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12:47
부활
1980년 6월 11일 수새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49절 흙에 속한 자는 첫째 아담을 말하고 하늘에 속한 자는 둘째 아담을 말합니다. 첫째 아담의 형상을 입었다는 말은 첫째 아담과 같이 우리의 영과 육이 같이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에 속한자의 형체를 입는다 그 말은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예수님의 영육을 말하는기 아니고 예수님도 영육이 있지만은 그 영육, 우리와 같은데 그 영육은 첫째 아담의 영육과 같은데 다만 죄만 없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흙에 하늘에 속한자의 형체를 입는다 형상을 입는다 그 말은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는다 예수님이 가지신 그 형상을 입는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지신 형상은 어떤 형상을 말하는가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입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도 입는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을 어떤 것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는가 하나님은 형상이 물질로 된 형상이 없고 우리 고깃덩어리는 물질로 된 형상이요 우리 마음도 물질로 된 형상이요 우리의 영은 영물로 된 형상입니다. 그러기에 이 영물은 물질계에는 이 물형을 입지 않고는 활동을 못합니다. 하나님은 물질의 형상도 없고 영의 형상도 없는 분입니다. 왜 그분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완전자는 형상을 가졌으면 형상속에 들어있어야 됩니다.
게 하나님은 계시지 아니한 곳이 없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어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이요 또 영원불변이 구분의 형상이요 또 단일성이 그분의 형상이요 또 온전한 지혜와 지식과 선, 사랑, 진실, 거룩, 의, 또 주권, 또 당신이 자존하신 그 아무것으로 말미암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계신 자존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이렇게 성경에 당신이 나타냈지 하나님은 뭉텡이가 있다. 크다, 작다. 영체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안했고 물체도 영체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거는 하나님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신성 하나님에 신성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에 그 기능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형상을 입었는데 예수님이 입으신 그 형상과 같은 그 형상을 우리가 지금 마련하고 있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불택자들은 세상에서 어떤 소망가지고 사는고 하니 제가 그라나 안그라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주시는 것인데 그것을 취하면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든 죄되는 방법을 써가지고 이런거 저런거 마련해 가지고 제 욕심대로 실컷 살고 제 욕심대로 달성을 하고 제 욕심대로 달성을 하니까 그기에 저 단독 욕심으로 그런 것 같아도 하나님이 그 사람은 요 사람은 요런 욕심을 가지고 요렇게 살다가 망한다 하는 그것을 예정 하시가지고 그와 같이 하시는 그 뭣 때문에 합니까?
하늘나라에 하나님을 배반하되 제 욕심대로 살되 천가지 만가지만 아니고 수없는 것들이 요렇게 욕심으로 살 것은 요렇게 망하고 요렇게 욕심으로 산 것은 요렇게 망하고 또 요렇게 하나님에게 순종한 것은 요렇게 구원얻고 요렇게 순종해서 요렇게 구원되고 이래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셔서 영원무궁토록 하나님 만든 것 가운데에 목적안에 지음을 받은것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 모든걸 봐서 충만하도록 학교에서 공부할때에 더군다나 그 과학같은 과학을 공부하면 그 자연계에 속한 그런 모든 공부할때는 그 실험해 가지고서 보이니까 그게서 공부해 가지고 나오면 이제 나와가지고 이 사회에서 살때에 그런 것이 요거하고 요거하고 부딪히면 이리된다.
요런 사람의 성질하고 요런 사람의 성질하고 마주치면 요리된다. 요런 일을 할 때에는 요런 삶의 성질이 나오고 저런 사람의 성질이 나온다. 요걸 조화를 잘해야 된다 하는 그것이 이제 경영학이라는 그 학문입니다. 경영학 어 게 이렇게 해가지고서 실물로 조그마한 그것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됐다. 이라면 큰 것을 갖다가서 막 그대로 해석을 하는 것이 그 연구하는 것이고 실험하는 것 아닙니까? 이거 모양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배반하면 어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어떻게 순종하면 어떻게 되고 자기 욕심을 자기 욕심을 어떻게 이루면 어떻게 되고 어떤 욕심을 이루면 어떻게 되고 어떻게 욕심을 이루면 어떻게 되고 자기 욕심을 비우고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그 소원을자기 소원으로 삼으고 그 소원에 복종하면 어떻게 되고 또 조 소원에 복종하면 어떻게 되고 하는 그것을 이 세상에서 모두다 실험해 보이는 것입니다.
