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4 14:11
■ 불교의 화두 ː 기독교의 믿음
(서문)
불교의 화두는 ‘이것이 무언이고’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본문)
● 불교의 화두
화두에서 ‘화(話)’는 말이라는 뜻이고, ‘두(頭)’는 머리, 즉 앞서 간다는 뜻이다.
불교의 화두는 참선수행자(參禪修行者)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참구(參究:참선하여 진리를 찾음)하는데 최고의 참선 방법으로 삼는다.
불교의 화두는 한 말로 ‘이것이 무언인고’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무엇인고’를 두고 스스로 답을 얻든지 어떤 것에게서 답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화두 즉 ‘이것이 무엇인고’에 집중하면서 번뇌를 끊음으로써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화두는 번뇌를 피하는 인간의 철학이다.
● 기독교의 믿음
기독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은 받은 자가 그 구속을 힘입어 믿음으로 살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의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화목(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약2:14-26에서 말씀하는 ‘행함’ 즉 믿음의 행함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함’과 ‘율법의 행위(롬3:20)’는 다르다. ‘율법의 행위’는 곧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막10:19)’는 계명을 지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죄를 깨닫음(롬3:20)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하나님의 성령의 임하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는(요15:26)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보내사 ❶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가 되게) 것이다(눅4:18).
이것이 곧 ❶의이며(갈2:16), ❷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엡4:13) 성화이며, ❸영생과 생명이며(요일5:10-11), ❹평강이며(요20:19-23), ❺부활의 능력(롬8:10-11, 엡1:19-20)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믿음은 영생의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결문)
불교의 화두는 ‘이것이 무언이고’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불교의 화두는 번뇌를 피하는 인간의 철학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영생의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불교의 주체는 피조물 인간이다.
기독교의 주체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 하나님이시다.
- 2021. 12. 04∥김반석목사∥선지자문서선교회∥http://www.seonjij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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