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의 방편

 

1987. 7. 10. 밤 <금>

 

본문:빌립보서 1장 28절∼2장 11절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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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집회에 대해여 직장, 가정, 경제 문제 등 모든 면에 기도 많이 하시고 잘 준비하여 다 참석하도록 합시다. 이 일 년에 두 번 참석하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집회에 참석을 함으로 구원 도리를 깨닫게 되고 이 집회에 참석 안 하면 구원 도리를 귀가 열리지 안해서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고, 돈이 없는 사람은 어짤 수 없지마는 녹음기를 사고 테이프를 사 가지고 어짜든지 한 설교를 몇십 번 들으십시오. 그라면 자기가 변화가 됩니다. 들으면 또 깨닫고 자꾸 깨달아져서 참 자기의 복음이 됩니다.

특히 강사 목사님과 왕래하는 교통 안보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그때에 관민의 협조도 있어야 되겠고, 자연 협조도 있어야 되겠고, 우로 협조도 있어야 되고, 한서의 협조도 있어야 되고, 다 있어야 되겠습니다.

작년에도 그렇게 더운 염천에 그 주간은 더워서 못 견딜 거라 했는데 우리가 그 집회하는 중에는 더위가 하나도 없고 여기도 더위가 없었습니다. 오랫 동안 측후소에서 그 주간이 일 년 중에 제일 더울 거라 했는데 그 주간에 더위를 없도록 하나님께서 물리쳐 줬습니다. 또 비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 많이 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십니다.

그래 들어 주시는 것을 그것을 예사로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죄인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 하는 거게 대해서 이거 얼마나 큰 일인 것을 알아야 되지 그거 모르면 안 됩니다.

그라고 병 낫는 것도 그거 병 낫는 것은 어데 누가 자연 뭐 치료법이나 또 의학의 약이나 그런 걸 가지고 한 거 아니고 누가 또 기도해 주고 또 만져 주고 뭐 안수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전하고 하나님 말씀 듣고 깨닫고 ‘하, 나도 이제는 이렇게 회개하고 살아야 되겠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병에서 치료해 줬습니다.

이러니까 영병 치료가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마음병 치료가 둘째로 중요하고, 셋째로는 그 몸의 못된 습성 병치료, 넷째로는 그 몸의 육신의 병든 거 그런 거 치료하는 것이 그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내가 어데서 전화를 들었는데 참 귀한 분이고, 높은 분이고, 또 귀골이고, 재산도 많은 분인데 병이 들어서 병원에 입원해서 희망이 없다고 이라면서 저에게 전화가 왔습디다. 와서 제가 아는 대로는 말을 해 줬습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항상 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라 해도 안 생각합니다. 뭐 젊은 청년이라고 죽음이 먼 줄 압니까? 아니요. 죽음에는 노소가 없다는 것을 다 사람들이 통계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번 집회에 참석 못 하고 구원도 이루지 못하고 죽을란지 누가 압니까? 그러니까 이번 집회에는 어떻게 하든지 생사를 걸고 ‘안 가면 죽는다.

가면 산다.’ 이렇게 이 실상을 깨닫고, 뭐 돈 없으면 가서 굶어서라도 그저 한 끼씩만 먹고라도 그렇게 은혜 받아야 되겠다 그렇게 각오를 가지고 다 가도록 하십시오.

일이나, 일은 뭐 살고 있으면 그 일 하는 거 안 해도 또 먹을 수 있고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다른 데 얼마든지 일할 수 있고 또 집은 하나님께 기도해 맡겨 놓고 뭐 도적이 가지고 가면 가지고 가고 뭐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있으면 있고, 어짜든지 그것보다 이 가치가 크니까, 집회에 참석해 가지고서 은혜 받는 이 가치가 크니까 이 일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다 첨석하도록 그렇게 하고, 여러 교회 교역자들이 왔는데 교역자들도 자기가 먹여 기르치 못하면 그런 집회라도 데리고 와 가지고서 은혜를 받아서 구원을 잘 이루도록 해야 되지 거게 데리고 가면 내 설교 잘 안 들을 터이니까 이제 안 가도록 그렇게 그 꾀를 쓰는 그런 사람은 양 도적이요, 그건 바로 주님의 원수입니다. 그런 심리를 가진 사람이 무슨 목회를 하겠어? 이 설교를 들을 때에 여러가지로 듣습니다, 설교뿐 아니라 다른 것도. 이 세상 어떤 공부라도 할 때에 다 같이 듣는 줄 알아도 들으면서 ‘여게서는 내가 참 사람이 돼 봐야 되겠다’ 그래 듣고, `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 실수 안 하도록 해야 되겠다’ 그래 듣고,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워야 되겠다’ 그래 듣고, 어떤 사람은 들을 때에 ‘요 말은 내가 다른 사람 앞에 큰소리 뻥 할 때에 그때에 조때 요 한 마디면 좋다.’ 이래 가지고 들을 때에 꼭 그런 데에 쓸 수 있는 그런 말만 배워 가지고서 그런 말만 쓰는 사람 있습니다. 그 말 들어 보면 이 사람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이오.

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듣는 목적이 다르고 자기가 그 어디다가 써먹느냐 하는 그것이 각각 달리 결정됩니다. 이러니까 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자기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인가 하는 요것을 생각하면서 들어야 되지 이거 준비하지 못하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여게 28절에,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듣고자 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듣고자 하는 게 아니고 성령님이 곧 하나님이 듣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아나갈 때에 반드시 대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적이 있는 그것을 두려워하면 마귀에게 삼켜 들어갑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할 때에는 어떤 대적이라도 그걸 두려워하지 안해야 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왕이 우상 만들어 놓고 절하라 할 때에 그걸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믿음을 가졌는고로 승리를 했습니다. 다니엘도 두려워하지 안하는 그런 믿음을 가졌는고로 승리했습니다.

옳은 일을 할 때에는 두려워하면 하나님이 떠나 버립니다. 옳은 일을 할 때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은 일 하면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죄를 지으면 목사든지 장로든지 권사든지 뭐 하나님이 떠나서 하나님이 그를 버려버리고 떠나십니다.

이러니까 옳은 일 할 때에는 반드시 죄악 세상이기 때문에 대립이 되나 대립되는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옳은 일 할 때에는 전 사회가 대적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라가 대적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관민이 대적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세력가가 대적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악인이 대적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옳은 일 할 때에는 두려워하지 아니해야 됩니다. 요것을 딱 기억하고 실행을 해요.

