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1980. 4. 27. 주후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혹 노트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넓이는 좀 좁고 길이는  넓이의 세 배쯤 되도록 네모로 그림을 하나 그려보십시오. 또 그 안에 또 그런  것을 그와 같이 그리는 데 겉에 그린 것보다 칠 팔 분지 일쯤 되도록 작게 하나  그려보십시오. 좀 뒤로 붙여서, 또 안에 그린 것은 삼분지 일은 위로 가도록  하고 삼분지 이가 밑으로 오도록 그것을 가운데를 잘라 보십시오.

 그리고 위에 작은 칸에다가 조그마하게 동그라미를 치더니 네모 입구(口)자를  치든지 조그마한 것 하나 만들어 보십시오. 위에 조그만 칸에다가, 또 밑에 큰  칸에 칸과 칸 사이 앞에 또 동그라미를 하나 쳐보십시오. 또 거기서 오른 편으로  동그라미를 하나 치고 또 왼 편에 동그라미 하나 치십시오. 또 그 칸 밖에 입구  자 같은 두 개밖에 바로 그 앞에 동그라미 하나 쳐보십시오. 또 그 밑에  동그라미 하나 쳐보십시오. 그러면 이제 성전의 그림이 되겠습니다.

 제일 처음에 커다란 입 구(口)자 쓴 것이 성전 울타리 안에 든 것입니다. 가에  입 구(口)자 쓴 그게 성전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울타리 안에 커다란 것이 있고  울타리 안에 그건 크고 또 그 안에 그와 같은 기다라이 네모잡이 하나 있지요.

그것이 성전입니다.

 그밖에 기다란 그거는 성전 밖마당이라 하는 것이요. 이방인의 마당이라  그렇게도 말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작은 칸, 큰 칸이 있는데 앞에는 큰 칸이고 뒤에는 작은  칸인데 작은 칸을 가리켜서 지성소라 말씀했고 앞에 큰 칸을 가리켜서 성소라.

또 그 뒤에 작은 칸을 가리켜서 지성소라. 또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둘로 나눈  그 경계선 그것을 가리켜서 휘장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휘장으로 경계가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또 지성소라고 하는 그 뒤에 작은 칸에 하나 동그라미 쳐놓은 그것을 법궤라  합니다. 법궤를 둔 자리입니다. 또 법궤 위에는 양쪽에 그룹 천사를 만들어  가지고서 법궤 위에 놨습니다. 천사를 만들어놓은 그 그룹 위에가 속죄소입니다.

속죄소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또 그 앞에 작은 칸과 큰 칸 사이에 경계 된 것은 작은  칸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큰 칸에는 제사장들이 있는 곳입니다. 큰 칸과 작은 칸  사이에 그것이 휘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휘장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가로막혀  있는 죄를 상징해서 해놓은 것입니다.

 그 앞에 휘장 앞에 바로 있는 금향로라 하는 금으로 만든 향불 피우는 화로가  있습니다.

 또 거게 조금 나와 가지고 오른편으로 진설병이라는 떡상이 있습니다.

 또 그보다 조금 나와서 왼편으로 일곱 등대가 있습니다. 일곱 금으로 가지고서  일곱 촛대를 만들어서 등불을 켜는 일곱 등대가 있고, 이제 성소 안에는  그것뿐입니다.

 성소 바로 입구에 거게 세수통이 있습니다. 물을 담아 놓은 세수통이 있습니다.

또 그 앞에 놋쇠로 만든 제단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을 때에 이렇게 지어라 도면을 주셨고 또 이대로  성막을 지었을 때에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성전이 이렇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기다가 축복을 해서 이스라엘이 그때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이 성막 지은 그 도면대로 그 후에 성전을 지을 때도 그렇게 성전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에 로마 병정들에게 다 훼파를 당하고 난  그 후에는 다시는 성전을 짓지를 못하고 성전 지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으로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이 다 절단 나버렸고 절단 난 그때부터 신약교회가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성전을 이제는 따로 그렇게 구별되게 짓지 아니 하고  신약 교회를 가리켜서 성전이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신약교회는 성전인데 이 교회가 사람들이 말하기를 보이는 교회가 있고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보이는 교회는 우리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가지고 있는 이것을 누구든지 볼 수  있는 것, '아 저거는 교회다, 저들은 예수 믿는 단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볼 수 있도록 되어있는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라 그렇게 하고 볼  수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볼 수 없는 교회는 이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그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된 것,  하나님과 사람이 사상이 하나되고 또 그 본질과 본성이 합해서 하나가 되어서  이렇게 성화 된, 하나님과 사람이 진리 법칙대로 결합이 되어진 그것을 가리켜서  교회라 하는데 그것은 육안의 눈으로,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생활만 보여지고 행동만 보이지지 하나님과 그 사람이 합해진 거는 보이지  안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합해진 그 행동은 사람 눈에 보이지지요. 그래서 보이는  교회라 보이지 않는 교회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구약교회는 좀 어릴 때가 돼 나서 구약교회는 신령한 면이 좀 어리고 약하고  신약 교회는 신령한 면이 장성하고 보이는 이 외부적 세상 면이 좀 빈약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나 오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나 정도가 차이가 있지 진리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때와 꼭 같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그 나타내심이 그때보다 지금은 더  신령적이면서 더 정확하고 고상하고 그때는 지금보다 신령면이 어두우니까  물질적이며 세상적이며 육체적인 그 면이 크고 신령한 면은 그 속에 겨우 움싹  같이 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역사는 보면 처음에 어린아이에게 행하심과 같이  그렇게 어리고 쉽고 또 간단하게 외부에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서 표시하셨고  차차차차 외부 표시보다 내부 표시를 더 강하게 하셨고 점점 장성하게  신령면으로 진리면으로 이렇게 장성한 그 방편으로 표현도 하시고 인도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종교와 같이 기독교도 진화적인  종교이다. 기독교가 차차차차 발달되고 성장돼서 오늘의 기독교가 됐다.' 그렇게  말하는 그 말은 이단들이 하는 말들입니다.

 이방 종교는 모두가 다 진화적인 종교입니다. 그것이 차차차차 변화돼 가지고서  그게 성장하는데 따라서 그 시대를 따라서 깨달음도 달라지고 또 모든 게  달라져서 이렇게 세상을 따라서 그것이 성장 나간 것이 그것이 이방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이방종교는 처음에 시작했던 것과 오늘의 그 종교와가 아주 다릅니다.

