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교회 신학 사상과 최근 신학 동향

2007.05.1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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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중선     번호 : 64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3/02/28 (금) AM 01:39:07     조회 : 275  

■ 중국의 삼자교회신학사상과 최근 신학동향

                                                           인보라

왕쓰웨 목사
(중국복음선교회 중국교회와선교연구소 소장)
                                                         2000년 5월 25일



Ⅰ. 들어가는 말

1949년 중국공산당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중국정치 발전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기독교와 신학사상의 발전에 있어서도 전환점이 되게 하였다.

중국의 기독교는 1949년 이후, 교회의 조직과 체제, 신앙의 내용과 실천, 목회자의 형태와 탄생, 신학사상의 형성과 발전 등의 측면에서 그 이전과 비교해서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특히 신학사상의 영역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과 이에 따른 사회의 변화는 교회인사(敎會人士)로 하여금 막대한 충격과 새로운「영성체험」을 갖도록 하였다. 그 결과 기존 중국교회의 신학사상에 대한 재고(再考)와 함께 신학사상의 대립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본 글의 목적은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이후 삼자교회(三自敎會) 내의 신학사상의 형성요인과 신학사상의 내용을 탐구하고 또 최근의 신학적 동향을 살피는데 있다.

본 글에서 말하는 삼자교회의 신학사상은 실제에 있어 삼자교회의 모든 교회인사와 목회자들의 신학사상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삼자교회를 전국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자와 지도급 신학자, 특히 남경(南京)의 금릉협화신학원(金陵協和神學院)의 대표적인 신학교수들의 신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삼자교회의 교회인사나 목회자들은 복음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신학적 성향과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전국적 삼자교회 지도자나 삼자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신학자들과 금릉신학원의 대표적인 신학교수들은 사회주의 중국이라는 상황 속에서 신학사고와 신학적 체계를 세워 나가고 있다. 따라서 본 글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삼자교회의 신학사상을 탐구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하에서 이들의 신학사상을「삼자교회신학사상」이라고 통칭 할 것임을 밝힌다. 글의 전개에 있어 먼저 삼자교회신학사상의 형성요인을 밝히고, 삼자교회신학사상의 주요내용을 인간론, 현세와 종말론, 신론, 기독론을 중심으로 살필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는 최근의 삼자교회 신학사상의 제반 동향들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삼자교회신학사상에 대해 다각적인 평가와 전망을 해 보고자 한다.



Ⅱ. 삼자교회 신학사상의 형성요인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1949년 중국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이후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지도와 협력으로 기독교에서 적극적으로 전개된「기독교혁신운동」과「삼자애국운동」을 지도하거나 참여한 교회인사와 신학자들이 사회주의 사회현실과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형성, 발전시킨 독특한 신학사상이다.

이와 같은 신학사상은 과거 중국기독교의 신학발전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신학사상이며, 서재에서 탄생한 사변적 신학이라기 보다는 현실에 입각한 실천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현실적이며, 상황적인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며, 자위적(自衛的)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49년 이후의 형성된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그 독특한 형성요인들이 있다.


1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한 신학적인 긍정과 의미의 부여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은「해방」의 환호와 더불어 새로운 정권과 사회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으며, 특히 기독교회내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공산당의 무신론(無神論) 사상이 교회에 대해 핍박을 갖아다 줄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한편 일부 교회인사는 공산당을「적(敵) 그리스도」,「붉은 용」으로 칭하며「세상종말」을 선포하기까지 하였다. 또 당시 보수적이며, 근본주의적 신앙관과 신학입장은 세상과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며, 하나님과 세상, 신앙과 실천, 경건과 현실 등을 이분법적(二分法的)인 시각으로 보고 있기에 소위 반(反)사회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대해 사회주의 혁명과 정권에 대해 긍정하면서 삼자애국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인사와 신학자들(이하 삼자신학자들로 약칭)은 기성교회와 보수파들이 그들의 신앙관과 신학적인 견해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주장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며, 이런 견지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해 긍정하는 신학주장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 결과 삼자신학자들은 인간론과 현세와 종말론을 중심으로 신학적 체계를 세워나갔다.