에 게 다니엘 같은 그런 사람도 하나 실험해 보인 것이요. 봐라 다니엘이 앞에 사자 구덩이가 있어도 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란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믿어 나가니까 사람 보기에는 죽었지만 살아나지 안했느냐 이런 것을 보여서 아 사람보기에는 죽은거 같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다. 또 불 가운데 집어넣어니까 인자 죽었다 했는데 살아났다 그런 것은 어 여러 가지를 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사자 우리속에 하나님이 안 삼키면 안되고 입을 벌리고 꺽 물었지 마는서도 더 씹지 못하게 하면 그대로 있다 공간을 모든 활동을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신다. 그런 것을 보이고 있는 것이고 또 사람 너거 지식으로는 끝났다 보이지 마는서도 끝나지 안했다. 게 새상에서 죽으면 그는 죽었는줄 알지만은 무궁세계에 생명이 있다. 또 이런 갖다가서 그 곤충같은 것 보면 이것이 죽습니다. 곤충같은거 이러기 갖다가서 번데기가 되가지고 죽어 버렸습니다. 활동이 없어요. 활동이 없지만은 난제 그 고비를 지나고 나면 이기 부화가 되가지고 나올때는 훌훌날라 다닌다. 기어다니던 것이 이거 모양으로 사람에게는 부활이 있다. 보라 곡식알을 땅에다 심으면 이것이 갖다가서 썩지 안느냐 보면 질금이 되가지고서 그기 전부 분이 썩습니다.
밀도 보면은 밀에 있는 가루 이놈이 썩어 가지고서 썩어서 한창 썩을라고 지금 할 때에 그때 달콤 할 때에 바짝 말라버리면 질금이 된다 말이요. 단술해 먹는 그게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썩습니다. 눈에 보이는건 다 썩고 고 핵이라고 하는 갖다가서 눈 있는 것 고것만 안썩지 고것만 안썩고 다른건 다 썩는데 눈에 보이지 안는 생명이 들어서러 고 핵 고걸 자꾸 키우니까 핵 요놈이 갖다가서 그 분으로 되어있는 달콤한 질금물을 다 빨아먹어 그냥 빨아먹고 이제 갖다가 그것이 에 크니까 종자는 죽고 그 갖다가서 움이 나와 가지고서 자라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죽는 그것이 죽는기 아니라 속에 생명있는 그 눈이라는 고것이 자라 가지고서 뒤에 백배, 육십배 어떤거는 천배도 열매를 맺을수 있는 그런기 되기 위해서 그것이 다시 새움이 나가지고 살아나기 위해서 종자 그것이 죽어버려야 그게서 새움이 나가지고 새살이 새로 자라지 않느냐 이것 모양으로 인간 이 세상에서 죽는 그것이 영원히 죽지 아니할 몸을 이제 그 부활을 입기 위해서 되어지는 것이니 어리석은 자야 만물을 보아 좀 알아봐라 말하는 것입니다.
게 이렇게 예수님은 어 첫째 아담은 내나 우리와 같은 꼭 영으로 되어있고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둘째 아담인데 그 아담의 형상을 입으리라 그러면 첫째 아담의 형체 우리가 입고 있고둘째 아담의 형상을 입으려는데 둘째 아담의 형상은 어 첫째 아담의 형상같은 그런 형상이 아닌 볼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 이제 말했습니다. 그러면 에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그 형사과 같은 그 형상을 우리로 하여금 입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는 것입니다. 아 그러기에 우리가 아 지금어 이세상에 있으면서 아 예수님의 그 아버지의 신성을 닮은 예수님의 그 인성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닮은 예수님에 인성을 닮은 우리의 인성되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가지고 어 제가 먹고 쓰고 제 욕심대로 하고 이래 하다가 아 세상 떠나게 되면 또 제 욕심을 자손에게 물려 주가지고서 네 욕심대로 해라 이렇게 물려주고 가지만은 택한 백성들은 깰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 하리이다. 깰 때에 죽었다가 다시 부활 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 하리이다. 하는 그 형상이 그것이 예 여게 말하는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우리가 입겠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예수님에 그 인격성과 같은 예수님에 지능과 같은 그 지능을 예수님에 속성과 같은 그 속성을 예수님에 생애와 같은 그 생애를 우리가 입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같이 된다 같이 된다 말은 그것이 아니라 말이지요. 그러니 예수님과 꼭 같이 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에 형상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 그러면 세상이 모르는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가 보아야 된다. 예수님에 형상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줬는데 또 우리에게 입혀 주는데 그 형상은뭐이냐 하나님에 속성과 같은 그런 속성을 우리가 가지고 살고 하나님에 행위와 같은 그 행위를 우리가 하고 또 하나님에 지능과 같은 그 지능을 우리가 가지고 살아서 사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또 세상 사람에게 전해가지고 그것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야 된다 에 그것이 우리가 증거하는 것이라. 그러면 여게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요것은 우리가 틀림없이 입은걸 다 알지요 벌써 입고 있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 이목구비 수족 또 첫째 아담에 내장 이와 꼭 같은 내장입니다.
