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4 00:37
겸손
1982. 6. 3. 목새.
본문: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저게 녹음되지? 왜? 저기는 녹음이 안되나요? 전기 안 들어오면 안돼? 왜 밧데리로 되게 안해 놨는가? 그래 가지고는 구원이고 뭐이고 헛일이라. 그런 사람들 아무것도 못써. 못써. 못해. 준비 없이 뭐이 되는가?
암만 전기가 안 와도 예배는 볼 수 있도록, 엠프는 작용할 수 있도록해야 되고 또 녹음할려면 녹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정전이 되어도 통신기관은 통신이 되도록 해놔야 되지 정전되면 사고인데 그때 통신 안되고 다 그러면 그만 귀도 눈도 다 없어지는 것 아니오? 오늘 아침 우리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도 없고 완전히 병신 돼 버렸어. 그러면 안돼요.
지난밤에 증거한 말씀인데 교만과 겸손의 본질은 자기 무식이 교만이오. 자기에게 대한 유식이 겸손입니다. 또 교만의 본성은 자기를 모르고 날뛰는 행동이 그것이 교만의 본성이요 겸손의 본성은 자기가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가 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겸손의 본성입니다.
지난밤에는 교만과 겸손이 행동하는 그 행동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젊은 사람들아 순종하라 순복하라’ 장로라고, 늙을 로(老)자를 썼으니까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젊은 사람들이 순복하라 하는 말이 아니고 신앙 선배, 신앙 지도자, 지도자에게, 지도자보다 육체의 연령은 위에 있을지라도 그는 지도를 받는 자요 거게 대해서 어린 자요 젊은 자요 아랫자요 제자요. 이런 관계를 가리켜서 ‘젊은 자들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장로는, 장로도 다 장로지만 장로의 중심은 교회의 감독을 중심으로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젊은 자들은 교인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이 말을 먼저 했습니다. 네가 머리가 될려고 하는 그런 정신 가지고 살지 말고 너는 따라가는 꼬리가 될려고 하는 그런 정신으로 살아라. 너는 상전될려고 하지 말고 종으로 살려고 하는 이런 본성을 가져라. 너는 지배자가 되지 말고 피지배자가 되도록 노력을 해라. 가르치는 자가 될려고 하지 말고 배우는 자가 되도록 할려고 해라. 이미 있는 것을 자랑하려고 하지 말고 없는 점은 갖추고 잘못된 점을 고치는 이런 사람으로 살아라 하는 말입니다, 겸손하라 그 말이.
사람이 자기를 바로 알면 이것밖에는 할일이 없습니다. 자기 위치를 바로 알면 이것밖에는 할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이 태도와 이 본질과 본성밖에는 할 게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움직이는 움직임은 이 움직임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되 아무데나따나, 불교에 가 가지고 불교에도 이짓 하고 유교에도 이짓 하고 미신에도 이짓 하고 이런 단체에 들어가도 이짓 하고 사회나 가정에서나 어데서든지 머리만 숙이면 되는 줄 알고 어디 가도 머리 숙여서 불교 가도 종, 유교 가도 종, 이단체 가도 종,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팔방미인 창기요, 창기. 창기, 창기적인 인격이라.
그러기 때문에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하는 것을 첫째 말했습니다. 네가 겸손한 자리에, 다시 말하면 복종 자리에, 따르는 자리에, 배우는 자리에, 본받는 자리에, 따라가는 자리에, 네가 모자라는 것 모든 것을 고쳐 갖추는 자의 위치에서 네가 살아라.
그러되 어떤 것을 표준해서 하겠느냐? 교회에서 너를 신앙으로 지도하는 그 신앙을 표준해 가지고,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표준해 가지고 이 표준에서 네가 그런 사람이 되어져라. 예수믿는 사람들이 순복하라 하니까 이 자리 가도 마귀법이나 어떤 법이라도 순종, 하나님의 법에만 순종하는 자는 마귀법에는 죽어도 순종 안 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배울 것이 있고 진리와 영감에게 배울 것이 있지 뭐 인간에게야 배울 것은 없고 마련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배우는 거와 마련하는 게 달라요.