삼자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을 배격하였으며, 인간은 타락 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형상이 비(非)신도들 속에도 있다고 하였으며, 현재의 사회주의 사회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고 이끄시는 새로운 제도의 사회라고 긍정하였다.

또 인간의 역사란 긴 하나님의 창조·구속(救贖)·성화(聖化)의 과정 속에 놓여 있으며,  사회 속에서 나타난 진선미(眞善美)는 모두 하나님의 참 진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편 개혁개방의 시대이후 삼자신학자들은 중국교회가 처한 상황이「개혁」이기에 개혁에의「참여」가 중국교회신학의 상황화의 관건이라고 하여, 개혁개방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참여와 건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2 삼자애국운동의 존립과 발전에 대한 정당성 부여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이후 공산혁명과 사회주의 정부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와 긍정의 입장을 지닌 기독교인사들은 공산당과 정부의 지도와 협력 속에서「기독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그후 「기독교 반제애국(反帝愛國)삼자혁신운동」과「기독교삼자애국운동」등의 명칭으로 기독교에 대한 혁신과 개조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신학적으로 보수파, 근본주의파, 복음주의파에 속하는 인사들에 의한 비판과 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이런 비판과 공격은 단순한 신학적 차이와 입장의 비판을 넘어서 삼자애국운동의 세력과 삼자애국운동을 통한 교회의 통합 움직임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엄중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따라서 삼자신학자들은 보수파 등에 대한 신학적 응답과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로서 삼자애국운동의 존재와 발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길 원하였다.

1950년대에 대표적인 인물은 왕명도(王明道)였다. 그는 먼저 기독교혁신운동과 삼자애국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들을「거짓 선지자」,「가롯 유다의 제자」라고 비난하였고 또 그들의 중요한 구호(口號)들인「제국주의 사상적 독소(帝國主義思想毒素)」와「연합하여 하나가 되자(合而爲一)」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또 삼자신학자들인 오요종(吳耀宗), 정광훈(丁光訓), 왕유번(汪維藩) 등을 신학적으로「현대파(現代派」,「불신파(不信派)」라고 규정하면서 이들「현대파」들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동정녀 탄생, 속죄, 신도의 부활, 예수의 재림 등에서 근본주의파와 심각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왕명도는 이들 모두를 "신앙이 없고, 예수를 믿지 않으며, 기독교인이 아니고 양 무리 속에 들어온 양의 탈을 쓴 늑대이다" 라고 비난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은 보수파와 왕명도 등이 주장하는 현세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역사발전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비판하였으며, 예수의 성육신 사건은 현세와 세상을 축성(祝聖)하는 것으로, 성(聖)과 속(俗)의 단절을 제거하였으며, 신도와 비신도 사이의 차이점이 없고, 대립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보았다. 보수파들의 신학적 비판이 삼자신학사상의 현세와 종말론, 인간관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3 삼자애국운동의 존립과 발전에 대한 정당성 부여

1950년대에 시작된 삼자애국운동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와 기독교 신도들을 단결시키고 사회주의 중국 건설과 발전에 적극적인 노력과 공헌을 하도록 지도하고 이끌고 있다. 이 막중한 과업을 이루기 위해 삼자애국운동의 지도자와 삼자교회의 교역자는 신도들을 목양하면서 항상 사회주의 건설에 유념해야 했다. 사실 이 문제는 목회 실천적인 문제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신앙관과 신학사상과 긴밀한 내재적 관계가 있다.

1950년대 보수파들의 이원론적인 신앙관과 신학입장은 하나님과 세상을 분리시키고, 신도와 비신도의 간격을 벌여놓는 결과를 낳게 하여, 신도들을 이끌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 크나큰 사상적 장애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과 세상과 비신도에 대한 적절한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의미 부여는 삼자애국운동을 통한 기독교회의 목양에 중대한 의미와 영향을 주게 되었다.

