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1 14:50:51)
선지자선교회
■ '예수님의 人性'에 관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31째 글)

기독론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논하다보면 아폴리나리우스의 기독론을 대비해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함은 아폴리나리우스가 기독론의 첫 이단설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교리사 자료를 참조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을 근거해서 성경적으로 논해야 할 것이다.

교리사에서 명확하게 정립되지 못한 교리나 성경의 난해절일수록 신학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거의 절대라 할 만큼 해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알려주는 성경적 답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해당되는 성구와 관련된 성구를 찾아 전적 성경 안에서 해결해야한다.  

기독론에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성경적 답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성경을 붙들고 성경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할 때에 성경적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함은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이면 그에 대한 답이 성경에 반드시 말씀해 놓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난해절이 많지만 우리 심령이 어두워서 깨닫지 못하는 난해절이 거의 대부분이고, 근본 말씀 자체가 난해절이라고 성경이 말씀한 곳은 단 두 곳뿐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딤전3:16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하셨고, 멜기세덱에 대해서 히5:11에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이다’ 하셨다.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논하려고 하면 먼저 사람의 인성구조에 대한 명확한 교리가 정립되어 있어야 하고, 또 사람의 원죄에 대해서 명확한 교리가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인성을 우리 사람의 인성에 대비하는 논설이며 또한 원죄가 없는 인성을 논증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론에서는, 교리사를 참조하는 측면에서 첫째로 아폴리나리우스의 기독론에 관해 알아보고, 둘째로 사람의 인성구조에 관해 알아보고, 셋째로 사람의 원죄에 관해 알아보고, 넷째로 예수님의 인성에 관해 오직 성경을 근거해서 성경적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본론)

1. ● 첫째로, 아폴리나리우스의 기독론에 관하여

오늘의 교회가 아폴리나리우스의 기독론에 대해 이중적 견해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나는 아폴리나리우스가 예수님의 신성을 영혼에 대체하고, 인성은 몸이라는 주장과 또 하나는 아폴리나리우스가 예수님의 신성을 영에 대체하고, 인성은 혼과 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 아폴리나리우스가 기독론을 논할 당시 인성구조를 영혼과 몸, 이분설로 가졌느냐? 영과 혼과 몸, 삼분설로 가졌느냐? 그에 따라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은 큰 차이가 있게 된다. 아래에 그에 대한 예를 소개한다.

■ 아폴리나리우스 주장 ①

아폴리나리우스는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인성을 약화시켜 신성이 인성을 흡수했다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로고스가 인간 예수의 영(human soul)을 대신하였다고 이해함으로 신인(divine-human)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보다는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 이해했다. 인간 예수가 로고스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지성과 이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로고스가 인간 예수의 마음을 대신했다고 봄으로써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신적 지성을 가지고 활동하신 예수에 불과하다고 이해했다. (초대교회사 박용규저, 총신대출판사)

■ 아폴리나리우스 주장 ②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 몸과 마음에 있어서는 온전한 사람이나 그 영은 하나님의 신으로 대치되어 있다고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완전 인성을 부정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안디옥 학파의 갑바도기아 신학자들 중에 나지언즈스의 그레고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인양성이 온전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아폴리나리우스 주의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정죄하였다.(목회자양성원 교재)    

위의 아폴리나리우스 주장 ①은 인성구조 이분설로 소개한 것이고, 아폴리나리우스 주장 ②는 인성구조 삼분설로 소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하나는 본래의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이고 하나는 변형시킨 주장이 분명하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아폴리나리우스의 인성구조 이분설이 본래의 것이며 삼분설은 변형된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교계는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영혼과 육 곧 영육 이분설 교리를 정통교리로 가졌고, 영과 혼과 몸의 삼분설 교리는 배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교계가 인성구조를 영과 혼과 몸, 삼분설이 대세가 되므로 아폴리나리우스의 기독론을 삼분설로도 소개하고 있다.

2. ● 둘째로, 사람의 인성구조에 관하여

사람의 인성구조에 대해 가장 근원적 도리를 알 수 있는 말씀은 창2;7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다. 그러면 흙으로 지은 사람은 어떤 인성구조의 사람이며, 생기를 불어넣은 생령의 사람은 어떤 인성구조의 사람인가? 이것을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하면 사람의 인성구조와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정립할 수 없다.

