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1980. 2. 27. 수야 

 

본문: 베드로 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얼핏 생각하면 스스로 자기를 높이지 아니하면 능력을 많이 가지신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서 주신다는 그런 말씀으로 보기 쉽습니다.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한 이 말씀에 뜻은 겸손은 요새 연일 말씀한 그대로 자기와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을  아는 지식의 행위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지나치게 평가하지 말고 또 작게도 크게도  지나치게 평가하는 것은 다 죄가 됩니다. 과대 평가도 죄가 되겠고 과소 평가도  되가 됩니다.

그런고로 요 '겸손하라'하는 말씀은 자기를 과소 평가하라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자기를 스스로 심사하고 또 논평해 보고 모든 면을 계산해 보고 이렇게  자기를 연구하게 되면 차차차차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두고 자기 자체에 대해서 또 자기의 언행심사에 그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과  사람과에 맺어진 모든 인연에 대해서 이렇게 여러모로 자기를 심사하고 연구하고  계산하고 이렇게 하게 되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허무하다는 것과  또 무지  무능하다는 것. 모든 일에 힘이 없다는 것 이런 자기에 잘못된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점을 발견하게 되면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낙망하게 됩니다.

낙망하게 되고  또 자기를 미워하게 되고  모든 일에 절망이 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챙겨 보지도 아니하고 또 헤아려 보지도 아니하는 데에서  헛되이 안심하고 담대하고 또 자신 있게 덤비지, 냉정스럽게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경영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하는 면이나  사람들을 향하는 면이나  모든  사물을 향하는 그런 면을 따져보면 누구든지 다 낙망하게 되고 또 자기를 미워하게  되고 다 그 어두움의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 이것이 바로 자기를 조사해 본  결과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자기를 바로 알게  되면 사람은 이렇게 자기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고로 가룟 유다가 자기의  소행을 반성했을 때에 그만 자살 행위를 한 거와 같은 그런 원통이 생겨지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들 향해서 낙심하지 마라 이미 전적 부패하고 무지 무능한  것을 아시고 주께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고 또 진리와 성령으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과에 관계에 대해서 다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고 해결해 주실려고  이미 부르시고 출발하셨으니, 네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에 구속에 이 능하심을  바래 보라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가 밧모섬에서 주님을 바라볼 때에 그 얼굴이 힘있게 비치는 해 같았다  그 말은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을 다시 한번 밝히 찾아 볼 때에 그가 부끄러워서  죄송해서 두려워서 견디지 못해서 죽은 자와 같이 그렇게 되어졌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 위로하시면서 네가 사도가 되기 전에도 내가 알았고 또 신앙 행위를 한지  이 사도가 되고 난 다음에도 내가 너를 알았으니 네가 지금 이제 너를 알고 또  나를 알지 나는 처음부터 너를 알고 나도 알고 있는 나로써 네게 대해서 행한  것이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나는 사망을 이긴 자요, 또 부활한 것이 너희  때매(때문에) 했기 때문에 다시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라고 위로했습니다.