한편 1980년대 이후 삼자애국운동은 기독교와 신도들을 사회주의 현대화에 노력하고 공헌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뿐만 아니라 개혁개방이 주는 많은 도전들과 자전(自傳) 문제의 시급성, 그리고「진정한 중국의 기독교」가 되기 위해 신학적인 작업과 함께 중국특색의 신학의 구축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되었다. 따라서 삼자애국운동과 삼자교회는 이러한 다양한 삼자교회의 목양과 자전문제와 도전에 응답하기 위해 삼자신학에 대한 형성과 구축의 필요성이 한층 더 느껴지게 되었다.

삼자신학자들은 1950년대에 소위「신학군중운동(神學群衆運動)」을 전개하여, 현세와 인간본성의 문제, 신앙과 신령한 것에 대한 토의를 전개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믿음과 행위, 영성과 윤리, 역사의 종말과 현실의 역사 등을 진지하게 사고하였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띵꽝쉰(丁光訓)은「신학사상의 다원화」를 주창하였으며, 현재의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주석인 루오꽌쫑종(羅冠宗)은「신학사상과 사회주의 사회와의 상호적응」과 중국기독교협회의 회장인 한원타오(韓文藻)도「신학사상의 활성화와 창조」들을 제기하여 기독교의 신학사상이 사회주의 중국사회 속에서 어떻게 전해져야 하며, 봉사해야 하며, 또 어떤 역할들을 감당해야 할 지를 숙고하기 시작하였다.



Ⅲ. 삼자교회신학사상의 주요내용

1950년대 이후 삼자신학자들은 그들에게 제기되었던 수많은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문제들을 놓고 사회주의 중국 정권과 사회에 대해 긍정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신학사고를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의 정치사회현실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신학의 주제를「화해(和解)」로 설정하였으며, 항상「인민(人民)」의 신학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인간론, 현세와 종말론, 신론, 기독론을 주요내용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들에서 삼자교회신학사상의 특징들이 잘 반영되고 있다.



1. 인간론

삼자교회신학사상의 인간론은 주로 인간의 하나님형상, 원죄, 인간의 본성, 비기독교인의 도덕성을 중심으로 전개와 발전되었다. 삼자신학자들은 우선, 인간은 비록 범죄하여 타락하였으며, 원죄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인간이「전적으로 타락」하였으며,「인간 안에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였다.

오히려 인간은 타락하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고전 11:7)이라고 보았다. 인간 안에 있는 사랑, 공의, 선(善), 고상한 도덕, 희생정신 등은 비록 인간이 타락하였지만 여전히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인간을 비관적이며, 절망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하고 오히려 인간의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삼자신학자들은 인간이 죄인이며, 원죄가 있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히려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죄의 대한 메시지보다 은혜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원죄란 인간의 한계성과 국한성(局限性)이며, 일종의 심령의 빈곤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원죄에 대한 강조로 말미암아 인간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가치없는 존재로 치부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죄에 대한 정의도 한계성, 국한성, 빈곤상태로 약화시켜 원죄를 너무 비극적, 절망적으로 보지 않으며, 해소불능의 심각한 문제로 간주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자신학자들은 비기독교인의 도덕성문제에 대해 그들이 도덕성을 지닐 수 있는 것도 그들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며, 이들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긴 창조과정의「절반의 완성품(半成品)」이며, 인생을 살면서 지속적으로 가공(加工)하여「완성품(成品)」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에 대해 차별적으로 생각하고 또 갈등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해소하고 오히려 동등하게 보려 하는 것이다.

특히 인간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으로 양분시키는 것보다「완성품」을 향해 가공되어져 가는「절반의 완성품」으로 보고 싶어하였다.



2. 현세와 종말론

삼자교회신학사상의 현세와 종말론은 주로 현세와 역사에 대한 이해, 성(聖)과 속(俗)의 문제, 창조와 구속의 관계, 천년왕국과 종말 등을 골자로 전개되었다.

