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보좌의 왕


선지자선교회 1983년 9월 16일 금야

 

본문 : 마13:3-9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씨뿌리는 비유를 그 전에도 공부를 했습니다. 한 말씀을, 그 말씀 안에는 모든  것을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농사짓는 것으로도 비유해서 가르치고, 장사하는 것으로도 가르치고, 또  이 면을 말씀하신 것도 있고 저 면을 말씀하신 것도 있습니다. 그전에 씨뿌리는  비유를 공부했기 때문에 공부한 사람들은 알아듣기가 쉬울 것입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것을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를 무엇을 가르켰는가 하는 데 대해서 좀 말하는  데 대해서 확신이 적었습니다. 그러나 차차 차차 보고 연구하고 실지로 경험해  보는 데에서 지난번 대구에서 해석한 그 해석이 확실한 것을 저는 잡았습니다.

 백 배는 열의 십 배가 백 배요, 육십 배는 여섯의 십 배가 육십이요, 삼십은  셋의 십 배가 삼십입니다. 사람들은 열을 만수로 그렇게 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열수는 사람수라, 또 셋 수는 하나님 수라, 여섯 수는 마귀의 수라  그렇게 성경에도 해석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셋으로 그렇게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하나님의 도를 받아 가지고 자기가 신앙 생활 하는  가운데에서 백 배 결실을 맺는다. 인간에 대해서 온전을 이룬다. 인간에 대해서  온전을 이룬다. 육십, 마귀에 대해서 온전을 이룬다. 삼십, 하나님에게 대해서  온전을 이룬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악령에게 대해서나 사람에게 대해서 모든 면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을 이룰 수 있다. 같이 하나님의 도를  받으나 어떤 사람은 사람과 악령과 하나님에게 대해서 전부 잘못한 것뿐이지  바로 한 것은 하나도 없을 수 있는데 옥토에 뿌린 씨가 되면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사람에게 대해서나 악령에게 대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하고  구비한 결과를 맺을 수 있다 하는 것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나그네 세상을 살고 가면서, 마귀는 전인류를 다 유혹시켜  가지고 정복했습니다. 그렇게 전법과 그 힘이 강한 악령에게 대해서도 조금도  심판받을 것이 없이, 조그만한 실수도 없이, 조그만한 패전도 없이 악령에게  대해서 온전한 승리를 이룰 수 있다.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을 노엽게나 근심되게나  하는 일이 없이,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있는 온전한 생애를  이루어 갈 수가 있다.

 또 사람에게 대해서도 천태만상으로 변하고 조석으로 변하는 상상도 못할 별별  사람들의 그 심리와 행동이 있지마는 자기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대해서 조금도  심판받을 것이나 후회할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는 온전하고 구비한 행위를 할  수가 있다. 이러면 참 우리는 그 이상 구할 것이 없는 성공이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모든 면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 없는 충만 충만  온전 온전 이것을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지극히 어렵고 존귀한 일인데 기독자는  옥토에 뿌린 씨만 되면 된다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자는 이렇게 모든 면에 악한 자에게 대해서도 온전하고, 의로운  자에게 대해서도 온전하고, 죄에 대해서도 온전하고, 어떤 천인 만인이 넘어가는  그 유혹에 대해서도 하나도 심판받을 것이 없이 온전한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기독자들이라, 그러면 기독자들은 옥토에 뿌린 씨만  되면 된다 하셨기 때문에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것을 지난번에 대구에서  기초적인 말씀은 가르쳤습니다. 어떻게 하면 길가 뿌린 씨를 벗어나며, 돌밭  뿌린 씨를 벗어나며, 가시떨기에 뿌린 씨를 벗어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옥토에 뿌린 씨가 되면 이렇게 모든 면으로 온전하고 구비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기 때문에 옥토에 뿌린 씨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참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만 하겠습니다.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데는 길바닥에 뿌린 씨  이것을 없애버려야 됩니다. 또 돌밭에 뿌린 씨 이것도 없애버려야 됩니다.

가시떨기 위에 뿌린 씨 이것도 없애버려야 됩니다. 그 세 가지가 없어야 옥토에  뿌린 씨가 되지 그 세 가지가 있으면 옥토에 뿌린 씨가 안 됩니다.