그러면 흙으로 지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곧 육신의 사람을 말씀한다. 그러면 육신의 사람은 어떤 인성구조인가? 혼과 몸으로 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된 것이 사람이지 어떻게 혼과 몸으로 된 것이 사람인가? 반문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육신의 사람이 혼과 몸의 구조로 된 사람인 것을 성경을 근거해서 증명해보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 그 흙으로 지은 사람은 육신의 사람이다. 육신의 사람을 인성구조로 나타내면 혼과 몸이다. 이렇게 흙으로 지은 육신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롬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거한 사람의 인성구조는 영과 혼과 몸이다.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살전5:23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면 그 영이 사람의 영인가?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한 혼이 산 영 곧 영이 되는 것이다. 아래는 그에 논설이다.


● 사람의 영과 혼에 관하여

(서론)

사람의 인성구조에 대해 정통 조직신학에서 교리를 정립하였으나 명쾌한 교리로 정립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영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영이 우리 사람의 인성이지만 우리 인성에서 어디가 영이며 어디가 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것을 교리로 나타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영과 혼에 대해 성경을 근거해서 명확히 구분 짓는 교리를 정립해 보고자 한다.

(본론)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1. 흙으로 지은 사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셨다. 그러면 흙으로 지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창2:19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신대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도 흙으로 지으셨다.

전3:19-21에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하신대로, 사람도 흙으로 짓고 짐승도 흙으로 지은 그 흙으로 지은 사람과 짐승은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니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죽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간다. 그러므로 흙으로 지은 사람은 혼과 몸으로 된 육신의 사람이다.

이 혼과 몸의 육신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 즉 고전15:45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하신 대로, 혼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산 영이 되었다.

2. 그 코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하셨다. 그러면 그 코는 무엇을 말씀하는가?

전3:19-21에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하신대로, 그 코는 호흡을 하는 육신의 사람의 혼을 말씀한다.

3. 생기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하셨다. 그러면 생기는 무엇을 말씀하는가?

롬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신대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말씀한다.

4. 생령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하셨다. 그러면 생령은 무엇을 말씀하는가?

요3:5-7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하신대로, 혼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므로 난 것은 영이다. 그리고 본래 육으로 난 것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 때의 사람의 인성구조를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신대로, 혼과 영과 몸(관절과 골수)과 마음(생각과 뜻)이다.

5. 거듭난 중생

요20:22에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으니, 아담이 범죄 하여 죄의 삯이 되는 흙으로 돌아간 육체의 사람에게 주님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시므로 성령의 사람 곧 생령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는 말씀과 같은 도리의 말씀이다.

(결론)

혼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산 영이 되었다. 즉 혼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니 영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요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하셨으니, 육으로 난 것은 육 곧 혼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셨다.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생령의 사람이 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함으로, 창3:19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셨으니,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의 삯으로 흙으로 돌아갔다. 흙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어떤 말씀인가?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 흙으로 지은 육신으로 돌아갔다는 말씀이다. 이 육신의 사람이 주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기 전에 사람이다.

그렇기에 롬7:5에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하셨고, 그리고 롬5:6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하셨고,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고, 롬5:10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하셨으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이다. 그러므로 주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기 전에는 육신 되었을 때 곧 연약, 죄인, 원수 되었을 때이다.

그러면 육신 곧 연약, 죄인, 원수 되었을 때에는 사람이 아닌가? 이 사람을 가리켜서 창6:3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육체의 사람이 곧 육신의 사람이다. 주님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기 전 믿지 않는 사람은 전부가 육체 곧 육신의 사람이다. 이 육신의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 사람으로서 혼과 몸으로 된 사람이다. 교리적 표현으로는 영이 죽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 곧 우리가 아직 연약, 죄인, 원수 되었을 때에 주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면 어떻게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는가? 요20:22에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으니, 이것이 주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음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면 주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어떤 인성구조를 가지게 되었는가? 흙으로 돌아간 육신의 사람 곧 혼과 몸의 사람 곧 교리적 표현으로 영이 죽은 사람이 주님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 대로 주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이 거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곧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생령의 사람같이 ‘영과 혼과 몸’의 인성구조의 사람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을 교리적 표현으로 영이 중생되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은,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신 말씀과 같은 도리로서, 태초에 범죄 하기 전 아담과 같은 사람으로 주의 피로 구속하셨기 때문에 거듭났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흙으로 지은 육신의 사람(혼+몸)에서,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의 사람(영+혼+몸)에서, 선악과를 먹어 범죄 하여 죄의 삯인 흙으로 돌아간 육신의 사람(영이 죽고+혼+몸)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의 사람(영이 살아+혼+몸)이 되었다.  

