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신조

2007.12.2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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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공회의 신조
선지자선교회
◎ 부제: 공회의 성경적 신조 중에 그 하나
◎ 부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우리
◎ 부제: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서문>

제목을 '공회의 신조' 라고 간결하게 정한 것은 '공회 신조'가 무엇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좀더 부가해서 붙이려는 제목은 '공회의 성경적 신조 중에 그 하나' 입니다.

그리고 공회의 성경적 신조 중에 그 하나가 되는 이 설교 말씀에 대한 본래의 제목을 붙인다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우리' 또는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라고 붙일 수 있겠습니다.  

우리 공회 교인들이 공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이 세계 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해야 맞는 말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도 알기는 어렴풋이 아는데 실상은 참 잘 모른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예외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공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 중에서 신조 부분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공회가 가진 성경대로의 여러 신조 중에서 그 중에 한 신조가 되겠습니다. 이래서 공회가 가진 성경적 신조가 무엇인지 그 맛보기를 하나 견본으로 보여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 공회의 신조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겠고, 또 공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에 대해서 그 정통성과 보수성을 말하지만 아- 좀 이탈이 되었구나! 하고 그 판별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이에 그 잣대와 거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잣대와 거울이 되는 공회의 신조를 백목사님 설교 말씀 중에서 하나 발췌하여 소개하므로, 과연 공회의 신조가 이런 것이 공회의 신조이로구나! 하고 자신이 새삼 알고 또 우리들로 하여금 새삼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래서 교리, 신조, 행정에서 '신조'라는 성격이 무엇이며 또 '공회의 신조'가 얼마나 성경적으로 깊고 세밀한지를 1982년11월 28일 주일오후 백영희목회설교록 88호 493페이지를 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첫째로 -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으므로 시비 곡직을 힐 필요가 없음

(고후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노소 강약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종말 시간을 다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세상살이가 끝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런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은 이렇게 저렇게 주장하고 말도 하고 또 행하기도 하고 자랑도 하고 시비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의 사실을 규정짓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우리 앞에 있는데 그런 시비곡직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 손해를 방어하고 유익을 위해서는 시비를 말할 수 있지마는 자기를 위해서는 시비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너무도 무한 정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심판에 어찌 되느냐 하는 그것이나 염려하며 떨 일이지, 뭐 지금 자기에게 해를 지운다고 또 자기를 유익 되게 할려고 하는 그런 모든 생각이나 수고는 다 헛것입니다. 억울하게 손해 갔으면 뒤에 천국에 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 바리새인과 세리

(눅18:9-1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심판대 앞에 갈 때에 위험한 그 위험성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것을 저 지난 주일에도 제가 증거 한 그런 기억이 납니다. 어떤 위험성이 있는고 하니 누가복음 18장 9절-14에 보면 바리새 교인과 세리가 하나님 앞에 같이 나타났습니다. 바리새 교인은 모든 계명을 지켜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또 십일조도 드리고 금식 할 때에 금식하고 아주 깨끗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대단히 좋은 신앙 생활입니다.

이랬는데 그 바리새 교인이 도리를 하나를 깨닫지 못해 가지고 그렇게 일생동안 깨끗하게 산 것이 도리어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진노거리가 되어서 버림을 받은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급선무로 지금 준비해야 될 일인 줄 압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시는 이 충성에 대해서는 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충분히 가르쳐서 오늘이라도 무슨 일이 나면 '순교자가 서부교회에 많이 나지 않느냐? 환란이 와도 참 주를 따르는 성도가 많이 있지 않나?' 내가 속는 줄 몰라도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 이런 모처럼 힘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리새 교인과 세리가 둘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에 그 때에 세리는 의롭다 칭찬을 받고 바리새 교인은 물리침을 당한 이 무서운 위험이 우리에게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이 나서 오늘 이 말씀을 증거 합니다.  

지난번에도 증거 한 말씀이 역연 그 말씀이었습니다. 바리새 교인이 계명을 지켜 산 것 잘못한 것 아닙니다. 아주 잘했습니다. 또 십일조를 드린 것 잘했습니다. 세리는 온갖 죄를 물 먹 듯 먹었으니까 잘못했습니다. 이랬는데 하나님의 심판 앞에 딱 섰을 때에 고장이 어디 붙었느냐? 바리새 교인이 자기가 자기 된 그 의로운 그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 것과 하나님의 은혜를 빼 놓으면 세리와 똑같은 죄인이라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선 줄을 알고 세리를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그것을 해석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도둑 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신앙 면에 모든 면이 구비하다 할지라도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별수 없이 천하에 제일 악한 죄인이나 꼭 같은 종류입니다. 전적 부패한 인간입니다. 이런데 그 밑천을 모르고 제가 제 된 것이 제 힘으로 된 줄 알고 우쭐해 교만해지고 하나님 앞에 이 은총을 입지 못해 죄 가운데 헤매고 있는 그 사람을 멸시한 그것을 고치지 못하고 심판 앞에 섰기 때문에 정반대로 뒤집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준비를 하려하면 빨리 됩니다. 뭐 충성이 힘들지 그런 것은 깨달으면 즉시 고칠 수 있는데 안 고치면 일생 신앙 힘쓴 생활이 다 헛일이 되고 맙니다.