또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도 창조에 근본 되신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완전히  죽은 것 뿐이요 소경 뿐이요 가난한 것 뿐이요 가난한 것 밖에 없는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소망을 주시면서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신 내가 찾아왔고 모든 멸망에서  구출한 내가 찾아 왔으니 열심을 내어 회개를 해라 그렇게 위로를 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에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겸손은 자기를 모르는 자가 아니고 자기를  바로 알라고 애를 써 가지고 자기를 바로 알아 자기가 아는 대로에 그 사람으로  과장하지 아니하고 덮어 가루지 안하고 자기 된 대로 자기 그 실상대로 자기로  이렇게 나타난 이것이 겸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당신은 원죄와 본죄가 없으신 분으로 역사 하신 것이 겸손이요 또  동등을 꺼려 여기지 아니하시고 복종하신 이 역사가 겸손인 것입니다. 겸손은  의롭든지 불의하든지 실상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겸손이요 교만은 실상에서 적게  해도 교만이요 많이 크게 해도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진리와 성령에 보증 역사가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해서나 자기 아닌 다른 것에게 대해서 아무리 바로 알려고 해도  바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타를 바로 안 사람은 주에 구속에 은총을  입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안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속을 받은 자들로서는 자기를 바로 알려고 애만 쓰면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은 자기 자체도 자로 알아야겠고 또 자기의 위치에  관련된 모든 것도 바로 알아야 되겠고 자기의 임무와 사명도 바로 알아야 이것이  다 자기를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알려고 애를 쓰면 알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인데 자기를 알게 되면  자기라는 것은 자기 아닌 그 수많은 타, 지극히 큰 자기 아닌 모든 것들  무한이라고 할만한 이 존재에게 붙어 속하여 있는 한 세포와 같은 극히 미약한  존재이면서 또 모든 것과에 영원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이것을 발견하여 자기 하나  바로 함으로 수많은 그 무한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에게 필요 있는 것이 되고  그럴 때에 무한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모든 자기 아닌 것들이 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되어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전 피조물을 한 몸과 같이 체계적으로  이렇게 이런 관련을 가지고 영원히 살도록 창조하셨어. 자기에 모든 소원이 타에게  있고 타에 소원이 자기에게 있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타에게 있고 타에게 유리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하나님에 그 창조에 근본 뜻과,  또 자기라는 존재를 이렇게 연구해서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참 놀래고 절망하고 또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런 필연적 결과가 오게 되기 때문에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네가 네 자신을 성경과 성령에 도우심을 입어서  자기를 연구하게 되면 반드시 이 절망 속에 빠지는 것이 필연한 것이니까 네가  거게서 너를 구속하시는 그 구주에 이 능하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이 주님을  바라보라 그러기에 네가 너만 연구하지 말고 너를 구속하신 주님을 바래보면서  연구해라 그러기에 네가 너만 연구하지 말고 너를 구속하신 주님을 바래보면서  연구해라 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연구하게 되면 너무 허무하게 되기 때문에 크게 큰 사고가 날 이 필연성을  가진 것이 인간이요 또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그리스도에 구속을 입은 사람들은  정확히 자기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르리니 네가 자기를 연구한 데에  구속주를 바래보면서 연구해라 크게 자기에게 대해서 그만 절망이 되어지는 이런  필연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에 능하신 구속주를 바라보라 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순서는 자기가 죄인 된 것 만치 의인되게  하는 주님의 대속은 필요합니다. 자기를 아는 것 만치 하나님과 또 자기와에  관련된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대한 유식은 모든 것에 대해서  무식인데 우리 기독자들은 자기의 진상을 에누리하지 않고 바로 깨닫게 되면 다  기절 기절에 도달하는 것이 필연이요 자기를 미워하고 실망에 도달하는 것이  필연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게서 우리 기독자들은 인류 역사에 수많은 도덕가들 종교가들  철학가들 별별 사상가들이 자기를 바로 알려고 또 모든 존재들을 바로 알려고 바로  아는 지식을 가질려고 애를 썼지마는 서도 바로 안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둡지마는 심히 어두움을 벗는데 있고 아직까지 얼마 벗지 못한  사람들이지마는 이 세상 모든 인생관이라든지 만물관이라든지 생사관이나 그  무엇을 살펴봐도 바로 깨닫고 주장한 사람이 없었고 바로 사람을 인도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 제 대로에 것을 가졌으나 창조주와에 관련에서는 다 틀려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알라고 모든 존재를 알라고 애를 썼지마는 바로 알지 못한 것이  역사에 있는 사람들인데 우리 기독자들은 예수님에 대속으로 빛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를 바로 알라고 연구만 하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정확하지는 못하지마는 거의  정확하게 자기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만  있는 것이고 예수 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다 완전히 알았다고 하면 자기 밖에 물질계 영계에 또 창조주 하나님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존재를 다 알았다고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자기는 모든 존재와 관련을 가지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를 다 알았단  말은 관련을 다 알았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제일 보배로운 지식은 자기를 아는 지식이요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것은 같은 말입니다. 자기 아는 지식이란 말이나 자기 아닌 모든  타를 아는 지식이란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지식인데,  사람들은 초점이 되어있는 자기도 모르고 자기에게 대해서 연구할려고 지식할려고  하지 안하고 조물주에 대해서도 지식할려고 하지 안하고 다만 자기가 있고 난  다음에 부분적으로 이런 것 저런 것 하나에 방편에 지내지 못한 그런 것을  지식이라고 해 가지고 일생동안 노력을 합니다.

