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소망-행함의 믿음

 

1984. 2. 22. 수새

 

본문: 에베소서 1장18절-23절.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 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선지자선교회  예수님 믿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성경대로 믿는 것이 예수님 믿는  건데 신구약 성경은 꼭 거짓말 같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한  사람이 볼 때에는 꼭 거짓말 같습니다. 왜? 그들이 알고 있는 세상 이치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아는 것이 세상 이치를 알고 세상 지식을 알기 때문에 세상  지식에 비추어 보면 아주 보얀 거짓말이요, 아주 보얀 거짓말. 그러나 한 획도  천지가 없어지는 것보다도 어려운 말씀입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이 획은 한 획도  없어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런데 사람 보기에는 그렇게 아주 보얀 거짓말로  보이요. 왜? 그거는 세상에 있는 말이 아니고, 세상에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지극히 큰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이것도  사람들은 믿지 못할 보얀 거짓말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되어 왔을까?  또, 아버지 없이 나온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또 안 죽고 영생하는 일이 어디  있을까? 이것 우주에 말하면 이 지구와 같은 그런 별은 이것도 별 중의 하나인데  지구와 같은 별은 뭐 헬 수 없습니다. 억 억 억 억 억 해서 뭐 한 달 해도 다  될까 말까 그만침 수가 많은 것 중에 한 개가 이것 지구 땅덩어리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존재 가운데에 이 지구 땅덩어리에서 하나님이 제일 중요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조그만한 지구 땅덩어리 중에 또 몇 백 분지 일이 될까 하는 조그만한  국토, 눈 꼽째기 같은 것 거기에서 정권을 잡아서 뭐 왕이 됐다든지 대통령이  됐다면 사람이 크다 하고 그것도 힘이 들고, 고게 또 속해서 조그만한 무슨  도지사나 뭐 시장이나 그 참 거기다 비하면 극히 작은 것입니다. 아, 그것도  사람이 얻을라고 하면 힘이 참 들고 힘써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닌데 우주와  영계를 얻는다. 그 물에 넣어도 붙지 안할 말이요 보얀 거짓말 안 같습니까?  그러나 거짓말 아닙니다. 그러나 거짓말 아닙니다. 털끝만치도, 천지는 없어져도  그 털끝만치도 가감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런 것을 사람들에게 약속하시고 어떤 자들에게 주시느냐?  뭐 힘 안 듭니다. 인정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또 그다음에는 원하고 또  그다음에는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되는데 시키시는 것이 그렇게 많은 일을 다  합니까? 한다고 해봤자 억 억 억 억 억 억 분의 일도 죽도록 해봤자 그래도 못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서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이루어 갑니다. 이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 또 공짜배기로  은혜로 주신다 그런데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신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성경에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라 또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신다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을 해서 이 기록이 우리와  계약서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이 계약한 계약서인데 이 계약서를- 아주 쉽소.- 이  계약서를 인정하고, 그 계약서가 인정이 안 돼서 '그 보얀거짓 말이다'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아 그 계약서는 참되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절대  가감이나 에누리나 변동이 없다.' 인정하는 사람 있습니다. 인정하고, 또 거기에  선포해 놓은 것을 자기가 소망합니다. 인정하고, 소망하고, 또 자기가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짤막한 세상살이에서 하나님 하라는 대로 합니다. 그러면. 이것  가지고서 무궁 세계의 것이 되겠습니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궁 세계의 것은 예수님이 다 해 놓으셨습니다. 하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가 한 토막이고, - 고 반토막이요. 반토막이고 - 또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영원히 사람되신 부활 그게 또 한 토막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두 토막이 합해서 한 토막되는 예수님의 대속하신 공로로  이 일이 다 이루어져 놓은 일입니다. 이루어져 놓은 일을 하나님이 택한 자들에게  주십니다. 택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시는 고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하신 이 죽음까지의 것을 주십니다. 죽으심까지에 속한 반 동가리를  주십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기본구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기본구원은 인간들의 행동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순전히 대속하신  죽으심까지 이 공로로 되는데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살아나심으로 된 이 구원이 있습니다. 살아나심으로 된 이 구원은 우리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가지고서 되는 구원입니다. 연결돼 가지고 되는 구원인데  연결 제일 첫 연결이 무슨 연결이냐? 중생 연결입니다. 중생 연결인데, 이 중생  연결도 우리 사람들은 알지도 못합니다. 연결은 연결인데 사람들 모르게 하나님  혼자 역사하시나 우리라는 존재에 연결을 시키는 그 일로 하시고, 그 외에 기본  구원은 우리라는 존재에 연결시키지 아니하고 우리 없는 딴 데서 지성지공의  법적으로만 그게 돼 있는 것 합니다.

 이래 가지고 주님이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 반 토막 그 토막으로 인 하여  우리에게 이 건설이 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하는 그 구원은 이루어지는데 그거  이루기 위해서 주님이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다 그 말은  사람들은 자꾸 사람들을 생각하니까 죽었다가 살아났으니까 좋겠다 싶으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은 좋지마는 신성은 하나님이 사람되는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또 신성은 죽지 않습니다. 또 예수님의 인성도 범죄하지 안하고 의로  끝을 마쳤기 때문에 신성과 인성이 나뉘 도 예수님의 인성은 죽일 자가 없습니다.

그는 완전 승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끼쳐 놓은 이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반 동가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 예수님의 죽으신 공로로 반 동가리  구원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공로로 우리에게 반 동가리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이 반 동가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으심으로 다 되어 있는 것인데, 죽으심으로 된 반 동 가리 구원은 그것은  우리가 노력함으로 된 것이 아니고 그 구원이 우리에게 와 있나 없나 하는 그  표시는 인정하고 소망하는 그것으로서 이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의 된 그  구원을 얻은 자다 하는 그 표시가 됩니다.

