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산 것 죽은 것

 

1985. 12. 29 주일오후

 

본문:로마서 8장 5절∼6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오전에 증거한 말씀은 여러분들이 많이 기도하고 잘 생각하고 또 요다음에 며칠 후에 한 번 더 증거할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그 말씀을 증거할라 하다가 또 거듭 증거해 봐야 내나 본인이 연구하지 안하면 별 게 없다 해서 이 말씀을 증거하게 됐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어제 산에서 깨달은 말씀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에는 두 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근원에 대해서 이원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의 근원과 악의 근원, 근원이 둘이다.

선의 근원은 하나님에게 속했고 악의 근원은 마귀에게 속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씨의 아들 ○○○박사는 연세대에 교수인데 그분은 미국 가 가지고서 이원론의 논문을 내 가지고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이원론을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원론은 성경적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 머물게 하시고 모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영계에서 타락한 천사가 내려와서 배암을 입고 해와를 유혹시켜서 그때부터 해와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일이 시작됐읍니다.

그때부터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것이 생각이 됐고, 또 자기 뜻 그 자율이라는 것이 생기게 됐습니다. 이래서 타락 후에는 어데든지 하나만이 아니고 둘이 병행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악이 있는 데에 선이 있고 의가 있는 데에 불의가 있고 그렇게 어제든지 둘이 동행같이 하면서, 불택자들은 다 유혹시켜서 저희의 부하를 삼았고 택한 자들이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할려고 분투 노력하고 있는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뭐이든지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두 가지로 갈라져 있는 것 일곱 가지를 지금 간단하게 증거하고 끝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들이 있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사람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요, 그 지식을 사람들에게 내보낸 이가 둘이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식을 인간에게 보내셨고, 또 악령은 악령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래서 세상에는 언제든지 두 지식이 병행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지식으로 살려고 해도 자기가 하나님의 지식으로 살려고 하는 동시에 배암의 지식이 거게 같이 있으면서 자기를 배암의 지식으로 살도록 할려고 그렇게 유혹하는 일이 언제나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지식이요, 그 외의 지식은 전부 다 인간의 지식이나 그것을 다른 말로 정확히 말할라면 배암의 지식이요 사탄의 지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산 지식과 죽은 지식이 언제든지 같이 있습니다. 산 지식은 사람을 살리고 만물을 살리고 죽은 지식은 사람을 죽이고 만물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지식이면 지식이라고만 생각하고, 산 지식이냐 죽은 지식이냐, 살리는 지식이냐 죽이는 지식이냐, 이 근원은 구별할려고 하지 안하고 무조건 지식이라면 다 좋다고 생각해서 지식의 탐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욕심이나 지식의 탐심이나 같은 말인데 지식의 욕심이라는 말은 자기가 그 지식을 자연스럽게 취득할 수 있는데 취득한 그것은 지식의 욕심입니다. 자기에게 필요 없는 지식인데 그 지식을 욕심을 내 가지고서 가지는 것이, 죄되는 그런 방편을 쓰지 안하고 순조롭게 가진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필요 이상의 지식을 원하는 것은 다 탐심입니다. 자기에게 필요 이상의 지식을 욕구 하는 것은 다 탐심이요, 또 자기가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이라고 생각이 될지라도 그 지식을 자기가 순조롭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취득하지를 못하고 꼭 무례하게 불법하게 이치를 거스려서라도 그 지식은 가져야 되겠다 하는 것은 그 지식의 탐심인 것입니다. 지식의 허욕이나 지식의 탐심도 물질 허욕이나 물질 탐심이나 꼭 같은 죄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 지식이든지두 가지 지식이 있는데하나님의 지식이든지 그 지식을 자기가 자연스럽게 이치를 거스리지 안하고 또 자기가 믿음을 지켜면서 그 지식을 가질 수 있으면 가져야 하지 자기의 정도나 분수나 형편이나 사정을 거스려서 지나치게 무리하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취할라 하는 것도 다 그것은 탐심이요 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필요한 것이라도, 이거는 취하기 위해서 약간 무리한 일을 해도 괜찮다, 불법을 해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못 씁니다. 교회가 없는 데 복음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는 데에도 이치에 거스리면 탐심이요 잘 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신령한 것이나 물질의 것이나 자기의 분수를 생각하고 자기 분수에 알맞게 하는 것이 그것이 진리입니다. 자기 분수를 거스려서 하는 그런 것이 다 허욕이요 탐심이요 또 자기의 분수 곧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않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첫째로 중요한 것이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 산 지식과 죽은 지식, 산 지식은 내가 가지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그 지식으로 살릴 수 있고, 죽은 지식은 그 지식으로 나도 사망의 해를 보고 다른 사람도 사망케 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지식이라고 다 같다고 생각하고 하지 말고 언제나 산 지식과 죽은 지식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이래서 산 지식은 주체가 되고 죽은 지식은 소유체가 되면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주체가 되고 이 인간 지식이 그 밑에 피소유체가 돼 가지고서 언제든지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지식에게 순종하는 행위를 하면서 인간 지식을 이용하는 고 걸음으로 걸어가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보다 인간 지식이 으뜸이 돼 가지고,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나 또 그 사람이 가치로 여겨서 대우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보다 세상 지식을 높이 대우하면 그것은 미구에 그 지식이 우상이 돼서 자기는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 산 지식과 죽은 지식을 잘 비교하고 그 비중을 언제든지 달아서 자신도 그렇게 해야 될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 대해서 그와같이 하는 것을 잊어 버리면 나중에 배암의 지식에게 자녀를 다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그 자녀를 다 하나님의 지식이 차지를 못 하고 배암의 지식이 차지해서 그 사람을 최후적으로 최고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배암의 지식이 통치하지 하나님의 지식이 통치하지를 안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지식은 부가 되고 배암의 지식은 원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이용을 할라고 달라들고 배암의 지식에는 복종을 할라고 달라드는 그런 자멸을 취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 가지 지식을 두고서 만일 하나님의 지식이 인간 지식보다 그 사람에게 위에 가 있으면 인간 지식을 취해도 됩니다. 그러나 가다가 두 지식이 서로 어깨겨룸이 돼서 어느 지식이 위에 있는지 어느 지식이 밑에 있는지 모를 때에는 우리가 슬기 있는 행위는 인간 지식을 낮춰서 중단해야 됩니다. 인간 지식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지식이 일단 그 주체의 위치에 앉고 난 다음에 이제 인간 지식을 수학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인간 지식은 잡초와같이 빨리 자랍니다. 하나님의 지식보다도. 인간 지식이 빨리 자랐으면 인간 지식을 중단을 해야 됩니다. 학교도 정학을 시켜 놓고 그래 가지고서 해야 되지 그걸 그대로 두면은 나중에 가서 그 사람이 결국은, 하나님의 지식은 다 영생인데 하나님의 지식은 무시하고 인간 지식이 앞서 인간 지식이 자꾸 하나님의 지식을 무시합니다. 부인합니다.

