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9. 프린스톤 신학의 특성

  선지자선교회

88>한부선 뿐 아니라, 19세기 미국 교회의 역사와 신학적 경향, 그리고 20세게의 한국의 교회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려면 구 프린스톤 신학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구 프린스톤 신학의 창시자들로서 아키발드 알렉산드(Archibald Alexander), 찰스 핫지(Charles Hodge), 아키발드 알렉산드 핫지(Archibald Alexander Hodge)와 벤자민 윗필드(Benjamin B, Warfield)등은 신학적 과제와 성경관에 대한 상당히 공통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리의 특징에 대한 동일한 믿음을 소유하고, 칼빈주의적 결론에 대해서도 공통적인 사고 방식을 공유하고 있었다특히 아키발드 알렉산드(1772-1851)1812년 설립된 프린스톤신학교에서 한 세게 이싱을 견지해 온 신학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성경에 대한 헌신, 종교적 체험에 대한 관심, 미국적 경험에 대한 민감성, 장로교 신앙고백의 완전수용, 17세기 개혁신학의 특징들, 그리고 스코틀랜드 상식철학등이 구 프린스톤 신학의 주요한 특성들이었다.

 

89>전통적으로 프린스톤 신학자들은 성경말씀에 대한 영감과 권위를 상당히 강조해 왔다. 성경의 절대적인 영감성에 대하여 초기 네 명의 신학자들은 일관된 자세를 가졌다. 또한 프린스톤 신학의 특징 중에 하나는 변화에 대한 거부였다. 찰스 핫지는 이 신학교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사상도 발단되지 않았다고 단정을 지을 수 있다라고 언급하였다. 프린스톤은 변형되지 않은 칼빈주의를 가르치는 일에 주력하였으며, 그래서 프린스톤의 주요한 신학적 과제는 개혁신앙의 변질을 야기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신학적 수정에 대한 명백한 거부라고 할 수 있으며, 만약 프린스톤이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종교개혁의 원리에 철저한 충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프린스톤의 신학의 정통성은 17세기 프랜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의 정통개혁신학과 신앙고백에 대한 신학교의 철저한 헌신에 명백히 표현되어 있다. 1872년 찰스 핫지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 발간되기 전까지 튜레틴의 조직신학(Institution Theologicae Elencticae)은 프린스톤의 주요한 신학교재였다.

 

90>이런 의미에서 튜레틴은 프린스톤 신학자들의 신학적 안내자로 간주될 수 있으며, 구 프린스톤 신학에 미친 그의 영향이 매우 지대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프린스톤 신학자들의 신학에 대한 접근 방법은 메이첸에게 계속 전승된 것으로, 그것은 역사적인 발전과정에 의해 영향 받지 않고 정적인 카테고리에 있는 신학적 진리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린스톤 모든 교수들은 웨스터민스터 표준문서(Westminster Standards)에 동의하고 서약해야 했으며, 신앙고백이나 대소요리문답에 반대되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거나, 혹은 암시에 의해서라도 유포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준수해야 했다.

 

91>왜냐하면 프린스톤신학교가 웨스터민스터 표준문서의 근간을 이루는 엄격하고 순수한 칼빈주의를 위해 설립되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윗스타 핫지 박사도 독특하고 남다른 의미의 프린스톤 신학이 아니라 바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칼빈주의가 그 근간임을 주장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프린스톤 신학은 근본주의가 아닌 개혁신앙의 순수한 복음주의라고 규정하였다. 교회는 참 된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신앙고백은 신학의 발전과 함께 복잡해졌고 역사적 배경에 따라 그 표현의 정도가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신앙고백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조나 신앙고백이 성경에 얼마나 충실하며 역사적 시험에 거친 것이냐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프린스톤 신학자들은 웨스트민스트 회의에서 제정된 개혁주의 교리를 매우 귀중하게 간주하였다.

 

92>한부선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던 교수 중의 한 사람인 메이첸은 1929년 웨스터민스트신학교를 설립한 직후 열린 개회예배에서 프린스톤의 신학적 전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웨스터민스터신학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전통이 손상되지 않고 지속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속임수와 타협이 아닌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헌신에 입각하여 구 프린스톤에서 유지되던 동일한 신학적 전통을 견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첫째로, 장로교의 신앙고백에 명시된 바와 것같이 기독교는 참된 진리라는 사실을 믿느다. 둘째로, 기독교는 학문적인 방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 장려함을 믿는다. 셋째로, 기독교는 교회 안팎의 그 어떤 반대 세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지지함이 없이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길로서 선포되어야 한다./ 철저한 장로교 신학의 변증자이자 신학자로서 메이첸은 성경의 권위에 확고하게 근거하고 있는 구 프린스톤 신학을 변호하였으며, 다양한 형태의 현대주의의 도전에 과감하게 맞섰다. 메이첸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94>당시 시대적인 흐름은 프린스톤신학교가 추구하던 전통적인 장로교주의가 에큐메니즘에 의해 악화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경에 대한 궁극적인 권위나 웨스터민스터 신앙표준에 부여했던 독특하고도 엄격한 기준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었다. 메이첸은 기독교와 그리스도 자신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교리적임을 인식하며 시대적 도전 앞에 의연히 대처해 나갔다.

 

95>메이첸은 1920년대의 현대주의의 도도한 파고 속에서도 구 프린스톤 신학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메이첸의 신학은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 종교의 진실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의 진실성이 개혁신앙의 신조, 특히 웨스터민스터 대소요리문답서에 잘 요약되었다고 믿었다. 그의 신학의 두 토대는 바로 성경의 궁극적인 권위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반영된 개혁신학적 입장이었다.

 

97>존 리빙스톤 네비우스(John Livingston Nevius)1853년에 프린스톤신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약하였으며, 성경공부 중심의 삼자정책을 토대로 한 소위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한국 주재 선교사들에게 소개함으로써 한국 장로교회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98>프린스톤신학교는 1892년부터 학생들을 위하여 연례 선교특강을 개설하여 훌륭한 강사들을 초빙하여 선교 열정을 고취하였다. 1928년에는 한국 선교에 대한 주제로 당시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 중에 조지 쉐난 맥큔(George Shannon Mccune) 박사가 조선: 극동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랄만한 주님의 역사하심이라는 내용으로 다섯 번에 걸쳐 특강을 하였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이 연례 선교대회 참석 차 프린스톤신학교를 방문하고 강연한 것은 여러 신학생들에게 한국 선교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부선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교회사 연구의 초석을 담은 백낙준과 미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 파송을 앞둔 권세열(Francis Kinsler) 등과 함께 1928년에 프린스톤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00>메이첸은 이 두 전제에 근거하여 초대교회의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한 도덕적인 교사나 실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분노의 죄와 굴레로부터 구속하시는 구원자로서 선교지에서 전파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를 한갓 윤리적으로만 이해하려는 당대의 구 자유주의의 경향을 의식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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