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 ● 12. 한국 장로교회의 발전과 네비우스 선교 방법

  선지자선교회

125>네비우스 부부가 1890년 한국을 방문하여 재한 장로교 선교사들의 수양회에서 자신의 선교방법을 소개하였다. 그 이듬해에 재한 북장로교 선교부는 신학적안 공감대를 토대로 하여 이것을 공식적인 선교 원리로 결정하였으며 다른 선교부들도 이를 채택하였다.

 

126-127>서북지역의 장로교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포삼열은 다음과 같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대해 정리하고 실천을 다짐했다. 1. 우리 교인은 각 개인의 자력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시행할 절대의무를 갖게 할 것.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전 교회에서 조직적으로 공부시킬 것. 3. 최초부터 각 교회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것. 4. 이렇게 독립된 교회는 또한 반드시 자치하여야 할 것. 5. 교육 사업은 그 착안점을 신자의 자녀 교육에 두고, 동시에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할 것. 6. 의료 기관은 복음 전파에 가장 유효한 기관임을 깊이 인식할 것. 7.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성령의 감화에 의지하여 개인의 중생과 교회의 지도 발전을 도모할 것./ 네비우스 선교방법이 한국선교에 기여한 두 가지 원칙은 바로 성경연구반 조직체이며, 다른 하나는 자활자급이라 할 수 있는데 이 토대 위에서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스스로 자립하며, 자발적인 전도의 의무를 강조함으로 급속도로 발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

 

128>이러한 가운데 1895년부터는 교세가 현저하게 성장하는 것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1894년에서 1895년까지 세례교인이 286명에 불과했는데, 1899년과 1900년 사이에는 3,690명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13개 처소였던 교회도 미조직 교회를 포함하여542개소로 급증하였다. 이런 성장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기간동안 의주, 용천, 선천, 송천, 그리고 평양이 서북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지역들은 미 북장로교가 담당했던 곳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성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서북지역 뿐만 아니라, 감리교 선교 중심지였던 안주, 영변, 원산에서도 교회 성장이 매우 현저했으며, 함경도 중심으로 선교하던 캐나다 장로교의 선교회와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하던 호주 장로교 선교부 지역과 미 남 장로교 선교부가 활동하던 목포와 광주를 비롯한 호남지역에서도 괄목할만한 교회성장이 일어났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한국교회 초기지도자들인 권서인, 조사, 전도부인, 그리고 영수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평신도 지도자 교육을 시작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역할을 하였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채택하자마자 한국교회는 사경회를 실시하여 평신도들을 양육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그 해 가을 서울의 언드우드 선교사의 집에서 사경회의 일환으로 모인 신학반은 분명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고 일반교인의 사경회는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신학반이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의 첫 출발로 간주될 수 있다.

 

129>“사경회에서 성경을 공부한 사람 중에 가장 우수한 사람은 서울 신학반에 파견되어 성경 지식과 교회 치리에 관한 지식을 더 얻은 후에 전도인이 되었다.”

 

130>선교사들은 전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의료사업과 교육사업 그리고 사회사업을 교회 설립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즉 선교의 궁극적 목적은 교회 설립에 있었으며, 선교사들은 그 토대 위에서만 육영사업도 의미를 지닌다고 믿었다.

 

131>마포삼열을 비롯한 초기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은 개혁신학을 나름대로 발전시키며 유지해 나간 미국 구파 장로교 신학과 함께 경건주의적이며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신학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이러한 성경관을 토대로 한국 장로교회에는 다양한 사경회 운동을 통하여 성경중심적인 신앙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사경회에서의 조직적인 성경연구는 언제나 선교와 전도라는 과제와 결부되어 있었으며 교회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구심력이 없는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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