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30. 죄수 한부선과 감옥송(Prison Song)

  선지자선교회

313-314>신사참배 거부로 수감된 죄수들은 각자의 개인 죄수 번호뿐만 아니라, “22”라는 천황제에 항거하고 신사참배 강요에 거부한 자들에게만 주어진 번호였다. 한부선은 그 번호가 그리스도의 충성 된 증인들임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죄수 번호였다고 언급했다. 주를 위해 고난 당하는 의로운 “22”번 신앙동지들을 위로하며 격려하였다. 만주지역의 한부선 선교사의 선교구역에서만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펼치다가 일제에 구금되어 수난 당한 성도의 수가 70여 명이나 되었고, 그 중에 12명이 구속되었다. 언약문서 작성에 크게 기여한 믿음의 용장 김윤섭 전도사는 열 번에 걸쳐 체포되었으며 16년의 형을 언도 받고 복역하다가 1942년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김윤섭과 함께 징역 10년을 언도 받아 봉천 감옥에서 복역 중이던 전봉성은 19458,15 해방과 더불어 출옥하였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가 발행한 한국 기독교의 역사 Ⅱ」에 의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만주에서 활동했던 신사참배 반대자들과 순교자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계승수, 김성심, 김순복 전도사, 김양순 전도사, 김윤섭 전도사(옥사), 김응필 전도사, 김택영 집사, 김형락 전도사, 박명순 집사, 박의흠 전도사(옥사), 박인지 집사, 신옥녀 전도사, 전봉성 전도사, 전준덕 전도사, 전최선 전도사, 정치호 전도사, 최용삼, 한수한 전도사

 

314>한부선은 갖은 고문과 혹독한 추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앙과 기도와 찬송을 통해 극복해 나갔다./ 한부선의 감옥에서의 하루는 성경을 암송하며 시작되었고, 수감 중에 로마인서 전부와 계시록은 20장까지 또 이사야서 중에서 열 장, 그리고 시편, 고린도전서, 야고보서 등에서 몇 장씩외웠다. 형사들의 위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그는 짐승의 똥까지 먹게 하는 수치와 모멸도 겪었지만,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순수한 신앙에 투철한 한부선을 어느 누구도 오염시킬 수 없었다.

 

316>한부선의 마음 속에는 혹독한 추위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찬송가의 가락과 가사가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감옥송(Prison Song)이었다. 1: 여호와 주께 감사하자 스스로 계신 주께, 창조되신 일이 없이 영원하신 분, 태초로부터 살아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주께 감사하라 주는 영원한 통치자. 2: 여호와 주께 감사하자 왕 중의 대왕께, 온 나라 백성들아 모두 찬양을 드리자, 권능으로 다스리는 주께 순종하라, 여호와 주께 감사하자 기쁜 찬양을 드리자.

 

319>일본인 검사로부터 미국에 돌아가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한부선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엿다. “나 자신의 안전만 생각한다면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나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보내신 것을 확신하며 따라서 내가 있어야 할 그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미국에 돌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그는 계속하여 내가 확신하는 바는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해서 내가 지금까지 전파한대로 전하기를 원하신다면 당신들이 나를 쫓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담대히 외쳤다. 이런 대답에 화가 잔뜩 난 검사는 여기서 당신은 이전처럼 전도할 수 없다 귀환하겠느냐 하지 않겠느냐라고 다그쳤다. 이런 검사에게 한부선은 귀환하지 않고 복음전도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단호하게 답하면서 신사참배도 하지 않을 것이며, 본국으로 떠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계속 복음전도에 임하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주저 없이 피력하였다. 한부선은 어떤 영웅 심리에서 이런 답변과 자세를 취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주권에 대한 분명한 확신 속에서 행동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곳이니 나는 떠날 수 없다라는 외침 속에 한부선의 그런 자세가 응축되어 있었다. 세상의 주관자는 일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심을 확신했다. 한부선의 철저하고도 담대한 신앙은 일제의 검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는 죄수의 몸이었지만, 결코 위축되거나 조바심을 억누르며 감옥생활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한부선이 만주에서 일어난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서다가 구속당한 것이 19411022일이었다. 그 이후 봉천, 신경(新京), 안동, 등을 전전하며 형무소 생활을 하다가 일단 집행 유예로 석방되었으나 그리운 가족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다시 검속 되어 19426월에 포로 교환되기까지 거의 1년 간 영오의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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