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들은 것과 받은 것


1982년 5월 9일 주후

 

 본문 : 계3:1-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전에 총괄적으로 이 말씀을 했기 때문에 대략 윤곽은 아는 줄 압니다. 그러면  그 한 절 한 절 단절에 대해서 한 번 더 강론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또 일곱별은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나타낸 것은 3절을 밝히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3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받은 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그  은혜를 받은 것을 말하는데, 그 은혜는 강령적으로 말하면 둘입니다. 깨달은  은혜와 마음에 소원해서 작정한 은혜.

 우리에게 옳은 깨달음을 성령님이 주시지 다른 자는 줄 자가 없습니다. 또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것을 소원하고 작정하는 그런 결심은 성령의  은사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 스스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래서 「어떻게 받았으며」 말하고, 「어떻게 들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해 줘서 듣는 것은 누가 이렇게 강론해 주는가. 일곱 별, 하나님의 사자들이  하나님을 힘입어서 강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하나님의 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든지 하나님의 도리를  사람들에게 배웠으면, 물론 인본의 종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면서 하나님의  사자라고 자칭하는 그런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종이 아닌데 제가 스스로 가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 해 가지고  하나님 백성들을 꾀워 가지고 멸망케 하는 그런 거짓부리 하나님의 종들도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종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참 옳고 바르게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 가지고 잘못되게 가르쳐  사람을 잘못 믿도록 해서 멸망케 하는 그것은 마귀의 사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옳고 바르게 배운 그 배움은 사람에게 배웠다 그렇게 생각지  말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사자를 네게 보내 가지고 내 심부름으로 너희에게  그렇게 가르친 것이니 가르침 받은 그것을 하나님이신 주님에게 직접 가르침  받은 것인 것을 네가 깨달아라. 또 네가 말씀을 배울 때에 일곱 영, 성령님이  네게 가 가지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깨닫는 것이 아니고,  암만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 있고 깨닫는 자 있어서 너희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달아지는 그것이 있으면 그것인 곧 성령님에게 받은 것이다.

 뭐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니까 깨달은 이까짓 것이야 행해도 되고 안 행해도  된다고 네가 그렇게 생각지 마라, 옳은 깨달음 그것이 곧 성령님이신 하나님이신  내가 네게 깨닫게 해 주어서 그것을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이니 그것이 나한테  받은 것이다.

 또 하나는 그 깨달은 그것과 또 깨달은 그것이 깨달은 그것으로서 끝나는 것도  있고 또 깨달은 것이 네 마음에 결심되는 그런 것이 있다. 내가 너에게 결심을  시켜 줬다. 내가 이러니까 내가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그 결심한  것이 있으니 그 결심을 내가 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받은 것이 둘이 있고 네가 들은 것이 하나 있으니, 이것은,  들은 것은 내가 사자를 보내 가지고 사자를 통해서 너희에게 일러 들렸고, 또  깨닫고 결심한 것은 내가 성령님을 보내서 성령님이 너희에게 감동시켜 은혜로  주신 것이니 네가 이 두 가지 받은 것이 있느니라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듣고 받은 것, 어떻게 들었으며 어떻게 받았는지 듣고 받은  이것을 왜 말하는가. 말하는 이유는, 사람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두 구원이  있는데, 기본구원은 본인이 알기도 전에 하나님 편에서 단독이 이루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기본구원에 대해서 너희들이 생각할 것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고  또 노력한다고 해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참 어려운 것인데, 기본구원은 택한 자면 똑 같이 받았고 다만 하늘나라에  가서 구원의 차이가 있는 것은 행위구원이다 이 행위를 통해서만 하늘나라에  차이 있는 구원은 이루어지지 행위를 통하지 않고는 이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아니한다.

 그러면 하늘나라에 들어갔으면 그만이지 하늘나라 간 사람들 중에도 이 구원이  차이가 있는가. 심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늘나라만 갔으면 그만이지 하늘나라 간 자의 구원의 차이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에, 아마 20 한 5, 6년 전일 겁니다. 25, 6 년 전, 그렇지. 20  한 5, 6년 전에 제가 여기서 이것을 많이 강조했을 때에 여기 0000교회에 어느  장로님 장립할 때에, 그 목사님이 별세를 하셨습니다.

 000목사님이 그때 설교를 하면서, 이 이웃 교회에 조사 하나 있는데 그분은  하늘나라의 구원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고. 좋은 구원 있고 나쁜 구원 있고,  부끄러운 구원 있고 영광스러운 구원 있다고, 하늘나라 가 가지고도 그 차별이  많이 있다고 한다고 그렇게 조롱하는 설교를 하더라고 거기 참석한 사람이 듣고  와서 그 말을 합디다.

 그 말 하는데, 그 말 가운데 얼마동안 그것이 퍼져 나와서 떠들었습니다.

세상에 천국에도 차이가 있다고 하면 천국은 좋은 것이 뭐 있냐 세상에서 싸움이  있는 것은 다 차이 때문에 싸움 있고 세상이 좋지 못한 것은 차이 때문에 좋지  못한데, 하늘나라도 그렇게 차이가 있다고 하면 그 뭐 좋을 것이 뭐 있겠나.

거기도 가면 여기 있는 싸움은 있기는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 말은 과연 성경에 틀린 말이기 때문에 조롱하는 말은 얼마  지난 후에 한 2, 3년 돌아다니다가 그만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의  구원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누구든지 다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구원의 차이가 얼마나 있는고 하니 하나만 들어서 말을 하겠습니다.

형체는, 형체라 말은 다 같고 형체는 각각 다르지마는 제 각각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형체, 모양 말이오. 모래알도 한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콩알도 콩알의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런 종도 종의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냇물 가의 자갈마다 그 자갈이 모두 각각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땅에 속한 형체가 많이 있다. 땅에 속한, 땅에 속한 여러 종류의  형체가 있다.

 그런데 땅에 속한 그 형체들도 여러 종류가 있고 하늘에 속한 형체는 더 그  종류가 많다. 예를 들면 하늘에는 별의 그 별도 한 형체지마는 별마다 영광이  따로 있고 해의 영광도 따로 있고 달의 영광도 따로 있고 땅에 속한 형체들도  영광이 따로 있다.

 그러면 땅에 속한 형체나 하늘에 속한 형체나 다 형체는, 형체라는 이름도  가지고 제각각 어떤 형체든지 각각 형체를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 그 영광의  차이는 얼마나 크냐. 그러면, 자 땅에 속한, 저 강변에 가면, 강변에 가면  자갈이 뭐 수억억만 개도 되지 않습니까. 또 모래알들이 여러 크고 작은 것  형체들이 가득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모래알 하나 형체와 형체의 영광과, 또  자갈 한 개의 자갈이라는 그 형체의 영광과, 하늘에 있는 태양, 해의 영광과  차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해, 태양 한 개 와 강변에 있는 자갈 한 개와 그  가치가 차이가 얼마나 있습니까 그 차이가 얼마나 있지요. 가치 차이가 제법  있습니까. 여반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태양, 태양, 저 태양 한 개의 영광과 강변에 있는 자갈 한 개의 영광과 그 가치  차이가 제법 있겠습니까 같습니까.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저 할머니. 저  0집사님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신 윤필씨, 말할 수 없어요. 한 천 배 될까요.

억억억억억억억억억억 억억억억도 안 되는구만. 억억억억억 억억 암만 뭐 일년  내 억억억 억억억억억억억만 배가 된다 해도 계산에 못 미칩니다. 이렇게 차이가  많습니다.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다 이랬소.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다. 부활한 자의 영광의 차이가 이렇게 큽니다.

 이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한 자리에서 예배보는데 잘 믿고 못 믿고 그 차이가 뭐  있기야 있지마는, 그래도 별 차이 없는 걸로 보이지마는 이 다음에 부활해  가지고 무궁세계 갔을 때에는 우리 서부 교인 전부 다 뭉쳐도 어느 주일학교  학생 하나의 구원의 억만분의 일도 안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만침 구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 그때에 클런지, 영광스러울런지 이렇게 세상에서  사람들이, 건설구원, 행위구원 이렇게 말해서 뭐 말을 하지마는 모두 다 귀넘어  듣습니다. 예사로 듣소. 이렇지만 그때의 차이는 굉장할 것입니다.

 이 차이가 굉장할 이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그때에 구원의 영광 차이가 이렇게  크니 참 오늘은 일분 일초라도 이것은 허비해서는 안되겠다 이렇게 그 마음  가운데서 결심이 되는 그 사람이, 내가 어쨌든지 준비해 가지고 온 세계를  차지하겠다 하는 그 포부와 이 영광 있는 구원을 차지하겠다고 하는 그 포부와  어느 포부가 큽니까. 이 남반에 누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누가 소리가 큰지  남반에 한번 대답을 누가 한번 해 보시이소. 누가 소리가 크겠노. 이 청년 한번  해 봐요. 비교할 수가 없어, 우리의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참 포부가 큰 사람이요 그릇이 큰 사람이요 대인입니다.

그까짓 것 세계를 점령해 봤자 이 세계는 하나의 이 우주의, 우주에 가득차 있는  한 형체 중에 하나입니다. 한 형체 중에 하나요. 이 우주에 이 지구 땅덩어리  같은 이런 형체가 몇 개나 있는 줄 압니까 그것도 헬 수 없습니다. 억억억억  그런 걸로 뭐 일년 내 해 봤자 그 갯수를 다 헤지 못합니다. 그런 것 중에 한  개인 이 지구 땅덩어리, 지구 땅덩어리 중에도 3분지 1도 안 되는 그 육지  그까짓 것 3, 4년, 5, 6년, 7, 8년 혼자 제 주먹에 넣어 봤자 그까짓 것 몇  닢푼치 됩니까.