길바닥에 뿌린 씨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가리켜서 비유한  것입니다. 그 지식이 먼저 그 사람에게 들어와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완패하게 허망하게 어둡게 만들어 놓은 그것을 길바닥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밟아서 다진 길바닥이라.

 그러기에 이것은 요한복음 10장에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이 세상 어떤 지식이든지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 모든 말,  모든 사상 그것을, 모든 지식이라고 해도 표현이 바로 되고 모든 말이라고 해도  표현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먼저 우리 마음을 자리잡고 앉으면  그것이 길가에 뿌린 씨가 됩니다.

 그런 것이 그것을 선입적 관념이라, 기존 지식이라, 하나님의 도를 받기 전  자기의 주관이라, 자율이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요한복음 10 장에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너희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온 절도요  강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길가에 뿌린 씨는 하나님의 영감 도리보다 내 마음을 먼저 차지하고  있는 그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이 영감 도리를 받을 때에 내 마음을 먼저  차지하고 있는 그것에게 이 영감 도리가 쫓겨납니다. 씨를 암만 뿌렸지마는 그  씨가 딴딴하기 때문에 흙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은 그 흙에 받쳐서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만 쫓겨나와 버립니다. 그러면 흙 속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흙에 튀어 나와 가지고서 뭐 새들이 악한 자가 주워먹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돌밭에 뿌린 씨도 그와 같습니다. 돌밭은 곧 원죄자가 되어 있는 자기  중심이 되어 있는 자기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먼저 차지하고 있으면 그것은  돌밭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먼저 차지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도를  받아도 먼저 자기 마음을, 마음을 차지하고 자기 마음에 왕이 되어 가지고 있는  자기가 그 자기에게 거슬림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의 도를 용납하지마는 거슬릴  때에는 그만 하나님의 도를 쫓아내 버립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도를 받고 그대로 살려고 결심을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  해서 시작해도 자기에게 거리끼면 그것이 받아 내뜨려 버리니까 결국은 그 씨는  거게서 절단 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가시떨기 위에 뿌리웠다는 이 비유는 모든 세상 염려, 재리 그런 것들인데  세상 염려와 재리 그런 것들이 자기 마음을 먼저 차지해서 자기 마음의 주인공이  되고 자기 마음의 주권을 가지고 주재권을 가지고 왕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아무리 달게 받아도 마지막에 자기 마음을 먼저  점령하고 더 권력있게 점령하고 주권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그 세상이 결국은  저에게 하나님의 도가 거리낄 때에는 하나님의 도를 밀어 박차버립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하나님의 도는 거게서 쫓겨나는 것과 같이 실패를 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옥토에 뿌린 씨는 자기 마음에 이 세상 지식이나 자기나 세상 모든  재리나 사건이나 그런 것이 자기 마음에 먼저 내재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몰아내고 자기의 마음에 주 하나님, 성령의 도리 다시 말하면 주님과 주님의  법칙인 이 말씀, 주님과 진리를 자기 마음에 영접해서 자기 마음 제일 높은  자리에 주님과 진리를 모셔, 진리는 주의 법칙이요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 제일 먼저 모셔서 왕으로 모셔 왕권을 가지고 이렇게  계시게 되면 그 다음에 세상 지식이 와도 내주한 그 보좌에 앉은 주와 주의  법도, 주와 주의 진리가 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왕권에게 복종하는  지식이면 용납을 하고 복종을 하지 않는 지식이면 발길로 차서 내트려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에 왕인 주님과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주님과 진리에게  소속되지 않을 그런 지식은 다 쫓겨나고 그 마음에 침노를 못 하게 됩니다.

 또 자기 마음 안에 주님이 왕으로, 자기 마음 제일 높은 마음, 자기 마음에  제일 귀한 마음, 자기 마음의 보좌에 주님이 진리를 가지시고 내주해 계시면  내라는 것이, 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자기라는 것이 그 마음을 침노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침노할 때에 그 왕에게 복종을 하고 그 왕에게 소속이 되는,  그 왕에게 다스림을 받는 그 자기는 용납을 하지마는 다스림받지 않는 그런 역적  행위하는 그 자기는 다 정복해서 제거하고 쫓아냅니다.