“이것이 저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니라” 이랬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옳은 일 할 때에 대적이 생겨집니다. 옳은 일 할 때에 대적하는 것은 대적하는 그 사람은 그것이 멸망받을 증거를 지금 만드느라고 대적하고 있는 것이고 옳은 일 하면서 대적을 당하는 것을 그것이 구원 얻은 증거로서 그와같이 대적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이렇게 모든 형편을 꾸미는 것이 하나님이 이렇게 꾸미십니다. 우리가 옳은 신앙 걸음을 걸을 때에 대적이 생겨지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생겨지도록 만드는 것인데 만드는 것은 대적하는 자는 멸망하고 대적을 받는 자는 구원을 얻도록 그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의 구원을 주신 이것이 은혜 받은 것인데 이 은혜를 주신 것은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함이라”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 믿는 이 도리를 받아 가지고 그저 어려움 없을 때에는 믿는 사람 많습니다. 어려움 없을 때에 믿는 그것은 아직까지 믿는지 안 믿는지 그걸 모릅니다. 예수님의 이 대속의 구원을 받아 가지고 요대로 살라고 하면 그만 대적하는 그런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구원 받을 것을 말하면 모두 다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기뻐하고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렇게 이 구원을 받아 가지고 마귀에게 내 주지 안하고 이 구원을 단단히 간직하고 가야 되지 간직하지 못하고 마귀에게 뺏기면 헛일이다. 이러니까 뺏기지 안하도록 노력을 해라. 이 구원을 뺏기지 안할라고 하면은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은 설명해 주면 다 도망쳐 버립니다. ‘하이고, 그 교회 가니까 머리가 아프고 뭐 기분도 좋지 못하고 그만 그렇다.’ 하면서 가 버립니다. 그자는 어데 돌아다녀도 저는 건설구원은 헛일이오. 기본구원은 얻지만 건설구원은 헛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이라든지, 또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의 축복이라든지, 또 세상에서 받는 축복이라든지,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도 축복받고 하늘나라에서도 축복받고, 또 이 세상 살이도 성공하고 하늘나라 살이도 성공하고 이렇게 영육과 금생 내세가 다 성공하고 복받는 것이 예수님의 구속을 믿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믿는 일을 말을 해 주면ㅡ저 ○선생, 눈 좀 떠.

신앙이 죽었어. 정신 차려. 안 차리면 하나님 몽둥이 와. 몽둥이 오면 견딜 자들이 있어? 없어.

이 구원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육이 복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무슨 복? 영원히 죽지 안하는 영생복, 하나님의 자녀되는 복, 하늘나라에 가는 복, 하나님의 아들의 그 지위와 영광을 가지는 복, 이 뭐 복은 말할 수 없어. 한없는 복이라.

그런데 이 복을 우리가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시험하십니다. ‘네가 이 구원복을 참 믿나 안 믿나?’ 시험해 보면 그만 조금 어려움만 있으면 그만 벗어버려 버립니다. 그 사람은 믿는 게 아니라.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들인데 뭐 무서워서 버릴 것이며 또 세상 온 세상 전부보다도 나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데 뭣이 아까워서 이 구원을 버리겠습니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오는데 그 어려움이 오면 그만 구원을 벗어버린 사람은 그거 예수 믿는 사람 아니라.

이러니까, “믿을 뿐만 아니라 주를 위해서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고난 받는 것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고난 받는 게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예수님 믿는 일을 자기가 버리지 안하고 예수 믿는 사람 생활 할라 하면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믿는 사람 생활 하면 고난 받게 되는 이 고난을 자기가 받으면 예수 믿는 사람 되고 그만 고난 안 받을라고 하면은 예수 믿는 걸 내놔 버리면 당장 고난 없어집니다.

믿는 거 내놓으면 고난이 당장 없어지고 믿는 거 가지고 믿을라 하면은 고난이 계속 있고,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믿나 안 믿나?’ 그것을 볼라면 믿는 일 때문에 고난이 오면은 ‘믿는 일을 버리나 안 버리고 그대로 계속 믿는 생활 하고 있나?’ 그거 보면 알아요.

예수 믿는 거는 어떤 게 예수 믿는 건데? 예수 믿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인데 성경 말씀대로 살 때에 아무 어려움 없으면 누가 성경 말씀대로 못 살겠습니까? 다 살 수 있지요. 성경 말씀대로 살다가 그만 어려움만 오면은 성경 말씀대로 살던 것을 버려버리요. 그 사람은 고난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믿는 일을 인해서 고난 받는 일을 자꾸 연습을 해야 됩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이 신앙 생활로 인해서 조그만한 고난서부터 차차 받아서 연단해 가지고 최고의 고난이 와도 요동치 안하고 신앙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일로써 제일 처음 고난 받는 게 어떤 고난인가? 그전에는 주일 제 맘대로 했는데 주일 하나 지킬라 하면은 어려움 옵니다. 주일 지킴으로써 어려움 오는 그것이 예수 믿는 일로 인해서 받는 고난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새벽기도 나올라 하니까 또 고난이 됩니다. 새벽기도 나올라 하면 제가 뭐 잠이 안 깨고 피곤해서 그것도 고난이지마는, 피곤한 그것보다도 믿지 않는 가족들이 새벽기도 못 나가게 합니다. 또 자기 일하는 일터의 주인이 또 새벽기도 못 나가게 합니다. 또 새벽기도 나갈라 하니까 마귀란 놈들이 불량자를 중간에 거석해 가지고 놀라게 해서 또 그래 새벽기도 못 나가게 합니다. 뭐 새벽기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어려움이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으므로 ‘내가 새벽기도 안 나가고 이라면은 요만한 어려움도 겪지 못하면 앞으로 환난 오면 이길 수가 있겠느냐?’ 큰 환난 오면은 ‘나 예수 안 믿겠습니다’ 그만 예수 믿는 거 다 내놓고 그라면 제가 암만 택한 자라도 기본구원만 있지 건설구원이야 있을 리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처음 주일 지키기에 어려운 요 고난 우리가 연단 받아야 되겠고, 그다음에는 새벽기도 나오는 요 어려움 요거 견딜 수 있는 고난 받아야 되겠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무슨 직장을 가지든지 그 직장 생활, 직장 생활, 장사를 하든지 그리 안 하면 회사에 하든지 뭣이든지 모든 생활하는 데에 그때에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살라 하면은 어려움이 온다 말이오. 어려움을 우리가 그 어려움을 견뎌서 그 어려움을 당해도 예수 믿는 그 생활을 계속해야 구원이 돼지는 것이지 그 계속하지 안하면 구원이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신앙 생활 할라 할 때 그 어려움이 한 가지가 오면은, 한 가지 어려움이 오면은 한 가지 신앙 생활 할 때에 한 가지 어려움이 오고, 고거 이기고 나면은 두번째 다른 면의 신앙 생활 할라 하면 또 그 면에 어려움이 오고, 이러니까 열 가지 면으로 그 사람이, 신앙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열 가지 면으로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진 사람 될라 하면은 열 가지 면으로 어려움이 오고, 백 가지 면으로 그 사람 신앙 생활 가질라 하면은 백 가지 면으로 어려움 오고, 그러니까, 그러면 신앙 생활할 때에 어려움 오는 것이 숫자가 적으면 좋습니까 숫자가 많으면 좋습니까? 예수님 믿는 일에 어려움의 종류가 숫자가 적으면 좋습니까 많으면 좋습니까? 많으면 좋은 구원이 이루어진다 말이오. 적으면 몇 면만 구원 이루었지 여러 면을 구원 이루지를 못했어.