이래 놓으니까 국민학교 다닐 때는 잘 믿는 아이가 중학교 가니까 이상해지고, 또 중학교 때 잘 믿는 것이 고등학교 가니까 이상해지고, 또 고등학교 때는 잘 믿는 것이 대학 가니까 이상해지고 대학 갈 때는 또 잘 믿던 것이 이제, 외국에 유학이나 갔다오고 이 사회에 가 가지고서 사회의 온갖 잡탱이 학을 공부하고 보면은 나중에 가서 예수 믿는 것은 무슨 체면술에 걸린 사람과같이 그렇게 아주, 아편같이 그렇게 싫어하고 멀리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주도 영계도 틀림없이 요대로 됩니다. 우주를 지으신 이가 요 말씀하셨고 말씀하신 대로 요 우주를 지으셨고 주권하시는 분이 꼭 요대로 딱 들어맞춰 버립니다. 맞추니까 피조물 제까짓 게 무슨 힘이 있읍니까? 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을 가지나 산 지식이 자기 지식의 주인이 되고 이 배암의 지식 세상 지식은 죽은 지식인데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의 소유물이 돼야 됩니다. 세상 지식의 주격은 하나님의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식의 소유는 이 세상 지식이 돼야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제일 큰 문제가 두 지식이 있으니까 두 지식 가운데에 이 산 지식 죽은 지식, 살리는 지식 죽이는 지식 이 두 지식을 잘 구별해 가지고 지식을 가지지 안하면 우리는 지식으로 망하고 맙니다.

아주 이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짜다라 아무 데나 가도 자꾸 이래 듣고 많이 있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산 지식이라, 살리는 지식이라 하는 말이 여러분들이 그렇게 쉽게 들려지는 게 아닙니다. 여러 수십 군데 가도 잘 들리는 것 아닙니다. 여러 수십 년 예수 믿어도 이걸 들어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우리는 모든 움직임을 다 믿음으로 움직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마치 얼어붙는 거와같이 얼어붙어서 꼼짝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금을 떼지 못하는 것이오.

