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의 의심과 믿음

 

1986. 7. 7. 월새벽

 

본문:요한복음 20장 26절∼29절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에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증거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기억하기에 간단하고 좋고 또 그 모든 진리를 다 간추려서 한테 묶어서 그만하면 눈 감고 기도하고 명상하면 구원 도리를 바로 알아서 바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연구해 가지고 간단 명료하게 가르치는 것이니까 그것을 여러분들이 예사로이 생각지 말고 잘 기억하고 복종하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기록해서 두라고 이래 했더니마는 뭐 여러 사람에게 이렇게 좀 기억한 것을 뽑아서 모아서 좀 써 봐라 이랬는데 그 모아서 써 놓은 게 별로이 얼마 되지 안해요. 많이 모두 다 빠줘 버리고 다 지내 가 보내고 몇 가지만 그저 이래 기록해 놨는데 요긴한 거는 기록을 하십시오. 기록하고 고런 거는 모아서 카드 모양으로 고렇게 해서 자꾸 외우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구원 네 가지, 또 치료 받을 것 네 가지, 또 복 네 가지, 또 이 복은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데에 모든 쓰는 것, 그런 것을, 하늘나라를 준비하는데 쓴다고 해도 되고 인자의 증인노릇 한다고 해도 되고 됩니다.

또 복은 땅의 복과 하늘의 복 두 가지,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 회개를 하지 아니함으로 받지 못하는 것, 또 복을 받는 데에는 두 가지 회개만 하면 어느 곳에 가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것, 땅의 복도 하늘의 복도 다 두 가지만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 것을 기록을 해서 두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전성경을 간추려서 고렇게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쉽고, 회개를 말하면은 뭐 신구약 성경이 다 가르치니까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러나 두 가지만 회개하면 된다 하니까 기억하기가 좋지 않습니까? 하나는 피조물 의지하고 바라봐서 피조물에게 주권을 두는 그것을 회개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에게만 모든 것이 주권되어 있는 것을 믿는 것, 또 하나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 그래서 두 가지 회개인데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은 간추려서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했습니다. 하나는 십계명, 또 하나는 신구약 성경 말씀, 또 하나는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는 영감, 이대로 하면 됩니다.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또 봤는데 여게서는 믿음 없는 교회, 첫째로 믿음 없는 교인, 어제 말했습니다. 믿음 없는 교인, 뭐 장로 목사라고 다 믿음 있는 게 아니라 믿음은 따로 있어. 목사라고 믿음 있는 게 아니고 목사는 그 직책이고 믿음은 따로 있어요. 어제 말했지요? 믿음에 대해서 계명을 지키는 자가 믿음 있는 자요 또 말씀을 지키는 자가 믿음 있는 자요 영감을 따라서 지키는 자가 믿음 있는 자라.

믿음 없는 교인. 또 하나는 믿어보는 교인, 믿어보는 교인. 또 봄으로 믿는 교인, 봄으로 믿는 교인. 또 하나는 보지 아니하고도 믿는 교인. 그런면 교인이 몇 종류입니까? 교인이 몇 종류입니까? 처음에는? 믿음 없는 교인, 또 둘째로는? 믿어보는 교인, 또 세째로는? 봄으로 믿는 교인, 또? 보지 않고도 믿는 교인, 그라면 몇이라요? 그래 기억하면 여러분들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게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여드레를 지나서” 하는 이 “여드레 지나서”가 예수님께서 두번째 지금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제자들은 두번째로 지금 모였습니다. 그러면 처음 모인 그 날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 주일입니다.

여드레라면 여러분들이 계산할 때에 틀린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주일, 또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주일, 이러니까 여드레째 되는 날인데 「여드레를 지나서」 이라니까 요게 두번째 모인 날은 주일날이 아니라 요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면 여드레를 시작하지 안한 게 아니고 여드레째 들어서 가지고 그날 밤에 모였기 때문에 여드레가 거의 다 지나간 날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라면 됩니까? 그라면 숫자가 맞습니까? 요런 것도 정확히 알아야 되는 이유가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꼭 주일날 모이셨다. 부활하신 후에 주일날 모이셨다. 그 제자들이 그 전에는 안식일날 모였지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주일날 부활하셨고 고다음에 제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 모일 때도 주일날이고 세번째도 주일날이고 네번째도 주일날이고 다섯번째도 주일날이고 이렇게 주일날만 자꾸 이래 모여 가지고 이렇게 하셨다 그거요. 그걸 알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처음에는 도마가 없었고 두번째는 도마가 거게 참석을 했습니다.

