역 양회의 기독교 간부와 해당 삼자교회 교역자의 교회 건설에 대한 적극성, 참여도, 교회의 자양 상황, 신자들의 봉사와 헌신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중앙에는 정책이 있고, 지방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도 각 지역 삼자교회의 운신의 폭을 나타내 준다. 이상의 요인들로 인해 삼자교회의 활동 영역과 내용이 다르게 전개될 수 있으며, 해외교회와의 관계와 교류 정도에 따라 활성화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목회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냐가 지역삼자교회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준다. 삼자교회에는 세 부류의 지도자들이 있다.

첫째,
정치지향성이 강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극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삼자회와 기협에 포진하고 있으며 삼자교회의 최고지도자 그룹을 구성하고 있다. 대도시 교회에 이런 부류가 꽤 있고, 지역교회에도 이런 부류의 지도자들이 있다. 이들은 신앙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고 오직 정치 논리와 자기 이권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가정교회에 적대적이고 가정교회에 대한 고발과 핍박에 앞장선다.


둘째,
신앙이 있긴 하지만 정치를 지향하는 성향이 있고 야망이 큰 부류이다. 이들은 중도 좌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믿음으로 살려고는 하지만 이권을 밝히며 이권에 따라 움직인다.

셋째,
복음주의적인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중도 우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많지는 않지만 상당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오바댜와 같이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려하고 말씀대로 살고 사역하려 한다. 이들 중에는 가정교회와 교류하며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사역자들도 있다.


삼자교회 목사는 대도시냐 지방이냐에 따라 삼자신학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대도시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은 거의 대부분 삼자신학에 충실하다. 그러나 지방에 갈수록 삼자신학에 대한 집착은 엷어진다. 이는 삼자신학에 충실하는 것이 이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삼자교회 목사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삼자신학에 충실하고 삼자회의 정책을 준수한다. 그러나 지방에 내려갈수록 지켜야 할 기득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삼자교회 목사이지만 삼자정책을 성실히 따르지 않고 자의로 사역을 한다.


삼자교회 목회자의 성향은 그가 공부한 신학교와도 관련이 있다. 남경금릉협화신학원 출신은 대부분 자유주의적이고, 연경신학원출신은 대부분 복음주의적이었다. 지금 삼자신학교들에서는 복음주의적인 교수들을 금릉협화신학원 연구원 출신들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98년 제남에서 열렸던 삼자회의에서 정광훈 주교가 말한 바대로 삼자신학을 신학교에서 철저히 가르치려고 힘쓸 것이다. 삼자신학을 학습시키기 위해 교수진들을 삼자신학에 철저한 금릉협화신학원 출신들로 교체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신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해서 정치적 기득권이 별로 없는 지방 삼자교회 목회자들이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삼자교회 목회자는 삼자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했는가, 아니면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거나 선교사들에게 양육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신앙과 신학의 성향이 좌우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복잡다단한 요인들로 인하여 같은 삼자교회이지만 지역에 따라, 목회자에 따라, 해 지방정부의 교회에 대한 태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 삼자교회에 대한 현실적인 선교 접근 방안

삼자교회와 협력하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공개적으로 삼자교회와 협력하는 길과 비공개적으로 은밀하게 협력하고 섬기는 길이다. 프로젝트 선교를 하려면 공개적인 접근을 추구해야 하고, 삼자교회에서 사역자를 훈련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하려면 은밀한 비공개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프로젝트성 선교를 하려면 상당한 액수의 선교비가 필요하다. 양회를 비롯한 종교담당 정부 기관들은 프로젝트성 협력을 원한다. 그래야 자기들에게 이권이 있고 통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적인 믿음의 사람들은 은밀한 협력을 원한다. 영적인 필요를 채움받기 원하기 때문이다.