먼저, 삼자신학자들은 현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거나 하나님과 세계를 대립적으로 이해하고 규정하는 것을 배격하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이 현실세계를 통해 인간들에게 주는 계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현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세계를 누리고, 좋게 보고, 찬양하며,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진선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았다. 또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창조, 구속, 성화의 긴 과정의 일원사관(一元史觀)을 주장하고 있으며, 역사를 세속의 역사와 구속의 역사로 구분하는 것은 인위적이며, 억지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세속(俗)과 거룩(聖)의 절대적인 구분이 없어졌으며,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성사(聖事, Sacrament)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의 이러한 현세관과 역사관은 현재의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 밖으로 배제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오히려 현세와 현재의 중국공산당의 중국통치를 하나님의 긴 역사의 일부로 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현세와 현재의 공산당 통치와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문제에 있어 삼자신학자들은 역사의 창조는 끝난 것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창조의 과정 속에 있다고 보며, 역사를 추진하는 힘과 동력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류의 최후가 파멸이며, 이 세상이 소멸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들은 성육신된 그리스도는 창조를 계속하였고, 구속을 완성시켜, 역사를 최종의 정점(頂點) 즉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로 이끌어 나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현재가 역사의 종말이며, 말세(末世)라고 주장하여 예수의 재림을 예비하라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며, 이는 복음(福音)이 아니라 화음(禍音)이다라고 비난하였다. 특히 전천년설(前千年說)에 대해 배격하고 있으며, 무(無)천년 혹은 후(後)천년이 바람직한 종말관이라고 하였다.

또 하나님이 사랑이며,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이 세상을 파멸시킬 수 없으며, 이 세상은 더욱 더 발전적이며, 진보되며, 진선미와 사랑이 가득한 세상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의 이런 종말관은 사회주의 현실과 통치와 건설사업에 대한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긍정을 하면서 사회주의 현실과 통치를 비난하는 행위나 사회주의 건설과 현대화 사업을 참여치 않거나 저해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긴 창조의 역사를 역행하며, 거부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3. 신론

삼자교회신학사상의 신론은 무신론의 사회에서 신에 대한 존재의 증명이나, 무신론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보다는 사회주의 중국의 통치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어떻게 계시되었으며, 또 어떻게 역사를 움직여 나갔는지에 대해서만 논의를 발전시켰다.

우선 신 존재 증명이나 무신론에 대한 기독교의 유신론변증은 사회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철학사상과 직접적으로 충돌되기에 논의의 전개를 피하였다. 단지 종교가 비록 아편이며, 일부 사람들에게 마취 작용을 하였다 할 지라도 하나님의 존재가 이로서 부정되거나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만 하였다.

한편 신론에 대한 논의는 1950년대보다 문화대혁명(1966-1976)의 민족적 고난시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신론 문제를 깊이 있게 숙고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은 민족적이며, 교회적이며, 개인적인 고난 속에서 사랑의 속성과 함께 질곡의 역사를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고난을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으로 이해하여 심판과 징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은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의 속성이라기 보다 모든 속성보다 우위에 있는 속성이며,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의 기초이며, 원리이며, 진리이기에, 하나님은 이 우주와 역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치하시며, 이끌어 나가며, 완성한다고 보았다. 이런 견지에서 하나님의 부성(父性)보다는 모성(母性)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의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론의 논의전제를 통해 사회주의 통치 속에서 나타난 부정적 역사발전이나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신학적 해석을 될 수 있는 대로 배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속성 강조를 통해 조화(Harmony)를 이루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4. 기독론

삼자교회신학사상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에 대한 논의와 쟁론을 피하고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와 성육신을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우주적 그리스도란 하나님의 창조과정 가운데 하나님과 한결같이 동역(同役)하며, 하나님 사랑의 계시자로서 그의 전능하신 명령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부활의 주라고 하였다.