 무궁세계에 영광스러운 그 영광을 자기는 차지하겠다고 이것을 딱 자기의  욕망으로 포부로 가진 이 사람의 포부와 세계를 내가 한 번 손아귀에 넣어  보겠다는 그 포부, 제딴에는 세계를 제 아귀에, 제 손아귀에 넣겠다 하니까 어북  큰 포부 같지마는 예수 믿은 사람들이 부활하고 난 다음에 영광 이것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생각하는 그 포부에 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누가복음 19장 11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주인이 사람들에게  한 므나를 주고 갔는데 므나 한 개 가지고 장사를 해서 므나 한 개를 늘린 데  대해서는 한 개 늘린 그 한 개를 대가를, 그 임금이 돌아와 가지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해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재림해 가지고, 그 한 개의 대가를  얼마나 쳐 주느냐. 한 고을씩 쳐 준다 이랬습니다. 한 고을씩. 그러면 한 므나를  만들었다 하는 그것은 무엇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고 하니 한 므나 주신 것은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 주님의 대속을 가리켜서 한 므나 자본으로  맡겼다 하는 말이오. 자본 한 므나를 맡겼는데, 한 므나 가지고 한 므나 만든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자기 현실에서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새생명의 구속  도리에 합당한 행위 그 한 개를 가리켜서 한 므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한 므나를 만드는 데에 며칠이나 걸립니까 몇달이나 걸립니까.

몇달이나 걸리지요. 이 0선생님 한번 대답해 봐요. 현실이라는 그 짤막한 현실  거기에서 한 므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서 주의 구속하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으로 대속하신 이 대속에 합당한 그 행위를 그 현실에서 했으면  그것이 한 므나 남긴 것이라 그말이오. 자본 한 므나를 주신 것은 주님의  대속을, 대속의 공로를 주신 것을 말하는데 이 한 므나 가지고 장사해서 한 므나  남겼다 그 말은 이 현실에서 이 대속의 합당한 흠 없는 행위를 했으면 그것이  뭐이냐. 온전한 행위인데, 그것이 한 므나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 한 므나를 하늘나라에서, 하늘나라에서 계산해서 한 므나의 값을 줄  때에 어떻게 준다고 했습니까. 한 고을을 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한  고을이라니. 일 군을 준다 그말이오. 일 군을 준다 그말입니다.

 하필 여기다가 한 므나라고 비유했는데, 이거는 흰돈 한 푼이라는 뜻인데, 그  한 푼이라는 그 한 므나는 그 당시에 잡부인부 하루의 품삯이랍니다. 환산을  하면.

 이런데 요새 하루 품삯이라면 잡부는 한 8천원 7천원 더 갑니까. 이런데, 8천원  받는다 합시다. 8천원 그것이 시세가 폭등이 되어 가지고 8천원 짜리가 시세가  폭등되어서 일 군을 산다. 김해군을 샀다. 밀양군을 샀다. 울주군을 샀다.

 그러면 그 한 고을, 울주군이면 울주군 김해 군이면 김해군 한고을을 샀을 때에  그 한 고을은 잡부인부의 8천원 잡으면, 8천원 잡으면 한 고을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 8천원 짜리 므나 가지고 한 고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 한 고을이  8천원 쪼갠다고 하면 열 쪼가리가 될까 백 쪼가리가 될까, 여기 누가 계산  잘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 원자, 원자 계산법을 배운 사람들은 그런 것 좀  계산을 해 내십시오. 그 고을에 보통 한 평에 만원 가는 것도 있고 5백원 가는  것도 있고 이러니까 그 고을 전부 다 값을 살려면 얼마가 되고 이것은 또 백성이  백성에게 소유권을 사는 것이지 그거는 정부에서 가진 정부권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에서 그 정부권을 살려고 하면 아마 한 평에 5백원 짜리를  5백만원을 줘도 안 팔려고 할 것입니다. 이북에서 와 가지고 우리 나라에 지금  뭐 아무 쓸모없는 것 같지마는 저 봉두리 저거 이름 뭐이더라 무슨 봉이지 저기  저 기도원 있는 것. 그 무슨 산이지. 천마산. 천마산 꼭대기 한 평에 천만원씩  줄 터이니까 팔라 해도 우리나라에서 안 팔 겁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그 가격이 참 무시 무시한, 뭐 전자 계산기로나 계산할까 계산할 수  없는 그런 값 비싼 것을 하루 품삯 가지고 산다.

 그러면 하루 품삯이라는 이 한 므나라 하는 것이 그 시세가 얼마나  폭등됐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 현실에서 구속받은 자로서 구속에 합당한 이  행위를 하는 것, 구속에 합당한 행위를 하는 구속에 합당한 행위 이것이 지금은  사람들이 볼 때에 아주 보잘 것 없고 또 그것을 돈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참 광신자라고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렇지마는 한 현실에서 주님이 구속의 도리에, 구속의 약속에 합당한 흠 없는  이 한 현실 생활 이것이 한 므나인데, 이것의 가치는 지금은 사람들이  멸시하지마는 그 가치는 주님이 오셔 가지고 무궁세계에 보상할 때에는 그  가치는 입으로 헬 수 없이 많게 된다. 심히 헬 수 없을 만침 폭등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있는 한 형체와 하늘에 있는 해의 한 개의 형체와 다 같이  형체지마는 그 영광은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렇게 차이 있는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한 현실에서 진리대로 영감대로 살아, 진리와 영감은 우리가 구속받은  이 구속에 합당하게 살게 하는 것이 진리와 영감인데, 진리와 영감이 구속에  합당하게 살게 한 그 합당한 생활, 합당한 생활 이것을 하나 하게 되면 이  하나의 가치가 지금으로 말하면 이 지구 땅덩어리를 다 사도 값이 남을 만침  이만침 이것이 가치가 크게 폭등되어서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는 보상하는 그것이  되기 때문에, 현실에서,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에서 주님이 주시는 이 의, 이  의를 이것을 버리지 않으려고 생명을 내놔야 되면 생명도 내 놓고, 소유  내놓으라면 소유 내놓고, 자기 뭐 총총리라도 내놓으라면 내 놓고, 이것을  아끼지 않고 내놓고 한 현실에서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이 의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이 건설구원은 의를 이루는 것이 건설 행위인데, 이 의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구원이 되어지는 이것을 가리켜서 의라, 우리의 건설의 의라, 하나님의  의가 있고 우리의 의가 있는 것인데, 이 의는 새하늘과 새땅에 가 살터인데, 이  의의 가치가 이렇게 주님의 재림하시면 사람들이 측량 못할 만치 크기 때문에 이  의를 이루는데 자본을 아끼지 않는다 그말이오.

 저 사람 조그만한 사소한 그 일에 목숨 내놓을 것 뭐 있노, 세례 요한이 그것  뭐 잡탱이 정치가가 잘못하는 그런 것을 제자들이 물을 때에 옳습니까 그릅니까.

그거는 틀렸다. 그 말 한 마디 하고 자기 목숨 끊어질 일이지마는 물을 때에,  옳으냐 그르냐 그것을 말할 때는 옳은 걸 옳다 아닌 걸 아니라 다 정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평 안 하면 그것이 불의가 되고 정평을 해 말할 때에는 의가  되기 때문에, 그거 뭐 안 믿는 정치가들이 저희들이 매일 생활로 삼고 있는 그걸  제자들이 물을찌라도 옳다, 그렇다, 그것을 말하면 당장에 모가지가 끊어질  터인데 그거 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참 어리석은 노릇이다, 그것은 너무 지나친  의다 이렇게 보여지지마는 이런 성도들은 깨달은 것이 지극히 작은 한 의가  무궁세계에서는 한 고을을 차지할 만침 그 가치는 그 보상이 측량 못할 만침  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의라도 의라고 하면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이 다  달아나 또 한 의도 떨구지 않으려고 달려드는 것이 그것이 깨달은 자들의 행위라  그말입니다.

 여기 이 건설구원, 행위구원 이 행위구원은 행위로만 이루는 구원인데, 이  행위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이 행위구원을 언제 이루어야 되는고 하니 과거에도  못 이루고 미래에도 못 이루고 이 행위구원을 이루는 것은 꼭 현실에  이루어지니까, 현실에 되니 현실에 못 이루었으면 그 지나간 때가 수십년  지나갔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꼭 현실에서만 이루어야 되는데, 현실에서 이 행위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그  행위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그 행위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어떤 행위를 해야  되느냐. 그 행위를 했을 때에, 그 행위를 어떻게 했으면 그 행위가 구원 이룬  행위가 되어지겠는가. 그 행위는 하나님이 검사할 때에 99점이 죄면 건설구원을  이룰 수 있는 행위인가. 그 행위는 어느 정도 옳고 발라야 행위구원을 이룰 수가  있는가 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저 0선생님, 0집사님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저 뒤에. 0집사님이 아니오. 한번 대답 해 봐요. 어떤 행위는 그 행위구원을  이룰 수 있는 행위인지, 행위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 행위는 어느 정도의  행위라야 되는지. 저 내가 성을 잘 모르나. 0집사 아니오 저 선장. 아니오.