처음에 없었는데 처음에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말씀하신 대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가 만나 봤다.’ 이렇게 말해도 도마가 믿지 안했습니다.

‘나는 너거 말 듣고 믿지 않는다. 내 눈으로 내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못자국을 만져보고 넣어보고야 내가 믿지 그 전에는 안 믿는다.’ 이렇게 말한 도마가 그렇게 말도 하고 믿지 안하지마는 그들이 그래 하니까 좀 마음이 이상해서 ‘그러면 나도 그날 한번 참석해 보자’ 하고서 그래 참석을 했다 그거요.

그랬는데, 「문들이 닫혔는데」 문들이 닫혀 있다. 또 처음에 모였을 때에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이래 놨습니다. 이제 거게는 처음에 모일 때에는 그 모인 제자들이 유대인이 죽일라고 지금 거석하니까 참 모두 도망 갔었는데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도 그거 아주 주님을 생각하고 이래 남아 있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해서 이래 남아 있지마는 죽을 지경이라. 두근거리고 죽을 지경인데 그런데 여기 하나 숨고 저기 하나 숨고 모두 숨어 있으면 괜찮을 터인데 한테 모인다는 것은 화약 지고 불로 들어가는 일이지 위험천만한 일이라 그거요.

그러나 그들이 왜 하필 주일날 모였노? 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모였노? 또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여드레 되는 날 또 모이고 또 여드레 되는 날 또 모이고 자꾸 이렇게 부활한 그날만 이제 모였느냐? 그것이 주일의 시작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이 주일의 시작이오.

그렇게 모두 다 죽일라고 하는데 뭐 때문에 주일날 모이겠습니까? 주님이 주일날 모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제 죽음을 무릅쓰고 주일날 모였다 그거요. 또 이보다도 더 먼저 근거되는 것은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라든지 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라든지 그 모두 새로운 신약 교회 천국 운동할 때에 중요한 일들은 안식일 지킬 때지마는 다 주일날 했습니다, 주일날.

할례 받는 것도 난지 팔 일 만이라고 한 것이 이레되고 팔 일날은 그날이 말하자면 주일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이요 아브라함 때이니까 그때 뭐 주일과 상관없는 것 같지마는 그후에 맞춰 보니까 그들이 하루 이틀 이레되는 날은 안식일이라고 이렇게 칠일이라 이랬는데 할례는 제팔일날이라 제칠일 지낸지 그다음 첫날이라 그래서 제팔일을 정한 것이라 그거요.

그러면, 그렇게 된 그것이 뭐 성경에 뚜렷이 말하지 안했으나 이 전체를 연구하고 그 전체에 분위기 속에서 그런 진리는 깨달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알기가 어려운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왜 난 지 팔 일 만에 꼭 할례를 받게 됐느냐 하는 것을 그것을 주장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이 못봤다 말이오.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들을 때에 잘못 알면 큰일 납니다.

이거 내가 엊저녁에도 그런 말 들었는데 이 설교할 때에 아무것이는 이렇게 말했는데 이렇다 말하는 것은 부득이 여러분들 때문에 말을 하면서 욕은 내가 얻어먹습니다. 왜? 어제도, ‘설교록을 보면 참 은혜되는 일이 있어서 그 설교록을 앞으로도 제가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 유력한 분이 말하기를 ‘거게다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말해 놨으니 그걸 볼 때에 좀 역스럽더라’ 그 역스러울 줄 안다 그말이오.

