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을 연구할 때

2016.06.20 15:19

김반석 조회 수:

하나님 말씀을 연구할 때

  선지자선교회

우리가 성경을 연구해서 발표하면 유명한 주석이나 설교가의 교리에 대비해서 맞춰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도 맞다. 그런 것은 참조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에 성경 연구자의 자세에 대하여 백영희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하신 말씀이다. 참조하시기 바란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6. 2. 5. 수새벽)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할 때에 관주 보고도 연구하지 말아라. 주석 보고도 연구하지 말아라 설교록 보고도 연구하지 말아라.

 

네가 성경 보고 자꾸 연구할 것은 성경 보고 알맹이 깨달을라고 하지 말아라. 성경을 읽는데 저절로 깨닫는 거있다. 제일 처음에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이 성경 보면 깨닫는 거 있다. 그저 제일 처음에 깨닫는 거 있다. 깨달은 대로 실행해라. 실행하면 실행하는 것 만치 네가 변화된다 참 내 제자가 돼 변화가 돼. 실행하면 변화된다. 변화된 것만치 진리를 더 정확히 또 깨닫게 된다. 또 깨닫고 난 다음에, 깨달으면 그 진리는 나중에 너를 자유케 한다. 그 진리는 그대로 실행 실천하지 어떤 피조물에게 제재받지 안하고 자유한다. 자유한다 말은 피조물에 제재받지 않는다 그말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례 문답하는 문답지에 성경의 도리를 깨닫는 데에 제일 좋은 방편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묻는 말이 있는데 그 답이 뭐입니까? ?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라하는 고것이 고것 답입니다. 세례 문답의 답이오. 학습 문답에도 답이 고것이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6. 8. 6. 수새집회)

 

칼빈을 완전자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칼빈의 말한 그것으로 전부를 삼고 '칼빈이 깨달은 그 칼빈의 교리와 신조 이상을 벗어 나가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은 없다.' 그러면 칼빈을 하나님 삼았다 그말이오. 칼빈을 완전자로 삼았고 칼빈이 그것으로 가장 칼빈주의를 써먹고 칼빈주의 칼빈주의 많이 써먹는 그 사람이 칼빈을 우상을 만들어서 지금 다른 데에서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선배들이 잘못 깨달은 것을 후배들이 그것을 말해 주는 그것이 마땅하고, 또 사람이 어떻게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까?

 

(백영희목회설교록 1986. 12. 5. 금저녁)

 

성경 가지고 아는 대로 실행하고 아는 대로 실행하면 요것이 제일 진짜로 성경을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사람들이 자꾸 이렇게 주석이니 뭐이니 이래 내놓은 이것들은, 지금 저도 이거 설교록을 거석하지마는 설교록 이것이 참 게을하고 이런 느린 자들에게 그게 도움이 된다고 해 가지고 자꾸 이렇게 원해서 이래 하는 것이지 실상 진짜로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 다 장애물입니다. 주석 그런 게 장애물이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5, 화새집회)

 

그래서 목회설교록이라는 이름을 했어. 우리는 오늘 깨달았는데 잘못 깨달았으면 고칠 수 있습니다. 고칠 때는 '이거는 틀렸다. 내가 잘못 깨달았다. 이거는 고친다.' 선포하고 그 책임을 져야 됩니다. '나는 과거에 이렇게 말을 했었는데 이거는 잘못 깨달았다. 이거는 고친다.' 또 지금 이렇게 깨달았으면 '이게 바르다' 이렇게 우리는 성장돼 가는 과정에 있고, 또 점점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고, 행동도 행동해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어제보다 오늘 새로와져야 되고 오늘보다 내일 새로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로와지는 건 죄가 아닙니다. 새로와지는 건 죄가 아니오.

 

새로와지는 것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는 이렇게 말한 걸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그거 지금 어느 게 옳으냐? 그거 찾아 가지고 이게 옳으면 '이게 옳은데 과거에 내가 잘못 깨달았다.' 잘못 깨달음이 없다는 그 사람도 역연 제가 완전이라는 그런 주장입니다.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얼마든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고칠 수 있습니다. 고쳐서 옳고 바르게 점점 옳고 바른 걸로 고쳐서 우리가 깨달음도 고칠 수 있고, 믿음도 고칠 수 있고, 행동도 고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