또 우주적 그리스도가 갖는 의미를 그리스도의 주재하심과 관심과 보호는 온 우주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온 우주를 주재하는데 사랑이 그 본질이라고 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우주적 특징을 강조하므로 그리스도가 우주를 주재하고, 통괄하며, 사랑하고 있으며, 이로서 그리스도는 우주와 역사, 인간, 그리고 사회와 대립적인 존재가 아님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였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삼자신학자들은 성육신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는 과정을 보게 될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과 인간, 말씀과 육신, 영원과 역사, 무한과 유한, 절대와 상대, 생명과 부활, 믿음과 행위, 영성과 몸, 하늘과 인간, 거룩한 일(聖事)과 세상적인 일(俗事) 등의 모순관계를 해결하였으며, 결국 성육신된 그리스도를 통해 통일과 상생(相生)을 이루게 되었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성육신으로 그리스도는 세속의 생활에 참여하였으며, 세속생활을 축성하여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성육신적 그리스도론은 현실적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하나님과 세계, 성과 속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모든 것을 이원론적으로 보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일원론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삼자교회신학사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결국 우주적 그리스도와 성육신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게 된 것은 모든 현실과 우주와 역사를 포용하고 내포하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것으로 현실사회에 대한 긍정과 현실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Ⅳ. 최근 삼자교회 신학사상의 동향

1990년 이후 삼자교회신학사상은 당과 정부가 종교계에게 종교와 사회주의 사회와의 상호적응에 대한 수행문제와 관련된 신학사상 측면의 작업진행의 필요성과 진정한 중국기독교가 되기 위한 중국특색의 신학사상의 구축, 또 해외와의 빈번한 교류와 왕래를 통한 해외 신학사상과의 접촉으로 인한 자극과 신학적 수용문제 등으로 새로운 신학사고와 신학사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다음은 최근에 제기된 신학사상의 다원화, 중국특색적 신학이론의 구축으로 진행된 토착화작업, 해외의 신학 특히 서구신학과의 교류를 통한 신학적 수용 등을 중심으로 최근 삼자교회신학사상의 동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신학사상의 다원화 논의

삼자교회에서 신학사상의 다원화에 대한 논의는 당 총서기인 강택민(江澤民)이 종교계에게 종교와 사회주의 사회와의 상호적응을 요구하면서 정광훈이 진정한 적응은 사상적인 적응이며, 이는 신학사상의 적응이라고 하면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정광훈은 중국에서 신학사상의 건설이란 실제에 있어 신학사상과 사회주의 사회와의 상호적응을 촉진시키는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애국주의와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는 신학사상적 장애를 제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애국주의와 사회주의를 옹호하는데 사상적 기초를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정광훈은 신학사상의 활성화를 위해 신학사상의 다원화를 제기하였는데, 즉 신앙은 하나이지만 신학관점의 다양(多樣)과 다종(多種)을 추구하게 되었다.

신학사상의 다원화 논의는 사실 무엇보다도 신학사상이 사회주의 사회와 적응을 하면서 애국과 사회주의에 대한 옹호를 신학사상적으로 정당화하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즉 신학사상의 다원화 제창을 통해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통해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를 옹호하고 뒷받침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삼자신학자들은 이런 측면에서 당과 정부의 충실한 봉사자가 되었다.

한편 신학사상의 다원화 논의를 통해 개혁개방이후 중국기독교내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보수적이며, 복음주의 성향의 교회인사들의 신앙관점과 신학입장을 제어하기 위함이었다.

즉 보수파와 복음주의파들이 삼자애국운동와 삼자교회의 지도자들을 지속적으로「신앙이 없는 파(不信派)」라고 비판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였는데 신학사상의 다원화 논의를 통해 보수파와 복음주의파들을「교회의 경찰로 자처하는 자들」의「비도덕적이며」,「사랑이 없는」행위라고 응답할 수 있게 되었다.



2. 중국특색적 신학이론을 구축해가는 토착화 작업

1979년 개혁개방이후 삼자애국운동은 과거「삼자(三自)」에서「삼호(三好)」로 그 정책과 노선을 조정 하였으며, 삼자교회의 목양문제를 관심 갖기 시작하였다.