그 다른 사람 어떤 사람이 예를 들어서 칼빈을 말하면 ‘칼빈도 이렇게 말했다’ 할 때에 ‘칼빈이 이렇게 말했다' 이라면 칼빈 틀린 걸 말하니까 역스럽다 이래 되는데 그거 칼빈 틀린 걸 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래 여게서 듣고 모처럼 내가 가르쳐 놓게 세상 떠나고 나면 여러분들이 듣고 난 다음에 유력한 주석들을 찾아 보면은 ‘주석들에게는 다 이렇게 말했는데 이 백 목사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틀렸다’ 이래 가지고, 교훈한 것이 헛일이라는 그것보다도 여러분들이 모처럼 들어 배운 진리가 여러분들 구원에 효력을 주지 못하고 헛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거 말하면 다른 사람이 욕질하고 손가락 가리키고 ‘교만하다. 저만 제일이다.’ 뭐 이렇게 말할 줄 알면서도 부득이 그걸 말한다 그거요.

왜? 먼저 그때 그 가르칠 때도 ‘여게 대해서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히브리서 6장에 가르칠 때에 ‘이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또 어떤 유력한 분도 이렇게 말했다. 이런데 내가 말하는 거는 그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내가 반대인 줄 알고 지금 말한다.’ 반대인 걸 몰라 그런 게 아니고 반대인 줄 알고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잘 따져 보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는가 알 수가 있을 터인데, 만일 내가 이런 소리를 하지 안 하면은 여러분들이 ‘백 목사는 무식한 한 사람이요 또 독서를 많이 안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이런 세계를 모르고 지금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유력한 학자들은 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래 말했으니까 이거는 뭐 틀림 없이 백 목사가 틀렸다.’ 이래 가지고서 그만 그렇게 저버려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 말하는 거는 답답한 일이라 그말이오.

이 모든 사람들이 이렇고 말한다 이러니까 그들과 반대된 것이니 ‘반대되는 줄 나도 알고 말한다’ 그말은 나도 그들이 말하는 걸 몰라 그런 게 아니고 알고도 말한다. 또 말하는 것은,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그저 가서 상고해 보고 ‘그러면 이거는 틀렸다’ 그냥 헌신짝 모양으로 버리지 말고, 헌신짝과같이 그 버리지 말고 좀 신중히 생각해 가지고서 연구해서 취해라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 답답한 일이라 말이오.

여러분들 위해 하는 말이지 뭐, 그래 내가 욕 얻어먹을 것이 나 때문에 욕 얻어먹을 것도 있겠지마는 여러분들 때문에 내가 욕 얻어먹는 것이 많습니다.

여게 「여드레를 지나서」 하는 요것도 제팔일에 할례 받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 받고 난지 칠 일 만에 받지 않는다든지 팔 일 만에 할례 받고 또 제칠일이 안식일인데 제칠일 지낸 지 후 첫날 팔 일, 제칠일이 안식일이니까 제팔일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날이요 예수님이 또 변화산에서 만난 일이요 또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이요 이렇게 모두 되는 그것을 말하는 그것은 예수님이 안식일 지킬 구약 시대에 있었지마는 신약 시대에 있을 중요한 일을 역사하실 때에는 다 제팔일에 했지 칠일에 하지 안했다.

그라고 예수님이 또 부활하실 때에 어느 날 부활했느냐 하면은 제팔일날 부활하셨다. 안식 후 첫날이 팔일이라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안식 후 첫날이 팔일이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때에는 뭐 화요일 부활해도 되고 수요일 부활해도 되는데 하필 안식 후 첫날 팔 일 되는, 칠 일이 안식일이니까 팔 일날 왜 부활했느냐?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예사롭게 생각을 안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난지 팔 일 만에 다 할례를 받으라 했는데 하나님은 다 그때 전체가 당신이 다 과거 현재 미래가 없으시는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때 팔 일 말한 것은 예수님이 팔 일 되는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실 것을 벌써 하나님께서는 다 예정도 해 놓으시고 다 예지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셨다 그말이오.

또 출애굽 할 때에 오순절 날에 십계명을 주셨는데 또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필 오순절날 성령 강림을 주셨다 그말이오. 왜 그렇게 오다가 가다가 맞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는 철두철미한 계획적이요 절대적인 불변의 계획으로 하고 계신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예사로 보면 그렇지마는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지나가면서 이렇게 슬쩍 한 것 같애도 그것이 영원이오. 영원이요 털끝만치도 변하지 안하고 영원 전 것이 영원 후까지 그대로 변치 않는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제자들이 그렇게 모일 때에 문을 닫고 모였는데 두번째 모였을 때에는 「문들이 닫혔는데」 이라니까 「문들이 닫혔는데」 요것뿐이라면은 그들이 두려워서 문을 닫았다 이렇게 말하지를 못하겠는데, 실은 그렇게 요 없어도 그렇게 깨닫고 우리가 말해야 되는데 사람들은 또 증거 댈 것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는데, 요 처음에 만날 때에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이러니까 두려워서 문 닫은 것이 여기 똑똑히 나와 있다 말이오.