 그러면 자기 마음에는 성령과 진리로 생겨진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되어진 그  새사람은 자기 속에 왕으로 계시는 주님과 진리에게 반가운 마음으로 복종하고  소속하지마는 몹쓸 자기는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몹쓸 자기는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오면 박살을 당하든지 쫓겨나든지 하게 됩니다.

 또 세상 재물과 모든 만 사건들도 다 그러합니다. 내주한 주와 진리가 왕으로만  내 마음 안에 내주해 계시면 이 왕에게 대적이 되는 것이나 소용이 없는 것이나  배치가 되는 물질이나 사건이나 어떤 것이라도 다 거게 용납지를 안하고  쫓아내든지 거기서 박살을 당해 정복을 당하든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임재한 영감 도리는 비로소 그 마음의 보좌 안에 좌정한 왕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자기 마음 안에 들어 있는 먼저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  가지 도적을 몰아내야 됩니다. 이 세 가지 절도요 강도 이것을 몰아내고 우리  마음에 성령과 진리, 다시 말하면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요 주님을 우리  마음 보좌에 내 왕으로 모시고 주님의 나라의 그 법칙을 내 마음 안에 그 왕의  법칙으로 모시게 될 때에 그때에 이 세 가지 적은 침노하지 못하게 되고 이제는  내 안에 왕권을 가지고 계시는 주님이 당신에게 맞지 않는 것은 다 정복을  하든지 축출을 하든지 하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만 용납해서 그 나라를 만들고  통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게서 두 가지를 굳게 잡읍시다. 하나는 씨를 뿌리는  그것보다 먼저 길바닥이 점령하고 권세를 잡고 있었습니다. 또 씨를 뿌리기보다  먼저 돌이 그 밭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또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덤불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덤불 위에 뿌려졌고 돌 위에 뿌려졌고 길바닥 위에 뿌려졌기 때문에 그  씨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속에 들어 있고 밑에 들어 있는 권세 있는 이  셋에게 하나님의 도는 결국은 실패를 당하고 패전을 하고 거게서 성공하지  못하고 패전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 안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 영감 도리를 받기 전에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있는 이것을 부인해서 이것을 쫓아내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우리는 세상 지식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도가  내 마음에 주인공이 돼야 됩니다. 내 마음에 왕권을 가지고 왕으로 내 안에  왕으로 내주해 계셔야 합니다. 대구에서는 왕으로 모셔야 되는데 왕으로 모실  이유를 많이 말했습니다. '그 말씀의 권위와 말씀 한 분의 권위를 비교해 봐라.

네가 비교하면은 어느 것을 모시고 어느 것을 배척해야 되느냐?' 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들이 지글거려 놓은 땅위에 가득찬 말과 그 말의 권위의 차이가 심히  있다 하는 것을 대구에서 초등으로 가르쳤고, 또 말씀하신 분과 또 세상 지식을  말해 놓은 그 말한 자 그자는 이 말씀이 지어서 지음을 받은 것들이요 멸망받을  것들이요 이는 그 비교할 수 없으니 이를 비교하면 배척할 수 있다 하는 걸  말했습니다.

 이를 비교해서 바로 깨닫게 되면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인데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온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경험의 체험의 지식 자기 주관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가지고 배암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다 배암의 지식이요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온  것을 가리켜서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 요한복음 10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이 세상 모든 지식 그것이 내 마음을  먼저 점령해 가지고 그것이 권위를 가지고 내 마음은 그것을 모시고 거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단 몰아내야 됩니다.

