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준비


선지자선교회 1980년 8월 27일 수새

 

본문 : 마태복음 25: 3-4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여기 기름은 영감의 은혜를 가리켜서 이렇게 기름으로 비유하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인데, 이제는 하나님과 서로  상호내주 할 수 있는 그런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안에 와서 계실 수 있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 가 있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서 또 성경에  기록한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룰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만나는 현실 현실은 우리의 마음의 기능속에 우리의 몸의  기능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진리의 힘이 와서 내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우리 심신의 기능속에 하나님의 그 능력 은혜와 진리의 그 능력  은혜가 우리 심신의 기능안에 와서 내주하게 됩니다. 마치 그릇에 기름을 담는  것처럼 내주하게 되고 그러면 등에서 불을 켜는 것처럼 우리의 심신의 행동으로  세사에 빛을 비출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속성을 그대로 나타낼 때에  하나님의 지혜대로 나타날 때에 빛이요. 하나님의 능력대로 나타낼 때에 그것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행동과 우리 생활로 빛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공은 어디에 있는 고 하니 현실에 있는데 현실을 벗어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고 아무리 각오해도 그것도 소용없습니다. 왜? 현실에서만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현실 외에는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참 가룟유다만큼 배가 터져 죽을 만큼, 생명이 끊어질 만큼 후회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결심과 각오를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고.

후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앞으로 결심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필요하냐? 후회한 것과 결심한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그 현재에 후회한 것을  현재의 현실에서 그 후회를 많이 했으면, 현실에서 후회했던 그것을 현실에서  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도움이 되고, 또 미래에 각오한 그것이 현실에 자기가  행할 때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 후회나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현실이 없다면 현실에서 후회한 것을 현실에서 하지 않고 각오한 것을 현실에서  쓰지 않는다면, 후회한 것을 현실에서 하지 않고, 각오한 것을 현실에서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했다고 하면 우리의 후회와 각오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추호의 구원의 효력도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이 우리에게 중요한데 이 현실에 우리는 기름 준비하는 것,  기름 준비한다 말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은혜를 우리가 마련한다는 말인데,  우리 심신의 기능속에 하나님의 그 모든 능력과 진리의 힘이 우리안에 내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지, 전능, 완전한 아가폐사랑인데 이것이 우리안에  와서 내주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서는 전지전능이 나오고, 우리 마음에서는  완전한 사랑이 나오고, 그러면 또 우리 몸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지능이 나오고,  완전한 사랑이 나올 때에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는 자꾸 이 말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기억하기가 쉬우니까 여러 성구를  말하는 것 보다 이 하나 가지고 꼭 잡으면 기억하기 쉽습니다. 기억하기 쉬운데  그 현실에서 기름준비해야 된다는 이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그러면  현실에 기름 준비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준비가 되는가? 기름 준비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의 그 온갖 능력, 온갖 은혜, 온갖 깨끗을 내가 받아들이게 그  능력으로 받아들이게 되니까 내 안에서 지능의 역사가 들어있고 깨끗의 역사가  들어 있고 사랑의 역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깨끗을 받아들여야겠다.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지능을 받아 들입니다. 또  내가 그 지혜를 받았으니까 전지한 지혜를 나를 통해서 발휘할 수 있는 지혜의  그 능력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진리가 우리안에 와서  내주하게 됩니다.

이래서 예수님께 내가 너희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을  너희들이 알리라 이랬습니다. 알리라.

그것은 보면 아니까 자기안에 하나님이 이 현실을 통해서 오시는데 하나님을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이 면의 하나님, 저 면의 하나님, 이런 하나님,  저런 하나님, 그 이런 현실에서는 이런 하나님이 내안에 와 계시고, 또 저런  현실에서는 저런 하나님이 내안에 와 계신다. 그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하나님이 이 면으로서는 내 안에 계시지만 저 면으로서는 계시지 않고, 사람들이  이 면으로서 서로 통하고 저 면으로서는 서로 통하지 않는 것과 같이,  부부간에라도 어떤 면에는 그 부부가 통하고, 어떤 면으로는 통하지 않고, 그면  통한 면이 많으면 차차 그 부부가 아주 상당히 결합이 되어지는 것이고, 서로  통한 면이 적어지고 서로 어긋나는 면이 많아지면 점점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되는 면이 많아지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삐뚤어진 면이 많으면 점점 멀어지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역사가 이루어지든지, 가까워지는,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져 하나님과 나와 하나가 되는 그곳을 가리켜서 기름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밤 중은 인간의 요소로는 절대 그 현실에서 진리생활을, 영감생활을,  하나님의 뜻대로의 생활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나타낼 수가 없는 그곳을 가리켜서 밤 중이라 말한 것입니다.