믿음으로써 다 움직이는 것입니다. 뭘 믿든지 믿음으로 움직여. 믿음으로 움직이는데 어떤 데 내가 신문 보니까, 서로 믿고 살아야 된다 그렇게 한 말을 뉘가 아주 제법 힘있게 쓴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믿고 살아야 된다 그런 말 했읍디다. 또 뉘 말 들으니까 어데 가니까 말하기를 ‘아, 서로 우리 믿고 삽시다.’ 그만 그 말이 유행이 돼서 마귀는 좋아. 마귀가 내놓은 소리야. 믿고 산다고.

믿는 것도 산 믿음이 있고 죽은 믿음이 있고, 살리는 믿음이 있고 죽이는 믿음이 있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살리는 믿음은 어떤 것이 살리는 믿음인가? 영원 자존하신 우리의 대속의 구주가 되신 이 구주를 믿는 그 믿음이라야 살리는 믿음이 되고 산 믿음이 되지 그 외의 거는 다 죽은 믿음이요 죽이는 믿음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믿는 것이 정한 이치라고 생각하지마는 자녀가 부모 믿는 것이 그것이 유한한 믿음이 아니고 궁극적인 믿음을 가졌다면은 그 자손은 죽었습니다.

망합니다. 틀림없이 망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데 다만 하나님이 나에게 보호자로, 후견자로, 복의 기관으로 이렇게 두셨으니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가 되는 이 부모이니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나게 하셨다, 그러니까 유한한 신하,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원이 돼 주시는데 그 중간에 중보, 심부름을 하고 있는 근원의 내 신앙 대상이 아니고 근원에 소속한 하나의 기관적인 신앙으로 요렇게 신앙을 가져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 딴것을 믿는 것, 자기가 민족을 믿는다. 국가를 믿는다. 사회를 믿는다, 문화를 믿는다, 과학을 믿는다, 자신을 믿는다, 다 사망하는 것입니다. 다 사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 속에 파묻혀 있어도 하나님이 그 과학으로 저에게 유익되게 섭리하시지 아니하시면 그 과학으로 저는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안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산 믿음이요 피조물을 믿는 믿음이 다 죽은 믿음입니다. 피조물을 믿으나 하나님을 믿으므로서 그 피조물을 하나님과 그 사이에 중보로 인정하고 그 피조물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간접적인 신앙으로 연상해서 믿으면 그것은 산 믿음인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믿되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산 믿음이지 현실에서는 믿지 안하고 과거에 대해서 내가 믿지 못했다 후회하면서 믿고 또 미래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믿겠다 하는 믿음 그런 것은 다 생명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내가 현실에 딱 닥쳐서, 현실에 요 현실에서, 하나님은 전능자시다. 전능자가 나와 함께 계신다. 전능자가 날 보호하신다.

전지자가 나를 인도하신다. 주권자가 나와 함께 계신다, 주권자로 믿든지 하나님의 어떤 면의 그 위대하심을 믿어도 현실에 믿어야 됩니다. 현실에 믿어서 고 믿음으로 행동할 때에 고것이 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죽은 믿음은 피조물을 근복적으로, 하나님 떼내 버리고 피조물만을 믿는 그 믿음은 전부 죽은 믿음입니다. 아무리 세계에 어떤 대 위인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이 그 영웅을 붙들고 일하니 이 영웅이 인도하는 데에 하나님의 인도가 영웅을 통해서 인도가 되면은 내가 따르지마는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 인도를 그 영웅이 할 때에는 딱 반대하는 것이 그것이 산 믿음이오. 그게 사는 것이오, 또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현실에서 믿지 안하고 과거를 후회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후회함으로 믿고, 또 미래에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결심함으로 믿는 그런 것은 다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현실에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을 믿으나, 모든 피조물을 믿으나 그 근원이 하나님이시니 피조물을 믿는 것은 피조물을 믿어 그 근원이 하나님을 향하여 믿는데 내가 상대하기는 피조물을 상대하는 것으로써 이렇게 믿지 안하면 다 죽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과 죽은 믿음이 있으니 산 믿음은 살았고 살리고, 죽은 믿음은 죽었고 죽이는 것입니다. 이제 산 믿음과 죽은 믿음을 구별해 가지고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다음에 세째로는 우리가 소망하는 것, 소망도 산 소망이 있고 죽은 소망이 있습니다. 산 소망은 어떤 게 산 소망입니까? 산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것이 이것이 산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세 가지 대속의 중보자이니까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나는 하나님과 상관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앞에 쫓겨나서 멸망을 받아야 되는 인간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것을 소망합니다. 다른 걸 바라보고 살지 안하고. 예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과 나와 상관이 없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이 다 내가 은혜로 받을 것이라는 이 소망, 죽음에서 구해 줄 이도 하나님께 대해서만 소망, 자기가 어려운 난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하나님에게 대해서만 소망, 영생도 하나님에게 대해서만 소망, 내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은혜로 요렇게 이루어 주실 것을 소망하는 소망,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이 해 주실 걸 하나님을 상대해서 소망하고 모든 나쁜 것을 하나님이 다 이것을 치료해 주실 것을 바라면서 간구하고 이것이 다 산 소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리라,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것이 산 소망이요, 하나님 아니면 이거 오늘 있다가서 오늘 저녁에 코르륵팩 하면 그만 송장이 될 터인데 그것을 믿고, 또 지금 장기, 소리 하지마는 고만 뭣이 지진만 하나 나도 고만 푹 쭈그러지고 없어지는 그런 거 정함이 없는 피조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가 요걸 믿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요거 믿으면 고 냅두면 안 되니까, 믿지 마라 해도 안 되니까, 고걸 자꾸 믿으면 요거 냅두면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구원 못 이룰 것이기 때문에 고 믿는 고걸 딱 없애 버립니다. 딱 없애 버리요.