0집사님 구역 어디 있노. 그 이름이 뭐이요. 그 이름이 뭐이요. 이름을 똑똑히  불러 봐. 000집사님 한번 대답해 봐요. 뭐라 하노. 졸았어. 산 개가 죽은 범보다  낫다는 것이 그겁니다. 내가 공부도 많이 하고 명철하고 배 타고 가서 성경은  한번 갔다 오면 한 7, 8독 이렇게 하고 오는데 그래도 뭐 조니까 헛일이라. 이  들어서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 여기서 듣지 못하면 안 되거든.

 어떻게 들었는지, 이제 들은 것 이거 가지고 자기 현실을 생각해야 돼. 들은  이것 가지고 현실을, 강단에서 목사님이 이렇게 가르친 말씀을 들었고 대구집회  때 거창집회 때 이렇게 가르치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대로 하면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때 생각 해야 된다 그말이오.

 어떤 행위라야 이 건설구원이 되는가. 여기에 보니까 온전한 행위라  이랬습니다. 온전한 행위니까 이는 99점이 아니라 100점이 되는 행위요, 흠이  없는 행위라야 됩니다. 이 현실에서 흠 없는 행위, 주님의 구속에 합당한 행위,  흠 없는 행위라면 이것이 그 현실에서 만든 한 개의 의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므나를 장사해 가지고 한 므나 남긴, 남긴 한 므나입니다. 이것의 가치가 이렇게  큽니다. 이런데 우리는 너무 거리 멀게 에누리를 한 이 죄를 우리가 회개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제 마음, 생각, 욕심, 뜻, 성품 이것이 열 군데도 더 나누어 가지고  있고, 여기도 좀 나누고 여기도 내 마음 가 있고 저기도 가 있고 저기도 가  있고, 찌꺼기 남은 것, 다 욕심대로 쓸데 다 쓰고 나머지기 이제 찌끄러기로  남아 있는 이 마음 이것 현실에서, 내가 이제까지 이랬지마는 내가 주님의 피도  잊어버리고 구속도 잊어버리고 죄도 의도 하나님 화친도 다 잊어버려 버리고, 돈  명예 사건 이것만 생각했는데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지.

 제가 그렇게 그 현실에서 한번 생각하고 지나갔으면 속으로, 내가 그래도  현실에 주의 피를 생각하면서 삼가 조심했다, 이만하면 구원이 된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하루종일 생활에 현실 현실은 주님의 피에 대해서 자본이 되는  대속은 다 잊어버리고 하루종일 살고 저녁에 잘 때에, 주여 나는 오늘 생활 그만  주님 잊어 버리고 살았습니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 한번 하면 제딴에는  큰일 한 것처럼 이러면 구원이 된 줄로 이렇게 아는, 너무 우리는 노름꾼 도박꾼  모양으로 이렇게 우리 구원을 생각한 것을 여기에서 회개 해야 되겠습니다.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여기에 실상이라는 것이 넣는  것이 좋습니다. 구역 번역에는 실상이라는 것이 들어 있소. 일본판 번역에도  보니까 그것이 없지마는 그것 들어 있는 것이 여기 대한 뜻을 똑똑히 나타내는  것이 더 힘있게 나타냅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다니.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했기 때문에 살았지.

이렇지마는 공심판 통과한 네가 사죄 받았기 때문에 죄 없는 자로, 칭의 받았기  때문에 의로운 자로, 화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다시는 네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대속하신 자를 위해서 살게 함이라.

 대속한 자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계약인데, 자기 수지는 전부 제 욕심으로 다 살고 찌꺼기 중에 하나 찌꺼기,  남은 찌꺼기 이것을 바쳐서 살고, 또 하루종일 제 욕심대로 살고 저녁에 이것을  한번 어떻게 살았노, 한번 생각해 봤다고 무슨 큰 의처럼, 오늘도 하루종일  잊어버리고 지나갔고 이러다가 내일 또 아침에 한번 주님 앞에 가서 그때에  잠깐동안 주 앞에 한번 생각했다고 이거 가지고 다 된 줄로,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가 이렇게 줬지 하나님이 도를 우리에게 이렇게 주신 것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네가 하나님 앞에서 구속의 구원은  명칭으로도 받았고 법적으로도 받았지마는 실상은 네가 죽었다. 살릴 수 있는  현실에서는 네가,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너는 예수의 것이 됐는데,  네것을 네것으로 바로 찾으니까 예수님의 대속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돌아갈 것  아니냐. 과거에 몇십 년 신앙생활 한다 하지마는 너는 대속은 다 네가 집어 던져  버리고 대속을 벗었기 때문에 네게 대속이 입혀져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네가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난 새것 된 것은 없다.

 명칭의 삶과 법적의 삶은 이것은 네 실지의 생활에서 네가 거부했기 때문에,  자유성이 있으니까 거부했으니까 다 거부되지 않았느냐. 실상은 지나간 때의  모든 현실에서는 다 죽이고 말았다.

 이러니까 네가 남은 바 있는, 아직 죽지 않고 미결로 살 수도, 영원히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미결에 속하여 있는 것이 좀 남기는 남아 있다. 남은 바  죽게 된 것, 남은 것 이것도 네가 과거대로 하면 다 죽이고 말 터인데, 남은 바  죽게 되어 있는 이것을 네가 죽지 않도록 남아 있는 이것이라도 굳게 해라.

그러면 굳게 하면, 남은 바 이것을 죽이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안 죽일  수가 있습니까. 네 현실에서 온전한 행위가 되어야 죽지 않는다. 온전한 행위가  무엇입니까. 온전한 행위는 껍데기는 하나님의 법에 맞아야 되고 속에 알맹이는  성신이 됏다 합격증을 주어야 된다. 합격에 성령의 인을 받아야 된다. 성령의  인을 받으면 그 행위는 무슨 행위입니까. 그 행위는 온전한 행위다.

 네가 과거도 온전한 행위가 없고 미래에도 온전한 행위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르지마는 이 현실에 있어서는 이 행위는 온전하다 그러면 이것은 살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칙에 맞았으면 됐지 또 성령의 인정은 뭐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법칙에는 딱 들어맞는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그 동기가 다른 동기  가지고, 나쁜 동기를 가지고 그것을 할 수도 있고 목적도 다른 목적 가지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공동의회가 열려서 집사 선택할 터이니까 그 사람이  갑자기 한 서너 달 동안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오더라고. 그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야 하나님 법에 맞은 행위가 아닙니까. 공동의회에 집사 선거에 그만 당선이  안되니까 화를 내가지고 그 이튿날 아침부터 새벽기도 나오지 않더라고. 그거는  동기와 목적이 순전히 흉측한 자기의 사욕을 위해서 그렇게 새벽기도도 나왔더라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위를 했다고 해 가지고  온전한 행위가 되는 것 아니다. 성령이 보실 때에 너의 행위는 내가 봐도 내가  인정을 한다. 성령이 인정한다는 도장을 꽉 찍어 버리면, 요한계시 7장에 보면  성신의 인침을, 성신의 인치기를, 하나님의 인 치기를 기다려라,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인치기를 기다려라 이랬는데, 하나님의 인은 성령의 인이오. 성령이  옳다 인정했으면 온전한 행위로 이제 므나가 된다 그말이오.

 므나가 되는데, 그러면 성령이 인정하는 그 행위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행위가 하나님 보기에 흠과 점이 없는 깨끗에 어느 정도가 되어  가지고, 어느 정도 깨끗해야 되는 깨끗의 정도를 둡니까, 그 사람의 충성에  정도를 둡니까. 충성에 정도를 두는지 깨끗에 정도를 두는지.

 그 정도를 두는 것이 하나님이 표준이, 이 정도 깨끗하면 그는 합격이다,  성령이 그렇게 표준을 정한 것인지, 깨끗의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충성해서  이것을 만든 것인지, 반 힘 들여서 만든 것인지, 그 사람의 충성의 가치로 이  채점을 하는 것인지 어느 것으로 하는 것인지. 그것 어떤 것입니까 그 행위의  성결의 도수입니까 그 사람이 그것을 만드려고 충성하는 충성의 도수입니까.

어느 것을 기준해 가지고 채점을 합니까. 자 그거 알 사람. 여기. 이번에  귀신한테 속을 뻔 하다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대답은 100점입니다. 100점 충성의  도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핑계할 수가 없어.

 아주 명철하고 위대한 사람은 자기의 찌꺼기만 바쳐서 한 것이라도 아주  우둔한, 그 무식하고 우둔하고 한 그런 사람이 있는 힘 다 기울여서 만들어 봤자  저 사람 놀며 만든 것만치 그것의 행위의 된 그 도수는, 행위의 도수는 오히려  놀며 한 실력 있는 그 사람 만든 것이 더 민첩하고 나을 것입니다. 이렇지마는  이 사람은 다했고 저 사람은 찌꺼기 가지고 한 것 그것 하나님께서는 암만  좋아도 불합격 시켜요. 암만 모자라도 충성 다한 이거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큰 데도 충성하고, 지극히 작은 데  불의한 자는 큰 데도 불의하다, 그러면 인간의 의가 뭐이냐 인간의 의는 충성을  근거한 것이다. 자기 힘을 다 기울이면 된다 그거요.

 보니까, 이것은 너무 어리석고 못났으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한다고 했는데 해 놓은 것은 그까짓 것 참 돌  자갈 같습니다. 돌 자갈 같소. 돌 자갈 같고, 이 사람은 어떻게 명철하고 구비한  사람인지 제 욕심 피울 대로 피우고, 제 멋대로 오만 것 챙길 대로 다 챙기고,  나머지기 찌끄러기 가지고 만들었는데 금덩이같이 만들어 놨습니다. 금덩이 같이  만들어 놨소.