사람의 이 세상 실력도 이 면 실력 저 면 실력, 한 면 실력만 있는 게 좋소 여러 면 실력 있는 게 좋겠소? 여러 면 실력 있는 게 좋지 않습니까? 여러 면 실력이 있을라고 하면은, 여러 면 실력을 갖출라고 하면 여러 면 실력 갖출 때에 그 갖추는 어려움의 고난이라 하는 것이 여러가지 있겠습니까 한 가지 있겠습니까? 여러가지 실력을 갖출라 하면 그 실력 갖추는 데에 어려움이 하나 있겠습니까 여러가지 있겠습니까? 열 가지 실력 갖출라 하면은 그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이 몇 가지 있겠습니까? 열 가지. 백 가지 할라 하면은 그 어려움이 몇 가지 있겠습니까? 백 가지, 이거는 필연한 일이라.

이런데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음으로 어려움 오는 것은 자꾸 피하고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예수 믿는 것만 원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망할 징조라. 망할 징조라, 망할 징조.

이 어려움이 있는데 그 어려움은 무슨 어려움이냐? 내나 그 밑에 말했어. 20절에,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라” 신앙 생활 하는 사도 바울이 어떤 그 싸움이 있는가? 너희들에게도 이 내가 싸우는 싸움의 어려움이 너거들에게 있다. 이러니까 너희들도 이 싸움을 싸워야 된다.

이 싸움을 싸우는데 어려움을 피할라고 하는 사람은 이 싸움을 양보를 해서 패전을 해야 될 것이고 이 싸움에서 승리할라 하면 반드시 저도 어려움을 겪어야 된다 이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싸움은 내나 우리가 신앙 생활 할라 하니까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방해하는 그것은 멸망할 그 증거고 옳게 살라고 함으써 어려움 당하는 우리는 구원을 얻은 증거입니다.

증거인데 이와같이 지금 진리대로 살라고 하니까 어려움이 오는 이것은 누가 이렇게 내놨습니까? 구원을 이룰라고 하니까 어려움이 자꾸 생겨 가지고서 구원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니까 구원을 이룰라고 하니까 자꾸 어려움을 당합니다, 고난을 당합니다. 고난을 당하는데 신앙을 지켜서 자기 구원을 이룰라고 하니까 여러 면으로 실력 있는 구원을 이룰라고 하니까 자꾸 어려움이 옵니다. 이 어려움은, 어려움은 어데서부터 나왔다고 했습니까? 예? 거기 읽어 봐요. 어데서 나왔다 했어요? 어려움은 어데서 나왔다 했지요? 28절 끝에 봐요. 어데서 나왔다 해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만들어 주신다 말이오.

그 어려움은 사람이 어렵게 하는 줄 알아도 하나님께서 사람도 모든 거 이래 주 만들어 가지고서 그 어려움을 만듭니다. 그 어려움을 만들어서 그 사람의 구원 정도에 알맞는 어려움을 만들어 가지고 그 어려움에 통과되면은 이제 그 면에 대한 실력이 갖추어져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이 생활,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 요 셋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 요 셋은 하나인데 요 세 가지를 버리지 안하고 요 세 가지를 자기가 가지고 요 세 가지 생활을 할라고 하면, 영감 생활 할라고 하면, 진리 생활 할라고 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생활 할려고 하면 그러면 그 하지 못하게 하는 그 적이 있습니다. 하지 못하게 하는 적이 있어. 하지 못하게 하는 적이 있는데 하지 못하게 하는 그 적 그거는 멸망할 것들입니다. 멸망할 것들을 가지고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도록 합니다.

방해하도록 하는데 방해하도록 그런 공작을 꾸미기는 누가 꾸몄습니까? 그 공작을 꾸민 거는 누가 꾸몄소? 여기 하나님이 꾸몄다 했어.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그 시험도 나왔고 구원도 나왔고 다 나왔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다만 그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저 예수님의 구원 주신다 하니까 ‘아, 좋다. 영생을 얻으니까 얼마나 좋으노? 천국 가니까 얼마나 좋으노? 지옥을 피하니까 얼마나 좋으노?’ 예수님의 구원의 이 은혜를 말하니까 모두 좋아하지마는 이 구원을 받는 것은 받아 가지고 제가 내놓지 안하고 간직해야 제 구원이 되는 것이지 받아 가지고 간직하지 안하면 제 구원이 안 됩니다. 받아 가지고 간직해야 제 구원이 됩니다. 간직해야 제 구원이 되는 건데 간직을 할라고 하면은 어려움이 있다 말이오.

그런고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왜 졸아? 꼿꼿하게 앉아, 꼿꼿하게.

어? 나중에 모두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막 뚜드려 패고 이제 그때 가서, 그때 가서 인제 한번 되게 한번 당해야. 우리가 미리 조그만한 어려움 애쓰면 될 건데 왜 그렇게 자꾸 멸망을 당할 게 뭐 있어?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주님이 고난 받게 하시요.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은혜를 쏟지 안하고 그 은혜를 간직을 할라고 하면은 어려움이 와요. 어려움이 와도 그 은혜를 내주지 안할 때에 제것이 되는 거라. 어려움 올 때 그 은혜를 내 줘 버리면 제것 안 돼요, 그만.

이러니까 모든 이 기본구원은 얻어 놓지마는 건설구원은 자기가 그 구원을 어떤 어려움이, 주먹덩이만한 어려움에서 그 구원을 내주지 안하고 이기면 주먹덩이만한 구원이 이루어졌고, 이 집채무더기만한 구원을 줬을 때에는 집채무더기만한 고난이 오니까 집채무더기만한 고난이 와도 이기면 집채무더기만한 구원이 이루어지고, 이러니까 하늘나라의 구원의 가치는 이 세상의 고난의 가치와 같애요. 제일 고난 많이 받은 사람이 구원 제일 좋은 거 이루어 가졌고 고난 하나도 받지 안한 사람 구원 하나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고난의 공로로 구원이 되는 것입니까 이 고난은 구원을 안 뺏길라고 고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안 뺏긴 것으로 구원이 됩니까, 고난을 받았으니까 고난 받은 그 상급으로 구원이 된 겁니까? 고난 받은 상급으로 구원이 됐습니까 이 고난을 받아도 구원을 뺏기지 안하고 고난을 받아도 구원을 뺏기지 안하니 고난을 받아도 뺏기지 안하므로, 이 구원을 빼앗기지 아니하므로 자기에게 구원이 됩니까 이 구원 때문에 고난을 받았으니까 고난의 공로로 구원됩니까? 고난의 공로로, 고난 받았으니까 고난의 공로로 고난의 상급으로, 고난의 상급으로 고난의 공로로 구원이 된 것으로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 서부교인들 알기는 잘 알아요. 다른 데 가 물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알기는 잘 아는데 실행이 문제지.

