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4 23:54
■ 선교사역보고 (2015년 8월)
주은 중 진영과 교회와 가정에 평안을 빕니다.
(마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2015년 8월 29일 주일날, 서부교회 박종건 중간반 선생님이 조사(전도사)로 임명 받았습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는데 교회 이름은 반송동교회입니다. 개척교회 입당예배는 10월 초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날 주일 새벽에 박종건 조사님의 부친 박영규 집사님이 소천으로 별세하셨습니다. 박영규 집사님은 자형 되시고 박종건 조사는 조카가 됩니다. 장례식은 서부교회에서 주관하였고 전체 분위기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생명으로 충만했습니다. 자형의 장례식 참석으로 이달 보고가 며칠 늦어지게 된 것을 겸사하여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달에 이어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을 1차∼4차까지 하였습니다. 검토하여 파악한 결론은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성경교리에 대한 왜곡이며 총공회 신앙노선에 대한 왜곡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진리를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영희 연구」 책이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교계에 호의적으로 알려지는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것은 실상을 잘 모르는 생각입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교계에 왜곡적으로 알려지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영희 연구」 책이 왜곡하는 부분은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성경교리’ ‘총공회 신앙노선’ ‘성경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왜곡과 그 대처에 대한 심의는 총공회의 교역자회에서 결의할 사항입니다. 그리하여 총공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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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번호 : 2015-7호
시행일자 : 2015년 8월 29일
수 신 : 예수교장로회 총공회장
참 조 : 운영위원회 노원 및 소원
제 목 :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조치의 건
1. 주은 중 귀 진영에 평안을 빕니다.(마10:12)
2. 2015년 6월에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 연구’를 출간하였습니다. 책 내용에는 백영희가 주장하고 또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연구 및 고찰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영인 목사의 책 3권과 송종섭 목사의 논문 2편을 거의 복제 편집하였습니다.
3. 책 이름은 ‘백영희 연구’라고 해놓고 그 내용은 전부 다른 사람의 주장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큰 문제는 총공회 신앙노선에 핵심이 되는 성경교리 즉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삼분론’ 그리고 교회정치 ‘개교회’에 대하여 왜곡하고 있습니다.
4. 청원하기는 이 사안을 총공회 교역자회에서 심의하여 그에 따른 합당한 조치를 결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 별첨 서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청원서, 1부
(2) 총공회의 동등권, 1부
(3)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1권
선지자문서선교회
대표목사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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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서 1. 주은 중 귀 진영에 평안을 빕니다.(마10:12) 2. 2015년 6월에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 연구’를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 내용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연구’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 ‘백영희의 저서를 연구’ ‘백영희가 주장하기를’ ‘백영희 사상을 요약한 것’ 3. 그러나 김남식 박사는 다음의 책과 논문을 전적 복제 편집하였습니다. - 전병재,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 이영인,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 박선혜,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상)(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 송종섭,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 송종섭,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 4. 김남식 박사는 이 책을 출간하면서 「백영희 연구」에 대하여 자신이 직접 쓴 글의 분량은 19쪽입니다. 이 책 총 254쪽에서 표지, 머리말, 차례, 참고 문헌, 찾아보기의 28페이지를 제외하면 총 207쪽이 복제 편집한 부분입니다. 5. 문제되는 것은 복제 편집이 아니라 책 이름은 ‘백영희 연구’라고 해놓고 그 내용은 전부 다른 사람의 주장입니다. 그리하여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총공회 신앙노선의 핵심적 성경교리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삼분론’ 그리고 교회정치 ‘개교회’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영희는 개죽음 형식의 순교’등으로 모독적 말을 합니다. 6. 이 책의 실체가 이러한데도 총공회 일부에서는 이 책을 구입하여 교인들에게 배포 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이 책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마치 백영희 목사님을 연구한 책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살펴볼수록 오류와 왜곡의 뭉텅이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책에 대하여 1차 ‘복제를 중심으로’ 논평을 하였고, 2차 ‘왜곡을 중심으로’ 논평을 하였습니다. 이 청원서에 첨부한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자료가 이것입니다. 7. 청원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총공회는 이 책 ‘백영희 연구’에서 왜곡된 오류를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개교회에서 이 책을 구입하여 교인들에게 배포하는 것을 중단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3) 목회자 연구용 외에는 각 교회 담임 목회자가 수거하여 반납 및 폐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총공회는 김남식 박사에게 백영희 목사님과 총공회 신앙노선을 왜곡한 책임을 묻고, 책 출간 중단과 회수와 폐기 그리고 사과문을 발표토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8. 오류 되고 왜곡된 이 책을 읽을 때 해악과 장서(藏書)할 때 파생되는 해악이 짐작될 줄 압니다. 그러므로 이 사안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만큼 이 청원 건에 대하여 2015년 9월 총공회 교역자회에서 심의 및 결의하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주후 2015년 8월 29일 선지자문서선교회 대표목사 김반석 |
총공회의 동등권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3. 8 수 새벽 노원 소원에 대해서 지난밤에 그 모두 업무를 담당할 위원들에 대해서 의논해서 내정된 것을 여기 광고해 달라고 내 놨습니다. 이분들이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우리 교인들이 다 우리 교회 일은 한 몸이기 때문에 다 자기 일입니다. 이러니까 다 생각할 권리도 있고 또 거기에 대해서 판별할 권리도 있고 또 그것을 다 감당해야 될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꼭 우리 총공회는 동등권을 가졌습니다. 어떤 기관에서는 보면, 우리 서부교회에서도 저 모르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그 일이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계통을 통해서 이렇게 위에 상부에 전달이 돼야 되지 직접 하면 안 된다 하는 그런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밑에서 계통적으로 올라가려 하니까 올라가는 중간에서 끊어 버리는데 올라갈 수가 있습니까? 이래서 우리 총공회는 개공회라 하는 것은 한 교회 개교회에서 이 다섯 가지 위를 둬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그 개교회 평신도가, 개교회주일학교 학생이라면 제일 작다고 말해 봅시다. 주일학교 학생이 그 개교회의 공회에다가, 아마 그 공회장이라면 교역자일 것인데 교역자에게 직접 전화든지 서신으로든지 서로 연락을 할 수가 있고, 또 주일학생이 자기 본 교회 개교회 공회뿐 아니라 지방공회의 공회장이든지 거기에 어떤 부원이든지 거기에다 전화든지 서신이든지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또 주일학교 학생이 지방공회뿐 아니라 총공회장에게 또 총공회 모든 행정위원들에게 직접 전화로나 서신으로나 서로 연락할 수가 있다 하는 그것이 우리 총공회에 행정의 윤곽들입니다. 이러니까 얼마든지 다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래 안 되면 혹 말단에 있는 어린 약한 자는 자기의 무슨 호소가 있어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계통을 통하지 않고, 우리는 계통을 통해서 되는 일도 있지만 계통을 통하지 않고 얼마든지 자유로 할 수 있다 하는 것이 우리 총공회 관례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제일 높으신 분이지마는 말단에 있는 사람이 자기 반사 선생님에게, 목사에게 이렇게 쭉 올라갈 수도 있기는 있지마는 말단 그 교인이 하나님에게 직접 얼마든지 모든 것을 의논하고 호소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대로 된 행정입니다. |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김반석 목사
선지자문서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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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에서 ‘1부 복제를 중심으로’는 홈페이지> 연구> 교리논평> 게시판에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3차” 내용 그대로입니다.
2부 왜곡을 중심으로는 홈페이지> 연구> 교리논평> 게시판에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1차 및 4차” 내용을 합하였습니다.
이 논평 자료는 총공회 교역자회 준비위원들에게 1차 발송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로 교역자회에 참석하여 목회자 분들에게 배포할 계획입니다. 그런 것은 목회자 분들이 「백영희 연구」 책에 대한 실체를 바로 파악하여 이 책에 대한 의제 채택과 그리고 심의와 결의에서 참고 자료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이와 같이 사역을 진행하는 것은 이 책을 출간한 김남식 박사를 겨냥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또한 이 책을 출간토록 뒷받침한 이영인 목사를 겨냥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성경교리와 총공회 신앙노선과 그리고 성경진리에 대한 오류와 왜곡을 저지(沮止)하려는 뜻입니다.
주후 2015년 8월 31일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2015.09.06 00:23
2015.09.06 00:29
2부. 왜곡 부분을 중심으로
-목 차-
2부. 왜곡 부분을 중심으로
(서문)
(본문)
제 1장. ‘제 1부 서론적 탐색’ 왜곡부분 발췌
‘Ⅰ. 백영희 시대의 교회사적 배경’ 왜곡부분 발췌
‘Ⅱ. 백영희 연구의 범위와 한계’ 왜곡부분 발췌
제 2장. ‘제 2부 백영희 연구’ 왜곡부분 발췌
‘Ⅰ. 백영희의 삶’ 왜곡부분 발췌
‘Ⅱ. 백영희의 얼’ 왜곡부분 발췌
‘Ⅲ. 백영희의 터’ 왜곡부분 발췌
제 3장. ‘제 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 왜곡부분 발췌
‘Ⅰ. 구원론’ 왜곡부분 발췌
‘Ⅱ. 삼분설’ 왜곡부분 발췌
‘Ⅲ. 교회론’ 왜곡부분 발췌
-읽어두기-
1. 이 책 내용 가운데서 오류 부분과 왜곡 부분을 발췌하여 그 페이지(P)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오류 되고 왜곡 되는 부분에 대한 논평을 첨부(‣ 표시) 하였다.
2. 이 책 내용에서 오류 부분과 왜곡 부분에 대하여 논평한 글은 논평자 김반석의 최소한의 표명이므로 참고만 하시기를 바란다.
(서문)
이 책은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이다.
이 글은 이 책에 대한 4차 논평이다.
‘1부 복제 부분을 중심으로’에서 주된 내용은, 이 책에서 김남식 박사의 글과 복제 편집된 글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교리 부분은 이영인 목사의 도서 3권과 송종섭 목사의 논문 2편을 거의 그대로 복제 편집한 것이었다.
‘2부 왜곡 부분을 중심으로’에서 주된 내용은, 이 책에서 ‘구원론’ ‘삼분론’ ‘교회론’에서 왜곡되고 오류 된 부분을 파악하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주된 내용 즉 ‘구원론’ ‘삼분론’ ‘교회론’을 얼핏 보아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볼수록 오류와 왜곡의 뭉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진영 총공회는 성경적 신앙노선이 확고하다. 대표적으로 말하면 성경교리에 있어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며, 교회정치에 있어서는 ‘개교회’이다. 즉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의 장로의 회(딤전4:14)가 근원이다.
그런데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는 우리 진영의 신앙노선의 근본이 되는 성경교리‘기본구원과 건설구원’과 교회정치 ‘개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오류되게 왜곡하고 있다.
‘P161.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기본구원이고 행함으로 받는 구원은 건설구원이다.’
‘P213. 개교회가 전적 자신의 자유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개교회 자유주의를 줄여서 개교회주의라고 한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이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기본구원이고 행함으로 받는 구원은 건설구원이다.’라고 오류 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개교회는 독립교회가 아니다. 그런데도 ‘개교회가 전적 자신의 자유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말들은 총공회의 신앙노선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왜곡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단 사이비라 할 만큼 위험한 말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P80. 각 교회가 자기 현실에서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자기만의 현안을 두고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음적이고 구원적이냐는 것을 판단하는 데에는 결국 성경도 초대교회의 모습도 크게 참고 되지 않을 때가 많다.’
‘P159. 스스로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 선지자들의 터 위에 머릿돌로 구원을 이루어 가신 것이다(히5:7-9).’
‘각 교회가 현안을 두고 판단하는 데에는 결국 성경도 초대교회의 모습도 크게 참고 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말에 대하여 여러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또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 선지자들의 터 위에 머릿돌로 구원을 이루어가셨다’는 말에 대하여 여러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런 내용이 ‘백영희 연구’라는 이름으로 출간 배포 되고 있다.
또한 백영희 목사님의 순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모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P63. 백영희에게 가장 값진 순교는 개죽음의 형식의 순교였다.’
‘P102. 정사(情死)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노트에 적어가며 주님께 받은 이 사랑에 감격하고 그 보답은 오로지 그를 위해 죽어 드릴 수 있다면… 이 소원이었다.’
백영희 목사님의 순교에 대하여 ‘개죽음의 형식의 순교’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정사(情死)는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해 함께 자살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백영희 목사님이 ‘정사(情死)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노트에 적어가며’라고 왜곡하는 것은 심히 모독하는 처사이다.
이 책에서 왜곡된 오류가 어떤 것인지를 몇 가지 소개하였다. 이것은 이 책 전체에서 볼 때 빙산의 익각일 뿐이다. 전체적 자세한 것은 본론에서 확인하시기를 바란다.
하나 당부 드리는 것은, 논평자가 이 책에서 오류와 왜곡 부분을 발췌하고 그 까닭을 첨부 하였다. 그런데 첨부한 글에서 합의 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을 줄 안다. 그런 부분은 연구 과제로 삼으시거나 지적해 주시면 감사히 받겠다. 그런데도 논평자의 첨부 글에 시시비비를 함으로서 이 책 논평의 본질이 흐려질까 염려가 된다. 아무쪼록 「백영희 연구」 책에 대한 왜곡과 오류를 중심으로 심사하여 주시기 바란다.
주후 2015년 8월 18일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본문)
제 1장. ‘제 1부 서론적 탐색’ 왜곡부분 발췌
제 1부 서론적 탐색
P16. Ⅰ. 백영희 시대의 교회사적 배경
P16. 1. 신사참배 수난
P30. 2. 한국교회의 재건 양태
P40. 3. 6·25 한국전쟁의 배경
‣ 이 부분은 김남식 박사가 2003년도에 이미 발표했던 논문으로 추정한다. 그런 것은 김남식의 ‘신사참배 수난 후 한국교회 재건 양태 연구’가 신학지남 제70권 2집 통권 제275호 (2003 여름) pp.325-367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 내용 P16∼P46이다.
이 부분은 백영희 목사님과 전혀 상관없이 쓰여 졌던 내용이기에 논평을 생략한다.
P46.Ⅱ. 백영희 연구의 범위와 한계
P46. 1. 폐쇄성의 한계
P47. 2. 자료성의 한계
P47. 3. 계승성의 한계
‣ 이 부분은 김남식 박사의 글이라고 본다. 이 책 내용 ‘46∼47 페이지’ 2쪽 분량이다.
P46. 백영희는 부산서부교회를 중심으로 목회하면서 일반 교회들과의 교류보다 독자적 길을 걸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폐쇄성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성경연구에 몰입하였고, 자신들이 드러내는 것을 피하였다.
‣ 이 글에서 ‘자신들이 드러내는 것을 피하였다’고 말하는데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백영희 목사님이 고려파에 계실 때에 전국적으로 활동하셨다. 또 백영희 목사님은 어느 교회 목회자든지 서로 간에 강단 교류를 하자고 공표하셨다. 그리고 백영희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는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가 교계 신문과 일반 신문에 보도가 되어 한국 교계에 널리 알려졌었다. 그리하여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를 견학하기 위해 방문한 교회가 전국적이었다. 그리고 ‘독자적’ ‘폐쇄성’이라는 말도 오해가 있다. 그런 것은 오직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의 신앙으로 일관하기 위해 대외 활동을 자제하다보니 그렇게 보인 것이다.
P47.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에 대한 자료들의 제한성이 한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백영희목회연구소」를 개설하고 백영희의 자료를 정리하고 출간한 것은 매우 귀한 역사이다. 이 자료들이 일부 관심 있는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지 말고 연구 자료로 널리 활용되었으면 한다.
‣ 이 글에서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들이 「백영희목회연구소」를 개설했다’고 하는데 이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백영희목회연구소」는 백영희 목사님 생전에 그에 의하여 1988년도에 설립하였다. 그래서 백영희 목사님이 생존해 계실 때부터 「백영희목회연구소」를 통하여 ‘백영희설교록’ 등의 자료를 출간하였다. 또 이 출간한 자료들은 총공회 뿐 아니라 전국 교회 목회자들과 신학교 교수들에게 실비로 배포하였다. 또한 현재도 실비로 배포되고 있고 홈페이지에서도 제공되고 있다.
제 2장. ‘제 2부 백영희 연구’ 왜곡부분 발췌
제 2부 백영희 연구
P51. 서론
P52. Ⅰ. 백영희의 삶
P52. 1. 백영희의 입신
P54. 2. 백영희의 헌신
P57. 3. 백영희 순교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추적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영희의 저서’를 바탕으로 한 부분은 전혀 없다. 다만 박선혜의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상)(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책에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51∼P64이다.