모든 만물관이 다 다릅니다. 그들이 말하는 구원관도 다르고 신관도 다르고  세상관도 다르고 생명관도 다르고 또 빈부 귀천관도 달라서 모두가 다릅니다.

 그러기에 그때그때 시대에 맞춰서 그 시대 사람들이 긍정할 수 있는 것으로  자꾸 맞춰서 따라 갔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이리 갈 때에는 거기 따라가  가지고 그게 맞도록 하고 이리 갈 때에는 여기 따라가서 맞도록 하고 이렇게 한  것이 이방 종교나 철학이나 도덕이나 모든 사상들이 이렇게 성장돼 나온 그  상태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세히 변론을 하고 상고를 하면 진화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환하게 잘 알게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기독교는 창세기 1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있는 그 에덴동산 그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치나 오늘 이치나 그때  가르친 사망이나 생명이나 오늘 가르친 사망이나 생명이나 그때에 죄나 오늘의  죄나 그때에 범죄한 동기 목적 과정 방편이나 오늘의 동기 목적 과정 방편이나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옛날 초대에 창세기에 대한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구약에 많은  성경이 필요 없고 신약이 필요 없습니다. 없어도 꼭 같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알린 것뿐이지,  그런고로 기독교에는 만물관이 꼭 일관입니다. 이렇게 한번도 흔들림이 없이  만물관이 일관입니다. 신관도 같고 세상관도 같고 생사관도 같고 구원관도 같고  모든 빈부 귀천관도 같고 인생관도 내세 금세관이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뿐이고 둘이 아닙니다. 단일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자기가 어디서 구원을 이루었든지 어디서 자기가 사람이  됐든지 행동이나 사람이나 지식이나 모든 것이 이다음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나타날 때에 그 그리스도 교회에 단일교회로 그 안에 들어가서 합해질 때에  그때에 조금도 이색진 것이 없어야 합니다. 거게 마찰이 없어야 됩니다.

 천 교회가 합해도 내나 한 교회 만 교회가 합해도 한 교회 육천 년 전의 사람의  사상이나 오늘 사람의 사상이나 그때에 지식이나 오늘의 지식이나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예수 믿는 사람이면 가서 딱 만나니까 모든 것이 한 사람 같이 꼭  같습니다. 이래야 구원이 된 것이지 오늘에는 이 교파와 저 교파가 합해지지를  안 합니다. 충돌이 있습니다. 또 이교 인과 저 교인이 합해지기가 어렵습니다.

 또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교회와 오늘 교회와 육천 년 전 교회와 오늘  교회가 이렇게 합해질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부 잡것입니다.

이건 전부 불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바로 되는 것은 한 성령으로 된 것이고  완전자이신 한 분 하나님의 뜻으로 된 진리로 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로  요대로 된 사람이라면 억억만 명이라도 내나 한테 뭉치면 희로애락이, 사상이,  지식과 비판과 평가가 소원이 움직임이 같습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시대를 따라서 그 시대에 물이 들고 또 지역에 따라서 그 지역에 물이  들고 그 나라나 사회에 따라서 그 나라와 사회의 물이 들어서 그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이 땅위에 있는 교회들입니다. 그 색깔은 다 이것은 벗은 것들이요 다  심판해서 제거될 것들입니다.

 다만 한 성령으로 한 그리스도의 대형 대행 대생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은 이  한 의로 또 하나님의 한 뜻인 이 한 진리 한 진리로 이렇게 뭉쳐진 것이요  이렇게 된 사람이며 이렇게 된 사상이며 이렇게 된 생활, 요것만 그리스도  심판에서 다 심판을 면하고 무궁한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  나머지는 전부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다 제거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진리대로 된 사람, 영감과 진리대로 된 행위, 영감과 진리대로 된 일,  영감과 진리대로 된 단체 이것만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해서 무궁한 하늘나라에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몇 사람이 모였든지 성질이 꼭 같습니다. 사상이  같습니다. 하나님 한 분의 속성 그대로의 닮아서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우리는  피조물로 하나님은 원형이라고 하면 우리는 거게 모형 원형 모형 그것이 차이  있는 것뿐이지, 질은 꼭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책자들을 내놓은 것 보면 세상에서 개성이라 하는 그것이 인정된다  또 이런 저런 형태 모든 형태들 그런 것이 다 하늘나라에 용납된다. 그렇게들  해석을 해서 사람들을 많이 미혹을 시킵니다. 그것이 안됩니다. 전부가  그리스도라는 참사람, 완전한 사람, 참 사람이 예수님의 인성이 완전한 사람이요  참 사람인데 완전한 사람, 참사람인 예수님의 인성 꼭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과  꼭 같은 자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말씀했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의  형상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과 꼭 같은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이요. 우리는  예수님과 꼭 같은 예수님의 형상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첫 열매라면  우리는 그 다음 열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 받지 아니하고 영생으로 나아갈 것들은 다 그 자체가 완전한 것들이야  됩니다.