「삼호」를 잘 이룬다는 것은  진정한 중국의 기독교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중국특색의 신학이론의 건설을 제창하였다. 삼자신학자들은 중국특색적 신학이론의 건설을 위해 기독교와 중국 전통문화와의 대화와 접목, 융화 등의 문제를 진지하게 사고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토착화신학 작업이 본격적으로 삼자교회신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삼자교회신학사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삼자신학자들의 토착화 작업은 일단 기독교와 중국 전통문화의 문제를 탐구하지만, 단순하게 기독교와 중국 전통문화와의 차이점, 일치점, 상통성(相通性), 구별성 등을 찾고 비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한 정당성 부여와 함께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한 중국특색의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삼자교회신학의 토착화 작업은 신학적인 의미와 중국 전통문화적인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사회현실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사회현실적인 의미가 근본이면서 지향노선이며,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삼자신학자들 가운데 토착화 작업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은 전(前) 중국기독교협회의 부회장인 썬이반(沈以藩)과 현재 남경의 금릉협화신학원의 교수인 왕유번(汪維藩)이다.

썬이반의 토착화 작업의 방법은 중국 전통문화 특히 유교(儒敎)사상의 심층으로 들어가 장기적인 가치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기독교 신앙이 중국민족의 우수한 문화적 전통을 통해 중국의 인민군중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썬이반은 여기에서「중국의 인민군중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썬이반과 삼자신학자들이 기타의 중국 토착화신학자와 토착화 작업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썬이반은 먼저 기독교의 신학주제인 성육신, 인간의 본성,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등과 유교사상과 접목을 시도하였다. 특히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 안에 계신 하나님임을 강조하면서 유교의 실천이성과 현실적 인간관계와 접목하면서 현실과 현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입장을 지니는 것은 기독교신앙과 중국의 전통문화와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런 썬이반의 토착화신학은「상황화된 토착화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왕웨이반의 토착화 작업은 썬이반에 비해 다루는 영역과 내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할 수 있으며, 삼자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왕웨이반의 토착화 작업의 방법은 먼저 기독교신앙과 중국문화 사이의 융합점을 찾고 그후 기독교신앙과 신학에 대한 중국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며, 마지막으로 중국문화적인 의미를 부여받은 기독교신앙과 신학을 사회주의 현실과 사회적 의미를 찾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왕웨이반은 썬이반이 단순히 유교사상과의 접목을 시도한 것에 반해 중국의 전통적 사고(思考), 중국전통의 논리형식, 중국의 전통문화 등 세가지 측면에서 토착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왕웨이반은 중국의 전통문화 가운데「실천중시(篤行)」가 중요한 부분이며, 바로 중국 전통문화의「실천중시」와 기독교의 실천적 신앙과 신학을 접목시키면서 기독교의 실천적 신앙과 신학은 기독교적 의미를 넘어서서 중국의 전통문화적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다. 즉 기독교의 실천적 신앙과 신학에 대한 중국의 전통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웨이반은 여기에서 토착화 문제를 종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현실과 사회에서  실천적 신앙의 결여와 실천적 신학에 대한 부정은 기독교 신앙과 중국의 전통문화를 배격하는 것으로 비판을 잊지 않고 있다. 왕웨이반의 이런 토착화신학은「토착화된 상황화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3. 서구신학사상과의 교류와 수용

1979년 개혁개방이후 삼자교회와 해외교회들과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확대되어지자 과거 서구 신학사상에 대한 적대적이며, 비판적인 태도에서 교류와 수용의 자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띵광쉰은 세계의 수많은 신학학파는 삼자신학과 부합되지 않아 수용할 가치가 없다고 비판하였지만,

1990년대 이후 상호교류를 통해 상호보완하고 서로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하여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한원타오는 정치적으로 중국의 상황에 부합되고 신학적인 지향성도 적극적으로 작용된다면 서구의 신학사상을 수용하는데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삼자교회신학사상에서 서구의 많은 신학사상 가운데 해방신학과 샤르뎅(Teilhard de Chardin)신학, 그리고 과정신학에 대해 개방적이며, 심지어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먼저, 삼자신학자들은 해방신학이 실천(Praxis)을 중시하고 또 역사실천과 인민의 입장에서 신학을 출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특히 해방신학이 사회의 어두움과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폭로하는 것에 대해 매우 찬동하였다.