 일단 부인해 버리고 이 모든 걸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의 이 영감 도리를 내  마음 깊은 보좌, 제일 권위 있는 보좌에 이 말씀을, 이 말씀을 말씀하신 주  하나님을 왕으로 내 마음에 모셔야 길가 바닥에 뿌린 씨를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이 도, 주의 진리를 내가 받을 때에, 주의 진리를 받을 때에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나 아닌 나, 자기 중심인 나, 나 아닌 나 그놈을 몰아내고  쫓아내고 나 아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주인돼 있는 그놈을 몰아내고  부인하고 쫓아내고 주와 진리를 내 마음에 모셔들여야 내 보좌에 제일 높은  자리에 주와 진리를 모셔들이고. 내게 대해서 제일 왕권을, 주와 진리가 왕권을  가지고 전권 주권을 가지도록 이렇게 말씀을 모셔야 되고,  또 내가 주와 진리를 모시려고 할 때에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세상 지저분한  모든 것, 모든 재물, 모든 사건, 뭐 좋고 나쁜 온갖 세상의 모든 일들이나  물건들이나 그런 것이 내 마음에 가득 차 가지고, 대개는 그놈이 왕이 돼 가지고  그놈이 주권이 돼 가지고 그놈 하자 하는 대로 움직이던 우리이기 때문에 이걸  완전히 몰아내 버려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걸 사랑치  말아라' 하는 것은 그 단계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다 몰아내고 이제 그것이 내 마음을 점령하고, 내 마음을 주장하고 내  마음에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제일 권위 있는 자리를 차지해 가지고  그것이 들어서 내 마음을 주장하고 내 모든 성품이나 뜻이나 욕심이나 모든 것을  주관하던 그것을 몰아내고 주님과 진리를 내 마음 안에 전권의 왕으로 모시는  이것이 둘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처음에 내게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이 세 가지 적을  우리가 몰아내야 됩니다. 이 세 가지 적을 부인하고 몰아 내기까지 주와 진리를  영접지안하는 사람은 주님도 모르는 사람이요 진리도 모르는 사람이요 영접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요 또 영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진리를 자기 속에 자기 보좌에 모셔서 자기 안에 있는 자기의  왕이 되고 자기는 그 왕을 모신 왕국이 되고 성전이 되고 이렇게 모시고 모셔서  세상 모든 이십세기의 문화라는 그런 것들이 암만 몰아와도 그런 것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쫓겨날 수 있고 그는 것들이 와서 복종을 해서 종이 되면  용납하고 종 안 되는 건 다 쫓겨나 물리칠 수 있고,  또 이 진리, 주와 진리에게 복종하는 자기는 용납하지마는 주와 진리에게  복종하지 안하는 나는 박살내 죽여버립니다. 박살내 죽이고 용납하지 못하도록  박살내서 죽여서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놈이 뒤에 장난을 치지를 못합니다.

 또 자기 안에 왕으로 내주해 계시는 주님과 이 진리가 당신에게 정복을 당하고  소속하고 이용이 되어지고 쓸모 있는 이 왕의 슬하에 왕의 통솔하에, 왕의  소유로 찾아올 때는 용납하지마는 그게 아닐 때는 다 물리쳐 버립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주님과 진리를 자기 마음 안에 모시게 되는 것이 이것이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이 셋을 없애버리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됩니다.

 그러기에 그놈이 먼저 들어 있어서 뒤에 임하시는 주님과 진리를 다 밀어내고  배척해 버려서, 왜? 그것이 우리 마음도 점령했고 성품도 점령했고 우리 뜻도  점령했고 모든 것 다 점령했기 때문에 내 육이라는 이게 전부 먼저 온 그놈만  좋아하고 환영하고 뒤에 오는 주님과 진리는 배척해 버리기 때문에 들어올 도리  없습니다. 쫓겨나서 그 사람은 천국이 이루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이 셋이 먼저 우리의 심신이라는 것을 점령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점령해 가지고 있는 이놈을 결박해서 처리하기 전에는 주의  도리가 우리 속에 들어오지를 못한다. 그것이 먼저 있어서 주의 도리는 탁탁  튀어 가지고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자유권을 가지고 자유성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이제까지 세상에 있는 그 지식을 제일 왕으로 주권자로 권위로 지상으로  모셨어도 내가 그것을 부인하면 됩니다. 부인하면 되고,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옛사람 자기를 자기 아닌 줄 알고 이놈을 배척해 버리면 되고, 또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부인하고 주님을 모시려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우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물리치고 주님을 내 마음 보좌  위에 전능자로 전권자로 왕으로 내게 대해서 주권자로 이렇게 모시는 아것이  둘째로 중대한 문제입니다.

 모시고, 나서 그 다음에 셋째로 주의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삽니다. 살 때에 온 세상은 주님의 왕국이 되어 있는 주님의 성전이 되어 있는  내 안에는 그런 것을 용납시키지 안해야 됩니다. 내 안에는 용납시키지 안해야  됩니다.