 또 예수님의 살으심으로써의 이루어지는 그 구원은 우리가 이루어져 놓은 그  구원을 받는 것이 뭘 가지고 받느냐? 뭐 가지고 받느냐? 자기가 낱낱이 다  행동을 해 가지고 행동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그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동하는 것은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은 그  구원,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받을수 있는 자격 표준을,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너는 자격이 있다.'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어느 정도의 것을  자격으로 삼았느냐? 자격 표준을 이 세 가지로 삼았습니다. 인정하고  소망하고'행하는 것 요 세 가지로 자격 표준을 삼았는데 이 세 가지가 다만, 이  세 가지를 가진 자에게는 공으로 주신다는 것이지 이 세 가지를 행해 가지고 다  모든 것이 다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행하는 이것을 자격 표준으로 삼아 주셨는데, 그러면 이  세 가지를 행하는 것을 자격 표준으로 삼아 준 것은 그 세 가지를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행하는 것이,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한다고 해 봤자 그  몇닢 푼치 안 되는데, 그거 얼마 됩니까? 얼마 합니까? 그런데 그것을 뭐이라고  자격 표준으로 그것을 삼아 가지고서 주시는가? 그것은 그 속에 알맹이가  있습니다. 무슨 알맹이가 있는 고 하니 천하 사람이 다 보얀 거짓말로 아는 이  사실을 참되다 인정하고, 또 그것을 참되기 때문에 소망하고. 또 소망하니까 자기  힘 있는 대로 노력 을 하려고, 순종하고, 행하고, 노력을 하고, 행하고 이라는  이것이 뭣이기 때문에 그러냐? 천하 인간이 다 하나도 성령의 감화를 받지 안한  사람은 인정도 못하고 소망도 못 하고 거기에 대한 것을 털끝만치도 행하려고  하지를 앉습니다. 전부 부인합니다. 보얀 거짓말이라고 '저 예수 믿는 저것들은  등신들, 저거 다 속고 있다' 그랍니다. 그들은 알 리가 없습니다. 다만 성령의  감화가 그에게 있는 것 만치 그는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하게 됩니다.

 성령의 감화도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 양은 다릅니다. 성신의  감화가. 예를 들어서 사람에게 이 마음도 한 개가 아니고 마음 하면 하나지마는  마음 속에는 수억억만도 더 되는 세포가 있습니다. 세포가 있고 또 지체가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든다면은 욕심이라는 마음도 있고, 뜻이라는 마음도 있고, 또  정이라는 마음도 있고, 또 기억이라는 그런 마음도 있고, 또 취미라는 그런  마음도 있고, 또 흥미라는 그런 마음도 있고 거기에 또 미움이라는 그런 마음도  있고, 있는 것 오양으로 그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데

 내가 이거 안 하려고 자꾸 애를 쓰는데 자꾸 돼져요.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  주십시오. 이 설교하면서 자꾸 속에 나와서 이라니까 이거 나도 안 됐고  여러분들도 보기에도 안 됐고 답답한데, 나 혼자기도 가지고는 안 나아요, 보니까.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야 아마 이게 나을 것 같애.

 어제, ○○○장로님이 와 가지고 지난 주간에 설교하고 난 다음에 대학 병원에서  누가 아파서 뭐 곧 고만 기절했는데 가서, 하도 그만, 여기서 시험, 그날 목사  시험은 치기는 치는데, 시험 치지 또 거기 오라해서 그래도 시험 치는 것 냅두고  거기를 가 봐야 되겠다 시험은 못 치면 뭐 뒤에 쳐도 또 못 하면 뒤에 명년에  해도 거기부텀 가 봐야 되겠다, 고게 인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라. 가  가지고서 붙들고 기도를 하고 이래 주물고 하니까 고만 깨어나더래요. 깨어나서  교회 잘 나온다든가 이라는데, 요새는 자꾸 전화가 자꾸 그런 전화가 옵니다. 또  어제 남해에 있는 ○○○, 조사님의 교회 소식인데 또 거기에서도 '아 뭐 우리야  이거 뭐 기도해 가지고 뭐이 되겠나?' 이랬는데 아 환자에게 기도하니까 대번에  낫더라고, 그래 가지고 참 감사하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구나.'  요새는 인제 전화 오고 소식 듣는 데마다 모두 다 병이 낫는답니다. 안 믿으면 안  돼 믿으니까 된다 그거요. 그게 하나님이 자꾸 때를 따라서 이거 해라 저 거 해라  이렇게 가르쳐 주셔서 하나님이 주실 때에 그것하면 됩니다. 아무나따나 되는  것이 아니고.

 이번에 교역자들 모아 놓고 요 기적이라는 데 대해서 며칠 전에 저한테 그것이  강한 느낌이 와서 이거 우리 교역자들이 전부 이 방편을 다 버리고 있다, 저는 그  방편을 하나님이 주셔서 그 방편 가지고서 너무그 방편이 앞서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 가지고서 제재했는데 이 사람들은 방편 한번도 구경도 못 하고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 방편은 안 믿고 있고 안 믿고 있으면서 모두 다 제가  그 일을 못 하니까 '아 그 기적이라는 것은 옛날에 있는 것이지 지금 있는 것은  아니다.' 이래 가지고 마구 말살 을 시키고 이래 하는 것이 정통들, 정통  학자들은, 학자 저거가 암만 기도해 봐야 안 듣는다 그말이오. 학자 저거  기도해야 안 듣습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의 인격을 딱 바쳐야 하나님께서 그거  들어 주시지 뭐 공부해서 학(學) 이거 가지고 해 봤자 하나님이 안 들여 주시요.

학위 있어도 그게 '이 까짓 거야 소용없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이 세상에  있는 학(學)이거 전부 똘똘 다 뭉친 것보다 중량이 크다.'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이라야 된다 그거요. 인제 그런 사람은 듣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와, '목사님은 와 안 듣는가?' 이거는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  같애요. 왜? 왜 여러분들이 해야 돼? 내가 기도해 가지고 되는 것 있고 안 되는  것 있습니다. 이거 자꾸 설교하다가 캑캑 거리면서 가래 뱉고 이라니까 여러분들  보기 싫고 나도 답답하고 이렇지마는 인제 그러니까 '아이구 저렇게 하시니 이거  안 됐다 답답하다.' 제 답답한 것 보다 더 답답하게 여기면 목사님에게 대해서  동정이 가고 애착이 가고 존경이 가고 마음에 사모가 가고 그래야 일이 된다 그  말이오. 그래야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들려지지 '저 목사님 저,' 하고서 목사가  반대가 되면 거기에서 나오는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은혜가 안 돼요.

 그러니까, 지난 교역자회 때에 좀 뭣한 사람들 좀 나무랬더마는서도 '나는  목사님 안 그런데 자꾸 이래 쌓아니까 은혜가 되는게 아니라 그러면 내가 이거  뭐 없어져야 되나?' 이라며 인제, 그게 또 트집부리는 거라. 그 알아요,  트집부리는 것. '그게 막바로 그거다. 네가 그라면 하나님 기뻐하시겠나? 네가  판단해 봐라. 또 나는 기뻐하겠느냐? 그라고 나면은 네기에 설교가 나오느냐.