제일 우리가 큰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움에서 빛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빛을 받아서 모든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됐다  그랬습니다. 모든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이것이 큰 축복입니다.

바로 알라고 애를 쓰면 바로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다를 바로 알았던지  부분적으로 바로 알았든지 바로 알아 자라 가는데 있든지 어쨌든지 바로 아는 고  표시는 바로 자기를 지식 한 그 표적은 뭐이냐 자기를 바로 지식 한 그 표적은  어떤 것이 표적이냐 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되는 능하신 하나님이 자기에게  필요 있게 된 이것이 바로 지식 한 표적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아무리 무식하던지 어쨌든지 자기가 자기의 기능이라든지  자기에게 진실이라든지 자기에 책임이라든지 본분이라든지 모든 것과 관련이  있는데 여게 대해서 배신한 것이라든지 대항한 것이라든지 모든 것에 피해를 끼친  것이라든지 또 자기가 받을 것을 다 받지 못하고 시기를 놓친 것이라든지 모든  면으로 이런 것을 연구해서 알려고만 하면 바로 알게 됩니다.

자기는 비유컨데 자기는 기본수고 모든 존재들은 자기에게 가하는 가수가 되겠고  자기는 피가수가 되겠습니다. 이런데 자기가 하나 틀려 놓으면 모든 것은 다 틀려  버리고 맙니다. 망대를 세우는 자가 먼저 앉아서 예상하고 난 다음에 세우지 안  하면 공사를 해 가지고서 준공하지 못하고 끝내면 모든 사람에게 수치를 당한다  하는 이런 것도 자기를 모르고 날뛰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를 계산하지 않고  자기를 계산하지 않고 시작하는 사람은 다 실패라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밖에 있는 만물을 연구하기 전에 자기를 연구하고 자기를 연구하면  자기는 너무 존재적으로 미약하고 허무하고 또 지나간 과거를 통해서 얼마나  자기가 허무하다는 것 거짓되다는 것 연약하다는 것 어리석다는 것 이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전능하신 이 구주가 아니면 다 참 자살이라도 할만한 아주 기절에  이르게 될 만치 이렇게 자기를 바로 지식 할 수 있는 이것이 우리 기독 자들에게  열려 있는 것을 여게 전제로 두고서 네가 너를 바로 알려고 애를 써서 연구하면 그  연구의 결과는 자기에게 대해서 기절하는 데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기절한  그런 자기 지식에 도달하게 된 때에 그때에 네가 능하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능하신 주님을 네가 그때에 바라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독 자들에게 자기를 바로 알려고 하면 자기를 하나님처럼  몰라도 자기에게 필요한데 까지는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렇게  뒷받침을 해 주셔서 뭐 종교 창설자들이 다 알라고 했지마는 서도 몰랐습니다.

이런데 기독 자들은 알라고 하면 알 수 있도록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다 알게  되기 때문에 알도록 돼 가지고 있고 다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다 알도록 해 주신  주님이 다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절에 도달하니까 기절한 그것을 그대로 두지만  기절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니 거기에서 기절되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 능하신  주님이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능하신 주님을 바래보면서 자기를 연구해라 자기를 연구하는 이  연구에 쉽게 자기를 깨달을 수 있고 자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기독자는 있게  되고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절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기절하게  되니 자기를 연구하는 그 모든 은혜만 베풀어주시고 두면 그만 기절해서 절단 나  버릴 터이니까 자기를 연구하는 그 연구에 능하신 주님을 바래보면서 연구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네가 겸손히 하면 내가 능력이 크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내가 너를 도와  준다 그 말씀이 아니고 요 겸손은 자기를 연구해서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인데  기독자들은 자기를 연구해 가지고서 자기를 조사할 수 있고 연구할 수도 있고  계산할 수도 있고 진리가 있고 성령이 도우심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속성으로  정확하게 되어져서 자기에 정체를 자기를 바로 알게 되니 애만 쓰면 바로 알게  되니. 바로 알면 능하신 주님을 바래보지 못하면 기절해 가지고 절단날 것이기  때문에 능하신 주님을 바래보면서 네가 너를 연구해라.

