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6 00:14
한부선 선교사 평전 - ● 5. 기미년(1919)과 한부선
71>한위렴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랑하는 아들 한부선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어디로 보낼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첫 부인의 오빠였던 처남이자 「뉴욕 타임스」의 편집장이었던 존 필리도 조카 한부선을 자기 집으로 보내라고 했지만, 한위렴의 마음은 편치 안 했다. 핀리는 후에 프린스톤 대학교의 교수로 봉직하였고, 낙스 대학(Knox College)의 총장도 지냈지만, 그가 뉴욕의 리버사이드 제일장로교회의 장로였다는 것이 한위렴의 마음을 주저하게 했을 것이다. 이 교회는 후에 설교목사로 활동했던 침례교 출신 헤리 에머슨 포스딕 목사가 “근본주의자들이 과연 이길 것인가?”라는 설교로 미 북장로교 내에 근본주의 대(對) 현대주의 논쟁을 촉발시킬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한위렴은 그의 여동생의 집으로 아들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