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법칙

 

1981. 5. 17. 주일 오전

 

본문 : 창세기 2장 15절 - 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새벽 세 시간을 증거했습니다. 금요일 밤에  증거를 했으면 그만 끝내려고 했는데 새벽 예배에 참석 못하는 교인들이 많기로  아무래도 이 말씀을 깨닫고 이 말씀을 자기네들이 준행해야 구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씀을 증거하게 됩니다.

제가 이번에 깨닫은 것은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멸망을 받으며 어떻게 하면  구원이 된다는 멸망과 구원의 두 길을 이 서부교회서도 한 삼십 년 증거해  나왔습니다. 이번에 깨닫은 것은 멸망할 자는 멸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멸망의  길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하고 이제 남은 때는 내나 여러분들이나 이 시간이  단촉하기 때문에 구원의 길만 계속 들어서 증거를 하기로 그렇게 제가 깨닫고  작정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오전에 제가 설교한 것도 그  깨달음에서 증거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이며 또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영원히 모든 것의 주인이 계시는 분이시요. 또 모든 것을 당신의  것으로 홀로 보존하시고 관리 하시고 모든 것을 사용하시는 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한토막 세상 살이에서 보이는 것이나 들려지는 것이나 내가  느껴지는 것이나 접하는 것이나 모든 것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두려운 것도 있고, 아름다운 것도 있고, 명철한 것도 있고, 위대한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별별 것들이 석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눈으로나 마음으로나 몸으로 접할 때에 그것만 보고 거기에  마음이 기우려지고 이것을 지으시고 지금도 운영하고 계시는 절대자이신 이분을  거기에서 찾아서 큰 것에서 큰 것보다 더 크신 주님을 깨닫고, 두려움에서  그보다 더 두려우신 주님을 깨닫고, 명철한 것을 볼 때에 그것을 지으시고  그보다 무한히 명철하신 분을 깨닫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그런 어떤 인물들을  만날 때에 들을 때에 그 인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혼자 당신이 기계처럼 관리하고  계시는 이분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만 상대하고 눈과 입을 벌린다면 이는  무신론자 입니다. 이것이 막바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자입니다.

또 그것들을 상대할 때에 참 이는 크다 내가 등을 댈만하고 의지할만 하다  이것이 있으면 나에게는 족하겠다 이가 제일 두려우니 이 밑에 복종을 해야  되겠다 이가 아름다우니 이것만 취하면 나는 만족하겠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것으로 자기를 평안하게 복되게 하려고 하고 그것을 만들어 인간에게 주면서  네가 한토막 떠날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것들과 관련을 가지는가 보자 하시는  이분을 찾아서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는 그자가 우상 숭배자입니다.

그런고로 앞으로 하나님이 복수하실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자와 하나님  외에 자기의 구주를 두는 우상 숭배자의 모든 유물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해서  하나님이 영원한 복수로 갚으실 것이요.

이렇게 세상이 인간중심으로 자기중심으로 물질중심으로 악함이 하늘까지  관영하여 가는 여기에서 많은 마찰을 받으면서 저 홀로 조물주를 모시고 섬기고  이분과 동거 동행하고 이분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려는 일편단심으로 사는 그  사람, 이분의 보호와 이분의 주시는 축복과 생명과 이분이 주시는 것만을  바라보는 이 사람에게 영원한 공의의 보상으로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안하고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영원히 갚아주실 분이 이분이십니다. 피조물되는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큰 일은 이분의 정의의 복수와 공의의 보수가 미래에 남아  있는 만물들의 과제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이 지나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이분을 내가 모시고 살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분을 섬길까? 어떻게 하면 이분과 친근히 사귀며 내  생활에서 이분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자 될까? 이리하여 이분이 나를  인정하시고 내 가정을 인정하시고 내 교회를 인정하시고 당신이 생명과 안보와  평강과 축복에 대해서 책임을 져 주실까 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일생 문제요  시급한 문제요 계속 가져야 할 우리의 문제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이 첫째로 가르친 것이 오늘 봉독한 15절로 17절까지인데  이것을 새벽 예배 나오지 안한 분들은 듣지 못했는고로 간단 명료한 이 법칙을  이 달음줄을 이 지혜를 모르면 제가 아무리 날뛰 봤자 바른 구원을 이루어갈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씀을 오늘 증거하는 것입니다.