그러면 아무 고난을 받아도 고난 받은 그 고난의 상급으로 건설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건설구원을 자기가 안 뺏길라고 입고 뺏기지 안할라고 이와같이 하니까 뺏들라고서 주먹으로 때리다가 감옥에 가두다가 여러가지 고난을 줘도 고난을 받아도 뺏기지 안하고 있어서, 고난을 받아도 고난을 받았지, 매를 맞았지, 감옥에 갇혔지, 또 나중에 거석하면 뭐뭐 죽었지 구원을 뺏기지 안하는 것, 뺏기지 아니하므로 빼앗기지 아니하고 자기가 간직했음으로써 자기에게 구원이 된다, 고난을 받은 그 상급으로 공로로 구원이 된다 이 두 가지입니다.

일호는 이 구원을 자기가 가지고 있음으로써 고난이 오는데 이 구원을 뺏기지 안할라고 지금 여러가지 고난을 받아도 구원을 뺏기지 안했는데 뺏기지 안하니까 이 고난 받은 고난의 상급으로 구원이 오는 것인지 고난의 공로로 구원이 오는 것인지 고난의 공로와 상급으로 그 건설구원이 자기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호, 자기가 구원 뺏기지 안할라고 아무리 고난 받았지마는 고난의 상급으로 고난의 공로로 이 구원이 제것 된 게 아니고 구원을 뺏기지 안하고 죽어도 뺏기지 안했으니까 이 구원을 빼앗기지 아니하였음으로 자기 구원이 됐다, 요거 이호.

자,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일호가 맞은 사람 손 들어 봐요. 이호가 맞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저 뒤에도 그래 뒤에 들어? 뒤에 꼼뱅이로 와서 손은 옳게 드는구만. 저기 알아듣기는 알아듣는 모양이라. 요것도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거 신학박사들이 지금 논쟁하고 있는 것이요, 이것도.

다, 이만침 고난 받고 이래 어려움 받았으니까 상급으로. 자, 신사참배 안 할라고서 감옥에도 갇히고 두드려 맞기도 하고 또 최상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순교당했는데 순교도 당하고 했으니까 그 사람들은 순교당했으니까 순교당한 그 공로의 상급이 큽니까 그 사람들이 지금 순교를 당해도 뺏기지 안하고 자기네들이 보존하고 뺏기지 안하고 보존하고 있는 그 구원이 큽니까? 어느 것이 큽니까? 구원이 큽니까 그렇게 순교당했으니까 공로의 상급이 큽니까? 상급이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손 한번? 순교를 당해도 구원을 뺏기지 안했으니까 그 구원이 큰 것인 것을 믿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뭘 그만 모르네. 뭣이요? 손을 들어 봐.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 안 할라고 하다가서 순교를 당했는데 그러면 순교당했으니까 순교당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당한 그 상급이 큰지 순교를 당해도 자기는 이 구원을 뺏기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 예수님의 피공로가 구원인데 이 세 가지를 빼앗기지 안할라고 하다가 순교를 당했어. 순교를 당해도 빼앗기지 안한 그 구원이 큰지 순교까지 당했으니까 순교당한 상급이 큰지, 어느 게 크요? 구원이 크요 상급이 크요? 구원이 커. 상급 없어. 구원 그게 상급이라, 구원 그게 상급. 구원 그게. 구원 외에 상급이 어데 있어? 없어. 여러분들. 못 알아들으니까 그리 상급이라 이렇게 말하지마는.

요거 아십시오. 앞으로 우리가 예수 믿다가서 예수 믿는 십자가의 피를 부인하는 건 뭐이야? 피를 부인하지 않는 것은 피를 부인하지 않는 것은 다섯 가지를 버리지 않는 거라, 다섯 가지.

또 예수님의 부활의 대속을 자기가 벗지 않는 것은 몇 가지 구원 됩니까?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우리 대신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라는 사람도 있고 여섯 가지라는 사람도 있는데 아마 세 가지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중생과 진리의 영생과 영감의 영생 이 세 가지를 말하는 것 같고 또 여섯 가지 말하는 사람은 요 세 가지뿐 아니라 우리에게 큰 직위를, 큰 직위를 주셨으니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그것까지 해서 여섯 가지 주신 것이라.

그러면 이 여섯 가지를 안 내놓을라고 하니까, 이 여섯 가지 안 내놓고, 또 처음에 죽으심으로 몇 가지요? 다섯 가지. 이거 안 내놓을라 하다가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당했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배반하라 하니까 배반 안 할라 하다가, 또 공심판의 의인데 의를 내놓으라 하니 안 내놓을라 하다가, 또 죄의 종돼라 할 때에 죄의 종 안 될라 하다가, 마귀의 종 돼라 할 때 마귀의 종 안 될라 하다가, 사망의 종돼라 할 때 사망의 종 안 될라 하다가, 이라니까 이 다섯 가지 안 내놓을라고 함으로써 매도 맞고 굶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고 이라다가 고난을 당하다가, 또 여섯 가지, 새생명으로 살고, 옛사람으로 살면 문제 없어요. 새생명으로 살고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 생활, 진리 생활, 영감 생활, 또 제사장노릇, 선지노릇, 왕노릇, 요 여섯 가지 노릇을 내놓으라고 하는 요것만 내놓으면 문제 없어. 요것만 내놓으면 ‘아이구, 목사님 수고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어짜든지 평안히 가 쉬십시오.’ 대번 그래요.

요걸 안 내놓음으로 말미암아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면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를 당했으니까 그 순교 당한 상급이 큽니까 순교를 당하기까지 내놓지 안한 열한 가지 구속이 큽니까? 구속이 큽니까 상급이 큽니까? 열한 가지 구속이 큽니다, 구속. 그외에는 상급이 없어. 칭찬해 봤자 소용 없고 이 열한 가지 구속 이것이 모든 상급 전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 함으로써, 자, 우리가 그러면 어려움을 당하기까지, 매를 맞아도, 고난을 당해도, 가정에서 쫓겨나도, 핍박을 당해도, 다른 사람에게 억울함을 당해도, 애매한 매장을 당해도 뭐 별별 일 꽉 찼습니다.

별별 일이 꽉 찼는데 그럴 때에 그 어려움 당하는 거, 어려움 당할 때에 우리는 ‘요 어려움을 잘 참아야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있다.’ 상급 위해서 어려움 당할랍니까 이제 ‘내가 요 뭣 때문에 어려움이 오느냐? 요 구원을 내주지 안할라 하니까 어려움이 오니 내가 요 어려움을 당해도 내가 구원 뺏기면 안 된다.’ 구원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열한 가지 이 구속의 구원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어려움을 당해야 됩니까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하늘나라에 상급이 있으니까 상급 바라서 어려움을 당해야 됩니까? 뭣을 위해서 어려움을 당할랍니까? 상급을 위해서 어려움 당할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왜? 상급이 얼마나 좋은데? 상급이 아니고 열한 가지 구속을 내놓으라 하기 때문에 열한 가지 구속을 내놓지 안하기 위해서, 열한 가지 구속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고난받을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거야, 이거. 이거 참 알기는 잘 알아. 이렇츰 아는 이 교인들이 드물어요. 잘 알아요.

