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성령의 충만

2009.12.06 02:28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 50 과   성령의 충만
선지자선교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15:18)

1, 서론

1)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는 이미 성령을 받았다. 그런데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함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령의 은혜를 겨우 누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신자라면 마땅히 모든 생활이 설령의 손에 붙잡힌바 되어 능력 있고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해야 한다.

2, 내용

성령은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오시고(행2:17), 한번 오심으로 영원히 계신다.(요14:16) 그리고 우리의 성결과 능력의 생활을 위하여 충만히 역사 하신다.(엡5:18)

전자는

성령의 세례(막1:8, 고전1:13)
성령의 인치 심(엡1:13)
성령의 내재(요16:7) 등으로 표시되고.

후자는
성령의 충만(엡5:18)
성령의 동행(갈5:16-17)
성령의 열매(갈5:22-23) 등의 말로 표현한다.


A, 성령 충만과 성령 인치심

1) 성령 충만과 성령 인치심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성령의 인치심은 믿을 때 성령의 세례로 내재하는 것이고 성령의 충만은 그릇의 뚜껑을 열어 놓고 빗물을 받는 것처럼 성령의 감화 감동의 인도를 충만히 받는 상태이다.

2) 성령의 “인”은 한번 받음으로 영원히 받는 표시이며 따라서 성령의 인치심은 소유권을    확인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확인하는 그리스도인의 표지이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믿은 후에 반복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할 것이다.

3) 전자는 믿는 순간에 얻는 것이며, 후자는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전자는 한번 받음으로서 영원히 받고 후자는 반복적이다. 전자는 기본구원에 관련되고 후자는 건설구원과 성화구원에 관련된다. 전자는 이미 받은 것이고 후자는 계속적으로 진보하여 세상 끝나는 날에 완성될 것이다.


B,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

1) 성령 세레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잇다. 그 중에 감각적(불, 진동, 환상, 방언, 바람     등) 체험을 성령 세례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감각적 체험을 간증하는 자 중에는 체험 후에도 믿음이 서지 못하고 오히려 믿음을 배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이 견해는 비(非)성경적이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2) 또 중생과 성령 세례를 단게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견해도 있는데 이것은 제자들이     중생한 후(요13:10, 요15:3) 그 다음 단계로 성령 세례를 받았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성령 세례도 심령 속에 보혜사로 내주 하실 성령의 임재를 의미했음이 분명하다.(요14:16-20)

3) 보혜사 성령의 내주가 없는 중생, 또는 성령의 보증(인)을 받지 못하는 중생은 있을     수가 없다. 중생과 성령 세례는 같은 역사이다. 왜냐하면 중생 시키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이다(요3:6)

4)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할 때에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성령세례이다” (박윤선 사도행전 주해p25)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이 곧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이다.
(정규오 사도신경 해설 p164)

“신자는 중생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데 이것이 곧 성령 세례이다.
(레흐만 스트라우스  성령론 p135)

이와 같이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령 충만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성령세례는 단회적이나 성령 충만은 반복적이다. 성령세례는 중생을 이루고 성령 충만의 생활은 행위구원, 건설구원, 성화구원을 이루어 간다. 성령세례는 계속적이나 성령 충만은 중단될 수 있다.

C, 성령 충만의 바른 이해

1) 성령 충만은 성령의 분량적인 임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성령을 분량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물론 `충만`이란 용어는 분량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의 개념 속에서 성령의 인격성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성령은 결코 분량적으로 적게 모시거나 많이 모실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성령의 인격성이 없다면 성령은 하나의 `힘`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적 상태를 의미한다.

2) 가령 영혼의 지각 상태가 성령의 지혜, 영감, 진리로 지배를 받는 상태일 경우 이것은 지혜충만, 영감충만, 진리충만이요. 영혼의 정서 상태가 성령의 은혜, 기쁨, 사랑으로 지배를 받는 상태일 경우 이것은 은혜 충만, 기쁨충만, 사랑충만이고, 영혼의 의지 상태가 성령의 권능과 믿음으로 지배를 받는 상태일 경우 이것은 권능충만, 믿음충만 일 것이다.

3) 성령은 생명이시다(롬8:2)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생명의 충만을 뜻한다. 또 성령은 진리이시다(요14:17)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진리의 충만을 뜻한다. 그리고 성령은 은혜이시다.(히10:29)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은혜의 충만을 뜻한다.

4) 본래 `성령 충만`은 심령의 골방 구석마다 성령으로 넘치게 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충만`은 심령에 공백이 없는 상태요. 넘칠 만큼 꽉 차있는 상태이다. 비유하면 잔에 물이 넘치는 경우이다.(시23:5) 여기에 영적 교훈이 셋이 있다.

(1)소리가 없이 묵직하다.

그릇에 물이 가득하면 소리가 없이 묵직하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잡음이 없다. 기도에 무게가 있다.

(2)다른 것이 못 들어간다.

충만한 잔에는 다른 것이 더 못 들어간다. 성령으로 충만한 시간에는 잡념이 못 들어간다. 사단도 못 들어간다.

(3)물이 차면 밖으로 넘친다.

충만한 잔에 물이 넘치듯이 성령의 사람에게서는 능력의 생활로 넘친다. 날마다 성령의 열매(갈5:22-23)를 맺는다. 그리고 전도가 넘치고 능력이 넘칠 것이다.


D, 성령 충만을 받는 방편

1)성령께서 항상 함께 계심을 확신하라(고전3:16)

2)성령 충만을 기대하라(눅11:13, 히11:6)

3)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5:19)

4)숨겨진 모든 죄를 고백하라(사59:1-3)

5)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 생활을 하라(롬12:1)

6)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라(행5:32)

7)세상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17)

8)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벧전5:5)


E,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

1)신자이면 누구나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일을 위하여 준비해 주셨고(요14:14, 엡3:19), 또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행8:30)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많은 신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는가?

(1)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확신이 없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자녀 된 믿음이라야 할 것이다.(눅11:13)

(2)순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소경더러 “시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요9:7)고 하셨다. 씻는 순종은 우리가 할 일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행2:38) 하셨다.

(3)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원하나 육신이 연약하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약4:2-3)


F, 성령 충만의 결과

1)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신다(갈2:20)

2)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요15:11)

3) 성령을 쫓아 행한다(갈5:16-17)

4)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갈5:22-23)

5) 능력을 얻어 복음의 증인이 된다(행1:8)

6) 죄에서 해방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롬8:2)

7) 감사와 찬송이 넘치게 된다(엡5:18-21)

8) 성령 충만의 결과를 사도행전에서 보자.


사도행전에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 충만의 결과가 소개되어 있다.

첫째는 권능으로 나타났다.

성령을 떠난 베드로는 비겁했다.(마26:69-75) 그러나 “성령의 권능”(행1:8)을 받고서 놀라운 기사를 행할 수 있었다.(행3:6)

둘째는 사랑으로 나타났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성령으로 호흡하면서 살았다. 때문에 유무상통 하는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행2:42)

셋째는 전도로 나타났다.

그들의 심령은 뜨거웠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의 부활“(행2:32)을 증거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