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성공의 기준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18일 새벽(금)

 

본문 : 요한복음 8장 31절∼37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인 사마리아 이에게도 전했지만 처음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유대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약간 있었고 믿지 않는 자들이 다대수였습니다. 그랬는데,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미 우리같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믿은 유대인들에게 했으니까 이미 믿는다는 말입니다.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말씀하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그러면 예수님 말씀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예수님 말씀을 믿으면서 말씀을 떠나서 있을 수도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하는 이 해석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하는 말로 해석하는 그 외에는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마귀란 놈은 자꾸 우리를 이리저리 삐끌어지게, 삐뚤어지게 만듭니다. 사망은 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죄라는 말은 삐뚤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우리를 자꾸 삐뚤어지게 만듭니다. 이렇게 삐뚤어지게 만들고 저렇게 삐뚤어지게 만들고 자꾸 삐뚤어지게 만드는 우리가 삐뚤어지지 안하면 죽이는 능력이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 사람이 무엇이든지 삐뚤어진 거라야 죽지 삐뚤어지지 안한 거는 죽지 안합니다. 우리가 해 놓은 일도 삐뚤어지지 안한 일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삐뚤어진 것은 인간들 생각대로 삐뚤어지고 안 삐뚤어진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 성경 말씀을 표준해서 이 말씀에 삐뚤어지면 삐뚤어진 것이요, 말씀에 맞은 것이면 영감에 맞은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에 맞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가 내 말에 거하면" 내 말대로 살면 그말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내 말 대로 행하면 어디 하나님 말씀을 한꺼번에 다 행합니까? 우리 행할 것은 현실뿐입니다.

그러면, 현실을 당한 그 현실에 해당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주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 가운데서는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요대로 하라, 또 하지 마라,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라는 것도 두 가지요, 하지 말라는 것도 또 두 가지입니다. 하라는 것 두 가지는 어떤 건고 하니 언제든지 그대로 행해야 됩니다. 언제든지 어느 시간이나 어느 장소서나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그 말씀들이 있고, 또 그것은 기회와 형편을 따라서 할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은 그 형편을 닥치지 안하면 그 말씀은 지킬 수 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이 항상 기도하라는 그 기도는, 항상 기도하는 그런 것은 언제든지 할 일입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당한 일은 우상에게 절하는 일인데 우상에게 절하는 그 일은 어느 시간이든지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말 아니오. 그 우상이 없는데 우상에게 절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 우상 문제가 자기에게 닥쳤을 때에 그때에 우상에게 절하느냐 안 하느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 말씀 가운데는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기억하고 언제든지 계속 지켜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그 사랑하라는 말씀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우리는 지켜야 됩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또 진실하라 하는 그런 말씀도 그거는 뭐 언제만 진실할 게 아니라 그저 혼자 있어도 진실하고 둘이 있어도 진실하고 밤에도 낮에도 언제든지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하지 말라 하는 그런 말씀은 거짓말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입장과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말씀이 거게 해당되는 것이지 언제든지 뭐 거짓말 안 하는 그런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내 말에 거하면" 하는 이 말은 전부를 다 지키는 그것을 말씀하심이 아니고 그때그때 항시로 지 켜야 될 말씀은 항시로 지키지만 또 때를 따라서 지켜야 될 때도 있고 또 지킬래야 지킬 수 없는 때도 있습니다. 상관이 없으니까, 거게는 상관이 없으니까 거짓말하는 그런 걸로 말하면, 거짓말을 할라면 하고 안 할라면 안 하고 하는 그런 형편을 닥쳐야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지 거짓말 할 수 있는 그런 형편을 닥치지 못했는데 무슨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하는 이 말씀은 '자기가 닥친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는 이 말씀으로 해석을 해야 확실하지 이렇게 그만 안 넓힐 걸 넓혀 버리면 거게 삐뚤어지기 쉽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뱀이 와 가지고 하와를 꾀울 때에 '참으로 참으로 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렇게 물었어.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과실 중에는 먹으라는 것도 있고 먹지 말라는 것도 있지 모든 것 다 먹지 말라는 말씀 안 했는데 마귀란 놈이 턱 거게다 말씀에 과장을 해서, 말씀을 더 보태 가지고 그런 말했어. 보태는 것이나 떼는 것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이 정확한 것이 그것이 생명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말을 지키면 그말입니다.

"내말에 거하면" 하면 내 말을 지키면, 지키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러면, '다 지키면' 하는 말이 아니고 현실에 지키면, 남은 것은 그때에 지킬 형편이 안 돼서, 지킬 만한 그런 기회가 오지 안해서 지키지 안한다 할지라도 말씀을 현실에서 지키면 모든 말씀 은 안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지킬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안 와서 안 지키는 것이지 안 지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 지키면, 현실에, 자기가 지키지 못했던 것이 과거에 있으면 그것을 다 회개를 하고, 과거에 지키지 못했던 것이 있으면 그것은 회개로 주님 앞에 사유함을 받고, 이 시간 하나님 말씀대로 지키면 그 남은 것은 다 지킨 것으로, 현재 지키는 것으로 계산이 되는 것입니다. 지키는 걸로 계산이 되는데, 그 다음에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 어길 그때부터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게 되지, 지키기를 시작하고, 지키지 안한 것을 다 회개하고 지키기로 시작해서 지키면, 말씀을 현실에서 지키면 남은 말씀은 다 지키는 데 속해 있습니다. 지키는 데 속해 있는데,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만 안하면 지킨 사람이 돼 가지고 있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회개하고 현실에 말씀을 지키면, 현실에 해당된 말씀을 지키면, 그러면 현실에 해당된 말씀은 현실에 항상 지키라는 말씀을 현실에 지키고, 또 그 현실에 특별히 해당된 말씀을 지키고 하면 그 사람은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요 현실에 지키면 다 지킨 사람이 된다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하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마귀란 놈은 요것을 자꾸 늘어트려 가지고 현실에 지키지만 요것은 현실에 지키는 게 아니라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 되니까,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 되니 하는 그런 말로 해 가지고 요 현실에다가 들여 붙이지 안하고 현실에다만 주력을 해 가지고 애를 쓰는 것을 넓혀 가지고 현실에다 주력하는 그 마음을 풀어 흐트려 가지고 이렇게 넓혀 놓으니까 사람들의 그 주력하는 그 주력이 그만 퍼져서 집중되지를 안 합니다. 그래 가지고 실패케 하기 때문에 그런 미혹을 받지 안해야 됩니다.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하는,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그말은 '고 현실에 해당된 말씀을 지키면' 요것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확정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과거에 지키지 안한 거 있으면 그런 것을 회개를 안 했으면 물론 지키지 안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과거에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새로 그 지킬 기회가 안 오면 못 지키는 것인데 그 지키지 못한 것을 해결하는 법이 있는 것은 예수님이 대형한 그 사죄의 법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형의 공로에다가 고해 가지고 '내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이런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 죄를 지었습니다.' 하는 그것을 주님 앞에 고하면 요한 1서 1장에, 사함 받는다 이랬습니다. 사함 받으니까 이제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지키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사함 받았기 때문에, 지키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현실에 지키니까 지키지 아니 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니까 다 지키는 것이 된다 그거요 요것을 똑똑히 요 구별해야 됩니다.