 이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이구야 이건 금덩이다, 가치 합격. 이거는 자갈  덩어리니까 불합격 이것이 아니라 말이오. 이 자갈 덩어리는 보니까 있는 것 다  기울여서 만들었고, 금덩이 이것은 이놈 이 남은 찌꺼기 가지고 만들었다. 이  금덩어리를 팽개치면서, 이놈아 네가 실력이 없어 나더러 만들어 달라 하느냐.

나는 너의 그 인격을, 너의 전인격을 다 기울인 그걸 내가 원하기 때문에 내가  너 먹이고, 모든 것이 다 내것인데 이 사람의 자갈 덩어리는 제 있는 힘을 다  기울여 만들었기 때문에 합격, 성령이 인 쳐 주시고, 이 금 덩어리 만들어 놓은  자는 불합격으로 던져 버린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은 그 행위가 잘되고 못된 거기에다가 두지 않고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정성을 들이며 어느 정도 성의를 들이며 어느 정도 마음을 다  기울여서 이렇게 차느냐 하는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 평가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 보니 못난 자는 제가 못난 줄 알기 때문에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하니까 못난 자가 오히려 성공한 것이 많고, 잘난 자들은 제가 잘났으니까  껍데기만 보고 저까짓 것 뭐 일년 내 새벽 기도 나가고 나는 하루도 안 나가도  내 생활이 민첩하다, 내야 도의면으로, 도덕면으로, 사회면으로, 가정면으로,  교회면으로, 모든 체모, 체면면으로, 다 구비하고 훌륭하다. 이러니까 제 딴에는  된 줄 알았는데 가 보니까 전부 낙제뿐이오.

 어쨌든지 하나님이 온전한 행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이분은 크신 분이요  알지 못하심이 없는 분인 것을 알고 이제 있는 걸 다 기울여서, 그것을 성령이  인정하기 때문에 성령이 인정한 행위라야 온전한 행위지 성령이 인정치 않는  것이면 다 불합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람들이 돈을 위해서야 있는 마음 힘 다 기울여 하지요. 여기에  보니까 공부하는 사람들 뭐 목숨을 다한다는 말은 맞을는지 안 맞을는지, 목숨을  다한다는 말은 맞을는지 안 맞을는지 모르지마는 마음은 다해요. 힘을 다해요.

뜻을 다해요.

 공부하는 사람들, 뭐 의학박사 되려는 사람들은 막 있는 것 다 기울여 가지고  하고, 이 세상에 무슨 사업하는 사람들도 밤낮으로, 헛소리도 그 소리라.

헛소리도 그 소리 다 기울여서 하고, 목숨은 다 바치는지 그거 모르지. 그거  하다가 약해지면 목숨을 바치는 셈이지. 이렇지마는 예수님 믿는 일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온전한 행위는 성령이 볼 때에 다 한 그것이라야  합격이라 하는 백점을 주는데, 똥덩어리 같은 자가 똥덩어리 같이 똥덩어리를  만들어 가지고 놨는데 100점, 금덩어리를 만들어 놨는데 불합격, 자갈 뭉텅이를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100점, 금덩어리를 만들어 왔는데 불합격. 이것은  흙덩어리고 이것은 금덩어리인데 왜 이것이 불합격입니까, 이것은 제가 다하지  않고 찌꺼기 가지고 만들었고 이것은 비록 흙덩어리지마는 제게 있는 것을 다해  가지고 만들었다.

 제게 있는 그건 내가 준 것인데, 이자는 아주 많은 그것을, 금 닷 냥쭝 준 자요  이것은 예를 들면 한방중이나 두냥을 준 자이기 때문에, 내가 적게 줬으니까  적은 것 다해 가지고 만들었으면 됐고, 많이 준 그것이 내것인데 제가 많이  가졌다고 적게 가진 사람과 비교해 가지고, 나는 많이 가졌으니까 다른 데 쓸  대로 다 쓰고 나머지 가지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 찾으면 저는 다 불의한 청지기가 되고 말 것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잘난 사람들 이런 말씀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구원이  이루어졌는가 안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왜 모릅니까.

나타난 행위 보고는 모른다 그말이오. 자, 그 사람의 구원이 잘 이루어 나오고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다른 사람은 보고 모릅니다. 왜 모릅니까. 본인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왜 모릅니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저  사람은 구원을 바로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다, 잘 이루었다 못 이루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본인은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은 알 수 있소.

 내가 이름을 불러서 물을 터인데 물으면 답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묻지  않소. 암만 이래도 하거나 말거나 지금 한창 한잠이 돼서 자고 있구만.

000집사님 부인 만잠이라, 만잠. 설교가 어떻습니까 설교가 너무 유치합니까,  어떻습니까. 안돼. 못 알아 들으면 잠 와요. 이것은 성령의 설교입니다. 성령의  설교인데, 속에 배암이 들어가면 잠이 와요, 말할 것 없이.

 왜 겉으머리 행위를 보고는 그 사람이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는지 이루지  못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왜 모릅니까 본인만이 왜 알 수 있습니까. 000선생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한번 대답해 봐요. 중간반 반사들은 전부 자네 보니까,  뭐 반사는 또 000선생.

 다른 사람은 모르는데 본인은 알 수 있는 것을, 제가 다 기울였는지 다 안  기울였는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마는 저는 알 수 있다 그거요. 자기만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껍데기에 잘되고 못된 그것만 보지 속에 다 기울였는지  안 기울였는지 모른다 그거요.

 그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은 다 안 기울여도 껍데기는 미끔하게 만들어 내고  무능한 사람은 다 기울여 봤자 다른 사람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만들어  냈지마는,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그가 충성이 어떠하냐 그것을  보시기 때문에 합격 불합격은 껍데기 만들어진 그것의 조성품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대해서 다 기울였나 안 기울였나 충성을 근거해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 행위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두말할 것 없이 온전한 행위, 온전한  행위는 성령이 인정하는 행위, 성령이 인정하는 행위를 받을려고 하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해야 되는 것.

 목숨을 다한다 말은 자기가 자살한다는 말은 아니고, 목숨을 다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할 때에 이 일을 시작해서 아무 소유도 손해 안 가고 할 수  있으면 손해 안 가고 하고, 이 일을 하려고 하면 소유물을 다 내야 되면  내놓고라도 하나님의 뜻을 내주지는 않고 하나님 뜻을 이루고, 이걸 하려 하니까  목숨을 내놔야 될 때에는 목숨을 내놓고라도 잡은 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않고  하는 것이라 이거요.

 이러니까 있는 것을 다하는 그자의 행위를 성령이 옳다 인정하는 인을 찍어  주니까 인을 받은 행위라야 온전한 행위가 되는데, 인을 받은 행위라야 온전한  행위인데, (옆에 사람 데려다 놓고, 뭐 자기 구역이오. 자기 구역 같은데 하나  데려다 놓고 졸고 앉았어.)  온전한 행위라야 행위구원은 이루어진다. 행위구원은 어디서 이루느냐.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현실에서, 그 현실에서 온전한 행위, 온전한 행위는 어떤  것이 온전한 행위냐 외부적으로 하나님의 법이 정죄할 수 없는 행위라야  되어지고, 하나님의 법이 정죄할 수 없는 행위라 할지라도 성령이 인정하는  행위라야 된다.

 성령은 어떤 것을 인정해 주느냐. 법에 어긋난 것이면 인정해 주지 않고, 법에  어긋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 인격을 다 기울여서 하지 않았으면 성령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것이 온전한 행위다. 온전한 행위라야 행위구원은  이루어진다.

 그러면 이 현실에서는 온전한 행위로 이 현실에 해당된 이것은 구원을  이루었는데 그 다음 현실에는 또 실패할지 모릅니다. 이제까지의 현실은  실패했지마는 오늘부터는 이 시간부터 현실에 하나도 실패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그 현실을 하나도 손해보지 않고 구원을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개별적 구원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개별적 구원. 이 현실구원 건설구원은 개별적 구원이라. 개별적  구원이라 말은 심신으로 된 육체구원이라 말입니다. 육체구원은 단일성의 육체가  아니고 종합체의 육체입니다. 종합체.

 이 마음도 여러 수만 개가 합해 가지고 우리 마음 됐습니다. 수만 개가 합해  가지고 우리 마음 됐고, 이 고기덩어리도 수만 개가 합해 가지고 우리  고기덩어리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에는 이 마음의 요소 이  고기덩어리의 요소 이것이 구원되고 그 다음에는 안돼.

 이러니까 다른 것은 다 구원 못 얻지마는 이래도 오른팔 이것만 구원  이룩했으면 천당 가면 오른팔 이거야 있지마는 몸둥이가 병신이 되어 놓으니까  이것 있어 봤자 쓰질 못한다 그거요. 또 몸뚱이는, 비유컨대 몸뚱이는 구원  이루었지마는 팔 구원을 이루지 않아 놓으니까 팔 이놈이 아무 쓸데가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번에 대추 가 가지고 가르쳐 준 말씀이 팔 구원을  이루는 현실, 눈 구원을 이루는 현실, 이 현실은 나에게 뭐하려고 이런 현실은  주는가. 어떨 때는 눈을 고치라고, 눈을 고치되 어떻게 고쳐 내 눈이 있고 주님  눈이 있는데, 내 눈 버리고 주님의 눈으로 내 눈 만드는 것. 지식을 또 고쳐서,  내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둘이 대립해 싸우는데 그 현실에서 내 지식은 집어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 삼는 것.