15절로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다섯 가지를 말씀해 주신 간단한 것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 길, 섬기는 길, 하나님을 사귀는 길,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길,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길,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과 안보와  기쁨과 축복을 주실 수 있는 길, 이 길을 여기에 간단하게 다섯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거기에 첫째가 제일 초대교인 교회의 제일 시조가 되는 제일 초대교회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을 저희들이 거처할 처소로 정해주셨습니다.

둘째로는 네가 여기에 거처하면서 이 처소를 네가 다스리고 이 처소에게  다스림을 받지 말고 이 처소를 다스리고 (셋째로는)이 처소에게 네가 강금받지  말고 네가 이 처소를 지키고 파수하고, 넷째로는 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네가 임으로 얼마든지 따먹어라 먹으면 네 양식이 되고 힘이 되고 네가 자라게  되고 그러나 그중에 다섯째로 선악과는 네가 먹기만 하면 정년 죽으리니 네가  먹지말아라 하는 간단한 이 다섯 가지를 초대교회인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다 존재들이며 역사들인 그때 하나님 지금 하나님, 그때 구주 지금 구주,  그때의 구원 지금 구원, 그때 성령 지금 성령, 그때의 진리 지금 진리가  하나입니다. 인간에 따라서 나타나는 양과 범위와 도수가 다르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 이 다섯 가지를 주신 그것이 성경에 기록해서 신약교회인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에게도 이 다섯 가지 방편 곧 길을 가지고 걸어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바로 갖게 하려는 것이 이 계시를 기록해 주신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깨닫지 못하면 바로 소망할 수 없고 행동할 수 없고 바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구원은 주님이 다 이미 베풀어 놓으신 구원이지만 우리가 받아서  가지는 데에는 첫째가 바로 깨달음이요 다음이 바로 소망함이요 다음이 바로  행동함입니다.

여기에 에덴 동산은 오늘 우리에게는 날마다 바꾸어 미래는 현재되고 현재는  과거로 지나가는 이 미래와 과거를 양편에 두고 있는 현재라는 이 현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에덴 동산입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어떤 현실을 자연이  인간들이 어떤 큰 것이 선한 것이 악한 것이 어떤 것이 내 현실을 나에게 주든지  그 현실은 주님이 나에게 거처하라고 주신 내 처소요 또 그 현실을 만드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아담 하와에게 천하에 있을 곳이 많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에덴  동산만이 가장 좋은 곳이요. 거기에 생사와 성패가 달려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정 지워야 합니다.

우리 각자들에게 당해진 이 현실 이 현실 외에 수 억억만도 넘은 현실들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로 거처하게 주신 내 처소는 내 현실입니다. 내  현실은 천하에 수많은 현실보다 내게는 가장 좋게 필요 있고 생사가 영원히  결정되는 귀중한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굳게 잡아야 됩니다. 이것이  첫째로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모든 생활이 아무리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고 동서양을 뒤 엎고 재끼고 해도 그것이 다 허공을 치는  것이요.

하나님과 의논한 노아의 여덟 식구 밖에 수많은 운동들이 다 허탕을 치고 있는  거와 꼭 같습니다. 허공을 치는 거와 꼭 같은 것이요. 우리는 자기의 이  현실에는 귀중한 것이 함축되 있습니다. 내게는 가장 천하에 좋은 곳입니다.

남의 현실을 옅보고 원하는 자는 벌서 그는 멸망 궤도에 올라선 자입니다.