 완전한 행위, 완전한 지식, 완전한 사상, 완전한 사람, 완전한 희로애락,  완전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 완전성을 가진 것이 아니면  이것은 전부 정죄 받아서 멸망 받습니다. 이 완전성 가진 이것은 완전성이니까  필연적으로 영원성을 가진 것입니다. 완전성 영원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가감이 없습니다. 영원 불변성을 가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완전성과 우리의 완전성이 다른 것은 하나님은 다시는 성장할 수  없는 완전성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을 향하여 자라가고 닮아가기 때문에 이  완전성은 회고적으로 뒤를 돌아볼 때 이미 되어진 그것은 하나님과 꼭 같은  불변성의 완전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닮아가기 때문에 미래적으로  발단적으로 앞으로 발달해 가는 발단적으로는 변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함은 있어도 그게 완전성이요 영원성입니다. 이것을 조성해 나가는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신령한 집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땅위에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나타낸 문서계시 이 진리  신구약 성경 말씀은 진리로 나타난 법칙인데 이 법칙대로 대충 자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이 법칙대로 대충 만들어 가지고 그러면 이 법칙대로 됐으면 다냐?  아닙니다. 이 법칙대로 된 이것은 껍데기요 그 안에는 성신의 감화 감동대로  돼야 됩니다. 성경은 성신의 감화 감동을 맞이하는 그 길잡이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만날 수 있고 접할 수 있고 하나님과  이렇게 결합할 수 있는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감과 진리대로  되지 아니한 것은 아무리 커봤자 위대해 봤자 세계가 놀래게 웅대해 봤자 이것은  그리스도 심판에서 다 정죄 받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이라고 비유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하나님이 그 공적을 시험할 때에 불로 시험하는 데에 타지  아니하는 자는 상이 있고 영광이 있다 말입니다. 타는 자는 수치를 당한다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만 그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불로 시험한다 그 불은 또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의  불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일차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서 심사를 해서 아무리 진리로 이리 깎고  저리 깎고 이리 쑤시고 저리 흔들어도 이 진리에 걸릴 것이 없는 것이 일차  심판을 면합니다. 진리에 걸릴 것이 없는 것이 일차 심판을 면하고 진리에  거리낌이 없어도 그것으로 다냐? 그 다음에 영감에 이것이 배치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그것이 심사돼서 이 둘이 심사되면 답니다. 진리에 심판은 이치에 맞은  것이고 영감의 심판은 하나님의 그 신성과 맞은 것입니다. 신성과 우리의 인성이  결합되는 것이요. 이 진리의 심판에서는 자기와 자기 행동이 진리와 맞은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 밑에 있고 영감 밑에 있고 또 인간은 이 진리 밑에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택한 자들입니다. 택한 자 밑에 천군 천사가 있고 천군  천사 밑에 모든 만물이 있고 만물 밑에 불택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지어진 그것을 가리켜서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했습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된 행위 그것을 가리켜서 반석 위에 지은  집으로 비유했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것은 아무리 자기의 일생 건설이 자체  건설, 행위 건설 또 명예나 권위나 영광 건설이 아무리 웅장하다 해도 그  밑바탕이 인본으로 인간이 밑천이 돼 가지고서 된 것은 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받고 맙니다. 그것은 역연 타락하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되어진 것 그것을 가리켜서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이 성전에 대해서 성전이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구별한, 구별된 집이라 그 말입니다. 전이라 말은 집  전(殿)자인데 거룩 성(聖)자는 구별 구별한 집이다. 구별된 집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보면 제일 처음에는 모든 이 이방의 이 가옥들이 있고 집들이  있고 사회가 있고 모든 이런 조직들이 있는데 거기에 이 커다란 울타리를 해  가지고서 그 밖마당까지 그 안에 다 들었습니다. 이것은 성전이라 이랬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교회를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과 교회를 일차적으로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과 교회를 일차적으로 구별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방의 마당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모든 안 믿는 사람들을 접촉해  가지고 사는데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자기와의 또 구별을 해야 됩니다. 제일  처음에는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그것이 세상 속에 성전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이 교회 안에 그 안에 이방인의 마당이 있습니다. 이 교회 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저는 이방인이다 저는 믿는 신자다' 이래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우리는 구별하는 구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교회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믿음이 전혀 없다. 믿음이 어리다 저 사람은  택한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교회 나오기는 나오지만 아직도 택한  사람이라든지 믿는 사람이라든지 그런 아무런 표적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과  교회를 구별해야 되고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그것이 이방인의 마당입니다. 그걸  가리켜서 성전이라 합니다.

 그 다음에 구별할 것은 성소를 구별해야 됩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되고 그 다음에 그 안에  들어가서 구별할 것은 신앙 지도자와 지도자를 구별해야 됩니다. 신앙 지도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는 참 제사장인지, 이거는 제사장이 아닌 것인지 제사장과  제사장 아닌 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물론 택함을 받아서 믿는 사람이지만 누구나  다 제사장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 지도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지도자는  나기 전 부터 벌써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지은 그것이 나와 가지고서 신앙  지도자가 된다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인지 지도자  아닌지 그것을 구별하는 것이 이제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구별을 다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지성소입니다. 성소를 지나서 지성소입니다. 지성소, 지극히  구별할 곳. 지극히 구별할 것은 무엇인고 하니 법궤와 또 그룹과 속죄소에  계시는 하나님, 이제 진리와 하나님.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해야 됩니다.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이 지성소 안에 구별이요. 성소 안에서는 제사장과 제사장  아닌 사람 제사장과 제사장 아닌 사람을 구별해야 되고 그 다음에 그밖에 나와서  성전 밖마당이라고 하는 거기서는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할 것.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교회 나오지만 아직 이방인이라 그 말이요.

아직까지 안 믿는 사람이라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되고 성전  울타리 밖에 거게는 모든 이 세상 것과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으면 성전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교회를  우리는 언제든지 구별할 것. 교회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언제든지 따로  있습니다. 또 교회의 권위와 세상의 권위가 따로 있습니다. 교회의 법칙과  세상의 법칙이 따로 있습니다. 구별할 것을 말하면 숫자가 많겠습니다. 교회와  세상과를 언제든지 구별하고 살아야 됩니다.

 '이는 교회라' 혹 생각하기를 해방 직후에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해방,  믿는 사람으로 이 참 공로가 있다해서 해방 직후에는 또 이 예수교는 친미의  도라 안 믿는 사람은 미학이라 미국에서 와 가지고 선교만 했지 미학 아닙니다.

미국 가 가지고 미국에서 선교해 준 것뿐이지 전도해 준 것뿐이지 미국도가  아닙니다. 실은 동양 도지 서양 도가 아닙니다. 유태나라는 동양에 속했지  서양에 속한 것 아닙니다.

 그때에 그러니까 교회가 저 사회에서 여게서 이 무슨 행사가 있는데 자, 모두  기를 가져와서 꼽아라 이러니까 시청에서 꼽은 기가 있으니까 또 거게는  도청에서 꼽은 기가 있고 군청에서 꼽은 기가 있고 또 은행에서 어디서 무슨  기관에서 꼽은 기가 있으니까 교회도 여게 갖다가 꼽아라 이 교회는 또 교회기를  갖다가 꼽았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서 거기 가담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성전이라는 것은 세상에 뚜렷이 따로 구별되기 성전이라 그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거기는 성전이 없습니다. 이것과  이것을 구별할 게 없습니다. 꼭 같으니까 구별할 게 없으니 이색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과 그분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 말미암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전부가 다 하나이기 때문에 거기는 성전이 없습니다. 그때에 그  기를 꼽는 것을 그것이 '교회는 세상이 아니다. 세상과 교회는 구별해야 된다.

