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2007.05.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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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석     번호 : 4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5/03/20 (일) AM 01:19:41     조회 : 29  

■ 신앙계


신앙과 생활을 성공으로 이끄는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라 불리는 부산 서부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1가 381의 1번지에 자리한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 성부교회는 한창 4층 건물 증축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어린이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한 대책이 바로 증축의 이유였다.

구덕 공설 운동장의 1킬로미터 남쪽이며 간선 도로와 지선 도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곳에 서있는 이 교회에는 주일 아침이면 7천5백여명의 어린이들의 일시에 몰려 들었다가 일시에 흩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더구나 각종 차량과 일반 행인들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는 속에서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이들 어린이들을 목격한 어떤 이는 마치 “철새 무리들이 군무라도 벌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라고 했다.

이 교회의 만 12세 이하 어린이 재적 숫자는 2만 5천 여 명이며, 해마다 어린이 성도 숫자가 3천 명씩 늘어 나고 있다.

중간반의 평균 출석 숫자가 1천 8백명, 장년반이 3천 2백명 정도로 전체 교인 숫자의 약 80 퍼센트가 어린이들이다.

30여년 전에 설립된 이 교회는 당회장 백 영희 목가(74세)의 뜻에 따라 주일학교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는 명실 상부한 어린이 교회이다. 한편 장년 성도의 경우에도 숫적인 면에선 부산 제 1의 교회이다.


출옥 성도 주남선 목사의 권유로 목회자 되다

고희를 넘긴 백영희 목사의 구술에 의하면 이 교회의 내력과 그 자신이 목회 동기는 대개 이러하다. 이 교회는 원래 1948년 손 이원 목사(손양원 목사 동생)가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그후 김 창인 목사(현 서울 충현교회 시무)가 잠시 목회한 뒤 1951년에 백 목사가 부임하여 왔다. 올해로서 부임 33년이다.

백 목사는 경남 거창군 주삼면 도평리에서 유교적 가풍의 부모 밑에서 출생하였다. 12살 때 등교시 우연히 이웃의 고 운서 권사가 지나가면서, “예수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십시오.” 하며 전도하는 말이 마음에 찔려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 비록 어린 마음이었지만 “아, 인생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것보다도 더 귀한 것이 또 있겠는가!”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늘상 마음 속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동경과 호감이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겉으로는 괜히 기독교를 핍박하려는 철부지 심술이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꽤나 예수 믿는 친구들을 못살게 굴기도 했다. 그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다. 그는 당시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상점을 하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물건을 사러온 고 운서 권사의 아들의 인품에 큰 도전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 학생이 물건을 사는데 예의 바르고, 겸손해 하고 의젓한 것이 여간 인상깊게 느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찌나 그 학생에게 마음이 쏠렸던지, “저 집 개라도 한 마리 가져다가 길럿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곧 이뤄져 그 집 양 한 마리를 달라는 대로 댓가를 지불하고 사다가 키우기까지 했다.

그만큼 학생에게서 풍기는 예수의 체취를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그는 “기회만 있으면 교회에 나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양조업을 하는 그에게 전도하는 이가 없었다.

‘저런 사람이 뭐 예수를 믿겠나 ?’ 는 식의 전도자들의 성급한 판단 때문이었다. 전도인들이 자신의 상점 앞을 자주 지나가도 전도를 하지 않자 어느 날 이내 그는 한 전도인을 붙들고“왜 내겐 전도하지 않소?” 하고 섭섭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 예수 믿을 것 같지 않던 그가 의외의 태도를 보이자 전도자는 “그래요 오늘 전도 강연이 있으니 참석하세요”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가 “이왕이면 오늘 저녁엔 우리 집에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뜻 밖의 제의를 했다. 전도인은 감격했고 쾌히 승낙하여 그 날 그의 집에선 대 전도 강연이 벌어졌다. 이 때 그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다.

주님을 영접한 후 그는 주일 다가 오기를 고대했다. 첫 주일을 맞아 교회에 참석하자 마침 설교하는 장로님이 창세기 1장의 창조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어 평소 품었는 궁금증을 일시에 풀기도 했다.

예수 믿기로 작정한 나흘만에 그는 술, 담배를 끊엇고, 더욱이 17일 만에 양조장을 정리하여 전업하는 결단을 보였다.

또 인근에 교회가 없자 가족을 이끌고 매일 아침 산에 올라가 새벽기도회를 갖는 열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말 그의 변화된 모습은 많은 주위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특히 일정 말기엔 신사참배 거부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지만 주님께서 어려울 때마다 건져 주셔서 그 자신 뿐 아니라 그가 출석하던 교회의 교인 어느 한 사람도 신앙의 절개를 저버린 자가 없었다.

해방 후 그는 거창을 중심으로 한 4개처의 교회에 집사로서 교회 봉사를 했다. 교역자가 절대 부족한 시절이라 그는 교회를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하곤 했다.

그러던 중 출옥 성도인 주남선 목사가 그에게 유급 전도사가 될 것을 권유했다. 평소 교회 봉사하는데 유급으로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는 거부했다.