그래, 택자들이 과부가 많습니다. 과부가 많아. 택자들이 과부가 많아요. 아, 남자는 택자가 아닌데 아내가 택자인데 택자 구원할 건데 그 택자 아닌 그게 들어서 그것만 자꾸 믿고 하나님은 안 믿고 자꾸 거게 따라서 움직이니까 없애 버릴 것 아니요? 없애 버린다 말이오. 하나님이 없앨라면 당장에 다 없애. 그분이 모든 걸 주권 가지고 있어. 주권. 다리가 성하니까 뽈뽈 걸어다니면 다리를 뿔라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시오. 머리가 좋아서 날뛰면 머리를 팩 틀어서 그만 정신 이상자를 만들어 버립니다. 솜씨가 좋아서 꺼덜거리면 그 솜씨 가지고, 좋은 솜씨 가지고서 좋지 못한 일, 잘못한 일을 해 가지고 솜씨 때문에 일생을 망쳐서 그 변상을 해도 못 갚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지 맙시다.

믿는 것 산 믿음,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데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사람 저런 사건 저런 물질을 통해서 나에게 이런 것 저런 것을 들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러니까 그거는 다 은혜 기관이오. 은혜 기관으로 피조물을 믿지 그것이 은혜를 가지고 은혜 주인으로서 나에게 주시는 은혜 근원자라고, 은혜의 주권자라고 믿으면 전부 우상 섬기는 게 되기 때문에 그걸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과 믿음을 잘 구별해서 산 믿음이냐 죽은 믿음이냐 그런 것을 잘 구별해서 우리는 가져야 됩니다.

그다음으로는 산 소망이냐 죽은 소망이냐? 하나님께 대한 소망은 산 소망이요, 다른, 피조물에게 대해서 소망은 정함이 없는 소망이요 다 그것은 소망한 것만치 속고 맙니다. 피조물 그걸 또 소망해도, 그걸 소망해도 은혜의 기관으로, 은혜의 기관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쓰시는 도구로, 하나님의 종으로,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부리는 종이라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권세에 복종해라. 그 권세가 공연히 칼을 들고 너희들에게 달라들 게 아니고 악한 자에게 칼을 들고 달라드느니라. 그거는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기 때문에 권세자가 두렵지 아니하느냐? 너에게 잘못된 삐뚤어진 게 없도록 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도 하나님께 둡시다. 하나님께 두라 말은 신구약 성경에 이것을 네가 소망해라. 신구약 성경에 소망하라는 것은 소망하면 그것이 틀림없지마는 신구약 성경에 없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 소망은 다 자타를 속이는 것입니다. 성경에 소망하라고, 바라보라고, 소망하라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소망하라 하기 때문에 그 소망하는 게 하나님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망도, 헛된 소망 죽이는 소망 속이는 소망, 산 소망 살리는 소망 실상이 이루어지는 소망 이러니까, 소망이라고 보면 참 질팡갈팡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소망을, 우리가 아들은 아들만치 거기다가 소망을 두고, 또 채전밭은 채전밭만치 채전밭에 소망을 둡니다. 자기는 집에 도야지를한 마리 먹여도 도야지에게 소망을 둡니다. 도야지에도 소망도 두고, 또 곡식에도 소망 두고 오만 것 다 소망을 둡니다. 소망을 두는 그 소망은 궁극적 소망이 아니고 그 소망은 하나님에게 소망 두는데 그것은 하나의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 하나님이 쓰시는 기구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그 실물로 그래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소망하는 이 소망도 산 소망은 자존하신, 우리의 중보자이신 주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하고 딴데 소망 안 해야 되고, 피조물은, 소망하나 피조물 단독으로 소망하면 다 그것이 죽은 소망이 되고, 피조물은 , 참 소망을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나에게 어떻게 해 줄 수 있다고 소망하는 것은 그것은 다 바른 소망입니다. 그거 다 산 소망입니다.