그거는 아니다.' 이래가지고 신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 교회와  세상은 구별해야 된다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차차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그것도 별로 없어서 신강이 많았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구별할 것.

 또 그 교회는 교회입니다. 교회면 다 교회냐 이제는 교회와 교회를 구별해야  됩니다. 그것이 뭐이지요 그것이 성막도로 말하면 어디 속한 것입니까? 이방인의  마당에 속한 것입니다. 성전 울타리 밖에서, 그거는 세상이요 세상에 그  울타리로부터 이거는 성전이라 그거 구별 있었습니다. 성전은 구별한 집이라  말입니다. 그것이 세상과 교회에 구별하라는 제일 껍데기 구별 제일 외부적인  구별.

 그 다음에 있는 구별은 무엇입니까? 성전 밖마당이라는 구별입니다. 밖에서는  성전이지만 안에서는 성전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렇게 알지만  믿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제직회를 모여도 '저  말은 이방인의 말이라 저거 믿음의 말이 아니라 불신의 말이라 저 주장은  그러하다'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믿는 언행심사와 안 믿는  언행심사 자기에게서 믿음의 것과 믿음의 것이 아닌 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교회에서 구별할 것. 이것이 성전 밖마당으로 구별하는 이렇게 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형식으로 이런 모양을 만드셨다 그  말이요. 이것이 신약 교회에 신령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방인의 마당 거게서 교회 안에서 구별해야 된다.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는 이제 성소입니다. 성소에서는 제사장을  구별해야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인지 스스로 제가 된 제사장인지  가짜 제사장인지 진짜 제사장인지 제사장을 구별해야 됩니다. 신앙 지도자를  구별해야 됩니다. 그라면 인간으로서는 구별 다 했습니다. 그 이상은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다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뭐가 남았느냐? 그 다음에는 지성소가 남았습니다. 지성소는  휘장을 열고 들어가야 됩니다. 휘장은 하나님 인간 사이에 가려져 있는  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손대지 아니하고 저절로 찢어졌습니다. 그 실하게 해놓은 것이 짜개졌습니다.

손을 대지 아니했는데. 이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악의 담이 헐어졌다는 것을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손대지 아니하고 찢어져서 그 증거를 했습니다.

 지성소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해결하고 난 다음에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제사장 일년에 한번만 소의 피를 가지고 이  휘장을 열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제를 지냅니다. 만일 피 없이 들어가면  즉사합니다. 몇이든지 즉사합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만홀히 여겨서 아무 피나  가지고 들어갔다가 즉사하고 아무데나 들어갔다가 즉사해서 하나님의 규정대로  일년에 일차 대제사장이 소의 피를 가지고서 지성소에 한번만 들어갔습니다.

 그 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 것인데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생, 대신인  결합이라 말입니다. 이것으로서 된 이 공로를 힘입어 자기가 죄 되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을 할 때에 그 다음에 지성소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지  아니하고 지성소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지금은 지성소에 들어가면 육이 죽는 게  아니라 지성소에 들어가면 그만큼 자기는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됩니다. 피나  죽음이나 같은 마찬가지입니다. 범죄가 됩니다.

 죄를 깨끗이 청산해야 그 다음에 진리를 자기가 알 수가 있고 진리를 아는 것은  입술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지식으로 아는 거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 진리에  대한 자기가 어느 정도 실감을 가지며 어느 정도 그 진리에 대해서 권위를  인정해서 그 진리가 자기를 주관하게 되느냐 그 진리가 자기에게 어느 정도  권위가 있어지느냐 권위가 있어지는 거 만치 그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진리가  '죽어라' 할 때에 죽지 않는 자는 그 진리에 대해서 깨달음이 없는 자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요. 진리를 아는 것은 진리를 알았으면 그 진리와 자기와  자기 행위는 일치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대로의 죄를 해결을 하면 이제 진리와 합해집니다. 진리 세계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에 있는데 들어갑니다.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진리와  자기와 하나가 됩니다.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 그룹 위에 천사 위에 속죄소 사죄 칭의 새생명 하나님과 결합된 사죄의  순서를 밟고 칭의의 순서를 밟아 하나님과 화목의 순서를 밟아 하나님과  하나되어 생명 되는 그 세계,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으로서 이제 구별은 다 된 것입니다. 구별 처음에 세상에 성전이  저기 성전이라 하는 구별된 집이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를 구별할 것, 교회는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이 아닌 교회를 발견하고 세상이 아닌 교회를 자기가  인정할 것. 이건 세상이 아니고 교회다 교회를 세상하고한테 타면 안됩니다.

앞으로도 교회는 세상 행사에 동참 못합니다. 세상으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 있습니다. 성전은 이 마을도 성전이라. 저 마을도  성전이라. 이 큰집이라고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성전 밖에 있는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있는 것이 그게 성전입니다. 따로 있습니다.

 이러기에 세상과 구별되어 있는 교회, 이것을 말한 게 여러분들이 잘 들려지지  안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별하는 이게 잘 들려질 리가 없습니다. 이게 안  들리면 아직까지 감감 합니다. 무책임하고 듣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교회와 세상을 일치시키는 세력이 강하게 나옵니다. 목회자가 누구든지 장로로서  누구든지 교회의 책임자로서 누구든지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지 않고 혼합을 할  때에 구별을 하면 생명을 주지 않고는 구별을 못합니다.

 소련에도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이북에도 교회가 있습니다. 중공에도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교회는 세상과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의 이름만  교회지 그 정치에 따라서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것은 뭐 임원 위원회라 이거는  뭐 지방 무슨 회라 이거는 무슨 행정이라 이름 붙여 놓은 것 모양으로 그 정치  아래에 교회라는 종자도 하나의 기관으로 되어있는 그것이 되어있지 교회와  세상이 이거는 합할 수 없는 구별되어 있는 그 구별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북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교회가 없습니다. 이북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교회는 없어졌습니다. 사회 교회는 없어졌고 가정  교회도 없어졌고 다만 개인 교회는 있습니다. 개인 교회는 지금도 거게서 세상과  자기의 신앙과는 구별. 세상과 신앙과는 구별. 물론 그 정치 밑에서 성경에  위반되지 안한 것은 얼마든지 복종하지만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것은 성경  법칙에 맞기 때문에 성경 법칙 복종으로 복종하는 것이지 성경 법칙에 위반될  때에는 죽으면 죽었지 복종하지 안 하는 그것이 그 신앙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 교회는 있습니다. 가정 교회도 없소. 사회 교회도 없습니다.

