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삼자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2007.05.15 12:47

선지자 조회 수: 추천:

이름 : 중선     번호 : 73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4/02/13 (금) AM 02:57:14     조회 : 193  


■ 현재 삼자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작성일: 2003/01/26 14:38:13
작성자: 인보라
  

현재 삼자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삼자교회를 몇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1. 원칙중심이냐 성과중심이냐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원칙은 성경말씀을 기본으로 하며 성과는 사역의 결과를 기준으로 한다. 원칙중심으로 볼 때 삼자교회는 지금도 애국종교사회조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교사역의 결과를 고려해 본다면 삼자교회도 현실교회라고 할 수 있다. 현실교회라 함은 삼자교회의 본질은 애국종교사회조직이지만 그 안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있고, 복음적인 교역자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선교사역을 함에 삼자교회를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삼자교회를 성경이 지지하는 교회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성과에 급급하지만 하나님은 성과보다도 원칙을 더 중요시하신다. 사역자는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계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살고 사역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선교사가 원칙인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를 보시지 그가 쌓은 업적에 따라 평가하지 않으신다.

2. 삼자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중국토착교회인가? 삼자교회는 중국토착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삼자교회는 자치를 주장하지만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삼자교회는 자양 내지 자급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자양이나 자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급을 외치면서 해외에서 오는 선교 달러를 환영할 뿐 아니라 선교 달러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자교회는 자전을 주장하지만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이웃이나 다른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므로 삼자교회는 삼자가 이루어지는 중국토착교회가 아니라 교회 밖 세력의 지배를 받으며, 교회 밖에서 지원을 받으며, 교회 밖에서 원천적으로 복음을 스스로 전할 수 없는 반삼자교회, 즉 토착되지 못한 중국애국종교사회조직인 것이다. 물론 삼자교회가 처한 지방과 교역자에 따라 은밀히 복음을 전하고,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교회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해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3. 삼자교회가 추구하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삼자교회가 추구하는 근본적인 것은 기존의 기독교신도들을 관리하는 것이요,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신도들의 신앙을 자유주의적인 신앙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삼자교회가 초창기에는 "기독교를 박멸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문혁을 통하여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기독교신도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가정교회로 종교국에 등록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중국의 모든 기독교도들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관리하는데 유익하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깨어있지 않으면 이 전략에 넘어가기 쉽다. 또한 삼자교회(삼자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로 삼자교회 안에 있는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신도들을 자유주의적인 신학과 신앙으로 변질시킨다면 통전부와 종교국은 승리의 축배를 들것이다. 지금도 이 전략은 은밀히, 그리고 집요하게 수행되고 있다.

4. 삼자교회와 협력할 때 유의할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삼자교회 안에 있는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구원받은 신도들을 지혜롭게 섬기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 삼자교회와 협력하면 오바댜와 같은 현실과 타협하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돕고 섬길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삼자회가 의도하는 대로 자유주의적인 신학과 신앙으로 세뇌 당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또한 삼자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구원받은 신도들을 관리가 아닌 목양을 부분적으로라도 할 수 있도록 섬길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완전히 개방될 때 삼자교회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른 길을 걷도록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삼자교회와 협력하려면 철저히 은밀하게 해야 한다. 공개적인 협력은 대부분 단명하다. 중국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자신의 사역을 감추는 것이 지혜롭다. 더군다나 삼자회의 앞잡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삼자회의 대변인이 될 때 그것은 통전전략에 놀아나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 이 글은 어느 선교사 대회에서 "삼자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강의를 하고 미리 취합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준비하여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