인간단독으로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없는 절대  불가능한 그것이 밤 중인데 이 때는 다만 자기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만큼  자기안에 있는 것만큼 하나님과 진리의 능력은 하나인데 혹 생각하기를 진리는  능력이 없고 하나님은----- 그 대통령말은 능력이 있지만 그 대통령이 죽으면 말이 소용이 없지만 대통령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힘이 있다. 그러면 대통령의 말이 힘이 있는 것 아니라  대통령이 힘이 있기 때문에 그가 말이 힘이 있다하는 그런 것 모양으로 하나님  말씀도 그와 같은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셨고 진리는 하나님이 아니고 진리 단독이 그  전능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진리는 진리 단독이 능력을 가져, 하나님의 능력  아니고 진리단독이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진리가 모든 만물을 창조한 그  능력입니다.

이렇게 현실에서 하나님과 진리의 그 모든 능력과 깨끗과 온전과 영원불변의  생명을 이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 신신 기능안에 들어가서 내주하시게 되느냐  쫒아냄으로서(이분을) 우리에게는 심신에세 완전한 기능이 없는 그 심신이  되느냐. 그 우리 심신의 기능에 완전한 하나님의 기능이 내주하시지 않으면 그  기능은 죽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 합니다. 그러면 내주하게 되면  그 심신은 영생하게 됩니다.

심신의 기능은 한 개가 아니고 천 개도 만 개도 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현실에서 이 심신의 기능 한 개를 살리고 어떨 때는 백 개를 살리고, 어떤 때는  천 개를 살리고, 어떤 때는 열 개를 살리고, 이러는데 어떨 때는 그곳을 자기가  이 기름 준비하지 않으므로 이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하나님과 진리의 기능을 내  심신의 기능속에 받아들이지 아니한 그 때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사망이고 받아들이면 이제 심신의 기능이 속량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양자가 됐습니다. 그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는 심신에 그 하나님의 기능과 진리의 기능이라면 그 무슨  기능이냐 없는 가운데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기능입니다.

창조하신 기능이요. 창조하신 기능이요. 창조하신 사랑이요. 창조하신 지혜요.

또 영원히 이것을 통치할 사랑이요. 지혜요 능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이 믿는 자 안에 계셔서 당신이  믿는 자를 통해서 마치 내가 내 손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몸이라 하나님의 지체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물을 통치하고 만물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시키는 것을 이제  우리가 주게 됩니다. 우리마음이 주고 싶은 것을 우리 몸이 주는 것과 마음이  주고 싶은 것을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음식을 주고 싶으면 마음이 주고 싶은 것을  암만 내 마음이 주고 싶어도 손을 안 대면 안돼. 손으로 준다 그 말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를 통해서 만물들에게  주시게 됩니다. 그러니까 만물은 우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기름준비, 이  성화된 심신의 기능을 만물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얼마나 필요한가? 하나님과 꼭  같이 필요하지. 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것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기능으로 성화되기를 못하고 살아나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기능으로  살아나지 안한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필요없는 것은 하늘나라 못  갑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부활할 때에 지금 마련되어 있는 심신의 기능은, 그것은 마음의  기능은 그대로 세상 떠날 때 하늘나라 갑니다. 몸의 기능은 그것이 다 세포속에  있다가 무슨 원소로 돌아가도 그 안에 있다가 이 다음에 부활할 때에 그  기능있는 부활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마련하지 않했으면 부활은 되기는  되지만 기능이 없는 그런 심신입니다. 마음의 기능도 없고 몸의 기능도 없고  없는 그 자로 부활을 합니다.