이것 중요합니다. 심판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바리새 교인과 같은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가 하는 그것을 깨닫고 빨리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다 의인들에게 있는 큰 암 병입니다. 또 절제가들, 신앙의 용사들에게 있는 큰 신앙의 병들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오늘 고쳐서 주님이 도와 주시는 은혜를 빼면 천하에 제일 악한 죄인이나 내나 꼭 같은 전적 부패해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 산 것이 하나도 없는 자 털끝만큼도 없는 자, 이 근본 전적 부패라는 이 자기를 잊어버린 이것을 되찾아서 '이런 죄인인데 주님께서 이렇게 구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래서 면류관을 주께 드립니다. '이것은 순전히 주의 은혜입니다!' 이런데 제일 자기가 아는 대로 자기가 악한 죄인이고, '저 사람이나 내나 꼭 같은데 나에게 베푸신 긍휼을 베푸시면 저 사람도 나와 같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하는 이것을 가지고 바리새 교인이 세리와 함께 갔더라면 바리새 교인은 높이 올라갔을 것입니다. 이것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셋째로 -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

(마18:21-34)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태복음 18장 21절-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했는데 주인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잡아다가 '네가 빚 갚아라 없거든 너희 가족을 다 팔고 해서 갚아라.' 이러니까 빌면서 '앞으로 갚겠사오니 용서해 달라'고 그렇게 간청하고 애걸하기 때문에 주인이 그 빚을 탕감해서 보냈습니다.

뒤에 소식이 들어오기를 그 사람이 돌아가 가지고, 제게 빚진 백 데나리온 그것은 백 날 품삯입니다. 백 날 품삯 석 달 열흘 품삯이오. 그 빚이 졌고, 이 달란트는 그 시대의 저울 제일 큰 저울의 이름인데 금을 달면 백 오십 톤 이상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 데나리온으로 말하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몇 천만 배 몇 억만 배가되는지 모릅니다.

이런 큰 빚을 탕감해 줬는데 제가 조그만한 빚진 자를 잡아 가지고 목을 쥐고 '갚아내라 안 갚으면 너희 가족을 다 감옥에 가두겠다'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주인이 그 소식을 듣고 '이놈 나는 네게 큰 것을 탕감해 주었는데 너는 네 동무에게 지극히 작은 것을 탕감해 주지 아니하고 이렇게 잔인하게 하니 내게 갚아라 내게 다 갚기 전에는 네가 감옥에서 못 나온다.' 감옥에 집어 넣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갖 면에 큰 대속을 입었는데 우리가 사람을 상대할 때에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잘못하는 것을 내가 주님과의 잘못한 이것과 비중을 생각하면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데 형제들과 자기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연상하지 아니하고 그 대속을 잊어버리고 형제와 자기에게 일대 일로 취급해서 이렇게 대속을 잊어버리고 정당법으로만 이행하는 그 사람이 큰 위험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지금 위험성에 걸려 있는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듣고 날마다 배우고 닦아서 수양하니까 그거야 다른 사람보다 인간 면이나 물질 면이나 사리 면이나 모든 면에 탁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어떤 데에서, 구속해 가지고 큰 용서를, 큰 대속을 가지고 우리를 구속하시고 온갖 은혜를 부어 가지고 했는데 자기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주님이 나한테 이렇게 해서 큰사랑의 빚과 용서의 빚과 관용의 빚과 또 나를 대신해 주시는 이 큰 빚을 진 나인데, 이것을 잊어버리고 제가 사람에게 대해서 일 대 일의 정당성으로 그렇게 취급하면 죽는 날까지 이렇게 취급을 하고 살수는 있지마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갈 때에. 나는 네게 이렇게 이런 대속을 입혔는데 너는 누구누구에게 대해서 네가 넉넉히 희생하면 그 사람을 구출할 수 있고, 네가 용서하면 용서할 수 있고 이해하면 이해할 수가 있고, 네가 노력하면 그 모든 죄악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거기에서 구출할 수 있는데 나한테 큰 대속의 은총을 입은 네가 네 이웃에게 대해서 한 것은 내가 네게 대해서 한 것의 정반대다. 이런고로 네가 이웃에게 대해서 이렇게 했으니 나도 네게 대해서 이렇게 하겠다.' 이 법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송사 할는지 모릅니다. 대단히 위험하고 무서운 법입니다.