첫째 아담은 간이 없고 우리는 간이 있는 것 아니요 그에 내부와 우리의 내부가 꼭 같습니다. 어 또 그에 영과 우리의 영이 꼭 같습니다. 어 그러면 좀 아담과 우리가 여게 있는 사람들이 다 여게있지 만은 꼭 같은 사람은 없지요 그러면 이 사람이 이 사람 못 볼 사람 있습니까? 다 우리가 안다 그기요 그러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아무것이 아무것이라 하지요 그렇치 만은 어 다른 사람으로 이목구비 수족 안팎이 같지 않습니까 요거 모양으로 아담과 우리가 같습니다. 요 같은거와 같이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우리가 입으리라 그러면 예수님과 우리와 같이 된다는 요걸 우리가 갖다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된다. 그 같이되는데에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이 예수님이 다 우리와 같은 간이 있었고 콩팥이 있었고 뭐 손이 있었고 다리 있었고 눈이 있었고 다 있습니다.
그것 같다는 말 아니고 예수님이 하나님에 형상을 가지신 것과 같은 그런 완전성을 가진자로 지었다 이런데 이것이 그래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연결이 돼야 이 존재에 작용을 할 수가 있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다른거 가지고는 연결 되 봤자 존재 작용을 할 만한 그런 능동자, 원인자가 있을수 없습니다. 그런것들 보다 사람의 영이 훨씬 위에 있게 자랐기 때문에 사람의 영은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하게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속하자의 형체를 입는다. 예수님의 그 인격성 예수님에 속성 예수님에 그 행위 이것을 우리도 가질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그 속성 고기 죄라서 우리를 대속 못하는데 하나도 없었고 예수님에 움직이심은 마음이나 뜻이나 생각이나 성질이나 수족에 행동이나 말이나 모두가 다 아버지께서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 분에게만 피동됐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는다. 우리도 예수님과 꼭같은 예수님이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우리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게 된다. 그것을 여게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게 요한복음 6장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너희들도 나로 인하여 산다. 요한복음 6장입니까? 5장입니까? 네 요한복음 6장에 있소, 5장에 있소. 예 책을 찾아보고 언제 뭐 대답 할라고 네 그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있습니다. 어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너희들은 나를 인하여 갈리라.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자는 그 말은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자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자가 된다는 요 소망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땅에 속한 형체 혀상을 입은 것 같이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는다. 어 예수님과 같이 된다. 예수님이 어 모든 만물위에 뛰어난 거와 같이 우리도 만물 위에 뛰어난 교회가 얻는 그 구원을 우리가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다 어 그러면 예수님께서 고 하나님에 형상이 온전히 입었기 때문에 무궁세계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 말입니다. 아버지의 보좌란 말은 평안하게 잠 잘잔다는 그런 자리라는 말이 아니고 보좌는 그거는 사람말로 표현을 하기 때문에 봐좌라고 했는데 보좌는 어떤기 보자인고 하니 옛날에 정치가에 그 왕이 대왕이 앉은 그 자리를 가르쳐서 보좌라 용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용상이라 그 말은 용이 제일 크다고 그들이 생각했기 때문에 용이 앉은 자리라 그렇게 말했고 보좌라는 것은 제일 갖다가 보배자라 하는데 그거는 행정성을 언제든지 전제로 두고 하는 것입니다. 그 통치성 그러니까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다 말은 아버지가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우리 예수님이 대리 역사 하신다. 그것을 표현해서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다. 또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겨서 아버지가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껍데기만 예수님이지 속에는 알맹 알맹이는 이제 하나님이시오. 하나님 아버지시오. 또 예수님에 그 형체 밖에 나오는 것은 전부 이 하나님 아버지에 그 모든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말이요.