자기가 어떤 토지를 하나 사 가지고서 거기다가 무슨 종자를 심습니다. 종자를 심으면서 그 소망을 둡니다. ‘여게 너 뭐 할라고 여게 심느냐? ‘녜, 여기 곡식을 얻을라고 심습니다.’ `그러면 너 이 토지에 소망을 뒀네' ‘예, 소망을 뒀습니다.’ `소망을 뒀으면 그러면 이 토지에만 소망 뒀느냐? ‘아니오. 토지에 소망 두는 것은 이것은 이제, 내가 소망을 두기는 한 분에게 소망을 두는데, 주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데 그분이 이 토지를 통해 가지고 나에게 밥 먹을 걸 줄까 해서 그래 지금 소망을 둡니다. 그러나 그분이 주시면 이것 가지고 많이도 주실 수 있고 그분이 안 주시면 이거 암만 심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게 뭐냐? 바로 소망하는 것입니다. 바로 소망 가지는 것. 그러기 때문에 소망도 산 소망이 있고 죽은 소망이 있으니까 고것을 우리가 잘 구별해서 살도록 합시다.

또, 네째로는 우리가 맡기는 거 있습니다. 뭐이든지 날 맡깁니다. 결혼하면은 대개 보면은 여자들은 남편에게 그만 자기를 다 맡겨 버립니다. 날 일생 동안 맡아 줄 사람이 누군고 그래 구하고, 또 부모네들도 딸을 치울 때는 우리 딸을 일생 동안 잘 맡아 줄 이가 누가 있는고 이래 모두 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의례히 남편이 맡아 줄줄 알고 남편에게 맡기지 않습니까? 그것도 죽은 맡김이 있고 산 맡김이 있습니다. 죽는 맡김이 있고 사는 맡김이 있습니다. 죽은 맡김 죽는 맡김 죽이는 맡김, 산 맡김 살리는 맡김 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그것도 맡기기는 주님 한 분에게만 맡기지 아무데도 맡길 데 없는 것입니다. 주님 한 분에게 맡겨. 주님 한 분에게 맡기면서 ‘주님이여 내가 지금 이와같이 지금 결혼했으니까 주님이 이 남편을 통해서 나를 맡아 가지고 이리저리 해 주십시오. 내게 분부할 것은 이 남편을 통해서 해 주십시오.’ 남편에게 말기는 것 같으나 실상은 남편의 주인공되신 주님에게 맡기면서 ‘이제 이 남편에게 맡기니까 남편의 주인이신 주님이 이 남편을 통해서 나를 잘 맡아 주십시오.’ 맡기는 근원은 주님이라야 되지 주님 버려 버리고 자기의 남편을 궁극적인 자존자로 독존자로 삼아서 그에게만 맡긴 것으로서 끝이 났으면 저는 멸망입니다. 그 맡긴 거는 다 헛일입니다. 알겠습니까? 맡긴 거는 다 헛일이오.

요거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안 되면 안 돼. 맡기는 것도 언제든지 그래 맡기십시오.

이제는 우리 남편 이렇게 실력 있고 박력 있고 모든 것이 미꿈하고 신체도 건강해, 언변도 좋아, 기술도 있어, 학문도 높아, 활동성도 있어, 이제 닦아 놓은 기반도 있어, 사회성도 있어, 사람을 많이 얻어서 인성도 둥그러이 쌓아 놨어, 뭐, 구비하다, 이만하면 됐다. 이러니까, 이만하면 됐으니 내가 처녀 때는 열심히 새벽 기도 나오고 했지마는 이제야 새벽 기도 안 나와도 되지, ‘왜 안 나오노?’ 삐쭉삐쭉 하면서 `예, 뭐 피곤해서 안 나갑니다.’ 해도 속에 배짱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내가 뭐 어떻게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 하나님 이래 쌓아며 기도도 하고 이랬지마는 이제 이런 남편 얻어 놨으니까 문제 없어. ‘아, 그래 나와야 되지 안 나와 가지고 되는가?’ ‘못 나갑니다. 뭐. 뒤에 차차 나가지요. 요게 뭐라 하는고 싶어 볼라고서 ‘그래 새벽 기도 안 나오고 기도도 하러 안 오고 그라면 되는가? 하나님이 축복 안 하면 되는가?’ 속으로 비쭉거리면서 ‘우리 남편은 이래' 문어가 몇 가래입니까? 문어가 몇 가래이지요? 여덟 가래? 예? 문어는 여덟 가래라. ‘우리 남편은 여덟 가래가 미끔해. 이렇게 모든 게 구비해. 이러니까 잔소리하고 있어? 아, 그라면 나는 당분간 쉬어 가지고 뒤에 나가든지 하지 교회 안 나갈랍니다.