없는 자로 부활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말을 하자면 그 사람이 마음도 가지고  있고 몸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참 그 사람이 천 배, 만 배도 넘은,  마음의 기능도 몸의 기능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 마음과 몸은 있지만  그 마음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기역자 하나도 모르고, 마음이 하나도 아는  것이 없고 또 하나의 능력도 없고, 몸도 그러하고, 그러면 그 사람을 바보라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살아있지만 똑 나무로 만들어 놓은 장성같다 아무 감각이  없다. 눈만 꺼무럭 꺼무럭 이래가지고 움직이기는 움직이고 아무것도 쓸모는  없다. 그런 사람 우리가 보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하지만 그 사람은 기능이 없는 부활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아주 기능이 있어서 몸은 보면 꼭 같이 뭐 팔팔 그런 것인데 꼭 같은  눈도 가지고 있고, 귀도 가지고 있고, 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은 일국을  흔드는, 국운은 국운이지만 오늘 전장군을 대통령으로 지금 선거한다 하지  않습니까 하니 법의 요식을 갖춘 것 뿐이지 벌써 되가지고 있어. 그 사람의  기능은 다 원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데 그 사람은 그 기능이 있는  사람이요. 다같이 심신을 가졌지만 그 사람의 기능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그것하려고 대통령하려고 죽임받은 사람도 많고, 또 갇힌 사람도 많고,  재판중에 있는 사람도 많고, 이 사람은 아무 그런 것도 하나도 없고 모두다 서로  세울라고 야단을 지우니 그 사람이 어쨌든지 타고난 지능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라. 우리가 이렇게 실력있는 자기로 마련한다는 것이  현실이요. 또 영원히 자기가 실력없는 자로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자기를 실력있는 사람으로도 마련할 수 있고 자기를 참 실력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마련하는 이 실력이  영원무궁의 실력이요. 지금 실력없는 그 무력이 영원무궁의 그 무실력입니다.

그러면 그 실력이라하는 것이 하나님을 맞이하는 것,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수족같이, 하나님의 혀같이 살게 되니까 하나님이 물론 좋아할 것  아닙니까? 또 만물들이 싫어하느냐?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그들에게  주어서 충만케하는 것이니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좋은 것을 주고,  유익한 것을 주고, 자기에게 모든 것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주는 그가 되어  놓으니까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없어지기를 원치 아니할 것이고, 그가 충만해지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된 구원입니다. 영광된 실력이요. 영광된 구원입니다. 지금 전 장군은  모두다 원한다고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지금 싫어서 저거 얼른 죽어버리면  좋겠다 이렇게 하는 사람도 없다고는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북에서 보면  전두환씨를 제일 욕을 많이 합니다. 난 또 뉜줄 몰랐어. 이북 방송들으니까 욕을  첫째 전두환씨를 욕하고 둘째는 미군 욕하고 셋째는 유신체제 이것을 욕하고 세  가지 욕해. 저 사람들은 우리를 해치는 사람들이니까 나보다 더 잘알고 있다. 저  사람들이 없애야 된다 하는 것을 보니까 그 인물이 첫째 필요하고 둘째는 미군이  필요하고 셋째는 유신제도인가 보다.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 지금 미워하고  죽이고만 싶은 사람도 있다 말이요. 그렇지만 우리가 얻는 이 지능은 그것이  아니요. 우리가 믿는 이 지능은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이 다 원해요. 우리가  죽을까 없어질까 약해질까 벌벌떠는 그런 영광스러운 실력입니다. 그만 음부에  가서 있는 것은 어째 되느냐? 음부 아래 있는 것도 다 감탄하고 찬성하고 그가  강해야 강해야 벌써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 자기네들은 벌써 그를 반대하다가  멸망받은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 멸망시킨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원수가 되니까 천국을 가지 못해도 하나님과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합해져있는  이 사람들이 원하고 원해서 주라 시인한다 이랬습니다.

이렇게 영광된 구원입니다. 그러면 이 영광을 마련하는데에는 현실에서 우리가  간단하나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 현실에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하는  그것이 첫째로 이 능력을 마음, 심신의 능력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만 악령은  대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간단합니다. 악령은 하나님의 그 뜻을 이겨도 괜찮다.

이 마음 그것이 벌써 악령입니다. 그 내 속에 악령이 내 속에 들어서 내 마음을  주장해 가지고 그 놈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을 그것을  성령으로 바꾸면 성령은 하나님 말씀 어기면 사망한다. 하나님 말씀을 어겨도  괜찮다 이 두 마음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내 마음이 아니고, 내 마음을  붙들고 악령이, 성령역사기 때문에 그 때에 하나님 말씀을 거역해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다시는 그게 죄인데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이 결과는  사망이다하는 그 마음을 내가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내가 어겨도 괜찮다 하는  것이 그 마음을 물리치는 것이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이렇게 하며 네가 잘된다 바라 네 현실에서 이렇게 어기면  너 좋다. 어기지 않으며 하나님 좋고 어기면 너 좋다. 이렇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이렇게 해야 이 세상은 잘되겠는데 이기 이렇게 해야 내가  재미있겠는데 이래야 이시간 소원이 좀 이루어지고 기쁘겠는데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어겨 자기에게 좋아보이는 좋아지는 그렇게 하고 싶은 그것이 막바로  악령입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이것만이 생명과 평강이지 다른 것이 없다.

