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보고 (2005년 1월)

2007.05.1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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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보고 (2005년 1월)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64
게시일 : 2005/02/05 (토) PM 01:20:03  (수정 2006/06/22 (목) AM 09:53:45)    조회 : 249  

■ 중국선교보고 (2005년 1월)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교회와 진리대로 사는 가정 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1월에는 잠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에 들어가기 전날에 백영희목회연구회 홈을 방문하였더니 백목사님 사모님께 새해인사를 가면 좋겠다는 공지사항이 안내 되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기도 대상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이제 미약하나마 주님의 종으로 선교지에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것을 용기 삼아 백목사님 사모님을 백목사님 대하는 마음으로 오계명을 때늦게 라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가 나왔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백목사님께서 계셨더라면 칭찬도 한번 받고 야단도 한번 받고 할터인데 하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함께 지난날 백목사님께 근심거리였던 것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사모님이 계시는 사택을 방문하였습니다. 사모님을 뵙는 순간 얼굴빛이 너무 환하게 밝은 광채가 나서 밤이 와도 어두움이 비켜 나갈 것 같았습니다. 이 표현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니 문안을 드리러 가보시기 바랍니다.

사모님께 세배를 드리니 감회가 깊었습니다. 세배를 드린 직후 백목사님을 대신한 사모님께 말씀을 올리기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길을 백목사님께서 성경적으로 환하게 가르쳐주셨는데 이것을 저희들이 바로 보수하지 못해서 황송합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백목사님을 직접 뵙고 말씀드리는 심정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신풍 목사님께서 옆에 계시다가 중국에 선교사로 나가있다고 사모님께 말씀을 올리니 '끝까지 하이소!' 하셨습니다.

미천한 종이 선교사로 나서기 전에는 은혜의 기관에게 대면할 체면과 자격이 없었는데 이번에 귀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사모님께 세배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신 신풍 목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산에 가면 백목사님께 교훈을 받던 그 시절 그 장소가 그리워서 늘 모(母)교회인 부산 SB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번에 송구영신예배와 신년 첫 주 예배를 드렸는데 찬양대는 중간반 여학생으로 구성된 찬양대와 주일학교 청년 여반사로 구성된 찬양대가 있었습니다.

중간반 여학생으로 구성된 찬양대는 찬양이 되는 찬송가를 찬송하여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청년 여반사로 구성된 찬양대는 찬송가를 부르지 않고 성가를 불렀습니다.

송구영신예배 때는 무슨 일이 이렇게 까지 되어 가는가 하고 살피다가 그대로 앉아 있었고 첫 주 오전 예배 때는 중간반 찬양대의 찬양이 있어서 송구영신 예배 때는 담임 목사님의 안내대로 특별히 한번 행사적으로 한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예배 때는 또 다시 청년 여반사로 구성된 찬양대가 성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찬양대의 찬송은 하나님께만 찬양을 돌리는 것이 찬양대가 찬송을 하는 목적인데 음악성을 살린 성가는 인간의 귀를 중심한 것이기 때문에 찬양대의 본연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았습니다.

청년 여반사로 구성된 찬양대의 성가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이 아니라 인간이 들어 감상하는 노래로 들렸습니다.

백목사님 생전 찬송에 대하여 인간중심보다는 하나님중심으로 해야 된다고 교훈을 여러 차례 하셨는데 그 교훈의 강단에서 이 교훈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오늘의 부산 SB교회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나 하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 천명의 교인들 중에 아무도 '이것은 잘못되었습니다!' 하고 소리치는 분이 없었습니다. 배에 구멍이 뚫려 가라앉고 있는데도 당장에 물이 목에 차 오르지  않는다고 그 위급함을 모르고 있으니 그 답답함에 큰 소리로 외쳐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속화입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어린 신앙을 생각하고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런 판단이 순간적으로 잠깐 지나고 나니 그 자리에 도무지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귀를 막고 그대로 앉아 있으면 백목사님께서 '이놈들아 내가 그렇게 가르쳤느냐?' 하고 호령이라도 칠 것 같아서 그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찬송가가 아닌 성가가 인간의 심정은 감동시켜줄는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진정 받으실 찬송은 아닙니다. 그런데 찬송이 아닌 성가를 음악당이 아닌 예배당에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백목사님께서 성가를 배척하던 강단에서 말입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왔지 주일날 예배당에서 노래 같은 성가를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기에 변질된 예배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성가를 부르기 시작할 때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와버렸습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당 천장이 우루룩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그 시간에 참석하셨던 분들 중에는 선교사가 너무 지나치게 판단한다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각자가 보는 관(觀)이 다를 줄 압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교사에게 주시는 영감 따라 가지는 관(觀)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찬양대가 찬송을 부르지 않고 성가를 부르는 것은 공회성의 변질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라 여겨집니다. 속의 것이 때가 됨에 밖으로 유출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런 현상은 빙산의 일각으로 나타난 것뿐일 것입니다.