그렇기에 주의 피로 구속 받은 자는 성령의 사람(영+혼+몸)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주의 피로 구속 받지 못한 사람은 육신의 사람(죽은 영+혼+몸)으로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면 불신자는 영이 있는가? 아담이 범죄 하여 흙으로 돌아간 육신의 자손은 전부 육신의 사람으로서, 교리적 표현은 영이 죽은 사람이다. 이 표현을 실제적인 인성구조로 나타내면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 육신의 사람({죽은 영}혼+몸)=(혼+몸)이다. 이 불신자가 예수를 믿어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을 받으면 영이 중생된 사람(중생한 영+혼+몸)=(영+혼+몸)이 된다.  

그렇기에 믿는 신자는 영이 중생된 사람이고, 믿지 않는 불신자는 흙으로 돌아간 육신의 사람으로서 믿기 전 까지는 영이 중생되지 못한 사람이다. 이래서 교리적 표현으로 불신자는 영이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흙으로 돌아간 육신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롬7:5에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하는 말씀대로 육신에 있을 때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신 ‘육신’은 어떤 인성구조인지를 사람의 인성구조와 관계지어보면 잘 인식될 것이라 본다.

그런데 히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셨다.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우리가 대개 알기로는 우리 사람의 인성과 꼭 같으나 죄만 없으신 인성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인성은 어떤 인성인가? 이 교리가 정립되려면 사람의 원죄에 관해 먼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3. ● 셋째로, 사람의 원죄에 관하여

롬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셨으니, 이 말씀을 교리적 용어로 원죄라 말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하셨다. 그러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무엇을 말씀하는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하여 그 죄의 삯이 되는 사망이 왔으니 곧 흙으로 돌아갔다. 흙으로 돌아간 것은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의 사람(영+혼+몸)에서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 육신의 사람(죽은 영+혼+몸)으로 돌아간 것을 말씀한다. 그리하여 아담 하와가 죄의 삯이 되는 흙으로 돌아가 육신의 사람이 되어 그 이후 아담 하와가 동침하여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 그에 대한 성구는 다음과 같다.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5:3)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범죄 하여 흙으로 돌아간 육신의 사람이 되어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대로 육신의 아들을 낳았고 아담의 자손은 전부가 육신의 사람으로 났으니 이것이 원죄이다. 롬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셨으니 곧 원죄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히4:15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인성은 죄 곧 원죄 곧 육신 곧 연약, 죄인, 원수로 된 인성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신 육신이다.

4. ● 넷째로,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셨으니,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하셨다.

그러면 ‘말씀’은 누구이신가?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고, 계19:13에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셨고, 엡1:7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하셨으니, 말씀 곧 예수님의 신성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육신’은 어떤 육신인가?
사람의 인성구조와 사람의 원죄에서 논설한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인성은 죄 곧 원죄가 없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의 인성이시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골2:9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구조에 대해서 성경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인성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성경에 없는 인간 추론을 더하게 되면 그만큼 비성경적 오류가 발생한다. 그런 유형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신성이 인성의 영혼(마음의 지정의)을 대체하고, 인성은 몸이다.
② 신성이 인성의 영을 대체하고, 인성은 혼과 몸이다.
③ 신성은 신성, 인성은 영과 혼과 몸이다.
④ 신성의 모든 충만이 인성(육체)에 거하신다.

위의 ①②③은 비성경적이며 ④는 성경적이다. 그러한지 아닌지를 연구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① ‘신성이 인성의 영혼(마음의 지정의)을 대체하고, 인성은 몸이다’

이 주장은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으로서 비성경적임을 교회가 확정했다. 이것은 인성구조 이분설로 가진 기독론이다. 몸만 인성이고 영혼 곧 마음의 지정의는 신성이 대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분설에서는 사람의 영혼을 마음의 지정의로 여겼는바 신성이 차지할 수 없는 육신이 포함되므로 비성경적 논리의 주장이다.

② ‘신성이 인성의 영을 대체하고, 인성은 혼과 몸이다.’