 마치 아주 병에는 효력 있는 그런 약이지만 좀 극약이 되면 이 극약은 병은  틀림없이 낫지마는 이 극약에 대해서 그 방비할 그런 방비책을 가지고 이 약을  써야 되지 방비책을 가지지 안하고 이 약을 쓰면은 절단 나니까 네가 이 약을 쓸  때에는 무엇을 먹어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방비해 가면서 이 약을 써라 하는  것처럼,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하는 이 말씀은 역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만물 무식으로 지나가고 말았고 사이비한 지식으로 지나가고 말았는데,  예수님께서 이 어두움에 있는 그늘에 있는 사람을 구원해서 빛으로 인도하셨다  하신 말씀과 같이 말씀대로 구속을 받은 기독 자들은 자기가 어느 정도에 멸망할  존재로 되어 있으며 어느 정도에 벌을 받아야 될 존재로 되어 있으며 어느 정도에  허무한 존재로 되어 있으며 어느 정도로 거짓되고 외식하고 그 뭐 측량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되어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알면 자기보다 더 미운 것이 없고 허무한  것이 없고 기절하게 된다  이러니까 네가 기독 자로서는 자기를 알라고 연구하면은 필연적으로 기절할  정도까지 자기가 허무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 거게서 능하신 구주를 찾지  못한다면 그만 자기는 스스로 기절해서 절단 나고 말 것이기 때문에 능하신  손아래서 너를 바로 알아라 하는 말입니다. 능하신 손아래서 너를 바로 알아라.

그러기에 기독 자들은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이런 대속이 아니면 인생  구원이 되지 않는가? 하는 죄에 대해서 자기가 어떠하며 불의에 대해서 어떠하며  하나님과 끊어진데 대해서 끊어진 것이 어떠하며 모든 만물들과 이렇게 관련 돼  가지고 있는 이것이 전부 바로 사망과 저주와 모든 것을 해치는 이 전적 부패했고  전적 악이고 전적 무지고 전적 무능 이렇게 자기가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면 반드시 기절해서 고만 죽어 버리고 만다 절단 난다 뭐 배짱이나 욕심이나  오기나 자랑이나 자긍이나 이런 것이 이런 거는 의례히 있을 수 없고 그만  기절해서 절단 나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이렇게 자기를 살피는 데에는 능하신 주님이 계시는 것을 바로  보면서 너를 조사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 자들은 주님에 구속으로 인해서 죽기 전에 자기가 얼마나 허무한 그  흠점을 다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궁의 그 빛에 나라에 가는  데에 거리끼는 모든 자기에게 있는 병을 다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 병을  발견할 수 있다 발견하게 되면 이것만 보고 기절해서 가룟 유다와 같이 되기 쉽다  여게까지에 알 수 있는 그런 하나님에 빛이 강하게 비추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능하신 구속에 주를 바래보면서 자기를 알라고 애를 써라 하신 것입니다.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다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하는 이 높인다는 말은 높인다는  말은 높인다는 말은 자기가 가치 있게 된다는 말이요, 또 자기가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그 필요에 양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요, 또 모든 것에게 다 혜택을 줄 수  있고, 모든 것에 기쁨이 될 수 있는, 이렇게 도덕적으로 커나가는 것 사랑에  봉사적으로 커나가는 것,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한 그 필요에 양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요, 또 모든 것에게 다 혜택을 줄 수 있고, 모든 것에 기쁨이 될 수 있는  이렇게 도덕적으로 커나가는 것, 사랑에 봉사적으로 커나가는 것,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성으로 커나가는 것, 모든 것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커나가는 것,  하나님에 무한하고 충만한 것을 받는 것으로 커나가는, 이 생명과 신령에 속한 이  면으로 더 가치 있어지고 더 실력 있어진다 그것을 가르쳐서 높인다고  말씀했습니다.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때는 시간을 말씀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 네가 이렇게  존귀하게 된다 하는 그 말씀은 자기를 연구하게 되면 일차적으로 기절에 이르게  되고 기절에 이른 자가 능하신 주님에 구원을 바래보면서 구원을 바래보는 소망과  자기에게 대한 그 절망 요 두 가지로서 자기에게 대해서는 부인이 되고 주님에게  대해서는 소망이 되어지는 이 일을 하게 되면 한 시간 두 시간 일년 이태 이  생활을 하게 되면 너는 네 가치는 점점 가치 있는 자가 되어진다 실력 있는 자가  되어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네가 되어지고 영계와  물질계에 모든 존재들에게 너는 없어서는 안될 필요 있는 네가 되어진다 하는  이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하는 것은 자기의 실력이 있어야 책임을 맡을 수  있고 감당한 수가 있고 위치를 지위를 감당할 수가 있고 또 자기에 소유를 감당할  수가 있지 자기의 실력 이상에 부담이라는 것은 그것은 다 자멸은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실력이 갖추어진데 따라서 점점 이렇게 가치 있게 되어지는  것이니 높인다는 말은 세상에 썩어질 걸로 높이는 것을 가르쳐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에 그 세계에서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으로 높아지는 것 하나님이  인생보다 높으신 거와 같은 이런 성질의 그 높이로 높아지는 것을 여기 가리켜서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는  요 말씀은 이 나그네 세상에서 공연히 알지도 못하고 날뛰는 자가 되지 말고  자기를 연구해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나 무궁세계나 창조주와  창조주가 창조한 모든 것은 변질되지 안하고 고대로 있습니다. 다만 변질된 것은  어떤 게 변질 돼 있느냐 타락한 천사와 타락 인생만이 변질되어 있습니다.

