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믿음

 

1981. 2. 16. 새벽 (월)

 

본문:베드로후서 1장 1절∼9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죄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편집한 자료임)  어제 간추려 준 말씀만 해도 여기 있는 뜻은 깨닫기가 쉽습니다. 또 다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뚜껑만 떼 주면 사람들이 힘만 쓰면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뚜껑 떼기가 힘이 들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베드로는" 종이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자기는 완전히 주님의 것이 되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큰 대가를  내심으로 된 것을 아는 것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사망의 것이 생명의 것이 됐고,  마귀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됐고, 저주의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것이 된 것이 큰  대가를 내심을 인해서 된 것을 자기가 깨달았기 때문에 종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렇게 쉽게 헐하게 쓰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정확무오하게 성신의 감동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종류나 또 그 권위나 진실이 추호도 부족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종이라고 표현한 이것도 베드로 자신이 종이라고 말한 게 아니고  성령님께서 종이라고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종이 되지 못한 자를 종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법적으로는 다 종이 되어 있지마는 실은 종이 아니고 항상 자기가  주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자기의 주인이 되지  못한 이런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에 대해서 항상 위반되고 있는  우리로 살기 쉽습니다.

 그때 그 지방에서 종이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에 대해서 종이라고 씁니다.

하나는 그 사람의 기구, 그 사람이 쓰는 기구를 종이라고 표현하고, 또 하나는 그  사람의 짐승을 나타냅니다. 그 사람의 소나 말이나 개나 이런 것은 그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주인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잡아먹으려면 잡아먹고, 팔려면  팔고, 부리려면 부리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있는 종, 생명이 없는 종,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지만 꼭 도구와 짐승과 같이 주인에게 매여서 주인이 팔려면 팔고,  죽이려면 죽이고, 두려면 두고 자유할 수 있는 이런 관계 가진 사람을 가리켜서  종이라 그렇게 그 지방에서는 씁니다.

 이래서, 종은 세 가지 종류입니다. 말하는 종, 말은 못 하지마는 생명은 가지고  있는 종, 말도 못하고 생명도 없고 주인에게 쓰여지기만 할 수 있는 기계들, 호미,  괭이, 톱, 칼 이런 것은 다 주인의 종입니다. 주인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종 됐을 때는 주인이 그 종을 팔아서 써야 될 때에는 종을 끌고 나가서  시장에 가서 팝니다. 아무 때나 팔고 싶으면 팔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종은  암만 죽여도 주인에게는 정죄가 되지를 않습니다.

 또 종을 팔러 갔는데 아이를 낳아서, 사려는 사람이 '이것 새끼가 따라서  적합하지 않다.' 그러면 '그러면 새끼 그것은 떼고 팔 터이니까 새끼를 떼고 사  가라.' 그래서 새끼를 떼 가지고, 새끼는 아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떼  가지고 죽여도 그만입니다.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 둘을 합해서 부부끼리 재미있게 살아도 주인이 쓸모 있으면 그 남자나  여자나 자기가 팔아야 될 때는 데리고 가서 팝니다. 끌고 가서 팝니다. 요셉도  시장에서 팔려고 내놨을 때에 보디발이라는 사람이 와서 보고 쓸모 있다 싶어서  종으로 사 갔던 것입니다.