"내 말에 거하면" 지키면, 그러면 내 말에 거한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내 말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하는 그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행한다는 말씀인데, 다 행한다는 말씀인데 다 행하는 것은 자기가 한꺼번에 다 행한다는 말씀이 아니고 과거에 지키지 못한 것은 낱낱이 주님 앞에 고해서 사유함을 받으면 안 지킨 것을 고해서 사유함을 받았으니까 말씀 중에 안 지킨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과거에 안 지킨 것을 자기가 낱낱이 찾아 가지고 주님 앞에 '이거는 내가 잘못됐습니다.' 해서 사유함을 받았으니까, 사유함을 받았으니 말씀을 안 지켜서 정죄되어 있는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도 그 사람이 말씀을 어긴 그런 것이 없습니까? 없이 된다 말이오. 없이 된다는 요걸 똑똑히 기억해야 되요. 그냥 덩더꿍이로 하지 말고.

말씀을 어긴 것은 없는 사람이 돼 가지고, 사유함 받으면 없는 사람이 돼 가지고 현실에 그 한 말씀 딱 지켰으면 이제는 그 사람은 모든 말씀을 지키는 사람으로 돼 가지고 있습니까 안 지키는 사람으로 돼 가지고 있읍니까? 지키는 사람으로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모든 사람 가운데 지키기 시작하고 안 지킨 거는 하나도 없고 지키기 시작했으니까 다 지킨 사람되지 안했습니까? 고라면 돼요. 고라면 그 다음에 이제 다시 말씀을 범하지만 안하면 다 지키는 사람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다 말씀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지킨 사람으로 어길 수 없느냐 하면 어길 수도 있고 지킬 수도 있어. 그 다음에 뒤에 잘못하면 어기기 쉽다 그 말이오.

이래서, 내 말에 거하면 요것을 똑똑히 정의를 가져서 바로 깨닫고 바로 가져야 되지 요것은 뭐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가 얼마든지 있다 하는데, 여러분들, 옳은 것은 한 사건에 있어서, 한 말에 대해서 옳은 것이 몇 개나 있습니까? 하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밖에는 없어 그러기 때문에 "내 말에 거하면" 그 하는 요 진리를 바로 깨닫는 요 바로 깨달은 것은 둘이나 셋이나 있을 수가 없고 그 하나뿐입니던. 요걸 알아야 돼요. 요 거 알아서 그 하나뿐인 요것이 아니면 자기는 그 말을 듣지 안하고 하나뿐인 요 하나로 자기가 돌아가 가지고 하나에 속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그것이 거룩한 행위를 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거룩이 없어서 이 사람은 이렇게 해석했고 저렇게 해석했고, 한 진리에는 한 진리뿐이지 한 진리에 두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한 진리를 이런 것을 비유하고 이런 것으로 비유하고 저런 것으로 또 인용해서 표시하고 이렇게, 표시하는 그런 방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리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 여게 대한 이 진리를 이렇다 저렇다 깨닫는 것이 하나뿐인데 그 이 신학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저 신학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이 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저 목사는 저렇게 말하니까 아,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그걸 머리에 다 잡아 넣어서 이 사람은 이라고 저 사람은 저라는데 이것도 맞고 저 것도 맞다 하는 그것이 벌써 썩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 교리에 대해서 이 교파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저 교파는 저렇게 정의를 내릴 때에 이것도 다 정통이고 저것도 다 정통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은, 그것이 요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그 말이 아니오 그거 그것도 벌써 귀신이 들어 왔소. 마귀가 들어 와서 하는 말이라 그 사람이 백의 99는 다 맞고 하나가 틀렸다고 해 가지고 하나 틀린 것 가지고 이단이라 이렇게 하기 쉽기 때문에 그것은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그게 전체적으로 말하면 정통파요, 또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전체적으로 보면 정통파라 하는 그말이지요 교리는 요렇게 해석해도 정통이요 조렇게 해석해도 정통이라 그말 아닙니다. 그거는 둘 중에 어느 게 하나는 틀렸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틀렸소. 옳은 것이 둘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돼요. 그게 뭐이냐? 거룩을 가진 사람이오 그게 없는 사람은 거룩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 "내 말에 거하면" 말씀을 지키면, 과거에 지키지 못한 그것은 다 냅 두고 요 시간에 요 말씀만 지키면 하는 말이 아니고 과거에 지키지 못한 것을 다 주님 앞에 잘못된 줄 알고 고해서 사함받고, 사함받으니까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지금 어겨서 정죄받아 가지고 있는 게 없다 말이오. 정죄받아 가지고 있는 걸 예수님에게 고해서 예수님의 대형으로 정죄에 대한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사죄받았으니까 지금 정죄받은 것은 없다 그 말이오. 정죄받은 거는 없고 요 시간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그러면 다 지킨 것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다 지킨 게 돼요.