자기 마음안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래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도  사망하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한 번만 해라, 이 번만 해라.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악령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겨  내맘대로 하면 좋겠다 재미있겠다 그것이 또 성공이 되겠다. 형통이 되겠다.

일이 잘 되겠다하는 그 맘,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악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  현실에서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바로 악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 마음  물리치면 악령은 우리에게 왕노릇 못합니다.

이미 너희가 죽었고 하는 그 말은 옛사람은 벌써 사형을 받아서 이 왕권을  빼앗겼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성령을  영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성령을 영접하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 어기면  사망한다. 하나님 말씀행하면 전체는 평강이요. 영생이요. 생명이다. 이 마음을  영접하면, 이 마음을 자기가 가지면, 이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 성령을 영접하는  것이요. 이렇게 했으면 성령이 자기속에 들어 왔습니다. 그 면으로 진리가 들어  왔습니다. 그것이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현실에서 악성, 악성 이 놈을 물리치는 것은 어떤 것을 물리쳐야 하나  악성은 자기자 자기 가정이나 자기 민족이나 민족주의, 민족주의 그것도  악성입니다. 국가이상주의, 그것도 악성입니다. 가정주의도 악성입니다.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이것도 악성이라 그 말이요.

그러면 자기를 위주로 하든지, 자기 가정을 위주로 하든지, 자기 어떤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위주로 하든지, 사건을, 돈을 위주로 하든지,  지위나 권세를 위주로 하든지, 피조물 무엇이나 이 세상운동, 그것을 위주로  하는 것이 그것을 용납하는 것이 악성을 용납해서 자기가 악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물리쳐요. 내가 구속을 받았는데 이런 것을 중심으로 할 수  있겠느냐? 부모를 장사하려해도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케하고 너는  하늘나라를 전파하라, 나를 따르라. 또 가족을 버려라 ,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 합당치 않다. 이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일인데 그것도  주님이 거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의식이라 내가 아무리 급해도 사형을  받아 내가 죽었는데 살기부터 먼저하지, 살기부터 먼저하지, 살기부터 하고  보자. 이렇게 죽음에서 사는 그 중심이 그것도 악성이라 그 말이요. 내가 사는  것보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내가 해야지. 이것을 바꾸어 가지는 이것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그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입니다.

그러면 새사람이냐? 옛사람이냐? 그것이 옛자기를 죽인 옛자기냐 그 새자기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 자기냐 중생된 살아난 영이냐 이것이 여기에서  결정되어 지는 것이지. 그 현실에서 현실이 아닐 때는 암만 그래도 소용없어. 그  현실에서 그렇게 해가지고 현실을 새사람으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새자기를 옛자기를 어느 것을 영접하느냐 하는 것이요. 또 그 하나만 남았는데,  구습, 구습 반대는 믿음입니다. 구습 반대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된 것인데, 구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구습인고 하니, 그것은  이제까지 해나오던 일이라 그 말인데 이제까지 무슨 일을 해 나왔더냐? 이  피조물에게 피동되서 행동한 것들이 구습입니다. 피조물에게, 그 사람에게  피동되서, 물건에게서 피동되서 또 일에 피동되서, 소리에 피동되서, 또 권세에  피동되서, 명예 영광에 피동되서, 자기의 좋아하는 구습, 재미있는 일, 욕심내는  것 그런 것에 피동되서 그러기 때문에 구습은 어떨때는 많이 도느냐 하면 자기가  소원하고 소원하는 그것이 탁 닥칠때에는 그만 그 때는 하나님에게 피동당하는  그것이 구습을 쫒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습을 버리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과 진리에 맞은 그 환경,  주변, 그 때에 무슨 피조물이든지, 어떤 사건이든지, 인물이 사람이든지,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가 그 시간 움직여 행동하면 구습을 쫒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서 이 현실이라는 피조물에게 피동되지  않고, 피조물을 인하여서 자기 마음이나 소원이나 생각이 움직이지 않고, 그 때  그 현실에서 하나님과 진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이것을 하면 그것이 믿음이  됩니다.

그러면 믿음과 이 구습, 둘이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과 구습이 싸우는데 그  현실에서 구습 이곳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는 이곳이 자기가 빛이 되고 영생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곳이 영생을 세우는 것이요. 옛자기를 버리고 새자기를  영접하는, 이것은 지금 영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고, 또 악령을 버리고  성령을 영접하는 그곳도 능력을 가지는 것인데, 이 둘은 능력을 가졌는데  하나님을 바로 모셨고 내가 바로섰고 그랬는데 성공은 어디서 되어지느냐 하면  믿음이냐 구습이냐 여기에서 결정됩니다. 결정.

