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윅) ● 펜윅 선교사

2014.09.2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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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윅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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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회의 한국 선교는 펜윅(Malcolm C.Fenwick)에 의하여 개시되었다. 그는 캐나다의 토론토(Toronto)출신으로 선교를 위해 내한할 때 선교 기관의 배경이 없이 개인 자격으로 왔다.

 

펜윅 선교사는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통하여 한국에 가라는 소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쓴 `조선의 그리스도교회`에 다음과 같은 글이있다. `18897월에 나는 출처를 알지 못하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랑하는 친구 헤론(J.W.Heron) 선교사의 부인이 한국에서 복음을 증거한 죄로 감옥에 갇혀있으며 교수형으로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신문에서 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으며 한국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났다. 와일더(Robert.P Wilder) 목사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해외 선교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자 나는 한국인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느끼게 되었고 한국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1889128일에 28세 청춘의 몸으로 인천에 상륙하였고 서울에 거주하면서 한국말을 익혔다. 그후에 그는 한국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언어를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황해도 솔내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그 곳에서 가옥과 토지를 구입하여 채소를 재배하면서 서병조를 교사로 하여 한국말을 배우면서 부근 일대를 순회하며 전도사업에 종사하였다.

 

1893년 캐나다에 일시 귀국하여 3년 체류하는 기간에 침례교 목사인 고든 (A.J.Gordon) 박사를 만나게 되었으며 고든이 경영하는 보스톤 선교 훈련원(The Boston Missionary Training School)에 참석하여 신학적 영향을 깊이 받았다.

 

1894년 불타오른 선교열은 중국을 위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en) 가 조직한 중국 내지 선교사회 (The China Inland Mission=CIM )의 이름을 본따서 한국 순회선교회 (The Corea Itinerant MIssion-CIM) 을 조직케 하였다. 그는 성령의 능력에 대한 확신과 교파를 초월한 선교사의 단합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전도 방법 등의 모색을 표방하면서 쉼 없는노력을 기울였다. 엘라 딩 선교회 (Ella Thing Memorial Mission)에서 1895년 폴링 (E.C. Pauling)목사 부부를 한국에 파송한 일이 있었다. 폴링은 펜윅과 함께 보스톤 선교훈련원을 다닌 신앙의 동지였다. 엘라 딩 선교회에서는 그이듬해에 연이어 스테드맨(F.W Steadman)선교사 부부와 액클스 (Sadie Ackles)와 엘머(Arma Ellmer) 등을 파송하였다. 이들이야말로 공식적인 침례교 한국선교를 시작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행은 처음에 부산을 중심하여 스태드맨 목사는 일본 선교사로 옮겨가게 되면서 자신이 전도한 선교 기득권을 펜윅선교사가 주관하는한국 내지 선교회로 이관하였다.

 

1903년 충청도 지방의 전도사업을 이양받은 펜윅 선교사는 처음으로 신명균과 황상필의 두 사람에게 교사의 직분을 맡겼다. 이 교사 직은 전도사에 해당하는 직분이라 하겠으며 1905년에는 교사로 활약한 신명균을 목사로 안수하고 그해에 성서학원을 개설하고 초대 원장으로 임명했으며 이종덕, 황태봉, 등 여러 청년들을 모아 교역자 양성을 목적하여 가르쳤다.

 

펜윅 선교사는 1906년 충청도의 강경 교회에서 회집한 제1회 대화회에서 `대한기독교회`라고 명칭한 침례교단의 초대 감목으로 추대되었다. 1893년 한국의 장로교와 감리교가 교계의 예양협정 원칙에 따라 선교지역을 분할 하였는고로, 대한 기독교회에서는 선교 터전을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 몽고 지역으로 확장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곳에 역점을 두고 선교사업에 헌신하였다.

 

펜윅 선교사는 1935126일 원산 선교본부 자택에서 별세하였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무덤을 평장으로 하였다. 이 이유는 무덤이라도 높으면 교만스럽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펜윅 선교사는 한국 속에 살면서 한국교회의 한국다음을 찾았고 또 그 길을 통하여 교회의 성장과 확립을 기대하고자 노력한 인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