지킨 게 되는데 '이 말씀 하나 지켜 가지고 되느냐? 이것도 지키고 저것도 지키고 다 지켜야 되지.' 이러니까, 회개하고, 과거에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요 시간 말씀을 지키면, 모든 걸 다 지킨 게 됐다 하는 요것을 믿지 못하게 요 마귀란 놈이 자꾸 유혹을 준다 말이오. 다 과거를 잘못했 던 것을 자기가 아는 대로 주님 앞에 고하고, 모르는 거는 냅두고 자기가 아는 대로 고하면, 아는 대로 고하면 아는 대로 사함받으니까 그 사람은 자기 주관대로, 자기 아는 대로는 다 지킨 사람이 되고 그 어긴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 그 말이오. 그 끝은 사람의 지식에 따라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대로 지키는 그것을 가리켜서 양심 생활한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그 말은 자기가 아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못된 것을 고치고 말씀대로 행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착한 양심으로 사는 사람이라 이랬다 말이오. 이 사람은 착한 양심인데 저 사람은 착한 양심이 안 돼. 저 사람은 그보다 많이 아니까 이 사람은 나는 이제 잘못한 걸 다 주님 앞에 사함받았다 이래 생각하는데 저 사람이 볼 때에는 지금 여러 수십 가지를 그 사람이 몰라 그렇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의가 뭐이 의냐? 충성이 의라 이랬습니다. 충성이 의라. 인간의 실력을 따라서 실력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충성하는 것은 충성이지만 그까짓 것 힘 없는 그런 것이 충성해 봤자 그까짓 것 뿌스러기밖에 안 되는 것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면, 충성의 양을, 충성의 도수, 충성의 양의 가치, 질의 가치 그것을 따지지 안하고 충성의 양의 가치나 질의 가치 그걸, 그 사실에 충성된, 사건에 자체에 그 가치를 가지고 따지지 안하고, 따지지 안하고 그 사람이 무능하든지 유능하든지 그 사람으로서의 남은 것 없이 다 한 그것을 따집니다. 다 한 걸 따진다 말이오 예를 들면, 그거 비유가 잘 될란지. 이 사람은 '네가 저게 가서 네 힘껏 쌀을 지고 오너라. 내가 그러면 여기서 상금을 주겠다.' 했는데 한 사람은 쌀을 한 가마니를 지고 왔습니다. 한 사람은 쌀을 한 되를 가지고 왔습니다. 한 되 가지고 온 사람애게는 상을 주고 한 가마니를 지고 온 사람에게는 상을 안 줍니다. 그거 불공평 아닙니까? '왜 안 줍니까?' 이라니까 '이 사람은 자기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자기 있는 것을 다해서 쌀을 가져 온 것이고, 한 되나 양은 적으나 가져 온 것이고 너는 세 가마니는 지고을 건데 너는 한 가마니밖에 안 가져 왔기 때문에 너는 지금 충성이 되지 못했다. 있는 것을 다 들여서 나를, 내 말을 복종한 것이 못 됐기 때문에 너는 상급이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해요 그러면, 자, 예수 믿는 데에 실력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그 불평과 불행을 가졌습니까 안 가졌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이 구원 이루는 데에 자기 그 실력이 많고 적은 사람에게 대해서 그 적은 사람이 불평을 가질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불평을 가질 수 있습니까, 많고 적고 불평을 가질 수 없습니까? 어떻습니까? 가질 수 없습니다. 혹 가질라면 랄 은 사람이 유혹받기 쉽다 말이오.

많은 사람은 '아, 다른 사람보다 저는 많이 했기 때문에 이만하면 되지 안했느냐?' 이렇지만 아, 그거 있는 대로 다 해야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다른 사람보고 그만 우쭐해 가지고 '이만해도 됐다' 이렇기 쉽고, 작은 사람은 '다른 사람 모두 저렇게 하는데 나는 이거 이래 봐야 이거 뭐 하겠느뇨?' 항상 있는 전심 전력 기울여 가지고 주의 말씀 순종해도 자기는 무익한 종이요 부족한 종인 줄 알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실상은 복이 있다 그거요 알아 듣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내 말에 거하면" 요것은, 지키는 양은 자기가 성경 지식을 아는 대로, 아는 대로 지키지 못한 것을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받았으면 많이 아는 사람이 고해서 사함받은 사람이나 적게 아는 사람이 고해서 사함받음이나 꼭 같습니다. 사함받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사함받고 난 다음에는, 이제 지키지 못한 것 다 사함받고 난 다음에는 지킬 것은 어제 있습니까? 현실에 있다 말이오.

현실에 있는 그 현실에 해당된 것은 두 가지가 해당되는데 항상 지켜야 될 말씀은 언제든지 이 현실에도 저 현실에도 항상 현실에는 해당되어 있는 것이고 특별히 그 현실에 지켜 야 될 특수한 그런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 부분은 그 시간에 해당된 것만 지키면 다 지키는 것이 된다 그거요.