이러니까 우리가 평상연습을 해도 그만 후회는 다 완전히 했는데, 후회는 잘못된  것을 다 후회면으로서는 오나전한 후회를 했고, 미래를 두고 결심을 완전히  했는데, 이 현실만 닥치면 그만 구습에게 탁 넘어가고, 악성에게 꼭 넘어가고  악성, 그것이 그만 내가 되버리고 그 때 악령을 영접해서 악령으로 인하여  움직인다 말이요. 악령인해서 움직이고, 악성이 주장되어 가지고 움직이고  악습대로의 생활이 통과되 버리고 만다 이것이요.

이러니까 이것을 이 현실에서 악성으로 더불어 싸워 이기고 악습으로 더불어  싸워,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속사람, 새사람으로,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  성령을 모시는 이 현실, 이 세 가지가 된다면 이 참 우주를 영접하는 것보다  큽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는 것은 이 현실에서 이 세 가지가 안되는 것을 가리켜서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버리고 세 가지를 가지는 자기가 이 세가를  세 가지를 하나님께 속하지 못하고 세 가지에게 지는 그것은 좋으리라고 해서  그런데 그 좋은 거 억억만배보다도 더 좋은 여기에 있습니다.

더 기쁜 것도 더 좋고, 쾌락도 더 좋고, 쾌락으로 배해도 그 보다 더 좋은  쾌락이 여기에 있고, 기쁨으로 비해도 그게 비할 수 없는 기쁨이 있고, 정으로  비해도 비할 수 없는 것 있고, 사랑으로 비해도 비할 수 있는 사랑이 있고, 그  뭐 쾌락이나 재미나 무엇이든지 비할 수 없는 무한성의 것이 여기에 있는데  그것을 취해보지 못해서 자꾸 우리가 이 썩은 것을 취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취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거것을 못 취하도록 가시로 담으로 막아가지고 못  취하게 되면, 그 다음에 본 남편에게도 어쩔 수 없어 취해가지고 취하고 난  다음에는, 본 남편을 취하고 난 다음에는, 제가 다시 그 때는 이제 말하기를  내가 속았구나 그 간부보다 본 남편이 낫다 이렇게 한다 그 말입니다. 이기는  현실에서 이 세 가지 싸움을 이겨서 악령을 버리고 성령을 모시고 악성을 버리고  중생된 영을 영접을 하고 악습을 버리고 이제 믿음으로 딱 돌아서고 난 다음에는  옛날 그 보다 낫다. 믿음을 지켜서 이 현실에서 성공을 하고 난 다음에라야 그  가치를알고 맛고 알고 이제 다 모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다시는 바꾸지  않겠다고 하지. 지켜보기 전에는 자기가 언제든지 그 그일하요. 그러니까 이기고  나야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이 세 가지 싸움 이것을 자꾸  그만 다른 성구를 내비두고 그만 기름이라 , 기름준비, 기름준비 그러면 이 능력으로 준비된 것만큼 이 능력이 승리하지. 준비하지 안한자로서는  천하에 어떤 의지가 강하고, 잘나고, 굳세게, 억세고 한 사람이라도  인간단독으로서는 그 때에 빛의 생활을 할 수 없는 진리의 생활을 할 수 없는  의의 생활을 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생활할 수 없는, 그 때에 하늘나라를 기뻐할  수 없는, 암만 고통스러운 것을 줘도 그 고통에게 삼켜지지 않고 하늘의 기쁨을  가져야 승리한 것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이 번에도 보니까 그  영국 목사는 그 때에 고통을 당했다하는데 예수님이 고통을 당했으면 우리의  대속이 안 됩니다.

고통을 줬지만 예수님은 그 고통이 당신에게 와서 고통되지를 안했습니다.

그통을 이겼지, 고통에게 삼켜지지를 안했어. 죽였지만서도 하나님께서 원수로  버렸지만 이 분은 하나님에게 가서 달라 붙었고 하나님을 떨어지지 않했고  배반하지 안했어. 하나님은 배반해야 배반하지 안했기 때문에 이겼다 말이요.

죽였지만 죽지 안했기 때문에 이겼다 말이요. 죽였지만 사망에 삼켜지지 않했어.