 이런 풍속이 있고 이런 지방성 있는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이렇게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서 예수님의 것이 되었으니 이제는  예수님이 살리든지 죽이든지 어떤 데 어떻게 쓰시든지 당신의 뜻대로 쓸 것을  자기가 확인하고, 어떻게 쓰실지라도 그것은 주님의 자유요 마땅히 자기는  쓰여져야 될 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인데 우리가 이 구속의 관계를 벗고, 여기  말하기를 '옛죄 깨끗케 하심을 잊었다' 했습니다. 옛죄 깨끗케 하심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에서 구속받은 것을 아는 자는 주의 종으로 사는  것이 필연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주의 종으로, 주의 것으로  살지를 않는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것을 완전히 달성하려고 하느냐? 주님의 것이 되어 있는  이것을 이 세상에서 연습해서, 주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이 주의 것 노릇을 얼마나  했느냐 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주의 것 노릇 한 그것이 자기의 실력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우리나 다 같이 주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주의 것이 되어 있으나  주의 것으로 살기를 얼마나 살았느냐? 주의 것으로 사는 것은 다 영생이 되고,  주의 것이 주의 것으로 살지 않은 것은 그것으로써 둘째 사망의 해로 영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것으로 산 것만큼 무궁세계에서 주의 것으로 살게  됩니다. 주의 것으로 사는 그것이 영생이요 그것이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날마다 연습하는 것이 주의 것이 주의 것 노릇 하는  이 일을 연습시키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이 현실에서는 주의 것 노릇 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당신 마음대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당신 마음대로 쓰시려고 할 때에 쓰여지는 것, 이 현실에서는 당신  마음대로 쓰시려고 할 때에 쓰여졌지마는 저 현실에서는 주의 마음대로 쓰여지지  않는 자 있습니다. 주의 것으로 쓰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사건에는 주님이 그것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무궁세계에 가서도 그런 면에 대해서는 주님이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당신이 당신의 것으로 쓸 수 있었던 그것만큼 무궁세계에  당신의 것으로 당신이 쓰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권능입니다.

 당신의 것이 당신의 것 노릇 하는 것, 당신이 자유로 쓰시도록 쓰여지는 것,  당신이 강제로 쓰려면 얼마든지 강제로 쓰여지지마는 이 종은 강제가 아닌  자유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주님의 뜻대로 쓰여질 수도 있고 쓰여지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이요 이것이 유기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유 의사를 가지고 주님이 쓰시려고 할 때에 주님의 뜻대로 쓰여질 수도 있고  쓰여지기 싫으면 쓰여지지 않을 수도 있어서, 쓰여지는 것을 가리켜서 순종이라,  쓰여지는 걸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주님에게 쓰여질 수도 있고 쓰여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의 종노릇  할 수도 있고 종노릇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종노릇 한 것, 주님에게  쓰여진 것 그것이 영생이 된다 하는 말은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그 부분, 그 양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무궁토록 쓰시고, 쓰여진 그는 하나님에게 영원 무궁토록  쓰여지는 것입니다.

 쓰여지되 여기서 종노릇 한 것은 이런 면에만 쓰여지고 저기서 종노릇 한 것은  저런 면에만 쓰여지는데,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이 된 주의 종이 됐지마는  주님에게 쓰여지기는 하나도 안 쓰여졌습니다. 하나도 안 쓰여졌으면 그의  기능적으로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면 무궁세계에 가서 하나님의 것은  것이지마는 쓸모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하나님의 종은 종이요 하나님의 것은 것인데 하나는 하나도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는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어디든지 다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도 쓸 수 있고 저기도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대사로도 보낼 수 있고, 장관으로도 쓸 수 있고,  대장으로도 쓸 수 있고, 도지사로도 쓸 수 있고, 판사로도 쓸 수 있고 어디든지  쓰려면 다 쓸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것처럼,  그 나라 왕이 '이 사람은 장관인데 지금 반장을 좀 시켜야 되겠다. 이제 아무 데  가서 반장노릇해라.' 하니까 '예.' 하고 반장노릇을 하는데 일등 반장노릇 합니다.

반장노릇 하던 사람을 '야, 오늘은 아무 데서 시장 봐라.' '예.' 시장도 잘 보고  옵니다. '지금은 나라가 위험할 때가 됐으니까 네가 국방장관이 돼라.' '예.'  '지금은 일선에 가서 대장 노릇으로 우리나라 전군대를 혼자 통솔해 가지고  전쟁하라.' '예.' 이제 이것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데에서도 쓰여지고 저런 데서도 쓰여지도록 하나님의  종노릇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쓰여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서도 써보시고 저기서도 써보실 때에 여기서는 쓰려 하니까 예 하고  순종했는데 저기서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러기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려 하노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리는 것으로 쓰시든지, 죽는 데 쓰시든지, 고문과 고형을 받는 데  쓰시든지, 감옥에 들어가는 데 쓰시든지, 가난으로 가난한 자로 쓰시든지 당신  뜻대로 필요한 대로 나를 쓰시옵소서, 주님의 구속하신 것은 내것이 됐고 나는  당신의 것이 됐기 때문에 당신의 뜻대로 쓰시옵소서 하는 이것이 종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했습니다.