자기가 범죄함으로 당했든지 의를 행해 당했든지 어쨔든지 자기가 만난 현실은  주님이 나를 사랑함으로 내게 주신 처소입니다. 여기에서 사는 것도 죽는 것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처소라는 이 현실에서만 사는 것, 죽는 것, 행복스러운,  불행한 것 준비, 귀천이 승리와 패전이 여기에만 결정된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합니다. 듣고만 지나가면 안 됩니다.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내가 과거적으로 어떤 어떤 그 현실을 참으로 사랑의 주님이 나에게 주신 천하에  유일한 복스러운 처소로 내가 그 현실을 여겼더냐? 내 마음대로 어떤 현실이 올  때에는 감사하고 행복되다 느끼고, 어떤 현실이 올 때에는 불만 불평 원망하고  했던 이 말씀의 준하여 완전히 이탈된 과거가 아니었더냐?  앞으로 어떤 현실이 나에게 올런지 모르는데 천하 사람이 다 말하기를 '저  사람의 당한 현실은 참 불행스러운 현실이다' 하는 그런 현실이 올찌라도 그  현실은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위하여 만들어 내 처소로 주신 현실로 내가  인정하고 그 현실에서 과거에 잘못 된것, 미래에 건설, 과거에 파괴를 다시  그것을 이용하고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요 현실에서만 나는 하나님을 모셨으면 모신 생활을  계속할 수 있고, 못 섬겼으면 새로 섬기는 일을 시작할 수 있고, 섬겼으면  섬기는 일을 계속할 수 있고, 사귀지 못했으면 요 현실에서 당신을 사귈 수 있는  이 사귐이 될 수 있고, 이미 사겼으면 이 사귐을 끊지 안하고 계속 사귈 수  있고, 이분을 영광스럽게 존귀케 못했으면 시작할 수 있고 했으면 계속할 수  있고, 이분이 나를 기뻐해서 당신을 나를 이 현실에서 책임지실 것을 책임지시는  것이 결정될 수 있고, 당신의 생명과 안보와 기쁨과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라고 내가 인정하고 그 현실을 평가해서 거기에서 이 모든 중대한  문제들을 성취시키려고 하는 내가 될 수 있는지 이 시간에 평가해야 됩니다.

지내 흘러 떠내려 보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내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처소로 당신이 나를 사랑함으로  나에게 주신 에덴 동산으로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이것을 스스로 확정 지워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못 지우면 다  껍데기입니다. 첫째가 이거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둘째로 말씀하시기를 "네가 동산을 다스리라" 동산에게 피동되지 말고  네가 동산을 다스리라 동산을 치리해라 동산을 통치해라 내가 너에게 명하고  교훈하고 지시하는 대로 네가 동산에 대해서 네가 이렇게 행하라 동산을 네가  이렇게 상대하라 네 현실을 이렇게 상대해라 네 현실에 대해서 내게 배운대로 내  명령대로 내 지시대로 내 뜻대로 요대로 내 현실에 대해서 해라 둘째로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동산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현실이 올지 모르는 우리들인데 우리가 그 현실을 만날 때에 현실을  불핼스럽다고 생각하면 벌써 마귀의 자식입니다. 벌서 사망뿐입니다. 여기에  영원한 생사가 결정되는 천하에 나로서는 제일 좋은 가치 있는 현실로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우리가 확신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천하에 우기 들어서 나를 조울지라도 무소 가죽 안에 넣어서  나를 시들카 졸라 죽일지라도 천하에 영광된 존귀의 지위를 갑자기 나에게  줄지라도 내가 어떤 것을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그 현실에 내가 피동되지 안하고  그 현실에 대하여 주님이 나에게 교훈하시고 명령하시고 지도하시고 지시하시는  당신으로 인한 것을 내 현실에 그대로 상대하는 이것이 둘째로 우리에게 주신  길입니다. 이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벌서 당하기 전에 수많은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도 당해보고 껍질을  벗기는 것도 당해보고 굶어서 죽는 것도 보고 오만 역사의 지나간 모든 형편들은  어느 것을 자기에게 닥치지 아니할 것이라 생각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현실들을  미래에 당겨서 이 현실이 올 때에 내가 과연 주님이 내게 주신 에덴 동산으로  그때 인정이 될런지 혹 확신이 없이 이 현실 그 현실에서 영원히 결정되어 지는  이 보배로운 가치 있는 현실의 가치를 그때에 요동없이 내가 붙들고 있을런지 이  면에 대해서 수십 번 따져보고 혼자 자문 자답해보고 느껴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결정하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어떤 좋은 현실이 어떤 불행한 현실이 와도 처음 만나는 것은  없습니다. 갑자기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벌써 수십 번 수백 번 그것을 명상  가운데서 얼마든지 접해 본 것이 만나지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놀랠 것이 없고,  별스러운 것이 없고, 수천 번 수백 번 거기에 대해서 혼자 대결도 해보고 시합도  해보고 흔드러 보고 오만 연습 다 했기 때문에 미래에 보고 상상한 것 보다는  현실에 오니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게 어려운 줄 알고 준비는 많이 했는데  닥쳐보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놀래는 현실을 만날  때에 그는 기쁘고 즐거움으로 태연히 무난히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어떤 현실이든지 내게 주신 에덴  동산이니 이 동산에서 첫째로 내가 할 일은 동산을 다스리는 일이라. 나는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그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를 움직이시는 대로 당신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대로 현실에게 상대하지 현실이 좋다고 거기에 피동되고,  현실이 두렵다고 피동되고, 현실이 칼을 댄다고 현실이 총을 댄하고 현실이  독침을 댄다고 무엇을 댄다고 현실에게 내가 피동되지 않고 현실을 나는  다스리겠다. 그 현실에 대해서 주님이 나에게 명하시고 교훈 하시고 계약하시고  선포하신 그대로 나는 그 현실에 내 언행심사로 대할 것 뿐이다. 이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실패하지 아니하는 데에서 우리의 성공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 말씀하시기를 동산을 지키라 했습니다. 동산을 지키라 지키라  말은 파수하라는 말씀인데 파수하라는 말씀은, 내가 용납지, 하나님이 용납지  아니하는 것은 네가 용납시키지 말아라. 네가 용납하면 들어오고 네가 용납지  안하면 못 들어올 그런 것은 네가 용납지 말아라. 내가 너에게 권세를 준 그  권세에 한정이 있어 너로 하여금 파수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그 역량에 따라서  내가 파수케 하는 것이니 네가 동산을 파수라.