고게 뭐이냐? 맡기기를 잘못 맡겼습니다. 잘못 맡겼어. 잘못 맡겼어. 하나님이 모든 것 다 그래 버리면 뭐 다 절단 나면 어짭니까? 다 그러지 못하지마는 고 총 중에 하나씩 봐서, 모든 사람에게 ‘봐라. 봐라, 누구에게 맡겼지 맡겼지.’ 하고는 아, 맡겼는데 자고 나니까 고만 코로록 하니까 금방 같이 누워 자다가 보니까 고만 송장이 돼 버렸어. 어짤랍니까? 뭐 맡을 실력이 있습니까? 그게 남편 죽이는 것이라 말이오.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남편이 어리석게, 하나님을,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나님께 맡겨야 될, 하나님의 자녀, 피로 값주고 산 자녀인데 그 자녀가 하나님 안 믿고 저 믿으니까 좋다고. 남편만 믿지 말고 하나님 믿으라 이라니까 비쭉비쭉 거리면서 성을 내 가지고 ‘교회 가지 마라. 교회 가지마라.’ 네까짓 게 뭔데! 네가 뭐인데! 네가 뭐인데, 네가! 네가 무슨 힘이 있어! 고약한 것. 요래 가지고서 열에 하나 백에 하나, 하나 딱 모든 사람이 보고 난 다음에 탁 해 버리고 나서 아이쿠 울면서 야단입니다. ‘왜 우노?’ `아이고 고만 남편이 죽었어요.' `왜 죽어? 천년 만년 안 살고?’ ‘아버지가 죽었어요' `왜 죽어'? 천년 만년 안 살고?' `우리 상관이 죽었어요.’ ‘왜 죽어? 천년 만년 안 살고?' `아, 우리 정권이 무너졌어요.’ ‘왜 무너져, 천년 만년 안 가고?' 여러분들, 정함이 없는 데에 그런 데 맡기지 마십시오. 맡기는 것도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맡겨야 됩니다. 다른 데는 맡길 데가 없어. 맡기면서, 그러면 세상 것 다 버리라 말이요? ‘하나님 나에게 이런 걸 다 이래 줬으니까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날 맡아 주십시오. 내가 사람 보기에는 여기다가 맡기는 것 같지마는 실은 당신에게 맡깁니다. 당신이 이를 통해서 나를 책임져 주시지 아니하시면 이 사람이 무슨 힘있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철통같이 상관만 믿고 상관에게 맡겨 놓고 내 모든 걸 상관에게 맡겨 놓고 상관 시키는 대로만 하고, 남편에게 맡겨 놓고 남편 시키는 대로만 하고, 선배에게 맡겨 놓고 선배 시키는 대로만 하고 이래 하지마는, 당신이 배후에 계시기 때문에 당신이 이를 통해서 나를 맡아 주셔서 잘해 주실 걸 내가 믿고 하는 것이지 당신 없으면 이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가 맡기는 것은 보기에는 피조물에게 맡겼지마는 실은 당신에게 맡겼습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맡김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라면 몇 가지 했습니까? 네 가지 했어?

다섯째는, 다섯째는 의지하는 것. 의지하는 것. 의지해야 하는데 의지를 해야 내가 행동할 것 아닙니까? 의지하는 것. 의지도 허무한 의지 있고 실력 있는 의지 있습니다. 그것도 산 의지가 있고 죽은 의지 있습니다. 피조물을 의지하는 것은, 피조물만을 의지하는 것은 전부 죽은 의지요, 다 죽은 의지. 언제 어찌 될 수 있습니까? 생명에 자유가 없는데 금방 장사라도 금방 송장이 되는데, 뭘 의지할 것이요? 의지도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해야 되는데 모든 피조물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나에게 지도도 하고 나를 거게 속하게도 했고 나를 그 환경 속에 머물게 했고 이러니까,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니 그 내 옆에 있는, 옆에 있는 환경에 순종해야 되고, 제도에 순종해야 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내가 의지하다가도, 의지하다가도, 사람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의지하기 때문에. 의지하는데,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 없는 것을 의지하라 합니다.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 없는 일을 의지하라 이랄 때는 ‘의지 못 합니다.’ 딱 의지 안 합니다. ‘아, 네가 이것도 의지하고 저것도 의지하고 날 전부 다 의지했는데 이놈아 전부 오늘까지 의지하고 살더니마는 왜 이거는 의지 안 할라 하노?’ ‘그것은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책임져 줄 줄 알고 하나님에게 의지, 하나님이 맡아 줄 수 있는 그런 것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의지했지 이거는 하나님이 그거 내가 맡지 못한다 하는 불법, 불법 그걸 자기에게, 하나님에게 불법된 법으로써는 의지 안 합니다.