조사님 그 교회 가 좀 들어 봤어, 저 뒤에 뭣이고? ○○인가 뭐인가? 자꾸 물어 봐요, 가서. ○○이가 거기가? 그 물어 봐, 가서. 미리부터 물어 시험쳐 가지고서 이건지 저건지 해야 되지, 나중에 거석하면 ‘아이구 뭐, 상급은, 이기면 상급이 있지마는 상급, 아이고, 상급 이거 귀찮다. 상급 없어도 나는 그만 이거 고난 못 견디겠다.’ 상급을 바라고 가는 사람들은 다 낙심하고 실패합니다.

상급이 아니고 곧 이게 구원이라. 이 구원 버리면 누구 뺏기요? 하나님 뺏기고, 예수님 뺏기고, 성부 뺏기고, 성자 뺏기고, 성령 뺏기고, 영생 뺏기고, 자유 뺏기고,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뺏겨 버리요.

자, 그게 큽니까? 만일 그 상급으로 우주와 영계를 막 상급으로 준다 합시다.

우주와 영계를 상급으로 주면은, 우주와 영계를 상급으로 주면은 우주와 영계를 상급으로 주는 상급이 큽니까 열한 가지 구속이 큽니까? 입으로는 그렇지만 똑똑히 평가 못 해. 구속이 커. 구속은 무한해요. 요런 걸 좀 구별해서 알아야지 구별할 줄 모르면 헛일이라고.

물어 보라고 가서, 여러분들이? 지금 딴데 가서 물어 봐. 장로님들이나 목사님에게 물어 봐. 우리가 이 어려움을 당해도 지금 순교당하고 모두 순교한 이분들이, 순교한 분들이 상급을 위해서 순교를 당했습니까 구원을 위해서 순교를 당했습니까 물어 봐. 구원도 상급도 다 이래 그만 말할 거라. 말하지마는서도 구원 위해서 당했습니다, 구원 위해서.

이러니까 이 고난은 무슨 고난이냐?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같은 싸움이 있으니, 이 같은 싸움, 이 싸움 싸우는 고난이라, 싸움 싸우는 고난. 이 싸움 싸우는 고난인데 이 싸움 싸우는 고난은 어떤 것인고 하니 열한 가지 구속을 내주지 안할라고 함으로써 나는 안 내줄라 하고 내 달라 하고서 자꾸 이래 가지고 싸우는 싸움으로 고난입니다.

그러면 열한 가지 구속을 안 내 줄라고 하는 생활이 뭐이냐? 열한 가지 구속을 내 주지 안할라고 하는 그 생활이 어떤 생활인고 하니 그다음에 2장 1절로부터 한 것, “모든 일이 네가 권면도 사랑도 위로도 성령의 교제도 긍휼도 자비도 이 모든 것을 한 마음으로 해라” 이 한 마음으로 해야 되는데 한 마음으로 하는 요 싸움이라. 한 마음으로 할라 하니까, 한 마음으로 할라 하니까 두 가지 마음으로 해라 세 가지 마음으로 해라 자꾸 이란다 말이오. 한 마음으로 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한 마음으로 하기 위한 싸움이오.

한 마음이라니? 한 마음은 누구의 마음인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안 했소,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했다 말이오.

예수의 마음으로, 예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사랑 화평 자비 긍휼 봉사 또 위로 권면 여러가지 희생 이 모든 거 하는 거 한 마음으로 해라. 이 한 마음으로 할라 하니까 제게 싸움이 일어난다 그말이오.

한 마음으로 무슨 마음? 한 마음으로 하라 그말은 예수님의 이 대속으로 값주고 사서 주님에게 팔려서 이제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몇 가지 줬어요? 다섯 가지 줬어요.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몇 가지 줬어요? 여섯 가지 줬어요.

열한 가지 줬어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고, 부활은 뭐? 부활이야 좋다 싶으지마는 창조주가 피조물로 부활된 것이 그것이 내나 십자가의 죽으심이나 꼭 같은 고난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사활하신 이 공로로 우리를 값주고 샀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것입니까 주의 것입니까? 주님의 것이라. 한 마음으로 하라 그말은 주님의 것이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해야 되겠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안하고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하려 함이라” 요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의 종 됐고, 주님의 성전 됐고, 주님의 지체 됐고, 주님의 몸 됐고, 주님의 나라와 백성 됐고, 주님의 신부 됐고, 제사장 됐고, 선지자 됐고, 왕 됐고, 다 주님의 것 됐어.

주님의 것이 됐는데 이제 “한 마음으로 하라” 그말은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님에게 피동으로 해라 그말이오. “한 마음으로 하라” 그말은 주님의 것 돼 가지고 주님에게 피동으로 하라 그말이오.

자, 주님의 것 돼 가지고 주님에게 피동으로 하는 것이니까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님의 피동으로 하니까 제 몸뚱이로 하지 말고, 제 지체로 하지 말고, 제 맘으로 하지 말고, 제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의 생각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것으로, 주님의 지체로 이래 하니까, 주님의 것으로, 주님의 지체로, 주님의 몸으로, 주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이래 하니까,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의 종으로 하니까 주님의 종으로 이 주의 것으로 이래 하는 것이 뭣 때문에 그래 합니까? 뭣 때문에 그래 합니까? 뭣 때문에 그래 하요? 주님의 구속에 팔렸기 때문에 그래 한다 그말이오.

주의 것으로 하라 그말은 주님의 구속은 네것 됐고, 주님이 대속하신 것은 네것 됐고 너는 주님의 것 됐기 때문에 대속을 입고 대속 받은 자로 살라 그말입니다.

이라니까 이거 살지 못하도록 그렇게 지금 방해하는 원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걸 좀, 자꾸 진리를 알아서 요걸 딱 거머쥐어야 죽을 때도 요동치 안하고 환난에서도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예수 믿는 도리를 똑똑히 새겨서 요걸 알고 내가 진리를 내놓지 안할 때에는 진리는 누구하고 같이 있습니까? 진리는 누구하고 같이 있지요? 자, 진리는 누구하고 같이 있습니까? 진리는 누구하고 같이 있어? 몇하고 같이 있어? 진리는 몇하고 같이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뻐뜩 들어 봐. 몇하고 같이 해? 뭐 어째? 들어 봐. 진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와 같이 합니다.

성자와 같이 하다니? 예수님의 그 열한 가지 구속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열한 가지 구속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만들어 놓은 것이 열한 가지 구속이오.

이러니까, 싸움이 무슨 싸움이냐? 열한 가지 구속을 벗지 안할라고 하는 싸움이다. 또 하나님의 것으로 살라고 하기 때문에 살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모든 싸움이다. 다 같은 말이요, 같은 말.