우리는 우리 현실에 나 아닌 객관 세력이 어떤 것을 만들어 가지고 나에게  부딪히도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내 현실입니다. 그것은 내 현실입니다. 내가  용납한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하나님이 허락지 안한 것을 내가 용납한 것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게 현실로 내 처소로 내가 그 현실 그 분위기가 그 환경,  그 형편 사정, 그 사회, 그 세상, 그 인간, 그 악, 그 세력 속에 나는 살아야 할  나의 처소요 내가 용납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내 현실에서 내가 용납지 안하면 안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생각이나, 소원이나, 욕심이나, 뜻이나, 성질이나, 죽음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  날까 하는 그 생명의 욕심이나 온갖 욕심, 온갖 말, 온갖 행동,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원치 안하시고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한 그것을 내가  내 현실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그것을 용납해서 내 현실에 이런 생각을 내가  용납했고, 이런 뜻을 용납했고, 이런 성질을 용납했고, 이런 욕심을 용납했고,  이런 말을 내가 했고, 이런 행동을 했으면 그것은 동산을 파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현실을 파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막바로 에덴 동산의  뱀입니다. 막바로 뱀이요.

내가 내 현실에 가지지 안할 생각을 하나 용납했으면 그것이 뱀입니다. 내  현실에 내가 용납지 안할 욕심을 하나, 용납지 안할 소원을 하나, 용납지 안할  말을 내가 한마디 행동 내가 하나 했으면 그것이 내가 용납한 뱀입니다. 그것이  하나 생겨진 다음에는 그의 생활은 전체가 멸망입니다. 뱀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전체는 멸망입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 앞에서 하루종일 싱강 할 때에 다리오는 다니엘의 현실에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는 한마디의 말을 용납하라고 그는 독촉했던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겠다 해라' '네가 어쩌든지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살 욕심을 네가  가져라' 이렇게 하루종일 싱강 했지만 성령의 사람 다니엘은 고것이 에덴 동산의  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다리오 왕의 말하는 거기에 '사정이 딱한 것이  아니고 뱀 이놈이 들어올라고 하는구나!' '뱀 이놈을 내가 용납지 않겠다'  다니엘에게는 어렵지 않게 '안 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반대지 왜? 뱀인 줄 알기 때문에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한 말 한마디를 했다면 그는 그 다음부터 멸망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현실은 이렇게 고귀한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명심해야  할 것이고, 나에게 부딪치는 현실은 사랑하는 주님이 만들어 주신 나에 처소이니  천하에 내게는 이보다 더 좋은 복된 성공에 처소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여기에서 나 할 일은 이것을 다스리는 것과 이것을 지켜서 하나님이 그 금하시는  것을 용납지 아니하도록 하는 여기에 주력을해서 성공을 하고나면

그 다음에는 "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을 네가 임으로 먹어라."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이 금하지 아니하시는 것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이런 것은 우리 현실에서  사업이든지 권세든지 지위든지 영광이든지 물질이든지 가정이든지 쾌락이든지  인인관계든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금하지 아니하시고 이것은 네가 맘대로  해라 하는 것 이만해도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거침없이 우리 역량있는 대로 그것을 취해서 내가 가지면 그것이 동산  과일을 먹은 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나에게 양식이 될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또  힘이 됩니다.