 이래서 아가서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사랑하는 자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라' 그렇게 했습니다. 잠근 동산이기 때문에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

주님만이 내 마음에 출입하시고 내 마음에 오셔서 제일 좋은 자리에 좌정하셔  가지고 내 왕으로, 내 안에 주권자로, 나는 그분의 성전으로 이래 있지 세상에  어떤 영광이나 지위나 권세나 어떤 것이라도 이 잠근 동산 안에는 들어오지  못한다. 신부의 골방 안에는 들어오지 못한다 하는 것으로 그렇게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이런 걸 용납지 못하고 다만 주님이 진리와 함께 내 안에 계셔서 나는  주님 모신 집과 같고, 나는 주님 모신 보좌와 같고 나는주님을 모신 주의 지체와  같고, 주의 지체와 같고, 이래 가지고 그 다음에 어떤 일을 당하든지 여게  이기고, 지고 이기는 것이 여게 있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 때에 우리가 이 선후라는 것, 선후라는 것을 이것을 단단히  구별해야 됩니다. 또 주객이라 하는 것을 단단히 구별해야 됩니다. 만일 어떤  사건이 있을 때에 이 사건을 척 만나든지, 사람을 만나든지, 물건을 만나든지  만나 가지고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이 사람을 어떻게 하나, 이것을 어떻게  하나?' 했으면 벌써 자기는 변질돼서 자기 보좌에는 그놈이 점령했습니다.

 그것을 모시고, 그러면 '이 물건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고? 이 물건에  대해서 주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물건에 대해서 주의 법칙은 여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틀렸습니다. 그러면 벌써 그것이 내 마음에 그게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게 먼저 들어와 가지고서 선입적 권리를 가지고 그것이 주권이 돼 가지고  거게 따라서, 거게 따라서 이 말씀이 어떻게 움직이며, 거게 따라서 이 주님이  어떻게 움직이며, 이것이 중심되고 주인이 돼 가지고서 여게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벌써 이것이 자기는 몰라도 자기를 점령해서 자기 왕이  됐습니다.

 왕이 됐기 때문에 그놈이 왕이 됐는고로 그것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것  중심으로 움직여서 그것 중심에 맞은 주님은 영접해 들이고 맞지 안하는 진리는  다 물리치고 주님도 물리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나 길가 뿌린 씨 돌작밭에  뿌린 씨, 덤불 밑에 뿌린 씨로 다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게 와도 우리에게 닥치는 그 현실에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나  어떤 게 와도 그 현실은 내가 만드는 것 아닙니다. 요것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나를 쓰셔서 만들든지 다른 무슨  사물을 인간을 쓰셔서 만들든지 어쨌든지 내 현실은 내가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고 현실은 옵니다.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내 현실은 대  줍니다. 그 현실은 내가 살 세상 나의 처소입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 돈이라는 현실이 왔든지, 물질이라는 현실이 왔든지 난제라는  현실이 왔든지 현실이 오면 현실 그것은 내 마음 안에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 현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주님 여게 닥친 현실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돼 가지고서 주님 먼저 부르고 주님,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물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과 나와는  내재적 하나고 이 하나가 돼 가지고서 모든 현실이나 모든 사물들이나 만물들은  상대방으로 대해야 됩니다.

 상대방으로 대하지 안하고 내 안에 계시는 모신 주님과 진리를 모신 내가 '주님  여게 무엇이 사람이 하나 나왔습니다. 돈이 한 뭉텅이 왔습니다. 사건이 하나  나왔습니다. 주님 여게 대한 주의 생각이 어떠합니까? 여게 대한 진리 법칙의  생각이 어떠합니까?'  이제 그것을 멀리서 건너다 보면서 '주님, 저것에 대해서는 주님의 생각이  어떻습니까?' 그리하여 거기 대한 주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거기 대한  주님의 법칙이 내 법칙이 되어져서 안에서 그걸 상대해서,  그러면 그것을 먼저 둬 가지고서 그것을 따라서 내가 주님과 진리를 어떻게  하나가 아니고 주님과 진리를 모셔 가지고서 주님의 진리대로, 주님대로  진리대로 그것을 상대합니다. 이러니까 주님과 진리와 나는 이미 하나되어 있고,  이미 하나되어 있습니다. 하나돼 있어. 이미 하나되어 있고 같이하고 그것은  제삼자로 내게 닥쳤습니다.