이러기에 자기를 바로 알지 못했을 때에는 자기를 바로 알지 못했을 때에는  변질되지 아니한 거와는 전체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로 알지 못하고  이렇게 바로 몰랐던지 저렇게 바로 몰랐던지 자기를 삐뚤어지게 알았을 때에는  누구하고 하나가 되어지느냐 하면 타락한 천사와 마귀 타락한 그 변질된 인생  변질된 천사와 변질된 인생만 합해지고 변질되지 안하고 그대로 있는 것하고는  전부 대립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 자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를 연구해서 자기가 모든 존재와  대립이 되어있는 이 자기를 바로 알아 가지고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가면 모든  존재와 영원한 화평을 이 세상에서 이루어갈 수 있고, 이 힘이 들지 안하고 만일  세상에서 이것을 모르고 이 문제를 해결 짓지 안하고 가면은 무궁세계에 하나님과  모든 변질되지 안한 모든 존재와는 자기는 영원히 원수가 되기 때문에 거기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세상에서도 아는 것이 보배라고 해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해 가지고  아는 것이 보배라고 해 가지고 뭐 머리를 싸자 매고 그 모든데 대해서 지식을  가질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은 알아 봤자 이 세상에서 잠깐 지나가는 것 몰라 봤자  별거 없는 것, 그러나 인생에 머리에서 나온 것은 그것이 변질 된, 변질 된 것들에  지식이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 변질 적인 지식입니다.

 변질 적인 지식이 되어있는 고로 물리라는 이 과학 지식도 그 과학이라는 그 존재  목적에도 또 동기에도 그에 방편이 대해서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도 반 거짓말의 지식이지 그것이 온전한 지식이 아닙니다.

