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한부선 선교사' 탄생 백주년을 맞이하며

 

한부선 선교사님이 한국에 부임한 지 1년 후인 1929, 스승이었던 메이첸 교수는 프린스톤신학교를 사임하고 필라델피아시에 새로이 독립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신학교가 웨스트민스터신학 교이다.

 

당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얻어 미국에 돌아가자 대다수가 프린스톤신학교에 가지 않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가서 신학의 재충전을 하였고, 한국 학생으로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김치선 목사였고, 그 다음으로 입학한 학생이 박윤선 목사였다.

 

박윤선 목사가 1934년에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부선 선교사가 안식년을 얻어 미국에 돌아왔다. 그는 신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들어가서 1935년에 박윤선 목사를 만나 알게 되었다. 한부선이 박윤선 목사보다 두 살 위였다.

 

당시 한부선 선교사는 박윤선 목사의 신앙생활과 학구적 태도에 감탄하여 말하기를 자기가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것 같으면 저와 같은 사람과 손잡고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였다. 그런데 1946년 그 꿈이 실현되어 부산 고려신학교에서 같이 봉사하였다.

 

한부선 선교사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 곳에서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메이첸 교수는 북장로교회의 선교정책을 비판하다가 소속노회에서 제명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1935년까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졸업생을 각 노회에서 사취하여 목사로 임명하였으나, 총회의 결정과 지시로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졸업을 더 이상 시취할 수 없게 되었다. 남은 길은 새 교단을 만드는 길 밖에 없었다. 이 때 한부선 선교사는 자신이 속하고 있던 북장로교회를 탈퇴하고 새로 발족하는 정통장로회(당시 아메리카장로회)에 가담하였다. 한부선의 결단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고독과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1936년 여름 그는 정통장로교회 선교사로서 새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부모와 친구들이 속해 있는 북장로교회를 떠났던 것이다. 스승인 메이첸 교수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고,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한부선은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없는 만주를 새로운 선교지로 정하고 만주에 있는 할빈시로갔다. 그는 봉천노회에 가입하였다. 그가 부임한지 2년후인 19389월 총대로 27회 발언을 했다가 일본 형사의 유도로 내던짐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는 할빈으로 돌아가 1942년 여름 마지막 포로교환선을 타고 미국에 돌아갈 때까지 3년간 만주 할빈시를 중심으로 26개처의 한국교회를 돌아 보면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194110월 체포되어 19426월 본국으로 송환될 때까지 9개월 동안 감옥에서 가진 간수가 가져다준 말똥을 먹기도 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면 말똥을 먹는 것쯤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한부선 선교사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운동을 가리켜 언약운동이라고 불렀다. 당시 한국교인들이 약 800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약 500명이 반대운동에 서명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날 무렵 한부선 선교사는 산디아고시에서 발행한 신문을 볼 것 같으면 해방을 맞이하여 새로 탄생하는 대한민국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주관하고 있던 임시정부를 맞이하여 그 기관을 주축으로 새로운 정부를 조직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부선 선교사는 교회이건 사회이건 간에 친일파와 친일세력을 새로 수립되는 정부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요, 주장이었다.

 

한부선의 특징은 진실그 자체였다. 그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허식을 싫어했다. 그는 한국과 한국국민을 사랑했고, 어디를 가든지 한국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한국을 변호해 준 애국자였다.그는 정부에서 주는 상을 받고도 남는 인물이지만 그런 것하고 인연이 먼 사람이었다.

 

그의 탄생 10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고신 교단은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행적을 기리면서 그와 나를 비교해 보는 것이 어떨지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 홍치모 교수/200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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