시대 교회나 그 국가 교회도 없습니다. 어디서 없어졌는가 없어진 것은 세상과  교회가 구별되는 그 구별을 다 뜯어 없애 버렸기 때문에 이거는 이름은 그래  있지만 세상하고 한 덩어리 됐습니다. 그 세상은 교회와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개인으로서는 그 세상에서 오만 짓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정치도 사업도 모든 거 이런 것 다 할 수 있지만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세상 행사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나는 교회는 교인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국민 노릇을 하고 하나의 그 사원 노릇을 하고 하나의 가족 노릇을 하고  이라는 것이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못합니다.

 또 자기 개인 교회라는 교회도 자기는 개인 교회이기 때문에 자기 개인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 한 분의 통치를 받아 가지고 움직여야 되지 하나님 한  분의 통치를 받지 아니하고 그저 여기 가면 이 통치 저기 가면 저 피동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어디든지 그 개인은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하나님의 성전 법칙대로 자기는 존재해야 되지  이것을 버리고 어디든지 감염돼 가지고 속화돼서 그대로 하면 벌써 그 개인  교회가 절단 나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과 교회는 구별할 것 제일 외부. 그 다음에 교회 안에 들어와서 이방인의  마당. 신자와 신자를 구별할 것. 교회와 교회를 구별할 것이라 말입니다. 자기가  생활해도 그것 성경에 말하기를 새사람 옛사람 그렇게도 말하고 참사람 거짓  사람이라 그렇게도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 한사람에게서도 구별이 뭐냐 '아,  요거는 옛사람 행위다 요거는 새사람 행위다. 이것은 참사람의 노릇이다. 이거는  거짓부리 사람이다. 이거는 참 내다. 이거는 거짓 내다.' 요것은 구별하는 것이  요것이 성전 밖마당에 속한 것입니다. 성전 밖마당을 가지고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는 무엇을 구별합니까? 성소. 성소에는 누구든지 출입하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라야 출입합니다. 제사장 구별입니다. 성소에서는 제사장  구별. 그 안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과 사사롭게 되어진 그것을  우리는 구별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내 신앙 지도를 신앙 교훈을 하는데 이게 참  양의 목자인지 양의 껍질을 입고 속에는 양을 삼키는 이리인지 껍데기는  목자지만 속에는 도적이요 강돈지 신앙지도에 대해서 구별을 해야 됩니다.

이러면 인간 구별은 다 했습니다. 여기서 인간 구별은 다 했소.

 이제 그러면 몇 가지 구별했습니까? 모든 세상 속에 있는 성전. 성전 안에  들어가 보니까 밖마당 그 다음에 보니까 성소 세 가지 구별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가지 구별할거 남았습니다. 그거는 뭐인고 지성소.

 지성소에서는 무엇을 구별하는가? 법궤와 천사 옹호 위에 예수님의 세 가지  속죄로 된 속죄소 하나님과의 모든 삐뚤어진 것이 다 해결이 되고 하나님과  결합이 된 그것이 속죄소입니다. 거게는 법궤는 진리를 상징했고 속죄소는  하나님을 상징했습니다. 그 진리와 하나님 영감과 진리를 구별할 것 성경 말씀과  영감을 구별해야 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구별입니다. 지성소의 구별입니다. 이  이상은 구별이 없습니다. 여기서 최상의 구별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내로라"  할 때에 어떻게 반가운지 예수님을 가서 부활하시고는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금했습니다. "날 잡지 말아라. 내가 곧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다. 부활은 했지만 아직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이 말은 지성소의  법궤 위에 법대로는 했지만 법대로는 했지만 천사들의 옹위로 속죄소 하나님으로  더불어 너거 문제에 대해서 대속의 완성 사죄도 했고 칭의도 해서 심판을  면했지만 하나님과 화합이 되는 하나님과 결합을 시키는 이 일이 아직까지  미결이 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잡지를 말아라 손을 못 댔습니다. 조금 후에  다시는 이래 다시 나를 만지라 했습니다. 다시 만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 공부에 첫째가 구별입니다. 첫째 구별을 이제 공부했습니다.

세상과 성전을 구별할 것. 또 성전 안에 들어가서 밖마당을 구별할 것. 또  밖마당 안에 들어가서 성소를 구별할 것. 또 성소 안에 들어가서 지성소를  구별할 것. 지성소 구별. 성소 구별. 밖마당 그 이방인의 마당이라 그래  말합니다. 밖마당 구별. 유태 나라에서 성전이 그 하나뿐입니다. 그 나라 중에  성전을 구별, 구별이 몇 가지 구별입니까? 성전 구별, 밖마당 구별, 성소 구별,  또 지성소 구별. 네 가지 구별 네 가지 구별을 언제든지 우리는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여게서 첫 구별을 통과해 가지고 둘째 구별에 가고 둘째 구별을 통과해  가지고 셋째 구별에 가고 셋째 구별을 통과해 가지고 넷째 구별에 가서 비로소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접하게 되고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고 구별을 배웠고,  또 둘째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전이라 말은 하나님이 게시는  집이라는 말입니다. 오전 예배 마치고 찬송하는 것 보니까 '사람 손이 지은 전에  어찌 계심 바랄까' 이런 예배당에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를 성전 삼아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또 여러분들 자기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처를 하시는 집입니다. 이러니까 주인이 흥하여 있으면 그 집이 윤택해  집니다. 집이 벌써 퇴락 됐으면 주인이 절단 난 증거입니다.

 그래서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 안에 계신다 말이요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이요 믿는 가정은 그 가정이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회 단체인데 단체나 그 단체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성령이라 말은 하나님과 성령이 다른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인데 우리 구원을 책임지고 나타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름을  성령이라 이렇게 표시했다 말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단체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짓고 나쁜 일을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지  안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 택한자들의 가정에는 그 가정이 어떻게 못되게 굴어도  하나님은 그 가정에 호주로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 가정에 주인공으로 계십니다.