 지식을 바꾸라고, 능력을 바꾸라고, 눈을 바꾸라고, 지혜를 바꾸라고 그렇게  현실을 주어서, 이 현실은 손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 현실에 내가 이 손을 의를  행했느냐 죄를 행했느냐 이 손을 지금 구원하는 현실이라 말이오.

 이 현실에 그러면 여기서 주님의 대속을 버려 버리고 옷을 더럽힌 자, 주님의  대속의 옷을 확 벗어 놔 버리고, 이렇게 내 손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마귀의 뜻대로 살았으면 이 현실에서 얻을 이 손의 기능의 구원은 완전히 죽어  버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손가락 하나가 죽었는지 둘이 죽었는지.

 그러면 하늘나라 가 놓으면 별별 것이 있을 것이라. 이것도 있을 것이고 이런  것도 있을 것이고 이런 것도 이런 것도 있을 것이고, 아무 것도 없는 조막손이  같은 이런 것도 있을 것이고, 팔뚝 끊어진 것도 있을 것이고, 뭐 이런 것도 있을  것이고, 오른팔 없는 것도 있을 것이고.

 길가에 가면서 하필 이상한 짤룩 짤룩 걷는 사람이 옵니다. 그러면 그때에  이것도 형식계시요 자연계시인데, 주님이 뭐 하려고 이것 보내냐. 보면 참  얄궂게 걸어가는 사람 있습니다. 이래서 보고 난 다음에는 저는 5층에 방에 가  가지고 혼자 한번씩 흉내를 한번 내 봅니다. 흉내 내.

 이래도 한번 해 보고 저래도 한번 해 보고, 이것이 천당 가 가지고 내가 이럴  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 보였기 때문에 내가 천당 가 가지고 이래 걸어다닌다.

절룩 절룩거리며 이래 걸어다닌다.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그것도 다 구원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자, 이 현실에서 병을 고치는 것도 현실에, 병이라 하는 것은 육체의  병은 죽으면 그만이지마는 도덕의 병, 인격의 병, 서로 믿을 수 있는 신빙의 병,  서로 존귀히 여겨 존대하는 존대의 병, 뭐 별별 병이 있는데, 이런 병을  치료하는 것도 현실에서만 할 수 있고 갖추는 것도 그러하고 이 모든 것이 이  현실에서 이 행위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이 행위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데에는 법적이어야 되고 성령의 인정을 받아야 된다. 이럴려고 하면 있는 걸 다  해야 된다, 충성이라 인정이 될 때에 된다.

 그러면 이렇게 까다롭게 이것을 할 이유가 뭐입니까. 무엇 때문에 이것을 할  것입니까. 할 이유는 참 가치가 비싸기 때문에 해야 되겠습니다. 왜. 한  현실에서 만든 그것은 한 의가 되는데, 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었으면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언행심사가 있었으면 그것이 한 개의 의를 그 현실에서  만들어 낸 것인데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밑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본으로 받아 가지고 그 자본과 같은 것을  만든 것이라 말이오. 그것이 사죄대로 만든 것이요 칭의대로 만든 것이요  화친대로 만든 것이요 그것이 꼭 대속의 모형으로 딱 만들어진 것이라 그말이오.

그것이 한 의라 말이오.

 이 한 의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이 되면 이 의의 가치가 얼마나 폭등될 것이냐.

그것이 뭐 억억억억억 헬 수 없이 보기 때문에 이 한 현실에 만들어 놓은 이  의의 가치가 이 우주보다도 가치가 크니, 이 세계보다도 가치가 크니 여기에  자본을 들일 만하다 그거요.

 또 그뿐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40절 이하에 보면 형체의 영광과 같다, 땅의  형체 밀알 하나도 하나 형체입니다. 밀알 하나도 형체요 모래알 하나도 형체요  예를 들면 똥덩어리 그것도 한 형체입니다. 그것의 가치와 영광과, 해의 한 개,  해, 태양, 태양도 한 개의 가치로 말해. 한 개는 한 개인데 그 가치 차이가  얼마나 많으냐. 이것이 현실에서 이 가치 차이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 일을  예사롭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모든 걸 다해 가지고라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피공로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피공로가 아니면 다해서  일생동안 날뛰어 봤자 한 개도 만들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다만 하면 주님의  공로가 있어서, 성령이 왔지 진리도 왔지 주님의 피가 도와 주시지,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도와 가지고 이 일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가치 있기 때문에 이 한  의를 떨구지 않으려고 여기다가 전부를 다 기울이니까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미련타, 어리석다 말하지마는 이 현실에서 십자가의 이 도의 길을 걸어서 이  현실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에게 자기를 바쳐서, 자기는 희생되고 하나님의  도와 하나님은 자기 현실에서 살아나고 일어서도록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야. 땅위에서는 이보다도 더 큰 권능이  없습니다. 이것만이 권능이오. 그러기에 십자가의 길은 구원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요 멸망받은 자들에게는 미련하다, 어리석다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행위구원을 이루려고 힘을 쓸만한 가치가 있다  그말이오. 공연히 힘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 행위구원을 이룰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기 때문에 힘을 쓰는 것인데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힘을 안 쓴다 그말이오.

 「네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마라 피곤치 아니하면 성공한다」 그말이 무슨  말이오. 자기가 현실에서 이 온전한 행위 곧 행위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이 행위,  이 행위만 보면 피곤하고 고단하고 힘들고 이렇지마는 이 행위의 대가가 한  므나가 되고, 한 고을을 차지하는 한 므나가 되고, 땅에 있는 한 형체와 하늘에  있는 형체와 그 영광의 측량 못할 다르게 되는 이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생각하니, 내가 이것을 하기 위해서 자본을 들이는 것은 다 들여 봤자  그까짓 것 가치는, 예를 들면 천만원 가치밖에는 안되는데, 내가 다 들여서  현실에 살았다 할지라도 크게 나가면 천만원 가치, 그렇지 않으면 백만원 가치,  그렇지 않으면 십만원 가치, 우리가 한 현실에서 한 그것이 만원 가치나 잘  됩니까. 현실에서 자꾸 지나가는데, 시간마다 지나가는데. 만원 가치도  안드는데, 이 행위 가지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은 하늘의 형체와 같은 그런  영광스러을 것을 사니, 예를 들면 10원짜리 하나 주고 내가 사는 것은  억억억억억 만원도 더 되는 측량할 수 없는 그런 가치 있는 것을 10원짜리로  가지고 사게 되니 10원짜리로 사는 것이, 아이구 너무 내가 돈을 많이 줬다 싶지  않고 10원짜리를 주고 이 큰 것을 사니까 10원짜리 주는 것이 아깝지 않다  그말이오. 피곤치 아니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으면 내가 하는  것이 그것이 합격 받을 그런 행위를 내가 할 수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이제 죽이지 말고 남은 것은 살리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내가 찾지 못하였노니」 왜 여기에 온전한  행위를 말합니까. 온전한 행위라야 행위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온전한 것은,  네가 전부 99점, 잘되면 99점 80점 70점 60점 그것뿐이지 100점짜리는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이것이 우리가 놀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이  계산법이 달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1점만 가져도 이만하면 됐지,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이렇게  유혹시킵니다. 다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할 대로 하고 찌끄러기 그거 가지고  하루 생활을 저녁에 잘 때에 한번 반성만 해 봐도 이거 큰일했다 그만하면  구원됐지, 과거에 잘못된 걸 가지고 후회하는 눈물 한번 흘리고, 미래 것을  가지고 이렇게 하겠다 결심만 한번 했으면 이만하면 의를 행했으니까 나 같은  의인이 없겠지, 과거를 네가 후회를 해서 가룟유다 같이 죽어도 소용없다 미래를  네가 아무리 결심해도 소용없다. 이 현실에 온전한 행위가 된 이것만이 구원이  된다.

 이러기 때문에 너는 네 모든 행위에서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데교회는  하나도 없었어요. 우리는 온전한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 있을는지.

 이러기 때문에 구원은 자기 부인이 제일 어렵습니다. 자기 부인이 어렵소.

구원을 계산해 보면 원수가 누구냐. 원수가 옛사람 그놈이 원수입니다. 그놈이  원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을 이루어 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원수가  자기입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허공을 치는 거와 같이 네가 싸움의 대상이  없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내 싸움의 대상은 내 속에 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버림을 당하게 하는 이 내 속에 내라는 이놈이 들어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놈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내가 애를 쓴다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네가 신앙생활 했지마는 하나님이 표준한 표준을 가지고 이것을  평가하고 심사하고 검사하니까 행위구원을 이룬 행위는 하나도 없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 이 말씀이 얼마나 두렵습니까. 공연히 내가  조작배기로 자꾸 억설로 해석을 합니까. 이것을 달리 해석을 해 보십시오,  뭐라고 할 것인가.

 에누리가 없는데 예사로 들리는 것은 그것은 새사람은 일어나지 못하도록  옛사람 그놈이 잠 졸게,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못 들어오게 잠들게 하고, 옛사람  그놈이 이제까지 많은 말을 들은 것처럼 그런 말과 같이 이 말도 말 중에 하나다  해 가지고 마음까지 깊은 자극을 받지 못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이것이 길가  밭과 같은 그런 마음 작용입니다.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그러면 남은바 죽게 되는 것을 살리는 방법이 뭐입니까.

살리는 방법은 이것이다. 이것이 중요점입니다. 이것이 오전에 중심되는  교훈이요 오후에 중심되는 교훈입니다.