P52. 백영희의 삶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것은 외부로 나타내기를 싫어하는 성경적 특성도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 ‘백영희 삶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고 하는데 백영희 목사님이 직접 작성한 ‘성경연구 자료집’이나 또 ‘백영희목회설교록’ ‘주일학교 공과’ 등이 곧 백영희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이 분량은 백영희 그 시대 목회자들과 비교할 때에 가장 많은 분량이 될 것이다. 또 그의 제자들에 의해 ‘백영희의 신앙생애’가 책으로 출간 되었고 ‘백영희의 신앙세계’가 웹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 그리고 ‘외부로 나타내기를 싫어하는 성경적 특성’이라 하는데 성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P54. 백영희는 성경을 배우고 싶어 1938년 1월 18일 진주성경학교에 입학하여 예과와 본과 1학기를 공부하고 건강 때문에 공부를 중단하였다. 짧은 기간의 공부이지만 이곳에서 최상림 목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 백영희 목사님이 진주성경학교를 건강 때문에 공부를 중단했다는 말은 근거가 없는 말이다. 그리고 백영희 목사님이 최상림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유추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면 백영희 목사님은 최상림 목사님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그의 목회설교록에서 확인해 보자.
「사람마다 요절이 있는데, 제가 진주성경학원에 갔을 때 최상림목사님이 가르치는 시간이 중간에 있어서 한 달 후에 그분이 왔습니다. 그분이 한 시간도 가르치기 전인데, 학생들이 아주 많은 기대를 하면서 최상림목사님이 실력이 있고 믿음이 좋고 유력하다고 해서 나도 마음이 끌려서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연구실로 찾아갔습니다. 만나보니까 뚱뚱하고 얼굴이 시커먼 분이 아주 힘이 세게 생겼는데, 그분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주 믿음 있는 말을 해주고, 또 내가 '목사님은 요절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참 기쁘게 '저는 모든 성경을 다 그대로 믿지마는 옥토에 뿌린 씨가 되고자 하는 것이 평생소원입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이분은 옥토에 뿌린 씨라는 이 절수가 요절이로구나.' 그렇게 듣고 나왔습니다. 그분의 신앙 사적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그 당시에 제일 은혜 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각처에서 학생들이 모였는데 보니까 그분이 있는 지방 학생들이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이나 열심이 제일 나았습니다. 다른 데서 온 학생들은 뭐 그래요. 그러나 실은 그 학생들이 질이 높은 게 아니라 그 목사님 교훈 때문에 당시에 제일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때 옥중에 들어간 이들도 그분의 교훈 받은 분들이 많았고 열심도 그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최상림목사님에게 배우던 남해읍에 재건교회가 생겼는데 분위기에서 열심은 있었지만 진리를 배우는 진리가 앞서지 않고 열심이 앞섰기 때문에 그분들은 재건교회라는 조금 색다른 길을 가게 됐습니다. 1981. 2. 19. 목 새벽기도 」
P55.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때는 신사참배 강요의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가 나가던 농산교회는 목회자부터 교인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믿은지 얼마 되지 않는 처지에서 무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 이 글만 보면 백영희 목사님은 그 당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사참배를 거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백영희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시종 거부하신 분이다. 다음의 ‘백영희목회설교록’에서 확인해보자.
「그때에 그 지방 당회장이라고 어떤 목사님이 한 분 왔는데 아주 버틀도 좋고 아주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왔는데 머리를 빡빡 깎았소. '목사님 왜 깎았습니까?' 시국이 그런데 안 깎을 수가 있느냐고 그래 가지고서 이 한쓰봉 단추 딱딱 잠구는 것 입고 아주 옷도 이 위에 단추까지 잠그는 이 작업복 딱 입고 그래 와 가지고 오더니마는 그래 합디다. 그러니 그 교회는 다 그리 됐었어. 그때 저 하나만 안 했지 그 농산교회에 왔는데 다 그랬어.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10, 7 금 저녁) 」
P65. Ⅱ. 백영희의 얼
P65. 1. 성경
P66. (1) 성경의 권위성
P68. (2) 성경의 정확성
P71. (3) 성경의 보편성
P75. (4) 성경의 충족성
‣ 이 책을 출간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 목사님이 성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영인의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책에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65∼P76이다.
P60. 바로 이런 사이에 한 인물이 등장하게 되니 바로 백영희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한종희였다. 박윤선을 통해 전통의 정통 교리를 잘 안다고 생각한 그는 ‘한 번 중생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 흔들릴 수 없다’는 백영희의 중생교리를 이단시 하고 있었다. 백영희는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마음과 몸이니 평생 회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도 한종희는 백영희가 성도는 천국에 갈 것이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고 오해를 했고 이런 발언을 주변에…
‣ 백영희 목사님은‘중생된 영은 범죄치 아니한다’하셨다. 그런데 한종희는 ‘중생 된 영혼은 범죄치 아니 한다’로 와전시켰다. 그리고 ‘한 번 중생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 흔들릴 수 없다’ 말은 ‘중생된 영은 범죄치 아니 한다’는 말과 많은 차이가 있다.
P61. 문제는 전국의 교회 현장에 있는 교인들은 백영희를 문선명과 같은 인물로 생각한 것이다.
‣ ‘전국의 교회 현장에 있는 교인들이 백영희 목사님을 문선명과 같은 인물로 생각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김남식 박사는 ‘한국장로교회사’등을 집필한 인물인데 그 시대 교계 상황을 잘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의도가 나쁘다.
P63. 백영희는 순교 중에서도 남들이 알아주는 순교, 훗날 알려지는 순교, 개죽음으로 인식되는 순교, 죽음 자체도 알려지지 않는 순교 등으로 그 등급을 나누고 그 중 가장 복된 순교로는 그 사람의 사망 사실도 알려지지 않는 순교를 최고의 단계로 꼽았다. 그러나 초대형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에서는 그리될 수 없는 것이니 그 경우를 제외한다면 백영희에게 가장 값진 순교는 개죽음의 형식의 순교였다.
‣ 백영희의 순교관의 등급에서 ‘개죽음으로 인식되는 순교’를 말하는 것은 큰 왜곡이다. 백영희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다. 그리고 ‘백영희에게 가장 값진 순교는 개죽음의 형식의 순교였다’말은 말 자체도 안 되고 사실 자체도 얼토당토않다.
P66.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록한 말이다.
‣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P66. 그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발표되었으나, 발표된 내용은 진리이다.
‣ 그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으나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P66. 이 진리는 천지가 없는 가운데서 창조했다.
‣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곧 구원의 복음(엡1:13)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P66. 천지만물은 그 진리로 움직이고
‣ ‘천지만물은 그 진리로 움직이고’는 틀린 말이다. 천지 만물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다.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지음 받았다.
P66. 따라서 성경은 만물의 주인공인 인간을 만들고 다스리고 처리하는 인간의 주격위치에 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만물의 주인공인 인간을 만들고 다스리고 처리하는 인간의 주격위치에 있다.’는 말은 진리의 도리에 맞지 않는 인간 자의적(恣意的) 해석이다.
P66.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를 통해 진리로 나타난다. 마치 전선을 따라 전선 안에서 역사하는 전력과 같다.
‣ ‘하나님의 역사가 진리를 통해 진리로 나타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진리적이다.
P66. 또 마음이나 행동 하나도 그 말씀으로 산 것만 영생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전부 영원히 지옥에 버려야 한다.
이 글에서 ‘그렇지 않는 것은 전부 영원히 지옥에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틀린 말이다. 그런 것은 영생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지옥에 버려야 하는 것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성경의 권위성’ 첫 페이지에서부터 오류가 많다. 그런데도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백영희 목사님의 성경관을 왜곡하는 처사이다.
P68. 성경은 정확무오하다.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고 변동이 없으며 잘못이 없다는 뜻이다.
성경이 정확무오 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곧 구원의 진리가 정확무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가감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성경책에 글도 가감하면 안 된다.
P68. 성경은 정확무오하기 때문에 “진리”라고 한다.
‣ 이 글에서 ‘성경은 정확무오하기 때문에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그런 것은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의 진리가 정확무오이다.
P68. 성경이 정화무오하다고 할 때에는 세상 어느 기준이 아니다. 세상의 수도 없는 잣대에 다 맞도록 기록했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되, 그 일점일획도 하나님의 기록이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이다.
‣ 이 글에서 ‘성경이 정화무오하다고 할 때에는 …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되, 그 일점일획도 하나님의 기록이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즉 정확무오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성경의 정확무오는 구원의 진리가 정확무오하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정확무오의 말씀을 기록하게 역사하셨다.
P68.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진리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진리이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 대한 구원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요14:6 전반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하셨다.
P68.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 볼 때는 성경 기록에 착오도 많고 또 틀린 곳도 많다. 그러나 이는 오늘의 세상이 일시 어두워서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 성경의 정화무오를 말하면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성경의 정확성’ 첫 페이지에서부터 오류가 많다. 일일이 지적하자면 분량이 많기 때문에 생략한다. 이런 글을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해서 고찰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P69. 성경에는 숫자나 이름 또는 사건 기록 등에 여러 가지 잘못이 발견된다. 이런 오류 때문에 현재 성경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대세이다.
‣ 성경의 정확무오를 말하면서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P71. 보편성이란 믿는 사람이라면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이나 어느 환경에 있다 해도 자기 신앙양심을 써서 노력하면 누구든지 성경을 바로 깨닫고 또 다 깨달을 수 있도록 성경을 기록할 때 그렇게 되어지게 했다는 뜻이다.
‣ 이 글 성경의 보편성은 백영희 목사님의 성경관이 아니다. 또 성경에는 이런 보편성을 말씀하지 않았다. 성경 요15:26에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하셨다.
P71. 성경 내용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없는 진리지만, 누구나 닿을 수 있도록 해 두셨다는 뜻이다.
‣ 성경에는 성경에 대하여 이런 보편성을 말씀하신 데가 없다. 이 말은 성경을 근거하지 아니한 인간 자의적 해석이다.
P75. ① 성경만 알면 다른 인간 지식을 전혀 필요 없다. 다른 지식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다.
‣ ‘인간 지식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해놓고 또 ‘성경 외에 다른 지식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라 하는 것은 조리가 없는 말이다.
※ 다음은 백영희 목사님의 성경관 가운데 일부이다.
- 하나님의 말씀 ‘독자적 권위성’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이라 권위가 있지만 그 권위를 다 없애 버린다 할지라도 성경 진리는 자체가 독자적인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경이라 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진리를 말합니다. 성경책이 권위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성경책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진리가 권위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데? 영감입니다.
또 성경에 여러 번 기록한 기록이라고 권위가 더 있고 한번 기록한 것이라고 권위가 없다고 보는 데에서 사람들이 또 망쳐집니다. 여러 번 기록한 것은 자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말씀하는 것이고 그 계약의 권위는 한번만 기록한 것이나 천 번 기록한 것이나 권위는 꼭 같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판이성’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말은 판이합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의 지식은 판이합니다.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게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생각한 것들이 세상 지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세상 지식과 세상 말을 하는 사람들을 다 만든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지식이라는 것은 이 말씀에게 만들어짐을 받은 것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든 것과 만들어짐을 받은 것과는 그 능력의 차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천하 인간의 말 그까짓 다 뭉쳐도 하나님 말씀 한 절수를 못 당합니다,
사람의 말과 사람의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은 말이요, 죽이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과 지식은 산 말이요,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죽은 것과 산 것 또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우주와 영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우주와 영계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과 지음을 받은 인간들의 말과 어떻게 같겠습니까? 사람들은 사람의 말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같은 것으로 여기는 거기에서 멸망을 받습니다. 사람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을 같이 생각하는 데에서 멸망을 받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시종성’
사람의 지식은 종으로 잡아 부려야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가 모시고 복종해야 됩니다. 모실 시(侍), 복종할 종(從), 하나님의 지식에 시종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시고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의 말과 인간의 지식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종으로 이용해 먹어야 됩니다. 종으로 잡아 부려야 되지 복종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식은 내가 상전으로 모셔야 됩니다. 상전으로 모셔야 되는데 얼마나 높이 모셔야 되는가? 왕(王)만큼 모시면 됩니까? 대통령만큼 모시면 됩니까? 누구만큼 모셔야 됩니까? 하나님같이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 같이 높이 모셔야 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같이 모시기만 하면 됩니까? 모시고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씀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먹어라 하면 먹고, 먹지 말라 하면 안 먹고, 아무리 하기 싫은 것도 하라하면 하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지 말라 하면 안하고, 이 말씀시키는 대로 복종을 해야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 ‘절대수호성’
지킬 수(守), 보호할 호(護), 내가 하나님의 말씀만 떠나지 않으면 천하가 다 달라 들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모시고 떠나지만 않으면 아무도 해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과 함께 하는 자는 하나님 말씀이 지키고 보호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수호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배반하지 안하고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이 하라는 대로하면 이 말씀은 전능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나를 보호한다 하는 것을 단단히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자 굴에서도 지켜 주시고, 풀무 불 속에서도 지켜 주시고, 산에서도 지켜주시고, 바다에서도 지켜 주시고 어디든지 지켜 줍니다.
사도 바울이 바다에서 파선이 되어 밤낮 사흘을 바다 가운데 있었으나 하나님 말씀을 모시고 떠나지 않으니까 바다가 사도 바울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고 다시스로 도망침으로 큰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는데 요나는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찾아서 ‘아이구! 내가 죄를 지어 지금 바다 물고기 뱃속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나를 놓지 아니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니 아무리 물고기 뱃속에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말씀이 나를 구원하면 해할 자가 없습니다. 믿습니다.’ 이렇게 회개의 기도를 하니까 그만 물고기가 못 견뎌서 확 토하니까 요나가 육지에 훅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에게 복종하는 자는 어디서든지 이 말씀은 전능한 능력이 있어서 보호하고 지켜줍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수호의 능력, 지켜 보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신인계약성(神人契約性)’
신구약 성경의 신인 계약성을 우리가 확실히 깨닫고 계약대로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행해 주십니다.
이래서 '나는 여호와로라(출20;2)'하는 말씀은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 이행에 획 하나도 가감 없이 그대로 정확하게 이루는 전능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선포한 계약대로 추호도 가감이나 변동 없이 그대로 이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리켜서 내 이름은 여호와로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니까 계약이라 하는 것을 언제든지 깨달아야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그냥 줄줄 읽을 것이 아니라 이 계약을 지켜 상을 받게 되든지 아니면 이 계약을 위반하여 벌을 받게 되든지 둘 중에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의 신인 계약성에 대해 확고히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 ‘이행절대성’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계약을 선포하셨는데 이 계약대로 다 행할 수 있는 이행 가능성, 이행 절대성, 이 계약대로 이행할 수 있는 절대 권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성경 말씀대로 내가 살려고 하면 호리도 틀리지 않고 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라' 이랬는데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할 수가 있느냐? 우리가 힘만 쓰면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온전할 수가 있습니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래서 계약 이행에 절대 가능성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이것을 깨닫고 믿어야 됩니다. 우리가 믿으면 능력이 오고 안 믿으면 능력이 안 옵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가다가 믿음이 있을 때는 걸어갔는데 의심하니까 물에 푹 빠져 들어갔습니다. 말씀대로 실행하려고 하면 절대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절대 이행성입니다. 절대 가능성입니다. 절대 성취됩니다. 절대 성취할 수 있다는 이것이 계약입니다.
P77 2. 교회
P78. (1) 공회체제의 3대 원칙
P88. (2) 공회제제와 다른 교회 체제의 비교
‣ 이 부분도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전혀 고찰하지 않았다. 다만 이영인의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책에서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78∼P91이다.
P78. 성경적 교회체제는 항상 보수주의와 개혁주의가 적절하게 혼용되며 지킬 것은 죽어도 지키고 또 고칠 것은 항상 고쳐나가는 일이 계속 되어야 한다.
‣ 여기에서 ‘보수주의와 개혁주의’는 ‘보수와 개혁’으로 수정해야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히 ‘개혁주의’의 고유한 의미와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P80. 각 교회가 자기 현실에서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자기만의 현안을 두고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음적이고 구원적이냐는 것을 판단하는 데에는 결국 성경도 초대교회의 모습도 크게 참고 되지 않을 때가 많다.
‣ 이 글에서 ‘성경도 초대교회의 모습도 크게 참고 되지 않을 때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은 불신자나 하는 소리이다.
P81. 공회체제의 첫 원칙인 성경법주의를 현실 교회체제에 적용한다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성경법 유일주의’일 것이다. 현재 일반 교회들의 교회 설립과 체제 및 운영은 대개 성경 외에 교회헌법을 제정하여 기준삼고 있다. 그 이름이 어떻게 붙여지든 참고서가 아니고 성경 외에 법으로 존재하는 것은 부인되어야 한다. 즉 ‘교회헌법 배제주의’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또한 성경 외에 규격화되고 형식화 된 것도 전부 배제 되어야 한다.
