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1 16:07
■ 관상기도에 대한 논평
다음은 김삼 목사님이라는 분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자료이다. 그러니까 Y교회 L목사님의 ‘관상회의’에 대한 내용이다.
근간에 있어 한국교계에 관상기도라는 말이 떠돈다. 또 중보기도라는 말이 떠돌았다.
‘관상기도’라고 말하면서 나름대로 그 정의를 피력하고 있다. 또 ‘중보기도’라 말하면서 나름대로 그 정의를 피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정의를 피력하는 것을 보면 ‘기도’ 안에 다 포함된 항목들이다.
그런데도 한 항목을 강조하면서 목회 프로그램화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촛불을 켜는 등의 외부적 행위는 구약적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적 형식을 좇는 것은 로마 카톨릭이나 그 수도원에서 주로 행하는 것이다.
관상기도나 관상회의가 말하는 ‘관상’은 무엇인가?
‘관상’의 성격에 대하여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관상기도나 관상회의는 육체의 연습에서 약간의 유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경건은 되지 못한다.
관상기도나 중보기도가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새로운 무엇이 있나 싶어 관심을 가진다. 그렇지만 얼마 못가서 시들해진다. 그런 까닭은 이것을 해보면 예전에 자신이 했던 기도 속에 다 포함 되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Y교회 L목사님의 관상회의에 관한 자료는 2011년도 자료이다. 지금은 만 5년이 지난 2016년도이다. 그래서 지금쯤은 관상기도나 관상회의를 벗어났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