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5:17의 [장로직] 硏究 - 12/17 보충

2007.05.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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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석     번호 : 27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6/12/15 (금) PM 03:19:57  (수정 2006/12/22 (금) AM 02:50:12)    조회 : 32  

■ 딤전5:17의 '장로직' 硏究 - 12/17 보충


◎ 하단에 <첨부> 부분 전체 보충을 하였습니다.

<서론>

1. 딤전 5:17에 근거하여 장로직에는 치리장로와 강도장로가 있는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치리장로는 일반 장로이고, 말씀을 전하는 장로는 목사를 의미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2.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장로의 직분성이 무엇이지를 근본적으로 바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신약성경에서 말씀하는 장로직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면 장로직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겠습니다.

3. 그래서 딤전5:17에 근거하여서 장로직이 치리장로와 강도장로로 나누는 것은 한 성구만을 단편적으로 의존한 편협 된 깨달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본론>

1. 딤전5:17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하셨으니 장로직은 '다스리는' 직분임을 분명히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 할 자로 알 되' 하셨습니다.

2. 그러기에 '잘 다스리는 자'가 장로인 것을 분명히 전제하여 놓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장로들을) 더할 것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3. 스데반 집사도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를 하였습니다.

(행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4. 딤전5:17에 말씀한 장로에 대한 성격성을 두고서 그러면 집사에 대해서 말한다면

'잘 공궤하는 집사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집사들을) 더할 것이니라' 라고 바꾸어 말해도 성경에 이탈 된 깨달음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5. 벧전5:1에 사도 베드로가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라고 말한 것은 이어서 벧전5:2에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하였으므로 이는 '양무리를 치는 면'을 말한 것입니다. 사도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이 전무이지만 장로와 같이 양무리도 치는 직분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벧전5:1-2)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결론>

1. 사도직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 하는 직이며, 그리고 다스리는 직도 겸하고 있습니다.

(행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요이1:1)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장로직은 다스리는 직이며, 그리고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직도 겸하고 있습니다.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3. 집사직은 공궤하는 직이며, 그리고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직을 겸하고 있습니다.

(행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4. 그러기에 사도직과 장로직과 집사직은 다 양면성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고 그러면서도 또 각 직분마다 그 직의 주 된 직분이 있음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딤전 5:17에 근거하여 장로직에는 치리장로와 강도장로가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편협된 해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5. 딤전 5:17은 장로직에는 치리장로와 강도장로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장로직에 주 직분인 다스리는 치리장로 직분이 있고 또 겸해서 말씀을 전하는 직분도 있다는 것을 말씀한 성구입니다.

<첨부>

'잘 다스리는 것'이 장로의 직분입니다. 그러면 잘 다스리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 잘 다스리는 것은 장로가 먼저 주님께 잘 다스림을 받고 그러고 나서 교인들이 주님께 잘 다스림 받도록 하는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은 그리스도직의 왕직에 해당되는 직입니다. 왕은 하나님께 먼저 다스림을 받고 그 다스림 받은 것으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장로는 대부분이 다스리는 직이라 하여 다스리는 면에만 치중을 하지 먼저 하나님께 다스림 받는 이 면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사 직분으로 있을 때는 겸손하던 분이 장로 직분을 받으면 그만 달라집니다. 치리장로도 장로요 강도장로도 장로요 다 같이 안수 받고 장로 되었다 하여 목사와 대등한 직분으로 여깁니다.

목사는 장로보다 하나님께 더 잘 다스림을 받은 것이 목사입니다. 장로는 집사보다 더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았다고 받은 직분입니다. 그러기에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차이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은 그 차이로 받은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장로가 목사와 대등하려면 목사만큼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목사처럼 잘 다스림을 받으면 왜 목사와 대등하게 되어지느냐? 그것은 장로가 하나님께 더 잘 다스림을 받으면 곧 목사와 같이 모든 것을 내어놓고 목사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장로의 직분에서 하나님께 더 잘 다스림을 받으면 목사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목사와 대등하게 되게 됩니다. 장로가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목사 대 목사는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집사가 장로와 대등 하려면은 집사가 하나님께 더 잘 다스림을 받아서 장로의 직분을 받는 것입니다. 장로 역시 이와 같은 이치로 목사와 같은 대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의 그 직분에서는 목사의 직분과 대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세상의 직급과 같은 성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은 얼마나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느냐 하는 그 직분의 직급입니다.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아서 얼마나 자기에게 맡겨진 교인들을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도록 하느냐 하는 이 실력의 직급입니다.

집사직분에서 장로직분을 받았으면 이전보다도 하나님께 더 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이 문제가 크고 우선인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장로가 되었으니 목사와 대등하고 또 집사와 교인들 위에 권세를 부리는 직분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장로가 많습니다. 그러하기에 장로가 되어서 신앙성공을 하는 장로는 대단히 실력 있는 장로라 하겠습니다.

또한 장로는 그 자리에서 머물면 안 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더 잘 다스림을 받아서 목사가 되는 것이 장로의 자리에서 성공입니다. 장로의 자리에서 목사로까지 나아가지 못했으면 장로는 그 장로직분에서 머물고 만 것입니다.

목사는 자기의 것을 다 내어놓고 받은 직분이 목사직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아서 받은 직분이 목사직분입니다.

그러나 장로는 하나님께 내어놓기는 내어놓았는데 아직까지 자기를 다 내어놓지 못해서 받은 직분이 장로직분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직분과 장로직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자기를 다 내어놓았느냐 다 내어놓지 않았느냐 하는 그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았느냐 그 보다도 더 잘 다스림을 받았느냐 하는 차이가 장로와 목사간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차이가 목사와 장로의 차이입니다.

장로의 직분에는 치리장로와 교훈장로가 있다고 하는 깨달음은 성경적 미달입니다. 물론 장로도 교훈을 할 수 있습니다. 목사도 치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목사요 장로는 장로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장로직분을 겸할 수 있어도 장로는 목사직분을 겸할 수 없습니다. 사도가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벧전5:1)' 했으나 장로가 '나는 함께 사도 된 자요' 하는 성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에 매이지 말고 또 직분을 자랑하지 말고 얼마나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았고 또 얼마나 교인들을 하나님께 잘 다스림을 받도록 했느냐 여기에 중심과 초점을 가집시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목사로서 또 장로로서 그 직분만큼 잘 감당하지 못했는고로 사도 바울 같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1:15)'라 여겨서 교회에서 권세를 부리기는커녕 교회 앞에 늘 엎드려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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