그 사이에 갖다가서 중보자만 되가지고 있어 이와 마찬가지로 내 보좌에 함께 앉는다 그 말은 예수님이 하시는 그일을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서 우리를 통해서 다 하신다 말입니다.
하나님 밑에 예수님 처럼 예수님 밑에 우리되고 만물과 우리위에 예수님이 예수님 위치가 되신 것 같이 우리는 예수님 아래 만물위에 위치하는 것이 우리 위치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만물은 그 발등상이 되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된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발등상이 위에 있습니까? 몸이 위에 있습니까? 몸이 위에 있지요. 또 그리스도는 머리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된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갖추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 그분은 이렇게 순종해 가지고 이렇게 됐다 하는 것은 예수님에 마음과 같은 마음을 그래 품어라 하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을 첫째로 두고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입는 그것이 우리 자체 변화가 되는가 하나님에 신성처럼 변화가 됩니다. 하나님 처럼 완전자 영원 불변자 또 그 단일성에 자.
하나님은 자존했으면 뭐 우리는 자존하지는 안했고 하나님에 속성과 같은 속성으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소원 같은 소원을 하고 하나님이 뜻하는 같은 뜻을 하고 하나님이 아는것과 꼭 같이 알고 그면 하나님의 행동이라 고 하나라 그 말이요. 고 갖다가서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 이를 수 있는 자체완전 되어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이 말은 우리 자체 온전을 가르쳐 말하는 것이고 또 그다음에 있는 것은 뭐이냐 우리의 행동의 온전을 말했다. 그 말이요.
행동의 온전 그것을 가르쳐서 거룩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거룩 하심과 같이 거룩이라는 것은 요거 조거 구별해 가지고 요것은 틀렸다 요렇다 요렇다 구별해 가지고 앓은걸 찾아 하는기 거룩입니다. 서원균씨 시험에 들어서 자 아래 일할 때 보니까 어 좀 딴 사람 됐어 교만해 졌고 그전 같이 겸손이 없어 왜 나한테 대할 때 그렇게 버릇이 없어 나 암말도 안하고 등신같이 이래 다녀도 내가 굉장한 사람입니다. 내가 이 미친 소리 같지만 그 사람들의 심리를 다보고 저 시험에 들었다 하는걸 안다 그기요.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꾸벅꾸벅 졸지 그 은혜 언제 잊어 버렸어 은혜 도로 되찾아.
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입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사람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거 그것 뭡니까 그거는 자쳅니까 행동입니까 서원균씨 그 뭐이냐 저봐 누하고 일하다 어찌됐소 에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그 거 뭐이요. 자쳅니까 그 자쳅니까 그 행동입니까 그 자체요 행동이요 행동이라 그 말이요. 그 행동할 수 있는 그자가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 있는 행동을 하고 또 하나님의 형상이 된 것 만치 또 행동하게 됩니다. 행동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 진 것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으로서 신,인 양성일위 우리는 신인양성 결합의 일행 하나로 행한다 그 말이요.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행하는기 다른거 없어 같이해 그러면 이것을 동행이라 이러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300년 동안 동행했다. 아브라함이 동행했다. 에녹이 동행했다.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움직이고 자기는 자기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자기와 함께 동하고 정하는 그것을 가르쳐서 동행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 하나님은 자 이제 따라 합시다. "예수님은 신인양성 일위 우리는 신인양성 결합의 일행" 이것이 된것만치 부활의 권능입니다. 하늘나라 가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일이 되졌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졌습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졌다 그말은 예수님에 신성은 하나님이요.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에 인성이 신성같이 된 것이라 우리들이 예수님의 인성과 같이 된다 그것을 가르쳐서 여기 말씀 합니다. 에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우리에게 신성은 우리에게 지금 와 가지고 일하고 있는 신성은 뭐입니까 이름이 뭐이지요. 우리에게 와서 우리와 결합해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이 결합 할 수 있는 그 우리에게 온 신성은 이름을 뭐라고 말합니까? 네 성령님 성령님을 가르쳐서 또 무슨 영이라고 했습니까 네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는 무엇이 되가지고 왔습니까 그리스도가 뭣 되가지고 왔지요 사람되어 가지고 왔지요. 그리스도가 또 사람되어 됐지 안했습니까?