하나님 법에 합당한 그것만 의지하지요.’ 그러면 그 의지하는 것은 그거, 피조물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요, 피조물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라 말이오. 제가 중보자 대우 받았으면 족하지. 뭐 남편이 아내에게 중보자 대우 받았으면 족하지 안해요 부모가 자녀에게 대해서 중보자 대우 받았으면 족하지 안해요? 상관이 그 부하에게 하나님의 중보자대우 받았으면 되지 그만하면 족하지 제가, 자존자도 아닌 게, 창조자도 아닌 게 하나님이 만들어 생겨진 것이 절 단독으로, 저 단독만 섬기라고, 어데 그런 무식한 행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안 됩니다. 의지하는 것도, 산 의지 실력 있는 의지 거짓부리 의지 패망하는 의지 사망하는 의지, 의지도 이것도 죽은 의지 산 의지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여섯째로 복종도, 복종도 산 순종 죽은 순종 있습니다. 산 순종 죽은 순종 하나님께 순종만 산 순종이오. 자기가 층층 시하라. 층층 시하라서,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명하고, 아버지는 또 내게 명하고, 또 그 밑에 손자에게 명하고 해도 하나님의 명령에 합당한 명령이라면, 하나님의 명령에, 하나님의 법칙에 합당한 명령이라면은 아버지가 말하든지 아들이 말하든지 할아버지가 말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소리면은 그거는 하나님 명령인 줄 알고 딱딱 순종하고 아무리 오늘까지 내가 복종했더란대도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된 명령을 할 때는 나는 여게는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뭐이냐?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총리로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이 모두 ‘저 사람은 국사에 대해서나 왕에 대해서나 흠잡을 것이 없다, 다 완전이다’ 그렇게 복종해서 섬겼지마는 온 전국이 달라들어 가지고 이제 다리오 왕 외에 다른 데는 한 달 동안 기도하지 못하도록 어인을 찍어서 조서를 떡 내렸지마는 ‘네가 그만 한 달 동안 기도하지 말아라. 기도하면 저 사자구덩이에 들어가지 않느냐? 기도하지 말아라.’ 자, 고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다리오 왕 명령이요? 예? 다리오 왕 명령이고 하나님 명령이 아니라 이라니까 ‘아이구, 나는 거게 순종 못 합니다. ‘네가 이제까지 너보다 더 충성한 이가 없이 내가 뭐이든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오만 것 다 했는데 왜 요거는 순종 못 하나? ‘그전에 순종하는 것은 왕이 말했지마는 하나님의 명령에 딱 들어맞은 것이기 때문에 왕의 명령이 아니고 하나님 명령으로 내가 순종했지 이 명령은 하나님 명령 아닌 것을 왕이 말하기 때문에,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역적의 행동이기 때문에 역적에 내가 동참할 수가 있습니까? 나는 못 합니다.’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어도 못 하느냐?' `집어 넣어도 못 합니다.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순종하니까 그 사람 살아나오지 안했어? 순종도 되나 안 되나 아무나따나 순종, 그저 팔방미인으로 이러나 저러나 그저 무슨 순종이든지, 여러분들 산 순종합시다. 죽은 순종하지 말고.산 순종은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이 산 순종이요, 그 밑에 사람을 중계자로 몇을 통해 나에게 왔든지 간에 하나님의 그 명령이라면 그거는 직접이나 간접이나 몇 번 그 다리 수에 거쳐 왔더란대도 하나님 명령이면 하나님 명령이지. 그러나 하나님 명령 아닌 것은 우리가 순종하면 죽은 순종이기 때문에 죽은 순종, 죽는 순종, 죽이는 순종, 요것도 요 구별해서 딱 하면 그만 살 수 있어. 순종도 산 순종과 죽은 순종, 살리는 순종 죽이는 순종, 죽는 순종 사는순종.

그다음에 일곱째는 계속입니다. 계속. 계속이라 말을 인내라고도 합니다.인내.