이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돼 가지고, 암만 그 사람이 선한 일을 해도 제것으로 하는 사람은 소용 없어.

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아주 자기 재산을 다 바쳤습니다. 자기 몸까지 다 바쳐서 아주 복음을 전하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사람은 자기 것으로 했습니다, 자기 것으로. 자기 몸, 자기 생명, 자기 것 가지고서 그와 같이 지금 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에 바쳐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산 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 내끼도 없어. 알겠어요? 한 내끼도. 예수님의 대속을 벗으면 다 지옥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워야 될 것인데 무슨 가치? 아무 가치 없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예수님의 것으로 해야 가치가 있어요. 요걸 똑똑히 알아. 예수님의 것으로 해야 가치가 있어.

그러니까 예수님의 것으로 할라고 하면은 우리에게 싸움이 있어요. 이 싸움이 우리 싸움이라.

그러면 예수님의 것으로 살고, 나는 예수님의 것으로 살고 예수님의 것은 내것 되고, 예수님의 것은 내것 되고 나는 예수님의 것 되고 이와 같이 바꾸는 거라.

내것을 내것으로 살라 하면 세상이 좋다 하고 예수님의 것은 예수님의 것으로 당신 가져 있도록 냅둘라 하면은 세상이 좋아하고, 예수님의 것은 내것 만들고 나는 예수님의 것을 만들라 할 때에 그때에 싸움이 있고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돼요? 그 어려움을 우리가 그 싸움을 우리가 싸워야 돼. 그 싸움 싸우지 안하면 안 돼. 이제 이것이 터전이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요번 주간에 우리가 할 일, 요번 주간에 할 것 몇 가지 할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요번 주간에 우리가 몇 가지 할라 했지요? 다 잊어버렸는가배. 몇 가지 할라 했어요? 손가락 한 번 들어 봐, 뻐뜩 들어 봐. 요번 주간에 우리가 몇 가지 연습할라 했지요? 저 뒤에도 몇 가지? 녜, 세 가지. 세 가지 할라고 했는데 요거는 요만치 두고, 요게 있어야 그 세 가지가 돼져요.

그런데 하나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하는 거 요거, 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남의 일도 돌아봐야 된다. 그래 가지고 내 기쁨이 충만케 해라.” 내 기쁨이 충만하면 그 내 기쁨이란 누구 기쁨을 말해요? 내 기쁨이란 누구의 기쁨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케 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 모든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긴다. 낫게 여기는 거 해야 되고, 낫게 여기는 거. 요것을 자꾸 연습하자 말이오. 낫게 여긴다 말은, 낫게 여긴다 말은 그 사람이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먼저 존경하고 위하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이해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 이해는 뒤에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유익은 뒤에 생각하고,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하고 섬기고, 다른 사람을 높이고 북돋우고, 자기는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위에 있고 다른 사람은 자기의 상전이고 자기는 다른 사람의 종이 되고 이 생활 하는 것을 연습하자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하면 이것이,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그 사람을 위하는 나라. 나는 낮고 그 사람은 높은 것이라.

그 사람은 상전이고 나는 그 사람의 종이라. 나는 그 사람을 위하고 그 사람은 나에게 위함을 받을 사람이라. 나는 그를 섬길 사람 사람이라, 그 사람은 섬김 받을 사람이라. 그는 상전이라, 나는 종이라. 나는 그에게 이용을 당할 사람이라.

이렇게 사는 거ㅡ어떻게 거리가 먼지.ㅡ이렇게 사는 거, 이렇게 살면, 이렇게 살면 그것이 상 받는 일입니까 안 죽는 일입니까, 상 받는 일입니까 안 죽는 일입니까, 상 받는 일입니까 그것이 사는 일입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것이 물 속에 사는 그 잉어가, 물속에 사는 잉어가 물 속에 사는 것입니까 물 속에 사는 잉어가 숲에서 노래 부르면서 징얼거리면서 사는 꾀꼬리 사는 걸 보고서 물고기가 공중에 나와서 사는 거, 물고기가 공중에 나와서 사는 것,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생활입니까 물고기가 공중에 나와서 사는 생활입니까? 새가, 새가 숲속에서 사는 생활입니까 새가 물 속에 들어가서 사는 생활입니까? 백합화가 땅에 뿌리박고 사는 것입니까 백합화가 그 공중에 숲에 뿌리박고 사는 생활입니까? 뭐입니까? 자, 그러면,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거, 낫게 여기는 거, 이와같이 낫게 여기는 거, 자기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있는 것, 높이기 위해서 있는 것,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있는 것, 다른 사람을 유익되기 위해서 있는 것, 다른 사람 좋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있는 것 이렇게 사는 생활이 이것이 세상 생활은 이렇게 사는 생활입니까 아닙니까? 자, 나 자꾸 물어야 여러분들이 알지 모르면 안 돼.

이렇게, 이렇게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생활입니까 아닙니까? 이렇게 살면 망합니까 안 망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망합니까 안 망합니까? 망합니다, 망해.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이 고기가 물 속에 사는 생활입니까 고기가 숲에 가서 사는 생활입니까? 자, 고기가 물 속에 사는 생활인지 숲에 가 사는 생활인지? 고기가 숲에 가서 사는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이 생활은 고기가 물 속에 사는 생활이요, 새가 공중에서 사는 생활이요, 백합화가 땅에 뿌리박고 사는 생활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들기는 들었는데 여러분들이 잘못 깨달으면 안 돼.

이겁니다.

이것이, 그러면 이렇게 새가 공중에 살고, 고기는 물 속에 살고, 백합화는 땅 속에서 살고 이래 사는 것은 자기 법칙대로 사는 것입니까 자기 법칙을 어겨 사는 것입니까? 자기 법칙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하도 들라 하니까. 자, 그래도 배워요. 여러분들이 몰라요, 지금. 자꾸 그러기 때문에 지금 내가 말하는 거라.

고기가 물 속에 사는 것, 새가 공중에서 사는 것, 백합화가 땅 속에 뿌리박고 사는 것 이것이 자기 법칙대로 사는 것입니까 자기 법칙을 어겨 사는 것입니까? 자기 법칙대로 사는 것이라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다 들어 봐요, 이래야 여러분들 속에 이 지식이 들어가. 그래 자기 법칙대로 사는 것이라.

이 법칙은 누가 줬습니까? 하나님이 줬어. 이 법칙 어기면 망합니까 삽니까? 이 법칙 어기면 망하요 사요? 망합니다.

고기가 공중에 나와 가지고 새 보고 새가 부러워서 공중에 나와 살면 그 고기 죽지 안 죽고 살 수 있소? 새가 물에 보니까 아주 비단잉어가 훅 훅 이래 쌓으며 사니까 ‘야 재미 있다. 나도 한번 가 살아 보자.’ 그 새가 물 속에 들어가 살면 그 새 죽어요 안 죽어요?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죽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새가 숲에서 살고 고기는 물 속에 사는 것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기 법칙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거게 살면 장수도 하고 새끼도 낳고 잘 삽니다. 잘 살아요.

