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와 목회자 양성

2007.05.14 13:51

반석 조회 수: 추천:

신학교와 목회자 양성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105
게시일 : 2004/11/02 (화) PM 01:11:54  (수정 2004/12/26 (일) AM 00:16:12)    조회 : 61  

■ 신학교와 목회자 양성


1. 개교회 성경반

이곳 중국은 지역마다 중심이 되고 좀 큰 교회다 싶으면 교회 내에 성경 공부반을 만들어서 성경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의 교회도 교회마다 성경공부를 시키고 있는 줄 압니다만 이곳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시키는 목적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한국교회는 성경공부를 시키는 목적이 일반적으로 평신도 양육이 목적이지만 이곳 교회에서는 사역자 양육이 목표입니다. 하기야 한국에는 신학교가 많고 이곳은 신학교가 아주 적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또 하나 차이가 나는 것은 대부분 한국의 신학교는 신학의 학문을 가르치는 중심이고 이곳 교회는 성경을 가르치는 중심으로 길러서 신앙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사명감이 불타고 있습니다.

2. 신학교

한국의 목회자와 목회를 소망하는 청년들은 신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을 해야만 교역자가 되는 길인 줄로 고착화되어 있는데 이것은 편벽 된 생각이라 여겨집니다. 또한 신학교에 맡겨서 목회자를 양육하겠다 하는 것도 목회 후보생을 둔 담임 목회자로서 안이한 생각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목회자 양성이 신학교에 의존함으로 결국은 오늘의 신학교가 세상 제도화로 치우쳐서 점점 속화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처럼 믿음의 선조의 신앙을 계대 받아 목회 하는 신령면은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목회자 양성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목회 후보생이 있는 교회는 담임 목회자가 믿음으로 충성하는 것을 보여주고 또 교리와 신조를 가르치면 그것이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방편이라 여겨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식은 부모가 제일 잘 기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자식도 담임 목회자가 주님 안의 사랑으로 제일 잘 기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학교가 목회자를 양성하는 중심기관이라고 하나 그 실상의 내막을 보면 전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실컨 개교회에서 믿음을 길러서 신학교에 보내 놓으면 신학이라는 가마솥에 넣고 삶아 버려서 목회자 양성에 제일 중요한 신앙의 힘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마는 것이 오늘 신학교의 현 주소입니다. 그래서 마치 딸을 애지중지 길러서 난봉꾼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처음 입학 할 때는 목사가 되고 이 학년 때는 전도사가 되고 졸업할 즈음이면 평신도가 된다는 말이 결코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그 실상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이 말은 선배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도 이 말이 그대로 사실임을 모두다 긍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묵인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 진리를 말하면 퀘퀘 묵은 것으로 생각하고 성경에 없는 이상한 학설을 말하면 귀를 쫑것 거리고 배울 것이 있나하고 관심을 가지고 달라 듭니다. 그러나 그것에 전력을 기우려봐야 아까운 시간과 힘을 헛된 것에 소모하고 마는 결과를 맺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 후보생을 신학교에 보낼 때에는 개교회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실력이 부족 할 때에 부득이 보내는 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양성시킬 실력 있는 교회는 구태여 목회 후보생을 신학교에 보낼 필요가 있겠나 하는 것입니다. 마치 청자를 잘 굽는 도공이 그 자식에게 기술을 전수하면 일류 도공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기에 목회자 양성에 일차 책임은 개교회 담임 목회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신학교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개교회에서 담임 목회자가 목회자를 양육하다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시키기 위해 신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에 부응하는 신학교로서 그 신학교는 첫째로 신앙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신학교의 교수는 성경대로 신앙하는 교수를 우선 확보해야 하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신학교는 대부분이 신앙과는 전혀 상관없는 학설만 붙들고 있으니 참으로 악령의 기이한 궤술에 파묻힌 미혹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는 눈이 열릴 때에 통탄하지 않을 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신학교를 전적 의지하지 맙시다. 신학교를 전적 믿지 맙시다. 또한 목회는 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신 힘 곧 신앙으로 목회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개교회는 목회자 양성기관

믿음으로 충성하는 것은 개교회 담임 목회자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습니다. 또 성경대로의 교리와 신조는 늘 예배시간에 가르치니 그것이 곧바로 목회자 양성에 필요한 성경공부입니다.

그래서 개교회에서 책임 있게 목회자를 양육하여 개척교회를 세웁시다. 초대교회는 오늘과 같은 신학교가 없었습니다. 오늘과 같은 신학과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때가 참 교회였습니다.

오늘 신학교의 교회사 교수는 거의 교회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교회사에 능통하다고 학위를 받았으면 학위를 받은 만큼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진정 그 실력을 발휘하는 교회사 박사가 참 귀합니다.

교회사 박사로서 신학교 교수라면 먼저 신학교에서부터 교과과정을 초대교회처럼 성경 진리만 가르쳐야 한다고 외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사 박사로서 직분을 감당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사 박사는 신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으며 또 담임하는 교회에서는 어떻게 목양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사 교수가 과거 시대별 교회를 단순히 소개만 하는 역활이라면 아마도 머리 좋은 세상 역사학자들이 교회사는 훨씬 더 잘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사 교수는 시대별 교회 중에 가장 성경대로의 교회가 어느 교회인지 연구하여 지금 속화된 오늘의 교회가 속화되지 않은 교회로 성경대로 되돌아서게 하는 것이 개혁주의를 외치는 교회사 박사다운 박사일 것입니다.