또 우리 개인도 중생 된 사람이라면 벌써 중생 시키신 그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안에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집은 그 주인의 장중에 매였습니다. 주인이 뜯어버리려면 뜯고 주인이  수축하려면 수축하고 집 보다 주인이 큽니다. 주인의 세력에 따라서 그 집은  어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는 성전이라 한 것은 하나님이 내주해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어떤 데는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격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해서  하나님은 또 신랑이라 우리는 신부라 또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애정면  또 희로애락이 하나라는 것. 남편의 소유는 아내 소유 아니요? 남편의 그 모든  권세가 아내 권세 아니겠소.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존귀와 모든 부요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것들이 되어지는 그것을 표시해서, 그 면을 표시해서  하나님을 신랑, 우리는 신부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말로서는 딴  남인데 가장 밀접하게 합해지는 것 밀접하게 합해졌다가 나눌라 하면 당장  나눠지는 것 이러기에 하나님과 우리와는 무엇보다도 가깝게 결합이 이루어진 그  결합에 생애도 되어지고 당장에 하나님과 원수 되는 생애도 되어집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성전이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어떤 자로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데  전능으로 계십니다. 전능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전지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걸 믿어야 됩니다. 전지가 우리 안에 있고 전능이 우리 안에 있고 모든 주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완전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영원 불변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 우주를 창조하신 이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모든 것이 대  주재되신 이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것이 제일 큰 믿음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계시는데 우리 안에 계시면서 그 형체가 쇳덩이 모양으로 주먹  이만한 쇳덩이 모양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까? 이렇게 전지전능 완전 영원 불변의  영생의 주권의 대 주재이신 만 왕의 왕이신 만 왕의 왕이 내 안에 계시는데  계시면서 무슨 주먹덩이 만한 쇳덩이 같은 그런 형체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러면  좋기는 좋지만 우리 안에 쇳덩이 같은 거 하나 넣어 놓고 기다릴라하면 대단히  곤란스러울 것입니다. 어디 위에다 넣어 놓겠소 창자에 계시겠소. 곤란할  것이요.

 그러면 이 하나님이 우리 속에 큰 형체를 가지고 계시는 게 좋겠소 작은 형체를  가지고 계시는 게 좋겠소. 아주 형체는 없이 계신 게 좋겠소 형체가 없이 계시는  게 좋습니다. 아무 거칠 것이 없습니다. 형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 위에나 내  피에나 아무데도 조그마한 아주 세포 만한 형체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거슬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이 내 안에 계십니다.

전지가 계십니다. 완전이 계십니다.

 이러기에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이 멸해 멸한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멸해집니다. 이분이 완전이시니까  완전이 아닌 것이 거기 오면 멸할 것 밖에 더 있겠소. 비유컨대 빛이니까 어두운  것은 자연히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까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그분이 내 입을 통해서  당신의 말이 나타나고 내 수족을 통해서 당신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내 전  생활에서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무한하심과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평강이 당신의  전부가 내 안에 계셔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려고 작정하시고 이것이 하나의  목적입니다.

 이거 위해서 우리를 대속하셨고 우리 안에 진리로 성을 쌓으시고 진리 안에  당신이 내주해 계십니다. 진리는 우리의 내라는 인격 주체, 내라는 인격 주체  주격, 내 영. 내 영 안에 진리가 계시고 진리 안에 이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래서  내 전신 전체를 진리화 시킬라 하는 것입니다. 내 전신 전체를 진리화 시킬라  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진리화 시키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 알맹이를 내  전체를 하나님 화 시킬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화.

 이래서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 있으니 곧 뭐이냐?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말은 하나님의 완전 속성이 내 속성 안에 들어와서 내 속성이 하나님  완전 속성화 되어서 하나님의 완전 속성이 속성을 통하여 내 모든 생활에  나타나고 내 생활을 통한 이것이 모든 피조물에게 충만히 나타나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그 완전으로 충만케 해서 모든 것을 영생하도록  하려는 이것이 하나님이 건설하시고 계시는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단일성뿐입니다. 단일성의 하늘나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분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분과의 배치되는  이것은 멸해집니다. 이분이 속에 계시기 때문에 이분과 대립되는 것은  멸해집니다. 대립되는 것은 즉시 다 죽었습니다. 한시간 대립했으면 한시간에  움직인 정력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시간에  움직인 정력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만 그 다음에 남이 있는 것이 그 정력인줄  압니까? 아닙니다. 그 시간에 쓰여진 정력은 다 죽었습니다. 그 다음 거는 그  다음에 쓰기 위해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렇게 계시기 때문에 이분과 배치가 되면 그것은  자연히 죽고 이분과 일치가 되면 그 분이 그를 통해서 그 다음에 나타납니다.

이분과 일치된 것은 그것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분과 일치된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껍데기 피조물이란 껍데기가 있습니다. 피조물이라는  껍데기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껍데기 그것도 하나님 화됐기 때문에 은밀히  분석하면 창조주 피조물이 둘이 요소가 다르지만 전부 하나님 화됐기 때문에,  비유컨대 여게 어떤 전구가 있는데 그 속에 전기가 오면 그 전기의 빛이 전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 전구는 그 빛이 아니고 빛을 받아서 전구가  나타내지요. 그러나 그 전구가 붉은 전구면 붉은 색을 나타낼 것이고 푸른  전구면 푸른색을 나타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이런 기관에서 이런  특색으로 살고 저 또 기관에서 저렇게 살게 해서 어떤 사람은 목회자 어떤  사람은 상인 어떤 사람은 정치가 어떤 사람은 공무원.

 그것은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고 그가 나타내는 그 직책이 달라서 이 직책에 저  지위에 저 위치에 있어서 상업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고 공업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고 정치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고 학업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고 주부를 통해서 나타나시고 가정에서 호주를 통해서 나타나시고 그것은  그가 나타내는 그 자기에 맡은 직책이지 자기의 맡은 그 일이지 그 속에  나타내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신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과 배치가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일치되면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자기 중에 자기로 계십니다. 자기나 하나님이나 다름이 없소. 이래서  자기 중에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 자기가 보니까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작용하시는 그 작용이 자기에게 건너와서 자기 주관이 되고 그분이 안에서  작용하시는 것이 자기의 주관이 되고 자기 주관이 자기 밖에 모든 것에게 이제  대해서 주격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그것을 바울이 자기가 체험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쉽게 말해서 그 가정에 주님이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배치되는 그 일이 없고 하나님과 일치되면 그 가정에는  하나님의 전지가 나타납니다. 그 가정에는 하나님의 전지의 움직임이 전능의  움직임이 하나님의 완전의 움직임이 영원의 움직임이 영생의 움직임이 됩니다.