 남은바 죽게 되는 것을 살리는 유일할 방법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서 너희에게 말해 준 것이 있으니까 네가 들은 것이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너희에게 들려 준 것이 있다. 그러면 네가 들은 것,  어떻게 들었는지 네가 들은 것을 생각하라.

 유다서에서 「다시 생각나게 하고저 한다」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3장에 「다시  생각나게 하고저 한다」 현실을 만났을 때에 들은 것을 생각해서, 들은 것을  현실에 생각해서 현실을 네가 들은 것을 생각해 가지고 그 생각대로 현실을  판정지위라.

 네가 들은, 들은 교훈, 들은 말씀, 들은 법칙 그걸 가지고 현실을 생각해라.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들은 데에는 현재에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저렇게 해야  되겠다. 그렇게 그대로 생각하라.

 (저 귀신이 참 아주, 귀신이 그 속에 들어와 가지고 영 뭐 잠마귀를 들이  퍼부어 놓으니까 눈을 못. 뜨네. 오전에도 못 뜨더니마는 오후에도 못 뜨고  계속해서 뜨지 못해. 그놈이 마귀입니다. 그놈을 잡아 죽여야 됩니다. 그 생각이  전부 마귀 생각이오. 다 자기 자율의 생각입니다. 그거 안 죽으면 언제나 비판과  평가가 정반대됩니다.)  「남은바 죽게 된」 지금 남은바, 이제까지 죽은 거와 같이 남은 그것도 죽을  것인데 죽지 않도록 네가 살리는 데에는 살리는 방법이 뭐이냐. 어떻게 들은  것을 현실에 들은 그대로 생각해라.

 네가 현실을 어떤 세상 인간에게 묻지 말고, 세상 박사 학자에게 묻지 말고,  세상 지도자에게 묻지 말고, 세상 권력가에게 묻지 말고, 세상 선조들에게 묻지  말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사자들이 너거에게 말해 준 그 말씀대로  현실을 네가 생각해라.

 그러면 반드시 그 현실에 지도는 둘일 것이다 둘일 것이다. 하나는 이거 해라  하나님 앞에 들은 말씀은 이리 해라 그럴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현실을 세상  사람들이 말해 준 그 말대로 현실을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신 그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거요.

 이번에도 집회에 보니까, 어떤 학생은 아예 일년에 한 주일인데, 한 번인데  하나님의 지식을 듣는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아예 으례 그럴 줄 알고,  그러다가 퇴학 만나. 퇴학 만나면 퇴학 만나지 어쩔 수 없지. 퇴학을 만나도  해야지. 하나님 말씀을 들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뜻대로 행하는데 대해서 퇴학이  문제 아니라 그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세상 지식을  배우는 그걸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그 기회에 배우려고 한다고  해서 사형을 주면 어쩔 것이냐. 배우다가 사형 당해야지. 이것이 성경이라  그말이오. 가르치기를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고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런 학생은 아예 거기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도 않고 으례 마귀라는  놈이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건드리지도 않는데 떡 갔다가 와 가지고 금요일날,  그 학생들 말 들어보니까 첫시간 못 가고 그 다음 시간부터 가니까 당장에 뭐  산수 시험인가 수학 시험인가 뭐인가 쳤는데 100점, 공부도 안 했는데 100점.

하나님이 머리 열어 주면 되지.

 이러니까 어디 갔다 왔느냐 묻지도 않는 학생, 선생이 아예 묻지도 않는 학생,  어디 갔다 왔지, 이러니까 대구집회 갔다 왔습니다. 그러니까 동무들이 속으로  중얼 중얼거리면서 봐라, 우리가 그렇다 했지, 왜 거기 대해서 숨길 것이 뭐  있는가 좋아서, 대구집회 갔다 왔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유하는데 어떤 사람은 숨기고 가리고 숨기고 가리고 마구 첩첩이  이래도 막 달려들어 가지고 꼼짝을 못합니다. 어떻게 다 같은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은 자유를 얻는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종이 되어 가지고 어떤 사람은 꼼짝도  못합니까. 여러분들 여기에서 귀가 있고 눈이 열린 자는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 나왔는데, 우리는 구원을 이룬 줄 아는데, 행위구원 이  행위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이 행위구원의 한 개가, 한 현실에서 이 밑천  므나와 꼭 같은 것 만들어 낸 것,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에 합당한 열매,  그대로의 합당한 결과, 맺어놓은 것, 이것 하나가 한 므나라. 한 고을의 대가가  돼. 이 자본 들인 이것의 억억억억 말할 수 없는 가치가 돼.

 이것이 모래알 한 개와 태양 한 개 가치 차이가 있는 것처럼 구원 얻은, 다  같은 구원 얻은 자의 세상 구원, 세상에서 다 같이 구원 얻었는데 하늘나라 가  보니까 구원 얻은 자의 차이가 그렇츰 있다 그말이오.

 이 다음에 잘난 자들, 똑똑한 자들, 억센 자들, 유식한 자들 마귀 지식은  가득히 들어 있는데, 배암 지식은 가득히 들어 들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속에 안 있어. 이러니까 언행심사의 모든 것을 마귀 이놈이 주관해 가지고  마귀대로 살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나도 살지를 못한다 이거요.

 이래 가지고 가 보니까, 홍포 입은 부자가 제딴에는 내가 하늘나라 가면 돈  많아서 세상에서는 모두 다 날 이렇게 여겼으니까 크지 해서 거기 가서 나사로를  심부름을 시키려고 하니까, 나사로와 너와는 본질과 본성이 다르다, 처소가  다르다. 지위가 다르다, 네가 어리석게 속았다, 나사로는 하늘에 있고 너는  지옥에 있다.

 거기에 가 가지고도 나사로를 심부름 시키려 하는 그 교만과 자기의 위신은  그대로 있는데 모든 만물은 들어 주지 않거든 자기는 말할 수 없는 부자의  교만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물 한방울을 소유하지 못하거든 이것이  고통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서부교회서도 아마 잘난 사람들 유식한 사람들이 제딴에는  무식한 사람이 주여 주여 하면서 그저 새벽기도마다 나오고 그것이 또  어리석으니까 행위도 마귀에게 끌려서 오만 조롱 받는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합니다. 그래도 충성하요.

 내가 점심을 먹고 앉아서 말하기를 000씨가 마음에 그립다. 한번 만나 보고  싶다, 죽은 지 오래 됐소. 이러니까 말하기를, 나는 그때 그분에게 대해서  폐병에 심히 극심자가 돼 가지고 산 송장같이 되어서 아무 사람도 근방에 가지  않을 때에 그때 어디를 그 병원에 가는 데도 그냥 안되니까 그때 목사님이 옷을  무엇을 하나 주면서 입혀 가지고 가라 하면서 그 옷을 줘서 입혀 가지고 간  그것만 기억납니다. 하며 그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리석어서 마귀에게 이리 유린당하고 저리 유린당해서 행위는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엉만진창이지마는 진정코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신앙은  있는 사람이다.

 내 어떤 대심방 때에 뉘 집엔고 가 가지고 말하기를, 거기에 일등 집사님들이  있었습니다. 집사님들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책망 받을 것이 없을 만침 행위가  구비하지마는 집사님들은 믿는 신앙이라 하는 것은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마 주를 위해서 생명 내놓는 그런 일 있다고 하면 이제 그 마지막에  죽으면서라도 주님을 찬양하고 배반치 않을지라도 여러분들은 마구 구두발로  차고 고함을 지르며 다 예수 내놓고 도망칠런지 모를 것입니다. 내가 일등  집사님들 다 앉혀 놓고 다 그렇게 말했어.

 이말출 집사님도 거기에 있었어. 그때에 이말출 집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지금 이러면 예수님의 이름을 버리고 어디로 도망 칠런지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믿음이 시작도 안 했소. 그때 뭐 부산의 여전도회에 이런 사람들이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것이 다르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때 이말출 집사, 여기 왔는데 지금 이제 고쳤으니까 지금 부끄럽지  않을 것이오. 전도를 하면 전도 하나도 못합니다. 자기는 열심히 전도한다  하는데, 다른 사람은 척 만나고 난 다음에 하는 말이 아이구 그렇츰 귀골스러운  사람, 그렇게 교만한 사람, 우리 같은 사람은 유가 안돼서 아예 상종이 안  된다고. 전도해야 하나도 못해.

 이랬는데, 그 뒤에 자기가 죽고, 참 자기가 죽고 자기가 병신이 되고 자기가  아주 자기를 부인하고 난 다음에는 많은 전도를 했습니다. 개인으로 전도해  가지고 얻은 숫자는 아마 이말출 집사님이 제일 많을 걸요. 그 뒤에부터 비로소  예수를 믿어.

 내가, 전적 부패라, 사람은 전적 부패했다 하니까 그 설교를 부인해. 사람이  어찌 전적 부패했느냐고. 사람에게는 다 의야 못되지마는 그래도 깨끗한 것이  반이 있든지, 그리 않으면 10분지 9가 있든지 깨끗한 것이 있다고. 자기가  보기에는 자기가 깨끗하거든. 전적 부패했다, 옳은 것은 털끝만치도 없다 제가  말했지요.

 여러분들 어리석게 맙시다. 세상 지식 가지고 발라 맞춘 그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난 다음부터 신앙이라 하는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죽게 된 것을 네가 살려라 살리려면 언제 살려야 되느냐. 장소와  시간은 현실이다. 현실에서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실에 행위가 99점도  안 된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온전타 인정을 하는 행위라야 된다.