죽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죽였지만 예수님은 사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버렸고 죽이는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과 끊어지지  안했어. 하나님도 버렸고 죽이는 고통을 안했지만 하나님과 연결은 끊어지지  안했어.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 자기가 책임맡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앞에서  기도했다 이랬습니다. 껍질은 죽었지만 속으로는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안했기 때문에 생명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그 분에게 삼켜져서 하나님의 생활을 버렸기 때문에 그래. 배반했기 때문에  그래.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그 계명을 배반 안할 수도 있고 배반 안하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도리는 지켰지만 하나님의 도리는 지켰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므로 말미암아 세상의 이 죄악에게  삼키워지니까 해를 당하니까 죄악이 그것을 먹으면 죄악이 바싹 깨집니다.

죄악이 깨져버리요.

이러니까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하나님이 고통스러웠겠소.

기뻐했겠소. 슬퍼하겠소. 예? 기뻣습니다. 성령은 그 때에 십자가에서 무한히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에게 한없는 고통을 가했지만 신성이 기뻐하는 그  신성의 기쁨에 피동되어서 예수님의 인성은 순전히 다 기쁨에 피동되었기 때문에  그 때 끊어지지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생명으로 하나님으로 충만했습니다. 충만한 주님이 그 때  나타나서 역사했습니다. 이러니까 어디까지 우리가 잡아야 되느냐? 이 몸과  생명을 죽이는 그것이 그것이 일탄이요. 위험하는 것 아니요. 제일 뜨거운 불은  다 바치는 것이요. 죽음이 제일 뜨거운 불이요. 그것이 제일 큰 고통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고통이 와서 위협할 때에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는데 자기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않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이 자기 몸의 생명, 마음 생명. 육의 생명인데 육의 생명을 빼앗아도  그런 그 빼앗는 고통에게 피동되지 않고 고통에게 피동되지 않고 고통에게  피동되서 고통스럽지 않고 그것을 그 육의 생명을 고통을 줘가지고서 빼앗게 할  때에 자기는 고통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몸과 생명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에서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그 사랑에 연결되고  감격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에 연결되서 자기는 기쁘고 주님의 평안에  연결되서 평안하고 그것이 진짜 완성입니다. 완성입니다.

성자들의 전기를 보면 선지사도들의 그들의 전기는 성경에 밝히 기록이 되있지  안해요 그렇지만 전설에서는 있는데 사도 요한이는 그를 기름을 끓이는 그 기름  가마속에 넣어놓고 삶아도 뜨거워 지지 안합니다. 뜨겁지 않고 기쁨에  고통스럽지를 안했어. 기쁘고 즐겁고. 그러면 그 고통에게 어느정도 고통을  당했느냐 고통당한 만큼 그 자기의지는 있고 주격은 있지만 고통당한 그것은  고통에게 피동당한 것입니다. 고통당한 것입니다.

그곳은 뭐입니까 고통준 그곳이 악의 세력입니까 빛의 세력입니까 악의  세력이지요. 어두움이지요. 어두운데 그만 등불은 어두움에 삼켜져서 어두워진  것이니까 어두움을 어두움을 없앤. 어두움을 녹인. 그 빛이니까 빛 아닙니까  등불은 그것입니다, 돈에게만 피동안 당하는 것아니고 굶주림에도 고통안 당하고  고통에도 피동안 당하고, 죽음에도 고문과 고행에도 피동안 당하는 그것 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인데, 그 뭐 조금만 배가 고파도 그 배 고프니까  밥먹는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완전 우리가 완전 영화가 안되 그렇다  그것이요. 영화가. 영화가 안되서 그 완전히 이 갖다가 고기덩어리 이것은  배고픈 것은 고기 덩어리가 배고픈 것인데 고기 덩어리 이것이 온전히 이 중생된  영에게 중생된 마음에게 성화된 마음에게 완전히 피동되서 그것만 피동되고 고기  덩어리에 피동되고 고기 덩어리에 피동이 안된다고 하면 고기덩어리의 그 기능은  구원은 다 이뤄지지를 안합니다 거기에 까지 우리가 향하여 도달할 수가 있다  이것이요.

그러니까 세상에 무엇이 와도 고통으로나 평안으로나 무엇이 와도 충격을 줘서  내가 그게 피동을 당하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기에 피동되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는 이것 만이면 다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배반치  아니할 뿐아니라 내 심신의 세포하나 까지도 그것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것이 완전한 승리입니다. 이것까지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연습을 하면 숙달이 될 수 있다 완전히 될 수 있다는 것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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