그로써 내가 자라가게 됩니다. 모든 과실을 임으로 먹을 것

 그 다음에는 악으로 결정지워지는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히 죽으리라. 우리 현실에 주님이 금하시는 것, 금하시는 사업, 금하시는  취직, 금하시는 길, 금하시는 방편, 금하신 지혜, 금하신 말 이런 모든 하나님에  금하신 행복이나, 평강이나, 구원이나, 돈이나, 권세나, 지위나 그 무엇이든지  내 현실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고것을 내가 취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선악과입니다. 먹으면 죽습니다. 그게 선악과입니다.

'이것을 아무래도 내 현실에서 이것은 하나님에 법도에 위반된 것이지만 내게  이거는 참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나는 행복되겠다.'  '이거는 참 아름답다.' '이거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어떻게  보여지든지 어떻게 평가해지든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 나에게 필요있다고  취하라고 하는 고것은 내 마음 속에서 나와도 고게 뱀이요.

내 몸 밖에 어떤 내가 존경한 사람 친근한 사람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해도  고자가 나에게 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유혹입니다. 이 뱀에  유혹을 받아 그것을 취하는 그때부터 자기는 사망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망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지를 맙시다.

노아 홍수로 큰 것을 보였는데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취한  거기에서 많은 자손, 유력한 자손, 명철한 자손, 위인들 많이 났소. 암만 나봤자  하나님이 홍수로 멸망하기로 정해 놓은 우리 안에든 것이요 그 물안에 든  것이니까 잘나면 뭣하면 많으면 뭐 해. 성공이면 뭐합니까? 홍수 올 때는  전멸이되고 말았는데, 우리는 자기 현실에서 주님이 금하신 선악과인 그것을  취하여 일시에 행락을 누리고 어떻게 번적거리는 그것을 보고 무서워 안타깝게  여기지 못하고 부러워 하는 자는 다시 음행의 포도주에 이제 취하는 자입니다.

그런고로 에덴동산만이 나에게 처소라. "동산을 다스리라" "동산을 지켜라"  "모든 금하지 안한 과실은 마음대로 먹어라" "금한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요것을 간단 명료 하게 함축시킨 하나님과 나와에 생명과 행복된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에 다섯 가지 교훈한 요 도리를 우리 마음 귀에 박혀 놓고 우리  마음 귀에 각하고 우리 마음에 깊이 각해 놓고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이라도 다시 되새겨서 우리 마음에 각해 놓고 우리는 만나는 현실마다 이 각해  놓은 이 주님에 법칙을 내가 다시 생각해 보고 이 현실에 부딪히는 여기에서  다스리라, 부딪히는 여기에서 지키라, 부딪히는 여기에서 허락한 것만 네가  취해라, 금하는 것은 먹지 말아라. 이 교훈을 깊이 마음에 간직하고 언제나  생각나서 이 교훈이 우리에 지혜와 힘이 능력이 되는 데에서만 이렇게 존귀한  구원은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이제는 때도 가까왔고 다시 일어나서 정신차려서 간단한 얼마남지 안한 동안에  우리는 이 구원을 잘 이루어 갑시다. 멸망안에 든 것이라면 그까짓거 좋으나  나쁘나 한가지요. 멸망에 테두리를 벗어난 데에서만 희망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넓게 길게 멀게 떠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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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2 다섯 가지 지도/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1984년 25 공과 선지자 2015.10.27
4481 다섯 종류의 사람/ 민수기 1장 41절-50절/ 880815월새 선지자 2015.10.27
4480 다섯 종류의 신앙/ 고린도전서 15장 32절-34절/ 880918주새 선지자 2015.10.27
4479 다섯 종류의 하나님의 사람들/ 고린도전서 15장 33절-34절/ 880923금새 선지자 2015.10.27
4478 다섯가지 겸한 믿음/ 마가복음 10장 52절/ 870308주새 선지자 2015.10.27
4477 다섯가지 준비/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60916화새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