그러면 그때에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니까 떠나지 안하고 있을라 하니 가슴이 두근거려서 죽을 지경입니다. 이러니까, 하나씩 숨었으면 괜찮지 많은 사람들이 뚤뚤 모여서 그러니까 그만 소문도 날 것이고 이라면 와서 잡아 죽일 터이니까, 그때는 뭐 군인들이 다 죽일라 하지 모든 정권자들이 다 죽일라 하지 또 제사장 서기관들이 다 죽일라 하지 바리새 교인들이 다 죽일라 하지 뭐 온 유대인들 전부가 다 죽일라 하니까 죽일라고 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들뿐이지 딴 사람이 없었다 그거요.

그렇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일백이십 명이 뭐 한군데 모여 가지고서 계속해서 성령 강림 받기까지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때와 그 후가 다릅니다. 예수님이 땅위에서 사십 일 계신 때와 계신 후와 그다음이 달라.

한번 만나면 달라졌고, 두 번 만나 달라졌고, 세 번 만나 달라졌고 자꾸 만날수록 달라져서 그다음에는 예루살렘 떠나지 안하고 있으면서 흩어져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일백이십 명이 한 곳에 모여 가지고서 들썩거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와같이 변화가 돼 버렸어.

변화가 된 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사도행전에 1장에 있지마는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한 번만이 아니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있으라는 그런 부탁을 많이 했을 것이라 말이오. 그거 중요한 부탁이기 때문에.

이러니까 그들이 있었지마는 그때까지 다 도망치고 없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난 다음에 그들이 이거 다 죽어야 된다 이라니까 부활하고 난 다음에 죽일라 하는 일이 더 아주 급격히 맹렬히 운동 됐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다 도망 다 갔어요. 모두 다 흩어지고 도망 다 갔는데 거기 보면 아주 믿음 있는 그 경건한 사람들만 남아 있었고 또 사도들이 남아 있었는데 여게 일백이십 명은 다 사도 외에는 경건한 사람들이라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한번 보니까 ‘확실히 부활하셨다’ 봤고, 두 번 봤고 세 번 봤고 네 번 봤고 또 다섯 번 봤고 이렇게 많이 볼수록 그들에게 믿음이 생겨졌습니다. 많이 볼수록 믿음이 생겨져서 마지막에는 뭐 일백이십 명이 두려워하지 안하고 그와같이 모여 가지고서 기도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 보는 데에서 생겨지는 거 있고, 보는 데에서 생겨지는 거 있고 또 하나님이 선물로 주어서 있는 거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도 믿는 그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어서 믿는 믿음이라 그거요.

그러면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은 “너희들이 예수를 보지 못하고도 한없는 기쁨을 가졌다” 이랬어. 그러면 우리는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지 못하고 믿는.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데 오늘에는 보고 믿는 것이 뭐냐 하면은 말씀하신 이 말씀대로 순종해 보고 하는 거 그거밖에는 없어. 순종해 보고.

그들이 두려워서 문 닫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예수님을 자꾸 봄으로 두려움이 없이 담대히 예루살렘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여게서 좀 깨달으라 그말이오. 그러면 자꾸 예수님을 보니까 자꾸 믿음이 생겨졌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보니까 자꾸 믿음이 생겨져서 나중에는 죽을 것도 겁이 나지 안하고 생겨졌다 말이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때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나 봄으로 자꾸 믿음이 생겨졌다.

예수님을 봄으로 믿음이 생겨졌다. 오늘에는 예수님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오늘에는 어떻게 예수님을 볼 수 있소? 오늘에는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 당신 말을 순종해 보는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 보는 것이요, 순종이 예수님께 직접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만나 보는 것이요 또 성경이 말한 대로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는 것,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이 주님 만나 봤다 말이오.