‣ 여기에서 ‘교회헌법 배제주의’는 오류 된 말이다. 이것은 이영인 목사의 개인적 생각이다. 총공회 행정은 1966년도에 발표한 ‘개교회 발족취지 4개항, 정치 5개항’이 있고, 재확인을 위하여 1989년도에 발표한 ‘개교회 취지 1개항, 정치 7개항’이 있다. 이 발표문에서 보면 ‘정통교회들의 교리, 신조는 참고로 한다.’ ‘정통 교파들의 헌법, 평신도 의사 등 참고한다.’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총공회는 ‘성경법’으로 하고 정통교회들의 교리신조를 참고하며 또 정통 교파들의 헌법을 참고하는 것이다.
P81. 교회의 운영은 각 개인의 신앙자유와 각 교회의 교회단위 자유성의 기본이다.
‣ 이 글에서 ‘각 교회의 교회단위 자유성의 기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독립교회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므로 총공회의 개교회에 대한 본질을 왜곡하는 말이다.
P82. 하나님께서 만든 인간의 원래 본질은 자유성이다.
‣ 이 글에서 ‘하나님께서 만든 인간의 원래 본질은 자유성이다’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원래 사람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P82. 이 자유성 때문에 6천년 세월이 흘러가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의 평생이라는 세월이 소요되고 있다.
‣ ‘하나님께서 만든 인간의 원래 본질은 자유성’이라고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연속적 오류 된 말을 하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의 자유성 때문’이라는 말씀은 없다.
P82. 개교회 자유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신앙은 근본적으로 자유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 개교회의 자유를 확보하는 이유를 인간의 자유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개교회 자유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적 자유이다. 더 성경적으로 말하면 눅4:18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이다.
P86. 예를 들어 목회자나 총회장이라는 자리에 항상 주어지는 권리나 권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총회장은 교권직이기 때문에 교권적 권리나 권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목회자는 목회직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목회적 권리나 권한은 항상 주어져 있다.
P87. 설교권이라는 것이 어느 직책에 항상 주어진다거나 어떤 신분에게는 항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 내의 권위를 직책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 설교권은 항상 목회자에 주어져 있다. 목회자 자체가 설교를 전무하는 직책이다. 행6:4에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하셨다.
P87. 설교권이 없는 사람이 설교할 실력과 자격을 가질 때도 있다. 이런 것은 교회의 법과 제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 ‘설교권이 없는 사람이 설교할 실력과 자격을 가질 때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설교할 자격은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는 목회직이다. 설교권이 없는 사람이 설교할 실력이 있으면 그 교회 목회자의 형편에 따라 설교할 수 있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설교권이 없는 사람이 설교할 실력과 자격을 가질 때도 있다. 이런 것은 교회의 법과 제도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이단 지방교회 등의 주장이다.
P87. 교회의 인사권, 행정권, 회계처리건, 권징권 등 모든 권한과 권위는 오직 성경에 옳으냐 틀렸느냐는 것에 기준을 두어야 하지 어떤 제도나 직책이나 어느 한 개인에게 어떤 권위를 고정적으로 허락하는 것은 성경에 틀렸다.
‣ 교회의 인사권, 행정권, 회계처리건, 권징권 등은 개교회에 엄연히 그 제도와 직책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제도와 직책을 시행할 때에 오직 성경에 옳으냐 틀렸느냐 하는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P92. 3. 생활
P92. (1) 경건의 신앙
P94. (2) 하나님 중심의 경건
P99. (3) 성장의 경건
P101. (4) 순교의 경건
‣ 이 부분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에서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92∼P107이다.
P93. 그의 생전이나 사후 그의 신앙 길을 그대로 이어가는 이는 그의 신앙의 자녀들이며 그의 육의 형제 친지 목회자들 중에서는 거의 없다.
‣ ‘백영희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가는 이’를 엄격한 잣대로 잰다면 그의 제자들 중에는 몇 사람이나 될까? 그러나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 길을 그대로 이어가려고 노력한 친자가 있었다. 우리가 알듯이 백명희 선생이다. 그리고 지금 백도영 목사가 이 책으로 인하여 부친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왜곡되고 있어서 애타하며 그 대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여튼 매도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저의가 나쁘다.
P101. 하나님 앞에 세워놓은 자신을 볼 때마다 그는 평생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았다. 모든 사람이 눈이라도 빼줄 수 있었던 속에서 그는 늘 가장 큰 죄인이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백영희라는 인물은 너무도 큰 죄인이며 그는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욱 큰 죄인으로 이해되고 있다.
‣ 이 글을 쓴 자에게 묻는다. 백영희 목사님이 무슨 가장 큰 죄인이었든가? 또 평생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았든가? 그리고 그의 설명은 무엇이며 언제 들었나? 과장되게 소설 쓰듯 하면 안 되는 것이다.
P101. 그러므로 죄가 많았던 교회였고 죄가 많았던 사람들로 그의 주변은 늘 가득 찼다.
‣ 이 말은 과장된 말이다. 서부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으로 늘 충만하였다. 그 현장에 있었던 우리들이 그 증인이다.
P101. 그는 평생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단 두 가지였다. 바로 자신의 큰 죄를 설교할 때였다.
‣ 이 말 또한 과장된 말이다. 백영희 목사님의 강단설교는 10년 치 5,000여 설교를 한 자도 가감 없이 녹음본과 문자화 되어 책으로나 웹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어디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설교할 때가 있었는지 이 자료에서 그 증거를 제시해 보기 바란다.
P102. 정사(情死)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노트에 적어가며 주님께 받은 이 사랑에 감격하고 그 보답은 오로지 그를 위해 죽어 드릴 수 있다면… 이 소원이었다.
‣ 정사(情死)는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해 함께 자살하는 일’이다. 그런데 백영희 목사님의 순교를 ‘정사(情死)’로 표현하는 것은 왜곡이며 또한 모독이다.
P103. 정상적인 우리가 본다면 그는 분명 제 정신이 아니었다.
‣ 백영희 목사님의 경건을 말하면서 또 이런 투로 말하는 것은 이 글 쓴 사람의 정신을 점검해 보고 싶다.
P103. 백영희의 평생은 “정사”라고 표현한 자신의 글대로 “주님 사랑에 죽는 정사, 마지막 죽음을 주님 사랑함에 바쳐죽는 정사”로 나아갔다.
‣ 앞에 언급한대로 ‘정사(情死)’라는 표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P106. 이만큼 개혁의 선봉에 있던 이가 있었던가! 그렇다면 너무도 변동이 많고 변화가 많아 전통교회의 정통 시각으로 본다면 자유주위 방탕주의라고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
‣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전통교회의 정통 시각으로 본다면 자유주위 방탕주의라고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말하는데 글의 전개에 있어서 저의를 의심할만하다.
P107. Ⅲ. 백영희의 터
P107. 1. 사역
P125. 2. 영향
P132. 3. 관계
‣ 이 부분은 박선혜의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책에서 거의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07∼P141이다.
P117. 목회자 양성원은 일반적인 신학교의 차원을 넘어 수도원적 특성을 가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목회자양성원은 수도원적 특성을 가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총공회 목회자양성원은 목회를 하면서 신학공부를 하는 것이 초기의 평양신학교와 닮은 면이 있다.
P129. ‘공회는 강제법이 없었지만 최소원칙은 정하여 발표하도록 했다.
제1원칙: 발명제안권 - 발명은 더 좋은 것을 찾아내어 발언한다는 뜻
제2원칙: 발견발언권 - 발견은 나쁜 것은 찾아내어 지적한다는 뜻
제3원칙: 정진(停進)의 보응 - 제안권과 발언권을 심사평가하여 정진의 보응으로 발언권의 가감’
‣ 이 원칙을 총공회의 공회행정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적이 없다.
P132. 핵심은 ‘거듭난 영혼은 범죄치 아니한다’는 주장을 칼빈주의 신학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 앞에 언급 하였지만 백영희 목사님은 ‘거듭난 영혼’이 아니라 ‘거듭난 영’은 범죄치 않는다고 하였다. 사람의 인성에서 ‘영’과 ‘영혼’은 차이가 있다. 요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하셨다. 그러므로 영혼에서 ‘혼’은 본래 육에 속한 요소이다.
P132.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의 조직 및 현황(1986. 10. 8)
‣ 위의 도표는 본래 조직도에서 가감되어 왜곡 되었다. 왜곡된 오류 부분은 다음과 같다.
- ‘개교회와 총공회’ 사이에 연결선이 끊어졌다.
- ‘운영위원회’가 추가 되었다.
- ‘개척위원회’를 ‘개혁위원회’로 변경되었다.
- ‘5개 위원회’에 ‘노원’과 ‘소원’이 누락되었다.
- ‘교역자회’ ‘목회자양성원’ ‘행정실’이 누락되었다.
※ 위의 왜곡된 조직도를 본래대로 정정하면 다음과 같다.
P134. 1) 개교회: 교회 자유원칙에 따라 개체교회는 하나의 신앙생활의 단위로서 일체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 이 글에서 ‘개교회: 교회 자유원칙에 따라 개체교회는 일체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말하는데 옳지 않다. 그런 것은 독립교회가 그렇다. 개교회는 목사 안수, 조사 임명, 교역자 이동, 재산 처리, 유고 처리를 개교회 목회자가 지방적으로 모이는 지방공회나 전국적으로 모이는 총공회에서 성경법(행15:18) 일치 가결(행15:25)로 결의한다. 결의 후에 지방공회나 총공회는 해산하고 개교회 위에 상존기관은 두지 않는다.
P135. 3) 총공회: 개교회를 도와 교역자 이동 문제 및 여러 가지 난제를 협의하여 권면한다.
‣ 이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런 것은 개교회의 문제를 총공회에서 성경법으로 진리전원일치로 결의한다. 이것은 기본적 사항이다. 차이가 있을 때에는 상호 이해와 권고로 그친다.
다음은 총공회 행정 즉 ‘개교회 취지 및 정치’ 1차, 2차 발표문에서 관련부분만 발췌하였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 1차 발표문 1966년도
③ 사건에 적응시키는 성경 깨달음은 각자의 양심대로 할 것이나 차이가 있을 때에는 상호 이해시키는 것으로 노력한다.
④ 권징은 먼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다음은 공회적으로 권한다. 듣지 아니 할 때는 다만 상관없음을 교계 기관지에 공개하고 불간섭하는 것으로 끝나고 다만 엄밀한 기도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⑤ 교역자 이동 개교회의 교역자 이동은 본인의 의사와 교회의 형편과 동역자의 의사와 사회의 여론을 따르되 불복 시는 하나님께 맡긴다.
- 1989년 2차 발표문
➄ 공회 행정은 정통교단들의 헌법과 위원들의 심의 의사와 평신도들의 의사까지 종합심사 성경 명분대로 결정하고 시행은 이해와 권고로 그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및 개인 양심 자유에 맡겨둔다.
P137. 백영희는 한 주간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고통을 당하다가 최종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정을 짓고 비로소 안심했다.
‣ ‘백영희 목사님은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불안과 고통을 당하다가’하는 말은 공연히 지어낸 말이다. 백영희 목사님은 일제 신사참배를 이기시고 6·25 환란을 승리하신 분이다.
P141. 결론
P141. 1. 고신에서 단절된 백영희의 신앙노선
P143. 2. 백영희 신앙노선의 성격
P145. 3. 백영희의 개교회주의
P146. 4. 백영희 신앙노선에 대한 반론과 응답
‣ 이 결론 부분에서 조차도 김남식 박사의 글은 전혀 없고 전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41∼P148이다.
P145. 따라서 교회 행정노선상 개교회주의를 가졌기에 그에게는 또한 전적 은혜로 얻는 개신교의 절반 성취를 개인의 노력으로 건설해야할 성화구원이 있음을 체계적으로 밝혀 개신교의 남은 절반을 찾게 된다.
‣ 이 글에서 ‘교회행정 노선상 개교회주의를 가졌기에 전적 은혜로 얻는 기본구원과 개인의 노력으로 성화구원이 있는 것을 체계적으로 밝혔다’는 말은 진리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개교회는 교회정치이며 기본구원과 건설 구원은 성경교리이다.
P146. 각주에서, ‘69) 이병철, “백영희의 대속론 연구”, 웨스트민스터대학원 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3’
‣ 각 주에는 이렇게 표시 되었으나 실제로는 이병철 목사의 글이 전혀 복제나 인용이 없고 이름만 올려 있다고 하였다.
P147. 마지막으로 총공회는 그 교단의 노선이 개교회주의에 철저하기 때문에 실은 분열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 개교회이기 때문에 실은 분열이라는 개념이 없는 신앙노선이다.
‣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총공회의 개교회 신앙노선을 독립교회로 여기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2015.09.06 00:41
제 3장. ‘제 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 왜곡부분 발췌
제 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
P151. 서론
P151. 1. ‘백영희 신학’의 가능성
P152. 2. 선행연구
P154. 3. 연구의 범위
‣ 이 부분은 김남식 박사의 글로 본다. ‘151∼154 페이지’ 4쪽 분량이다.
이 부분에서 문제 되는 글은 ‘1부. 복제를 중심으로’에서 언급하였다.
P155. Ⅰ. 구원론
P156. 1. 백영희의 구원론의 특징
P159. 2.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의미
P162. 3. 기본구원의 특징과 내용
P168. 4. 건설구원의 특징과 내용
P174. 5. 백영희의 구원론에 대한 비판과 변증
‣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 논문에서 거의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55∼P156와 이 책 내용 P159∼P174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논문에서 거의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56∼P15와 이 책 내용 P174∼P177이다.
P157. 신학계에서 구원의 순서나 구원의 단계를 서로 다르게 설명할지라도 하나님 단독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은혜와 신인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은혜를 나누는 데는 서로 일치하고 있다.
‣ 이 말은 우리 신학계의 보편적 학설이다. ‘하나님 단독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은혜’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신인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은혜’라는 말은 맞는 말 같으나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은혜’는 인간의 공로나 협력 없이 전적 하나님이 거저 베푸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인협력’이라고 말하면 사람의 공로가 포함되는 것이기에 진리적 논리로 맞지 않다. 그런데도 신학에서 ‘신인협력’으로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이해는 된다. 그런 것은 신자의 믿는 행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리에 대하여 성경 진리적으로 표현하자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이에 대한 성경 근거는 다음과 같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다./ 그렇기에 건설구원에서 ‘믿음’을 말하지 않고 ‘신인협력’을 말하면 엇비슷한 것 같으나 진리적으로 크게 벗어난 말이다.
P157.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한 기본구원의 터 위에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다하여 이루어 가는 구원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 이 말은 구원의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한 기본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기본구원의 터 위에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다하여 이루어가는 구원이 아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이다.
P158. 백영희는 하나님 단독의 은혜와 구원역사를 기본구원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를 합하여 이루는 구원을 건설구원으로 설명함으로써 획기적 구원론의 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맞는 말은 ‘하나님 단독의 은혜와 구원역사를 기본구원으로 규정하고’이다. 틀린 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를 합하여 이루는 구원을 건설구원으로 설명함으로써’이다. 왜냐하면 건설구원은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건설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를 합하여 이루는 구원이 아니다. 즉 사람의 어떤 행위 자체가 건설구원이 되지 않는다.
다시 설명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은혜) 우리가 그 구속을 믿어 즉 구속을 힘입는 사는(믿음)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은혜) 구원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우리의 구원(기본구원)이 되는 것과 그리고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우리의 구원(건설구원)이 되는가를 분명히 모르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교리 표현에서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P158. 그리함으로써 그동안 대립과 마찰을 계속하여 온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를 무리 없이 잘 조화할 수 있게 하였다. 은혜와 공로, 예정과 성결, 믿음과 행위의 문제를 무난히 조정할 수 있고 복음과 율법의 역할을 수용하여 일치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구원론 즉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진리 도리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대비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그런 것은 기본구원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또 건설구원에서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자유이다. 즉 눅4:18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이다.
신학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지만 성경에는 ‘자유의지’라는 말씀이 없다. 또한 이 글에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대비하여 ‘은혜와 공로’ ‘예정과 성결’ ‘믿음과 행위’ ‘복음과 율법’으로 말하는 것은 이 또한 구원에 대한 진리 도리를 잘 모른다는 증표이다.
P159.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구주로 구원의 터가 되어지며(고전3:11) 스스로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 선지자들의 터 위에 머릿돌로 구원을 이루어 가신 것이다(히5:7-9).
‣ 여기에서 틀린 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스스로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라는 부분이다.
(히5:7-10)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신 것은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스스로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 선지자들의 터 위에 머릿돌로 구원을 이루어 가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비성경적이다.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우리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하여 ‘스스로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 선지자들의 터 위에 머릿돌로 구원을 이루어 가신 것이라’ 말하는 것은 심히 위험한 오류이다.
P160. 기본구원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적 은혜로 선물로 받은 것이다. 건설구원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따라 예수님의 공로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받는 것이다.
‣ ‘기본구원’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3-6)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12) 것이다. ‘건설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14)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구원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받는 것’으로 표현 하는 것은 기본구원에 대한 도리가 분명치 못한 표현이다./ 그리고 ‘건설구원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따라 예수님의 공로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받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건설구원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아니라 우리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이다.