그러나 해방신학이「해방」을 신학의 주제로 설정하는 것과「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편에 서고 있다」고 하여 가난한 자에 대한 이상화, 절대화, 우상화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사를 보였다. 삼자신학자들은 신학의 영원한 주제는 「화해」라고 하였으며,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와 신자와 비신자와의 화해를 포함하고 있다. 또 가난한 자를 이상화할 때 부자(富者)를 배격하게 되어 사회의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하여 가난한 자에 대한 절대화에 대해 유보하는 자세를 보였다.

삼자신학자들은 샤르뎅의 신학관점과 사상을 대량으로 수용, 흡수하고 있다. 특히 정광훈은 샤르뎅의 신관, 기독론, 인간론, 역사관,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그 자신의 신학에 흡수하고 있다.

삼자신학자들은 샤르뎅이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공동체이며, 권력에 대한 의지(Will-to-Power)가 아니라 교제에 대한 의지(Will-to-Fellowship)로 보는 것을 수용하고 있으며, 특히 샤르뎅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하였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수용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우주의 주재자로서 모든 우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있으며, 그런 그리스도는 사랑을 본질로 우주를 주재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문화대혁명을 겪은 중국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심판과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과 주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으며, 이런 샤르뎅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중국의 정치, 사회현실에 적합한 그리스도론이며, 적절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된다.

한편 샤르뎅이 인간을 하나님의 긴 창조과정의「절반의 완성품(半成品)」이며, 인생을 살면서 지속적으로 가공(加工)하여「완성품(成品)」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수용하고 있으며, 이런 그의 인간관은 모든 인간은 신도와 비신도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긴 창조과정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신도 뿐만 아니라 공산당원들 까지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한편 샤르뎅이 역사를 오메가 포인트로 향하는 과정이며, 우주의 종말은 진선미와 믿음, 소망, 사랑의 실현으로 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으며, 이로서 보수파와 전천년설파의 주장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삼자신학자들은 샤르뎅의 신학사상을 적극적으로 그들의 신학 속에 수용하고 있으며, 그 중 띵꽝쉰(鄭光訓)은 샤르뎅신학의 열렬한 지지자이다.

삼자신학자들은 과정신학이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며, 성육신사상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수정하고 보완해준다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과정의 참여자이며, 우주에서의 창조자의 동역자(Co-Creators)이라는 주장과 인간이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우주에서 하나님의 동역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과정신학의 신관과 기독론, 인간관, 그리고 창조관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더 이상 징벌과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며, 성육신 사상을 통한 만물과 사회를 긍정하며, 사회 속에 나타난 선과 악, 진보와 후퇴 등도 모두 긴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이렇게 과정신학을 수용하는 것은 과정신학이 사회주의 중국현실과 사회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조화를 이루는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Ⅴ. 삼자교회 신학사상의 평가

1949년 이후 사회주의 중국의 기독교회에서 생성되고 전개된 삼자교회신학사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첫째,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중국의 기독교 신학사상의 역사에 있어 전례가 없었던 획기적인 신학사상으로서 1949년 이전 서양선교사들에 의한 선교신학과 반기독교운동에서 중국인 신학자들에 의해 창출된 토착화신학(本色神學)과 구국신학(救國神學)과 신학의 출발점, 사고방법, 내용 등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와 독특성을 보인 신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삼자교회신학사상은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이후 공산당의 영도와 공산정권, 사회주의 사회와 현실에 대해 옹호하고 지지하므로 생성된 사회주의 애국의 변호신학이다.

삼자신학자들은 한편으로 보수파의 신앙관과 신학입장을 논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당과 정부의 정치노선을 긍정하는 신학사고와 탐구를 하여 왔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반제국주의 애국」을 강조할 때 선교사와 보수파의 신학관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였으며, 사회주의 혁명과 정권을 정당화하는 신학을 구축하였다.

또 정치노선이「개혁개방」으로 전이될 때 세상에 대해 염세적이며, 소극적이며, 현세가 종말이라고 선포하는 보수파와 전천년파의 신학주장을 배격하였으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과 사회주의 사회에 적합한 성육신과 우주적 그리스도론, 사랑의 신론 등을 중심으로 하여 신학을 구축하였다.