또 `주권을 가지신 주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권 가지신 주님, 믿습니다.’ 또 한번 만나 봤다 말이오. ‘주님은 전지 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또 만나 봤다 말이오.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 다 아끼지 안하고 바치셨고 다 나 위해서 제물로 바치셨고 또 주님은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라도 세포 하나도, 나를 잊지 안하시고 세포 하나까지도 나를 사랑하셔서 대속하려는 그걸로만 전부 됐기 때문에, 자꾸 주님의 사랑을 이렇게 새겨 보고, 또 연구해 보고, 깨달아 보고, 되풀이 해 보고, 말로 해 보고, 또 내대로 실지로 행함으로 예수님을,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요 내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나를 믿지도 안하고 사랑하지 않는 자라”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또 사랑해 보고 또 계명 지켜 보고 자꾸 이라면은 예수님 자꾸 만나 보는 일이 되니까 그라면 믿음이 생겨집니까 안 생겨집니까? 믿음이 자꾸 생겨진다 그말이오.

그래서, 어제 내가 어데 들으니까 그 지금 믿음의 종자로 지금 믿는 가정이 하나 있는데 그 가정이 잘 믿어서 부부 화합을 해 가지고서 잘 믿어서 이래야 지금 이 복음이 영광 있게 퍼져 나갈 것인데 마귀란 놈이 그걸 알기 때문에 그 가정에 불화를 일으켜 가지고서 이 복음이 영광스럽게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을라고 애를 쓴다 그거요.

그래서 내가 어제도 여러번 기도했고 또 오늘 아침에도 기도하고 이랬는데, 그래 내가 생각할 때에 그걸 생각 했습니다. 이게 이렇게 하는 이 방법은 내가 기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방법이지마는 그것보다도 그 사람에게 ‘네가 성경을 읽어라. 성경을 하루 몇 장씩 읽어라. 또 네가 성경 공부에 이제 착수 해 가지고서 네가 성경 공부를 시작해라.’ 이 말을 해야 되겠다.

이걸 말해서 성경을 읽고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 그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들어서 자꾸 그렇게 그 사람의 이 심신을 사로잡아 도구로 삼아 가지고 자꾸 복음 운동 생명 운동을 반대하는 것인데 성경 읽고 성경 공부를 하면은 무엇이 말라 죽습니까? 뭐이 말라 죽소? 악령이 말라 죽습니다. 그만 거기 와 먹을 거 없으니까 그만 바짝 말라.

이놈이 이러면, 성경 연구하고 성경 읽고 하는 사람은 그놈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마귀를 붙들고 가지 말라 해도 암만 해도 그놈이 어디로 불거져 달아나 버렸는지 달아나 버립니다. 마귀 고놈을 못 달아나도록 볼끈 붙잡아 놓고 성경 읽고 성경 공부하고 기도하고 설교 재독 듣고 하면은 그놈이 빠짝 말라서, 물 안 마시면 바짝 마르지 안해요? 못 먹으면 마르지 안해요? 바짝 말라 죽을 지경이니까 그놈을 볼끈 붙잡고 가지 못하도록 하면 그거 죽습니다. 죽지마는 그놈이 죽지 안하고 도망쳐 버려. 어찌 됐든지간에 그러니까 마귀 그놈을 죽일 수는 없어. 그만 도망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망만 치면 그 사람이 변화돼. 악령의 반대로 성령이 오시지, 악성의 반대로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오지, 악습의 반대로 믿음의 행위가 오지 이라니까 그 사람이 변화가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우리 믿는 사람이 성경 읽고, 재독 듣고, 또 기도하고, 주님 자꾸 생각해요. ○○○씨 나왔어요? ○○○씨 요새 보면 좀 늦게도 나오고 이라는데 뭐 좀 믿음이 식어지는 거 아닌가? 바로 듣고 바로 믿어야 돼. 보면 ‘주님은 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전지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주권자이십니다. 믿습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합니다. 주님은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십니다. 모든 개별 개별 것을 다 주권으로 섭리하고 계십니다.’ 자꾸 이 되풀이 해 쌓으니까 속에 생겨진다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사람은 이상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을 봤어요. 다 그래요. 자기가 이거는 다른 사람을 해하고 자기를 옳다고 변호하기 위해서 자기 유리하도록 만든 말을 만들어 하는 줄 안다 말이오. ‘거짓말이지마는 아무래도 나를 유리하도록 내가 이렇게 말해야 되겠다’ 해서 자기 유리하도록 거짓말을 만들어 가지고 해도 그말을 자꾸 하고 자꾸 하고 자꾸 하고 자꾸 하면 나중에 그만 그 사람이 그게 참인 줄 알아 버립니다. 실상으로 알아서 자기가 거짓말로 만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실 그렇다고 이래 만든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틀린 걸 자꾸 생각하면 그 사람이 틀려져 버리고 실상 틀려도 틀린 줄을 모르고 그만 틀려져 버린다 이 얼마나 참, 나는 그것도 또 뭐 알지만 또 누가 하는 말 듣고 깨달았어. 깨달았는데, 사람이 이러기 때문에 자꾸 옳은 것을 말하면, 옳은 걸 말하면서 옳은 걸 말하기가 싫고 이래 반대 되지마는 어짤 수 없어 옳은 걸 말한다, 참 본의 아니면서 옳은 걸 말해도 자꾸 옳은 것을 말하게 되면은 나중에 옳은 것이 자기에게는 옳다는 확실히 인정이 돼 버리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에는 말하기를 말을 뭐라고 했습니까? 말을 비유할 때에 말 뭐라고 했지요? 말 굴레. 말 고삐. 말을 말 고삐라 이렇게 비유했어. 말을 굴레 씌워서 고삐 가지고서 당기면 고삐가 동으로 가면 말이 그 큰 말이 동으로 끌려가고 서로 가면 서로 끌려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말은 말 굴레와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에 사람이 돼 간다.