계속. 그러면 내가 이렇게 여섯 가지 생활해 나온 이 생활을 주위 환경에 따라서 피동되지 말고, 흉년든다고 변동되지 말고 배고프다고 변동되지 말고 온 세상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해 가지고 내가 변동되지 말고. 세상이야 그렇든지 말든지 하나님은 변하지 안하고 하나님 법칙도 변하지 안하는 것이니까 언제든지, 그것이 끝날 때까지 고 순종을 계속합니다. 고 순종 고대로 계속해. 순종 고대로 계속해.

왜? 그 순종 고대로 계속하다가 고것이 결실이 딱 되고 나면은 이제 끝났다, 이는 성공됐다, 이러니까 또 새로, 새로 시작하지 이거는 끝났다 할 때까지. 당신이 끝났다고 결실을 맺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야 됩니다. 고것이 인내입니다.

이래서, 인내도 산 인내는 그거는 산 계속은 그거는 산 것이요, 살리는 것이요 유익이 되지만 죽은 계속이 있어, 죽은 계속. 산 계속. 하나님의 명령에 딱 순종한 고걸 계속해야 되지. 하나님 명령에 위반된 그거 뭐 온 천하가 말한다고 해도, 여러분들 요걸 알면은 사람이 담대해집니다. 흔들리지 안하요. 천인 만인이 어떻게 한대도 꼼짝도 안 하요. 움직이지 안해.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참, 젓가락으로 집으면 잘 집히지도 안할 만치 그렇게 못나고 가치 없고 천해도 예수 믿는 사람은 못난 사람 예수 못 믿소, 예수 믿는 사람은, 바로 믿는 사람은 못났든지 병신이든지 등신이든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 마귀를 이기는 사람이라, 죄를 이기는 사람이라, 사망을 이기는 사람이라, 실패를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일곱 가지. 산 계속,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맞은 그걸 계속해야 되지 ‘내가 남자인데, 남자가 한번 말을 해 놓고 그것을 변해?’ 네까짓 게 안 변하고 어짤 것이고? 안 변하면 너 뒈지지, 안 변하면 너 뒈지고 안 변하면 네게 속한 거 다 뒈지고, 하나님이 너한데 굽혀 들어올 줄 아느냐? ‘아, 남자가 그렇지만 한번 했다가, 또 사람이 한번 약속을 했다가.’ 네가 약속 했다가.’ 네가 약속 잘못했으면 백 번이라도 잘못한 줄 알았으면,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약속을 했으면 백 번이라도 고쳐야지, 하나님 한 분에게 상대된, 관련된 고것만 변함 없이 계속해야 되지 그외에 딴거는 계속 못 합니다.

사람들이 어리석게, 사람이 약속을 해 놓았는데, 아무날 잔치하러 갈라 했는데, 약속을 해 놨는데, 전화를 했는데, 만날라 했는데, 어쨌는데 네가 약속한 그게 하나님의 뜻에 맞고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가? 하나님 법칙에 맞은 약속이가? 맞은 약속이면 죽어도 지켜라. 죽어도 지키면 순교되지, 네가 약속을 여러 수십 명 하고 수백 명 하고 온 전국 하고 약속했다 할지라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약속이 하나님하고 틀렸습니다. 싹 끊어 버립니다. ‘아, 이 약속 못 지키겠다.’ ‘이 인간같잖게' `인간같잖은 게 아니라 하나님과 약속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관련 끊어진 이런 피조물 약속이기 때문에 이 약속 지킬라 하면 하나님하고 나하고 끊어진다. 못 하겠다. 이게 잘난 사람입니다.

헤롯 왕이 군중 앞에서, ‘내가 네 소원하면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다’ 장부가 그렇게 말해 놨다고 해 가지고서 세례 요한의 목을 끊어 달라 하니까 옆의 사람에게 위신 지킨다고 떡 하는 그런 못난 인간이 어데 있소? 그거 못난 사람이요 못난 인간이요. ‘내가 약속했지마는 그 의인인데 의인 목을 어찌 베어 달라 하노? 이 못된 계집, 물러가라!’ 이랬으면 하나님이 축복해 줄 거라 말이오.

여러분들, 요게서 인격이라 하는 게 다 보존됩니다.

일곱 가지 산 거 죽은 거 있는 요것을 구별해서 가지는 데에서 사람은 능력 있고 가치 있고 권위 있고 앞으로 영원 세계에 하늘과 땅의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그런 실력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변하지 맙시다. 죽은 것 취하지 말아요.

뭐이든지 죽은 거는 취하지 말아요. 지식도 죽은 지식, 믿음도 죽은 믿음, 소망도 죽은 소망, 맡김도 죽은 맡김, 의지도 죽은 의지, 순종도 죽은 순종, 또 계속도 죽은 계속, 그런 것 하지 말아요. 완전히 죽은 거는 다 털어 버려 버려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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