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가정교회의 신학

2007.05.15 12:56

선지자 조회 수: 추천:

이름 : 중선     번호 : 76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4/03/28 (일) PM 05:17:26     조회 : 204  


■ 한족가정교회의 신학-인보라


중국 가정교회의 신학적인 모습을 살핀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정교회의 첫 출발이 신학적인 훈련을 받은 전도자들에 의해 전도가 되고 교회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전혀 신학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전도자들에 의해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산화 이전의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개방 시기까지 살아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 신학적 영향을 끼칠 수가 있었으나 개방 이후의 가정교회 들이 세워지고 발전하는데 결정적 작용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각 지역마다 믿는 신앙 교리가 일치하지 않고 이미 조직된 교회들일지라도 각 지도자들의 믿음의 형태에 따라 교회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중국 가정교회의 신학이 이렇다고 분명히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자교회의 신학의 입장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가정교회의 존재는 오직 삼자교회의 신학적 입장과 신앙 형태에 동의하지 않고 그것이 비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교회가 주장하는 입장은 우리가 말하는 신학적 입장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진리대로 따른다"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교회는 외국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 과정과 같은 신학적인 것을 제대로 모르며 그것을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삼자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고 이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삼자교회의 주장을 반대하는 것이다.


가정교회가 삼자교회의 신학이 어떻게 출발하고 그 신학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삼자교회의 신학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삼자교회의 주장을 들어볼 때 자신들이 보고 믿는 성경의 도리(道理=중국 사람들은 성경 진리를 道理라고 말한다)와 맞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삼자교회가 道理에 어긋난 교회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 삼자의 입장에 있는 우리가 볼 때 가정교회의 주장이 타당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가정교회의 신학적 형태가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삼자교회의 주장이 무엇인가를 먼저 간단히 살펴봄으로 가정교회의 주장을 볼 수 있다. 삼자교회는 애국적 단체인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소속 교회이므로 국가의 법을 절대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 36조의 법 조항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기관, 사회단체, 및 어떠한 개인도 공민에게 종교를 가지게 하거나 또는 종교를 강제로 가지게 할 수 없으며 종교를 갖는 공민과 종교를 갖지 않는 공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당 중앙문서 제 19호 문서"에 보면 정상적 종교 활동과 비정상적인 종교 활동들을 구분해서 종교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활동이란 중국 내 8개 애국적 종교 단체들의 감독 하에서 행해지는 활동을 의미한다. 8개 애국 종교단체 중 기독교와 관계된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委員會=三自會로 통칭)"와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 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종교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관계된 앞의 두 단체의 감독을 받아야 하는데 특히 三自會의 기독교 신앙 정책 중 "삼정(三定)" 정책이 있다. 이 삼정 정책은 "지정된 예배 장소에서, 지정된 애국 성직자들에 의해서, 지정된 교구 내에서" 신앙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주장은 "지정된 시간"에 모여야 한다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공민중 만18세 이하와 공산당원에게는 종교를 받아들여서도 안되고 종교를 전해도 안된다 고 하였다. 그리고 애국 단체의 감독과 지도를 받지 않으면 당과 국가는 "통전부, 종교사무국, 공안국, 삼자회"의 기관이 동시에 이를 통제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 가정교회의 주장은 자신들은 오직 절대적인 진리인 성경에 명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지상명령을 믿고 실천하는 것을 道理로 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 명령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上)"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가정교회가 이 명령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삼자교회가 따르고 있으며, 또 그대로 따르라고 요구하는 당의 정책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정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모든 형태가 나온 것이다.

가정교회의 신학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 절대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먼저냐 인간과 국가가 먼저냐?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오직 하나님" 사상의 기초는 성경을 유일한 기초로 하고 있다. 성경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교회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축자영감설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정교회의 이런 사상의 배경은 사도행전 4장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삼자교회와 정부 당국자들과 부딪혔을 때 가장 잘 사용하는 말이 사도행전 4장 19절이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이다.

가정교회의 신학적 사상이 "오직 하나님 절대 사상"이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를 이루어 가고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산당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비진리를 따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단언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핍박까지도 달게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교회의 신학적 문제는 "하나님 절대 사상"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구원관에 있어서도 거듭남과 말씀 위주의 삶을 사는 행위 위주의 경건적인 삶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관 역시 과연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냐 국가냐의 질문에 답하게 하는 것이 가정교회의 교회관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종말에 대한 소망적인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 절대 사상"에서 나온 신앙과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당하는 핍박을 인내하며 이겨 나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용기와 소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자교회는 가정교회와는 달리 구원관에서 세속화를 주장하고, 교회관에서는 교회의 주인이 누구냐의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과 국가가 교회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출발하는 그 출발점이 다르고 현실 속의 천국인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는데 협조하고 있기 때문에 종말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가정교회와 삼자교회가 교통을 할 수 있으며 가정교회가 삼자교회에 그 몸을 맡기겠는가? 그들은 생명을 걸고 자신들을 신앙과 교회의 순결을 지켜 나가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