P160.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다 같이 한 번 받으므로 완성되는 기본구원이다. 성찬은 사람에 따라 먹는 정도가 다 다르므로 성찬으로 받는 구원의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다.
‣ ‘세례’는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기본구원),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엡1:13: 건설구원) 즉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속한다. 그리고 ‘성찬’은 무엇인가? 떡과 잔으로서 주의 살(롬8:11)과 주의 피(엡1:13)를 기념하는 것이다. 즉 ‘잔’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며, ‘떡’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 곧 보혜사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찬도 건설구원에 속한다.
P160. 영은 다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본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육은 사람에 따라 구원을 이룬 정도가 다 다르므로 건설구원에 속했다.
‣ 이 말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내심은 알겠지만 나타낸 말은 진리적 도리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면 영의 구원이 있고 또 육의 구원이 별도로 있는 것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역으로 말하면 기본구원은 영에 속한 것이고 육에 속한 것이 아닌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구원은 범죄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엡1:7)을 받은 것이다.
P160. 중생은 다 같이 한 번만 은혜로 받는 기본구원이요 성장은 모든 사람의 신앙에 따라 차이가 나는 건설구원이다.
‣ 기본구원에 대한 설명은 맞지만 건설구원에 대한 설명은 부정확하다. 성경 딛3:5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하셨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말하면 중생의 씻음(기본구원)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건설구원)이다.
P160.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공통적으로 받는 기본구원이지만 그가 지상과 천국에서 경영하는 기업은 다 다르므로 건설구원에 속한다.
‣ 이 말은 애매모호한 말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무엇이라 정의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건설구원에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P160. 그리스도의 중보의 대속으로 의롭게 되는 칭의는 공통적인 기본구원이지만, 신앙과 행위를 따라 이루는 성화는 사람마다 다른 건설구원이 되는 것이다.
‣ ‘성화’를 건설구원으로 표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칭의’를 기본구원으로 말하려면 그에 대한 근거 성구를 분명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그 까닭은 칭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의 성구를 자세히 살펴보자.
(롬3:24-2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이다. 그리고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은 ‘우리의 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에게 기본구원이 되며 우리의 의는 건설구원이 된다. 그리하여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우리에 대한 ‘칭의’는 건설구원에 속한다.
P160. 영, 혼, 몸의 본체는 공통적으로 구원을 받는 기본구원이지만 영, 혼, 몸의 기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건설구원이 된다.
‣ 영, 혼, 몸의 본체는 기본구원으로 영, 혼, 몸의 기능 차이는 건설구원으로 표현하는 것은 맞는 말 같으나 성경을 근거하여 엄밀하게 분석하면 진리적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 것은 영, 혼, 몸의 ‘본체’와 영, 혼, 몸의 ‘기능’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본체에서 기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 혼, 몸의 ‘본체’가 기본구원으로 보이는 것은 범죄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히9:12)를 받기 때문이며, 영, 혼, 몸의 ‘기능’이 건설구원으로 보이는 것은 믿음으로 의를 이룬 공력은 영생의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다음의 성구를 보면 범죄한 기능만 말씀하지 아니하고 범죄한 자를 말씀하고 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P161. 생명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기본구원으로 받지만 생명이 생활하는 영생의 모습은 다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는 건설구원에 속한다.
‣ ‘생명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기본구원’으로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생명은 주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생명이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생명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기본구원으로 영생을 건설구원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P161. 선택은 신자가 받는 기본구원이지만 자유는 각각 다르므로 건설구원에 속한다.
‣ ‘선택은 신자가 받는 기본구원’이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자유는 각각 다르므로 건설구원에 속한다’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구원이 건설구원이다. 자유 곧 자유의지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철학적 용어이다.
P161.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선천적으로 이루어 진 것은 건설구원이 아니지만 후천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약 경우는 건설구원에 속한다. 몸의 여러 지체와 같이 선천적 차이는 건설구원은 아니지만 후천적 차이를 이루는 실력은 건설구원이 되는 것이다.
‣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선천적으로 이루어 진 것은 건설구원이 아니지만’이라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그런 것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은 남녀와 노소와 빈부와 귀천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구원은 차별 없이 받은 성격을 말한다. 그리고 ‘몸의 여러 지체와 같이 선천적 차이는 건설구원이 아니지만’으로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몸의 지체는 각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구원에 대한 대표적 성구는 롬3:22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하셨다.
P161.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기본구원이고 행함으로 받는 구원은 건설구원이다.
‣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은 건설구원으로써 기본구원이 아니다. 믿음에는 우리가 믿는 행함이 있다. 그런데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여 믿음을 기본구원으로 행함을 건설구원으로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롬3:24-26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은 기본구원에 속하며 이것을 성경에는 믿음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엡1:13) 즉 주 예수를 믿어 의롭게 되는(갈2:16) 우리의 의는 건설구원에 속한다.
(롬3:24-2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P161. 종자적으로 받는 구원은 기본구원이고 결실한 정도에 따라 받는 구원은 건설구원이다.
‣ 이런 말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대비하는 것은 진리적 도리의 명확성이 부족하다.
P161. 송종섭은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구원을 구분하였다. 엄밀하고 정확한 것은 아니라 중복적이고 생소하여 오해를 일으킬 부분이 많지만 현 단계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 송종섭 목사 자신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구분을 설명을 했지만 엄밀하고 정확한 것은 아니라 중복적이고 생소하여 오해를 일으킬 부분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도표 즉 송종섭 목사가 정리를 자료를 복제 편집해놓고 서문에는 ‘백영희가 주장하기를’로 조작하고 있다.
‣ P162. (※ 아래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하여 송종섭 목사가 정리한 도표이다)
| 기본 구원 | 건설 구원 |
1 | 영 구원 | 육 구원 |
2 | 종자 구원 | 결실 구원 |
3 | 생명 구원 | 영생 구원 |
4 | 중생 구원 | 성장 구원 |
5 | 칭의 구원 | 성화 구원 |
6 | 자녀 구원 | 실력 구원 |
7 | 본체 구원 | 기능 구원 |
8 | 인격 구원 | 기업 구원 |
9 | 천국 구원 | 영광 구원 |
10 | 믿음 구원 | 행위 구원 |
11 | 선택 구원 | 자유 구원 |
12 | 세례 구원 | 성찬 구원 |
‣ 위의 도표에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구분은 오류가 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 기본 구원 | 평가 | 건설 구원 | 평가 |
1 | 영 구원 | × | 육 구원 | × |
2 | 종자 구원 | △ | 결실 구원 | △ |
3 | 생명 구원 | × | 영생 구원 | ○ |
4 | 중생 구원 | ○ | 성장 구원 | △ |
5 | 칭의 구원 | △ | 성화 구원 | ○ |
6 | 자녀 구원 | ○ | 실력 구원 | ○ |
7 | 본체 구원 | △ | 기능 구원 | ○ |
8 | 인격 구원 | × | 기업 구원 | ○ |
9 | 천국 구원 | △ | 영광 구원 | ○ |
10 | 믿음 구원 | × | 행위 구원 | ○× |
11 | 선택 구원 | ○ | 자유 구원 | × |
12 | 세례 구원 | × | 성찬 구원 | × |
※ 다음은 백영희 목사님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자료이다.
● 제목: 기본구원(1980년도 27공과)
1.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기본구원이요 하나는 성화구원 곧 건설구원 행위구원이라고도 하는 구원이다. 기본구원은 우리들이 알기도 원하기도 있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로 단독이 이루어 우리들에게 주어 입게 하신 구원이다. 성화구원은 이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서 하늘에서 기본구원을 받은 자의 생활을 하게 하는 구원이니 하면 구원이 되고 안하면 기본구원은 그대로 있고 성화구원 안 되는 것이다.
2. 기본구원은 모든 성도들이 꼭 같이 구원을 받는 것이요 성화구원 건설구원은 천층만층도 넘는 수많은 차이 있는 것이다. 기본구원은 우리가 털끝만치도 상관할 것도 없고 다만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을 버리지 말고 기본구원을 이미 받았으니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사는 데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
3. 기본구원은 일곱 가지로 순위 할 수 있으니 ① 하나님의목적 안에서 출생한 것이요. ②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은 것이요. ③ 중생한 것이요. ④ 하나님의 아들된 것이요 ⑤ 영생하는 생명을 이미 가진 것이니, 이 다섯 가지는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택한 자는 받아 가지고 있는 구원이요. 여섯 일곱째는 불변의 확정은 되어 있으나 이루어지기는 예수님의 재림 때와 심판 뒤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⑥ 신령한 몸으로 부활 받는 것이요. ⑦ 무궁한 천국에서 천국시민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독실한 신앙가들은 이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제목: 기본구원과 건설구원(백영희목회설교록 1983년 10월 2일 주일오후를 요약정리)
1. 기본구원
기본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은 것이다. 즉 선택, 예정, 창조, 그리스도의 대속, 중생, 하나님의 자녀, 하늘나라의 시민권, 피와 성령과 진리의 보증, 성화구원의 씨, 생명의 부활이다.
첫째, 선택: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택함을 입은 것
둘째, 예정: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예정을 하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예정. 목적 안에 예정된 자를 그 목적대로 성취하는 예정.
셋째, 창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우리를 창조할 때에 구원 얻을 자로 창조.
넷째, 그리스도의 대속: 구원 얻을 자로 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을 받음
다섯째, 중생: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 우리의 영이 중생이 됨
여섯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인해서 중생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됨
일곱째, 하늘나라 시민권: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인해서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음
여덟째, 셋 보증: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인해서 물과 성령과 피, 이 셋 보증을 우리가 받음
아홉째, 성화구원의 씨: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창조를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사용권을 받아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씨를 받았다. 우리가 기본구원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다 우리 구원 위해서 쓸 수 있고 하나님의 창조를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쓸 수가 있고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성화구원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씨를 우리가 동등하게 받았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잘 기르고 어떤 사람은 기르지 안하고 씨만 그대로 가지고 있다.
열째, 생명의 부활: 예수님 재림하시면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는데 택함 받은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받는다.
2. 건설구원
첫째, 건설구원의 자본이 뭐인가? 기본구원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모든 자본이다. ‘기본구원을 사용해서 건설구원을 만든다’ 말하면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마는 실은 모순된 말이다. 기본구원을 힘입어 건설구원을 이루는데 우리가 건설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기본구원을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 배반하지 안하면 기본구원이 그대로 있다. 그런고로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의 혜택을 벗어버리지 안하고 기본구원의 은총 안에 있으면 된다. 기본구원을 배척하지 안하면 기본구원은 자기 구원이 되어지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마음과 몸이 변화 받는 것이다. 기본구원을 영은 입고 있다. 그러므로 기본구원의 마음이 되는 것이 성화구원이며, 기본구원의 몸이 되는 것이 성화구원이며, 기본구원의 행동이 되는 것이 성화구원이다.
셋째, 우리의 중생된 영과 그리고 육이라면 심신인데 영과 육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움직여지는 것이 행위구원이다.
넷째, 제사장직 자격을 이루고 선지자직 자격을 이루고 왕직의 자격을 이룬다. ‘제사장직’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친밀히 화합시키는 것이다. ‘선지자직’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피조물들에게 운반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충만한 것을 인간에게 줄 때에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신다. 순종하면 실상이 되어진다. ‘왕직’은 다스리는 통치직이다. 말하자면 아무리 하나님하고 화합이 됐고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졌다 할지라도 모든 질서와 조직과 정리 정돈들이 하나님과 배치되면 깨진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배치되지 안하도록 모든 것을 잘 정리하는 정리직이다. 제사장은 화목의 직책이요, 선지자는 운반직이요, 왕직은 정리직이다.
※ 아래는 백영희 목사님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설교를 근거하여 논평자가 정리한 도표이다.
| 기본 구원 | 건설 구원 |
첫째 | 선택 | 1. 건설구원의 자본은 기본구원으로서 기본구원을 힘입어 건설구원을 이룬다. |
둘째 | 예정 | |
셋째 | 창조 | 2. 기본구원의 마음, 기본구원의 몸, 기본구원의 행동이 되는 것이 성화구원이다. |
넷째 | 그리스도의 대속 | |
다섯째 | 중생 | 3. 중생된 영과 심신의 육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움직여지는 것이 행위구원이다. |
여섯째 | 하나님의 아들 | |
일곱째 | 하늘나라의 시민권 | 4. 건설구원은 제사장 직책을 이루고 선지자 직책을 이루고 왕 직책을 이룬다. |
여덟째 | 물과 성령과 피의 보증 | |
아홉째 | 성화구원의 씨 | ※ 건설구원은 성화구원, 행위구원, 기능구원, 영광구원, 상급구원이다. |
열째 | 생명의 부활 |
※ 아래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김반석 목사가 정리한 것이다.
| 기본 구원 | 건설 구원 | 성구 |
1 | 하나님의 의 | 우리의 의 | 롬3:21-28 |
2 | 예수 그리스도의 터 | 우리의 공력 | 고전3:10-13 |
3 |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 그 안에서 믿어 | 엡1:3-14 |
4 | 중생의 씻음 | 성령의 새롭게 하심 | 딛3:5 |
5 | 다 한 성령을 마시게 | 다 한 성령으로 세례 | 고전12:13 |
6 | 입으로 시인 | 마음에 믿음 | 롬10:9-10 |
7 | 은혜 | 믿음 | 엡2:8 |
8 | 주의 은혜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 딤전1:14 |
9 |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것 | 저를 믿는 자 | 요3:16 |
10 |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간 다섯 처녀 | 마25:1-13 |
P162. ① 하나님의 단독 역사이다. 기본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단독 역사인 점이 그 첫째 특징이다. 건설구원은 구원 받은 신자의 협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협력성이 특징이라면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독력성이 그 특징이다. “오직 은혜”라는 개혁자들의 표어는 기본구원에 해당하는 것이고 자유 의지에 따르는 충성은 건설구원에 해당되는 것이다.
‣ ‘기본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기본 구원에 대한 설명이 맞다. 그러나 ‘건설구원은 구원 받은 신자의 협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협력성’은 맞지 않다. 왜냐하면 건설구원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로나 협력이 구원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협력성으로 대체하는 것은 성경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자유의지와 관련시키는 것도 성경 진리에 맞지 않다.
P163. 세례는 한 번이지만 성찬은 평생 계속되는 것과 같다. 목욕은 한 번하면 다시 할 필요가 없지만 서로 발을 씻는 것은 평생 계속하는 봉사의 생활이라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바와 같다(요13:1-11).
‣ 세례와 성찬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하였기에 생략한다. 요13:1-11에서 목욕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엡1:7)하신 중생 곧 중생의 씻음(딛3:5)을 말씀하고, 발을 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심을 받는(엡1;13) 성령으로 세례 곧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발을 씻는 것에 대하여 봉사의 생활로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P164. ④ 선민이 공통적으로 이루는 구원이다. 기본구원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루는 것이지만 건설구원은 각자 다르게 이루는 구원이다.
‣ 선민이 ‘공통적’으로 ‘이루는 구원’으로 말하면 틀린다. ‘공통적’은 ‘차별 없이’가 맞고, ‘이루는 구원’은 ‘얻은 구원’이 맞다. 그리고 ‘건설구원은 각자가 다르게 이루는 구원’이라는 말은 건설구원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P164. ② 예정구원: … 같은 선택을 받아도 남자로 태어나거나 여자로 태어나거나 흑인으로 태어나거나 백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 이런 말은 ‘예정구원’에 대한 진리적 도리를 벗어난 표현이다.
P168. ① 인간의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구원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성품은 자유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약이다.(갈5:1)
‣ 이 글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성품은 자유’라고 말하는데 성경에 없는 말로서 세상의 철학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말씀에서 자유는 어떤 자유를 말씀하는가? 눅4:18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하는 말씀이다.
P169. 자유로운 동의에 의한 구원이 바로 건설구원이다. 동의가 필요 없는 구원은 기본구원이다. 믿음이 자람에 따라 자유의 분량도 자라간다. 따라서 동의의 조건도 점차 강화된다. 성경은 거의 대부분이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나 소원이나 노력의 협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
‣ ‘자유로운 동의에 의한 구원이 바로 건설구원’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자유’는 자유의지를 말하고 있는데 이 자유의지는 육에 속한 요소이다. 그리고 ‘동의에 의한 구원’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다. 건설구원이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나 소원이나 노력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이 건설구원이다. 이렇게 연속해서 오류 된 말을 하는 것은 갈5:1에서 말씀하는 ‘자유’를 인간의 자유의지로 잘못 깨달은 까닭이다.
P169.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에게 맡기시고 월권하시지 않는다.
‣ ‘자기에게 맡기시고 월권하시지 않는다’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건설구원을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시키다보니 연속해서 오류가 발생되고 있다.