 기구라는 종, 호흡하지 않는 생명이 없는 종이 있습니다. 불집게는 우리가 일생  동안 불 집는 것만 해서 타서 매진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불집게가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말을 안 해요. 곧 그것이 나입니다.

 나도 하나님께서 어떤 데 쓰시든지, '저 사람은 저렇게 영광된 데 쓰는데 나는  왜 이렇게 천하게 씁니까?' 하면 종이 아니라 말이오. 여기 쓰시든지 저기  쓰시든지...

 소는 일생 동안 부려먹고 난 다음에는 잡아서 먹습니다. '왜 일생 동안 부려먹고  나를 잡아먹습니까?' 부려먹고 잡아먹는 것이 필연한 일입니다. 잡아먹어도  고기만 먹는 게 아니라 뼈까지 곰을 해서 우려먹습니다. 모집니다. 그러나 그게  주인으로서 소에 대해서 하는 마땅한 일이라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도구를 하나 쓸 때에 '나는 참 이와 같이 주의 종이 되어  있느냐?' 하면서 회개하고, 또 어떤 사람을 쓸 때에 모든 데에서 주의 종이요  주의 것이 됐는데 주의 것 노릇을 하지 못하는 이것을 가지고 항상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바울이 깨달아 갈수록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주님의 종은 주님만 씁니다. 주님만 쓰는 주의 것이 됐습니다. 주의 종이  됐습니다. 주님이 쓰시는 것이 좋습니까 마귀가 쓰는 것이 좋습니까? 어떤 것이  좋습니까?   피조물로서 주님만이 쓰시고, 주님이 어디든지 쓸 수 있는, 우주를 통치하는 데  쓰려 하시면 우주를 통치하는 데에 쓰여져서 우주를 통치할 수 있고, 우주와  영계를 통치하는 이 일에 쓰려고 하실 때에는 그 일에 쓰여져서 '네가 우주뿐  아니라 영계까지 통치하라' 할 때 '예.' 하고 우주와 영계를 통치하는 데 쓰여질  수 있으면 이것이 천합니까 영광입니까? 어떻습니까? 천합니까 영광입니까?  영광이지요. 이러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의 것으로 쓰여지기를 평생 소원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것으로 쓰여지지 아니하고 악령이 나를 쓰고, 돈이 나를 쓰고, 권세가  나를 쓰고, 어떤 인간이 나를 쓰고, 내 속에 있는 부패성 내 정욕이 나를 쓰고,  내게 부패한 모든 복술이 나를 쓰고... 이래서 '이 시간은 나를 주님이 쓰셨다.'  하는, 주님이 쓰시는 그 시간을 계산하면 참 많지를 못합니다.

 이러기에, 피곤하기는 피곤하지마는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서 묻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위해서 묻고, 교회에 대한 것을 묻고, 가정 생활에 대해서 묻고 그럴 때에 말  한 마디로 그것을 살릴 수가 있고 바로 잡을 수가 있고, 안 들어도 나로서는 바로  하는 그것은 주님에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 주님이 하시는 일, 주님이 시키시는 일, 요것은 전체가  의로운 일이요, 거룩한 일이요, 영생되는 일이요, 참 가치 있는 보배로운 일인데  요 일만 하는 그것은 주님에게 쓰여진 것이요, 주님이 원치 아니하는 그 일을 한  것은 주님의 원수에게 쓰여진 것이라 그겁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주님에게 쓰여지기 위해서 일생 노력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의 것인데 주의 것으로 살지를 못합니다. 주님만이 나를 써  주시옵소서.'  어떨 때는 '왜 주님이 아닌 그 원수가 나를 쓸 때에 가만히 두셨습니까? 주님이  뺏어 쓰시지 않고 가만히 두셨습니까?' '너에게 자유성을 줬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강제하면 너는 내가 욕망하는 대로의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너에게 자유성을 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도 깨닫게 하고 저렇게도  들리게도 하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마는 네가 네 자유 가지고 내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원수에게 복종을 하는데 내가 강제할 수가 있었느냐? 내가 너에게  어떻게 어떻게 깨닫게 해 주지 않더냐? 누구를 통해서 말하지 아니하더냐? 어떤  것을 보아서 너로 하여금 느껴지고 깨달아지도록 하지 않더냐?'  이렇게 주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내가 반역했고 내가  불순종했지 주님이 나에게 경고하신 일이 없지 않았고, 안타까워하신 일이 없지  않았고, 애타하신 일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또 깨달아서 자복을 한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일생 노력하는 것은 주의 것 되어 있는 것이 주의 것으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것이 아니면 주의 구속이 내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구속하신  이 구속을, 완전한 사죄 칭의 하나님과 결합된 이것을 당신 전체를 희생해서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것을 내것 삼았으면 나는 또 당신의 것이 돼야 합니다.