요말도 왜 자꾸 요렇게 되새겨서 자꾸 말하고 있는고 하니 말씀을, 잘 못된 것을 고함받되 자기가 고함받고 나서 그 다음에 또 성경을 읽으니까 '아, 이거 또 잘못했구나.' 잘못한 게 새로 나오고, 또 부흥회 가니까 새로 나오고, 이러니까 새로 나오니 사람이, 암만 고해 봤자 뭐 끝이 없는데, 끝이 없는데 그것 자기가 다 사함받는다는 말이 어디 말이 그? 그 사함받는다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게 또 마귀란 놈이 꾀운 다 말이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그것 고해서 사함받으면 된다 그거 요 그러면 또 무슨 미혹이 또 들어오느냐 하면 그러니까, 이거 자꾸 성경 말씀을 배워서 아는 것이 재화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만 배워 하나만 받고 하나만 들었으면 그 하나만 사함받으면 되는 것인데 이제 많이 아니까 많이 사함받아야 되니, 그 모르나 아나, 몰라서 적게 하나님에게 고해서 사함받으나 많이 알아서 많이 고해서 사함받으나 꼭 같은 것이니까 그거는 많이 안 사람이 불행스럽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은 많이 아는 것이 도리어 불행스럽다. 마귀란 놈이 또 요렇게 꼭닥스럽게 사람을 유혹시킬 수도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께서 모르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이나 자기의 아는 대로 다 고해, 사함 받을라고 일차로 그렇게 대우해 주는 것은 그거는 뭐이냐? 또 그 안에 조건이 있다 말이오. 조건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 준 일이 있고, 그에게 가르쳐 준 일이 있고, 그에게 읽힌 일이 있다 말이오 성경 말씀을 읽도록 해서 읽힌 일이 있고, 읽어서 알도록 한 일이 있고, 또 가르쳐 줘서 또 들어서 아는 일이 있다 말이오.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 들은 자들은 숫자가 많습니다. '듣는 자들이 지켜 행하면 복 있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 그러면 아는 대로 자기가 사함받는데, 아는 대로라 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들려 주고, 또 그에게 읽게 해 주고 이렇게 했는데, 읽게 해 줬는데 읽은 것을 자기가 그만 잊어버렸든지 들은 것을 잊어버렸든지 했으면 요 아는 대로 하는 그 말은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대로라는 말이겠습니까, 기억하고 있는 대로 회개하면 된다는 말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알려 주신 그대로의 것을 고해서 사함받아야 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알 만치, 하나님이 알 만치 가르쳐 렀고, 하나님이 알 만치 읽도록 해 줬는데 자기가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주관대로 다 버리고 '이거 알면 도로 손해다' 하면서 열 가지를 가르쳐 렀는데 다 버려 버리고 한 가지만 알고 있으면 '나는 한 가지밖에 모르기 때문에 한 가지만 나는 회개하면 된다' 그래 될 건지, 주님이 알 수 있도록, 그에게 알 만치 한 번 가르겨. 알았든지 열 번 가르쳐 알았든지 그에게 알 만치 가르쳤다 말이오. 제가 알라면 알 수 있는데 하나님 말씀을 귀넘어 듣고 등한히 들어서 몰랐고 성경을 보라 했는데, 성경을 주님이 보라고 하는데 보지 안해서 몰랐지 그 사람이 주님이 보라 하는 대로 봤고 거게 다가서 들은 데다가 마음을 쓰고 보는 데다가 마음을 썼으면 알 수 있는 그것을 제가 마음을 쓰지 안했기 때문에 모르는 그 양 만침만 회개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듣게 하시고 읽게 하셔 가지고 알 만치 하나님이 해 주셔서 그 사람만 알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면 넉넉히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을 무시해서 두 가지 알 것을 한 가지밖에 모르는 그 사람 이 한 가지만 고해서 사함받으면 된다는 말입니까, 어떤 말입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그것, 그 아는 대로겠습니까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읽게 해서 알도록 해 주셨는데 저만 알라고만 했으면 넉넉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이 알게 해 주셔서 넉넉히 제가 힘을 써서 알라고 하면 알 수 있는 그 양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자기가 그렇게 그 둥한히 하고 자기에게 남아 있는 아는 양을 말하겠습니까, 어느 양을 말하겠습니까? 잘못된 것을 사함받는 것은 어느 양을 말하겠습니까? 자기가 알라, 몇 알 수 있었던 그 양을 말합니까, 다 무시해 버려 버리고 안 할라고 애를 써, 알기 싫어 안 할라고 애를 써 가지고 자기에게 남아 있는 아는 것, 남아 있는 아는 것 그걸 말하겠습니까? 자 남아 있는 아는 그것을 말하는 것은 일호, 또 자기가 알라고 힘을 썼으면 하나님이 알려 줘 서 명백히 알만한 그 아는 그 양을 가르켜서 말하는 것은 이호, 그러면 자, 아는 대로 자기가 회개한다는 것은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일호라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무도 없고 이호라는 사람들 손들어 보십시오? 네 이호입니다. 이호. 요것을 자꾸 요래 구별해서 하라 그 말이오.

또, 그 하나 말할라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알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총명이 그런 사람이고 지혜가 그런 사람이고 이미 그 사람이 모든 기존 지식들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그 보조 지식이 없다 말이오. 이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는 데에 보조 지식인데, 외나 참지식이 아니고 그저는 지식을 돕는 보조 역할하는, 원 지식이 아니고 보조 지식인데, 그 보조 지식이 원 지식하고 바꿔 버려서 그걸 원 지식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은 보조 지식으로 하면 그 지식이 우상이 되고 음행의 포도주가 된다 그거야.