이렇게 어두워져 있는 이 세상에서 기독 자들은 자기를 바로 알려고만 하면  어데까지 아느냐? 자기가 기절하기까지 자기가 미워서 자기를 털끝만치도 인정하기  싫고 자기주장을 따르기 싫고 괘씸해서 저주를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를 연구하는 연구하다가 자기가 알게 되니까, 자기는 마땅히 유황불  구렁텅이에 영원히 태워야 되지 이것을 재라도 내비 두면 안 된다 그렇게  미운면으로 보이니까, 그렇게 밉고 허무한 면으로 보니까, 그렇게 허무하고  거짓면으로 보니까, 이것은 뭐 세계에 어데 그런 것 찾아볼 수가 없고 가증스러운  걸 보면 그러하고 무지면이나 무능면은 보면은 거와 같은, 누가 없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인하여 자기를 저주하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우고 싶지마는,  이러다 보니까 주님에 구속하신 주님에 이 구속이 헛일이기 때문에 다시 거게서  마음을 돌이켜 가지고서 다시 소망을 가졌다고 대개는 그렇습니다.

기독 자들이 누구든지 자기를 알아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전적 부인해라 전적 부인해라 하는 이 말씀이 공연히가 아니고 자기를 연구해서  연구 할려고 애를 쓰면 부인하라고 하지 안 해도 연구한 결과의 부인뿐만 아니라  가장 미운 자 중에 미운 것이 자기요, 허무한 자 중에 허무한 것이 자기요, 거짓된  자 중에 거짓된 게 자기요, 가증스러운 것 중에 가증스러운 게 자기요, 없는 것이  있는 체, 모르는 게 아는 체, 할 수 없는 게 할 수 있는 체, 뭐 이는 억만 전체가  억만 재앙 뭉텅이라 자기라 억만 재앙 뭉텅이요, 그 저주받고 멸망 받아야 될 그  자기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그만 절망과 기절을 할 때까지 자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절할 자기가 알면 자기가 자기를 볼 때에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은  성자라고 하는 사도 요한이지마는 밧모섬에 가 가지고 예수님에 앞면을 대할 때에  그 빛에 비추어서 발견하지 못하던 새로운 자기를 발견할 때에 그 사도 요한이는  기절해서 죽은 자와 같이 거꾸러졌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전적 부패한 인간입니다. 전적 부패한자요 전적 악이요 전적 죄  뭉텅이요 저주 뭉텅이요. 이런데 이것을 우리가 알라고 애를 쓰지 안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알지 못하게 됩니다. 모르기 때문에 전부 자기의 뭐 참 그 자기에 그  연구한 그 자기로 활동하는 게 아니고 전부 자기 아닌 것으로 다 활동하고 있고  자기를 모르는 무식한 가운데서 얼토당토 안 할 일 이거는 생각도 못할 일 이거는  어데 어마 어마하게 그 틀린 일, 바래 보지도 못할 이런 것들을 지금 제가 다  한다고 가증스럽게 장담하고 날뛰니까 전체는 허영이요 허욕이요 다 전체가  사망하는 것 망하는 것 삐뚤어져 망하는 것 이것 밖에는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체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거는 뭐 순전히 멸망의 뭉텅인  데 하나님이 볼 때도 멸망 뭉텅인 데 자기가 볼 때에는 사람마다 자기가 제일  잘났고 제가 의인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자기를 몰라서 자기가 무식해 그렇다 그  말입니다.

이러기에 자기를 어떤 자인 것을 자기 정체를 자기를 바로 알 수 있는 이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시고 빛을 주셨으니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기를 알도록  연구를 해라 연구하면 네가 기절할 만치 네가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는 이것은  기독자라면 다 된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서 능하신 주님에 구원을 바래보지 못하면 절단 난다 이 생활을  하면 높이시리라 너는 모든 존재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이 존재로 참 하나님에  지으신 목적 그대로에 것으로 네가 이루어 질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기에 함축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능하신 손이 뭐 때문에 필요하냐? 겸손은 자기 연구라 그 말이요  겸손이란 인간들이 말한 겸손이 아닙니다.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때가 되면 너는 참 존재의 가치는 하나님 목적하신 대로 네  가치를 완전히 네가 회복하리라. 하늘에 것과 땅에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에 네 정상적인 본 궤도에 본 위치에 본  가치에 도달하게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가 자기를 알려고 하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알려고만 하면  알아집니다. 자기가 자기를 연구하지 안하고 그저 자기를 어쨌든지 인정만 하고  묻어두고 자기를 과대 평가만 할려고서 이렇게 애쓰는 사람은 자기를 망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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