자기가 거짓말을 꾸며 가지고도 자꾸 그말 하면은 나중에 그만 거짓말하는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이런 것은 다 그것이 그 말을 따라서 자기가 말대로 돼지고 또 행동대로 돼지고, 이러기 때문에 이 순살인강도 같은 나쁜 놈이라도 자꾸 옳은 말만 자꾸 하면은 나중에 그 사람은 옳은 사람이 돼 버립니다.

또 본의 아니면서도 옳은 행동을 자꾸, 하기 싫지마는 이 꼬와 먹기 위해서, 이 옳은 행동해야 나를믿음이 있다고 중매도 해 줄 거고 시집도 잘 가겠고 장가도 잘 가겠고 또 사장이 잘 봐 줄 것이고 이러니까 이건 순전히 계획적으로 옳은 행동하는 것이지 그거는 참말로 자기가 옳은 행동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라 그말이오. 이래도 옳은 행동하면 나중에 가서 옳은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알겠습니까? 저 사람은 속으로 미워서 저놈을 죽이면 싶으지마는 이래도 껍데기로 사랑한다고 자꾸 껍데기로 사랑해, 거짓부리로 사랑해요. 거짓부리로 사랑하고 속으로 미우면서 그 사람 죽일라고 계획을 하느라고 거짓부리로 사랑하는 척 하고 자꾸 거짓부리로 사랑합니다. 그 거짓부리로 사랑하면 나중에는 그 사람을 진정 사랑하게 됩니까 안 됩니까? 여러분들이 모르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돼 버려.

사랑하는 사람 되고 맙니다.

껍데기로 거짓으로 사랑하는 사랑이 참 사랑이 돼지고 ‘내 속으로야 사랑하지마는 껍데기로 미워한다’ 이렇지마는 껍데기로 미워하는 그 미움이 참말로 미움이 돼 버리고 만다 그거요.

그런 말 하나 예화 들어도 어떤 사람이 시어머니가 미워서 죽이면 싶은데 그라니 또, 미워서 죽이면 싶으니까 그 남편이 있다 아무래도 걱정 났으니까 아내에게 말하기를 ‘저놈의 할머니 어째 죽여 버리자. 죽이는데 그뭐 그냥 칼로 찔러 죽이면 큰일날 것이고 이라니까 누가 말 들어 보니까 밤을 한 말만 구워 먹이면 독이 올라 죽는단다. 그러니까 밤을 구워 먹여라.’ 이라니까 밤을 한 말 주니까 ‘예, 옳습니다. 그래 봅시다.’ 밤을 한 개 구워 가지고서 거짓부리로, 죽으라고 구워 주는 것이지마는 ‘어머니 이거 한 개 잡숴 보십시오’ 떡 이러며 또 한 개 줬다 말이오. 한 말 구워 먹여도 안 죽거든. 그라니까 있다가 남편이 말하기를 ‘안 됐다. 그거 그라면 한 말 더 구워 먹이라 하더라. 한 말 더 구워 먹여 보자.’ 한 말 더 구워 먹였다 말이오.

