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선 선교사 평전 - ● 16. 한부선의 선교신학과 신학적 입장

  선지자선교회

177>네비우스 선교 방법은 위대한 종교 원리의 하나인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성경적인 특성을 지니면서도 실천적인 선교방법으로도 전혀 흠이 없는 실제적인 선교원리였다. 한부선이 이 방법에 깊이 동감했던 부분은 성경적 진리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상황에 적절하고도 효과적으로 선교사역에 적용될 수 있다는데 있었다. 또한 이 방법은 선교사가 선교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선교 후원보다는 성경적 신앙을 먼저 앞세우는 신앙선교원리였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선교사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헌신이 없이는 선교지에서 사용할 수 없는 원리였다. 선교 자금을 통해 일꾼을 구하고 사역에 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유용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돈을 사용하지 않고 선교 사역을 행하는 것은 선교사나 선교지 성도나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선교사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헌신하고, 신앙적으로 현지 주민들에게 감화를 끼쳐야 비로소 사역이 전개될 수 잇음을 전제한 것이었다.

 

179>한부선은 사경회(Bible Conferencc)"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사경회를 성경을 상고하는 모임이라고 정의했던 그는 자신의 선교사역의 후반기 중요한 사역중의 하나가 바로 부흥회로 변모된 성격을 그 본래의 의미로 회복하는 것이었다고 언급하였다. 성경을 깊이 상고하고 성경적인 원리에 충실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방법대로 한국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라 확신하며 성경 중심적인 선교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하였다.

 

182>비록 선교 초기에는 극소수였던,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선교사들의 수가 증가하게 된 데에는 1925년에 캐나다 회중교회,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합동하여 개신교 연합교회를 형성한 후, 그 여파가 한국의 장로교회에 까지 미친 것도 한 몫을 차지하였다. 새로운 연합 선교부의 주도권은 자유주의자들에게 넘어 갔으며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서고도(William Scott)였고, 한국인 목사들 중에서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캐나다 교회의 변화를 한국 장로교회는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다. 단지 선교사 개개인이 한국교회에서 어떤 교회직무를 맡기 전에 신학사상을 검정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조문을 헌법에 부가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185>한국 장로교 신학사상에 대한 선구적 연구를 했던 간하배 교수는, 자유주의 신학은 주로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 유입되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경로들이 있었음을 규명해주고 있다. 일제의 강점기간 동안 자유주의 신학이 우세했던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온 유명 인사들의 영향력이 1930년대에 들어 한국교회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 그 대표적적인 인물이 김재준이다. 캐나다 선교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그는 한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주도해 나가는 지도적 인사가 되었다. 그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에 유학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채필근의 지지를 받았다.

 

189>또한 감리교회가 선교 희년 기념으로 단일 성경주석인 아빙돈 주석을 번역 출판하였는데, 번역자들 중에는 장로교 목사 및 몇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에 조선신학교와 관련이 있는 채필근 목사와 송창근 목사가 대표적인 인물들인데, 주석 내용이 자유주의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제 24차 총회는 장로교인 번역자들에게 성명서를 내게 하고 그 책이 재판될 때에는 필자 자신들이 집필한 부분은 빼겠다고 약속할 것과 유감의 뜻을 표할 것을 명령하고 장로교인으로서는 이 책을 사보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 주석에 대하여 박형룡은 자유주의 신학사상의 집대성이며, 성경을 고등비평의 원리에 의해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190>자유주의 신학 파급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독신보로서 자유주의 논설들의 온상이 되고 또한 근간 수년 동안에 점차적으로 자유주의 운동의 기수가 되어가고 있음을 더욱 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필순 목사가 그 신문의 발행인이 되었을 때 장로교 법정에까지 문제가 비화되었다. 또한 적극 신앙단이라는 단체가 현대주의의 보급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장로교 총회는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191>간하배는 신사참배와 자유주의 신학과의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유주의의 근본 뿌리는 기독교 사상을 세상 문화의 표준에 맞추어 조성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신학의 중심점을 복음으로부터 우리가 사는 현 시대에 유행하는 지적인 개념들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일으켜 세상에 부합되게 하는 근본요인은 바로 자연주의이며, 이것은 메이첸의 표현을 빌린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전적으로, 가로막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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