개인이나 가정교회나 이 사회 교회나 어떤 것이든지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자기 중에  자기로 계십니다. 표가 없기 때문에,  이래서 더럽히지 안 한다 그 말은 만일 새까만 검은 숯을 더럽히는 게  뭐입니까? 숯을 더럽히는 것은 숯에다가 하얀 칠을 하면 하야이 반질반질하게  칠했으면 숯을 더럽혔습니다. 더럽힌다 말은 그 본질 본성 거기에 변질 변성된  것을 가리켜서 더럽힌다 그렇게 말합니다. 숯은 검은 것이 깨끗한 것이요 '아,  숯 그것 참 깨끗하다' 하면 새카마면 깨끗하다 한 것입니다. 숯이 보니까 허연  것이 뭐 허여되니 숯이 허옇게 됐습니다. '숯이 더러워졌구먼요'  자기가 더럽히지 안 하면 그 말은 자기가 구속받은 대로, 구속받은 본질과  본성대로, 사죄 받는 대로 칭의 받은 대로 하나님과 결합된 그대로, 그대로  있으면 깨끗한 것입니다. 그대로 있으면 그 가정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 가정을  하나님께 속죄 받은 가정으로 칭의 받은 가정으로 하나님과 화합해서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 생명을 가진 가정으로 되어  있으면 그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그 가정은 전능의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전지의 가정이요 그 가정은 완전의  가정이요 그 가정은 영생의 가정이요 영원 불변의 가정이요 아무도 해하지 못  합니 다. 만일 그를 때려 죽였으면 그 가정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것으로  폭발됩니다. 썩은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유한한 것으로 심어 유한한 것이 일단 하나님으로 한번 폭발되고 나니까 무한한  것으로 화해져 버리고 맙니다. 죽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너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 모인 우리 믿는 사람  안에는 내 안에 전지가 있습니다. 뭘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전지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안에 전지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안에 전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럽히지만 안 하면 더럽히면 멸망시킵니다. 더럽히지만 안 하면  본질본성대로 있고 변절 변성이 안되면 사죄 받아서 죄 없는 그것으로서 칭의  받아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으로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된 그것으로 있기만 하면  그것은 전능의 존재입니다. 전지의 존재입니다. 완전의 존재입니다. 완전한  사람의 존재입니다. 완전 평강 완전 기쁨 완전 권위 완전의 존재입니다.

 우리 개인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배척되지 안 하면 우리 속에서 나오는 생각은  전지의 생각입니다. 우리 속에 나오는 생각은 전지의 생각이요 이 생각은 전능의  생각입니다. 나만 변동하지 안하고 그와 같이 하면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소원대로 다 된다 그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미신적이나 도박 적으로 그런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에 배치되지 아니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전지가 원하는 것이요 전지가  원하는 것은 전능 당신이 이루십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우리 몸 밖에서 무엇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면 우주가 다 내 것인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너희 것이니라"  어찌되면?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데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됐으면 하나님은 내 하나님 됐고  하나님은 내 중에 내가 됐으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내 것이고 그는 내게  다스림을 받아야지 지배를 받아야지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는 말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내가 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고로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내 안에 아버지께서 역사 하시는 그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내 말은 아버지의 말이다." 말씀하신 이것이 산 돌인데  산 돌같이 산 돌이 아니라 말이요 예수님은 아니지만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이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빨리 재빨리 더럽히는 것을 돌이켜야 됩니다.

 어떤 강한 세력이 왔습니다. 아무리 강한 세력이 와도 그 세력보다 내 안에  계시는 세력은 무한히 큽니다. 어떤 보배로운 부요가 와도 세계 부자가 와도 그  부자보다는 내 안에 있는 부자가 더 큽니다. 이러기에 내가 할 일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멸하시느니라." 그 말에 정반대는 성전이 더럽히지  안하고 깨끗이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

 이스라엘에 성전이 더럽지 안하고 깨끗이 되어 있을 때에는 그 세계가 그  성전을 헐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헐지 못했습니다. 그 성전이 깨끗해 있을  때에는 그 성전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에 따라  오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바라보는 이 사모에 애모의 대상이 된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구약을 보십시오. 그러나 성전이 더러워졌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 이스라엘을 멸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어떤 큰 능력을 상대할 때라도 그 능력보다 큰 능력이 내 안에  있는 것 알아야 됩니다. 어떻게 어렵고 복잡한 일이 있어도 그 복잡한 것보다도  더 지혜로움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절망 낙망 절망  낙망이 우리를 뒤덮어도 그 절망을 다 멸하고 소망으로 낙망을 희망으로 어떤  강한 미움이라도 그 미움을 다 녹이고 사랑으로 충만 할 수 있는 이 보배가 우리  속에 들어앉았습니다.

 이 보배가 하나님이신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걸  믿는 것이 우리가 능력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아무 추호도 거리끼지 않는 분으로서 계시면서 나만  이질적이 아니고 그와 동질이 되어질 때에는 그분의 전부가 하고자 하시는 대로  날 통해서 다 나타나십니다. 이것이 성전의 비밀입니다. "더럽힌 자는  멸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것이 그것이 에 더럽히지 안하고 본질 본성대로 있는 것이니까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거룩만 가지면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니까 그 전부는 하나님의  것만 되면 거게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밖에 나올 것이 없는 것입니다.

 거룩은 무슨 거룩을? 이방인과 교회를 구별하고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 자기와  구별할 뿐 아니라 자기와도 구별해서 교회 안에 믿는 사람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옛사람과 새사람 이것을 구별하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나니 다른  이 음성을 듣지 않는다." 요게 구별인데 자기의 교훈이나 신앙 지도에 있어서  이것이 바른 것인지 삐뚤어진 것인지 그것을 구별할 것. 그게 인간으로는 최고의  구별입니다.