P171. ➃ 건설구원은 완전한 것이다. 성경은 완전한 행위를 요구하고 있다.
‣ 믿는 신자가 완전한 행위를 해야 건설구원이 되는가? 그렇다면 믿은 지 얼마나 되지 않는 초신자의 행위는 완전할까? 건설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설구원은 우리의 완전한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갈4:19) 건설구원이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P173. 이미 구원을 받은 자가 이루어야 할 새로운 구원의 내용은 무엇인가?
‣ 이미 구원을 받은 자가 또 새로운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두 종류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P174. “백조사는 안하무인이다. 유아독존이다. 한국 엘리야다. 저만 의인이다. 독선주의다. 뭐 별명이 많이 붙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철이 없어서 그런 소리를 들을 만치 선배들에게 근심을 끼쳤어” 이 말에서 목회 초기 전도사 시절에 그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으며 어떠한 성격이었으며 어떠한 비난을 받았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를 죽여 버려야 할 이단자로 증오한 사람들도 있었다.
‣ ‘그를 죽여 버려야 할 이단자로 증오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하는데 근거 없는 지어낸 말로서 저의가 나쁘다.
P176. 백영희는 영은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형상이고 영혼은 짐승도 가지고 있는 육신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 ‘백영희는 영은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형상이고 영혼은 짐승도 가지고 있는 육신의 생명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는데 이런 비성경적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백영희목회설교록’에서 검색해보기를 바란다.
영은 성령으로 난 것이 영이다(요3:6).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리고 짐승은 혼은 있으나 영혼은 없다.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중생된 자에게만 있다.
P176. 영혼과 몸으로 된 육신의 옛 사람은 악령을 따라 항상 범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인 거듭난 영을 따르는 새 사람은 절대로 범죄 할 수 없다.
‣ 이 말은 사람의 인성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자의 서술로서 진리적 논리가 없다. 그리하여 ‘영혼과 몸으로 된 육신의 옛 사람’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그런 것은 인성구조적으로도 맞지 않고 또 옛 사람에 대해서도 맞지 않는 말이다. 인성구조 이분론은 영과 육이다. 그러므로 혼은 육에 속한 요소이기 때문에 영혼과 몸으로써 이분론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인 거듭난 영을 따르는 새 사람은 절대로 범죄 할 수 없다.’는 말도 오류가 있다. 그런 것은 거듭난 영을 따르는 새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 사람에 대하여 엡4:24과 골3:10에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그리고 ‘절대로 범죄 하지 않는 새 사람이라’ 말하는 것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즉 ‘중생된 영’으로 범위를 국한시켜야 한다.
P176. Ⅱ. 삼분설
‣ ‘삼분론’에 서문 부분 ‘177∼181 페이지’ 5쪽 분량은 김남식 박사의 글로 보인다.
P178. 아담이 흙으로 지음 받았다.(창2:7)는 사실은 인간이 물질적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인간은 흙으로 지음 받은 흙의 인간이다. 하나님이 물질적 존재로 인간을 만드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땅의 성질(地性)을 지닌다’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땅의 성질(地性)을 지닌다’는 말은 성경 진리를 전혀 모르는 자의 소리이다.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생령의 사람으로 지으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이다.
P178. 물질적 피조물인 인간이 타락 후에 저주를 받게 되었다.
‣ 이 말도 비성경적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은 물질적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그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2:7). 즉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P179.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명을 주신 것이다. 영을 불어넣는 행위가 인간을 생명체로 만든 근원이다.
‣ ‘영을 불어넣는 행위가 인간을 생명체로 만든 근원’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그런 것은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생명체가 된 것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기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거하시는 지극히 큰 능력(엡1:19-20, 롬8:11)으로써 우리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체와 생명의 도리가 다르다. 그리고 ‘영을 불어 넣는 행위’로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영을 불어넣으신 것’으로 말해야 맞다.
P180. 성경에서 ‘영’과 ‘혼’이라는 단어가 혼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오해가 많다. ‘혼’이란 말은 인간의 전체성(全體性)에서 “전인(全人)”을 묘사한다. “혼”이란 말은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 요소의 통일성을 지닌 인간을 지칭한다. “영”은 항상 몸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비물질적 측면을 묘사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혼”이라 하지 않고 “영”이라 부르는 점이다.
‣ ‘성경에서 “영”과 “혼”이라는 단어가 혼용되고 있다’고 말하는데 잘못알고 있다. 성경은 영과 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요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하셨다. 즉 육은 혼과 몸의 요소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영과 혼을 혼용하지 않는다.
‘혼’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전3:20-21에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하셨다. 즉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 하셨다. 즉 사람의 혼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생령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사람의 혼에는 마음의 생각과 뜻(히4:12)이 속하여 있다.
요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하셨다. 그리하여 이 말씀을 근거하여 ‘하나님을 “혼”이라 하지 않고 “영”이라 부르는 점이다’라고 말하는데 비성경적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라는 말씀이다.
P180. 하나님의 형상이란 도덕적이요 지성적이다.
‣ ‘하나님의 형상이란 도덕적이요 지성적이다.’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골1:14-15).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시다.
P181. 1. 삼분론의 교리사적 특징
P184. 2. 인간의 3대 구성요소
P201. 3. ‘구원론’과 ‘삼분론’
이 부분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81∼P211이다.
P181. 사람의 요소, 어떤 실체로 이루어졌는가? 신체와 영혼 둘로 되어 있다는 이분설이 있고, 또 신체와 영혼 안에 영이 있어 세 가지 실제로 되어 있다는 삼분설이 있다.
‣ 이 글에서 ‘신체(몸)와 영혼 둘로 되어 있다는 이분설’은 교계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체와 영혼 안에 영이 있어 세 가지 실제로 되어 있다는 삼분설이 있다’는 말은 생소한 말이다. 또 이런 삼분설은 비성경적이다./ 백영희의 삼분설은 영과 육(요3:6) 이분설을 기본적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육은 혼과 몸으로 구성되었기에 영과 혼과 몸(살전5:23)으로서 삼분설을 말한다./ 성경에는 한 하나님으로 말씀한 성구도 있고 삼위 하나님으로 말씀한 성구가 있다. 그러면 그에 따른 진리의 도리 찾아서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인성에 대해서도 같은 성격이다.
P183. ‘영’의 존재를 밝혀서 믿음으로 중생되는 것은 ‘영’이며, 영의 중생 후 평생 말씀대로 힘써 행함으로 성화를 이루는 것은 마음과 몸인 것을 밝혀야 할 순서라는 것이다. 전자는 기본 구원, 후자는 건설구원이니 지금껏 구원을 하나로만 묻어둔 것을 둘로 밝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이 글에서 ‘믿음으로 중생되는 것이 영’이라 말하는데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것이 중생(딛3:5)이기 때문이다. 중생은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거저 은혜로 받은 것이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중생된 우리가 그 안에서 예수를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엡1:13). 만약에 믿음으로 중생이 된다고 하면 우리가 믿는 행함에 의해서 중생이 된다는 것이니 틀린 말이다./ 그리고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구원을 둘로 밝혀나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백영희 목사님은 구원을 둘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백영희 목사님은 ‘건설구원의 자본은 기본구원으로서 기본구원을 힘입어 건설구원을 이룬다.’고 하였다.
P183. 20세기 백영희신앙노선은 구원도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행위로 얻는 구원’을 성경이 말했듯이 이것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교리로 정리 요약하지 않으면 많은 의문과 미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 시대를 감당하기 위하여 이 교리 문제에 대하여 특별히 집중을 하고 있다.
‣ 이 글에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기본구원으로, ‘행위로 얻는 구원’을 건설구원으로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믿음’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우리가 믿는 행함이 있으므로 기본구원이 아니라 건설구원에 속한다. 이에 대해 다음의 성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기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 받은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건설구원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의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와 믿음에 대하여 간락하게 구분하는 법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에 대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P186.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참 자기’는 곧 ‘영’인 것이다.
‣ 사람에게 참 자기는 영이 아니라 ‘새 사람(골3:10)’이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P190. 왜 하나님이 이 위험한 자유성을 인간에게 주셨을까? 자유성을 가지는 존재라야 인격적 교제와 영광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며, 만일 자유성으로 범죄를 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구원의 방법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내셨다. 범죄 하여도 살 길이 있으니 일부러 자유를 주시고 인간에게 범죄까지도 허락하신 것은 자유성으로 범죄하고 범죄로 죽게 되면 여기서 하나님이 인간되어 하나님의 전부를 우리에게 줄 수 있게 되는데 하나님이 사람 되어 우리를 살리는 이 전적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것이 완전자가 다른 존재에게 자기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인 줄 알기 때문에 이 방법을 택하신 것이다.
‣ ‘범죄 하여도 살 길이 있으니 일부러 자유를 주시고 인간에게 범죄까지도 허락하신 것’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인간의 자유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철학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자유를 말하려다보니 하나님이 인간에게 범죄까지도 허락하신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약1:13에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하셨다.
P191. 마음 안에 요소들로는 욕심, 소원, 감정, 의지 등이 있다 하겠고 욕심도 그 종류가 무수하고, 감정 역시 그러하다.
‣ 마음 안에 요소를 성경적으로 말하면 ‘생각과 뜻’이다. 그 근거 성구는 다음과 같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P192. ‘영혼’ ‘심령’ ‘혼’ 등은 마음을 각도에 따라서 표현한 것이다. 즉 영이 아니라 마음이다.
‣ ‘영혼, 심령, 혼 등은 영이 아니라 마음이다’라는 말은 성경 진리를 잘 모르는 자의 소리로서 비성경적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혼에 거하시니 생령이 된 혼을 말한다. 그러므로 영혼을 마음이라 말하면 안 된다. 마음은 혼에 속한 요소로서 생각과 뜻(히4:12)이다.
‘심령’은 영의 생각(롬8:6)으로 사는 마음을 말한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혼’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생령이 되는 요소이다.
히4:12을 근거하면 혼에 속한 마음이고 마음에 속한 생각과 뜻이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P193. 어쨌든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영, 마음, 몸이 한 존재 한 인간이 됨과 동시에 내적으로는 주격, 소유격의 관계로 되어 지는 것이 정상이다.
‣ 인간의 인성구조를 ‘영, 마음, 몸’으로 말하고 있다. 성경적으로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영과 혼과 몸(살전5:23)’이다. 또한 히4:12을 근거해서 말하면 ‘영과 혼과 및 마음(생각과 뜻)과 몸(관절과 골수)’이다.
P194. 영은 단일성이라 죽은 영, 산 영으로만 구별하고 이에 따라 신자 불신자로 나눈다.
‣ ‘영은 단일성이라 죽은 영, 산 영으로만 구별하고’는 틀린 말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심신이 범죄 하므로 영이 주격 책임에서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 영이 다시 살아났다’이다. 그러면 과연 중생되기 전에는 영이 죽었는가? 성경을 근거하여 알아보자.
●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중생되기 전에 우리의 영이 죽었는가?)
(서론)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가 대개는 엡2:1을 근거해서 중생되기 전에는 우리의 영이 죽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면 중생되기 전에 우리의 영이 죽었는가?
(본론)
1.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
(골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라 하셨다. 그러면 우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은 너희는 무엇인가?
2.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
(롬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었다. 그러면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는 어떤 자인가?
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아니하는 육체의 연약한 사람으로 있을 때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이다.
2)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는 죄인 되었을 때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이다.
3)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 즉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자로 구속하셨다.
(결론)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죄와 허물로 우리의 영이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죄로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함께 하지 아니하시므로 육체의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죽었다거나 또는 영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난 것이 영이다. 그러므로 육이 범죄한 주격 책임에서 죽는 영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아니하므로 육체 곧 육신의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영이 죽었다고 말하면 성령으로 난 것이 죽는다는 말이 되므로 진리를 벗어난 표현이 된다.
P199. 그러면 마음은 어떤가? 짐승에게도 없는 것이 마음이요.
‣ ‘짐승에게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이런 말은 성경 진리를 전혀 모르는 자의 소리다.
(전3:20-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차이는 있지만 인생도 혼이 있고 짐승도 혼이 있다. 혼에 속한 것이 마음이므로 짐승에게도 짐승적 마음이 있다.
P207. 성경이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행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구원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말하는데 구원을 하나로만 전제하고 그 방법을 따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해와 모순이 생긴다. 즉 믿음의 방편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란 한 종류가 있고 또 행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구원이란 한 종류가 있어 두 가지 구원이 있고 두 가지 구원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주신 ‘구원’ 진리를 연구함에 있어 구원의 종류를 혼동하고 방법으로만 주장하는 이것이 첫째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원인이다.
‣ 이 글에서도 성경이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행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구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은 이 글에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한 성구를 갈2:16, 롬3:20-22, 요3:15-16, 행16:31으로 알고 있고, 그리고 ‘행위로 얻는 구원’에 관한 성구를 마7:21, 막10:17-23, 약2:14-26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두 종류의 성구들은 전부가 건설구원에 속한 성구들이다. 그런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엡1:7) 것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구속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엡1:13)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P207. 왜 성경이 구원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이를 밝히지 못했는가? 원인은 사람을 마음과 몸 둘로만 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이룰 구원은 동일 하니 한 종류의 구원 외에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이 글에서 ‘성경이 두 구원으로 나누었는데 이를 밝히지 못하는가? 원인은 사람을 마음과 몸 둘로만 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다. 물론 구원론과 인성구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구원론을 바로 밝히지 못한 까닭이 인성구조를 바로 깨닫지 못한 까닭이라고 원인을 돌리는 것은 진리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교계에서 인성구조를 마음과 몸으로 말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대체로 영혼과 몸으로 말하고 있다.
P208. 구원의 방법도 전체적인 방법에 대한 성구, 영의 구원 방법에 대한 성구, 육의 구원 방법에 대한 성구를 구별해서 새겨야 할 것이다.
‣ 구원의 방법에 대하여 세 종류의 성구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에 없는 말이다.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으로 이분화 하는 자체가 비성경적이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아 영육의 사람이 얻는 구원이다.
P208.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미리 확실히 해 두고 넘어 갈 것은 대속과 구원의 본질은 하나이지만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과 영, 육의 성질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 ‘대속과 구원의 본질이 영과 육의 성질에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진리에 맞지 않는 자의적인 말이다. 이런 말에 토를 달고 싶지 않지만 말한다면 ‘대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말하고 ‘구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P209.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 직접 죄를 짓지 아니했으나 심신 범죄에 대한 주격적 책임으로 죽은 것이니 이 주격 책임으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그 주격적 책임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를 도말하심으로 영의 주격적 책임을 벗기면 영이 바로 중생케 되는 것이다.
‣ 영이 심신의 범죄에 대한 주격적 책임에서 죽었는가? 이에 대한 성경적 도리를 정확히 알아야 된다. 이 도리가 정확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말들이 도리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지 찾아보자.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즉 흙으로 지은 육신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니 생령의 사람이 되었다.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생령의 사람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므로 흙으로 돌아갔다. 즉 육신의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영이 죽은 것이 아니라 육신의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범죄한 심신의 주격 책임에서 죽은 영에 대한 대속이 아니다. 범죄 하므로 육신이 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롬5:6-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아직 연약한 자일 때에, 우리가 죄인 된 자일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된 자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람의 구속을 받았다. 이 구속의 죄 사함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자가 되어 생령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범죄한 심신의 주격 책임으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그 주격적 책임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를 도말하심’이라는 말은 진리적 도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 것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P209. 이 기본 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전적 믿음이며 전적 은혜로만 이루어진다.
‣ 이 글은 앞에서 여러 번 언급한대로 믿음과 은혜에 대하여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은혜’는 기본구원에 속한 것이며 ‘믿음’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서 확인해보자.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서 기본구원이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새 사람을 입은 것이 기본구원이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으로서 건설구원이다.
(롬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새 사람을 입은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건설구원이다.
P209. 이는 영이 죽어 있으니 주격이 죽은 사람이 객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생할 수 없는 것이다.
‣ 이런 말은 성경 진리에 근거하지 아니한 인간 자의적 말이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영이 죽은 것이 아니라 범죄 하여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므로 생령의 사람이 육신의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육신(롬5:6-11)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엡1:7) 것이다./ 참고로 심신이 범죄한 주격 책임에서 영이 죽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령의 사람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여 육신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P209.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이 믿음이 무엇인가? 믿는 것은 그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그것을 인간 자유의사로 배척하지 않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주는 것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갈등이나 주관의 긴급 행위가 주동되고 원인된 것은 아니다. 그 마음, 그 자유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이 감화 감동의 역사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인격성을 살리면서 역사한 것이다.
‣ 이 글에서는 ‘믿는 것은 그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이 기본 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전적 믿음’이라면서 상충된 말을 한다. 그런 것은 마음의 행위로 믿는 것이 기본구원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의 자유성’을 계속 말하고 있는데 성경에 없는 말이다. 그렇다면 짐승도 사람보다는 저급하지만 마음의 자유성이 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하여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P210. 따라서 먼저 살아난 영이 자기가 살아날 때 힘입은 대속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고 전해주신 진리의 방법으로 성령이 자기를 살릴 때와 같이 이제는 주격인 영이 소유격인 심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서게 되는 것이다.