 상점에 있는 보배로운 필요한 물건이 내 물건이 됐으면 내 호주머니에 있는  돈은 그 상점 주인의 돈이 돼야 됩니다. '값이 없어도 값을 내고 사라' 그 말은  자기를 다 드려 사라는 그 말입니다.

 이래서 '주의 것이니 주님만이 나에게 자유하시고 주님만이 마음대로 나를 쓰실  때에 내가 거기서 반역하지 아니하고 주님이 소원하시는 대로, 기뻐하시는 대로  쓰실 때에 나는 어디서든지 예예 로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외에 돈이 돈 제 맘대로 나를 쓰고, 주님은 이것 하라 하는데 돈은 저것  하라 할 때에 내가 주님에게 쓰이지 아니하고 돈이 하라 하는 대로 돈에게  쓰여지면 그것은 주님의 종은 아닙니다.

 카터대통령은 대통령 권세를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은 주일이지마는 어떤 일을  해야 된다. 나라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사를 의논해야 된다.' 이러는데  하나님께서는 '너는 반사이기 때문에 오늘 주일날 반사노릇을 해야 된다.' 이렇게  합니다.

 '자, 내가 대통령이니 국사를 해야 되나 오늘 반사 일을 해야 되나?' 이 두 가지  일이 있을 때에 카터는 반사노릇 하러 가고 국사를 안 했답니다. 반사노릇 하러  갔대요. 그는 주의 종입니다. 그는 정치가로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말하기를 '카터 대통령이 돼서 미국 나라 망쳤다.' 계속 그랬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의 사적이 주일학교 반사인데 대통령으로서 반사 직을 한 번도  어긴 일은 없었답니다. 성자입니다. 성자는 새 술 아닙니까? 새 술을 헌 부대에다  넣었어요. 성자를 썩은 나라 정치가로 세워버리니까 그 나라가 망하고 째지고  깨지지요. 찢어지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성경 이치에 맞는 것이라 그거요.

 그분은 하늘나라 건설을 하는 부대에 넣어야 됩니다. 천국 건설에 대통령을 해야  되는데 세상에서 했으니까 헛일입니다. 그분이 아마 조금 후면, 나 같은  사람이라도 한 번만 만났으면 그 사람이 당장에 지금부터는 목회자로 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주의 종이기 때문에, 주의 종이기 때문에 권세에게 쓰여지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날 만일 주일학교 반사노릇은 그만 두고 대통령노릇  하러 갔으면 그 사람은 그날 누가 썼습니까? 주님이 썼습니까 대통령이라 하는  그 지위 권세가 썼습니까? 권세가 썼지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한 시간 한 시간, '이 시간도 주님이 나를 쓰셔서 주의  종노릇을 내가 해야 될 터인데, 주에게 쓰여져야 될 터인데, 주의 것으로 살아야  될 터인데, 주님만이 나를 써야 될 터인데...'  '이 시간에는 주님은 나를 이렇게 쓰시려 하고 내 가족은 저렇게 쓰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주님 버리고 갈 수가 없어요. 이러니까 가정에서 바가지를  긁지마는 거기서 멸시를 받아도 사정을 하고 주님에게 쓰여집니다.

 주님에게 쓰여지는 방법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내가 주님에게 쓰여지면  그만이지 가족 네까짓 것들이 무엇이냐?' 이러면 그 다음에 주님이 가족을 잘  정돈하라 할 때 그때 또 사고가 생긴다 말이오. 그때 일이 안 돼요.