이 건에 대해서 부산 SB교회 교인 몇 분이 홈페이지를 통해 그 부당함을 글로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선교사는 몇 분의 교역자에게 이 건을 말하면서 교역자회에서 안건을 삼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진언을 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주문을 드렸습니다.

이런 말과 글은 대적이 되고 원수를 만드는 일이라 조심해야 되는 것이 상식이요 또한 처세술인데 미련한 곰이 된 것 같습니다.

[(요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백목사가 너희에게 교훈을 주지 않았느냐 너희 중에 공회 교훈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공회교훈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진리를 지킨다고 말하겠느냐'



한국에 귀국하면 선교연보 통장을 조회 해보는데 중국선교공회가 출발할 당시부터 변함 없이 연보 하시는 분들을 보면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선교비 통장에 찍힌 이름들과 그 연보를 보면서 더욱더 충성하고 더욱더 녹아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선교 연보를 조심스럽게 요긴하게 써야 할텐데 적재적소에 바로 쓰여졌는지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과 늘 동행하는 고급 신앙은 못되어도
주님의 뜻을 찾아 그대로 이루어 드리지는 중급 신앙은 못되어도
죄는 짓지 말아야 하겠다는 푯대를 두고 신앙하고 있습니다.

죄는 짓지 말아야 하겠다는 푯대를 세우고 경주하는 저급의 신앙이지만 그래도 지난날 죄를 물 마시듯 한 것에 비하면 지극히 큰 은혜로 말미암은 성화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그 은혜를 무한 감사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주님의 심부름꾼의 직책이 그 즉시 박탈되기에 늘 주님과 동행은 못해도, 주님의 뜻을 찾아서 이루어드리지는 못해도, 죄는 짓지 않는 종이 되게 해달라고 떨면서 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일정에서 저급의 신앙에도 연단이 더 필요함을 일깨워 주시고 그로 인하여 겸손의 허리를 더 동이게 하사 주님 떠나면 죽은 시체보다 더 가치가 없다는 것을 벌벌 떨기까지 하도록 일깨워 주셨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에 연결될 때만이 생명과 평강과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또 한차례 연성하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 주님께 안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번 귀국시에 몇 교회에서 예배인도를 하였습니다. 또 여러 가정을 심방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산지역에 있는 교회에서는 총공회 교리 신조 행정이 무엇인가를 증거 했습니다.

또 인천지역 교회에서도 총공회 교리 신조 행정이 무엇인가를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은혜기관인 노아와 셈과 함과 야벳에 대한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은혜기관에 대한 건은 그 자리에서 진리대로 해결하는데 그치고(옷을 덮는 것)
은혜기관을 더 이상 헐지 말 것(벗은 것을 알리는 것은 자기중심 원죄발동)

서울지역에 있는 교회에서도 총공회 교리 신조 행정이 무엇인가를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교회의 현황과 선교 사역 현황을 보고했습니다.



출국시간이 잡혀있어 시간이 촉박했지만 교역자 몇 분에게 이곳 교회에 전하는 목회자료를 컴퓨터에 깔아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되어 출국에 차질이 생기게 될까하여 조급함이 생겼습니다.

한국교회의 일도 중국교회의 일도 다 같이 주님과 복음을 위하는 일인데 출국일정에 맞추어 일하려는 선교사의 실력 부족을 이번 일로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담임 목회를 하면서 중국선교에 동역 하시는 교역자님들을 볼 때에 대단한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선교사역에 중심적으로 동역하고 있는 S교회는 현재 예배당을 임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사역에는 물심양면 아끼지 않고 자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복음사역에 쓰이는 것은 인색하면서 교회 부동산을 자랑하는 교역자도 계십니다.

