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자세

2007.05.14 11:49

반석 조회 수: 추천:

설교자의 자세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19
게시일 : 2002/02/25 (월) AM 06:53:07  (수정 2002/02/25 (월) PM 05:50:41)    조회 : 77  

■ 설교자의 자세


설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에 대한 당신의 계획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그 모든 평가와 심판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그 모든 인과보응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그 계획,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설교입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근거는 하나님 당신의 지식으로 선포 해 놓으신 성경 말씀을 가지고 가르칩니다.

설교 할 때에
신학은 시찰하는 것으로 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배우고 복종해야합니다.
신학으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고,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신학으로 하면 안되고,
설교는 신학으로 하지말고,
설교는 피와 성령과 진리의 권능으로만 해야 합니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설교입니다.

좋은 설교자는
성도들을 예수님의 피와 영감과 진리와 하나되게 하는 중매장이가 제일 좋은 설교자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보다 더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눈가림이 아니고하나님이 보시기에 죽도록 충성해야 하나님이 같이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는,

설교자 자신이
참 알고,
참 믿고,
참 소망하고,
참 영감을 가지고,
참 실상을 전하기 위해 그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전하는 자가 제일 먼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 하면 남에게 전해야 할 것을 자기가 먼저 가지는 것입니다.

설교 할 때,
설교자가 실행하면서 설교하면 진실한 설교자가 됩니다.
인기 중심이나 정리, 비판, 멸하기 위한 설교를 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증거 할 때에 살필 것은
하나님의 단일 심판에 인정을 받을 수 있나? 없나?
지극히 큰 능력이 나와 같이 하나? 안 하나?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나? 없나?  
이것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 할 때에
성도들의 기분에 시원한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듣기 좋은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문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 하느냐? 안 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을 증거 할 대상은
성도의 지성(알려고 하는 성품)
성도의 이성(옳고, 옳지 않는 것을 따지는 성품)
성도의 양심(성경 지식대로 판단하는 신앙 양심)
성도의 의지성(비판과 평가대로 단행하는 성품)에 증거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감정, 기분, 사람의 존비귀천을 보고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교를 하는 것은
성도들을 성경에게로 안내하는 안내자요, 성경의 중매장이입니다.

설교하는 것은
성경을 소개하는 것이 설교요,
또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소개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신앙 생활에 대한 간증이라야 합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나의 할 일을 찾고,
파묻혔던 양심을 대표자로 세우고,
자체가 변화 받고,
성령의 감화를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자기 속에 영생하는 생명이 들어 와서 강건해 짐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설교자가 말씀을 대할 때에
지식으로 목적을 삼는 자는 교만한 자가 되고,
믿음을 목적으로 삼는 자는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양떼들이 찾는 것은
광문다학을 한 설교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양떼들이 찾는 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의 기름 부음이 가르치는 그 기름부음의 음성을 들을 라고 찾는 것이 양떼들입니다.

양떼를 가르침에 기억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지 않으면 올 자가 없고,
오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고 가르침이 없으면 회개 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때에
잘 인도하고,
가르칠 때에
잘 가르쳐 환난 때에 다 이기게 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과 교리와 신조를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힘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설교자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마음을 동이고 깨끗한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양떼를 붙여 주실 수 있는 설교자가 되어야 하고,
양떼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설교자가 되도록 힘 써야 합니다.


설교가 안 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대우하지 않는 것이요,
그 외에 또 하나 있다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고, 하나님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설교 속에는 주님의 사활 대속을 전하여야 하는데, 이 설교를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다,
그런 가증스런 설교는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꾸기 전에는 절대 설교가 안 됩니다.
우리가 잘 못하면 속기 쉽습니다,
사람을 바꾸기 전에는 설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양떼들이 설교를 듣는 것 같으나 속에 알맹이, 생명의 구원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설교자와 성도의 관계는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이라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설교자의 교인은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환난을 승리한 설교자의 교인은 반드시 환난을 승리하고,
장사꾼 영리적의 설교자의 교인은 반드시 영리주의 자가되고,
사기꾼 설교자의 교인은 사기꾼이 되고,
세상 학문 설교자의 교인은 세상 학문의 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피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설교를 피의 능력으로 해야하지,
설교를
세상 지식으로 하고,
철학으로 하고,
신학만으로 설교하면 안됩니다.

피의 능력으로 한다는 말은,

설교자가 먼저
죄 없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자로 살아야 하고,
부활의 영생을 참 소망하는 자가 되어서 설교를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교회를 피로 세운다" 라는 말은
주님의 종은 목회를 바로 하기 위하여 소유와 몸과 마음을 다 바친 후에 더 바칠 것이 없으니 목숨까지 바친다는 말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다 바쳐야 목회자가 될 수 있고.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다 바쳐야 바른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설교자의 기본 자세이며,
바른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