 온전타 인정하는 행위라니 온전타 인정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한  행위인데, 하나님의 법도대로 한 행위라 할지라도 네 인격을 다 기울이지  아니하고 찌꺼기 가지고 법도대로 했으면 하나님께서, 너대로는 법도대로  했지마는 하나님의 법은 무한한 법인데, 네가 법의 억만분지 일도 모르는데 그  법에 속의 알맹이로 판단하면 너는 다 정죄받고 만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이 인정하는 데에는 네게 있는 것을 다해서, 현실을 이  구원의 가치를 깨닫고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대속하신 것을 깨닫고,  주님이 널 대속했기 때문에 네가 주의 것인 줄 알고 주님의 것으로, 주님을  위해서 네 있는 힘 다해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시리라.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신앙 지키기가 어렵지마는 「시험을 만나서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시리라」 이것을 깨닫고 현실에서  네가 남은 것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다 죽으면 천당은 갔지마는 기능이 없으니까 조그만한 어린아이라도,  어린아이라도 이것이 몸둥이 보다도 기능이 있으니까, 이 조그만한 것이 뭐  붙잡을 수 없이 팔랑 팔랑 팔랑 돌아다니는데, 몸둥이가 커다란 하고 키가  커다란 하지마는 반신불수가 되어 놓으니까 일어서지도 못하고 겨우, 속에  기능이 없으니까 작대기 짚고 벌벌벌 떠니까 이만한 놈이 욕을 하고  달아나지마는 욕을 당해도 뭐 따라갈 수가 있소, 어찌 해. 속에 기능이  없으니까, 기능이 없으니까.

 이것 모양으로 부활의 구원 얻어서 하늘나라 갔지마는 뭐 실력이 있어야지.

눈이 어두우니까 아무 것도 보지 못하지, 힘이 없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하지.

고기 덩어리만 부활하고 마음 형체, 마음 덩어리만 부활했지 속에 실력이 하나도  없소.

 목욕탕에 나는 갈 때 그것을 느낍니다. 가 보면 뚱뚱한 사람이 이 손을  검어쥐고 이래 가지고 간신히 이래 가지고 하는데, 저분이 저 몸에 비해서 속에  있는 기능이 그만 다 고장이 나 버렸구나, 이러니까 벌벌벌벌 떨면서 옳게 서고  걷지를 못해.

 이만해도 속에 제 몸둥이에 알찬 기능이 있는 놈은 뭐 펄펄 뛰어 돌아다녀요.

어른들이 냉탕에 가 가지고 야단친다고 뭐라 하면 훌떡 뛰어서 저리 가 버리지,  또 저기 있다가 또 어른들이 좀 있으니까 훌떡 뛰어서 야단지기지,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어.

 하늘나라도 기능 없는 것 그것 비참합니다. 그것을 오늘에 마련해야 돼요.

오늘에 마련 못하면 그때 참 비참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어떻게  하든지 주님이 고난 당한 그 고난에 나도 동참하고 주님의 부활의 권능에 내가  동참하려 한다, 이것을 향하여 달음질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남은 바 죽게 된 이것을 이 가치 있는 이 기능을 마련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는 방식은 둘뿐이라. 네가 어떻게 들은 것은 현실에  들은 그대로 현실을 생각해 가지고 판정짓고, 또 네가 받은 것은 그대로 지켜  행하라. 이거 하면 돼요. 이러면 거기에서 또 주시고 또 주시고 해서 마지막에는  온전함에 도달하도록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성경을 본 사람은 하나님 앞에 그 성경 기자들에게 들은  말씀이 되겠고, 이 성경 말씀을 또 강해해서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성경 기자의 사자들 그 다음으로 속사자, 하나님이 부리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해서 이 성경 말씀을 해석해 받았다 그말이오.

 제가 부족하지마는 이 서부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사자로 쓰셔서  내가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쓰셔 가지고 당신이  여러분들에게 일러 들린 말씀이라 그말이오. 대구집회에서 일러 들린 말씀이라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들은 것을 현실을 만났을 때, 이 현실을  만났으니 그때 뭐라고 말씀하시더라, 그 말씀대로, 이럴 때는 이렇게 하라더라,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하라더라, 이럴 때 돈에 대해서는 물리치라더라, 이럴 때  돈은 취하라더라, 이럴 때는 퇴학을 당해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더라, 이럴  때는 네가 공부를 할 때에 있는 심신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우수한 성적을 취하도록 하라더라, 이런 날은 네가 공부 안 했다고 매를  맞을지라도 이 주일날은 공부를 하지 말라더라.

 어떻게 들었는지 이대로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받았는지 그것은 지켜 행하라.

받은 것이 몇 가지입니까. 자 손가락을 가리켜 봅시다, 저 뒤에도. 받은 것이 몇  가지입니까 받은 대로 지켜 행하라. 받은 것이 몇 가지입니까, 저 뒤에 좀  손가락 한번 들어 보이소. 손가락 들어 봐요. 받은 것이 몇 개인고 한번 들어  봐요.

 저 우리 0장로님 한번 손가락 한번 가리켜 보이소. 받은 것이 몇 개인지. 아마  몰라 놓으니까 손가락을 안든 것 같은데 아시면서 손가락을 안 드는지. 아시면  들어도 모르면 손 흔들어 주이소. 모르면 이래, 그만 잤으면 모른다고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우리 0장로님 이제 폭락이 된다. 모른다고 이래 손을 들어서  흔들었습니다. 우리 0장로님, 고관 대작이요 잘 믿는데 뭐 졸면 소용 있어야지.

 받은 것 몇 개인데 이래도 말씀 들을 때는 마귀 그놈이 들어가면, 시쁜 설교,  저 설교는 시쁜 설교, 은혜 없는 설교, 다 아는 설교, 물으면 답은 못하네요.

 여러분들, 오전 오후에 가르친 이 말씀 가운데서 문제 열을 내어 가지고 답을  쓰라고 하면 아마 여기서 제일 유식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답 하나를 옳게 못  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주 무식한 사람이라도 답을 다 쓸 수  있을 것이오.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알려 주시고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으면  딱 가두어 버린다 말이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행하라 000씨도 눈을 감는  것은 나한테도 한번 물어 주면 내가 딱 100점 대답을 하겠다 하는 그것 때문에  눈을 감는가. 소용없어. 뭣 때문에 핍박받아 가면서 여기에 나와 가지고 졸면  아무 소용없어.

 받은 것은 몇 개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저 뒤에도. 받은 것. 아는 사람  손가락 한번 가리켜 봐요. 이렇게 뚝 들어 봐, 뚝. 이 앞에는 드는데 저기에는  있는가 없는가 모르겠는데. 저기도 한번 들어 봐요. 받은 것 몇 개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다 들어 봐요. 모르는 사람은 아는 대로 들어 봐요.

아는 사람이 흰밥에 뒤 섞인 것만침 섞였다. 모르고 있으면 어떻게 구원을 이룰  것이오. 받은 것은 두 개입니다. 둘, 받은 것은 두 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귀로 들을 때에 그때에  성령이 오셔 가지고 하는 것 한 개는 뭐입니까. 한 개는 깨닫게 하는 것. 그  깨달은 것이 내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고 성령이, 나는 일곱 영을 가졌다 하는  일곱 영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나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라 그말이오.

깨닫게 해 주신 것.

 또 하나는 뭐입니까. 뭐이요. 이 장로님들 전부 폭락을 막 시켜서 내가 인제 좀  하겠는데 한 군데 묻겠는데 거기는 답을 할 것 같아 내가 안 묻습니다. 답 할  것은 안 묻거든. 답 못할 때 그때 딱 묻지.

 하나는 자기 마음에 깨달은 입지를 세운 것입니다. 작정한 것. 들을 때, 나는  이렇게 이제 살겠다, 주여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작정한 것이, 반드시 성령이  와서 역사하시면 둘이 있다 그말이오. 깨달은 것 작정한 것이 둘을 성령님이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제 속에 스스로 된 것이라 생각한 이것이 마귀요 성령님이 자기에게 주신  것이라 그말이오. 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이 받은 것을 자기가 그대로 지켜  행하려고만 하면 주신 분이 나만 충성을 다 하면 주신 분이 이 일을 완성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비밀이라.

 그러면 들은 것은 언제 써 먹습니까. 들은 것은 언제 써 먹소.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들은 것은 현실에서 써 먹고 또 받은 것 두 개는 언제 지켜 행해야  됩니까. 현실에서. 만점이라. 이러면 알았습니까. 알기는 알았습니다. 알았어.

 이러나 여러분들이 이번 대구집회에서 들은 말씀은 앞으로 현재 현재 오는 현재  현실에서, 현실 현실에서 생각할 말씀이요 또 성령님에게 받은 것 두 개가 있다  말이오. 두 종류. 두 종류가 있어. 깨달은 깨달음이, 깨달음을 하나 깨달았든지  둘 깨달았든지 열 깨달았든지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또 자기가 작정한  것이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이것이 성령님에게 받은 두 종류, 이것을 현실에서  지켜 행하면 됩니다.

 이 현실에서 지켜 행하려고 하니까 마찰이 옵니다. 현실에서 지켜 행하려고  하니까 마찰이 오고, 현실에서 지켜 행하려고 하니까 마찰 오고, 현실에서 지켜  행하려 하는 이것을 버려 버리니까 마찰 하나도 안 옵니다. 마찰이 안 오고  보니까 힘이 하나도 안 쥐어요. 마찰 없으니까 자기에게 초자연의 능력이 오지  않습니다. 마찰이 없고 보니까 기쁨이 없소. 끓는 물을 갖다 부어서 채소밭에  부은 것처럼 팍 시들어져서 죽은 것 같다 그말이오.