 이것 구별하고 난 다음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것.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  깨끗이 죄를 자기가 아는 대로 깨끗이 정리하면 하나님과 자기에게 가려진 것이  틔어져서 자기 심령이 밝아지고 밝아지면 진리를 보고 알게 되고,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기를 자유케 진리대로 살게 만들어 버려요. 참 알면.

 그러기에 성경학자라고 해도 율법으로만 알고 복음으로 받지 못한 사람  있습니다. 그 진리를 자기가 인간 지식처럼 알았지 그 진리가 전능의 능력을  가진 진리인줄은 모른다 그 말이요. 그 진리가 능히 자기를 어디서든지 보호하고  세울 수 있는 이런 권위를 가진 진리로는 모르니까 그 진리의 외형만 알았지  진리의 권위는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지성소에 들어가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고 나면 천사보다 탁월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래서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착한 양심은 무엇이 착한 양심인데.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니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찾아간다 그  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성전에 대해서 기억하고 너무도 감당 못 하면 안되니까 그  안에 있는 이제 에 이 구별만 했습니다. 성전이라 성전 밖마당이라 성소라  지성소라. 이 네 가지 구별하는 것을 말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데 하나님이  우리 안에 어떤 분으로 계시는가 빛으로 계시기 때문에 어두움은 자연히 절단  나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제가 강하다고 빛 앞으로 가면 견디겠습니까? 어두움이  크다고 빛 앞으로 가면 견디겠습니까? 어두움은 빛 앞에 가면 절단 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빛이 우리 안에 계시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 되기  전에는 어떤 일해도 괜찮았지만 중생 된 후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에 이질이 되면  그거는 즉시 망합니다. 이질적이 되면 벌써 움직이는 그 시간에 다 절단  나버렸습니다. 살아있지만 그 시간에 그 시간에 소모된 정력은 영생이 되지  안하고 완전이 멸해져 버렸습니다. 또 그 다음에 그 다음의 것이 남아 있지요  그때 쓰는 게 남아 있는 줄 압니까? 아니요.

 그 한 시간에 의롭게 지냈든지 불의 하게 지냈든지 그 한 시간에 소모된 정력은  영생이 아니면 영멸입니다. 자꾸 이렇게 정리돼 나가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사람이 벌로 살 때는 그렇지만 자기가 시간을 보고서 한 시간 똑똑하이 급한  일이 있는데 자기 볼 일은 바쁜데 어디 갈 시간이 있고 이러니까 어떻게 시간이  촉박한지 아 보니까 시간이 벌써 오분이 지나갔어 아, 이거 참 이거 어느새  오분이 지나 갔노. 또 갔어 벌써 6분 지나갔네. 7분 지나갔네. 이와 같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가 자기 현실에서만 움직임에 그 움직임에 그 소모된 그것이 영생화  됐느냐 그것이 영멸 됐느냐 요것을 우리가 보는 눈이 있으면 기가 막힐 것인데  그걸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날 수 계산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는 그  말이 시간 계산하는 이 총명을 주옵소서 하는 그 말인데 시간 계수 하는 총명을  주옵소서하는 그 말은 한 시간 한 시간에 영생 영멸이 되어 나가는 요 면을 보고  계산하는 '아이구, 요거는 죽었다. 요거는 살았다.' 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생애는 그렇게 덩더꿍이 생활이 아닙니다. 아무나따나 이래도  저래도 갔다가 방탕의 그런 생활이 아닙니다. 사람은 모르지만 그 속에 안팎에  눈이 있고 굉장하게 세밀한 생활입니다. 이런 껍데기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같이  두루뭉실하게 정신없이 사는 것이지만 속에는 남이 모르는 영원한 계획을 막  도모하고 있습니다. 영원 무궁의 계획을 그 하나님이 도모하는 대로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요  이 다음에 이제 거기서 개별성을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노릇을  하려면 어떻게 무엇이 구비해야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가? 하나님의 성전에는  거게 제단이 있고 세수통이 있고 등대가 있고 떡상이 있고 금향로가 있고 법궤가  있고 속죄소가 있고 법궤 안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고 바짝 마른  지팡이인데 법궤 안에는 그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그 법안에 생명이 있다 말입니다. 법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 진리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한 영원 불멸의 완전성을 가진 이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우리로는 안 됩니다. 성령님과 진리가 이것을 보증하시고 책임을 지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에 우리가 여게서 이걸 깨닫고 우리 힘만 기울이면 이 지극히  측량도 못할 지극히 큰 구원이 우리에게 이루 어집니다. 이 구원은 이 과학도  틀림없으면 안 된다는 것인데 과학 중에 과학입니다. 이 과학이란 걸로 형언할  수 없는 이 과학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지의 성령이라야 이것을 계산할  수 있는 이런 구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다음으로 이제 계속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성막 공부를 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구별합시다 세상과 우리는 우리를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과 교회,  세상과 우리 가정은 다릅니다. 세상과 나 개인은 다릅니다. 세상 단체 우리 교회  단체는 다릅니다. 믿는다고 하는 믿는 속에 다릅니다. 믿는 속에 믿는 거 믿지  않는 거, 옛사람 새사람 다릅니다. 또 교회 안에 가르치는 거 많고 인도하는  것들이 많지만 우리는 구별해야 됩니다.

 제사장을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는 깨끗이 지성소의 휘장을 열고 들어가야  됩니다.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대제사장이 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제사장 될 권위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인 예수님을 힘입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들어가서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진리를 만나면 진리가 하나님을  소개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  변질 변성되지 않고 세 가지 구속을 받은 자로 있을 때에 주의 온갖 충만은 그  사람을 통해서 만물에게 충만케 나타나게 하시기로 약속하시고 선포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지극히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아 성전이 된 이  사실을 생각할 때에 어떻게 찬송해야 될는지 감사해야 될는지 측량  못하겠습니다. 믿음을 주셔서 성전 된 것과 주께서 무한하신 완전자로 전지  전능자로 저희 안에 계셔 나타나시기로 원하시는 이 지극히 크고 광대한 이  사실을 깨닫는 가운데서 완전히 세상의 빛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여러 가지 헌금합니다. 축복하셔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5월 집회 위에 주께서  함께 하사 참여할 권세를 주시고 또 주님이 친히 모든 걸 주장하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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