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34. 경남노회와 교회개혁운동

  선지자선교회

353>신사참배 가결을 결정한 1938년 총회 후에 경남노회 역시 다른 노회들처럼 타협과 배교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상당수의 목사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고문과 재산 압수, 그리고 가족들의 굶주림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신사참배 강요정책에 저항했다. 그들은 조금의 타협도 없이 신앙을 지켰다. 1938년의 비극적인 공식적 굴복 이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강한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신사참배를 인정하는 교회에 가지 않고, 그들의 가정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 저항에 대한 의지를 굳게 하고 서로간의 교제에 힘썼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가능한 자주 모임을 갖고, 한편으로는 다시 본래의 믿음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사역자들을 불러모았다. 이러한 신사참배의 반대운동은 그들 자신의 믿음을 강하게 할 뿐 아이라, 또한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보여줌으로 다른 사람들이 믿음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1940년 일본은 신사참배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나라의 질서와 평안을 해치는 반정부 조직이라고 매도하며 대대적으로 체포를 감행했는데, 이 사건을 전후로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모두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투옥되었다. 이들은 1945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354>이 기간 동안, 2,00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고 그들 중 50여명은 감옥에서 순교했다. 그리고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약 200개의 지역교회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 당시 반대운동은 5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평북지역, 주기철 목사를 중심으로 평남지역, 주남선 목사와 한상동목사를 중심으로 경남지역, 한부선 선교사를 중심으로 만주지역, 그리고 손양원 목사를 중심으로 전남지역이 바로 대표적인 반대운동의 본산지였다. 특히 주남선과 한상동이 경남지역에서 반대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주기철은 당시 가장 뛰어난 칼빈주의자로서 평양에서 저항운동을 이끌었는데, 그는 특히 경남지역 마산의 문창교회에서 목회 하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신사참배에 저항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강한 영향을 끼쳤다. 그들의 개혁신앙과 보수적 믿음의 원리들이 이 저항 운동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설을 믿었으며, 따라서 성경만이 신앙의 오직 유일한 기준이며 그리스도의 가치 판단의 궁극적인 근거임을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신사참배는 성경에 근거해서 볼 때 명확한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신사는 죽은 일본 황제들과 영웅들을 모셔두는 장소였기에, 거짓 신 또는 우상에게 절하는 것은 분명히 제1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여겼다.

 

356>1946123일에 열린 제 48회 경남노회는 예전의 결정들을 철회하고 고려신학교를 신학교로서 인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학생들을 그곳에 추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한상동 목사는 이 결정에 반박하여 노회가 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함께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의지를 천명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노회로부터의 분리를 지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신사참배의 죄를 청산하지 않으려는 교회를 향한 강한 경고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194713일에 초량교회 외 5개 교회가 연합으로 제48회 경남노회를 부인하고 새로운 노회를 재건하는 일에 대하여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동년 214일에는 초량교회를 비롯한 경남지역의 24교회가 동참하여 이 지역의 각 교회 앞으로 보내는 2차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우리는 제48회 경남노회를 부인하되 전통적 역사 있는 경남노회 정체를 극력 보수하려 한다. 2)우리는 정통적 교리와 신앙을 사수하려는 동시에 제1, 2계명에 범칙(犯則)되는 신사참배에 대하여 죄감(罪感)이 없는 자를 신자로 또는 목사로 인정하지 않노라. 3)우리는 제47회 노회에서 교리 문제로 중대 결의한 것을 무시하고 불복한 교직자들을 정통적 경남노회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4)우리는 비교리적인 분리나 분파를 원치 아니하고 장로교의 세계적 전통교리를 엄수하며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를 재건하려 한다.

 

357>이들의 중심은 일제의 잔학하고 포악한 압제 하에서 굴복한 신자와 목회자들을 정죄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사참배를 하고도 죄가 아니라 하는 것이 문제이니 그것을 순정한 장로교 정신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머진 교회의 영적 활로는 오직 회개의 길 뿐이다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복음은 지은 죄를 회개하는 자가 사죄 받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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