학교서는 실은 배우는 게 아니라 그것은 자기가 이용할 물건을, 써먹을 물건을 지금 마련하는 거라. 배우는 것은 자기 위에, 자기보다 앞서, 높이, 바르고 옳고 깨끗하고, 자기보다 좋은 것 그것을 자기가 취하는 것이 그것이 배우는 것이오. 배우는 것은 내가 그와 같이 지금 따라가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요, 내가 밥없는 사람이 밥을 취하는 거는 밥을 먹고 이용할려고, 물 없는 사람이 물을 취하는 것은 물을 마시고 이용할려고, 자기에게 건축하는 데 못이 없는 사람은 못을 마련하는 것은 못에게 복종할려고 못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못을 마련하는 것이라.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마련하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아니라. 학교 가는 것도 사람들이 그래 놨는데 실은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내가 갖추는 것이요, 이용물을 갖추는 것이오. 이용물을 갖추는 것과 배우는 것은, ‘내가 배우니까 이대로 하겠다. 내가 이 일을 받겠다. 이대로 따라가겠다.’ 아니야. 세상 지식에게 따라가는 것 아니야. 하나님 한 분에게 배우고 그분의 지식을 배우고 그분을 따라가는데 그 따라가는 데에는 밥도 필요하고 못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하고, 이러니까 그런 것은 내가 이용하는 것이지. 좀 어려운 말인데.
너는 순복 위치에 살아라. 머리될려고 말고 꼬리 되고, 상전될려고 말고 종되고, 선생될려고 말고 제자의 위치에서 너는 살아라. 왜? 네가 너를 바로 알았으면 세상에서는 이 사람으로 활동하는 데 네 수입이 있고, 노력하는 데 네 수입이 있지 네가 머리 노릇하고 선생 노릇하는 데에는 네가 수입이 없다. 그러면 목사는 누가 노릇하고? 목사도 제가 가르치는 자로만 살았으면 저는 참 텅텅비었고 불쌍하고 가련한 자입니다. 목사는 옳은 목사는 배우는 자로 사는 것이오. 목사 위치도 배우는 자요 집사 위치도 배우는 자요 반사 위치도 배우는 자요. 어떻게? 자기 위에 선배 스승이 있으면 그에게 배우고 없으면 주님에게 배우고, 배워서 배운 것을 지금 전달합니다.
그러기에 가르치는 것보다도, ‘이거 가르치는 데는 배운 대로 가르쳐야 될 터인데 잘못하면 내가 선생될라. 배운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자가 내가 돼야 될 터인데.’
이래서 이약신목사님이 언제 한번 설교하는데 ‘우리는 주님의 편지가 돼야 됩니다.’ 하는 그런 설교 하는 소리를 제가 한번 들었습니다. 어떤 주인이 쓴 편지를 배달자가 전달해 주는 것처럼 주님의 것을 그대로 솔빡 전달해야 되지 남의 편지의 중간에 가감하는 그거는 아주 사기요 못쓸 죄악이 되는 것처럼, ‘주님의 것을 그대로 전달해야 되지 거게서 자기 것을 가감하면 안된다. 편지가 돼야 된다.’ 하는 그런 말을 제가 이약신목사님이 그때 총노회장으로 있을 때에 고려신학교 와 가지고 설교 한번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주 귀한 표현입니다.
그분이 고려신학교 와 가지고 나는 그때 그분을 모르는 사람인데-한번은 수영 가서 집회를 하니까 신학생들이 전부 하나도 안 빠지고 다 올라왔소. 그때 그분이 총노회장이요 또 신학교 이사장인데 마구 호통을 쳐서 ‘여기서 뭐 말라빠진 교리만 신조만 배우고 있으면 무슨 소용 있나? 성령의 능력 얻어야 되지. 성령의 능력을 얻어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가 보라. 빨리 수영 가라. 수영교회로 가라.’ 그래 호통을 쳐서 올라왔다 이래.
신학생들이 나는 신학교 그때 다니도 않는 사람인데 신학생들이 전부 홀빡 다 올라와서 예물을 드리고 이래. 내가 예물을 안 받으려고 이러니까, ‘어째 올라왔느냐?’ 하니까 그때 대만에 있는 선교사로 가 있는 김 무슨 목사가 와 가지고 예물을 가지고 왔어. ‘나는 이런것 안 받는다.’ 이러니까 ‘우리 어머니는 언제든지 은혜받으러 갈 때에 한번도 빈손으로 간 일이 없습니다. 내 앞에 올 때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주님의 성구를 보고 은혜는 주님에게 받기 때문에 주님 앞에 가는 걸음이니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그것을 배웠기 때문에 우리 신학교에서 이약신목사님이 이렇고 이렇고 해서 지금 우리 신학생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이 수영교회의 집회 끝까지 참석하고 갈려고 모두 휴학을 하고 다 왔습니다. 그래서 이 성구를 지키느라고 적은 금액이지만 예물을 드리는 것이니까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그것 또 큰 걸 배웠습니다.