영감이 오느냐?' 그래 가지고서 나중에는 웃으면서 '녜 그라면 그래 해  보겠습니다.' 꼭 외동아들로 키운 것, 외동딸로 키운 것, 또 저만 우야우야 하고서  저를 높여서 이래 키워 놓은 것 그것 참 일생 동안 그놈 죽일라면 참 골탕 쥐어  먹습니다. 클 때에 천대받아 큰 그것은 뭐 자기가, 어쩌든지 고만 이래 부인하게  된 그것이 참 복이오.

 지금 인제 설교하다가서 다른 길로 이거    , 좀 목사 위해서 기도를 해야  여러분들이 삽니다. 왜? 자꾸 기도하다가, 자꾸 기도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하고 생각하면 자꾸 생각이 나오고, 사모하고 사모하면 사모가 되는데 그저  목사님을 여러분들의 눈보다 귀하게 여기고 그러니까 '네가 눈이라도 빼돌라 하면  빼주지 안하겠느냐?' 제 눈보다도 바울 사도를 귀하게 여겼다 말이오. 제 눈하고  바꾸라해도 눈보다 낫게 여긴다 그말이오. 그렇게 여기고 또 생명이라도, 내가  죽을 때에, 나 죽을 때에 너거가 대신 죽고 -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 대신 죽고  바울을 살리라, 우린 죽어도 되니까 바울을 살려야 된다고 그 죽을 때, 지금 모여  가지고서 사람을 죽일라고 하고 있는데 죽을 때에 사도 바울을 빼내트리고  자기가 지금 사도 바울처럼 해가지고 거기에서 죽임을 당하려고 했다 말이오.

그게 뉘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복이 너거에게 어디  있느냐? 자꾸 그렇게 생각을 하면 마음이 그리 기울어져요. 그래 기울어져서  목사님이 그렇게 아깝고 또 설교하면 '아 저 피곤하겠다. 기운이 거석해질라.'  이래 애끼는 마음이 있어야 그 한 마디 한 마디 들어오는 것이 자기 속에 심령을  뚫고 들어와 구원이 되는 것이지 '저 또 강단에 앉아서 무슨 또 궤변을 떨고  있다. 아이고 잔소리 많이 하고 있다. 아이구 시간을 어째 좀 짤막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 욕심이라는 것이 세상의 욕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늘나라의 것은  말하면 듣기 싫다 그말이오.

 그런데, 구원은 우리가 만들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십자가, 저  하늘에서 죽으심까지의 반 동가리, 또 죽은 가운데서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  가지고서 살아나신 이 반 동가리 이 반 동가리는 영원을 책임졌고, 또 죽으심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것을 책임졌고 이래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뭐이 구원을 뉘가 낱낱이 해 가지고 얻는 것 아니오. 공짜배기로  얻습니다. 세 가지만 하면 얻어. 세 가지가 뭐 인데? 인정하고, 소망하고,  순종하면 돼요. 순종을 하면 뭐 억억만분의 일이나 순종을 하는 줄 압니까?  아니요. 억억억억            분의 일도 못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된다 그거요. 왜 그러냐? 그것은 뭣 때문에 그래 되느냐? 천하 사람은 다 인정치  안하고 보얀 거짓말이라 하는데 인정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인정하면 준다.' 또  하나 '완전케 하려고.' 이 인정하고 그리 될 것을 '그렇지마는 뭐 그렇다 하니까,  그렇다고 하니까 없으면 그만이고 있으면 하고.' 있으면 얻지요. 그러니까  소망한다 해도 속에는 소망하지 안하고 껍데기만 소망하고, 그저 없으면 그만이고  있으면 또 다행이고, 이러니까 '소망하자' 해도 하나님이 딱 분석할 때에는 속에는  소망하지 안하고 껍데기만 소망한다 그거요. 그런데, 참 소망하는 자, 참 소망히는  자에게 주시고, 또 병신이라도 상관 없어요. 소망하는 자에게 주시고, 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신다.

 그러니까. 제게 힘 이상은 못 하지마는 제게 힘 있는 대로는 행해 볼라고 애를  써서 이래 가지고 행하려고 애를 쓰는데 열 가지 중에 하나만 행 하고 또 아홉은  못 행하고 이래도 행하기를 원하고 행하려고 애를 쓴다 그 거요. 행한다 해도 다  행해지는게 아니라 행해지지 못하고 행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라. 이러면 그자에게  준다. 그자가 어떤 자인데? 그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신성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요 성부도 하나님이요 한 하나님이십니다. 한 하나님. 하시는  일을 맡으실 때에 성부라 성자라 성령이라 그랍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한  남자인데 그를 '여기 호주 있소?' 하니 그 사람이 떡 나와, 또 있다가서 '남편  여기 있소?' 이라니 또 그 사람이 떡 나옵니다. '여기 또 아버지 있소?' 하니까 그  사람이 떡 나옵니다. 한 사람인데 아버지도 되고 남편도 되고 호주도 됩니다.

그거는 뭐이냐? 그것은 직책이라 말이오. 호주의 직책, 아버지의 직책, 남편의  직책. 지위 그 지위, 아버지의 위, 남편의 위, 호주의 직책 이런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이라 하지 한 분이십니다. 한 분이신데, 이 세 가지가 성령님이 그 사람을  책임지면 이 세 가지가 그에게 있고 성령이 책임지지 안하면 그 사람에게 이 세  가지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받지 아니하고는 주님을 자기의  구주라고 할 사람이 없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인정하는 것도 성령이 인정케 해야 되지  성령이 인정케 안 하고는 뭐 천하 지식을 다 갖다 두드려 뭉쳐도 자꾸 부인만  돼지지, 이 말씀이 부인만 돼지지 인정 안 됩니다. 성령의 감화라야 인정이 된다  그 말이오. 성령의 감화라야 소망하게 된다 그말이오. 또 성령의 감동이라야  행하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무슨 보증했습니까? 뭐 보증했지요? 우리의  보증이 명이지요? 셋, 뭐 뭐 입니까? 크게 해 봐요. 성령, 또 진리. 또, 피, 피는  예수님의 공로라 말이지요. 이 세 가지 보증 아닙니까? 보증인데, 피는 이미 택한  자를 위해서 흘렸고, 택한 자를 위해 흘렸기 때문에 택함을 입지 안한 자는 또  제가 암만 평상 주여! 주여! 해봐도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책임진 자라야  된다 말이오. 책임진 자는, 이 다른 교파에 ○○교파나 이런 교파, 지금도 이거  장로교 교리에서도 그만 그거 흐려져 버렸습니다. 흐려져 가지고 지금 요대로  교리를 믿는 사람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막 구원을 마구 가루를 내 버려요,  모두다. ○○교파에서는 모든 인간을 다 주님이 책임지셨다, 주님이 책임  지셨는데 왜 지옥을 갑니까? 주님이 책임진 자는 지옥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진 것은 변동이 없어.