삼자교회의 이러한 사회주의 애국의 변호신학은 삼자교회신학의 특징이자 독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기독교 신학역사에 있어 하나의 정치이념과 정당을 수호하면서 신학적인 사고와 탐구를 한 것은 삼자교회신학이 그 첫 번째 시도였다.

셋째,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당과 정부의 정치노선과 그에게 부여한 통일전선(統一戰線)의 임무를 따르면서 신학의 사고와 구축을 하여왔다. 따라서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항상 시대의 다양한 정치노선을 찾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당의 통일전선 정책을 올바로 인식하여 신학을 전개해야 하기에 일종의 통전신학(統戰神學)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삼자신학의 통전임무는「반제국주의 애국」,「반봉건 반관료자본주의」,「새로운 중국의 건설」이기에 제국주의와 봉건, 관료자본주의에 관계된 신앙과 신학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건설을 위해 새로운 인간관과 현세와 종말론을 구축하였다.

1980년대 이후 삼자신학의 통전임무는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이기에 보수파의 이원론과 전천년설파의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배척하면서 성육신론과 사랑의 하나님, 창조, 구속, 성화의 긴 역사관을 제시하였다. 결국 삼자교회신학이 통일전선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통전신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지닌 신학적 위상이면서 그의 운명과 사명이기도 하다.

넷째,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시종(始終) 사회주의 사회의 현실상황을 신학의 출발점, 지향점, 귀결점으로 삼고 있으며, 항상 상황화적인 사고를 견지해야 하기에 일종의 상황화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삼자신학자들은 모든 신학사고란 상황화의 사고라고 여기고 있으며, 늘「시대의 조류」와「변혁의 조류」에 따라 신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비록 삼자교회 신학사상이 상황화의 신학이지만 삼자신학자들이 인간론, 현세와 종말론, 신론, 기독론 문제를 사고하고 심지어 토착화 문제를 처리할 때 항상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현실을 긍정하면서 조화와 적응을 염두 해두면서 신학적 전개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현실을 부정하고 조화와 적응을 할 수 없는 모든 신앙과 신학적 입장은 비판과 거부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삼자교회신학사상의 형성과 발전에서 볼 때 삼자교회신학은 사회주의 애국의 변호신학이며, 통전신학, 상황화신학 등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향후의 발전추세와 전망은 어떠한가?

사실 삼자교회신학사상은 항상 당과 정부의 정치노선과 통일전선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으며, 변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삼자교회 신학사상도 향후 당과 정부의 정치노선과 정책, 그리고 당이 종교 특히 기독교에게 부여한 통일전선의 임무에 따라 변화되거나 또 발전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삼자교회 신학사상은「울타리 신학」으로, 당과 정부에 따라 그「울타리」가 신축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정치체제와 통치방식에 큰 변화가 발생하고, 또 이에 따른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나 종교정책이 변동이 생길 때 삼자교회와 삼자교회의 신학사상도「탈 정치화」를 이루게 되어 삼자교회신학의「정치우위」,「정치지향」의 신학형태도 변화될 것이다.

그럴 때 삼자신학자들은「탈 정치화」로 새롭게 사회주의 중국과 사회보다는 중국교회의 현실에 적합한 신학사고를 할 것이며, 중국교회가 요구하는「복음과 경건(敬虔)」이 첨가되어 삼자교회신학사상의 성격과 내용과 귀결도 변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렇지 않으며, 당과 국가의 영도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중국교회로부터 버림과 배척을 받을 것이다.



Ⅵ. 맺는 말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이후 새로운 사회현실에서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에서 생성된 신학으로 사회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한 신학적인 긍정과 의미를 부여하고, 또 삼자애국운동의 존립과 발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아울러 삼자애국운동의 존립과 발전에 대한 정당성 부여를 위해 형성, 발전되었다.

삼자교회신학사상은 주로 인간론, 현실과 종말론, 신론, 기독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사회주의 정치사회의 현실과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적응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그리고 삼자교회 신학사상은 사회주의 애국의 변호신학, 통전신학, 상황화신학, 울타리신학으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당과 정부의 정치상황과 사회주의 사회의 현실의 변화에 따라 삼자신학도 변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