‘아, 이와같이 이분은 이러기 때문에 좋은 아들 놔 놨고,’ 그 뒤에 보니까 그 아들이 대만 선교사로 가서 지금도 대만서 선교사로 선교하고 있습니다. 김 무슨 목사지요? 김영진? 김영진목사. 같이 모두 동창생이니까 아는 모양이로구만. 김영진목사. 영도제일교회 사람입니다.
이약신목사님이 ‘우리는 예수님의 편지가 돼야 된다. 거기서 가감하면 안된다. 당신이 우리에게 부탁한 그것만 꼭 전달해서 그 내용을 전달해야 되지 인간의 것을 보태면 안된다.’ 아주 유력한 말입니다. 그분이 책을 보냈는데 ‘내가 남은 때를 어떻게 살까?’ 하는 그런 책을 마지막으로 한 권, 그분 많이 저서하지 않았는데 한 권을 써 가지고 저한테 보냈는데 제가 그 내용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그 제목만 보고 은혜를 받았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그분이 몇달 있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제가 그 책을 보고, 그분의 신앙생활을 제가 아는데 유엔군 철퇴할 때에 이 철퇴반대 메세지를 해 가지고 각 교회 뿌린 것을 그때 봤기 때문에 나는 그때 그분에게 대해서 그렇게 신앙으로 존경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책을 써서 와도 읽어보지 않고 그 제목은 ‘아마 이분이 이제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으려는 것 같다. 어떻게 지금 살아야 될까 하는 이걸 염려하는 것 보니까 그 제목이 은혜가 된다.’ 이랬는데 몇달 되고 난 다음에 그만 세상을 떴습니다.
겸손은 순복인데, 겸손한 자로 살아라. 그러면 밑의 자는 위의 자에게 겸손한 자로 살까? 겸손이 뭐이라는 것 해석했지요? ‘서로 겸손으로 허리 동이라’ 목사도 양떼 위해서, 양떼에게 대해서 겸손한 자로, 양떼에게 배울려는 자로, 본받으려는 자로, 따르는 자로, 그에게 얻을 자로 이렇게 살아라. 그래야 복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선생 위치에 가 있는 사람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뭐 주머니는 뭘 차고 있는고 하니 가르칠 주머니를 가지고 이와 같이 지금 가르칠려고 차고 다니지 않아. 그것은 하나님이 주는 대로 전달하고, 주는 대로 전달하고 이 주머니는 배울 주머니입니다. 배우는 것 간직하고 배우는 주의, 본받는 주의, 지도받는 주의, 순복하는 주의 이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거게 복종하고 배우고 본받고’ 이랬기 때문에 올라갔습니다.
‘다 겸손으로 허리 동이라.’ 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이 겸손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기관된 사람들에게 전부 은혜입을 인질이요 인성이요 그 생활 방편이다. 교만은 하나님에게도 물리침 당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자기에게 참 유익을 줄 사람, 실력있는 사람들에게도 물리침 당하는 이거는 망하는 일로다.
그런데 하나님은 능하시다. 사랑도 무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도 무한, 지혜도 무한, 능력도 무한하신 분인데 이분을 상대하는 데도 너희들이 교만을 가지고 우쭐거린다. 이런 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이런데 이런 분이기 때문에 더욱 이분에게 겸손해야 삶을 얻지 않겠느냐? 겸손하라.
이렇게 겸손으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에게 복종으로 살려고 하면 원수가 있다. 무엇이 원수냐? (중간반 반사 가운데서 안 나온 사람 있어요? 안 나온 사람 있으면 안돼. 여러분들은 다 목사 될 사람들이오. 또 사모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회 가 가지고 교인들이 하는데 거꾸로 퉁퉁해 가지고 교회 어지럽히지 말고. 내게 자꾸 들어오고 있다 그말이오. ‘이 사모가 들어서 우리 교회 여게 못 있겠습니다. 우리는 딴 교회 갑니다.’ 지금 갈려고 보따리 딱 싸 놨는데 좀 있으면 간다 말이오. 그러니까 가고 난 다음에 좀 있으면 교회가 슬슬 자꾸 떨어져. 떨어지는 데는 그 양떼들이 한없는 고생당하고 갑니다. 이래도 귀가 어둡기 때문에, 눈이 어둡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 잘 배워야 되지.)
이렇게 겸손으로 살려고 하면 이 겸손으로 사는 것은 자기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사랑으로 목표를 정하는 높이는 것, 높아지는 이 목표를 지금 정해 놓고 이것 건설할려고 애를 쓰시는데, 이렇게 좋은 것으로 애쓰는데 때가 되면 이거 다, 순서가 밟아지면 높은 것으로 썩 나타날 터인데 여게 대해서 적이 뭐이냐?