 주님은 누구를 책임졌는가? 칼빈은 '제한적 구속이라' 이걸 말했습니다. '택한  자들만 위해서 구속했다.' 칼빈이 위대한 사람이오.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니까  그게 다 됐어. 주권을 안 믿으니까 모든 것이 안 돼. 그 칼빈이 위대한 일  했습니다.

 그러나 또 껍데기 사람들은 칼빈이 나타내 놓은 그 책만 몇 권 보고서  어쨌든간에 칼빈을 하나님처럼 이래 가지고서 뉘든지 칼빈보다, 칼빈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하면 고만 정죄 해 버립니다. '아 교만하다. 제가 칼빈보다 나은가?  칼빈보다 나을 수 있지요. 칼빈도 택한 자요 부름 받은 자요 성령의 감화 받은  사람이니까 그 시대를 감당하도록 칼빈을 은혜 주셨고, 또 그보다도 얼마나  발달된 이십 세기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 주셨으니까, 아 칼빈은 또  그시대 감 당하고 지금 시대는 더 높고 밝은 시대니까 또 지금 시대를 감당하게  했으니까 은혜로 보면 낫지요. 구약에 이사야보다 지금 주일학교 학생이 낫다  그말이오. 여인으로 난 사람은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지마는서도 천국에서는  가장 작다고 하는 자도 이 세례 요한보다 크다 이랬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과거에 이렇게 교리를 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를 이사야가 알았는 줄  압니까? 이사야가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이 안 줄 압니까?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시대에 따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니까 달라진다 이거요.

 이러니까, 이제 성령의 그 책임이, 성령이 책임지셔서 그 사람에게 성령이  보증하지 안하면 하나님의 이 모든 말씀을 인정할 수 없다, 계약의 말씀을 인정할  수 없다, 또 성령이 책임지시지 아니하시면 참 그가 얼마 처소 망하는 백분지  일을 소망하더란데도 백분지, 천분의 일, 억만 분의 일도 소망할 수 없습니다.

소망하는 것은 성령이 보증한 자라 그말이오. 또 그대로 행하려고 달라들어  가지고 행하는 그자도 성령이 보증한 자라. 이러니까, 이 세 가지가 있는 자라야  구원 얻는다 그 말은 성령이 보증한자 라야 구원 얻는다 그말입니다. 성령이  보증한 자는 그는 성령에서 진리가 나왔기 때문에 진리가 보증한 자요, 또 성령과  진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나왔기 때문에 피가 보증하고 성령이 보증한  자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하시기 내가 가야 너희에게 좋다, 왜? 내가 가야  너희에게 보낼 것이 있다. 뭣 보낸다 했습니까? 예? 예? 녜, 보혜사 성령을  보낸다 했습니다. 보혜사 성령. 보혜사라 말은 보호할 보(保) 자, 은혜 (惠)혜 자,  보혜사 스승 사(師) 자. 보호하고 은혜 베풀고 선생 노릇으로서 가르쳐 주는  그분이 오는데 그분이 뭐냐 성령이라. 보혜사 성령이라 그랬다 말이오.

 저 ○○○씨는 자꾸 인제 재독 하는게 되는데 여기서 기도하면-기도가 아니요-  여기에서 기도하면 안돼. 저 혼자 가서 기도해야 돼 저 구석에 가든지 어데든지  가 가지고서 그전에 하듯이 그래요. 자꾸 설교. 자기가 새김질하는 것이라. 자기가  설교하고 귀로 듣고 설교하고 귀로 듣고 이러니까 그거는 기도가 아니고  새김질인데 그라면 교리와 신조가 굳게 서집니다. 아주 믿음이 좋아 진다 말이오.

그 일 해요 여기서는 자꾸 그라니까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데 성경 읽고  기도하는데 자꾸 설교하고 하니까 다른 사람 기도를 못 한다 그거요. 그것 해요,  그거 놓으면 안 돼. ○○○ 씨, 그 은혜 역사를 놓으면 안 돼. 절룩절룩 거려도  고만 설교 마치고 나 면 저리 가요. 어데 구석에 가 가지고 자꾸 고함을 지르고  읽으면서 그래 자꾸 해요. 그라면 그게 새김질이라. 그럼으로 자체가 변화가 돼.

 보혜사 성령을 내가 너희들에게 보내겠으니 그가 내게 대해서 증거할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가 내것을 가지고 증거하리라, 내것을 가지고 증거하리라. 또 하나  뭐라고 말했냐 하면 진리 안으로 이끌어 들이리라 이랬소.

 이러니까, 우리가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하는 이것이 이까짓 것 뭐 몇닢 푼치 안  되는데 아 일생 동안 죽자 살자? 해 가지고 빌딩 하나도 만들라 하면, 못 만들어  죽자 살자 하고, 뭐 언제 라디오 들으니까 무슨 연속 방송 한토막 퍼뜩 들으니까  아이를 남편은 낳자 하고 안 낳을라 하고 이라니까 그 아내가 있다가서 하늘에서  그거-하늘은 어찌 아는지-하늘에서 오시는 손님을 집 없이 셋방에서 어찌 영접할  수 있느냐고. 그러니까 집 하나 마련하기 전에는 아이 안낳겠다고 이래 가지고 뭐  시비를 하는 그런 소리를 내가 한 토막 들었다 말이오. 그 사람들은 인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라는 데 그래 가지고 죽자껀 집 마련 한다고 일생 동안 뭐  죽자 살자해도 한 몰라 한 몇 천 만 원짜리 집하나 마련하거나 말거나  그렇습니다. 아 이렇게 힘드는데 인정하고 소망하고 인정하고 그걸 소망해. 나는  그걸 내가 바라보고 말이오 소망하고 자기 행하고 해봤자 이 까짓 제가 예수  믿는 것을 뻔히 보는데,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을 자기가 아는 대로 '요만침 애 써  가지고서는 이거 하꼬방 하나도 못 마련 할 것인데.' 하꼬방 하나 마 련할 만한  요만한 힘도 들이지 안했는데 이거 우주가 자기 것이라 하니 이거는 뭐 과장을  해도 분수가 있지 어림도 없다, 이러니까 시시하게 여긴 다 말이오.

