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1. 서북지역 선교의 중심지,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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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만주지역에 인접해 잇던 서북지역은 어느 지역보다도 일찍이 기독교 복음이 전래되었다. 만주 지역에서의 선교에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소속의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와 존 맥킨타이어(John Mclntyre) 선교사의 역할은 결코 간과 될 수 없다. 그들은 1981년경부터 한국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던 중한만 국경지대를 순회하다 상업 때문에 이 지역에 온 한인 청년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등 의주 청년들은 세례를 받고 로스와 맥킨타이어와 함께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 번역과 출판에 참여하였다. 1879년 맥킨타이어에 의해 세례를 받은 이응찬과 백홍준이 평안북도 의주와 압록강 남안(南岸)을 따라 성경 보급에 나섰다. 그리고 서상륜은 그의 동생 서경조와 함께 남하하여 그를 황해도 소래(松川)에 보내고, 자신은 서울로 가서 전도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최초의 권서인이요 전도인으로 활약한 이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활발하게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1883년에는 서경조의 활동에 힘입어 한국 개신교의 요람으로 알려진 소래교회가 설립되었다.

 

29>이렇게 로스가 맥캔타이어와 함께 중국에서 사역하면서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보급한 것이 서북지역에 기독교 신앙이 확산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서상륜과 서경조 형제의 역할은 한국 교회사의 초석을 놓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했다. 서경조는 소래에 정착하여 최초의 장로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후에는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한국 최초로 장립 받은 목사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서상륜은 의주와 소래를 거쳐 서울에 머물면서 소래지역에서 온 교인들과 남한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1886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언드우드(Horace G. Underwood)가 아펜셀러(Henry Appenzeller)와 함께 서북지역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 1889년 봄에는 갓 결혼한 언드우드 내외가 이 지역으로 신혼여행을 떠나 개성, 소래, 평양, 강계, 의주 등지에서 전도 활동을 전개했는데, 세례 받기를 원하는 서른 세 명의 성도들에게 압록강을 건너가 세례를 주는 일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30>그러나 서북지역의 선교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는 마포삼열(Samuel A. Moffett. 1864-1949) 선교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889415일에 미 북장로교 선교부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허락 받아, 동년 12월에 미국을 떠나 그 이듬해인 1890120일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6개월 동안 로스를 도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황해도 소래에 한국 최초의 교회를 세운 서상륜에게 한국말을 배웠다. 그후 8월에 마포삼열은 평양에서의 선교를 탐색하기 위하여 아펜셀러, 그리고 헐버트(Homer B. Hulbert)와 동행하였다. 평양을 세심하고도 치밀하게 실핀 마포삼열은 이 지역이 새로운 선교본부로 매우 적합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으면서, 서남북의 지점에서 볼 때 교통의 요지이며 중간지점이라는 이점을 놓치지 아니하였다. 또한 그는 의주로 가서 백홍준의 소개로 한석진을 만났으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서상륜으로부터 귀에 익을 정도로 들은바 있는 소래교회를 방문하면서 장차 한국 선교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며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31>네비우스(Nevius) 선교방법이 채택된 이듬해인 1891년에는 서북지역에 대한 2차 전도 여행이 실시되었다. 토론토대학교 YMCA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온 게일(James Gale)과 함께 마포삼열은 서상륜의 안내로 개성, 평양, 의주를 거쳐 남만주의 봉천(심양) 까지 3개월에 걸친 전도여행을 하였다. 이 때 로스를 만났고, 돌아오는 길에 함흥과 원산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이 전도 여행을 통해서 마포삼열은 한국 선교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귀중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첫째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에까지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교 지방이지만 그다지 이렇다 반발과 반동이 없었다는 것. 둘째는, 미국 선교사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직접 간접으로 주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셋째는, 선교 전략에 대한 지리적 여건을 직접 목격 답사한 데서 얻는 지식이었다. 이런 근거로 마포삼열은 평양에다 선교본부를 설치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그 후에도 수차례 이 지역을 방문하였다.

 

32>마포삼열의 결정은 한국 교회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결정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만주지역에서 이루어진 스코틀랜드 선교사들과 한인성도들의 선구적인 선교노력이 중시되고, 그것을 토대로 한국선교에 대한 방향이 설정되었다. 즉 서북지역의 평양은 만주에서 시작된 선교활동을 계승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한반도 전체를 복음화해 나가는 도관(導管)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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