이러면 마귀라는 놈이 이 염려 저 염려 모든 염려를 갖다 준다. 염려 이놈이 너를 미혹시키는 원수다. 염려하거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고 염려할 것 그것 염려를 버리면 된다. 염려되는 문제는 주님에게 맡겨 버려라. 주님이 해 주신다. 주님에게 맡기는 거는 어떤 것이 맡기는 것인가? 거게 대해서 주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주님에게 맡기는 것이고, 거게 대해서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그 인간에게 책임을 맡기는 것이고, 그 일에 대해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은 자기가 그거 책임지는 자입니다.
주께 맡겨라. 그러고 난 다음에는 또 뭐이냐? 마귀 이놈이 온갖 방편으로, 인간도, 인간도 쓰고 별별 걸 이용해 가지고 너를 대적한다. 뭐 할려고? 겸손 못 하도록 할려고, 교만케 할려고 마귀가 방해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네가 하나님에게 복종 하나 하는 것 복종하는 이 방편 하나 가지고 여게 대해서 완성이 된다.
또 네가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이와 같이 고난받는다. 썩어질 목표도 목표를 두고 영광있는 목표를, 존귀한 목표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목표를, 대우받을 목표를 달성할려고 하면 네가 애로가 있는 것인데, 애로가 있는 것인데 하물며 여게 애로가 없겠느냐? 세상 모든 일들이 이렇지 않느냐?
다른 사람이 모두 다 회의석에 떡 나섰을 때에 다른 사람은 다 그냥 양복 입고 나왔는데 빨간 영광스러운 테를 떡 이래 두르고 하니까-박사 테입니다.-이래 테를 떡 두르고 가면 모든 사람이 ‘아이구, 저분은 높다.’ 이렇게 하는 그것도 하나 얻을려 하면 남모르는 수많은 애로를 가져야 돼. 또 다 모두 앉았는데 ‘아이구, 사장님 오셨습니까?’ 사장 그것도 하나 이룰려고 하면 남모르는 참 잠도 못 자고 고생도 하고 애로를 해야 되지 그거 안 하고 되어지는가요?
다른 집에는 양식 꾸러 가는 데 저거 집에는 양식 꿀 것 하나도 없고 돈 꾸러 갈 것도 하나도 없고 양식도 있고 돈도 있고 이제 호주가 있다가 ‘이 집에는 뭐 좀 모자라지 않습니까? 배급타 드릴까요?’ ‘우리집에는 배급은 필요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뭐 배급 안 받아도 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야단인데 안심하고 담대한 호주가 될려 하면 그것도 애로가 있어야 된다 그말이오. 좋은 성과를 이룰려고 하는 데에 애로 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세상 모든 일이 이런데, 이런데 하나님이 너를 지극히 높이는 이런 목표를 향해서 달성하는 이 걸음에 애로가 없을 것이라고, 조그만한 애로만 있어도 자꾸 네가 휘떡거리고 있으니 뭐이 되겠느냐? 이것을 상식적으로 네가 알고 있어야 된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잘 새겨서 들으십시오. 아주 보배로운 말씀입니다. 불쌍한 자는 어디든지 가면 어른 노릇 할려 해요. 어디든지 대가리 노릇 할려 해요. 목회자 가운데에도 자기가 낮아질 기회가 있고 낮아질 점을, 낮아져야 할 점을 가르쳐 주면 치료받았으니까, 암병 고쳐 줬으니 고맙다고 감사해 못견딜 건데 ‘내 위신 떨어뜨렸다.’ 그자는 그거 회개하기 전에는 목사를 하다가 죽는 날까지 하다 죽어도 헛수고입니다. 자기 구원은 헐일이야. 안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교만, 겸손, 장로, 젊은이들, 하나님은 교만과 겸손에 대해서 때가 되면 네가 지극히 높아질 이 계획을 세우신 이 능하신 분 앞에 너는 복종해라. 이러는 데에는 순서가 다 이루어져야 된다. 때를 다 통과해야 된다. 여기에 적이 있다.
적이, 첫째 적이 뭐입니까? 염려. 둘째 적? 둘째 적? 마귀 그것도 몰라 가지고 뭐할 건고? 세째로 이기는 방편, 믿음. 또 우리가 상식으로 알아둘 것. ○○○선생님, 상식으로 알아둘 것? 상식으로 알아둘 것 뭐이냐? ○○○선생. 그래 백점이야. 세상에 모든 일들도 다 이렇게 좋은 건설을 결과를 맺으려고 하면 애로가 있다 그거요. 고진감래라.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흥진비래라. 좋은 것만 취하면 마지막에는 참 불쌍하고 슬픈 것 온다. 세상 통계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