 제삼자로 닥쳐서 '주님, 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저 사람에게 대해서 주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 잊어버리고 '이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  주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사람에 대해서 진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게서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주님과 주의 진리가 내 마음 안에 가득 차 있으면 딴게 아무  필요 없어. 내 마음 안에는 주님과 진리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어. 있으면  그것 죽고 나 죽고 다 죽어요.

 아무것도 용납지 말고 잠근 동산이라 아무도 출입 못하는 동산이라. 신부의  골방이라. 주님과 진리만 내 마음 안에 계시고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계시면, 이제는 주님과 진리만 내 마음에 계시면, 내 마음이 움직이는 움직임을  가리켜서 생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움직임, 마음의 움직임이 생각이요, 그  생각이 움직여서. 만들어 놓은 것이 뜻이요, 의지. 뜻이요 결심이요 작정이요  모든 뜻입니다. 그 뜻이 자기의 몸을 비로소 움직여 가지고서 행동을 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 보좌에 주님과 진리만을 모시고 딴것을 용납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둘째로 승리입니다.

 첫째 승리는 내 안에 먼저 자리잡고 있는 이런 모든 것을 우리가 쫓아내야  됩니다. 내 마음 안에 먼저 자리를 잡고 권세를 잡고 있는 이놈들을 다 쫓아내야  됩니다. 이것은 절도요 강도입니다.

 요한복음 10장 8절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양들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영은 세상 지식 듣고 따라가지  많습니다. 옛사람 듣고 따라가지 않습니다. 중생된 새 사람은 영은 그런 것 듣고  따라가지 않습니다. 왜? 그것은 다 절도요 강도요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기에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뭐이냐? 오늘밤에 꼭 세 가지뿐입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 마음에 높은 자리나 낮은 자리나 내 마음의 구석구석 내  마음의 어데라도 길바닥으로 비유한 세상 모든 인간의 사상 인간의 수많은  종류의 마음의 구조, 총명, 지혜, 관념, 욕심 이것들이 다 새끼를 낳은 그것이  소위 이십세기의 문화요 이십세기의 지식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있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옛사람이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재리와 염려 이런 것들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내 마음을  주님과 진리보다 먼저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이것을 다 몰아내라 쫓아내라  하는 이것이 첫째 우리가 단단히 기억하고,  뭐 시간마다 이 일은 쉴새 없이, 이 일만 하면 다 돼. 시간마다 할 수 있고, 이  일 하면 회사도 잘되고, 이 일 하면 가정도 잘 되고, 이 일 하면 자기도 잘 되고  모든 것 잘 됩니다. 구원도 잘되고 세상도 천국도 다 잘됩니다. 쫓아내고,  두번째는 우리 마음에 제일 귀하고 높은 보좌가 되는 왕이 앉는 왕의 보좌에는  세상, 재리, 염려, 자기,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들었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이 보좌를 차지하고 있었고 세상 지식이 들어서 보좌를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다 몰아내고 이제 주님과 진리를 우리 마음 보좌에  왕으로 모셔들일 것, 요것이 둘째입니다.

 왕으로 모셔들여서 언제나 딴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해요. 딴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해요. 에덴동산에서 '지키라' 하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못 들어  오구로 하는 것이지 안에 것을 간수하라 말 아니라. 밖에 것 못 들어오면 안에  것은 잘 그대로 있습니다.

 밖에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언제나 주님과 진리가 내 마음 안 보좌에  왕으로 계시고, 주님이 '내가 한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일을 하시는 그 일이 내 입을 통해서 나왔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하는 것이 이것이 다 자기의 마음 보좌에  주와 진리를 왕으로 모시고 다른 것은 어떤 것이라도 용납지 못합니다.