그러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알려 준 것이 각각 다른데 제일 그 사람이 명철하고 아주 똑똑하고 보조 지식도 많이 가시고 있는 그런, 제일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을 표준해서 그 사람과 같이 다 알고, 그 사람과같이 다 알고 그것을, 삐뚤어진 걸 주님 앞에 고해야 된다. 그러면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의 지식을 표준해 가지고 아는 대로 회개해서 사함을 받아라는 말인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자기대로의 아는 것을 표준해서 회개하라고 하는 말씀인지, 자기대로의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기대로의 이제 아는 것을 말한 것인지, 최고로 아는 사람을 표준해서 그 사람만치 다 알아야 되고 그 사람만침 그 잘못 된 것을 고해서 사함받아야 된다. 그러면 아는 대로라 하는 그 아는 대로라 하는 것이 제일 많이 안 사람을 표준하는 것인지, 또 자기의 자격대로 그 사람의 자격대로 아는 그것을 표준하는 말인지, 그러면 제일 많이 아는 사람 그 사람을 표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없고, 그러면 자기대로의 것으로 표준한 것으로 아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네, 요거 똑똑히 구별해요. 자기대로의 아는 것을 표준한 것입니다.

그러면, 많이 아는 사람은 많이 회개해야 되고, 적게 아는 사람은 적게 회개 해야 되니까 그것이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겠습니다. 그거 불공평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뭐이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듣는 그것이 제딴에는 제가 듣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만 우리의 영을 중생시킨 피와 성령과 진리가, 중생시킨 영으로 더불어, 그라니까 뭣입니까? 영으로 더불어 하니까 영하고 합작이 됐는데 몇입니까, 그라면?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몇인 지? 이라는 사람도 있고 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 어느 게 뭐 틀렸는지 똑똑히 모르기는 모르지만 물어 보면 알 겁니다. 내가 묻는 것은 묻는 대로 정답은 이 넷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와 또 뭐입니까? 중 생된 영이 넷. 합작을 해 가지고 우리에게 듣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제 주관으로 듣는 게 아니야. 이 넷이 합작해 가지고 자기에게 들을 수 있게 했어. 이 넷이 합작해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의 발걸음을 움직여서 오다 가다 보면 우연히 갔는데 그 말씀을 듣게 됐습니다. 그것은 저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벌써 지극히 큰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피로 말미암은 성령의 능력과 피로 말미암은 진리의 능력, 요것도 말미암았다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피가 아니면 성령이 우리에게 올 수 도 없고 진리가 우리에게 올 수 없습니다. 피로 말미 암은 성령과 또 진리 이 셋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영, 이 넷이 합작해 가지고 우리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오다 가다가 보니까 그 집회에 참석해 가지고 그만 변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발걸음을 주장하시고, 또 발걸음을 주장해서 그리 가게 하시고, 또 우리 마음을 움직여 가지고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가지고 역사해서 또 그 말씀을 듣게 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는 우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듣고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말지 이렇지만 우리가 듣게 되는 데에는 벌써 그 안에 이 네 가지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 나로 하여금 말씀을 듣게 하고, '내가 책상 위에 있는 걸 척 보면 보지, 척 펴 보면 보지.'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펴 보는 것이 이 세 가지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 마음을 움직여서, 애를 먹이는데 우리 마음을 움직여 가지고 성경 볼 마음을 겨우 일으켜 가지고 말씀을 또 볼 마음이 있지만 손이 또 안 듣습니다. 또 손을 움직여 가지고 그래 손이 이래 척 열어 가지고, 또 읽는데 읽으면서도 또 읽는데 잠이 오는 놈을 잠을 못 오도록 하고 또 읽으면서 마귀란 놈은 읽으니까, 성경을 읽으니까 저 딴걸 생각케 하고 자꾸 딴게 들어옵니다. 딴것 생각하다 보니까 성구를 줄줄 읽기는 읽지만 실상 속에는 모르겠다 말이오 그놈이 마귀입니다. 다 그게 마귀요. 다른 게 아니고. 그거 그냥 내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 마귀란 놈입니다. 마귀가 못 있도록 할 때에 성령님이 이걸 쫓아낼라고 애를 쓰지만 내가 그놈을 자꾸 영접하니까 이길 도리가 없다 말이오.

피와 성령과 진리는 참 지극히 큰 하늘의 있는, 피도 하늘의 있는 거와 땅에 있는 것을 다 권세를 받았는데 이거 다 전지 전능 이 셋이 다 전지 전능인데, 전지 전능이요 이 중생된 영도 굉장한 힘을, 이 전지 전능을 다 연결해 가지고 받은 것인데 이렇게 힘이 있지만 못 하는 것 있습니다. 뭐 못 하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자유,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이 자유를 가지고, 자유를 가지고 영접하지 안하고 반대할 때는 못 한다 말이오. '아, 나는 안 할랍니다.' 이라면 전능자 도 꼼짝 못 하고 전지자도 꼼짝을 못 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주관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라 하는 그것은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을 부인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힘들여 가지고 우리를 알렸습니다. 알렸기 때문에 많이 안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 사람 있습니다. 많이 안 사람은 하나님께서 많이 알도록 해 주셨고 이 사람은 알라고 애를 쓰고 전심 전력을 알라고 다 들여서 애를 썼는데 조금밖에 몰랐습니다. 조금밖에 모른 사람은 하나님께서 조금밖에 모르도록 그렇게 역사해 가지고 조금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거요. 알아듣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많이 주어서 많이 가지게 한 사람은 많이 받아 많이 가졌고 적게 받아 적게 가지게 한 사람은 적게 받아서 적게 가졌으니 적게 준 이가 적게 주셨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신 그분에게, 많고 적은 것은 주신 그분의 주권에 따라서 이와같이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사람에게 지우지 안하고, 적어도 '저 사람은 많이 주고 나는 왜 이래 줍니까? '괜찮아 적어도 그것만 가지고 다하면 저 많은 걸 가지고 하는 사람이나 꼭 같은 상급이야' 그래서 금 닷 냥쭝이나 두 냥쭝이나 거게 대해서 충성한 사람은 같은 대우를 해 줬다 그거요.