그러했던 그가 유급 목회자로 목회 일선에 뛰어들게 된 사유는 이러했다.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그의 둘째 딸이 기계의 의해 팔에 상처가, ‘다리에는 부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이것이 유급 전도사가 되라는 권유를 거부한데서 온 교만의 죄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엎드려 기도드렸다. “주님! 제가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왔습니까? 지금 제 딸이 피투성인데 저 아이가 병신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인 줄 알고, 순종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서서히 치료되고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된다면 저의 유급 전도사의 사건과는 별개의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두 주간 동안 부흥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그의 눈 앞에 둘째 딸이 고통이 없다며 마당에서 걸어다니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로 주님의 섭리로 깨닫고 유급 전도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며칠 뒤에,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정리하여 구제도 하고, 당시 성서공회 등 선교 및 복지기관에 희사했다.

맨 몸으로 주님의 목회 일선에 뛰어들 결의의 표시였다. 이후 거창의 4개처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중 당시 고신교단의 중진들의 추천으로 오늘의 교회에 부임하기에 이르렀다.


성경 말씀 외에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백 목사의 목회 지론은 “아직 세속에 때묻지 않은 순진 무구한 어린이일 때부터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신앙심을 심어줌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한다.”이다.

따라서 주일 학교 성장에 큰 관심과 비중을 두어왔다. 그 결과 오늘의 내놓을 만한 교회 성장을 가져 왔는데, 요사인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1층과 2, 3층, 그리고 지하층의 세 곳으로 나뉘어져 따로 에배를 드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부교회는 지난 197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는 어린이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네 차례의 증축 공사를 해오고 있다. 주일 아침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드리는 주일학교 예배는 층별로 각 부장 선생이 인도한다.

우선 부장 선생이 기도를 한 뒤, 찬송, 질문과 대답, 기도순으로 예배가 이어진다. 분반 공부와 질문과 대답은 반별로 하는데, 부장의 강의 내용을 반사들이 다시 복습시키는 것이다.

이 교회의 반사만도 자그만치 7백명(원반사 4백70명, 보조반사 2백 30명)에 이르고, 1명의 반사가 맡고 있는 어린이는 평균 1백 명을 웃돌고 있다. 주일이면 어린이들을 위해서 교회 주변의 도로 교통 정리에 동원되는 어른이 80명, 물 당번 어린이 50명, 미아 담당 어린이 10명씩인데, 여름철에는 식수가 수십 드럼씩 소요 된다.

서부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들은 인근 지역의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태종대, 해운대, 구포, 다대포, 온천장, 수영 등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잇는 곳까지 부산시내 전역에서 골고루 퍼져 있다.

그러면 이처럼 어린이들이 많이 모이는 데는 특별한 혜택이 있어설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이 교회의 첫째 특징이 바로 어린이들에게 일체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다른 교회처럼 노트나 크레용, 연필도 주지 않는다. 성탄절 때 사탕 한알씩 주는 것이 고작이다.

둘째, 어린이들을 유치반이나 학년별로 반을 구분하지 않고 코흘리개부터 국민학교 6학년 학생까지 한반에 통합시켜 두고 있다. 따라서 교재나 학년별 주일학교 교재를 쓰지 않고 독자적으로 만든 ‘공과’로 성경을 가르친다. 이 ‘공과’란 1주일 앞서 중간반, 장년반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목사의 설교 내용을 그대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정리한 것이다.

셋째, 다른 교회의 주일학교들이 성경 내용을 동화나 성극, 노래, 그림 등으로 각색하여 흥미롭게 가르치는 방식을 전혀 채택하지 않고 있다.

교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무엇보다 이 교회의 주일학교는 강력하고 열성적인 반사 운영 체제가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반사들은 첫째 신앙 둘째, 기도 셋째, 심방을 그들의 본질적인 지침으로 삼고 열심히 뛰고 있다. 그들은 뜨거운 신앙을 바탕으로 주일학교를 위한 기도와 어린이를 위한 심방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주일은 두말 할 나위 없고 평일에도 반사들이 하는 일은 태산처럼 많다.

날마다 자신의 반에 적을 두고 있는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며, 토요일 하오와 주일 아침의 어린이 집 심방은 필수적이며, 거기에다 반원의 숫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전도도 쉬지 않고 펴야 한다.

1명의 반사가 3백 50명의 어린이를 자기 반원으로 확보한 것이 최고 기록인데 지금까지 이만한 수준의 성과를 올렸던 반사가 2백 명쯤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고한 반사들에게 수고의 댓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선 반사들에게 단 한푼의 재정적인 보조도 하지 않고 있다. 반사들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어린이 들의 버스표를 사주기도 한다.

행정실의 장 영목 총무는, 백 목사가 항시 강조하는 반사의 지침에 대해 첫째, 어린이가 오는 것은 반사 자신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로 인도하는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한 차례씩 기도할 것, 셋째, 토요일과 주일 심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빠뜨리지 말 것 등이라고 말한다. 7백명의 반사들은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참여하고 있다.

직업도 다양하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는 물론이고 대학생, 중고교생, 회사원, 상업, 의사, 가정주부 등이다.

서부교회가 오늘의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로 성장한 데는 백 목사의 의도적인 교회 운영과 뒷받침, 즉 교회의 행정, 사무, 설교, 인적 구성까지 주일학교를 중심하고 있는 것과, 일반 사람들로선 감탄을 금치 못할만큼 헌신적인 반사들의 노고와 기도의 결실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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