 용납을 할 때에 주님을 잊어버리고 그놈을 먼저 생각하면 그놈이 들어와서 벌써  왕이 돼 버렵니다. 왕이 되면 그것을 위주로 해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내가  진리를 어떤 관계에 돼지나? 그것을 그것에 대해서 그것을 가지고 이 하나님을  어떻게 관계하느냐? 이것에 삐뚤어진 하나님은 다 배척이라. 이것에 삐뚤어진  진리는 다 배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놈을 먼저 모시면 안 됩니다.

 주님과 진리를 내가 모시고 그 다음에 사람 닥치면 '주님, 주의 법칙대로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 주님의 뜻인 주의 법칙대로 이 물건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 주님의 법칙대로 이 회사 경영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의 법칙대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됩니까?' 주님과 나와 떨어지지  말고 주님과 나와 하나되어 그분이 왕권을 내게 가지시고 그분의 왕권에 따라서  내가 모든 것에 대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가 만물 상대이기 때문에 요렇게 해야  옥토에 뿌린 씨가 됩니다. 이 셋만 정복하면 저절로 옥토에 뿌린 씨가 됩니다.

 그런고로 오늘밤에 요 세 가지를 단단히 기억합시다. 첫째도 하기 힘들지마는  기억하기 쉽고 깨닫기 쉽고, 둘째도 하기 힘들지마는 깨닫기 쉽고, 셋째는  하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습니다. 하기도 깨닫기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당장  오늘이라도 일을 닥치면 '이 일을 어쩌냐?'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모셨다가도 주님은 내가 밀어내고 그것이 그저 번개같습니다. 번개같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너희들을 시험할라고 번개같이 내려오는 것을 내가  막았다' 이랬습니다. 번개 같이 내려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현실에 닥치는 물건이든지 일이든지 현실세 딱 닥칠 때에 그  현실 배후에 역사하는 악령은 주님과 그 법도를 잊어버리고, 주님 잊어버리면  법도 잊어버렸고 법도를 잊어버렸으면 주님 잊어버렸습니다. 법도를 알아도 주님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주님만 잊어버리지 안했으면 법도는 저절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주님 잊어버리고 주님은 생각지 안하고 이 일을 물건을 생각하라고  자꾸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게 신앙 생활인 줄 알고 '이 물건에  대해서' 벌써 보좌는 점령당했습니다. '이 물건에 대해서, 이 사건에 대해서, 이  사람에 대해서 주님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주의 법칙대로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주 신앙 생활 같지마는 사이비합니다. 같으나 아닙니다.

거기에서 '우리 승패는 다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거머쥐고, 그것을 거머쥐고 주님하고  의논하고 주님에게 묻고 그것을 가지고 주의 법칙대로 '하면 이것 어찌 되느냐?'  안 됩니다. 그것을, 그것은 내게 상관없는 것이라. 주님하고 주의 법칙을 모시고  주님을 내가 왕으로 모셨는데 뭘 닥치면 '주님, 저것이 보입니다. 저게 대해서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저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하랍니까? 주님, 저게 대해서  어떻게 하랍니까? 주님 저것이 보입니다. 주님, 저게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까요?  주님, 저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할까요?' 주님, 저것을 어떻게 할까요?' 모든  것을 내 밖에 두고 내 안에 용납지 마라. 내 밖에 두고 내 안에 용납지 말고 내  안에는 주와 진리만이 모셔서 왕으로 모시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 더불어 내  몸 밖에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상대해서 '저게 대해서는 어떻게 하랍니까?'  '거게 대해서는 그걸 버려버려라.' '예' 버리고.

 '주님, 저게 뭣입니까? 저 무슨 사건이 하나 보입니다. 저게 대한 것은?' '보지  마라.' '예'   '주님, 저게 대한 또 저 사건이 하나 보입니다. 저게 뭣입니까?' '거기  대해서는 네가 이리 이리 해라.'  이래서 자기는 주님과만 하나되어 움직이고 그 다음 모든 세상은 주님과 나와  하나되어 그것을 상대할 때에 주님이 거게 대해서 상대하신 대로 따라서 주님의  법칙이 거게 대해서 처리하는 대로 따라서 나는 움직이는 그것이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그러기에 셋째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그러면 주님과 진리만  사모하고 주님만 왕으로 모시고 주님, 주님, 주님만 하고 있으면 무엇이  되느냐?' 주님만 모시고 있는데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면 좋소. 아무것도 안  보이고 없으면 됩니다. 되는데 없지 않습니다. 일 분, 일 초라도 없지 않습니다.