 그러나 성신의, 그렇츰 다 그렇게 여기는 그것을 성신의 감화가 오면은 자기가  부족하지마는서도 인정하지 못해서 '아이구 나는 인정을 못 합니다. 주여  인정하게 해 주옵소서. 나는 소망하지 못합니다. 소망하게 해 주옵소서. 나는  행하지 못합니다. 행하게 해 주옵소서.' 이게 하지는 못하지마는 그 속에 성신의  감화로 마음으로는 하고 있는데 행둥 이 안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이 뭐냐 성령이 책임진 사람입니다. 책임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된 구원, 살으심으로 된 구원을 참예를 하되 자기가  거기 대해서 성신의 감화에 인정하는 것이 다 인정하는 것이 아니오. 또 인정하되  보면 한 사람은 백 가지 인정하는 사람, 한 사람은 두 가지 인정하는 사람,  하나는 한 가지 인정하는 사람, 하나는 있는 대로 다 인정하는 사람. 그러니까,  자기 있는 대로 다 인정하면서 내가 자기가 성경 아는 대로 인정하고 인정하고,  인정하면서 '내가 아는 것은 지금 백 가지인데 백 가지 다 인정하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 억억억억억만 이 있어도 나는 다 인정합니다.' 이런 사람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인정도 양이 있고, 소망도 양이 있고, 행함도 양이 있고  이러니까 자기가 못 행하는 것도 그만이오. 못 행하는 것도 자기가 하려고 원하고  원 하고 원하고만 있으면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성령님이 책임진 자에게 이 구원이 있고 없다 하는 것입니다. 또  찐리가 책임진 자에게 이 구원이 있다 없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책임  진 자에게 이 구원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 설교하려고 하는 것은, 지금 알맹이 설교하는 목적은  아직까지 말 안 했습니다. 말 안 했는데, 목적은 뭐이냐? 여기에 그 밑에 모두  잔줄 달았지요. '마음의 눈을 밝혀서.' 마음의, 마음의 눈은, 마음의 눈은, 마음의  눈은 뭐이 밝아지지요? 마음의 눈은 뭐이 밝히지요? 마음의 눈은 양심이  인간적으로는 밝히고, 인간 저 혼자로서는 자기 마음의 눈을 밝히는 것은  양심입니다. 또 안약 사서 발라라 하는 그 안약은 뭐 입니까? 영감 도리입니다.

이러니까 마음의 눈을 밝혀 가지고서 '우리를 부른 소망이 어떠하며.' 이 암만  봐도 말이지요.' '너희 마음의' 18절에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우리 소망이 무엇인지 좀 마음의 눈을 밝혀 가지고서 성령의  감화가 오면 볼 수 있다 말이오. 성령의 감화, 진리로 안약을 삼고 영감으로서  환하게 밝아져. '마음의 눈을 밝히사 너희를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소망이  무엇이냐 그 말은 소망이 어떠하며 그러니까 소망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소망인지, 하늘과 땅의 것이 다 내것 되는데 뭐.

 암만 포프가 막 '나는 대적이 없는 평화를 하겠다' 그 사람 아주 욕심쟁이  말했소. 대적이 없는 평화라니까 언뜻 들으면, 다 화평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는  다 죽여 버리고 원수 없는 데 살겠다 그말입니다. 공산주의가 그것 아니오? 그 말  한 마디에 매력을 느껴 가지고서 했는데 하나님께서 '포프야, 오라.' 하니까 꼼짝  못 하고 가 버렸어. 요새 땅속에 들어갔지? 예? 땅속에 들어갔지? 그거 다 그런 거라. 뭐 암만 김정일이고 뭐 제가 암만  떠들어 쌓아도 하나님께서 '너 땅속에 들어가거라.'하면 고만 그 시간에 들어 가야  되는 거라, 그게 무슨 권리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코에 호흡이 있는 그런 것을  수로 헤아리지도 말라 했어, 우리는 이런 사람인데 이것 안 믿고 옛사람으로  돌아가면 간이 작고, 믿음으로 새사람으로 돌아가면 그 뭐 천하가 한다 해도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죽으면 영광의 부활하지. 손해 갈 것이 하나나 있어야지?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성도, 교회 안에서 그말이오. 성도 안에는 교회 안에 교회 안에 그 기업은, 교회가  얻을 기업이 '기업의 그 영광이 얼마나 풍성이며' 교회가 얻는 기업은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 없어요. 불평하는 사람 하나라 도 있으면 영광이 그만침 못 되는  것이라. 하나도 불평하지 안해. 마귀도 다 불평하지 안하고 나중에 감탄합니다.

그럴 수 있는 구원을 우리가 이루는 것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희생해야 되고  덕을 세워야 되고 우리 욕심대로 감정대로 오기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거요. 이런데, 그대로 하기 때문에 모두 다 낭파가 되어져.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고쳐야 돼요.

 언제 요 이웃에서 물 얻으러 왔는데, 아 물이 없어서 얼어 터져서, 수도 가  터져서 물 얻으러 왔으면 '아이구 그렇습니까?' 그때는 머리를 숙여. 얻으러 오는  사람에게는 머리를 숙이고 얻으러 갈 때에는 뒤로 저뻥해가지고 가야 되는거라.

그런데 정 꺼꾸로라. 얻으러 갈 때에는 막 코가 닿도록 머리가 닿도록 막 이래  숙이고 조그매라도 얻으러 오면 그만 뒤로 저뻥하이 그거는 땅에 있는 인간이지  하늘에 있는 인간이 아냐. 그래 가지고 뭐 거기서 오는 사람에게 불평이나 해  가지고서 그 사람 또 뿔이 나 가지고, 부애가 나 가지고 이래 가지고 했다 말  들었는데,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바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이 알기를 원한다.' 그 능력,  소망이 얼마나 크며, 기업이 얼마나 크며, 우리 속에 역사하는 능력이 얼마나  크며 이 세 가지가 얼마나 큰지 성신의 감화의 눈이, 감동이 돼 가지고 눈이  밝아서 이것을 너희들이 알아야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하는 것. 이거는 뭐냐? 성령이 눈을 밝혀 주고,  성령이 책임져야 된다. 그 사람은 보혜사 성신이 와 가지고서 그 사람을 책임졌기  때문에 부스러기라도 그에게 있지 성령이 책임지지 안하면 부스러기도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벌써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기본 구원은 다 얻은 자요,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하늘나라 가 가지로서 다 영생할 자요, 영광은 차이가  있지짜는서도 그래도 그 나라에 가 가지고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고 있을  자라 그 말이오.