이 주장은 인성구조 삼분설을 근거한 논리이다. 요1:14 전반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셨으니, 예수님의 인성은 육신 곧 혼과 몸, 영은 신성이 대체하는 논리이다. 이 주장의 논리는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에 거하시는 구조로 말씀하셨는데 혼과 몸은 인성이고 영은 신성이 대체 되는 구조는 신성과 인성이 각각 구분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註: 김반석은 ②의 주장을 지지하였으나 원죄에 대한 교리를 명확히 깨달은 현재 2010, 5, 11 부로 ④의 주장을 지지하기로 수정한다.)  

③ ‘신성은 신성, 인성은 영과 혼과 몸이다.’

이 주장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성구를 대비해보면 육신에 영을 포함시키는 주장이 된다. 이 주장은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하면 첫째로, 예수님의 인성이 되는 육신에 신성 그리스도 자체가 충만히 거하시는데 또 육신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주장이다. 사람의 영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성구조에서 논설했듯이 흙으로 지은 혼과 몸의 육신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생령의 사람의 인성구조가 영과 혼과 몸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인성이 되는 육신에 영을 포함시키게 되면 예수님의 신성이 육신에 충만히 거하시는데 또 하나님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이중적 구조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 곧 육신에 영을 포함시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둘째는, 우리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생기를 하나님의 불어넣어 생령 곧 산 영 곧 영이 있으나 예수님의 인성 곧 육신은 성령으로 잉태하셨다. 우리 사람은 흙으로 지어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 사람으로 인성구조가 완성되었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인성구조가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의 육신의 인성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의 육신이 되었다거나 또 성령을 받으라 하셔서 성령의 사람이 되셨다는 말씀은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인성 곧 육신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실 뿐 그 외에 어떤 것을 더하면 성경 말씀에 없는 추론이 된다.

고전15:47에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하셨으니, 예수님의 육신의 인성이 우리 사람과 같이 흙으로 지은 육신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 곧 산 영 곧 영이 있다면 예수님의 인성 자체가 아담의 자손 곧 육신의 사람으로서 원죄가 있다는 논리가 된다. 마1:18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하셨으니, 예수님의 인성은 죄 곧 원죄가 없으신 육신이심을 말씀하셨다.

④ ‘그리스도의 신성이 육신에 충만히 거하셨다’

이 주장은 성경 말씀 그대로의 주장이다,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셨으니, 곧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주장이다. 또 마1:18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하셨으니, 곧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주장이다. 또 고전15:47에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하셨으니, 곧 흙에 속한 육신의 사람 곧 원죄를 입고 난 인성이 아니라 하늘에서 나셨다는 주장이다.

예수님의 인성은 원죄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신 인성이며 곧 하늘에서 나신 인성이며, 그 인성에 신성이 충만히 거하신다는 주장이다. 즉 신성과 인성의 양성이 일위라는 주장이다. 우리 사람은 인성에 신성이 거하는 동행이지만, 신인양성일위는 인성에 신성이 한 격위로 충만이다.  

신인양성일위 되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은, 마16:13-16에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셨으니, 성령으로 잉태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에 거하신 예수님에 대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증거했다.  

(결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시다. 말씀이신 신성은 그리스도시며 육신은 성령으로 잉태하셨다. 그리하여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신에 거하신다. 이것을 교리적으로는 신인양성일위로 표현한다. 육신은 우리 사람과 같은 육신이시되 죄 곧 원죄가 없는 육신으로 나시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셨다. 예수님의 이 육신의 인성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셨다. 이 외에 인간 설명을 덧붙이면 성경적에서 이탈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구조에 관해서 성경말씀대로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시는 인성' 곧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한 육신에 충만히 거하시는 신인양성일위의 교리 정립으로 마무리한다.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교리를 이 논증 한 편으로 해결 지을 수 없을 줄 안다. 다만 성경적 답을 찾아가는데 있어서와 비성경적 주장을 변증하는데 있어서 다소간 참조가 되기를 소망한다.

(성구)

●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성구

(마1:18-20)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7: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요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15:45~47)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엡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벧전3:18-19)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 사람의 인성에 관한 성구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5:3)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6:3-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전3:19~21)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요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행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15:45~47)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요일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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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 - (32번째 글) 김반석 201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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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백영희목사님이 정립한 대표적 교리'에 관하여 김반석 20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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