이러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말을 지키면, 하는 그것을 자기가 똑똑히 새겨서 마귀의 유혹을 다 버려야 돼요. 마귀 고놈이 자꾸 유혹을 하는데 마귀 유혹을 버려야 되지, 우리가 간단하게 해 가지고서 그만 이걸 쉽게 말하면 다 거짓말되고 만다 말이오. 그러니까, 내 말을 지키면 현재 그 말씀만 지키기만 하면 그 배후에 뭐 오만 게 많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옷자락에다가 거룩한 고기를 옷자락에 싸 가지고 이 옷자락만 어디든지 대이면 다 깨꿋해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틀렸다. 그것만 거룩하지 옷자락 대였다고 다 깨끗한 게 아니라 말이오 죄는 또 다릅니다. 죄는 송장 만진 손 가지고 만지면 뭐이든지 다 더러워져 버려요. 더러워지는 것은 하나 더러우면 전체가 더러워지고 깨끗한 것은 하나 깨끗하다고 전체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깨끗한 그것만 깨끗해진다 말이오.

그러기에, 내 백성과 이 나라들이 이래 가지고 다 실패한다 하는 것을 학개서도 말하고 다른 데도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이제 주님의 말씀을 지켰는데 바로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그러면 바로 지킨 것은, 과거에 잘못된 것은 회개를 바로 하고 이제 현실에 지켜야 되는 것이니까 요 두 가지니까 바로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그것을 조사해 봐야 되는데 사람들마다 '나는 다 지켰는데, 지켰는데' 다 이라는데 이제, 지켰는가 안 지켰는가 하는 것 그것은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 그러면, 우리의 행동은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 안에, "내 말에 거하면" 주님의 말씀에 거했는지 거하지 안했는지 하는 것을 뭘로서 알 수 있습니까? OOO선생, 뭘로 서 알 수 있지? 예? 뭐 머물머물 하면 맞았다 할까 싶어서 똑똑히 말해 봐요. 틀리면 틀린 줄 알아야지. 뭐라 하노? 뭐 말하는 것같이 뭔 이라면, 그라면 그만 떡 얼렁붙여 합격 줄 줄 알아도 합격을 안 줘 꼭 내가 알려야 돼 OOO 저거는 내가, 저 내, 장형의 손녀라. 장형의 손녀인데 똑똑히 말해 봐. 알아 봐. 모르면 모른다 해야지.

예? 그 말씀 행했는지 안 행했는지 뭘 보고 알아? 그거 물었는데 뭘 보고 알아, 그래 알거든 알고 모르거든 모른다 해. 예? 뭘? 저래 예수를 믿는다 말이오.

빈정빈정 빈적거려 나가기 때문에.

나는 요새 이거 참 우리 교회가, 보면 이 전부 거짓 부리라. 어제 아침에도 내가 차를 타고 가는데 가기 전에 OOO집사님에게 내가 엊저녁에 말해, 그 지난 밤에 말했던가? '내가 내일은 자가용 타고 가지 안하고, 양산동에 가서 할 일이 좀 많기 때문에 인부들을 데리고 가니까, 이제 여러 사람들이 갈 터이니까 자가용으로 가지 안하고 봉고차, 다른 차 봉고 차를 타고 가도록 할 터이니까 그것을 OOO 집사님한테 전해라' 이랬다 말이오 이랬는데, 떡 아침에 나가니까 OO집사는 기도하고 안 나왔어. 그래 '왜 안 나왔느냐? 내가 말하지 안해도 왜 안 나왔느냐?' '아, 목사님이 다른 사람이, 오늘은 운전해 간다고 해 가지고 그렇게 말을 들어서 그래 제가 안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른 차' '다른 차 그 이거 다르지 않아? 그랬는데 또 OO집사한테 또 물었다. '왜 너는 그렇게 했느냐?' '내가 똑똑히 자가용으로 않고 다른 차로 간다 했지 다른 사람으로 운전해 가지고 간다 소리는 안 했는대요' 또 이라니까, 또 이쪽에서는 말하기를 '나한테 똑똑히 전화로 다른 사람이라고 그랬지 다른 차라고 말하지 안했는데' 이래 가지고 둘이 이 판결 못.

봐 그만 어리멍덩하이 이래 가지고 잡아 넘겨 버리는 거라. 그래 내가 그걸 요걸 밝혀 야 된다 하는데, 어제 내가 그절 말하지 안했는데 지금 이 설교 석상에 내가 말할라고 하지 안했어. 이러니까, OOO집사가 거짓말을 했든지 OOO집사가 거짓말을 했든지 거짓말 하는 것은 뭐의 자식이지? 거짓말하는 거는 뭐의 자식이라? 왜 똑똑히 못 해? 뭐이지? 마귀의 자식 마귀는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라 했거든, 마귀 자식이라 말이오. 마귀의 자식이 되는데 이거 모르고 그만 이래 말하고 저래 말하고 얼렁뚱땅 이래 버리면 그만, 그만, 되는 줄로 알고 있다 말이오. 그래 OO집사가 마귀 자식이 됐든지 OOO집사가 마귀 자식이 됐든지 둘 중에 마귀 자식이 하나 되기는 됐다 그거야. 되기는 됐으니까 그걸 밝혀서 해야 그거 고쳐질 건데 그만 머뭇머뭇하고 나면, 그라면 그만, 그 다음에 뭐 틀렸거나 말았거나 냅둬 버리니까 정학이라 하는 게 전혀 없어.

내가 다 적어 놨는데 저 먼저 8윌 18일 주일인가 그날 주일날 저 봉고차가 두 대가 있었다 한 대도 없었다. 이제 두 대 있었다. 한 대도 없었다 주일 오전 예배 때에 두 대가 있어서 불편했다. 한 대도 없었다. 이게 온 교인들이 시비해 가지고 시비거리가 여러 달까지, 아직까지 그걸 없애지 않아요. 다 적어 놓고 있어요.