 이런데. 끄트머리에 가 보면 '만물은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지난 아침인가 저 언젠가 우리가 할 일은 꼭 하나 할일  있다. '그 뭐 목사님 만날 하나 할일 있다.' 이거 하나 '믿음 하나만 하면 된다.'  믿음 하나만 하면 된다 하는 그거는 방편에 대해 말하는 거고, 방편은 믿음  하나면 돼요. 믿음 하나만 믿음이 뭐인데 하나님이 '이렇다' 하면 '아 그렇습니까?  예 인정합니다. 그대로 내가 확실히 인정합니다.' 또 믿음이 뭐냐? '이러니까 이걸  네가 소망해라,' '아 녜, 그걸 소망하지요.' '땅의 것 소망하지 말고 이것 소망해라'  '예 그것 소망합니다.' 또 하나님을 따라서 소망하고, 또 '네가 요렇게 행하라'  하니까 또 따라서, 힘이 없지마는 한다고 제 힘대로는 또 행한다 말이오. 그게  믿음이라. 믿음만 있으면 된다 하는 그 말이 또 내나 방편으로서는 믿음 하나만  하면 된다 그 말이고, 또 하나만 하면 된다고 하나만 하나만 하니까. 하나만 이면  장 하나만이나 되지, 그건 방편으로 말하면 이 하나만 하면 된다, 소망으로  말하면 이 하나만 하면 된다 그런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만 하면 된다, 뭐? 하나님은 머리 우리는 몸, 이 일만  이루면 됩니다. 하나님은 머리, 우리는 몸 이래 놓지 안했습니까? 그러면,  본체적으로 머리와 몸이 되는 것 아닙니다. 본체적으로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이 움직이는 힘적으로, 힘으로는, 힘으로는 연결돼,  힘. 능력으로 연결되고, 또 지혜로 연결되고, 또 행동으로 연결되고, 희로애락으로  연결되고, 영광으로 연결되고, 뭘로는 연결 안 됩니까? 본체로서는 우리는 항상  피조물, 당신은 창조주, 이 본체는 연결이 안 되고 그 나머지기는 다 연결이 다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되는 이 연결이 그러면 지금 연결을 시킬라고  합니까, 연결된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누리게 할라 하는 것입니까? 예? 인정하고  누리게 하는 것이라 말이오. 만든는 것이 아니고 누리게 하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 인정을 안 하고 세상에서 누리지 안하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세상에서  안 누린 자는 하늘나라에서, 자기 모가지가 한없이 있지마는서도 자기가 인정을  안 하고 안 누리니까 있지마는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하면 되기 때문에 이것이 이제 머리와 몸처럼  하나님은 머리고 우리는 몸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것인데 이 연결되는 것을 오늘  아침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 소망에, 하나님은 머리요 나는 몸이라.

우리는 몸,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 하나님과 연결이라. 이러니까, 연결  끊어지면 죽는다. 연결, 연결을 자기가 연결된 것을 인정하고 소망하고 연결된  자로 살라고 애를 쓴다 그말이오, 연결된 자로. '아 내가 사는 것은 전능의  생활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돼 가지고 사는 생활이다. 내가 지금 하늘나라  소망하고 산다.' 이것만 하는 그것을, 요것을 우리에게, 우리 영에는 다 돼 가지고  있는데 마음에 없으니까, 마음에 말이오. 지식 속에 요것을 가득 담아야 됩니다.

지식 속에, 항상 하나님은 머리시요 우리는 몸이라는 요것을 우리 지식 속에 가득  담아 가지고 항상 '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다. 그의 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극한 전지전능이 나를 통해 나타난다.

그래 내가 소망하고 고대로 하면, 인도대로 하면 요 행동은 전지하는 행동이요  전능한 행동이다. 요거 영생하는 행동이다. 사실 고대로 된다 이거요.

 이러니까, 우리 지식에 요 사실을 가득 채워서 돈벌이니 뭐이니 까짓놈의 지식은  근방에 빙빙 돌고 근방에 오고 속에 알맹이 지식은 요게 고것 만 불끈하나  단단히 다져 놓고, 다져서 하나 가득 채워 놓고, 소망에도 요 거 하나 가득 채워  놓고, 또 사상에도 가득 채워 놓고, 또 욕심에도 가득 채워 놓고, 또 취미에도  가득 채워 놓고, 성품에도 가득 채워 놓고, 또 뜻에도. 가득 채워 놓고, 기억에도  가득 채워 놓고 어찌 됐든지 우리 마음에는 여러 수천의 자루가 있는데 그  자루마다 요 사실을 지식으로 채우고, 소망으로 채우고, 성품에도 채우고, 뜻에도  채우고, 욕심에도 채우고, 감정에도 채우고, 기억에도 채우고 가득 채워서 그저  마치 말하면 콩 자루 푹 뚫으면 콩이 푹 쏟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는  그것만 가득 채우기를 애를 쓰니까 터지는 것은 뭐이냐? 가득 채워 가지고서  있으니까 무슨 말을 해도 그게 툭 터져 나오고, 말을 해도 하늘의 말이 나오고,  행동 해도 하늘의 행동이 나오고, 뜻을 해도 하늘의 뜻이 나오고, 욕심을 해도  하늘의 것이 나오고. 인제 이렇게 되어지는 이 연습을 우리가 자꾸 해야 됩니다.

이런데, 하루 스물 네 시간 가운데에 이거 뭐 일할 때에도 항상 땅의 것, 또 잘  때도 꿈에도 항상 땅의 것. 이러니까, 이 하늘의 것은 하나도 채워지지 안하고  통통 비워 가지고 세상으로만 가득 채워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라.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 위엣 것 그것만  말씀했습니다. 이래야 구원이 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내가 며칠 전에  들었어. ○○○교회에 있는 ○○○목사님이 지금 설교를 하면서, 뭐 우리 지금  현재 인구가 얼마라 하더라? 우리 남한의 인구가 얼마? 뭐 사천만인가  삼천만인데 '내가 한국에 있는 인구' 뭐 삼분의 일이라든가? 어쩌든지 천만  명이래요. 천만 명 내가 모을 자신 있습니다. '그러면 모으는 방법이 뭐이냐?'  '그들이 원하는 것만 주면 됩니다. 원하는 대로만 주면 됩니다.' 원하는 것 줘.

모두 다 원하고 있으니까. 마음에 평안을 원하고 있으니 평안 주면 되고, 또  그들이 병 낫기 원하면 병 낫아 주면 되고, 그들이 또 부자되기를 원하니까 부자  만들어 주면 되고 주면 다 된다고서 그렇게 인제 방편이 그렇다 하는데 그  방편이 좋은지 안 좋은지 여러분들이 판단하십시오.