주님이 현실을 만들어서 자꾸 내 앞에 상대하게 합니다.

 상대해서 주님을 모시고 한쪽은 주님이 나와 같이하시고 한편은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서 이 현실을 대할 때에, 그 현실을 대할 때에 악령도 유혹을 하도록 대할  때에 그 현실 대하니까 그만 주님 배반하고 주님 잊어버리고 거게 가 가지고  날뛰어 가지고 하나 돼 가지고서 야단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음행하는  여인같은 너희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음행하는 여인이 간부의 재미에서  본부 잊어버린 것이라고 호세아서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기에 현실을 대할 때에 거게도 보니까 '주님, 저것은 저 건너다 보이는 저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저 남자는, 저 여자는, 저 인간은, 저 가정은 저 무엇은  어떻게 할까요?' 아무것도 우리 마음 안에는 용납지 안해야 됩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오, 요래라 조래라 요래라 조래라.' 마지막에는 기이하고  기이해서 내가 주님을 잊어버리고 거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기이한 것을 최고로  해도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주님 모시고 주님 시키는 대로 그대로 움직이고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도 요동 안 하고 그 왕의 명령에 따라서 통치 움직이는  것도 요동 안 할 때에 죽는 날까지 그러하면 하늘에 있는 젓과 땅에 있는 것은  다 그의 것이 됩니다.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다  너의 것이니라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밤에 요 세 가지를 단단히 잡읍시다. 요걸 잡고 깨달은  사람은 '저 사람은 주님을 왕으로 모신 게 아니라 저 사람 왕은 무엇이 왕이 돼  가지고 있다. 지금 말하는 것은 저 사람 왕은 뭣이다. 지금 움직이는 건 저 사람  왕은 뭣이다. 지금 생활 하는 건 저 사람 왕은 뭣이다. 저 가정의 왕은 뭣이다.

저 사람의 사업의 왕은 뭣이다.' 그걸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을 이용해 먹을라 한다. 진리를 이용해 먹을라 한다.

하나님과 진리를 제 심부름꾼처럼,' 주님과 진리는 우리의 심부름꾼노릇 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진리는 우리 선생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진리는  우리를 도와 주는 일꾼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진라는 내 안에서 나를  주권하시는, 나를 주권하시는 내 왕으로만 계시기를 원하고 왕으로만 계십니다.

 왕으로만 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시고 왕으로 모셔서 그분이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가져  피조물인 사람이 되기까지 하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으라'  그러므로 지극히 높은 이름을 줬습니다.

 주님도 아버지를 왕으로 모시고, 왕권을 모시고 왕으로 모신 그 왕을  배척하거나 변동하지 안했습니다. 그것이 제일 장점입니다. 우리도 요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질 새만  톰박톰박해서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세마포 옷을 입었는데 전부 얼 투성이오. 그저 찌는  가끔가다 한 오랭이씩 가고 그저 얼금얼금한 그런 것을 입고 다니는 것과 갈이  그렇게 절름발이 생활하고 어떤 사람은 꼭꼭 씨가 박인 그런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늘밤에 요것 작정합시다. 세 가지. 먼저 있으면 안 됩니다. 그걸 몰아내야  됩니다. 주님을 먼저 내 안에 점령하셔 가지고 나를 점령하셔 가지고 왕으로  계셔서 그 왕권 행사를 하도록 해야 됩니다. 왕권으로 왕으로 모시고 그 왕에게  내 전부는 복종하는 왕의 성전과 나라가 돼야 됩니다. 그리고 만물을 대할 때에,  만물을 대할 때에 선위권을 바꾸기 쉽습니다. 만물을 대할 때에 선위권을 바꾸기  쉽고 주객에, 주격과 소유격인 이 둘을 바꾸기 쉽습니다.

 그걸 바꾸면 헛일입니다. 바꾸지 말고만 계속하면 주님이 옳고 바르고 참되게  바로 거게 대해서 취급하여 주시니 그러면 전체는 다 인간에 대해서도 온전,  마귀에 대한 건도 온전,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온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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