이래도, 이러니까 없었으면 없고 있으면 있지 둘이, 없고 있고, 그럴 리는 없다 말이오. 없다 말이 맞든지 있다 말이 맞든지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이라 말이오.

모르고 하는 소리라 하나는 마귀 자식이요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일 거라 말이오.

이러는데, 뭐이든지 다 그래. 그만 이래 가지고 선뜻 무슨 말이든지 말해 버리고 '그 시간만 지나가면 그만 아니가?' 이 버르장이가 들어 가지고 이라니까 진실이라 하는 것이 하나도 자라지를 못 해요. 이러니까 도무지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말에 대해서 정확이, 말에 대해서 정확이 없는 그 인간이 무슨 행동에 정확이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전부 마귀 자식이라. 이러니까, 두 분이 그걸 밝히십시오.

OO집사가 마귀 자식이든지 OO씨가 마귀 자식이든지 그래 그걸 밝혀 가지고, 싸우지는 말고, 성내면 더 마귀 자식, 마귀 자식, 마귀의 이제 자식만 둬 게 아니라 마귀의 손자까지 다 돼 버려요. 이러니까, 싸우지는 말고 이제 마귀 고놈하고 싸우지, 마귀 고놈하고 싸우지 사람하고는 싸우지 말라 말이오. 이 거짓 말 하게 하는 고놈하고 싸워 가지고 고놈을 기어코 이겨내야 될 거라 그 말이오 범사가 그래요. 그렇기에, 우리는 뭣이든지 흐리면 못 씁니다.

어떤 사람은 보면 뭘 이거 뭐 사러 보내, 뭐 사러 돈을 보냅니다. 아, 뭐 사러 간다고 돈 보냈습니다. 보내면 그거 사러 보냈으면 그것만 사 가지고 오지 그 돈 있다고 딴거 사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돈만 주면 그 돈 없기까지 뭐 사가지고 옵니다. 자, 뭐 사라고 돈 없으면 그것만 사 가지고 와야 되겠소, 그거 외에 제가 돈 있다고 아, 요거 보니까 사겠다고 그래 그 돈 가지고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그 진실한 사람이요, 거짓부리의 사람이요? 자,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들어 보십시오. 거짓부리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거짓부리 사람이라. 이게 죄라. 거기서 사람들이 다 망하고 만 거라.

또, 어떤 사람은 심부름 보냈으면 그거 가지고 그저 백 원 짜리 사러 보내는데 천 원짜리를 줘도 만 원짜리를 줘도 그만 심부름 했으면 그거 사다 주는데 그 돈 다라. 거스름이 없어, 요거는 얼마 얼마 줬는데 얼마가 남았습니다. 가져 다 주는 법이 없어. 그 까짓게 무슨 사람이라. 내가 그럴 때 딱 말하면 삐꿀거고 지금 말하는데 고까짓 그런 게 무슨 사람이라? 그거 사람 축에 못 가. 그것이 모든 것이 흐리멍텅하게 그래 할 터이니까 그게 무슨 사람이라? 아, 갔다 와 가지고 '요 가는데 차비가 얼마 들고 무엇이 얼마 얼마 그러니까 얼마가 남았습니다.' 단 일 원이 남아도 딱 계산대 가지고 딱 갚고. 아, 지금 모자라면 '남은 거야 갖다 주지만 모자라는 거야 달라 할 수 있느냐?' 자, 남은 거는 갖다 주지만 모자라는 거는 '뭐 그걸 모자란다고 십 원 모자라는 걸 얼마 더 주십시요' 이렇게 할 수 있느냐? 그러면 십 원 달라 할 건데 안 달라하고 그만 그거 달라 할 수 없다 하는 그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요 거짓 부리요? 똑똑히 말해. 진실한 사람이요 거짓부리요? 거짓부리면 뭐의 새끼지? 마귀 새끼라. 그런 줄 알아야 돼. 적으나 크나 다 그런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아, 예, 요래 요래 요렇고 그러니까' 그뭐 주저주저할 게 없어. 왜? 그까짓 것 돈 십 원이 얼마나 커서 자기가 마귀 자식이 되겠어? 이거 진리, 진리가 크기 때문에 진리, 진실이나 진리나 하나 아니요? 요 진실을 가지기 위해서 하는 거라. 자기가 진실을 버리면 마귀 자식이라 말이오. 진실을 버리지 안 했기 때문에 이거는 생사보다도 생명보다도 큰 문제라, 이런 줄 알고 '아, 요렇고 요렇고 요라니까 돈이 십 원이 모자랐습니다.' 그래 요래 말 하면, 그라면, 거기서 줄 때에, 줄 때에 '아, 그만 냅두이소, 그거는 뭐 제가 대지요.' 이렇게 말해서 안 받을 수도 있고 또, 안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안 받으면 그 사람은 마귀 자식이요 그 사람은 그 정죄를 받지 안하는 사람이요? 예? 그 정죄받지 안해. 알리기는 알렸는데 그 사람이 주는데 그거는 내가 그 좀 협조하고 안 받는다 그라니까 그것은 마귀 자식은 아니라 말이오 그거 거짓 부리는 아니라. 그러나, 그럴 때 십 원을 안 주면 안 주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진실이요 거짓 부리요? 예? 거짓 부리라. 남에게 착취하는 사람이라. 아, 그 사람이 원해서 처음에 바치는 거는 그랬지만 그 사람이 원치 않는데 가서 심부름 시켜 가지고 강제로 단 십 원을 시켰기 때문에 그게 착취라 말이오. 작아도 그게 착취라 말이오 그거 이해가 돼요? 이해가 돼요? 그래.