더 구워 먹여서 이라니까, 어머니 사랑한다 하면서 이거 한 개 잡수십시오 자꾸 이라다가 두 말 구어 먹이고 나니까 껍데기로 사랑했는데 속 사랑이 가서 참말로 어머니가 사랑스럽지 또 어머니도 며느리 사랑스럽지 이라니까 나중에 가서는 또 서 말, ‘아이구 안 죽으니까 안 됐다. 한 말 더 구워 먹여라.’ 한 말 더 주니까 ‘아이구 안 됩니다. 우리 시어머니 죽으면 안 됩니다.’ 이래 가지고 나중에는 안 구워 먹일라 하더래요. 시어머니도 며느리 사랑하게 되고 며느리도 시어머니 사랑하게 되고, 그 아들이 참 도량이 너른 사람이고 아주 생각이 너른 사람이라.

이래서, 거짓 걸로 사랑해도 그 사랑 자꾸 하면 참 사랑이 돼지고 거짓 걸로 미워해도 자꾸 미워하면 참 미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이렇게 순응성이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놨어요.

순응성 있도록 만든 이유가 어데 있다 했어? 대답해 봐요. 순응성 있도록 만든 이유가 어데 있다 했어? 한번 대답해 봐. ○○○선생 한번 대답해 봐. 저거 잘 대답한다 말이오. 너는 하나만 고치면 되는데 깨닫기는 잘 깨닫는데 이 깨닫기 잘하는 사람이 실행을 못 해요. 알겠습니까?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라.

깨닫기를 잘하는 사람은 실행을 잘 못 하고 깨닫지 못 하는 사람은 깨달아 놓으면 실행은 뿍 불도저 모양으로 실행을 잘한다 그거요.

순응성 있도록 만든 것은 하나님 닮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순응성 있게 만들었는데 하나님만 자꾸 생각하고 하나님만 가까이 하면 하나님과 똑 같이 하나님 같이 되어지는 것인데 여게 옳게 쓰지 안하고, 이랬는데 이 마귀란 놈이 지금, 마귀를 자꾸 생각하니까 자꾸 마귀를 닮아간다 그말이오.

오늘 아침에 또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이래서, 이제, 두려웠지마는 두려워 못 견딘 사람들이 나중에는 일백이십 명이 뚤뚤 뭉쳐 가지고서, 담대히 한군데 뭉쳐 가지고서 막 기도하는 그런 담대한 사람들이 됐는데 그 담대함을 어데서 얻었습니까? 자, 어데서 얻었습니까? ○○○목사님. 그 담대함 어데서 얻었지? 자꾸 주님 만나는 데에서 담력 얻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주님 만난 데서 담력 얻었어.

앞으로 공산주의가 와서 뭐라 한다 해도 아주 비웃고 ‘너거가 무슨 힘이 있어?’ 죽인다 하면 `너는 힘 없어. 너는 죽일 권세 없어.’ ‘독침으로 찌른다' `독침을 찔러도 너는 죽일 힘 없어. 주님이 죽게 해야 되지 주님이 죽게 안 하시면 소용 없어. 독한 것도 독한 그 독이 없어지는 수가 있어.’ 이렇게 주님을 믿는 담력을 가지는 사람은 주님을 자꾸 만나 봐야 된다 말이오.

우리는 주님 만나 보는 것은 어떤 것이 주님 만나 보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 만나 보는 거 어떤 게 주님 만나 보는 것이지요?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주님 만나는 것, 또? 자꾸 생각 하는 것, 자꾸 주님을 생각해요.