 이러니까, '훗날을 보는 사람은 그루터기를 높이 벤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를 벨 때 끝을 높이 베면 뒷날 그걸 찾을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땅 속에 싹  파고 베 놓으면 다음에는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후일 볼 나무는  그루터기를 높이 벤다' 그 말은 사람들이 뒷날을 생각해서 오늘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각박하게 못 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리 하자 하고 가족은 저리 하자 하고, 아브라함과 롯이  시비할 때에 그랬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하자 하는 대로 하려 하니까  가족과 밑에 종업자들이 불평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불평하는 그 사람들 설득시키려고 애를 썼을 것이요 속을 상당히 썩혔을  것입니다.

 모든 범사를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쓰여지니까 그 다음에 '네가 가족을  정돈해서 너 시키는 대로 순종하도록 해 봐라.' 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아브라함은 그 일을 성공했습니다. 만약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고, 뒤를 보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하나님께 복종만 하면 됐지!' 하고 사정 두지 않고 그리  했다면 가족을 복종 시키라 할 때에 가족들이 '너 사정 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한 것이나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나 상관이 있느냐?'  하면서 복종하지 않으면 꼼짝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은 달성 못 합니다.

가정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두 사이에  끼어서 내가 심한 고통을 하는데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것이니 주님만이 내게 대해서 자유하고 아무도 나를 맘대로 못  합니다. 주님만이 나를 당신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이 사람 되는 것이 이것이  온전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 것은 주님만이 자기 것입니다. 돈도 자기 것이 아니요 지위도  권세도 자기 것이 아니요 주님만이 자기 것이오. 자기에게는 주님뿐입니다.

주님만이 자기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서 나올 게 무엇입니까? 이 포대기에는 콩만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들고 콩만 들었어요. 그러면 그 콩 자루를 흔들면 거기서 콩 외에  나올 것은 무엇입니까? 콩 자루 안에 콩만 들었으니까 콩 자루를 칼로 쿡 찌르면  뭣 나옵니까? 콩 나오고, 몽둥이로 때려도 콩 나오고, 풀어 흩어도 콩 나오고,  털어도 콩 나오고 콩 외에는 나올 것이 없어요. 콩 외에는 무엇입니까? 콩 외에는  저뿐이지요. 콩 외에는 저뿐입니다.

 이것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우리 속에 주님만이 우리의 것이 되어 있는데  우리는 주님만이 우리의 것으로 살지를 않습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주님의 말만 나옵니다. 주님만이 내것이기 때문에. 내  입에서도 주님 말만 나오고, 내 마음에서도 주님 마음만 나오고, 내 생각에서도  주님 생각만 나오고, 내 소원에서도 주님 소원만 나오고, 내 욕심에도 주님의  욕심만 나오고 주님의 것만 나옵니다. 주님 외에 딴것은 내게 없으니까 나올 것이  없도록 요렇게 되어지는 것이 우리 구원의 완성입니다.

 주님만을 내 전부로 삼도록 법적으로 되어 있는데, 내 영은 주님만을 자기의  것을 삼아 있지마는, 내 마음도 주님만을 자기 것을 삼아 있는 마음이 돼야 될  터인데 내 마음에는 주님 외에 딴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만  내것이 되어지게 해 달라는 그것을 하나님에게 쉬지 않고 간구를 하는 것이  성도들의 소원이요 간구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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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2 복/ 시편 1장 1절-6절/ 1978. 33공과, 34공과 선지자 2015.11.01
3761 복 받는 순서 6 단계/ 시편 1장 1절-6절/ 840516수새 선지자 2015.11.01
3760 복 있는 사람/ 시편 1장 1절-6절/ 890313월새 선지자 2015.11.01
3759 복과 믿음/ 신명기 28장 1절-2절/ 791017수야 선지자 2015.11.01
3758 복과 믿음/ 신명기 28장1절-2절/ 791018목새 선지자 2015.11.01
3757 복과 화/ 신명기 28장 1절-6절/ 1974. 10. 27 제43공과 선지자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