●넷째로 -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

(약2:1-13)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장1절-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온 율법을 행하다가 한 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했으면 모든 법을 다 범한 자라. 이것이 성경입니다. 모든 법을 다 지켜 행하다가 한 법을 네가 행하지 아니했으면, '일만 조문의 구천구백구십아흔 조문은 지켰고 한 조문 지키지 못한 이것이야' 했는데 그 한 조문 지키지 아니한 그것을 딱 걸어 가지고 '너는 하나님의 법을 범한 자라' 해서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법을 범한 자로 정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행한 것이 구천구백구십구 조문을 지킨 것이 잘 했는데 무엇 때문에 정죄가 되느냐? 정죄 된 것은 그것입니다. 네가 이렇게 네 구속을 위해서, 네 구원을 위해서 철두철미하게 법의 조문을 지켰지마는 네가 너만 알았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가지지 않았다 '긍휼 없는 자는 긍휼 없이 심판을 받을 것이요 긍휼이 모든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이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 마구 깨끗하게 씻고 닦고 얼마든지 했지마는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그 멸망이 자기 멸망, 그 구원이 자기구원, 그 수치가 자기 수치, 그 이의 근심이 자기 근심으로 이렇게 되는 이 긍휼 이것 하나가 없어서 그렇게 만만의 준비했지마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법을 범한 자이니까 나머지 암만 행해 봤자 무효입니다.

그런고로 거기에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절에 '너는 영광의 주'라 하셨는데 '영광의 주'라 말은 모든 인간과 모든 만물이 참 감탄하는 이 영광의 주를 네가 믿는 믿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너는 범죄자가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외모가 어떻게 나빠도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되고, 어떻게 악해도 소망을 가져야 되고, 어떻게 패역 해도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주홍 같고 진홍 같은 붉은 죄인이라도 예수님의 공로를 붙이면 의인도 되고, 성자도 되고, 성녀가 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은혜로 네가 된 자이기 때문에, 주님이 네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안타까워 행하신 그 은총을 네가 받았기 때문에 네가 그런 심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행하면 그것으로써 심판은 다 통과하고, 한 가지 행했으면 한 가지, 두 가지 행했으면 두 가지, 열 가지 행했으면 열 가지 그대로 상급을 주지마는 네 심정이 그것이 없으면 다 행하고 하나만 행하지 아니해도 그것으로써 정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 행했다 할지라도 내가 네 것을 탕감해 주는 내 대속은 내가 도로 찾는다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참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하신 다른 사람의 수치를 정말 자기 수치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다른 사람의 낭파를 자기 낭파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바꾸어 자기가 다른 사람의 그 형편을 가진 이 긍휼, 이웃을 제 몸같이 하면 이 한 율법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이것 없으면 천하에 의인, 성자, 성녀라도 그 사람은 참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가서 큰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이런고로 법을 다 지켜도 한 법만 범했으면 모든 법을 범한 자로 정죄 받습니다. 바리새 교인이 큰 대속을 입었지마는 제가 사람에게 대해서 무자비하게 그렇게 정당성 보응을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도 네게 대해서 정당성으로 해야 될 것 아니냐.' 이것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결론>

우리 서부교인은 행함에 대해서 힘을 쓰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위험한 것이 바리새 교인의 이 큰 낭패된 이 점, 빚을 탕감 받은 것이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것을 탕감해 주지 아니한, 네가 남의 과실을 용서치 아니하면 천부께서도 네 과실을 용서치 아니한다 딱 명문 되어 있습니다.

용서라 말은 해방이라 말입니다. 주님이 나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이렇게 했으니까 자기도 다른 사람을 해방시켜 주려 해야 합니다. 사망의 원인은 죄인데 그 사망과 그 원인이 되는 죄 거기에서 자기가 자기를 구출하려고 외치는 것처럼, 벗어 날려고 하는 것처럼 이것을 가진 이것 하나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이것 없으면 다 절단납니다.

우리 서부교회 위험성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우리가 충성을 한다고는 하는데 ●인간 대 인간 이것으로써 바리새 교인도 실패했고, ●빚 탕감 뒤에도 실패를 했고, ●이 긍휼 없는 것으로써 실패를 했습니다.

사람은 이 사상과 정신이 없는 그 사람이야 의로우면 저 의롭고, 깨끗하면 저 깨끗하고, 거룩하면 저 거룩하고, 좋으면 저 좋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는 이 마음이 있고, 이 생각이 있고, 이 정신이 있고, 이 성품이 있고. 이 행동이 있는 그 밑에 살고 싶습니다. 거기에 속해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없는 것은 천하를 비추는 빛이라 해도 거기에는 가기 싫습니다.

여러분들 이것이 긍휼입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이것이 긍휼이요 긍휼 없는 자는 하나님 앞에나 하늘나라에서는 용납 못합니다. 이 긍휼이 모든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했습니다. 넘치고 남는다는 말입니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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