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을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 성령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하고 성령이라고도 하고 보혜사라고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알리기 쉽기 위해서 보혜사란 말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보혜사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에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신인양성 일위 그러니까 우리보다 가까워 졌지요. 일위란 말은 신성과 인성이 둘이 서로 이래 둘이 합한기 아니라 둘이 합한기 아니라 하나가 됐다 그 말입니다. 이래 하나가 됐단 말이요. 우리는 결합이라는 말은 둘이 이래 합했다 말이요 둘이 합해졌으니까 떨어질 수 있는 이것으로서 이렇게 둘이 합해 합해가지고 있고 이래 붙어 가지고 있고 예수님은 붙은 것 아니고 신인양성 일위가 됐습니다. 하나가 됐단 말이요. 한 격위가 됐단 말입니다. 한격위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에 인성이 신성된 것 아닙니다. 신성이 인성된거 아닙니다. 한 격위가 이루어졌는데 그는 인간을 탁월하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인간의 방언 어로서는 어떻게 표시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한대로 신싱과 인성이 양성이신데 일위라 그것은 이제 깨달음에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이 뭐이냐 신성과 인성 인성은 내지요. 신성은 성령님이시오. 예수님이시오. 그리스도시죠. 하나님 아버지시죠. 성자시죠. 성령이시죠. 이 삼위일체라는 이 하나님한분 뿐이신데 한분인데 그 격위는 셋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과 신성과 인성 사람의 우리와 둘이 한덩어리가 되는 결합이 되는 이것을 입는 우리가 공작하고 있습니다. 한 덩어리가 되가지고 또 하나로 움직이는 한 덩어리가 되어 하나로 움직이는 이것을 우리가 몇 번이든지 연습합니다. 몇번이든지 연습하는데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 한덩어리 되는 것이 이것이 무엇으로 됩니까 되는것은 자기가 마음으로 원하는 그 마음으로 되고 마음에 작용으로 되고 원하고 결심하고 작정하고 또 안된 것을 크게 후회하고 마음에 작용과 몸에 작용은 우리의 행동이지요.
마음에 작용과 몸에 작용 이것으로서 우리가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마음에 작용은 고것은 현실이라는 요 시간을 초월했습니다. 현실이라는 이 시간을 초월했기 때문에 마음에 작용은 현실은 만나지 않해도 그 마음은 언제든지 갖다가 작용할 수 있고 이 몸땡이 작용은 현실을 만나지 아니하고는 작용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만침 제제 받습니다. 몸에 작용은 현실을 만나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데에서 완성이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결합되는 그것을 연습합니다. 몇 번이든지 연습해 가지고서 한번 연습하니 숙달되고 숙달이 되서 하나님과 결합이 한번 결합한 행동을 했으니까 또 결합이 더되고 두 번 또 결합 했으니까 또 더되고 열번 결합된 행동 했으니까 더 되고 어떤 사람은 한 번도 결합한 행동을 안했으니까 결합이 안돼 가지고 있고 그러니까 하늘나라 가면 예수님의 구속으로 기본구원으로서 결합된 것만 결합됐지 자기가 행동한 것으로는 결합된기 하나도 없다 그기요.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구원에 차이 영광의 차이는 행동으로 결합된 그게서러 차이점이 생겨지는데 그것이 없는 사람은 가도 그저 부끄러운 구원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 자기가 모든 이 세상살이에서 건설을했지만은 서도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것 처럼 하나님의 진리로 심판하니까 다 타버렸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처럼 하나님으로 인하여 된 요것은 영원히 타지 안하고 영원히 있다 그 말이요. 그것을 가르쳐서 반석위에 지은 집이라 반석은 갖다가 예수님 이신데 예수님으로 인해서 된 것은 영원히 존재하고 예수님으로 인하지 아니하고 모래위에 지은 것은 피조물 이런 것들을 인해 가지고 되어진 것은 다 없어진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목적이 무엇인가 신인양성 그다음에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 뭐이요. 여반들도 해봐요. 결합 신인양성 결합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결합 또 그 다음에 일행 함께 움직이는 것 하나님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면 나도 싫어하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여 우리의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라 우리를 보아서 우리가 행동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이 대속에서 행동하는 것이란 말이요. 예수님이 행동하신 것이 전부 그속에 아버지가 행동하신 그것이 예수님에게로 나타났단 말이요. 그와 같이 요것을 목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이루는데에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이 필요있다 해서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예수님은 신인양성 일위,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신인양성 결합일행" 요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그 방편은 주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이 생활하면은 이것이 이루어진다 그기요.