‣ 이 글에서 영에 대하여 자기로 표현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그런 것은 영육의 사람이 자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의 대속을 영만 힘입어 살아난 것 같이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범죄한 사람에 대한 대속이다. 즉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롬5:6-11)이다. 그러므로 대속을 영에만 국한 시키면 안 된다.
참고로, 우리가 교리를 논설할 때는 성경을 근거하여 진리적 논리로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글들은 대체로 성경 진리를 근거하지 아니하고 인간 자의적 생각을 앞세워 서술하고 있다.
P210. 그러나 단일성, 주격 책임으로 사망한 영이 단번 중생으로 중생하는 것과 달리 육은 복합체이기 때문에 심신의 각 요소가 평생이라는 현실의 연속 속에서 만나지는 현실에 해당된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다시 살아날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 이 글에서 영은 단번에 중생하였고, 육 곧 심신은 아직 살아날 기회를 가지는 것이라 말하는데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엡1:7) 받은 것을 말씀한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롬7:5, 롬5:6-1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골3:10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하셨다. 그리고 골3:1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하셨다.
P210. 심신의 각 요소별로 볼 때는 영의 중생처럼 단번의 기회요 단번에 살아나는 것이지만 육 전체를 두고 볼 때는 점차적, 중복적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영과는 구원 본질은 동일이나 그 과정은 다르기 때문에 건설 구원, 성화 구원이라 한다.
‣ 이 말은 성경 진리에 맞지 않는 인간 자의적 서술이다. 그러므로 ‘점차적, 중복적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건설 구원, 성화 구원이라 한다’고 말하는데 건설구원과 성화구원의 정의에 대한 왜곡이다. 그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영 구원은 되었고, 심신의 육은 아직 죽은 것을 점차적 중복적으로 살리는 구원으로 잘못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P210. 또 구원 방편에서는 영은 단번 믿음, 전적 은혜로 구원되었으나 육에게는 ‘행위’가 요구되는 이유는 영은 주격이니 주격이 죽어있는 것은 전적 개관 역사로만 살아나기 때문이고, 육은 주격인 영이 살아 이 영이 살려가는 책임이 있으므로 살아난 영이 대속의 공로를 가지고 육을 살리는 이 노력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이다.
‣ 이 글은 구원론을 정확히 모르는 자의 자의적 견해이다. 그렇기에 논평할 가치가 없다. 하나 논평한다면 ‘영은 단번 믿음, 전적 은혜로 구원’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이다. 믿음을 기본구원으로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믿음은 건설구원에 속하고 은혜는 기본구원에 속한 것이다.
P210. 따라서 두 구원을 종합, 비교해 본다면 다음 도표와 같다.
이름 | 기본 구원 | 건설 구원 |
방편 | 믿음 | 행위 |
| 은혜 | 노력의 댓가 |
효과 | 천국의 구원 | 천국의 대우 |
차이 | 천국과 지옥 | 천국 안에서의 차이 |
해당 | 영 전체, 육 형체 | 육: 몸과 마음의 기능 |
과정 | 단번 | 중복 |
‣ 이 도표는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에서 복제한 자료이다. 이 도표에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대비하였으나 오류가 많다. 이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이름 | 기본 구원 | 평가 | 건설 구원 | 평가 |
방편 | 믿음 | × | 행위 | × |
| 은혜 | ○ | 노력의 댓가 | × |
효과 | 천국의 구원 | △ | 천국의 대우 | ○ |
차이 | 천국과 지옥 | △ | 천국 안에서의 차이 | ○ |
해당 | 영 전체, 육 형체 | × | 육: 몸과 마음의 기능 | △ |
과정 | 단번 | ○ | 중복 | ○ |
이 도표에서 가장 큰 오류는 기본 구원에서 ‘믿음’이라 한 부분이다. 그리고 건설구원에서 ‘행위’ ‘노력의 댓가’라고 한 부분이다. 그리고 오류는 ‘천국의 구원’이나 ‘천국의 대우’는 같은 뜻인데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구분하였다. 또 기본구원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이런 구분은 심판론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기본구원에서 ‘영 전체, 육 형체’는 육의 형체 구원과 육의 기능 구원으로 이분화 시키는 말이 되기 때문이 오류라 할 수 있다.
P212. Ⅲ. 교회론
P212. 1. 개교회주의 특성
P216. 2. 개교회주의 3대원리
P227. 3. 공회행정 8개안
P220. 4. 개교회주의 행정 기구(공회 체제)
이 부분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211∼P230이다.
P213. 개교회가 전적 자신의 자유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개교회 자유주의를 줄여서 개교회주의라고 한다. 개교회주의로 나가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협의하고 협조하는 모임을 ‘공회’라고 하며, 모든 종류의 공회들이 함께 모였을 때 ‘총공회’라 한다.
‣ 이 글에서 ‘개교회 자유주의’는 본래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없는 말이다. 이 말은 왜곡되게 지어낸 말이다. 그리고 ‘개교회가 전적 자신의 자유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독립교회나 회중교회를 말하는 것이지 개교회에 대한 정의가 아니다./ 총공회는 독립교회가 아니라 개교회이다. 개교회의 근원은 사도행전 15장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5장 어디에 개교회 자유주의가 있나? 사도행전 15장에 어디에 개교회가 전적 자신의 자유로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이 있나? 사도행전 15장의 교회 정치를 향해 나가는 것이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개교회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5장을 향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나아가는 것이 총공회 신앙노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개교회주의로 나가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협의하고 협조하는 모임을 “공회”라고 하며’하는 이 말도 독립교회나 회중교회를 말하는 것이지 공회에 대한 정의가 아니다.
P213. 침례교의 기본시각은 교회운영을 ‘개교회 자유주의’로 하자는 것이다.
‣ 이 글에서 침례교에 대하여 ‘개교회 자유주의’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총공회의 개교회 또한 ‘개교회 자유주의’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총공회와 침례교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이 글은 총공회의 개교회와 그리고 침례교의 회중교회에 대하여 총칙을 꼭 같이 ‘개교회 자유주의’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교회와 회중교회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모른다는 증표이다.
P214. 실제로 하나님만 개별교회를 직접 다스리도록 하려면 세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총공회는 행정 삼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전원일치, 성경법 유일주의, 교권이 형성될 수 있는 상존기관 폐지 등이 그것이며, 이 삼대원리가 총공회 교회의 행정적 정체성이다.
‣ 이 글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하나 지적하자면 ‘행정 삼대 원칙’이 아니라 ‘개교회 발족 4개항’이다.(공회행정 1966년도 1차 발표문 참조) 그리고 이 글을 발췌한 것은 아래의 글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P215. 자기 교회가 하고 싶은 것과 공회의 방향이 서로 다를 때, 공회가 어떻게 해야 하며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개교회주의를 판단하게 된다. 공회의 결정과 개교회의 결정이 서로 다를 때, 공회는 권면하고 설득하는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개교회주의가 된다. 그러나 공회가 그 교회의 행동을 강제로 바꿀 수 있다면 이는 개교회주의가 아니다.
‣ 이 글과 바로 위의 글은 상치 되는 말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만 개별교회를 직접 다스리도록 하려면 세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총공회는 행정 삼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전원일치, 성경법 유일주의, 교권이 형성될 수 있는 상존기관 폐지 등이다’라고 하였다. 그래놓고서 ‘자기 교회가 하고 싶은 것과 공회의 방향이 서로 다를 때, 공회가 어떻게 해야 하며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개교회주의를 판단하게 된다.’ 등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를 말하는 까닭은 개교회에 대하여 ‘개교회 자유주의’로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교회가 하고 싶은 대로 ‘개교회 자유주의’로 말하는 것은 개교회의 성경적 근본 성격을 잘 모르는 왜곡이다.
P215. 개교회주의의 내부 요건은, 개교회는 자기 교회의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뜻에만 둔다는 데 있다. 그 교회가 하나님의 뜻만을 자기 교회의 유일한 결정으로 가져야지 인간이나 어떤 다른 기관의 뜻을 자기들의 결정으로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이 글에서 보면 ‘개교회는 자기 교회의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뜻에만 둔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위에 글에 보면 ‘하나님만 개별교회를 직접 다스리도록 하려면 세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총공회는 행정 삼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전원일치, 성경법 유일주의, 교권이 형성될 수 있는 상존기관 폐지 등이 그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가 하나님의 뜻만을 자기 교회의 유일한 결정으로 가져야지 인간이나 어떤 다른 기관의 뜻을 자기들의 결정으로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개교회의 근본 성격을 잘 모른다는 증거이다.
P216. 전원일치주의는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심의 행정(심의성)이다. 이 때 심의(尋義: 하나님의 뜻을 찾음)는 일반 용어로 통용되는 심의(審議: 심사하여 의논함)와는 다른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대로 결의 되고 집행까지 한다는 것을 다 내포한 말이다.
‣ 이 글에서 ‘전원일치주의에서 심의(尋義: 하나님의 뜻을 찾음)는 결의 되고 집행까지 한다는 것을 다 내포한 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앞에서 말하기는 ‘자기 교회가 하고 싶은 것과 공회의 방향이 서로 다를 때’등으로 상치되는 말을 한다.
P217. 총공회는 특히 일반 장로교회처럼 목사, 장로만으로 당회를 구성하여 교회 행정을 맡는 것과 달리, 교역자면 전도사에게도 담임 교역자의 권한을 부여하여, 장로뿐 아니라 구역장, 반사에게까지도 권찰회에 발언권과 결의권을 부여하여 교회의 행정에 동참케 한다.
‣ ‘반사에게까지도 권찰회에 발언권과 결의권을 부여하여’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사에게는 발언권은 있으나 결의권은 없다. 그리고 ‘전도사에게도 담임 교역자의 권한을 부여하여’에 대하여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 당회장권
1988년 7월 교역자회 회의록
1988년 7월 4일
당회장권 1 년간 유효에 대하여 현행 당회장권은 일 년간 유효다. 당회장이 이동시 전도사 시무교회는 지방공회에서 다시 정하고, 전도사 시무교회는 교인들에게 당회장이 누구인지 주지를 시키고, 3달에 한 번 정도 설교도 하고 교회를 돌보도록 할 것이다.
P217. 또한 일반 장로교의 목사 뿐 아니라 전도사도 총공회원이 되며, 장로 뿐 아니라 집사까지도 총공회원이 된다.
‣ ‘일반 장로교의 목사 뿐 아니라 전도사도 총공회원이 되며’에서 ‘일반 장로교회의 목사’는 오기(誤記)라고 본다. 그러나 ‘집사까지도 총공회원이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런 것은 집사는 즉 총공회에 참석하여 발언권은 있으나 결의권은 없기 때문이다.
P221. ‘인본주의’의 다수결을 배격하고 ‘진리’대로 전원이 일치한 후 단체 결의를 하는 것이 성경적이요.
‣ ‘전원이 일치한 후 단체 결의’를 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 그런 것은 전원 일치가 단체 결의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P222. 교단마다 성경사상대로 제정했다는 ‘교회헌법’을 만들어 놓고 … …
‣ 여기에서 ‘성경사상대로’라는 말은 온당치 않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인간 사상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P226. 3. 공회 행정 8개안
‣ ‘공회 행정 8개안’으로 제목을 붙인 것은 정확성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개교회 취지 1개항, 정치 7개항’으로 수정해야 된다.
P226. (1) 제1안: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 발족의 유래
고려파에서 나오게 된 노선의 유래를 초두에 소개함으로써 총공회 내부에서 고려파 혹은 일반 장로교로 환원하자는 수정주의에 대하여 ‘총공회 노선’의 보수를 분명히 했다. 즉, 유래에 대한 약술은 과거에 대한 역사적 회고가 아니라 현재 공회가 걸어 갈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1989년 1월 교역자회의록)은 아래와 같다. 비교하면 얼마나 변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변개는 곧 왜곡이다. 원문을 두고 주석하는 것과 원문 없이 주석으로 대신하는 것은 다르다.
①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는 8.15 해방 후 장로교 고신 교단소속이었으나 반소문제, 유엔군 철수문제, 파수꾼 처리로 진리를 제거, ICCC 가담, 교권문제, 고신교(주: 고려신학교) 정치학 강사문제, 교회 이동문제 등등으로 제명되어 외톨이 교회로 있다가 수가 불어가게 됨에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가 되었다.
P227. (2) 제2안: ‘총공회의 유일의 법은 성경뿐이다’
성경 유일주의를 다시 한번 상기 시키는 동시에 성경대로 시행한 관습법과 타 교단 헌법은 참고로 한다는 조항은 악용하지 못하도록 삼대 원리 중 유일하게 여기서도 재언급 했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비교하면 얼마나 변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② 총공회는 성문헌법 없이 총공회는 신구약 성경만으로 개교회와 개개인의 구원의 신앙행위의 유일한 근거로 한다.
P227. (3) 제3안: ‘관례대로 한다’
성경 유일주의에 따라 종전 성경대로 시행해 온 관례는 성경대로 치리했던 ‘관례’라는 점에서 계속 시행된다. 그러나 이 관례법도 성경으로 수정할 것이 발견되면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불문, 관습주의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유일주의를 더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비교하면 얼마나 변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③ 학습, 세례, 성찬 기타 교회의 의식 제도 행사 권징들은 종전 관례대로 하고 언제든지 성경적으로 수정 가능하다
P227. (4) 제4안: ‘정통 교회들의 교리, 신조는 참고로 한다’
제 2안의 ‘성경법 유일주의’나 ‘관례법주의’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뜻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을 때는 일반 교단들의 성경 깨달음을 참고한다. 그들도 가다보니까 타락을 하게 되었으나 그 원래 출발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교회의 사회성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비교하면 얼마나 변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④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기타 정통교회들의 교리와 신조들은 성경 깨달음의 참고로 한다.
P227. (5) 제5안: ‘정통 교단들의 헌법, 평신도 의사 등 참고’
제2, 3, 4안까지도 불구하고 성경의 뜻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을 때는 정통교단들의 헌법 뿐 아니라 평신도들의 의사까지도 성경의 바른 듯을 찾는데 참고한다. 제2. 제3안에 배치되는 타진영의 한법은 개인의 이해를 떠나 사용할 수 없다. 제2, 제3, 제4, 제5안의 방법을 단계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할지라도 ‘시행은 이해와 권고로 그친다’는 것은 신앙 양심 자유와 개 교회 자유 원칙을 다시 한번 밝힌 것이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비교하면 얼마나 변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⑤ 공회 행정은 정통교단들의 헌법과 위원들의 심의 의사와 평신도들의 의사까지 종합심사 성경 명분대로 결정하고 시행은 이해와 권고로 고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및 개인 양심 자유에 맡겨둔다.
P228. (6) 제6안: ‘연보는 성경적 운영 자금과 자유 성금으로 한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⑥ 교회의 운영자금은 성경적 운영자금과 자유성금으로 운영한다.
P228. (7) 제7안: ‘공회 재산 처리 원칙’
총공회 소속의 교회 재산은 총공회 노선대로 믿는 것이 옳다하여 바쳐진 재산이니 총공회 노선을 떠날 때는 사람만 그냥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총공회신앙노선 시절 모여진 연보와 재산은 이 신앙노선대로 걸어가는 데 필요해서 모여진 것이다. 따라서 단 1명이라도 원래 취지를 가지고 있는 교인이 있다면 교회의 재산은 원래 방향에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비교하면 얼마나 변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⑦ 교회의 부동산은 공회 공유 재산이다. 만일 공회에서 교회가 탈퇴할 경우 전원 탈퇴해야 전 소유를 가지고 가고 공회 소속 잔유 소수가 있을지라도 잔유수의 잔유여부를 막론하고 잔유소유가 된다.
P228. (8) 제8안: ‘인선은 투표 또는 임명으로 한다’
사람을 선출하는 것은 투표나 임명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이 없다. 그러나 총공회노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투표한다고 해서 다수결의 원칙을 허용한다는 것은 아님을 앞에서 설명하였다.
‣ 이 글에 대한 본래 발표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비교하면 얼마나 변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⑧ 장로, 집사, 권찰, 주교반사 선정은 곳에 따라 투표 또는 임명으로 한다.
P229. ① 개교회공회: 개교회 전체 회의로서 개교회 내의 최고이며 집행기관은 권찰회를 원칙으로 한다. ② 지방공회: 지방 수준의 협조와 협의가 필요한 경우 가까운 지방이나 또는 성격상 가까운 교회들이 공통으로 모일 수 있다. ③ 총공회: 소속 개교회의 전체회의, 필요시 회집하고 회의가 끝나면 총공회는 물론 총공회장은 없어지고 총공회 위원회(노원, 소원 위원회)가 상임기관으로 하나님의 뜻을 심의 개교회를 지도 권면한다.