그러나 이 새가 물 속에 들어가 살고, 고기가 공중에서 살고, 백합화가 공중에 나무에 달아 맺혀 가지고 살고 이래 살면 제 법칙대로 사는 것입니까 안 사는 것입니까? 제 법칙대로 사는 것입니까 제 법칙대로 안 사는 것입니까? 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도 들어요, 시시하이 여기지 말고. 녜, 제 법칙대로 안 사는 것이라. 그라면 사망하지 뭐.

자, 그러면, 요번 주간에 셋을 우리가 연습하고 숙달시켜서 성공하자 했는데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또 자, 이 갑이라는 사람은 을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또 을은 어째 살아야 됩니까? 을은 갑이라는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는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또 그 사람은 어떻게? 내가 낫게 여기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또 자기보다 나를 낫게 여기고. 알아듣겠습니까? 이래 사는 것이 새가 물 속에 가서 사는 거와 같은 것입니까 새가 공중에서 사는 거와 같은 것입니까? 새가 공중에서 사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요거, 요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정해 주신 중생된 새사람들의 사는 생의 법칙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거 여러분들이 아는 줄 알아도 아무데 가도 없어! 그리 쉬운 게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은 착한 일이고 이것이 아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그 해석을 하지, 이게 신앙 도덕 생활이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요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정해 주신 생의 자기 법칙이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말이오. 요거 알기 위해서 지금 자꾸 말하고 있는 거라.

또 자기에게 대해서는, 자기에게 대해서는 잘못된 점을, 그러면 쉽게 단점이라 하면 이것도 또 해석을 많이 해야 되는데, 자기에게 대해서는 단점을 보고 단점을 찾아야 돼요 장점을 찾아야 돼요?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단점을 찾아야 돼요 장점을 찾아야 돼요? 장점.

다른 사람에게는 장점 찾고 자기에게는 단점 찾고 이라는 것이 이 세상 처세술에 맞아요 안 맞아요?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등신이라요 똑똑한 사람이라요? 등신, 바보. 그들은 사망 법칙대로 살기 때문에 그것은 망하는 법칙입니다. 사망이 망하면 생명되지. 우리 중생된 사람에게는 우리가 사는 법칙이 이것이 우리 사는 법칙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자, 다른 사람에게 장점 찾는 것은 무엇이며 자기에게 단점 찾는 것은 뭣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장점 찾는 것은 어떤 것이 다른 사람의 장점 찾는 것이지요? 누가 그래? 누가 그랬어? 누가 그말 했어? 아니야, 그 말이 그 상식적이지 맞지를 안해요.

다른 사람에게는 장점만 찾는 것이 자기 생의 법칙인데 다른 사람의 장점이 뭐이 장점이지? 뭐이 장점이지? 남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 장점 뭐이 장점이요? 공부하는 거? 본분한 것.

다른 사람에게 장점은 뭐이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다른 사람 위하는 생활, 알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자기 본분 행하는 것, 자기 의무와 책임 행하는 것,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할 일 하는 그것이 그 사람의 장점입니다. 다른 거 보지 말아요. 아까 저 처음에 말하기를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그말도 맞았는데 너무 범위가 넓어서 안 돼. 이러니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그것이 그 사람의 장점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구원은 어떻게 하는 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그 사람의 현실에서, 그 사람의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인데 그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 ○장로님? 자기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되지? 봉사하는 것일까, 자비를 베푸는 것일까, 뭘 심부름하는 것일까, 돈을 주고 밥을 주는 것일까? 어떻게 하는 게 현실에서, 현실에서 다른 사람 위하는 것이 그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자기와의 그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될까요? 그것은, 위하는 것이라 말이오. 어떻게 위하는 게 되는지 뭐인지 몰라. 그거 내비두고 그 현실에서 그 사람과, 갑과 을이 둘이 상대할 때에 을이 갑을 상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행하는 그것이 갑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거 외에는 위하는 길이 없습니다. 그냥 위한다 하면 헛일이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장점은, 보니까 그 사람이 자기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에 꼭 그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게 다른 사람 위하는 게 됩니까? 그 사람이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할 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 위하는 것이 됩니까 저 ○선생?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그것이 다른 사람 위하는 것 됩니다.

그러면 그게 장점이라.

장점은 뭐이 장점인가? 그 사람이 다른 사람 위하는 일을 해야 될 터인데 위하는 일을 시기를 놓치지 안하고 장소를 놓치지 안하고 다른 사람 위하는 일을 그 일을 딱 하는 그것이 그 사람의 장점이라.

그러면 그것이 하나도 없으면 볼 게 없고, 그 사람이 하지 안한 단점은 보면 안 됩니다. 요거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단점은 보지 않고 그 사람 장점만 봅니다.

하는 거 하나 봤으면 하나 보고 나도 고거 거기 대해서 그런 것을 할 수 있도록 힘쓰고 하나님께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자기에게 있는 단점은 뭐이 단점입니까? 엔간히 인제 알아나간다. 자기에게 있는 단점은 어떤 게 단점이요? 자기에게 단점은 자기가 남을 낫게 여기는 데 말이요, 자기의 참 단점은, 단점은 자기가 다른 사람을 위하지 않은 거, 다른 사람에게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하지 안한, 다른 사람을 위하지 안한, 다른 사람을 상전으로 섬기지 안한,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지 안한 것, 다른 사람을 위하지 안한 것, 자기가 다른 사람을 위하지 아니한 그것이 자기의 단점입니다. 상대방의 장점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 위한 것이 그것이 장점이라.

요 장점 단점, 요래서 자기의 단점에 대해서 할 일이 몇 가지, 손가락으로? 할 일이 몇 가지? 또 안 할 일이 몇 가지? 다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 할 일이 몇 가지? 안 할 일이 몇 가지? 녜, 둘 다 그래 들었는데, 요렇게 해서 요 세 가지를 우리가 숙달시키도록 합시다.

해서, 이제는 누든지 턱 만나면, 그전에는 만날 때 말이요, 그전에는 만나면 ‘내가 이 사람 만나 가지고 내가 무슨 어떻게 해야 유익을 볼까? 이 사람 만나 가지고 내가 손해볼 게 뭐꼬? 해될 게 뭐꼬?’ 자기 이해부터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위하는 마음부터 먼저 있던 요놈을 죽이자 그말이오.

다른 사람 위하는, 자기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것, 다른 사람을 높이 여기고 낫게 여기는 그것이,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그것이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받은 영생하는 생의 법칙입니까, 그것이 도덕의 일이요 착한 일입니까 자기 사는 생의 법칙입니까? 자기가 사는 생의 법칙이라 그말이오.