일은 할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그 일은 지나가 버립니다. 성도들의 연보는 주님의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성도의 연보를 주님의 일에 쓰지 못하고 부동산 마련에 주력하다가 부표가 나서 이동이 되면 교역자 개인적인 면으로 볼 때에는 아무런 결실 없이 낭패가 되겠습니다. 예배당 마련도 중요하지만 복음사역에 주춤한 교회가 되어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님의 일은 일대로 못하고 재정은 엉뚱한 곳에 다 허비되어 많았던 재정이 텅 비어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또 어떤 교역자는 재정은 그대로 있으나 복음 사역에는 그동안 한푼도 쓰지 못하고 지금은 부표가 나서 이동해야하는 형편에 있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교회와 교역자가 할 일이요 예배당 마련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방향전환이 있어야 비로소 신앙의 걸음이라 할 것입니다. 복음사역은 뒤로 미루고 돈을 한푼 두푼 알뜰히 모아야 예배당이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가지는 방편입니다.

선교사는 교회를 담임하지 않으니 말은 쉽게 잘한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담임하기 이전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복이라 생각하고 복 주신 기회 때에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양해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방문시에 산본 목사님께서 거처를 별도로 임대하여 주셔서 가족들이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교역자님들과 성도님의 대접이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머리를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 대접은 선교사에게가 아니라 우리 주님을 대접한 것인 줄로 압니다.

부탁 올리는 것은 선교사 자체를 보지 마시고 선교사가 하는 일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사 자체를 두고 비판 평가하여 복음사역을 훼방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선교사가 그동안 잘했다면 이런 일이 없을 터인데 그렇지 못하여 빌미를 제공한 죄가 크기에 선교사는 여러분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행9:18-20)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중국교회는 올 3월부터 시행하는 '종교사무조례'가 발표되어 교회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서 환란을 예비하는 신앙준비를 하고 또 중국교회를 위해서 간절한 기도로 동역 할 때입니다.

아래의 글은 新중국종교사무조례에 대하여 강성산 선교사님께서 쓴 글인데 인용하여 올리니 중국교회 현 상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新중국종교사무조례에 대하여

새롭게 시행될 <종교사무조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가 종교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종합적인 행정법규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이 법규를 통해서 신앙인들과 종교단체 및 종교활동장소는 합법적 권익보장이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신앙인들의 입장을 고려한 것 같이 포장되어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책임과 의무를 함께 명시하여 법규에 어긋날 경우 언제든지 이 권익보장법은 신앙인들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는 박해와 탄압의 무기로 변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의 관련자들은 이 조례를 통해 중국 인민의 종교신앙자유가 보장되고 종교사무관리를 분명하게 규범 짓는 중요한 의의를 담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그렇지만 이 조례는 사회주의 틀을 가지고 있는 중국 내에 지하종교활동을 엄단시키는 정책으로 설정되었으며, 국가기관에서 주관하는 등록 절차에 의한 허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종교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강압적 정책입니다.

한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미명 아래 의무라는 이름의 탄압을 가하는 이 조례가 실시된다면 지금까지 중국 각처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하고 믿음으로 살아왔던 대부분의 중국 가정교회는 분명한 불법집단으로 정죄 되고 그들의 종교활동 역시 그에 상응한 댓가를 지불할 수 밖에 없는 흑암의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중국 내지(본토)에 있는 모든 종교활동을 법이라는 쇠사슬로 묶게 되는 것으로 이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종교신앙자유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며, 앞으로 그들이 중국 내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지하종교단체와 신도들에게 어떠한 자세로 행동할 것인지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조례입니다.



한국에서 일정을 마치고 이곳에 도착하는 대로 우리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이곳 저곳 교회를 심방하였습니다. 만나볼 주님의 종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면 육신은 비록 곤해도 심령은 늘 기쁨이 충만합니다. 기쁨 중에 기쁨이 더한 것은 단 마음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쁨을 되새김질함입니다.