‣ 이 글에 ‘② 지방공회: 지방 수준의 협조와 협의가 필요한 경우 가까운 지방이나 또는 성격상 가까운 교회들이 공통으로 모일 수 있다.’는 부분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런 것은 ‘협조와 협의’라는 말은 ‘개교회 자유주의’에 맞춘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격상 가까운 교회들이 공통으로 모일 수 있다.’는 말도 개교회 원칙에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 다음은 ‘총공회, 지방공회, 개교회공회’에 대하여 총공회 회의록에서 발췌하였다.
● 총공회, 지방공회, 개교회공회
제 13회 총공회 회의록
1984년 3월 6일
우리 진영은 다른 총회나 노회와 같은 상설기관이 아니고, 예루살렘 사도들의 모임같이 전국의 우리 교역자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 ‘총공회’라고 이름하고, 각 지방에서 일이 있으면 모여서 의논하는 모임을 ‘지방공회’라 하고, 개교회 내에서 일이 있으면 모여서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일을 토의 연구해서 수정해 나가는 것이 ‘개교회공회’이다.
총공회는 모여서 일을 처리한 후에는 총공회는 해산되고 총공회 위원 8인이 남아서 공회 산하의 행정을 보살피고 있는 것으로 상존 기관은 아니지만 개교회에서 상신되는 일들을 접수 처리하여 상호유기적인 행정의 길이 늘 수립되어 있다.
P229. (2) 공회위원회
총공회장이 비상존직이므로 총공회적인 처리의 상임기관으로 노원(老院)과 소원(少院)으로 된 총공회위원회가 있어 5개 분과위원회로서 하나님의 뜻을 심의(尋意)한다.
‣ 이 글에 대한 원본을 아래와 같이 교역자회의록에서 발췌하였다.
● 총공회 운영위원회 개편 건
1988년 6월 교역자회
1988년 6월 6일
1. 총공회 운영위원회를 노원과 소원으로 개편키로 하고 노원은 55세 이상 80세 까지, 소원은 30세 이상 55세 미만까지, 목사, 장로, 전도사 중 노원 15명 소원은 30세 이상 55세 미만까지, 목사, 장로, 전도사 중 노원 15명 소원은 30명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2. 45인의 총공회 위원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관이며 지방 공회위원은 총공회 위원회 수종 기관으로 존속한다.
3. 피 선거권은 노원은 55세 이상, 소원은 55세 미만 선거권은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4. 노원과 소원의 관계는 똑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노소간에 유대 관계가 맺어지도록 잘못된 것 고치어 나가면서 상호협조 협의기관이다.
(운영위원회 - 행정위원회, 교훈위원회, 목회위원회, 경제위원회, 개척위원회)
(첨부)
※ 다음은 총공회 행정이 되는 개교회 취지와 개교회 정치에 대한 발표문이다. 1차 발표는 1966년도 하였고, 2차 발표는 1989년도에 하였다. 참고할 것은 현재 총공회는 이 두 발표문을 통합해서 ‘총공회 3대 원칙과 행정 8개안’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발표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목이 내용과 맞지 않다. 그런 것은 1차 1966년도 발표문은 「개교회 발족취지 4개항과 개교회 정치 5개항」이며, 그리고 2차 1989년도 발표문은 「개교회 취지 1개항과 개교회 정치 7개항」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발표문을 대조하면 1차 발표 시 개교회 발족취지 ①②③④을 2차 발표 시에는 개교회 취지 제1항으로 요약하였고, 개교회 정치는 7개항으로 하였다. 또한 1차 발표 시 ‘개교회 정치 ③④➄항을 2차 발표 시에는 제5항으로 요약하였다. 그러므로 총공회 행정은 1966년도 1차 발표문과 1989년도 2차 발표문을 연결시켜야만 정확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발표문을 통합한 제목은 「개교회 취지 4개항 정치 7개항」이다.
● 개교회 발족취지 4개항, 정치 5개항(1966년도 1차 발표문)
제 1회 공의회
주후 1966년 5월 26일 오후 5시 반에 서부교회에서 전 회원(목사 10명 장로 1명)이 회집되어 백영희 목사 사회와 기도로 공의회가 개회되다.
1. 임시의장 임시의장은 배수윤 목사의 동의와 이진헌 목사의 재청으로 백영희 목사로 가결되다.
2. 기록서기 기록서기는 이진헌 목사로 가결되다.
3. 개 교회 발족 취지 의장께서 개 교회 발족 취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다
① 단체 조직 하에서 의사의 진행을 하려면 종다수 가결로 처리하게 되는 바니 진리는 다수에만 있는 것이 아닌즉 진리를 수호하기 어렵게 된다.
② 수다한 종별의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전 성경 진리에만 근거를 두지 않고 소박한 헌법으로만 처리하려 하니 바른 처리를 보지 못하고 옳은 것이 수다히 묻히게 된다.
③ 상존 기관을 가진 단체에서는 탐권 탐영으로 인본주의 세력이 강하여 신앙양심을 어둡게 하고 진리의 세력이 묻히게 된다. 년조가 오랠수록 인본화되고 속화됨으로 이를 방지하고 진리를 보수하기 위하여 개교회로 발족한다.
4. 개교회 유고처리 개교회에서 처리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건에 따라 지방적으로 소공회를 혹은 전체적으로 공의회를 누구든지 자유로이 동등한 자격으로 소집해서 사건을 성경대로 처리하고 해체할 것이며 공의회 경비는 소집한 주동교회에서 부담함을 원칙으로 한다. 공의회는 성경대로 상존기관으로 두지 않는다.
※(주: 4항은 지방공회 소집과 총공회 소집에 관한 사항이므로 개교회 취지에 해당된다고 본다.)
5. 개교회의 정치
① 개교회의 법전은 신구약 성경으로만 한다.
② 각 주석과 각 교파의 헌법은 참고로만 한다.
③ 사건에 적응시키는 성경 깨달음은 각자의 양심대로 할 것이나 차이가 있을 때에는 상호 이해시키는 것으로 노력한다.
④ 권징은 먼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다음은 공회적으로 권한다. 듣지 아니 할 때는 다만 상관없음을 교계 기관지에 공개하고 불간섭하는 것으로 끝나고 다만 엄밀한 기도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⑤ 교역자 이동 개교회의 교역자 이동은 본인의 의사와 교회의 형편과 동역자의 의사와 사회의 여론을 따르되 불복 시는 하나님께 맡긴다.
안건처리가 끝남에 의장의 기도로 폐회 하니 하오 10시55분이더라.
주후 1966년 5월 26일 임시의장 백영희 목사 서기 이진헌 목사
● 개교회 취지 1개항, 정치 7개항(1989년 2차 발표문)
1989년 1월 교역자회의록
일시: 1989년 1월 2일
1.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는 8.15 해방후 장로교 교신 교단소속이었으나 반소문제, 유엔군 철수문제, 파수꾼 처리로 진리를 제거, ICCC 가담, 교권문제, 고신교(주:고려신학교) 정치학 강사문제, 교회 이동문제 등등으로 제명되어 외톨이 교회로 있다가 수가 불어가게 됨에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가 되었다.
2. 총공회는 성문헌법 없이 총공회는 신구약 성경만으로 개교회와 개개인의 구원의 신앙행위의 유일한 근거로 한다.
3. 학습, 세례, 성찬 기타 교회의 의식 제도 행사 권징들은 종전 관례대로 하고 언제든지 성경적으로 수정 가능하다.
4.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기타 정통교회들의 교리와 신조들은 성경 깨달음의 참고로 한다.
5. 공회 행정은 정통교단들의 헌법과 위원들의 심의 의사와 평신도들의 의사까지 종합심사 성경 명분대로 결정하고 시행은 이해와 권고로 그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및 개인 양심 자유에 맡겨둔다.
6. 교회의 운영자금은 성경적 운영자금과 자유성금으로 운영한다.
7. 교회의 부동산은 공회 공유 재산이다. 만일 공회에서 교회가 탈퇴할 경우 전원 탈퇴해야 전 소유를 가지고 가고 공회 소속 잔유 소수가 있을지라도 잔유수의 잔유여부를 막론하고 잔유소유가 된다.
8. 장로, 집사, 권찰, 주교반사 선정은 곳에 따라 투표 또는 임명으로 한다.
2015.09.11 11:39
■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처리의 건
1. 다음의 내용으로 청원한 공문을 총공회에 발송하였다.
先知者文書宣敎會 비영리법인 104-82-62022 / http://www.seonjija.net/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3가 295-4 양지빌딩 202호 / 우편번호 100-846 TEL. 한국 02-743-1002. 010-8747-7122 / 해외 070-8285-7122, 070-8285-7133 문서번호 : 2015-7호 시행일자 : 2015년 8월 29일 수 신 : 예수교장로회 총공회장 참 조 : 운영위원회 노원 및 소원 제 목 :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조치의 건 1. 주은 중 귀 진영에 평안을 빕니다.(마10:12) 2. 2015년 6월에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 연구’를 출간하였습니다. 책 내용에는 백영희가 주장하고 또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연구 및 고찰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영인 목사의 책 3권과 송종섭 목사의 논문 2편을 거의 복제 편집하였습니다. 3. 책 이름은 ‘백영희 연구’라고 해놓고 그 내용은 전부 다른 사람의 주장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큰 문제는 총공회 신앙노선에 핵심이 되는 성경교리 즉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삼분론’ 그리고 교회정치 ‘개교회’에 대하여 왜곡하고 있습니다. 4. 청원하기는 이 사안을 총공회 교역자회에서 심의하여 그에 따른 합당한 조치를 결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 별첨 서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청원서, 1부 (2) 총공회의 동등권, 1부 (3)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1권
선지자문서선교회 대표목사 김반석 |
2. 청원한 공문은 총공회에서 정식 접수하였다.
3. 총공회 심의기관 노원 및 소원으로 구성된 교역자회 준비위원(2015년 9월 7일)에서 이 청원 건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4. 총공회 교역자회(2015년 9월 8일)에서 이 청원 건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5. 2015년 9월 총공회 교역자회에서 이 청원 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첫째, 「백영희 연구」 책은 구입하지 않키로 하다.
둘째, 배포된 「백영희 연구」 책은 회수하기로 하다.
6. 위의 두 사항은 시급히 실행되어야 할 사안으로 1차 발표하였고 2차 이 청원 건을 심의하여 처리키로 하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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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2024.04.30-278 | 선지자 | 2021.02.23 |
공지 | 中國全圖 中國傳道 | 선지자 | 2021.02.22 |
178 | 선교사역보고 (2016년 2월) | 김반석 | 2016.03.03 |
177 | 선교사역보고 (2016년 1월) | 선지자 | 2016.02.06 |
176 | 선교사역보고 (2015년 12월) | 김반석 | 2016.01.10 |
175 | 선교사역보고 (2015년 11월) | 선지자 | 2015.12.04 |
174 | 선교사역보고 (2015년 10월) | 선지자 | 2015.11.11 |
173 | 선교사역보고 (2015년 9월) | 선지자 | 2015.10.09 |
» | 선교사역보고 (2015년 8월) [4] | 선지자 | 2015.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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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 선교사역보고 (2015년 1월) | 선지자 | 2015.02.04 |
164 | 선교사역보고 (2014년 12월) | 선지자 | 2015.01.02 |
163 | 선교사역보고 (2014년 11월) | 선지자 | 2014.12.01 |
162 | 선교사역보고 (2014년 10월) | 선지자 | 2014.11.01 |
161 | 선교사역보고 (2014년 9월) | 선지자 | 2014.10.03 |
160 | 선교사역보고 (2104년 8월) | 선지자 | 2014.09.09 |
159 | 선교사역보고 (2014년 7월) | 선지자 | 2014.08.02 |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에 대한 논평
김반석 목사
1부. 복제 부분을 중심으로
2부. 왜곡 부분을 중심으로
선지자문서선교회
1부. 복제 부분을 중심으로
-목 차-
1부. 복제 부분을 중심으로
(서론)
(본론)
제 1장. 김남식의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연구, 탐구, 고찰’ 발언
제 2장. 복제편집 부분 조사
제 3장. 페이지별로 본 김남식 글과 복제 글
(결론)
(서론)
이 책은 김남식 박사가 출간한 ‘백영희 연구’이다.
이 책에 대한 ‘복제를 중심으로’ 논평에서는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직접 연구를 하고 이 책을 집필했는지 아니면 다른 책들을 복제 편집했는지 여기에 주된 초점을 둔다.
제 1장에서는, 김남식 박사가 이 책에서 백영희의 ‘목회설교록’과 ‘저서’를 중심으로 연구, 탐구, 추적, 탐색, 고찰을 말하고 있어서 이 부분을 발췌하였다.
제 2장에서는,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를 연구, 탐구, 추적, 탐색, 고찰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책을 복제 편집하였다. 그래서 이 부분이 어느 페이지 얼마의 분량이 되는지를 점검하였다.
제 3장에서는, 이 책에서 김남식 박사가 직접 쓴 글과 그리고 복제 편집한 글을 책 전체에서 페이지별로 점검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를 만들었다.
주후 2015년 7월 30일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본론)
제 1장. 김남식의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연구, 탐구, 고찰’ 발언
P7. 머리말
‘백영희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추적하였다. 본서의 목적은 백영희에 대한 인물사적(人物史的) 연구를 통해 성경적 바른 신앙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것이 목회 현장에 어떻게 구체화되는 지를 탐구하는데 있다. 본서에서는 백영희에 대한 연구를 집중한다.’/ ‘저자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제공해 준 백영희목회연구소 관계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 이 책을 출간한 김남식 박사는 머리말에서 ‘백영희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추적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백영희의 저서를 바탕으로 문제를 추적한 것은 전혀 없다. 또한 백영희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문제를 추적한 것도 거의 없다. 그런 것은 아래의 도서 3권과 논문 2편을 거의 그대로 복제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 전병재,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 이영인,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 박선혜,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상)(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 송종섭,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 송종섭,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
그리고 김남식 박사는 ‘본서에서는 백영희에 대한 연구를 집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위의 도서와 논문을 거의 복제 편집하였다.
또한 ‘저자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제공해 준 백영희목회연구소 관계자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가 아니고 ‘여수, 백영희목회연구회’의 이영인목사가 제공해 준 자료들이다.
(이 책은 백영희 목사님과 전혀 상관없이 쓴 ‘1부 서론적 탐색’ 즉 한국교회사 부분 외에는 거의 복제 편집하였다. ‘한국교회사’ 부분 또한 김남식 박사가 이미 발표한 자신의 논문 즉 ‘신사참배 수난 후 한국교회 재건 양태 연구’ 신학지남 제70권 2집 통권 제275호 (2003 여름) pp.325-367을 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P15. 서론적 탐색
‘한 사람의 사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생애만 아니라 사상 형성의 틀이 되는 시대사적(時代史的) 탐구도 아울러 하여야 한다. 사상이란 단순한 학습의 결과물이 아니라 시대적 정황과 학습의 종합적 결실이다. 백영희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6·25한국전쟁 그리고 한국의 중흥기를 그의 생애를 통하여 경험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분석하는 바탕이 된다. 백영희 삶에서 크게 작용한 시대 상황은 신사참배강요, 한국교회의 재건, 6·25한국전쟁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것들을 중심으로 백영희에 대한 서론적 탐색을 시도한다.’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신사참배강요, 한국교회의 재건, 6·25한국전쟁을 중심으로 백영희에 대한 서론적 탐색을 시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탐색한 것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탐색한 부분이 전혀 서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영희와 신사참배’ ‘백영희와 6·25’ ‘백영희와 고려파’에 대하여 한 줄도 언급된 부분이 없다. 즉 백영희 목사님이 일제 신사참배를 이긴 신앙과 6·25 환란을 이긴 신앙과 고려파와 관계를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시대를 배경으로 백영희를 ‘탐색’ ‘고찰’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허구(虛構)이다.
P51. 서론
‘본 연구는 지금까지 관심 밖의 미지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백영희’에 대한 탐구이다. 이것을 개인사적(個人史的) 측면과 교회사적(敎會史的) 측면을 아울러 포괄하는 것으로서, 백영희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추적하려고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백영희에 대한 인물사적(人物史的) 연구를 통해 성경적 바른 신앙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것이 목회 현장에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를 탐구하는데 있다. 이 연구에서는 백영희에 대한 연구를 집중한다.’
‣ 이 부분에서도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에 대한 탐구라 말하면서 ‘백영희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추적하려고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영희의 저서를 바탕으로 탐구한 것은 거의 없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도서 3권과 논문 2편을 그대로 복제 편집하였을 뿐이다.
P65. 1. 성경
‘백영희의 사상을 한 마디로 규정하면 ‘성경주의’이다. 성경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그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 전혀 없다. 다만 이영인의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책에서 복제하였다.