이라기 때문에 저 양산동 내가 앉아 있어 보니까 모두 가면서 기도하러 올라갈 때도 뭐 중얼중얼 얘기하면서 올라가고, 그러니까 이야기하고 순전히 기도하러 올라갈 때도 마귀 그놈만 사귄다 말이오. 이야기하게 하는 그놈이 악령이요 악성이요 악습이라 말이오. 나쁜 버릇.

이런데, 또 기도하고 내려올 때 또 그래. 그러면 기도는 뭐 얼마나 하는지 몰라도 기도해도 앉아서 기도하면서도 그럴 거라. 이러니까 악령 악성 그놈만 실컷 사귀니까 그놈만 자꾸 가까워지니까, 자, 주님 만나니까 담대해지니까 마귀 만나면 뭐 되겠지? 담대 반대는 뭐이야? 담대 반대는 뭐이요? 크게 말해 봐요. 겁쟁이.

두려움이나 한가지라. 담대 반대는 두려움 겁쟁이지. 마귀 그놈 만나면 그만 두려워.

‘이 말 했다가는 저 사람이 날 뭐라 할지 아나?’ 또 두렵고 ‘이라다가는 어라, 이라다가는 장사 실패할라?’ 또 두렵고 굶어 죽을라 두렵고, 맞아 죽을라 두렵고, 다른 사람이 욕할라 두렵고, 뭐 두려운 것뿐입니다. 막 두려운 것뿐이니까 꼼짝도 못 해요. 요래도 못 하고 조래도 못 하고, 이러니까, 백 명이 오면 백 명 다 좋도록 말 들어야 되겠고 천 명 오면 천 명 다 좋도록 말 들어야 되겠고, 자, 그러니까 그 사람 뭐 됩니까? 창기 돼, 창기. 창기.

팔방미인이 창기 아니요? 이 사람 좋도록 하고 저 사람 좋도록 하니까 기생밖에 안 되지 뭐 딴거 뭐일 거라? 저거 남편만 좋게 해야 될 터인데. 그래서 팔방 미인을 창기라 이랍니다. 이런 것도 묘한 진리라 말이오.

주님 자꾸 만나니까 담대함 얻지. 이러니까 주님 만나니까 말씀대로 믿을라 하니까 ‘너 그라면 굶어 죽는다. 굶어 죽는다 하는데 담대함이 나오거든.

담대함을 가져 놓으니까 ‘굶어 죽는다’ `네가 굶어 죽는다 한다고 굶어 죽느냐? 주님에게 매였지.’ 죽인다 해도 이거는 두려워하지 안하지, 면직시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목을 끊는다 해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장사 실패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그라면 가정 파괴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도무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데 있어서 어떤 것을 가지고 유혹을 시켜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죽인다 해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이러니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된다 말이오.

잘 믿는 사람이 될라면 주님 자주 만나야 돼. 만나는 것은 ‘내 명령을 지키는 것은 내 말 듣는 거라.’ 주님 말 들으니까 주님 만난 것 아니요? 주님 만나서 주님 말 듣고 또 주님 자꾸 생각으로 만나고 사모로 만나고 자꾸 이렇게 해서 명상 기도 가운데 만나고, 이러니까 우리가 신앙의 담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교인 몇 가지 교인이라 했어? 첫째? 첫째? 믿음 없는 교인, 또 둘째? 믿어보는 교인, 또 세째? 보고 믿는 교인, 또? 안 보고 믿는 교인, 그라면 교인이 몇 종류입니까? 네 종류.

그런데, 믿어보는 교인은 어떤 교인이요? 말씀대로 한번 해 보자. ‘옆구리 만져 봐라.’ `안 만져 볼랍니다.' 그거는 주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해 보는 사람입니까 순종 안 하는 사람입니까? ‘옆구리 만져 봐라. 손 만져 봐라.’ 이랄 때 `예, 만져 보지요.' 만져 보는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이요 거역하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믿어보는 사람이라. 옆구리 손을 내 떡 믿어보니까 만져 보니까 그다음에 도마가 믿음 생겼소 안 생겼소? 믿어보는 사람, 믿어보면은 나중에 증거를 보는 사람 된다 말이오. 보고 믿는 사람 돼. 보니까 믿어지거든. 네 가지 믿음 요것도 단단히 기억을 해서 가지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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