삼자교회와 협력하려면 지역삼자교회와 그 목회자의 성향을 잘 간파해야 하며, 그 지역 종교담당 정부기관 관리들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관계를 맺으면 삼자교회에서 할 일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거래를 좋은 관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역자들이 삼자교회와 맺고있는 것은 대부분 좋은 관계가 아니라 거래인 것이다.


1) 삼자신학교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법이 있다. 신학교를 건축하는데 후원하거나 성급 성경학교를 세우는데 후원할 수 있다. 삼자신학교에 도서관을 건축해주거나 도서들을 구입해 줄 수 있다. W선교회는 C성에서 성급성경학원을 설립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현지 삼자교회 목사를 앞세워 성 양회로 부터 성경학원을 설립하도록 허락을 받고 성경학교 건축을 위해 모금중이다. 이 경우 후원하는 목사들이 가끔 방문하여 특강은 할 수 있지만 정기적인 강의를 할 수는 없다. 관계가 더 발전하며 이보다 더 깊은 사역도 가능하기는 하다.


2) 신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후원할 수 있다. 신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양육할 수 있다. 신학교졸업생들을 상대로 상급의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고 주관준 목사님은 중국신학교 출신이어서 삼자신학교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근 10년간 300명 이상의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였고, 연길에서 동북신학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월 1회 1주간씩 집중적으로 신학대학원 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삼자신학원 학생들의 학비를 대 주는 일은 돈만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돈이 마련된다고 해서 신학생들을 후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정부는 삼자신학교가 커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 지역삼자교회의 영적인 필요와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 삼자교회의 예배당을 건축해 줄 수 있다. 삼자교회의 비품들을 후원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선호해 온 선교형태이다. 삼자교회를 건축해줄 경우 경비가 실제보다 상당히 허비된다. 실제 건축비와 관계된 사람들이 착복하는 경비가 30-40% 정도가 된다. 그 선교비를 가지면 중국교회를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삼자교회의 배훈반에서 강의할 수 있다.

이 사역은 지역삼자교회 목회자와 깊은 관계가 형성되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 단 기간 삼자교회에 가서 집회를 할 수도 있다. 삼자교회에 가서 집회를 하는 것이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성공적인 경우도 있다. 어느 목사님은 하얼빈 양회의 초청을 받아 1주간 몇 교회에서 은혜로운 집회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흑룡강성에 있는 삼자교회의 목회자들을 재교육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4) 선교사들이 전도하여 제자훈련을 시켜 양육한 지체를 삼자신학교에 보내어 삼자교회의 목회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먼저 복음과 말씀으로 철저히 세워졌기 때문에 삼자신학의 영향을 덜 받고 합법적인 신분으로 삼자교회에 복음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삼자신학교에 재학중인 신학생을 개인적으로 양육하여 말씀과 진리로 세워서 삼자교회에서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5) 삼자교회의 보호아래 있으면서 사역을 할 수도 있다. 삼자교회 목회자들은 지방정부의 종교관계 관리들과 친하기 때문에 그들의 비호를 받으면 다른 사역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어느 선교사는 긍휼사역을 하면서 삼자교회에 다님으로 위험으로부터 대비하였다. 그가 다니는 삼자교회 목사는 어려움이 닥칠 때 돕겠다고 약속하였다.


6) 삼자교회 지도자의 요청을 받아 그들이 준비한 배훈반에서 강의를 할 수 있다. 이 사여은 비거주로 치고 빠지는 식의 사역이다. 이 때 초청받은 선교사나 사역자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강의 중에서라도 말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귀국해서나 선교보고시 등 어떤 자리에서든지 보고하거나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비밀은 없기 때문이다. 비밀을 지키고 은밀하게 하면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삼자교회하고 협력을 하더라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을 때 삼자교회와의 협력도 오래가지 못한다. 묵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묵인은 묵인이지 허가가 아니다. 묵인은 언제든지 변한다. 어떤 경우든지 가정교회를 해하는 일이나 말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삼자교회와 협력하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