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6 00:28
한부선 선교사 평전 - ● 19. 미국 북장로교회의 신학논쟁과 해외선교
210>1922년 휘튼대학에서 경험한 중생의 체험이 한부선의 개인신앙생활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면, 그가 미 북장로교 선교부를 떠나 장로교해외독립선교부를 거처 미 정통장로교 선교부로 이적한 것은 그의 생애와 사역에 있어서 또 다른 이정표를 의미한다. 선교부를 이적한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20세기 미국 장로교 신학과 교회 정치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으며, 한국 장로교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부선의 교단 이적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미국 장로교와 한국 장로교의 신학적 동향을 감지할 수 있다.
211>일제하의 보수적인 신학 분위기 속에서 활동이 지극히 제한 당했던 자유주의적 성향의 교회 지도자들은 일제 말의 혼란 된 상황 곧 태평양전쟁의 발발에 따른 미국 선교사들의 추방, 신사참배 강요, 일제의 교회 박해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교회의 치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1940년 조선신학(현 한신대학의 전신)을 세우는 등 조금씩 세력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212>특히 한부선은 정치적이며 신학적인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던 선교지에서 프린스톤과 웨스터민스터신학교에서 배운 구 프린스톤 신학을 토대로 선교사역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다. 만주에서 펼친 신사참배 반대운동이나 해방 후 한국교회의 갱신과 개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후에는 이러한 신학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