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種子

2007.05.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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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종자(種子)
선지자선교회
이름 : 중선     번호 : 17
게시일 : 2002/02/21 (목) AM 10:06:59  (수정 2002/02/22 (금) PM 09:51:19)    조회 : 35  

■ 선교의 종자(種子)  


[1889년 10월에는 호주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 데이비스가 입국하였다. 호주 장로회는 당시 교세가 3만 5천명 밖에 안 되는 작은 교파였지만 선교 열은 매우 왕성하였다.

1885년과 1887년에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한 바 있는 중국 주재  영국국교회선교사인 월프 부주교가 한국 선교의 꿈이 영국국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호주에 있는 친우들에게 한국을 위하여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호소문을 보냈다.

이것을 받은 매카트니 목사가 빅토리아 선교신문에 내용을 발표하여, 이 뜨거운 호소의 글을 읽은 데이비스 목사가 헌신의 감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당시 호주 장로교회에서는 한국선교에 대한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었다.
청년들의 모임인 성경연구 연합 친우회에서 선교사를 한국에 보내야 한다는 기운이 조성되었으며,
데이비스 목사의 본 교회인 멜보른 투락 교회와 협력하여 선교 비용을 교회와 협력하여 선교비용을 부담하기로 하고 초대 선교사로 레이비스 목사를 선정하여 한국에 파송 하게 되었다.

레이비스 목사는 먼저 한국에 도래하여 선교사업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 북 장로회 선교사들과 협의하여 부산을 중심 하여 남부지역에서 선교하기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당시 부산에 머물고 있었던 게일 선교사는 레이비스 목사로부터 급히 오라는 전갈을 받고 달려갔다.
긴 여행을 보행으로 하여 피로에 지친 나머지 급성 폐렴에 천연두까지 겹쳐 소생할 가망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1890년 4월 15일 레이비스 목사는 한국 선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아야했다.

레이비스 선교사의 별세의 보도가 호주에 전달되자 전국의 교회는 깊은 애도 속에 잠겼다. 비록 선교의 결실을 맺지 못하였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호주의 본국 교회에서는 한국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뒤를 이어 선교사를 파송 해야 한다는 선교 열이 고조되었다.]




위의 글은 한국 초기 교회사에 있는 내용을 발췌하여 보았는데  
호주 장로회의 교세는 약했지만 선교 사명을 합하여 열심을 가질 때에 한국 땅에 많은 신앙의 영향을 끼쳤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해 주었다.
참 바른 정통 보수신앙의 종자를 물려줌으로서 일제 치하의 신앙 박해에서도 경남 지역의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게 되었다.

한국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1890년에 "선교사 연합 공의회"를 만들어 "선교구역 체약 협정"을 맺었는데, 1893년 1월에 열린 첫 회의에서 미국 남 장로회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호남지방에서 선교하기로 약정되었고, 미국 북 장로회는 이미 선교를 개시한 모든 지역에서의 선교 기득권을 인정받았다.
부산 지역에서는 북 장로회와 호주 장로회가 함께 선교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는 두 선교회가 함께  상주하기로 하고, 경상도 남부는 호주 장로회가 낙동강의 이북은 북 장로회의 선교 구역으로 합의가 성립되었다.

이 와 같이 지금 한국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이 100년이 넘지만 1893년에 선교 구역이 정하여 선교한 그대로 한국의 교파가 유지되고 있고, 그 지역에 그대로의 신앙 노선이 유래 된 것을 볼 수 있다.
밭에 한번 심은 종자가 100년이 지났지만 그 종자 그대로 변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러므로 백영희 목사님도 목회의 초기에는 호주 장로회 선교사가 운영하는 성경학원에서 공부함으로서 호주 장로회의 신앙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중국에도 많은 교파들이 선교를 하나, 중국선교공회가 미약하지만 백영희 목사님이 세워 주신 총공회의 순생, 순교의 교리와 신조를 종자로 하여 중국 땅에 전하여 심겨 질 때에 먼 장래에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좋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중국에는 현재 교파가 없고, 목회자들의 신앙 노선과 사상이 어느 교파의 신앙에 굳게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성경적이고, 보다 영감적으로 가르치면 그대로 배우고 따르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 우리 총공회의 교훈이 들어가 심기기만 하면 100년이 지나도 타 교파의 신앙과 범벅이 되지 않고, 총공회의 신앙 노선에 서서 개혁주의 복음주의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 사역자양성원에서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를 전하면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것 같이 여기 저기서 소문을 듣고 배우기를 갈망하고 있다.

북한 교회는 목숨을 내어놓은 자가 예수를 믿고,
중국 교회는 세상 소망을 내어놓은 자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참 하늘나라만 소망하는 중국에는
참 하늘나라만 소망하는 총공회의 교훈이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이 이렇게 큰 사역인 것을 깨달고,
호주 장로회 선교부가 우리들에게 전해 줌으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성장된 것 같이,
지금 우리들도 중국에 이 소망을 가지고 전하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가 교회를 위하여 있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21세기 세계 역사 중에서 중국에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 부족하고 불충한 우리들을 통하여 이 사역의 종으로 세우시고 일하심에 만만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세세 영원 무궁토록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쁜 소식을 들은 성도, 교역자, 교회가 직접 선교 사역을 하거나 아니면 기도와 연보의 후원으로 이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며 또한 영원무궁한 하늘나라에서 주님이 칭찬하시고, 큰 상급을 주실 것을 생각하면 피곤하지 않고 기쁨이 충만해 진다.

영국국교회에서 선교를 하지 않을 때에 호주 장로회를 통하여 선교하는 것 같이,
우리 주님이 우리 총공회에 선교 사역의 축복 받는 기회를 주실 때에 놓치지 않아야 될 것이다.
우리 총공회에 소속한 교회와 성도들이 동역하지 않으면, 주님이 다른 곳을 통하여 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교는 선교사만 파송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따르는 재정적 지원과 그 보다 기도로서 이루어져야 되며, 이것이 바로 연보임으로,
선교한 나라가
선교한 교회가
선교한 개인이
풍성한 복을 받은 사실은 역사가 증거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00여년 전 한국 땅에 이들 선교사가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선교 후원 속에서도 복음을 전함으로서 오늘 우리가 믿고 복된 자가 된 것을 알고,
우리들이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 때가 되었으니,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교인 것이다.
주님이 우리 손에 맡겨 주신 중국선교인 것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