또 다른 사람의 장점 찾고 자기의 단점 찾는 그것이 착한 일입니까 다른 사람 위하는 일입니까 자기 생의 법칙입니까? 자기 생의 법칙입니다. 요것을 꼭 자기 생의 법칙이라. 자, 생의 법칙을 지키면 상급이 있습니까, 상급이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생의 법칙을 지키면 뭐 있습니까? 생의 법칙 지키면 삽니다. 생의 법칙을 어기면 손해갑니까 어떻습니까? 죽습니다. 요거 알아야 돼요. 새가 자기 법칙 어기면 죽습니다. 또 고기가 자기 법칙 어기면 죽습니다.

요것이 중생된 자의 사는 법칙인데 중생된 자가 자기의 단점 보고 찾는 요 생활이 중생된 자가 사는 법칙이요 요걸 지키면 영생하고 요거 어기면 죽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는 요거 살면 자기가 영생하고 요거 어기면 생명이 죽습니다. 그 시간 산 거는 그만 한 시간 살았든지 일 년 살았든지 다 죽었습니다. 다 죽어서 없어요.

요걸 상급으로 하지 말고 생각지 말고 요것이 하나님이 우리 중생된 자에게 생의 법칙으로 줬다 하는 요걸 단단히 가지십시오. 요걸 가지면 요만해도 성경이 한 꺼풀 들어갔기 때문에 요것만 가지면 모든 성경 볼 때 쫙쫙 쫙쫙쫙 자꾸 뚫고 들어가요. 자꾸 뚫고 들어가요. 이래서 자꾸 하나만 알면 그다음에야 뭐, 그다음에 그대로 나가면 그 수평선에서는 그 범위 내의 거는 그 정도의 거는 다 알게 돼집니다, 하나만 알면.

이 생의 법칙인데 ‘그라면 자꾸 다른 사람만 위하고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 장점만 보고 제 단점만 보고 이 자살 행위 아닌가?’ 이라는데 그다음에 5절 이하에 했어. 5절 이하에 예수님이 일생 동안 산 생활이, 살고 죽은 전생애가, 예수님의 전생애가 누구 위해 했습니까? 누구를 위해 했소? 예수님의 전생애가 누구를 위해 했습니까? 전부 하나님 위했습니다. 전부 하나님 위해 했소.

하나님 위했는데 하나님 위한 생활이 결과적으로는 누구 위했습니까? 우리 죄인들 위했습니다. 그라면 예수님은 뭐 거지됐구만. 예수님은 그라면 누가 위합니까? 예수님은 누가 위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위했어.

얼마나 위해 줬습니까?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으로 뛰어난 이름, 하늘과 땅의 것과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주님을 주라 시인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했어.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이 세상 법칙과 확 바꿔서 정반대로 백팔십도의 전환된 법칙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이 법칙을 모른다 그말이오. 이러니 이 법칙을 알아야 되지, 이 법칙을 알고 살면 그 사람 모두 등신으로 봐요. ‘저 사람 등신이라. 저거 지금 다른 사람의 장점만 보고 저 단점만 보고 그 등신이라. 등신이라.’ 등신으로 안 보면 ‘저거 아마 속에 무슨 죄가 있는가보다.’ 이러니까 세상에서 이 생활하기는 지금 참 좋은데 마귀 이놈이 방해하지 뭐 방해해도 할라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요 생의 법칙이 영 다르다 하는 그것을 단단히 여러분들이 기억하십시오.

자, 요번 주간에는 사람 서로 만나면 척 만나면 누구부터 먼저 생각해요? 척 만나면 누구든지 만나면 자기 먼저 생각해요 남 먼저 생각해요? 남 먼저 생각해요.

남 먼저 생각하면, 남 먼저 생각하면 ‘요거 어째 뽈가먹을까, 요거 어째 속여먹을까, 요걸 꼬와먹을까?’ 그래 생각하는 잡아먹기 위해서 남 생각합니까 자기가 남을 위해서 잡아먹히고 남을 위해서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생각합니까? 유익되기 위해서 생각해. 요러니까 요거 단단히 고쳐야 돼요.

하루 사람 열 명 만나도 열 명 만나면 열 명 만난 그 전부 만나면 저부터 생각합니다. 만나면 저부터 생각하는 사람만 만나지지 남부터 먼저 생각하는 낫게 여기는 사람은 하루 종일 가도 한 사람도 못 볼 때 많습니다. 알겠습니까? 그거는 다, 왜 그래? 다 사망법으로 산다. 그만 그래 사는 건 전부 사망법이라.

자기 장점, 자기는 자기의 그만, 보면 자기 장점만 보고 남의 단점만 보고, 장점 자랑하고 남의 단점 헐고, 자, 이것은 성도의 생의 법칙입니까 사망의 법칙입니까? 사망의 법칙이라.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 위했고, 하나님 위한 그것이 결과는 사람 위함 됐고, 예수님은 누가 위했어? 아버지가 위했어. 우리 생활은 다 그래야 됩니다. 요것을 단단히 가지고 요거 생의 법칙으로 삼아 가지고 요 법칙에 딱딱 맞추면 뭐 성경 많이 몰라도 돼요. 성경 많이 몰라도, 요 몇 가지만 하면 다 들어맞아. 다 맞아버리요. 요걸 모르니까 요 각도로 가르쳐 설명해 주기 위해서 하고 조 각도로 설명해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것 다 그만 같은 법칙이기 때문에 몇 가지만 알면 다 아요, 다.

그러니까 우리 생활은 전부 주님만 위해서 생활해. 전부 주님만 위한 생활 되는데 주님만 위한 생활이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이웃을 위한 생활이 아니면 안 됩니다.

주님만 위한 생활이 이웃 위한 생활이 결과적으로 안 되면 안 되고 또 그다음에 두번째는 뭐이 안 되면 안 됩니까? 두번째는 뭐이 안 되면 안 돼? ○○○조사님 모르는 거 같은데. 예? 자기를 위하는 생활 돼? 졸며 그라면 성령 안 가. 속에 맛이 없기 때문에 그래. 그라면, 그라면 능력 안 가.

그래. 우리는 첫째는 주님 위한 생활, 둘째로는 이웃 위한 생활, 셋째로는 자기 위한 생활 이게 돼져야 돼. 주님은 누가 위했어요? 내가 위했지. 이웃은 누가 위했어요? 내가 위했지. 나는 누가 위해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주시지. 요것은 변동 못 하는 영생하는 법칙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중간반 무보수 반사 선생님들은 중간반 요번에 거창집회에 데리고 가는데 구역장하고 의논을 잘 해서 하나도 지장이 없도록, 또 미리 알려야 구역장들이 준비하지 미리 준비 안 하면 안 됩니다. 미리 준비해서 아무 지장 없이 모든 일이 다 형통해지도록 그렇게 합시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 생각해서, 생각하고 생각해 자꾸 생각해서 요 도리가 요리 맞춰도 맞고 조리 맞춰도 맞고 어디로 맞춰도 맞고 다 맞아야 돼요. 요리 맞추니까 맞지만 저리 맞추니까 안 맞으면 안 돼. 이거 진리가 틀린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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