그러니까 그것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요런 것 저런 것 다 보인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최고로 여게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죽음이 있고 여게는 삶이 있으면은 그 삶이 있는데는 안 간다 그기요. 주로 인해서 어려워도 주께 순종하고 어려워도 주님과 동행하는 고것을 소원한다 그 말이요. 그렇다고 해서 제거 고것도 소원하는 고것도 갖다가 제 욕심이기 때문에 고것도 소원 소원 하지만은 주님이 쉬운데 가라면은 쉬운데가고 어려운데 가라하면 어려운데 가고 결심은 이 세상에 있는 종류대로의 어떤 입장 처지를 만나도 주님과 나와에 결합은 내가 끊어지지 않겠다. 결합이 떨어지지 않겠다. 결합이 떨어지지 않는 연습을 주여 주와 나와의 결합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라니까 주님이 갖다가 떨어질까 말까하는 그런 현실을 딱 줍니다.
그러니까 안떨어 질려고 이라니까 주여 내가 떨어질라 캅니다. 놓지 마십시오. 막 이래가지고 갖다가 안 떨어 질려고 해 가지고서 고 기회를 넘깁니다. 그러니까 고 형편을 닥치기 전보다도 결합이 조금 더 갖다가 튼튼해 졌습니다. 그래가지고 또 동행도 갖다가서 동행하기에 어려운 이제 까지 한 동행보다 어려운 형편을 딱 준다 말이요. 동행하기 어려운데 동행 할려고 애를 쓰니까 넘어질까 말까 자꾸 이러싸니까 그래마 넘어졌다 말이요. 아 주여 내가 여서 동행하지 못하고 그만 넘어 졌습니다. 주님은 주님대로 난 나대로 살았습니다. 이제 이런 기회를 주옵소서. 또 그런 기회를 달라 하니까 또 그런 기회를 또 닥친다 말이요. 또 닥치면 그때는 이번에는 내가 지금 동행하겠다. 주님은 기도하시는데 이제 갖다가서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집어 넣을려고 하니까 주님은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하는데 이제 갖다가 우상에게 절하라 하니까 이제는 안 할라면은 갖다가 불속에 집어 넣는다 말이요.
그래도 주님과 나와 동행해야지 주님은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니 나도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해야지 주님은 우리에게 절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니까 나는 또 그래 순종해 가지고 절 안해야지 이래 가지고서 그것이 결합과 동행 그것을 에 그 이루는 그 현실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현실이 다 그런 것이요.
이러니까 땅위에서 원하는 것은 자기가 원대로 해둘라 말은 소원은 그렇다 그 말이요. 하나님이여 세상에서 최고로 하나님과 결합하기 어려운 형편을 주시옵소서 그 시험주사 그게서도 주와 나와에 결합이 끊쳐지지 않을수 있는 이런 주와 나와에 사랑으로 구속에 사랑으로 구속에 사은으로 구속의 은혜로 이렇게 결합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러니까 어 남풍이, 동남풍이 불거나 서북풍이 불거나 가시밭에 백합화는 예수 향만 피운다. 또 살든지 죽든지 내 뭄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 이게다 갖다가서 주님과에 강한 결합을 원하는 것입니다. 최고적인 결합을 원해요. 또 갖다가서 어데서라도 주님과 동행하고 안 떨어질려고 그 분과 동행 할라고 그 분과 동행이 뭐인데 그 분의 법칙인 성경과 성경대로 하는 것이 그 분과 동행이요. 성신의 감화대로 하는 것이 그 분과 동행이기 때문에 동행이 안 떨어질려고 그 애쓰는 것이 그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일이 무엇이 하나오면 아이구 돈 손해 간다는데 그런 것 생각지 안하고 동행하기 어려운 때가 왔다 요때는 어떻게 하든지 아 요때는 재물을 다 내야 동행하겠다. 사업을 다 내야 동행하겠다. 명예를 다 내놔야 되겠다. 자존심 다 내놔야 동행하겠다 내 속이 팍 썩어서 다 내놔야 동행하겠다. 이제 갖다가서 그 동행하기 어려운 형편이 온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때 갖다가 동행하고 떨어지지 안 할라고 하나님과 결합이 끊어지지 안 할라고 이것을 갖다가서 목표로 두고서 우리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에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나님만 바래보고 하나님 당신에게 모든 주권이 있다 당신만 의지하고 딴건 뭐라카든지 하나님이 주권했으니 그 분이 그 분의 뜻대로 하겠다. 그 분에게만 순종하는 것 이것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