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외부적 표징과 내부적 실상

2007.09.20 23:14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믿음의 외부적 표징과 내부적 실상
선지자선교회
본문: (막9:23-24)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서론>

오늘 말씀 가운데 ‘인정(認定)’이라는 말씀이 많이 사용되는데 여기에 인정이라는 말은 확실히 알고, 확실히 결정하고, 확실히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道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하고, 모든 것을 얻는 道입니다. 道라는 것은 그 길을 걸어야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뜻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을 걸어야 믿음의 결과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본론>

● 믿음

어려서 부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씀드리기를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22)’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하셨습니다.

‘믿는 자’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서 마음도 몸도 움직이는 자가 믿는 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구하라는 것을 구해야지 하나님께서 구하라 하지 않는 것을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서 소망하라는 것을 소망해야 믿음입니다.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면 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그 범위 내에서 순종하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 약속 범위 외에 것을 소망하는 것은 독단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는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믿는 자는 곧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그 선포를 따라서 움직이는 자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안 되는 것은 믿음이 없든지 또는 믿음이 모지라서 안 되는 것이지, 신구약 성경 범위 내에서 믿음으로 하는 것은 다 이루어집니다.

신구약 성경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신의 죄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것을 구하지 않는 것도 불신의 죄입니다.

신구약 성경 계약을 선포 하시고 각자에게 개별 개별의 주권적 섭리를 하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 된 것이라도 각자에게 해당된 말씀이 있습니다.

믿고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들 수 있는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섭리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계약의 개별 섭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약속된 것을 다 믿되 각자에게 하나님의 개별섭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구약 성경의 약속을 인정하고, 소망하고, 하나님의 개별섭리를 따라서 순종 할 때 무엇이든지 이루어집니다.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은 금생과 내세 그리고 영과 육에 나타내신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믿는 것이 큰 믿음인 것입니다.

믿은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데에는 현실이 필요하고, 그 현실에 대한 영감의 인도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행동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어려서 부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22)’ 할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 하신 것입니다.

● 믿음으로 낫는 외부적 표징

○ 귀신들린 아이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질 때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지므로 아이의 병이 고쳐졌습니다.(막9:25-27)

(막9:25-27)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 날 때부터 소경

또 요9:6-7에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게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하셨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은 예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을 인정하는 믿음뿐만 아니라, 실로암에 씻어라 하실 때 그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 또한 가졌습니다. 이렇게 인정과 행함의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었습니다.

○ 죽은 나사로

또 요11:39-44에는 죽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마르다’에게는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과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하는 믿음과 이에 더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으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 인정, 행함, 부인

‘믿음’은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과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하는 믿음과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죽은 나사로의 무덤의 돌을 굴리려면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체험과 선입적 관념을 완전히 부인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주님을 인정만 해도 나았으나, 그 다음 눈먼 소경에게는 주님을 인정하고 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할 때에 시키시는 대로 씻을 때 나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할 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먼저 일하시고, 인정해라 할 때에 인정하고, 행하라 할 때에 행하고, 자기를 부인하라 할 때 부인하니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①자존하신 하나님 ②하나님의 선택 ③하나님의 주권 ④하나님의 대속 ⑤하나님의 보증, 이 다섯 가지를 인정하고, 믿고, 자기를 부인할 때, 이 다섯 가지가 합해서 폭발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인정할 때에 귀신들린 아이가 낫게 되었고, 인정하고 행할 때에 눈먼 소경이 나앗고, 인정하고 행하고 자신을 부인 할 때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와서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과 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하는 믿음과 또 자신을 전적 부인하는 믿음이 있어야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어려서 귀신들린 아이가 낫고 또 나면서 소경된 자가 낫고 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이것은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외부적 표징이지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그 실상은 아닙니다.

이래서 요11:42에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우리로 믿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구주 예수님이신 것을 믿게 하시려고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귀신을 쫓아내셨고 또 나면서 소경된 자를 낫게 하셨고, 또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하고, 자기를 부인 할 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그 실상은 무엇이냐?

● 믿음으로 낫는 내부적 실상

○ 막9:25에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을 쫓아 내어 낫게 하신 것은

우리들이 귀신 곧 사탄이 부리는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서 바로 말하지 못하고 바로 듣지 못하는 여기에서 이제 주님이 말씀하는 것만 말하고 또 주님이 들어라 하는 것만 듣는 자로 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구주이심을 인정만 해도 낫게 되는 이 구원의 도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 요9:6-7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낫게 하신 것은

원죄와 본죄로 바로 보지 못하는 소경을 바로 보게 하셨습니다. 진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것을 밝히 보게 하신 것입니다. 소경이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신데 이것을 밝히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타락한 죄인으로 더러워졌기 때문에 그 더러움을 상징적 표현한 것이 침을 뱉으신 것이며 또 진흙을 눈에 바르신 것은 인간 너희들은 하나님 내가 지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며 우리 인간은 그 분 말씀에 전적 피동 되어 움직여야 하는 피조물인 것을 인정하여 소경이 실로암 못에 씻을 때 밝은 눈으로 하나님께 돌아 왔습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우리는 그 분의 뜻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을 알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실로암 못에 씻은 것입니다.

○ 요11:39-44에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우리가 죄를 지으므로 죽고, 마귀의 미혹을 받으므로 죽고, 사망의 권세 아래 있으므로 죽었습니다. 이렇게 죽은 가운데서 주님을 인정하고 죄를 짓지 않으므로 살아났고, 주님의 뜻을 따르고 마귀의 미혹을 따르지 않으므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고, 자기를 부인하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므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결론>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우리가 진리를 말할 수 없고 또 진리를 들을 수 없는 벙어리 귀먹은 귀신 들린 데에서 나음을 받는 구원을 받았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인 사람인 것을 보지 못하는 타락한 더러운 소경에서 밝히 보는 구원을 받았고 또 죄와 마귀와 사망의 권세에 매여 죽은 가운데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다시 살아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귀신들린 가운데서 나음을 받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능력이고 또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께 지음 받은 사람인 것을 밝히 보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능력이고 또 믿음은 영멸에서 영생이 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능력인 것입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1983, 1, 9 주일오전) 참조/ 김반석목사 재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