그러니까, '지극히 작은 데에 충성된 자가 큰 데도 충성되다' 그 말씀이 그 말씀을 내가 자주 하는데 그것은 충성의,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되면 큰 데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데 불의한 자는 큰 데도 불의하다 그 말씀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그 두 성구를 딱 말씀한 것은 주님은 우리 인간에게 대해서, 의와 불의가 뭐이 '의와 불의냐? 의와 불의는 충성을 가지고 의와 불의라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일해 놓은 일이 잘되고 못 된, 일의 가치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의 충성이면 의요, 충성이면 의라. 그 사람이, 있는 힘 다해 가지고 한 개밖에 안 했으면 그게 의요, 이 사람은 반 힘 들여 가지고 백 개를 해도 그거는 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쁘고 즐겁다 말이오. 기쁘고 즐거운 것은 뭐이냐? 불만 불평이 없다 말이오. 하후하박이 없다 그 말이오. 왜? 왜 그러냐? 왜 그래 하시느냐? 당신이 적게 줘서 적게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금을 두 냥쭝 준 사람은 적게 줬기 때문에 두 냥쭝 가지고 넉 냥쭝 했으면 족한 것이지, 넉 냥쭝을 했지만 닷 냥쭝 받은 사람 하나도 안 남겨도 그 사람이 한 냥쭝이 많습니다. 고걸 우리가 깨달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자, 그러면 목회한 사람은, 목회한 사람은 그 사람이 목회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칭찬을 받을란지 못 받을란지 하는 그것은 교인수가 많고 적은 데에 속했습니까, 많은 데 많은 데 속했습니까, 많아서 상급 받습니까, 적어야 상급받습니까? 뭐 어떻게 상급받습니까? 많아야 상급받습니까, 적어야 상급받습니까, '많고 적고 상관 없다. 그 사람이 충성을 했나 안 했나 거게 상급은 좌우된다' 맞습니까? 맞아요? 양성원 학생들 다 맞아요? 예? 맞아요. 그러기 때문에, 자, 그 충성 상급을 받을란지 안 받을란지 하는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습니까 자기가 알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소 없소? 몰라. 다른 사람은 몰라. 다른 사람은 껍데기 나타난 것만 알지 속으로, 충성은 제가 저만 알지 다른 사람이야 아는 거는 껍데기만 알지 속에 알맹이는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아, 다른 사람은 '백 목사는 목회를 잘해서 목회 성공했다 소리를, 그런 소리를 한 소리를 내가 더러 들었어. 목회 성공을 했다. 그러니까 목회하는 것을 무엇을 가르쳐 달라 하는데 목회 성공 했으니까, 교인 수가 좀 많으니까 상급받을 줄 알지만 그거 가지고 상급되는 것 아니오 다만 주님은, 내가 너에게 준 게 있으니까, 준 양이 있으니까 준 양이 있으니 양을 남기지 안하고 다 했는지 양의 십분지 일을 했는지 그게 문제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받은 내가 알고, 한 내가 알기 때문에 나만 알지 다른 사람은 내 상급받고 벌받을 거는 모른다 그 말이오 충성으로 결정된다 말이지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또 하겠는데,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니까 참제자와 거짓제자가 있지 앉습니까? 거짓 제자는 뭐이 거짓 제자냐 하면 예수님 믿는다 하는 이름 가진 사람,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 교회에 장로 목사 뭐 집사 이런, 이런 사람, 그 사람, 참제자라 말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을 참 닮았다 그 말이오 예수님을 참 닮았다 그 말이오 예수님의 형상을 자기가 가졌다 그 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성화됐다 그말입니다. 성화된 양은 많이 된 사람 적게 된 사람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대로 되지만 주님이 주신 성화가 된다 그말입니다. "참 내 제자가 되고" 성화가 되고, 제자가 된다 말은 성화가 되고, 예수님의, 형상이 되고, 예수님의 지체가 되고 그 말이오 예수님의 지체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가 진리를 행해 가지고 행함으로 내가 성화되고, 성화되고 난 다음에 안 진리는, 그 진리는 나를 자유케 합니다.

그 다음에 5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요렇게, 자유한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하는 그 말은, 진리가 자유케 하는 것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과 꼭 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를 지키면 내가 성화가 되고, 성화되고 난 다음에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러연 진리는 내가 행함으로 내가 성화되고, 성화됨으로 다시 진리를 알게 된다. 진리를 알게 된다. 진리는 들어서 아는 것, 내가 지켜 행함으로 성화되어 가지고 알게 되는 것이 다르다. 성화됨으로서 알게 되는 그 진리는 자기에게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게 하는 그런 자기의 생명이 돼 버렸다. 자기의 능력이 돼버렸다 하는 말을 가르칩니다. 요다음에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렇게 구별되는데 말씀 무슨 말인지 자꾸 한 말 또 한다 한 말 또 한, 한 말 또 한 말이 아니라. 이러니까, 말귀도 못 알아 듣는 사람이 어떻게 그가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말귀를 알아 들을라고 하면 오래 동안 애를 쓰면 알아 듣는 것이니까 못 알아 들으면 제가 알아 들을라고 애를 써야 될 건데 도무지 애를 쓰지 안하니까 안 된다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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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3 목회는 실천신학/ 출애굽기 20장 6절/ 850702화새 선지자 2015.10.30
4142 목회-두 가지를 두고 힘쓸 것/ 베드로후서 1장 9절/ 850322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0
4141 목회의 실제/ 요한복음 11장 40절-44절/ 1984. 4. 3. 교역자회 선지자 2015.10.30
4140 목회의 힘 세 가지/ 베드로후서 1장 1절-2절/ 860524토새 선지자 2015.10.30
4139 목회자-설교/ 고린도전서 10장 11절-13절/ 840926수새 선지자 2015.10.30
4138 목회자의 소원/ 창세기 15장 1절-11절/ 810717금야 선지자 2015.10.30
4137 목회자의 실력/ 사무엘상 3장 19절-4장 2절/ 890313양성원개강 선지자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