 예수를 믿는 것은 요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랑하는 형제들아 스스로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선물과 은사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내려오느니라.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요거는  고 다음 장에 말합니다. 4장에, '허락하시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어늘 너희들이 무엇을 하고 나서 예수 믿겠다 하는 그런 것은 다  허탄한 욕심이고 다 교만해서 그렇다,'  이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이제 말한 대로 오늘 아침 말한 대로이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예수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소망하고,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제 이게 우리 소망이라 말이오. 이걸 우리가 소망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이라라 하면 이라고. 그라다가 죽으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가난하라 하면 가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다가 가난이 와도 감사할 것,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천하 거지가 돼도 그 보배로운 가치나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천하 갑부가 돼도 갑부된 그 가치나 꼭 같다 그말이오. 왜 같으냐? 그 부자  가난한 그 물질에 가치를 두지 안하고 하나님이 내기에 해 주시는 것이니까,  전지전능자가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분이 나에게 해 주신  것이니까. 그 분이 나에게 제일 좋기 때문에 해 주시는 것이니 그 가치가 같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요것 인정돼요?  저 ○○○ 집사님 인정돼요? 예? 순종해서 죽어도 살아도 순종함으로써  되어지는 것은 가치가 같다 요렇게 보 고 어쩌든지 이거나 저거나 당신이  전지전능의 사랑으로써 보실 때에 내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십시요.' '좋은 것  받을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내가 좋은 것 주지.' 시킨 대로 했다가 죽음이  오면 '좋은 것 줄라 하더니 마는 이것 줍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이지. 죽음을 주시니까 '아이구, 이게 좋아서  주시니까 이거는 참 주님이 주시니까 좋은 줄 알았지 주님이 안 주시면 이  죽음은 내가 취 하도 안할 것인데 주님이 주셨기 때문에 이거 참 이런 좋은 것은,  이런 좋은 것은 인간이 스스로 택하지 못할 것인데 아 이거는 참 주님이 주셔서  이런 좋은 것을 주셨습니까?' 놀랠 만침 기쁠 거라 말이오. 또 삶을 주셔도  그렇고, 요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땅의 것은 모두 다 이용물이오. 보자, 네가 하나님의 계약을  인정하나 안 하나?' 하나님의 약속을 인정하나 안하나 그것을 시험하고 또 인정  안 했으면 또 인정 새로 하고 연습하는 것이오. 이 인정하는 연습을 하는 것아요  새 인정을 또 자기가 새로운 인정을 자기가 취하는 것이요, 새 인정 시작하고  인정하나 안 하나 연습하고 그다음에는 인정했나 안 했나 시험 치르고. 얻고  연습하고 시험 치르고, 시작하고 연습하고 시험 치르고, 이제 시험 치러서  '합격'하면 고거는 됐다 그거요. 그게 우리 예수 믿는 것입니다.

 저 먼저 언제 설교를 오늘 아침 말한 야고보서 4장에 있는 말씀을 설교하는데  그 설교는 내가 하니까 아무도 못 들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누가 기억은 누가  하고 있는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하나다.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 되지  않는다. 다 한목 된다. 한목 된다. 하나이다. 지금이 영원이다. 현재 땅에 있는  이것이 하늘나라다, 이렇게 하나라는 그 단일성 이 공통성을 말했는데 그런 것은  말해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한 사람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애.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애, 이러니까 서서히 자꾸 가르치고 가르치고 자꾸 이렇게 그런 기회마다  요런 것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서 섞어서 먹여서 가르쳐 주는 것이니까 얼마나  달려들어서 배워 가지고 될는지 모른다 그거요. 내게 그렇게 많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많이 있는 것을 당신이 때를 따라서 주신다 이거요. 그러니까, 어쩌든지  예수 믿는 것은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또 땅의 소망도 버리지도 말고, 땅의  소망 하늘의 소망, 이걸 하늘의 소망만 가지고 땅의 소망은 버리는 것은 일학년이  하는 것. 하늘의 소망이 땅의 소망이 요 땅의 소망이 하늘의 소망이며 둘이 한  소망이라는 것. 이 땅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은 영계  것과 물질계의 것을 다 점령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제 자기는 이거나 저거나  다 하나님 주시는 것은 꼭 같은 이용 가치가 있고, 똑 같은 필요성이 있고, 내게  대해서는 꼭 같이 복이 된다 요걸 믿는 믿음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자꾸 새벽기도 나와야 뭘 알아지고 이게 백 번 천 번 들어야 알아질  터인데 이래 안 나오고 가끔가다 오니까 그러니까 불쌍하다 그거 요, 그 사람이  말이지, 예를 들면 사장이 되면 여기 못 나을 사람이 사 장되고 새벽기도 못  나오는 사람이 좋소, 그저 근근히 근근 의식주 하고 살면서 새벽기도 신앙의  자유하는 사람이 좋소? 어떤 사람이 좋습니까? 자, 사장 돼 가지고 주일도 잘 못  지키고 새벽기도 잘 못 나오고 성경도 모르고 읽을 수 없고 막 분주해서 이런  사람, 그런 사장되기를 원하는지, 그저 먹고 입고 살면 족하니까 성경 얼마든지  보려면 볼 수 있고 기도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새벽기도 나오려면 나을 수  있고 이렇게 신앙의 자유 양심대로 할 수 있고, 신앙 자유, 양심 자유, 행위 자유  이렇게 할 수 있는 그게 복인지, 제일 처음에 그게 복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봐요. 하나도 없구먼 하나도 없어. 거짓말쟁이가 아닌지 모르겠어.

그러면 둘째번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봐요. 녜. 이렇기는 이런데, 알기는  알아. 이것이 성신의 감화라. 알기는 알지. 알아서 행하도 못하고 애기는 아니까  참예는 하지마는서도 영광이 다르다 그거요.

 이래도, 결혼시킬라 하면 좋은 데 가 가지고서 꼼짝도 못 하고 요래 가지고서  종이 돼 가지고서 이렇게 질질 끌려 다녀도 돈만 많으면 '야 너 한 끼에 밥 몇  그릇 먹노?' 내나 그 밥 먹고. 두 그릇도 그 밥 먹고. 또 그 밥을 먹는데 '그러면  너는 얼마나 고급 먹노?' 돈은 많은데 밥맛이 없어, 자 맛없는 음식 먹는 사람이  복이요 아주 달콤한 맛이 있는 음식 먹는 사람이 복이요? 맛없는 음식 먹는  사람이 복입니까? 그런 사람 손들어 봐요, 없지. 저 사람은 만 원짜리를 해도  꺽꺽 도무지 암만 먹을라 해야 안 되는데 이거는 한 삼백 원짜리도 막 꿀떡  같습니다. 그게 복 있지 안해요? 사람들이 계산이 영 꺼꾸로라. 어리석다 그거요.

