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42. 한부선의 마지막 한국, 한국인, 그리고 한국교회사랑

  선지자선교회

468>한부선은 지극히 한국적인 미국 선교사였다. 그는 한국에서 사역했던 초기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므로 어느 누구보다도 선교사들의 선교사역과 방법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또한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문화와 언어에도 능숙하게 적응되어서 서구인 중에서 그만큼 한국어를 잘할 수 없을 만큼, 한국인의 심성과 얼을 거의 소유하면서 한국말을 구사하였다. “눈을 감고 들으면 한국인 목사가 설교하는지 외국인 목사가 설교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어 구사가 뛰어났다.” 그러기에 그의 말투나 행동 속에서 한국인과 거의 같은 채취가 풍겨 나왔으며, 겉만 서구인이었지 한국적인 특성이 강하게 그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470>이러한 특징은 서북지역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마포삼열에게서도 발견됨을 이미 언급한바 있다. 마포삼열과 한부선에게 있어서 중요한 공통점 중의 하나는, 선교사 개념은 곧 한국인과 동일시, 동화(同化)에서의 전도자라는 의미였다는 사실이다.

 

471>그러나 요즘 한국 기독교는 한글이 일반민중의 글이었듯이 시골에서 몇몇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것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잊고 너무 기업화 [되어가고], [교세] 팽창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잇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하였다./ 한부선은 불의와 세속적인 것과 결코 타협하지 않은 인물이며, 신앙의 순수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행동이 단순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그의 사역과 삶 속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도 철저한 청교도적 삶을 살았으며 장로교 신앙정신을 철저히 지킨 인물이었다.“

 

472>한부선은 그의 나이 70세가 되는 1973년에 은퇴해야했지만, 선교부의 허락으로 3년 간 더 선교사역을 감당한 후, 1976년에 한 평생을 보낸 정든 한국을 떠났다.

 

472>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면서도, 항상 그는 한국 이민자들과 고락을 함께 하였다. 특히 은퇴 직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한국 교포들에게 쉴 새없이 복음을 전파하였다.

 

478>또한 미국에 잇는 한인교회가 미국 사회에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가 왔다고 주장하면서, 비록 한국 기독교인들이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전도를 받았지만 이제는 어지러워 가는 미국 사회, 썩어져 가는 미국 사회를 향해 기도하고 그들의 생명 길을 바로 잡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격려하였다. “미국에 있는 1천여 개의 한인교회가 끼리끼리 모여서 위로 받자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밖을 내다보는 선교와 2세 아이들에게 바른 신앙을 가르쳐서 놀이터에서나 학교에서나 은연중에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바라는 것, 이 얼마나 큰일입니까?”라고 미주 한인교회의 사명에 대해 일깨우기도 하였다. 한국은 한부선의 뇌리에서 떠날 수 없는 귀소본능의 한 요소였다. 평생의 반려자요 사랑하는 아내를 처음 만났던 황해도 소래의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바닷가와 재령의 고향집, “동야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평양에서의 학창시절,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일제의 핍박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주를 위해 함께 고난 당했던 만주의 한인 디아스포라, 그리고 해방 후 교회재건과 개혁운동을 함께 전개한 신앙의 동지들에 대한 기억은 마지막 여생을 펜실페니아주, 퀘리빌에서 보내면서도, 그의 마음속에 고이고이 간직되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선교지 한국을 그리워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가운데 1992726,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였다.

 

480>한부선이 한 평생을 올곧게 달려 온 선한 싸움은 비록 이 땅에서는 끝이 나고, 마지막 생애를 보냈던 필라델피아 근교도시인 애빙톤의 힐사이드 묘지(Hillside Cemetary)에 안장되었다. 그의 육체는 땅 속에 묻혔어도 그가 남기고 간 신앙의 아름다운 발자취는 오고 오는 세대들에게 귀한 도전이 될 것이다. 필라델피아 한인 교계를 중심으로 한부선 선교사를 추모하는 예배가 199284, 웨스터민스터신학교 강단에서 개최되었는데, 신학생들로 구성된 웨스터민스터 한인성가단이 부른 한부선의 감옥송(여호와께 감사하라(Give Thanks Unto Jehovah)"는 우렁찬 찬양은 어느 상황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푯대를 두고 살아 온 한부선의 생전의 목소리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 참고>

 

1952년 조선장로회 총회에서 고려파 분열 - 신사참배 회개문제

1953년 기장파의 분열 - 김재준 목사를 중심한 자유주의 신학

1959년 연동(에큐메니칼)과 승동(복음주의자)의 분리

1961년 승동측과 고신의 합동

1963년 승동측 곧 합동에서 환원한 고신’ - 신학교 단일화 문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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