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교사님들!

2011.03.25 00:24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위대한 선교사님들!
선지자선교회
세계만방에 선교사들이 주와 복음을 위해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그러하고 과거도 그러했고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교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누굴까? 어떤 사역을 하신 분이 가장 위대한 선교사일까? 선교사 이름을 가진 종이지만 이번처럼 깊이 느끼고 생각해 본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위대한 선교사님들!
참으로 존경스런 선교사님들!

그 선교사님들은 선교지 나라나 부족에게 성경을 번역한 선교사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렇게 새삼 느껴졌느냐? 이번에 선교지 나라나 부족에게 그 나라와 그 부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할 때 있은 성경번역 사례를 보고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가 선교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려면 먼저 복음을 전해야하고 또 복음을 전해서 신앙인으로 길러야 되고 또 선교사 자신이 선교지 언어에 능통해야 하고 또 번역해 줄 선교지 조역자들이 있어야 하고 또 그 번역 사역이 하루 이틀이나 한 달 두 달이나 걸리는 사역이 아니라 최소 몇 년 몇 십 년을 지속적 진행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선교사! 이 정도의 사역을 해야 선교사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와 동시에 선교사라는 직분의 이름을 가졌지만 그 이름은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선교지 나라가 그래도 국가급이면 언어에 체계가 있어서 번역하기가 다소 수월할 것이지만 부족급이면 전적 선교지 조역자 몇몇에게 의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 대한 실감을 공유하기 위해서 성경번역의 사례를 하나 소개합니다. 그러면 성경번역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의 그 사역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백번 천 번 실감하고 그 받은 혜택에 깊은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사례 1,

본토족 중에 선교사는 아는 외국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족속의 말을 숙달(熟達)하기란 그렇게 곤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말도 서로 아는 것이 없으면 그 말을 배우기를 시작하기란 무척 힘이 든다. 에프레인 알폰스선교사가 처음으로 파나마에 밸리엔테 홍인종 중에 가 살며 일할 때에 그는 그 족속의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몰랐고 그 홍인종들도 이 선교사의 말은 한마디도 몰랐다.

그는 처음에 뒤섞인 엉터리 서반아어나 영어를 아는 사람이 있나 찾아보았다. 이런 엉터리 말은 서반아 선원(船員) 혹 영국 선원이 그 족속의 땅에 와서 본토인들과 화려한 옷이나 훌륭한 보석을 가지고 그들의 산물 코코넛(야자열매)이나 빠나나와 바꿀 때에 본토인들이 배우는 말이다. 그러나 그 선교사를 도와 그 방언을 어떻게 사용할찌 가르쳐 줄 사람 중에는 이런 엉터리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온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이 새 교사(알폰스씨는 밸리엔테족을 위하여 선교학교를 시작하려고 온 것이다.)를 할 수 있는대로 도와주겠다는 표정을 하고온 한 아이가 있는데 그는 우물에서 냉수 한 바가지를 떠 가지고 왔다. 그 즉시 알폰스씨는 몸짓, 팔짓과 엉터리 서반아말로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였다. 그 아이는 『티코냐카』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로는 알폰스씨는 그 아이가 필요할 때에는 『티코냐카』하고 불렀다. 그러나 얼마 아니되어 사람들이 그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웃고 또 자기를 『티코냐카』하고 부른다. 얼마 후에야 『티코냐카』의 참 뜻이 무엇인지 그는 발견하였다.

이 말은 한 어구(語句)인데 뜻은 『나는 이름이 없읍니다』하는 것이다. 밸리엔테족들은 흔히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이러이러한 남자 혹 부인의 아이라고 말한다. 그 총명한 아이는 알폰스씨의 몸짓으로 묻는 것을 옳게 알아듣고 할수 있는대로 알아듣기 쉽게 대답한 것이다. 서로 아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게 되면 그 족속의 말의 뜻과 사용법을 알아 내는데 실수도 하고 성공도 하는 방법을 써서 그 말의 이상하고 복잡한 구조(構造)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사례 2,

"그런데 당신의 동족 밤바라 백성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셨다'라는 말을 당신은 어떻게 번역하려오?" 라고 선교사는 성경의 열쇠 말이 되는 『구속』이라는 말을 서부 아프리카 밤바라 방언으로는 어떻게 나타낼는지 그것을 알려고 자기 번역을 돕고있는 본토인에게 진실되이 물어 보았다.

"그거요. 그거는 우리가 이렇게 말하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를 취해 내신다'고요" 하고 이상한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가 있겠소?"

"오, 그야 쉬운 일이지요. 아마 목사님은 아라비아 사람들이 우리 지방 깊이 있는 곳에 우리 민족을 노예로 삼으려고 습격하던 이야기가 우리 선조의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잊으셨을는지 모릅니다." 하고 목을 쇠목거리에 끼우고 각 사람은 쇠사슬로 연결된채 남녀 포로가 채찍에 맞으면서 행진하던 광경을 이 밤바라 사람은 이야기하였다.

이 운명의 노예들이 동네 동네 지나갈 때에 어떤 때는 그 동네 사는 추장(酋長)이나 왕(王)이 자기 친구중 한 사람이 노예로 붙들려 가는것을 보고 그를 구속해 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추장이나 왕이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금이나 은이나 놋이나 상아(象牙)를 주면 그 친구를 구해낼 수가 있었다. 자기 친구를 구속하기 위하여 그 추장이나 왕은 문자 그대로 『그 친구의 머리를 쇠목거리에서 취해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는 밤바라 전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사랑이 나타난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에 저녁불 둘레에 앉은 동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죄의 사슬에 얽매이고 사탄의 채찍에 울고 있는 우리를 보시고 인류가 다시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죽게까지 하셨다고 설명하여 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셨다. 밤바라 말로 하면 『그는 우리 머리를 취해 내셨다.』그리고 전도인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뿐 아니라 그렇게 구속된 노예는 자기를 구속해 준 사람을 평생토록 섬겨야 하겠다는 의무를 느낍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원한 노예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머리를 취해 낸다』고 하는 이 구속의 표현은 쓰디쓴 노예 경험에서 생겨나온 것이나 사람을 자유케 하실수 있는 오직 한 분 하나님께 대한 진리를 알 수 있게 하는 한 방법이 되었다.


성경 번역사에 있어서 이와 같은 사례가 어디 한 두건이겠습니까? 얼마나 그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태산 같은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님들입니다.

성경번역의 사명을 받은 선교사님들 참으로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참으로 존경받을 선교사입니다.

주님!
영광과 찬송을 세세토록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