 이것을 현실에서 지켜 행하려고 하니까 마찰 오고 힘드는데, 마찰 오고  힘드는데, 힘드니까 자기의 것을 다 기울여야 될 만침 힘드니까 하나님이  도우셔서 이루었는데 하고 보니까 전지전능의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쁨도 평강도  담력도 능력도 꼭 이 구멍으로서만 나옵니다. 이 구멍에서 나오요. 이 구멍  버리면 예수 믿을 재미가 없다 그말이오. 능력이 없어.

 이번에 받은 것 있다 그말이오, 분명히 여러분들이. 깨달은 것이 있다 말이오.

깨달은 것. 이래야 되는구나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받은 것이 있다 그말이오.

받은 것을 벌써 오면서 버린 자 있고, 와서 버린 자 있고, 하루 지나니까 버린  자 있고, 이틀 지나니까 버린 자 있고 있으니 그것을 다시 되찾아요. 어떻게  받았는지 네가 다시 찾아서 이것을 현실에서 지켜 행하려고 하면 싸움이  일어나고 힘이 들고 들면 거기서 생수가 나온다.

 거기에서 능력이 나온다. 기쁨이 나온다. 거기서 영광이 나온다 권위가 나온다.

그것 버리면 헛일입니다. 사람이 다 다음 다음으로 미루고 현실에서 버린 것이  1년도 10년도 몇 십년도 지겹지 않고 한 시 같이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날아가기는 신속히 날아가요.

 이러니까 그것을 양보하지 않고, 받은 것 양보하지 않고 그 현실에서 그것을  지켜 행하려고만 애를 쓰는 이것만 해도 들은 것이 생각납니다. 들은 것이  생각나요. 들은 것 그것만 현실에서 생각해서 들은 그대로 현실에 생각해도  생명이 나오고 눈이 밝아지고, 지켜 행하면 그만 능력 나와. 대수롭지 않은  것인데.

 인간이 이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마는, 뭐 짜다라 대대학을 공부하고 외국에  가고 시험 치고 뭐 해 봐야 그까짓 것 다 시시한 것입니다. 시시한 것이오. 힘은  많이 들었지마는 인간 힘만 들어 가지고 했기 때문에 시시하다 그거요. 하나님의  능력이 오면, 하나님이 엿새동안에 지은 것을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 지어 봤자  그 어디 한국 땅덩어리 이런 것 하나나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학교에 들어가서 뭐 천재니 우등이니 그래 쌓으면서 이제 한 시험  통과했다 통과했다, 한 자리 올라갔다 올라갔다, 올라가서 네까짓 것이 암만  올라가 봤자 그까짓 것이 몇 닢푼치 됩니까 한 말로 말하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하는 말씀이 너희에게 전한 이 복음이니라」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자기 현실에서 이것을 만드는데 힘은 들기는 들지마는 힘들  만한 가치가 있다 그말이오. 다 해서 만들 만한 가치가 있어. 다해서 만드는  데에도 장소를 잘못 잡으면 헛일이라. 시간을 잘못 잡으면 헛일이라.

 다 만든다 할지라도 장소는 어디입니까. 자기가 있는 그 현장, 시간은 그 현재,  현재 시간, 종류는 자기가 봉착한 모든 그 현실, 여기에서 어떻게 힘을 줄까,  이렇게 힘을 쓸까, 이렇게 힘을 쓸까, 막 뚝뚝 뛸까, 머리를 싸 잡아매고 힘을  쓸까 암만 힘을 써도 헛 힘 쓰면 저만 골빠져. 소용없어.

 힘을 어떻게 쓸까, 두 가지. 들은 것은, 닥친 현실마다 들은 이 지식으로  가지고 판단할 것. 또 한 가지는 받은 것, 깨달음 받고 결심 받았는데, 깨달음  받고 결심 받았는데 깨달음 받은 깨달음과 결심 받은 결심 이것을 이 현실에서  안 놓치고 이 현실에서 하려고 달려들어서 현실에 이것을 놓지 않고 현실에 이  두 가지를 지켜 행하면 거기서 폭탄이 떨어진다 말이오. 거기에서 큰 폭발이  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폭발이 나,  거기서 옛사람이 죽어지는 폭발이 나오고, 거기에서 하늘나라의 능력이 터져  나오는 폭발이 나오고, 거기에서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지극히 큰 것이  이루어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것 가지고 만들어 놓은 사무엘은 불학무식한 사무엘이지마는 이것  가지고 만들어 놓으니까 그 만든 데는 전부가 진리요 하나님이오. 진리와  하나님이 만들어 준 이것이, 사무엘은 조그만한 지금 소년인데 이 소년을 그  어른들, 대학문을 가진 수양 받은 사람들도 감당 못해서 사사가 되고 난  다음에는, 사사, 사사라면 그때의 정치 종교에 다 머리되는 사람입니다.

 이래도 유명한 사람들이 들어서 가지고 나라를 망치고 하는데, 이 갓난 어린  소년 같으면 이까짓 것이 맡아 봤자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소년에게  맡기라 하니까 사무엘이 그걸 맡았다 그말이오. 맡았으니까 모든 사람이  삐쭉거렸습니다.

 삐쭉거렸지마는 그분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지, 그 분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이지, 그분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장하는  것이지, 그분이 하는 일은 전부 하나님이 동해서 하는 일이지.

 이러니까 조그만한 소년이 정치가가 되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고  난 다음에 그가 척 들어서니까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연방들이 꼼짝을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없어지기까지는 전쟁이 한 번도 일어난 일이 없었습니다.

평안했어. 모든 주변에 있는 연방 국가들이 사무엘이 사사로 있을 때에는 암만  거기 대해서 다른 생각도 못 가지고 전부 존경 뿐이요, 문의뿔이요, 바치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들은 것을 생각하고 받은 것을 지켜 행하면 이것 가지고 남은 바의 죽을  것 이것이 완전히 산 것으로 살아납니다. 이러면 흰옷을 입어. 이러면 성화가  온다, 성화를 가진다, 이러면 성화가 되어져요.

 자기의 기능이 성화된다 그말은 자기 기능이 하나님화된다 그말이오. 성화된다  말은 자기의 가진 것이 하나님 화돼. 자기 지식이 전지화되고, 자기 능력이  전능화되고, 자기의 인품이 하나님의 온전하심화되고, 이러니까 하나님은  원형이라면 그 사람은 모형, 하나님 꼭 닮아서 하나님과 같은 것이라.

 이러니까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을 다 받은 것처럼 그렇게 된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예수님 받듯이 다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바울과 게바와 아볼로 이 전부가 다 너만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이 모든 것은  네것 된다.

 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한덩어리기 되기  때문에 네가 그리스도와만 한덩어리 되면 그 모든 피조물은 네것이 되어서  너에게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말씀이 과장한 말씀입니까. 아니오. 호리도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

계약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믿으면 땅위에 부러워할 것이 뭐  있습니까. 땅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취급하면 버릴 것 하나도 없습니다.

 땅위에 있는 이 학문도, 재물도, 권세도, 지위도,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다  죽은 것이로되, 죽은 것이로되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다 죽은 것이니까  멸망받고, 그것이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버리고 그대로 하면 영원히  멸망이 되어서 구원얻은 것까지도 다 멸망을 시키고, 법적 명의적 구원얻은 것도  다 멸망을 시키고.

 그것을 하나님의 진리에 복종을 시키고 그것을 새사람에게 복종을 시켜서 그  세상과, 세상과 그것이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과 중생된 영 여기에게 복종하는  것이 되어지면 이 썩을 것이 다 살아납니다. 욕된 것이 다 살아납니다. 약한  것이 다 살아납니다. 혈육의 것이 다 살아납니다. 보배가 됩니다. 그렇지마는  이것이 거기에 소속을, 어서 거기에 접을 붙여야 되지 접을 붙이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받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요사이는 어쩐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극단의 말씀을 주십니다. 지금 어떤  강단에서는 태평이라 하고, 지금은 아주 태평 세계라. 마음에 그렇게 조급한  것도 정신없는 사람 같고, 평안 평안, 평안무사 평안무사 이 화평된 평화의  세계인데 어쩐지 여기서는 조급한 복음을 줍니다. 극단의 복음을 줍니다.

 나도 이 말씀 여기에서 증거하려고 생각지 알았어. 이 말씀을 오전예배 네 시간  전에 받기는 받았지마는 그 말씀인 줄만 알고 기도하고 나섰지 가서 설교를 내가  어떻게 할지 나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미리 생각해서 이렇게 이렇게 설교하려고  한 그것 초를 좀 잡았지마는 그건 다 소용없소. 그건 다 휴지요. 그 말은  한마디도 안 했소.

 하나님이, 사람이 이 마이크를 통해서 저 스피커에 나가는 것은 내가 한 말이  나가는 것처럼 나는 하나님의 스피커처럼, 하나님의 마이크처럼, 나는 다만  하나님이 쓰시는 기계나 지체로 쓰는 것이고 말씀하시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귀 넘어 들으면 안됩니다. 귀 넘어 듣지 맙시다. 이 말씀대로요. 틀림없습니다.

증거하고 보니 나도 확신이 생겨집니다. 여러분들 이것이 있소. 이 현실에 들은  것 받은 것 여기서 폭발이 나옵니다. 여기서 능력 나오요. 이것 현실에 이것  까뭉케 버리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진리와는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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