 이러니까, 결혼시킬라 해도 거기 가 가지고 제딴에는 공연히 어떤 여자 내 하나  봤는데 그 어떤 장관의 아주 부인 됐던 사람인데 배척을 당해서, 소박을 당해서  지금 배척당한 여자요. 여기 우리 교회 집사로 여기 있었어요. 배척당한 여자인데  그래도 떡 인사를 하면, 얘기 하면 그것 자랑합니다. 슬그머니 내가 그전에  누구의 아내 됐던 것이라고. 누구의 아내 됐던 사람인데 뭐 자기 남편 됐던  사람      남편 됐던 사람이라 소리 안 해요. 이혼을 하고도 있으면서 '남편이 어데  뭐하고 뭐하고.' 부끄러워서 말이요 택! 침을 뱉어버리고 그 뉘가      '뭐 그까짓  놈의 새끼, 그 같은 놈의 새끼.' 이래야 될 건데 그래라도. 그렇게 명예, 영광,  지위, 권세가 좋은 모양이라, 이래서 종의 종이 돼서 꼼짝 못 해도 그래도 세상  것 많고 높은 사람.

 성경에는 물질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 것이니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그랬는데, 전지의 사랑이 그랬는데 그 거짓말입니까? 이래 가지고  직장도 조금 좋은 자리 갈라고, 조금 월급 조그매 그래 가지고 눈코를 못 뜨서  눈이 생그라이 해 가지고서 자유 못 하고 이래 가지고서 새벽기도 못 나오고.

이래도 그게 좋다고, 그저. 우리 서부 교회는 참 호는 잘 났어요. 내가 기독교  방송국에 가니까 방송국장이 소개하기를 '이 목사님은 부산에 지게꾼 교회라고  유명한 교회의 목사님입니다. 지게꾼 교회 목사님이라고 그들은 다 그래 알고  있어요. 참 좋아요. 그라면서 소개를 또 뭐라는 것이 아니라 지게 짊어지고 이래  노무자로 일하다가 그래 예배 시간 되면 와 가지고 지게 탁 놔 놓고 그래 예배  보고, 또 예배 보고 나서 또 지게 짊어지고 가고, 참 그라면 참 좋겠어요. 얼마나  자유입니까? 여러분들, 천국 구원 얻기 위해서 성경 볼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진리를 배울 수 있고 양심대로 살 수 있고. 가책 없이, 아무 눌린 데 염려없는  생활하고. 어쩌든지 이렇게 생활하는 요 생활에서 살도록 우리가 노력을 합시다.

녜, 그거 우리가 표준해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등록된 사람 기도회, 사천 칠백 십 오 명이 등록됐는데 어쩌든지 다 등록 하고  다 기도하도록 노력합시다. 중간반이 기도 등록 수가 자꾸 늘어 나가지 않습니다.

장년반은 차차 늘어 나가고 주일학교도 더 늘어 나가지 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니까 장로님 권사님들, 권사님들 다 참관했고 장로님들도 아흡 분이 와서  참석했어요. 장로님들은 대개 세상에서 바쁘기 때문에 좀 분주해요. 바쁜 것.

바쁘고 분주하고. 바쁜 그것도 또 세상에 높은 세상을 차지할라 하니까 바쁘고  분주해. 참 좋기는 서민이 좋습니다. 이라니까 누가 말하기를 저 서부 교회는  자꾸 목사님이 저래 설교 해 놔서 나중에 가서 순 문드러기 쓰지 못할 것 그런  것만 모을 것이라고 그래 염려를 해요. 아 그거야 천국이나 부자되고 세상에서는  찌꺼레기 되고. 천국의 신앙 자유 양심 자유해서 공산주의가 와도 읏으면서  즐거워하면서 순생하고 순교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되면 좋지 그거 뭐 세상 것  때문에 분주해 예수 잘 못 믿고 이래 있다가 환난 오면은 쥐구멍      그 따위  인간되는 것 내가 원치 않습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636 인생의 두 길/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811004주후 선지자 2015.12.16
1635 인생의 두 길/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1981년 41공과 선지자 2015.12.16
1634 인생의 생애/ 갈라디아서 6장 6절-9절 / 1980년 5공과 선지자 2015.12.16
1633 인생의 실력과 부요/ 사도행전 3장 16절/ 1976년 46공과 선지자 2015.12.16
1632 인생의 종말/ 요한계시록 20장 11절-15절 / 1975. 8. 3. 제 31 공과 선지자 2015.12.16
1631 인생의 중요한 문제/ 이사야 49장 24절-26절/ 810915화새 선지자 2015.12.16
1630 인생의 평가/ 골로새서 2장 20절-3장 10절/ 820117주후 선지자 2015.12.16
1629 인인관계의 계명/ 마태복음10장 40절-42절/ 881212월새 선지자 2015.12.16
1628 인인관계의 계명을 지키라/ 에베소서 6장1절-9절 / 881120주전 선지자 2015.12.16
1627 인인관계의 깨끗/ 마태복음 5장 21절-26절/ 850501수새 선지자 2015.12.16
1626 인인관계의 중요성/ 마태복음 10장 11절-26절/ 820702금야 선지자 2015.12.16
1625 인인관계의 투자/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 820630수새 선지자 2015.12.16
1624 인자되신 주님의 사랑/ 마태복음 25장 31절-40절/ 820318목새 선지자 2015.12.16
1623 인자하심이 영원함에 대한 감사/ 시편 136장 1절-26절 / 880131주후 선지자 2015.12.16
1622 인자하심이 영원함에 대한 감사/ 시편 136장 1절-26절/ 880131주전 선지자 2015.12.16
1621 인정-성화-행함/ 마가복음 9장 23절-24절/ 830109주전 선지자 2015.12.16
1620 인정-성화-행함/ 아가서 4장 6절/ 820829주후 선지자 2015.12.16
» 인정-소망-행함의 믿음/ 에베소서 1장18절-23절/ 840222수새 선지자 2015.12.16
1618 인정하고 믿을 것/ 요한계시록 3장 17절-22절/ 840819주새 선지자 2015.12.16
1617 일 계명의 중요성/ 출애굽기 20장 1절∼6절/ 881130수새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