P152. 2. 선행연구
‘백영희 신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없다. 그러나 백영희가 순교한 후 그의 사상들을 정리하여 이영인 편으로 「총공회 약사와 노선에 대한 요약」 「삼분론」 「오해하기 쉬운 구원관」 「백영희의 조직신학(요약본 초안)」이 간행되었다.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백영희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는데, 모든 논의가 성경을 근거로 하였다.’
‣ 김남식 박사는 이영인 목사가 간행한 4권의 책이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백영희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또 모든 논의가 성경을 근거로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방적이며 뭣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된 목회자들은 이영인 목사가 출간한 책을 신임하지 않는다. 그리고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한번이라도 전반적으로 연구, 탐구, 탐색, 고찰을 해보았다면 자신이 얼마나 허구적인 말을 하였는지를 알 것이다.
P154. 3. 연구의 범위
‘이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를 방법으로 삼고, 백영희의 「목회설교록」과 백영희 목회연구소에서 간행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그 범위는 백영희의 신학사상 전체를 다룰 수 없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구원론, 삼분론, 교회론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의 ‘구원론’ ‘삼분론’ ‘교회론’을 연구함에 있어서 ‘백영희의 「목회설교록」과 백영희 목회연구소에서 간행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연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 전혀 없다. 다만 송종섭 목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과 송종섭의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에서 그대로 복제하였다./ 그리고 ‘백영희 목회연구소’에서 간행한 자료라고 말하는데 실제는 백영희 목사님이 생전에 설립한 ‘부산, 백영희 목회연구소’가 아니라 이영인 목사의 ‘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의 자료들이다.
P159. 2.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의 의미
‘백영희는 주장하기를 구원은 집을 짓는 것 같이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먼저 터를 닦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것같이 구원에도 터가 있고 집이 있는 것이다. 터는 기본구원이고, 집은 건설 구원이다.’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는 주장하기를’로 허구적인 말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과 송종섭 목사의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논문을 그대로 복제 편집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송종섭은 주장하기를’로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백영희는 주장하기를’로 함으로서 마치 백영희가 주장한 것처럼 고의적으로 꾸몄다.
P162. 2. 기본 구원의 특징과 내용
‘생소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백영희 구원론’의 바탕이 되는 ‘기본구원’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 구원론’의 바탕이 되는 ‘기본구원’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과 송종섭 목사의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이다. 그러므로 백영희의 기본구원론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송종섭 목사의 기본구원론은 백영희 목사님과 내용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송종섭 목사도 자신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구원을 구분하여 본다. 엄밀하고 정확한 것이 아니라 중복적이고 생소하여 오해를 일으킬 부분이 많지만 현 단계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그렇다! 이 책으로 인하여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들이 염려하는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즉 김남식 박사가 ‘백영희 연구’라고 책 제목을 붙이고 또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연구, 고찰, 탐색, 탐구하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송종섭 목사의 논문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그런데도 ‘백영희가 주장하기를’로 꾸며서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은 백영희 목사님이 정립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남식 박사는 우리 교계로 하여금 백영희가 정립한 총공회 신앙노선의 성경적 교리를 불신토록 하는데 조작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P184. 2. 백영희의 인간의 3대 구성요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에 게재된 공식적 문헌을 중심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여기에 서술된 것은 연구자의 사상이 아니라 백영희 사상을 요약한 것이다.’
‣ 김남식 박사는 이 책 삼분설에 대하여 ‘백영희 사상을 요약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영희의 사상이 아니라「총공회 신앙노선 소개」 책을 쓴 이영인 목사 측의 사상이다. 그리고 ‘「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에 게재된 공식적 문헌을 중심으로 정리하려고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김남식 박사에게 묻고 싶다. 이 부분에서는 ‘문헌을 중심으로 정리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고 또 이렇게 말할 줄도 알면서 왜 다음과 같이 허구된 말을 했는지를.
‘백영희의 저서를 연구’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
‘백영희가 주장하기를’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연구’
‘백영희에 대한 탐구’
‘그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
‘백영희에 대한 서론적 탐색을 시도’
‘백영희 사상을 요약한 것’
또한 김남식 박사는 ‘공식적 문헌을 중심으로 정리’라고 말하는데 「총공회 신앙노선 소개」는 이영인 목사와 그 측의 자료이다.
P213. 개교회주의 특성
‘백영희가 주장하는 개교회주의가 가진 특성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가 주장하는 개교회주의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영희 목사님의 개교회론이 아니라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 편집하였다.
P246. 참고 문헌
1차 자료
‘성경주의’
백영희, 공과모음,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89.
------, 목회설교록(171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89.
------, 목회설교록(173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89.
------, 목회설교록(174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89.
------, 목회설교록(175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4.
------, 목회설교록(179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4.
------, 목회설교록(180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5.
------, 목회설교록(182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5.
‣ 이 책을 출간한 김남식 박사는 ‘성경주의’에 대하여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참고 문헌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 것은 이영인의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책을 그대로 복제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 내용 P65∼P76이다. 그러므로 참고 문헌에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표시하는 것은 허구이다.
‘경건주의’
백영희, 목회설교록(150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1.
------, 목회설교록(157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2.
------, 목회설교록(170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89.
------, 목회설교록(171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89.
------, 목회설교록(176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89.
------, 목회설교록(179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4.
------, 목회설교록(181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5.
------, 목회설교록(72호), 여수: 백영희목회연구(회), 2010.
------, 목회설교록(90호), 부산: 백영희목회연구소, 1991.
백영희, 목회설교록, 16권.
------, 목회설교록, 177권.
------, 목회설교록, 100권.
------, 목회설교록, 136권.
------, 목회설교록, 137권.
------, 목회설교록, 168권.
------, 목회설교록, 174권.
------, 목회설교록, 96권.
------, 목회설교록, 89권.
------, 목회설교록, 171권.
‣ 이 책을 출간한 김남식 박사는 ‘경건주의’에 대하여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참고 문헌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그런 것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 내용 P92∼P107이다. 그러므로 참고 문헌에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표시하는 것은 허구이다.
제 2장. 복제편집 부분 조사
이 책을 출간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 연구’ 책에 대하여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바탕으로 연구, 탐구, 연구, 탐색, 고찰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음의 도서 3권과 논문 2편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 전병재,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 이영인,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 박선혜,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상)(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 송종섭,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 송종섭,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
그리고 백영희 연구와 전혀 상관없이 쓴‘제 1부 서론적 탐색’ 부분 또한 자신이 이미 발표하였던 다음의 논문을 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 김남식, 신사참배 수난 후 한국교회 재건 양태 연구, 신학지남 제70권 2집 통권 제275호(2003 여름) pp.325-367
※ 다음은 이 책 「백영희 연구」에서 복제 편집된 부분을 조사한 것이다.
제 1부 서론적 탐색
P16. Ⅰ. 백영희 시대의 교회사적 배경
P16. 1. 신사참배 수난
P30. 2. 한국교회의 재건 양태
P40. 3. 6·25 한국전쟁의 수난
‣ 이 부분은 김남식 박사가 2003년도에 이미 발표했던 논문으로 추정한다. 그런 것은 김남식의 ‘신사참배 수난 후 한국교회 재건 양태 연구’가 신학지남 제70권 2집 통권 제275호 (2003 여름) pp.325-367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 내용 P16∼P46이다.
P46. Ⅱ. 백영희 연구의 범위와 한계
P46. 1. 폐쇄성의 한계
P47. 2. 자료의 한계
P47. 3. 계승성의 한계
이 부분은 김남식 박사의 글이라고 본다. 이 책 내용 ‘46∼47 페이지’ 2쪽 분량이다.
제 2부 백영희 연구
P51. 서론
P52. Ⅰ. 백영희의 삶
P52. 1. 백영희의 입신
P55. 2. 백영희의 헌신
P57. 3. 백영희의 순교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추적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박선혜의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상)(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책에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51∼P64이다.
P65. Ⅱ. 백영희의 얼
P65. 1. 성경
P66. (1) 성경의 권위성
P68. (2) 성경의 정확성
P71. (3) 성경의 보편성
P75. (4) 성경의 충족성
‣ 이 부분에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전혀 연구 고찰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이영인의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책에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65∼P76이다.
●참고: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은 백영희 목사님의 강단설교를 한 자도 가감 없이 녹음본 그대로 출간한 책이다. 기간은 1979년 7월부터 1989년 8월까지 분량은 5,000여 편이다. 이 10년 치 「목회설교록」에는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사상, 교리신조, 목회목양, 교회행정, 신앙생애,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P77. 2. 교회
P78. (1) 공회체제의 3대 원칙
P88. (2) 공회체제와 다른 교회체제의 비교
‣ 이 부분도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전혀 연구 고찰하지 않았다. 다만 이영인의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책에서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78∼P91이다.
P92. 3. 생활
P92. (1) 경건의 신앙
P94. (2) 하나님 중심의 경건
P99. (3) 성장의 경건
P101. (4) 순교의 경건
‣ 이 부분도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에서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92∼P107이다.
P107. Ⅲ. 백영희의 터
P107. 1. 사역
P107. (1) 목회
P117. (2) 목회자 양성원 교육
‣ 이 부분도 박선혜의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책에서 거의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07∼P125이다.
P125. 2. 영향
P125. (1) 총공회의 출발
P128. (2) 공회 운영 기본 방향
P129. (3) 공회 행정
P130. (4) 인재양성
‣ 이 부분도 박선혜의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25∼P131이다.
P132. 3. 관계
P132. (1) 합동 경북노회의 비판
P132. (2) 공회노선의 분열
‣ 이 부분에서 ‘132 페이지’ 1쪽 분량 외에는 전부 박선혜의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33∼P141이다.
P141. 결론
P141. 1. 고신에서 단절된 백영희의 신앙노선
P143. 2. 백영희 신앙노선의 성격
P145. 3. 백영희의 개교회주의
P146. 4. 백영희 신앙노선에 대한 반론과 응답
‣ 이 결론 부분조차도 김남식 박사의 글은 전혀 없고 전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41∼P148이다.
제 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
P151. 서론
P151. 1. ‘백영희’의 가능성
P152. 2. 선행연구
P154. 3. 연구의 범위
이 부분은 김남식 박사의 글로 본다. ‘151∼154 페이지’ 4쪽 분량이다.
P155. Ⅰ. 구원론
‣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 논문에서 거의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55∼P156이다.
P156. 1. 백영희의 구원론 특징
‣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논문에서 거의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56∼P159이다.
P159. 2.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의 의미
P162. 3. 기본 구원의 특징과 내용
P168. 4. 건설 구원의 특징과 내용
‣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년’ 논문을 거의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59∼P174이다.
P174. 5. 백영희의 구원론에 대한 비판과 변증
‣ 이 부분은 송종섭 목사의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논문에서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74∼P177이다.
P177. Ⅱ. 삼분론
‘삼분론’에 서문 부분 ‘177∼181 페이지’ 5쪽 분량은 김남식 박사의 글로 보인다.
P181. 1. ‘삼분론’의 교리사적 특징
P184. 2. 백영희의 인간의 3대 구성요소
P201. 3. ‘구원론’과 ‘삼분론’
이 부분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181∼P211이다.
P211. Ⅲ. 교회론
P212. 1. 개교회주의 특성
P216. 2. 개교회주의의 3대 원리
P226 .3. 교회 행정 8개안
P229. 4. 개교회주의의 행정 기구(공회체제)
이 부분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211∼P230이다.
P230. 결론
이 부분 ‘230∼231 페이지’ 2쪽 분량은 김남식 박사의 글로 보인다.
P235. 부록. 백영희 해적이
P235. 1. 개괄적 소개
P240. 2. 백영희목사 설교의 시기적 흐름
이 부분은 전병재의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책을 그대로 복제하였다. 이 책 내용 P235∼P245이다.
제 3장. 페이지별로 본 김남식 글과 복제 글
P1∼P5. 표지
P6∼P7. 머리말
P8∼P12. 차례
P13∼P15. 서론적 탐색 (김남식 글 3쪽)
P16∼P46. Ⅰ. 백영희 시대의 교회사적 배경 (복제 글 추정 30쪽)
P46∼P47. Ⅱ. 백영희 연구의 범위와 한계 (김남식 글 2쪽)
P48∼P50 (속표지)
P51∼P52. 서론 (김남식 글 2쪽)
P52∼P65. Ⅰ. 백영희의 삶 (복제 글 13쪽)
P65∼P107. Ⅱ. 백영희의 얼 (복제 글 42쪽)
P107∼P141. Ⅲ. 백영희의 터 (복제 글 34쪽) P132. (김남식 글 1쪽)
P141∼P148. 결론 (복제 글 8쪽)
P149∼P150. (속표지)
P151∼P154. 서론 (김남식 글 4쪽)
P155∼P177. Ⅰ. 구원론 (복제 글 22쪽)
P177∼P181. Ⅱ. 삼분론(서론 부분) (김남식 글 5쪽)
P181∼P211. Ⅱ. 삼분론 (복제 글 30쪽)
P211∼P230. Ⅲ. 교회론 (복제 글 19쪽)
P230∼P231. 결론 (김남식 글 2쪽)
P232∼P234. (속표지)
P235∼P245. 부록. 백영희 해적이 (복제 글 10쪽)
P246∼P250. 참고 문헌
P251∼P254. 찾아보기
※ 아래는 페이지별로 본 김남식 글과 복제 글에 대한 도표이다.
페이지
내용
김남식 글
복제 글
P1∼P5.
표지
P6∼P7.
머리말
P8∼P12.
차례
P13∼P15.
서론적 탐색
3쪽
P16∼P46.
Ⅰ. 백영희 시대의 교회사적 배경
30쪽(추정)
P46∼P47.
Ⅱ. 백영희 연구의 범위와 한계
2쪽
P48∼P50
(속표지)
P51∼P52.
서론
2쪽
P52∼P65.
Ⅰ. 백영희의 삶
13쪽
P65∼P107.
Ⅱ. 백영희의 얼
42쪽
P107∼P141.
Ⅲ. 백영희의 터
P132. 1쪽
33쪽
P141∼P148.
결론
8쪽
P149∼P150.
(속표지)
P151∼P154.
서론
4쪽
P155∼P177.
Ⅰ. 구원론
22쪽
P177∼P181.
Ⅱ. 삼분론 서론
5쪽
P181∼P211.
Ⅱ. 삼분론
30쪽
P211∼P230.
Ⅲ. 교회론
19쪽
P230∼P231.
결론
2쪽
P232∼P234.
(속표지)
P235∼P245.
부록. 백영희 해적이
10쪽
P246∼P250.
참고 문헌
P251∼P254.
찾아보기
총 19쪽
총 207쪽
(결론)
이 책을 출간한 김남식 박사는 ‘백영희 연구’ 책을 출간하면서 ‘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연구’‘백영희의 「목회설교록」을 중심으로 고찰’ ‘백영희의 저서를 연구’ ‘백영희가 주장하기를’ ‘백영희의 사상을 요약한 것’등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남식 박사가 연구하고 고찰한 부분은 거의 없다. 다만 머리말과 각 부의 서론 및 결론 부분에서 약간의 글을 첨부하였을 뿐이다.(위의 도표 참조)
그리하여 김남식 박사가 이 책에서 그가 직접 쓴 글의 분량은 얼마나 되며 그리고 다른 책을 복제편집한 분량은 얼마나 되는지 점검하여 그 부분과 분량을 확인해 보았다. 위의 도표에서 확인한 대로 이 책 총 페이지 수는 254쪽이다. 그 중에 표지, 머리말, 차례, 참고 문헌, 찾아보기 28페이지를 제외하면 226쪽이다. 그 중에 김남식 박사가 이 책과 직접적으로 쓴 글은 19쪽이다.(‘한국교회사’ 부분은 김남식 박사가 발표했던 논문을 복제한 것으로 추정하여 직접 쓴 글에서는 제외시켰다.) 그렇다면 나머지 총 207쪽이 복제한 부분이라는 결산이 나온다. 그렇기에 김남식 박사는 이 백영희를 연구하고 글을 쓴 부분은 거의 없다. 있다면 겨우 19쪽 분량이다.
그러므로 이 책 ‘백영희 연구’는 김남식 박사가 아래의 도서와 논문을 복제 편집한 책이지 지은 책이라고 볼 수 없다.
- 전병재,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신앙노선 소개(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3)’
- 이영인, 백영희 조직신학 요약본 초안(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04)
- 박선혜,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상)(하)(여수, 백영희 목회연구회, 2014)
- 송종섭, 백영희의 구원론 연구, 1994’
- 송종섭,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95’
이 책 ‘백영희 연구’는 이영인 목사와 그 측에서 출간한 도서 3권과 송종섭 목사의 논문 2편을 이영인 목사가 김남식 박사에게 제공하였고 이에 김남식 박사는 복제 편집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런 책을 연구 서적 같이 꾸며서 출간하는 것은 눈가림이다. 이것이 이 책의 실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