오늘에는 교회사 중에서 초대교회가 가장 성경대로의 교회라는 것은 교회사 박사가 아닌 평신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 교회가 가장 바른 교회인가 하는 것은 이미 정의가 내려졌으니 이 면에 대한 연구는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이제는 초대교회대로 교회를 세우는 자를 교회사 박사라고 학위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의 신학교가 비정상적임을 돌아볼 때에 꼭 신학교가 아니더라도 초대교회와 같이 성경대로 목회하고 성경대로 진리를 가르치는 분에게 목회 후보생을 맡긴다면 목회자다운 좋은 목회자가 양성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외람 된 글을 쓰는 요지는 목회자 양성기관을 신학교라야만 된다고 생각하여 목회자 양성을 신학교에 완전히 맡기지 말고 개교회가 일차 목회자 양성기관이라는 의식전환이 필요한 때라 여겨져서 의견을 드리는 것입니다.

신학교라는 것이 좀더 적극적으로 실력 있는 목회자를 양성시킬 목적으로 세웠으면 이에 부응하는 참 목회자 양성기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공소에 좋은 재목(材木)이 서투른 목수를 만나면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다가 결국 땔감이 되는 것처럼 신학교에도 좋은 목회 후보생들이 성경 진리는 뒷전이고 신학을 앞세우는 교수를 만나 땔감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매우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목회자를 양성시켜야 합니다. 주님의 종을 길러내어야 합니다. 학설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신앙하는 믿음을 가르치는 것이 참 목회자 양성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 양성이 꼭 출석을 부르고 회비를 내고 리포트를 쓰고 논문을 내어 학위를 받아야 목사가 되는 순서는 세상 제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본래는 목회자가 목회자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라는 이름은 교회를 세워서 교회를 양육하는 자라는 말이기에 목회에는 목회자 양성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4. 천주교의 타락

그러면 오늘과 같은 신학교의 목회자 양성과정은 속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격이 되어서 주님의 재림의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과거 천주교에서 개혁할 때처럼 이 다음에 오늘의 속회된 교회가 개혁이 되면 천주교를 기독교가 아니라고 정죄 하는 것처럼 이 다음의 개혁교회들이 오늘 이 시대의 교회를 기독교가 아니었다고 정죄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단의 신학교가 성경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신학 학문을 가르치면 굳이 신학교에 보낼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좋은 신앙을 가진 청년들을 버리게 하지 맙시다. 그래서 이 시대에 전체 개혁은 못해도 자기가 앉은자리는 개혁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 목회자입니다. 성경대로 하고 성경대로 전한다고 해서 주는 이름이 목회자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역사를 바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중세 천주교 시대에 신부들이 하나같이 면죄부에 팔린 것을 보면 어떻게 해서 잘못된 길을 하나같이 따라 갈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늘의 교회도 그 당시 보다 더 속화되면 속회되었지 덜하지 않습니다. 모양이 다르고 색깔만 다를 뿐 교회성이 없는 것은 동일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아니 자기가 담임한 교회에서라도 성경대로 개혁하지 못하면 중세시대 타락한 천주교의 신부와 꼭 같이 비판 정죄 받는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5. 목회자 양성은 개교회 담임 목회자가 전담

현재 좋은 신학교가 있다면 목회 후보생을 안심하고 맡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목회 후보생을 전적 신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일차 목회자 양성은 개교회 담임 목회자가 책임을 지고 가르치고 부족한 부분만 보완하기 위해서 신학교에 보내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 양성을 위해서 신학교에 보냈는데 신학은 배웠다고 하나 오히려 신앙이 떨어지면 신앙을 신학과 바꿔 먹은 것이 되는 셈이니 금 덩어리를 엿가락과 바꿔먹은 것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수지타산을 하지 않고 신학 배웠다고 좋아라하고 있으니 다들 제 정신이 아니라 해도 별 할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보내서 신앙이 자라 가는 것이 보이면 믿고 맡길 것이나 신앙이 떨어지는 것이 보이면 지체 없이 신앙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고 그 문제가 신학 교수이면 교수를 배척해야 할 것이고 신학교가 문제이면 학교를 배척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교가 성경주의로 바로 서 있지 않는다면 개교회에서 목회자를 양성시킨다는 각오의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신학 학위 없다고 목사 안수를 못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예전에 고신에서도 보면 원어를 배우는 본과생 보다 원어를 배우지 않는 별과생들이 목회를 더 힘있게 잘했다는 통계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던 중에 이곳 중국 교회가 개교회 별로 성경 공부반을 만들어서 목회자를 양육시켜 개척교회를 세우는 것을 볼 때에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개교회에서 양성되는 목회자는 속화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신학에 물들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 후보생이 있는 교회의 목회자 양성의 일차 전담은 개교회 담임 목회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