주님의 일에 기쁨 없이 부득이 하는 것보다 더 지옥은 없는 것을 경험하여 잘 알기에 단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일 할 수 있는 것은 전적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을 확실히 알기에 그 긍휼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밤새 달리는 장거리 여정의 기차일지라도 이런 묵상을 통하여 좋은 휴식시간으로 삼습니다.

지금은 섣달 엄동설한이라 이 지역을 운행하는 열차는 칸마다 석탄으로 난방을 하는 관계로 탄이 타는 냄새는 구수하게 좀 나지만 예전보다 불을 많이 때어서 별로 춥지 않습니다. '이 지역 열차'라고 굳이 표현한 것은 대도시를 연결하는 열차는 초일류 현대 열차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넓어서 중국 본토인도 중국을 다 모릅니다. 그래서 이 지역 저 지역 자기가 본 것만 알뿐입니다. 그러기에 한 지역 본 것을 가지고 중국을 말할 수 없고 더욱이 자기가 본 것 가지고 중국이 이렇더라 단정을 짓는 것은 중국을 모른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셈입니다.

영하 30도 이상이 되는 칼 같은 찬바람이 객실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밑 뚫린 재래식 열차 화장실은 구멍을 막는 마개가 있었는데 마치 콜크 병마개처럼 생겼습니다. 사용할 때는 길다랗게 달린 손잡이로 당기면 되는데 작년만 해도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궁하면 척이라' 하는 말처럼 재래식은 재래식으로 대처하는 도전적 발상이 좋아 보였습니다.

여객들의 두런두런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새벽입니다. 차창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빛과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반짝임은 인간의 방언은 아니나 화답을 하고 있었으니 그 반짝임은 하나님의 충만을 나타내는 표현들이었습니다.

[(시8:3-4)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이곳에 큰 명절인 춘절(설날)이 곧 다가오면 한국처럼 대이동이 시작되어 교통편이 매우 번잡해지기 때문에 그 전에 돌아볼 곳이 있어서 일정을 앞당기는 관계로 이번 1월은 보다 꽉 차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리하던 [총공회 조직신학]은 '찾아보기'를 가나다순으로 정리만 하면 마무리가 됩니다. 이 조직신학이 성경적이라 [성경적 조직신학]으로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책이름을 [백영희 조직신학]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신풍 목사님께서 [백영희 조직신학]이라고 이름을 붙인 조직신학이 이미 출간이 되었기 때문에 같은 이름의 제목을 피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을 했으나 '백영희목회설교록'이 근간이 된 조직신학을 다른 이름으로 붙이는 것은 책의 본질에도 맞지 않고 또한 대외적으로 책이 출판이 될 때에 [총공회 조직신학]이라고 하면 그 근원이 어디인지 잘 못 알아볼 수도 있기 때문에 [백영희 조직신학]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는 깨달음을 가집니다.

이미 출간된 [백영희 조직신학]이라는 이름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백영희 조직신학(김반석 편)이라고 하면 제목의 중복 혼란은 피할 수 있겠습니다.

책의 출간문제는 출간을 맡겠다는 분이 예견한대로 되었기 때문에 또한 예견한대로 순서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정리 중에 있는 [성경 성경적 사전]이 정리가 되면 책의 권수가 2권 이상이 되는 분량이 되겠고 이미 정리된 [백영희 조직신학(김반석 편)]이 4권 정도의 분량이 되니까 출간될 책의 권수는 총 6권 이상이 될 것 같습니다.

출판 문제는 여러 독지가의 동역으로 출판 할 수도 있는 형편이 되면 다 같이 복 받을 수 있어서 제일 좋겠고, 기독교출판사를 통해서도 출판을 할 수 있겠고, 또 인쇄소를 경영하는 분이 맡겠다고 하시니 그곳에 맡겨도 되겠고, 아니면 개인적 출판비를 들일 생각도 가집니다. 그보다도 주님의 뜻의 있어야 되는 것이니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에 전적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곳교회와 부족한 종을 위해서 쉬임 없이 기도하여 주시는 여러 교역자님들과 성도님들의 은택인줄 믿습니다. 감사한 마음 늘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기도 위에 더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교훈과 지도로 부족한 종을 경성 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후2:14-15)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말씀 의지하여 부족한 종이 선교보고를 올립니다.
중국에서 김반석 선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